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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1 회


제 8 장

10

눈보라에 묻힌 깊은 산중의 골짜기들에서 눈물겨운 작별들이 벌어졌다. 로약자들과 어린이들이 라자구와 요영구로 떠나가고있었던것이다.

최형준은 리재명이와 림성실을 도와 떠나가는 사람들의 대렬을 편성하기에 바삐 돌아쳤다. 떠나겠다고 선선히 응해나서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로인들은 손자나 아들이 유격대에 있기때문에, 녀성들은 남편이나 애인이 유격대나 반일자위대에서 싸우기때문에 그리고 분여받은 땅과 정든 고장을 뜨기 싫어 그리고 이 어려운 때에 의리를 저버리는것 같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결사전을 앞둔 이 마당에서 안전한 곳을 찾아가는것이 남아있는 사람들앞에 죄를 짓는것으로 여겨져 떠날 차비를 못하고 망설이고있었다.

최형준은 그런 사람들을 찾아 돌아다니며 설복하기에 다리맥이 진하고 목이 탁 쉬여버렸다. 그러나 창억의 어머니는 끝내 설복해내지 못하였다. 허씨는 아들이 유격대에 있고 령감이 왜놈들에게 잡혀 생사여부도 딱히 모르는 판에 제 혼자 살겠다고 떠나겠느냐고 하며 앉아버티였다. 낟알을 달라거나 무엇을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지도 않을테니 여기서 혼자 조용히 죽게 해달라고 눈물을 짓는것이였다. 그러나 손자인 봉남이만은 꼭 데려가달라고 부탁하였다. 싸우다 다 죽더라도 가문에 씨종자야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이였다. 봉남이는 할머니의 심정에 부추김을 받아 어디론가 내뛰여 숨어버려서 도저히 찾아낼수 없었다.

떠나는 사람들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덮을것이나 입을것, 아무것이나 더 남겨주자고 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떠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자고 하여 작별은 더 가슴쓰리고 눈물겨운것으로 되였다. 열명 혹은 스무명씩 조를 무어 동안을 두고 떠나가는 사람들은 눈물에 젖어 자꾸 뒤를 돌아보며 산골짜기를 뒤덮은 눈보라의 안개속에 사라져갔다.

남는 사람들이나 떠나는 사람들이나 모두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았다. 과연 살아서 다시 만날 날이 있겠는지 기약할수 없는 작별이였다.

사람들이 계속 떠나가고 적들의 총성이 지척에서 들려오자 산속의 공기가 뒤숭숭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깊은 밤중에 리재명이 최형준을 외진데로 불러내여 김일성동지께서 주력부대를 이끌고 포위환밖으로 나가셨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리재명은 눈을 날카롭게 번뜩이며 이 소식이 널리 퍼지면 뜻밖의 동요와 혼란이 생길지도 모르니 혼자 알고 입밖에 내지 않는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다음부터 최형준은 대피소에서 대피소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근거지를 끝까지 지키자고 선동연설도 하고 해설담화도 하였다.

그 이튿날 아침 박현숙이 마감으로 어린이들을 데리고 요영구로 떠난다는 말을 들은 최형준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한동안 서글픈 얼굴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여태 그에게서 색다른 따뜻한 말 한마디 들어본적 없으나 어쨌든 자기를 괴롭히고 번민케 하고 열정에 불타게 했던 그 얼음고드름같은 존재가 영영 사라져버린다고 생각하니 가슴속이 허전해져서였다. 그전에 온성에서 돌아와서 윤보금이를 통해 당치 않은 인사말을 전했다고 무안을 주던 일을 생각하면 이제 특별히 찾아가서 인사할 필요까지는 없을것 같았다. 그렇다고 동지호상간에 모른척 하기도 별스러웠다. 또 이런 엄혹한 때에 그쯤한 일이 가슴에 맺혀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는것이야말로 얼마나 남아장부답지 못한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최형준은 무슨 마음을 먹었던지 창억이네 움막에서 낫을 얻어 물푸레나무를 찍어다가 지팽이를 깎았다. 가파로운 숫눈길을 헤치며 산길을 톺아오를 때에 이런것이 있으면 동지인 박현숙에게 의지가 되지 않을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지팽이의 길이를 박현숙에게 맞추느라고 무척 마음을 썼다.

