제 62 회


제 8 장

11

날아가고 날아오는 총탄들의 비명과 하늘이 허물어져내리는듯 한 폭음, 함성, 나팔소리, 어디서 담벽들이 허물어져내리는듯 한 와지끈거리는 소리, 유리창들이 챙강챙강 깨지는 소리들… 온 거리가 박산이 되여 날아나는듯 하였다. 관공서, 공안국, 소방대의 지붕들에서 삼단같은 불기둥이 치솟아오르며 온 시가를 들었다놓는 굉음이 울렸다. 불길은 병영의 창문들에서도 터져나왔다. 비발쳐오는 탄알이 거리의 지붕들이며 담벽들에 부딪쳐 불꽃을 날리는가 하면 관사의 창유리들을 왱강쟁강 들부시였다.

마구간에서 달려나온 사람들은 함부로 날아드는 총탄을 피하여 벽돌담장밑에 붙어섰다. 그들은 너무도 놀라운 변화에 환성도 터치지 못하고 그저 눈들이 휘둥그래져서 두리번거리기만 하였다.

관공서와 공안국, 소방대의 지붕들을 휩쓸던 불길은 어느사이에 마초적치장과 군수창고의 지붕들에 옮겨지고 상점가의 지붕들에도 튀여났다. 바싹 마른 지붕들은 화약처럼 불길을 끌어당겼다. 온 시가가 화로불처럼 타올랐다. 여기저기서 타래쳐오르는 불구름에 캄캄하던 밤하늘이 시뻘겋게 타올랐다. 상점가의 간판들도, 점포의 창유리들도, 거리바닥도, 뛰여가고 뛰여오는 사람들도 모두 시뻘겋게 물들여졌다. 어둠을 불사르며 춤추는 불길들앞으로 유격대원들이 뛰여다니는 모습들이 언뜻언뜻 보이고 힘찬 만세의 함성이 들려왔다. 병영의 창문들에 대고 기관총을 휘두르는 유격대원, 지붕들에서 뛰여내리는 유격대원들, 거리바닥을 바람처럼 달려지나가는 그림자들… 병영마당에도 길바닥에도 왜놈들의 시체가 너저분하게 널렸다. 잔등에 불이 달린 기마병이 거리를 따라 말을 질풍같이 몰아오다가 안장에서 모재비로 떨어져 길바닥에 딩군다. 총소리와 폭음, 피비린내에 미쳐난 말은 바스라지는 울음소리를 내지르며 거리의 저끝 화광이 번뜩거리는 어둠속으로 뛰여갔다.

벽돌담장밑의 사람들은 기쁨에 넘쳐 주먹을 내흔들기도 하고 서로 붙안고 울고 웃기도 하며 웨쳐댔다.

《우리 유격대요!》

《아, 유격대가 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이때 벌건 불빛이 언뜻거리는 거리를 따라 대여섯명의 유격대원들이 키가 후리후리한 젊은분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앞에 서신분은 김일성장군님이시였다. 그이의 등뒤에서 위장용백포자락이 날개처럼 펄펄 날리였다.

하늘에서 타래치는 불구름과 사처에서 황황 소리치며 타오르는 불길을 등지고 걸어오시는 그이의 안광에서는 준엄하고 단호한 빛발이 번뜩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손에 틀어쥐신 권총으로 불길에 휩싸인 병영쪽이며 시가의 동남쪽을 가리키며 지휘관들에게 지시를 주시며 걸어오시였다.

벽돌담장밑의 사람들은 그이앞으로 달려나가며 목이 터지도록 부르짖었다.

《만-세-》

김일성장군 만세-》

장군님께서는 달려와서 매달리는 그 사람들의 손을 잡아쥐고 인사를 받으시다가 열댓걸음뒤 길바닥에 웬 그림자가 엉거주춤하고 서있는것을 발견하시였다. 번뜩이는 화광에 피투성이 된 로인의 얼굴이며 험상궂게 찢어진 바지가랭이가 바람결에 너펄거리는것이 바라보였다.

로인은 한걸음 또 한걸음 걸어나오며 부들부들 떠는 두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장군님!》

그 갈린 목소리를 듣고서는 누구인지 알수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로인에게 다가가시였다. 김진세로인을 알아보신 그이께서는 와락 달려나가 로인의 팔굽을 받들어쥐시였다.

《아버님! 이게 웬일이십니까?》

《장군님!》

김진세는 그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울었다.

마구간에서 나온 사람들이 그이께 사연을 대충 말씀드렸다.

그이께서는 로인의 잔등을 쓸어만지시며 눈물에 젖은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여기 창억이도 왔습니다.》

아버지의 팔을 잡고 옆에 서있는 창억이는 말도 못하고 울먹이기만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를 돌아보며 기쁨에 넘친 음성으로 웨치시였다.

《창억이, 아버지는 나한테 맡기고… 동무는 이제 소방대로 달려가 고동을 울리오. 알겠소? 고동을 울리오, 왜놈들이 다 듣게.… 산속에서 고생하는 우리 인민들이 다 듣게!》

창억이는 눈물을 흩날리며 거리를 따라 뛰여갔다. 그는 불길이 황황 타오르는 거리의 화기속을 누비며 달리고달리여 소방대의 마당으로 뛰여들어갔다.

불길에 휘감겨 시뻘겋게 타오르는 소방대의 건물에서는 기와장들이 탁탁 튀여오르며 불찌를 날리고있었다. 고동탑의 사다리에서도 불길이 날름거렸다.

창억이는 살이 익는듯 한 화기와 휘감겨드는 불길속을 뚫고 사다리로 기여올라갔다. 아스라하게 높은 탑에 오르니 불길이 충천하는 시가가 한눈에 안겨왔다. 불길에 대낮처럼 밝아진 거리로 시민들이 달려나와 끓어번지며 병영앞거리쪽으로 밀려갔다. 병영앞거리에 모여들어 설레이는 군중들의 복판에서 붉은기발이 날리고 그 기발앞에 장군님께서 서시여 주먹을 높이 쳐들어 흔들며 연설하시는 광경이 바라보였다.

창억이는 고동을 소왕청쪽으로 돌려놓고는 두손으로 손잡이를 힘껏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잔등이며 무릎에 달린 불길을 끌념도 않고 휘감겨드는 연기와 화기속에서 온몸의 힘을 팔에 다 모아 돌리고 또 돌리였다.

그가 어찌나 힘을 쓰는지 아스라하게 높은 탑이 좌우로 휘청거렸다.

점점 무서운 함성으로 터져나오는 고동소리는 불구름이 뭉게쳐오르는 시가를 들었다놓고 대륙의 밤을 뒤흔들며 어둠에 짓눌린 먼 하늘가로 날아갔다.


×


그것은 놈들에게 있어서 과연 청천벽력같은 일이였다. 왜놈들은 왕청시가에서 타오르는 시뻘건 불길을 보자 포위환을 좁히며 최후공격을 하려던 시도를 버리고 황급히 총퇴각을 시작하였다. 퇴각이 시작되자 곧 사처에서 혼란이 일어났다.

근거지를 겹겹이 포위하였던 보병무력들과 포병, 공병, 통신병, 치중대의 화물자동차들과 마차들과 일선의무소의 부상병들과 시체들… 한마디로 말하여 근거지안과 바깥의 모든 골짜기들과 버덩들과 개천가에 널어놓았던 부대들과 군대의 거창한 살림살이들을 한꺼번에 거두어가지고 좁은 골짜기어귀들과 하나밖에 없는 자동차길로 빠져나가기란 헐한 일이 아니였다. 공격정신으로만 길들여진 왜군은 총퇴각명령이 내리자마자 장교들의 할복자살, 사병들의 방자한 반항으로 하여 지휘체계가 수습못하게 혼란되였다.

모든 골짜기어귀 그리고 소로길과 마차길이 합쳐지는 곳, 마차길과 자동차길이 합쳐지는 모든 곳들에 군대들과 군마들과 산포들과 마차들이 사태처럼 밀려들어 먼저 빠져나가겠다고 와글와글 끓어번졌다. 비탈길에서 마차들이 굴러떨어지고 미쳐난 군마들이 사람들을 짓밟으며 뛰여오르고 산포바퀴들이 졸병들과 시체들을 깔며 와당탕와당탕 굴러갔다. 어떤 산비탈에서는 사람과 말과 산포가 한데 어울려 낭떠러지밑으로 굴러떨어졌다.

장군님께서는 유격대와 반일자위대, 인민들을 동원하시여 추격전을 벌리는 한편 퇴각하는 놈들의 길목들을 화력으로 차단하고 대대적인 소탕전을 벌리도록 하시였다. 모든 산벼랑들과 비탈길우와 골짜기어귀들의 산중턱과 갈림길목들에서 퇴각하는 무리들에 불벼락, 돌벼락이 쏟아져내렸다. 무수한 시체들을 길바닥에 널어놓으며 패주하던 왜군의 패잔병무리들은 대왕청골짜기어귀와 소왕청골짜기에서 내려오는 큰골짜기가 합쳐지는 넓은 버덩에서 유격대의 최종적인 포위망에 걸려들었다.