아동단학교 어린이들이 든 대피소근처의 울창한 참나무숲에는 눈꽃이 하얗게 피여있었다.

박현숙은 마침 움막앞에서 짐을 꾸리고있었다. 솜덧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머리에 털수건을 칭칭 감은 그 녀자는 몸이 부하고 욕심많은 아낙네처럼 배낭에 무엇인가를 자꾸 꿍져넣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그옆에서 떠날 차비를 다한 서너명의 어린이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있었다.

최형준은 물푸레나무지팽이를 두손에 들고 그에게로 다가가다가 쑥스러운 생각이 들어 머뭇거리며 그가 돌아보기를 기다렸다.

이때 아래쪽으로부터 홍병일이 개털외투 앞섶을 열어헤치고 헐썩거리며 올라왔다. 그의 입에서는 입김이 훌훌 날아나왔다.

푹 눌러쓴 털모자의 귀덮개며 눈섭에 성에가 허옇게 불리였다. 그는 전에없이 활기에 넘친 걸음이다.

《여- 최동무-》

그의 목소리를 듣고 박현숙이 놀라서 돌아보았다.

홍병일은 반겨웃으며 달려와 최형준의 손을 잡아흔들더니 그의 팔을 끌고 눈꽃이 하얗게 핀 참나무숲속으로 들어갔다.

《유격대주력이 여기서 빠져나갔단 말이요. 이제는 텅 비였소.》

그리고는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는듯 실눈을 지으며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최동무, 그새 맘고생을 많이 했지? 나는 속에 재만 가득찼소.》

최형준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 어정쩡해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요영구나 어디 더 깊은데 들어가 띠를 풀어놓고 회포를 나누자구. 빨리 떠날 준비를 하오.》

《무슨 소리요? 자위대진지는 어찌고 떠난단 말이요?》

《헹, 이 사람이 밤중이군. 유격대주력이 여기서 빠져나갔다니까. 이제는 텅 비였소! 김진세령감이 살아서 놈들한테서 대접을 받는걸 본 사람이 있는데 적들이 그 령감태기를 앞세우고 여기로 인차 들어올게요.》

《그럴수 없소. 그 로인은 마촌이 불탈 때 이미 운명했소.》

《그건 동무 생각이구 정황은 훨씬 엄혹하오. 빨리 준비하라구. 요영구에 들어가서 현당을 다시 조직하고 여기서 벌어졌던 모든 로선투쟁을 총화지어야 하겠소.》

최형준은 놀라서 눈을 크게 뜨며 주춤 물러섰다.

《나는 당신이 코민테른파견원사살사건때 권일균의 총에 맞은 다음부터 일을 잘한다기에 채심한줄로 알았댔소.》

그러자 홍병일은 허리에 두손을 올리고 턱을 쳐들사 하고 미친듯이 웃어댔다.

《홧화화…》

그는 한껏 웃어대다가 불덩이처럼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 샌님아, 그게 권가의 총탄인줄 알았는가?

그때 내 립장이 어떠했겠는가?

자칫하면 혼자서 혐의를 뒤집어쓸 판이였지. 그렇다고 권가나 박가처럼 왜놈들한테로 도망치겠는가? 나는 자파의 로선이 패했다고 적들한테로 넘어가는 그런 추물이 아니요. 나는 하는수없이 제 손으로 팔을 쏘고 이날이때까지 수모를 참아왔소, 이날을 위해!》

최형준은 그가 자기를 한배속으로 알고 이런 소리를 탕탕 줴치는것에 우선 참을수 없는 모욕을 느꼈다. 그 모욕감이 온몸을 황황 불사르는듯 하였다.