장군님께서는 대왕청골짜기어귀의 백바위에 서시여 백포자락을 날리시며 대포위섬멸전을 지휘하시였다.

골짜기마다에서 혼비백산이 되여 도망쳐나오는 왜군의 패주상을 둘러보시던 그이께서는 쌍안경을 내리시며 전령병들과 호위병들을 돌아보시였다.

《과연 볼만하오. 옛날장수들은 저런 광경을 보고… 병패여산도라… 이렇게 불렀소. 군대가 망해서 도망치는건 산이 허물어져내리는것과 같다는 소리요.》

성림이와 창억이는 마주보며 빙그레 웃었다.

버덩에 몰키며 와글거리고있는 적을 둘러싸고 산기슭이며 릉선의 앞코숭이들에 매복해있는 유격대와 반일자위대의 부대들은 신호를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있었다.

털모자를 벗고 이마의 땀을 훔치시던 장군님께서는 문득 큰길 건너편 산중턱을 가리키시였다.

《저기… 저게 우리 동무들이 아니요? 저 사람들이 무슨 구경거리나 만난것처럼 머리를 쳐들고 저러다간 적들에게 먼저 발견되겠소. 담배까지 피우는군.…》

건너편 산중턱의 눈속에서 새까만 머리들이 오르내리는것이 바라보였다.

《창억동무, 동무가 저기 가서 좀 뜨끔하게 말해주오. 그리고 장룡산, 박태화동무한테 달려가서 무기로획에만 욕심을 쓰지 말고 유생력량을 소멸하는데 모든 힘을 집중하라고 이르오. 한놈도 살아나지 못하게… 내가 전투총화를 단단히 지을 작정이라고 말하오.》

《알았습니다.》

창억이는 경례를 붙인채로 사령관동지를 우러러보며 반죽이 좋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돌아오랍니까?》

《마지막돌격에 참가하고싶겠지? 거기가 동무 고향중대지?… 그렇게 하오!》

창억이는 기뻐서 껑충 뛰여오르는듯 하더니 홱 돌아서 달려내려갔다.

그가 큰길을 날아건너 산기슭에 붙는데 정황의 급변으로 벌써 사령부의 나팔소리가 울렸다.

산중턱의 눈속에서 유격대원들이 뛰여일어나 무서운 함성을 지르며 달려내려왔다.

창억이는 우두커니 서서 그들을 바라보다가 앞으로 휙휙 날아지나가는 대원들속을 누비며 장룡산중대쪽으로 달려갔다. 탄알들이 윙윙 울부짖으며 귀밑을 스쳐지나갔다. 기병총의 격발기를 재우며 달려내려오는 최형준의 앞을 달려지나가던 그는 저 사람이 어떻게 되여 유격대원들속에 들어 싸우게 되였는가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피뜩 스쳐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최형준은 한쪽다리를 안고 눈속에 딩굴었다.

창억이 그에게로 막 달려가려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잡관목들사이로 웬 젊은 녀자가 새된 소리를 지르며 달려나왔다. 박현숙이였다.

박현숙은 얼굴이 해쓱해져서 창억에게 부상자는 자기가 맡겠으니 어서 가라고 손짓하였다.

최형준은 그 녀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의 다리에서 슴새여나온 피가 흰눈을 붉게 물들이였다. 최형준은 그 붉은 눈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더니 《일으켜주오. 동무, 일으켜주오!》하고 부르짖으며 일어나려고 모지름을 썼다.

박현숙은 자기의 따뜻한 체온이 스민 목수건을 풀어 그의 상처를 힘껏 동여매였다. 그제야 최형준은 살뜰한 손길로 자기를 처치해주고있는 녀자가 누구인가를 알아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박현숙은 뜨거운것이 번쩍거리는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형준동무, 저야요!》

《요영구에 가지 않았소?》

《아이들만 맡기고 돌아왔어요.》

《거기 있지 않고 왜 왔소?》

박현숙은 대답을 못하고 그의 상한 다리를 싸맨 목수건을 다시 고쳐매고 세상에 그것처럼 소중하고 아까운것이 없는듯 산뜻하고 부드럽게 상처둘레를 쓸어만지며 위로의 말을 하였다.