《보라구, 근거지는 다 망했네. 주력이 빠져나갔으니까 왜놈들이 쳐들어오면 끝장이네. 우리가 빨리 손을 써서 현당부터 줴야겠네.》

최형준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 무서운 일이구나! 김일성장군님께서 근거지에 계실 때는 움쩍을 못하다가 계시지 않으니 머리를 쳐드는구나. 종파악당!》

《야야, 흰소리는 작작하고 가자! 네 필력이 아까와서 내가 참는줄 알아라!》

《못 간다. 나는 목숨을 내걸고… 죽어도… 김일성동지로선을 지지한다. 옹호한다! 나는 피눈물을 삼키며 그 로선의 정당성을 체험했다. 갈테면 너나 가라! 비렬한 놈! 나는 너처럼 더럽게 살수 없다!》

《뭣이 어째? 에익!》

어느 순간엔가 홍병일의 주먹이 그의 뺨으로 날아들었다. 최형준은 모재비로 쓰러질듯이 비칠거리다가 몸을 가누었다.

그는 무서운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나가 물푸레나무지팽이로 홍병일의 어깨며 잔등을 마구 후려쳤다.

《배신자! 종파악당! 권가나 네놈이나 다 같다. 내가… 내가… 네놈들을… 엑!》

눈꽃이 하얗게 흩날려내리는 속으로 박현숙이 새된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어왔다. 그 틈에 몸을 뺀 홍병일은 아래로 달려내려가며 그에게 소리쳤다.

《다시 만나자! 후회할 날이 있을게다! 여기 남았댔자 죽음밖에 차례질게 없어!》

박현숙은 단숨을 몰아쉬며 겁에 질린 눈으로 최형준을 쳐다보았다.

《왜 몽둥이를 휘둘러요? 말로 하면 안돼요?》

《동무가 무슨 상관이요? 참견 말란 말이요!》

박현숙의 앞에서 처음으로 큰소리를 친 최형준이다. 그는 험한 얼굴로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지팽이를 내려다보다가 거기에 더러운것이 묻기라도 한듯 옆으로 홱 뿌려던졌다. 그리고는 살같이 날아간 지팽이가 어느 눈속에 꽂히는가도 돌아보지 않고 홍병일이와 반대방향으로 뛰여올라가며 비칠거렸다.


×


바로 그무렵 김진세는 왜놈의 군용마차에 실려 다른 운명의 길을 가며 근거지와 작별하고있었다. 바줄에 몸을 결박당한 그는 마차에 실은 빈 탄약궤짝들사이에 엇비스듬히 누워있었다. 그의 얼굴은 몰라보게 부어올랐고 이마와 관자노리에는 피가 검붉게 엉켜있었다. 마차가 덜커덩거릴 때마다 들썩들썩 들추는 궤짝모서리들이 그의 머리며 잔등을 함부로 짓쪼았다. 그래도 그는 아픔을 모르고 물기가 도는 눈으로 멀어져가는 근거지의 산발들만 바라보았다.

털외투에 털모자를 푹 눌러쓴 얼굴이 좀상스러운 사마병놈은 이따금 그를 돌아보며 이죽거렸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마차들이 삐걱거리고있었다. 대개가 송장들을 실은 마차들이다. 앞마차의 뒤꽁무니에서는 거적밑에서 삐여져나온 꽛꽛한 다리들이 거들거리였다.

김진세는 삐거덕거리며 굴러가는 마차바퀴가 자기를 어디로 실어가는지 몰랐다. 그는 근거지의 산발들이 멀어져갈수록 머리를 점점 높이 쳐들며 뾰족산과 마반산의 꼭대기들을 눈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의 눈에 눈물이 사품쳐오르고 불어오는 바람결에 수염발이 처량하게 나붓겼다.

김진세는 제땅에서 농사도 지어보고 정부의 정사에도 참여해서 사람으로 누릴것은 다 누려봤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종삼이 무사히 빠져나가 그 쌀이 사령부에 가닿았겠는지… 오직 그 한가지 걱정에 머리를 쳐들고 근거지의 산발들을 끝없이 바라보는것이였다. 무정한 산봉우리들은 앞산들뒤에 키를 점점 낮추더니 아주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로인은 자기가 참 맹랑한 일로 왜놈들에게 잡혔다고 생각했다. 그날밤 마종삼이와 함께 뒤울안에서 쌀주머니를 둘러메고 나오려는데 기마병 한놈이 뜨락으로 들어왔다. 장교놈이였다. 놈은 말에서 내려 굴뚝쪽으로 와 지붕에 새로 인 조짚을 뽑아서 씹어보았다. 그리고는 말한테로 가서 그것을 먹여보였다. 말은 조짚을 와작와작 맛스럽게 먹었다. 제놈들이 내 집 지붕을 벗겨 말먹이로 쓰자는 잡도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가슴에 불이 확 일었다. 그는 꽁무니에서 도끼를 빼들고 몸을 날려 놈의 뒤더수기를 찍었다. 그리고는 둘이서 쌀자루를 둘러메고 뒈진 놈의 말까지 끌고 마을을 벗어져나오다가 웃쪽에서 내려오는 기마병놈들과 맞다들게 되였다.… 그때 장교놈이 그러거나말거나 좀더 어디에 숨어있다가 몰래 빠져나왔더라면 아무일도 없었을것이다. 놈들은 그를 동림촌의 어떤 천막안으로 끌고가서 군도날을 목에 대며 김일성사령부는 어느 산에 있는가, 유격대는 어디어디에 있는가, 식량을 파묻은데는 어딘가, 무기수리소는 어딘가, 별의별것을 다 따져물었다. 김진세는 어디서 그런 꾀가 났던지 벙어리시늉을 해보이며 모른다고 손만 내흔들었다. 뭇매질밑에서 통나무처럼 딩군 일이 몇번인지 모른다. 새벽녘에 놈들은 그를 밖으로 끌어내여 눈우에 꿇어앉히고 군도날을 뒤덜미에 갖다대였다. 김진세는 이제는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가 부다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 똥똥한 장교놈이 다가와서 목덜미며 어깨박죽살을 주물러보고 팔뚝을 쓸어만져보더니 군도를 빼든 놈에게 껄껄 웃어대며 무엇이라고 지껄였다.

놈들사이에 무슨 흥정이 오가는것 같았다. 그러더니 목을 치지 않고 천막으로 다시 끌고들어가 팔다리를 바줄로 묶어놓았다.

아침에는 밥에 더운국까지 먹여주고 이렇게 마차에 처실었다.

마차는 삐거덕거리며 왕청쪽으로 굴러가고있었다. 김진세는 놈들이 왜 자기를 죽이지 않고 왕청으로 실어가는지 도무지 알수 없었다. 왕청에 내다가 숱한 시민들앞에서 목을 치자는겐가?…