《상처는 깊지 않아요. 탄알이 스치고 지나간것 같아요! 안심하세요.》

최형준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녀자앞에서 이렇게 눈에 쓰러져 딩굴게 된것이 창피하고 분하여 그리고 알수 없는 설음이 북받쳐올라 입술을 피터지게 깨물고 대섬멸전이 끓어번지는 전장쪽을 돌아보았다.

그는 나무가지를 붙잡고 일어서려고 안깐힘을 쓰며 애타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일으켜주오. 부축해주오. 나는… 나는 이 싸움에 참가 못하면 일생동안 후회하오!》

박현숙은 그를 일으켜주며 말했다.

《형준동무, 홍병일이 그자는 죽었어요! 아주 값없이… 우리와 같이 갔더랬는데 아이들이 울면 발견된다고 저 혼자 떨어져가다가 왜놈들과 맞다들어 총에 맞아죽었어요. 요영구에서 돌아와서 보니 그 자리에 홍병일이를 치던 그 지팽이가 눈에 꽂혀있지 않겠어요. 건사해뒀어요.》

《그건 해서 뭘하자구?》

《동무가 종파를 친 기념으로요.…》

최형준은 열기가 번쩍거리는 눈으로 그를 보다가 전장쪽에 눈길을 돌렸다. ·

《저걸 보오!… 저걸 보오! 우리한테 왜놈들이 다 녹아나오! 권일균이나 홍병일은 저런 우리 인민을 사랑하지 않았소. 저 위대한 힘을 볼줄도 몰랐고…

그런자들은 다 망하는 법이요. 김일성장군님만 아니시였다면… 아, 아, 나도 망할번 했소!》

그는 전투의 소음이 끓어번지는쪽으로 달려나갔다. 상한 다리가 저려오는것도 아랑곳없이 박현숙에게 부축되여나갔다. 가지런히 움직이는 발밑에서 눈가루가 날아올랐다. 박현숙의 흩날리는 머리칼이 그의 볼이며 목을 건드렸다.

최형준은 눈물을 뿌리며 목이 터지도록 웨치며 달려나갔다.

《왜놈들을 치자- 모조리 족치자- 혁명- 만세-》

이때 창억이는 백포자락들을 날리며 눈사태처럼 밀려내려오는 장룡산중대의 산병선속에서 만세의 함성을 우렁차게 터뜨리며 돌격해내려왔다.

《혁-명-만세-만세-》

사령부의 두번째 나팔소리가 울렸다. 그 신호에 따라 저아래쪽에서 큰길목을 막아섰던 유격대의 여러 부대들도 반돌격을 시작하였다. 큰길 량쪽의 산중턱으로부터 길게 늘어선 유격대의 산병선이 눈을 뽀얗게 날리며 달려내려왔다. 뒤따라 모든 산기슭과 골짜기, 벼랑들우에서 유격대와 반일자위대의 산병선이 총창들을 번쩍거리며 달려내려오고 형형색색의 옷차림의 인민들이 도끼며 낫이며 쇠스랑들을 휘두르며 밀려내려왔다. 눈에 덮인 가파로운 산기슭을 따라 바람을 탄 바위돌처럼 휙휙 날아서 내려오는 사람들, 앉은 썰매를 타고 미끄러져내리는 사람… 사방에서 터져오르는 만세의 함성에 대기가 떨었다. 도로의 적대렬은 무질서하게 흩어져서 산기슭과 버덩으로 내뛰였다. 대왕청골안에서 빠져나오던 적의 보병대렬과 포병, 치중대의 마차행렬도 량쪽 산중턱들에서 쏟아지는 불벼락에 뒤죽박죽이 되여 아우성치며 흩어졌다. 군마들이 기겁하여 뒤걸음질치는 바람에 산포들이 치중마차들을 들이받아 엎어놓았다. 길아래로 육중하게 굴러내리는 마차, 껑충 뛰여올랐다가 엎어지는 산포, 모두발로 뛰여오르며 울어대는 군마, 한데 몰켜 붐벼대다가 버덩으로 내뛰는 보병들, 그 수라장의 여기저기에서 수류탄과 작탄이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터져 시커먼 연기와 흙기둥들이 날아올랐다.

폭풍에 날려 허공에 뿌리워올랐다가 눈속에 구겨박히는 놈, 터진 창자를 그러안고 짐승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맴돌이치는 놈, 피투성이된 얼굴을 싸쥐고 내뛰다가 미쳐날뛰는 군마에게 짓밟히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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