그는 머리를 쳐들고 서서히 흘러가는 산이며 골짜기며 버덩이며 얼어붙은 개천물을 둘러보았다. 어디를 보나 왜군들이 누렇게 한벌 깔렸다. 버덩에 늘어선 대포들은 모두 포신을 소왕청근거지쪽에 돌렸다. 포진지둘레의 눈들은 거멓게 어지러워졌는데 그우에서 왜놈들이 무엇들을 하는지 군데군데 몰켜서 와글거리고있었다. 마을과 마을사이로는 기마병들이 분주히 뛰여다녔다. 길이라는 길로는 모두 길고 짧은 왜군대렬들이 오갔다. 개천가에 주런이 친 천막들에서는 부상당한 놈들을 눕힌 담가를 멘 놈들이 드나들었다. 불타버린 마을에도 왜놈들이 누렇게 달라붙어 화목감들을 뜯어내였다. 불길에 그슬린 각재들이며 문짝들을 메고가는 놈들이 여기저기에 바라보였다. 눈에 덮인 밭을 꿰질러 전화줄을 끌고가던 놈들이 이쪽을 바라보며 무엇이라고 꽥꽥 소리질렀다. 길가의 눈우에는 허리며 팔다리들이 꼬부라진 얼어붙은 시체들이 드문드문 수십개씩 줄지어 누워있었다. 아마 시체운반차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산비탈길옆에서는 홈타기에 구겨박힌 산포를 끌어내느라고 숱한 놈들이 어깨에 바줄을 걸고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지르며 안깐힘을 썼다. 바위우에 올라선 장교놈이 군도로 공기를 내리칠 때마다 바줄을 어깨에 건 졸병들은 목소리를 합쳐 《여-이-샤-여-이-샤-》 하고 소리치면서 포를 끄는것이였다.

김진세는 뾰족산에서 석전을 벌릴 때에도 왜놈들이 뒤에 이런 전쟁판을 펼쳤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우리가 얼마나 강하면 왜놈들이 이렇게 숱한 병력을 끌어들였겠는가! 우리 장군님께서 얼마나 전술을 잘 썼으면 놈들이 미처 송장들을 실어내지 못하게 뒈졌겠는가!

그는 산속 움막에서 자기때문에 혼자 속을 썩이고있을 로친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았으나 가슴에 자랑이 넘치여 의젓하게 머리를 쳐들고 번쩍이는 눈으로 전장의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하늘에서 까마귀들이 기승을 부리며 떼를 지어 날아들면서 까욱… 까욱… 울어대였다.

(허, 저 까마귀들을 보지. 왜놈송장냄새에 만주까마귀들이 다 날아드누나. 흐흐흐…)

왕청시가에 도착하여 그가 끌려간 곳은 사형대나 철창속도 아니고 어느 병영의 마구간이였다. 어둑시근한 마구간의 짚덤불우에서는 백여명의 사람들이 딩굴고있었다. 모두 여러 근거지들과 그 린근의 마을들에서 붙잡혀온 농민들이였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토벌》사령부가 얼마전부터 돈벌이를 시작하여 《민간인포로》들을 무순탄광과 하이라르의 어느 공사판에 팔아넘긴다는것이였다.

김진세는 무순이라는데가 어느쪽에 붙어있는지도 몰랐으며 하이라르라는 고장이름은 듣다가 첫소리였다. 아마 세상 한끝에 있는 불모의 땅일것이다. 너무도 뜻밖이고 너무도 기막힌 소식에 그는 밑둥이 잘린 나무처럼 허우적이다가 짚덤불에 쓰러지고말았다.

밤이 되자 먹물을 풀어놓은듯 캄캄한 어둠속 여기저기에서 앓음소리들과 가슴을 찢는 흐느낌소리들이 들려왔다.

김진세는 잠들지 못하였다. 눈에서 뜨끈뜨끈한것이 흘러내려 귀안에 떨어졌다. 이제 산속에 숨어있는 로친이며 봉남이는 어떻게 되고 자기는 먼 타향에서 고생살이를 하다가 어찌 무주고혼의 신세로 되겠는가? 무순이라는데는 몇천리밖이고 하이라르라는데는 몇만리밖인가?

온갖 시름과 착잡한 궁리, 번민에 시달린 그는 자정이 퍽 지나서 잠에 노그라떨어졌다. 자면서도 잔등으로 선뜩선뜩 스며드는 찬바람에 짚덤불속으로 자꾸 기여들게 되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던지 뼈속까지 얼어드는 추위에 잠을 깼다가 짚덤불을 뒤집어쓰고나서 몸을 꼬부린 그는 아슴푸레한 잠결에 어둠속 어디에선가 버스럭거리며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웬 사람이 어둠속에서 짚덤불우를 기여다니며 사람들을 흔들어 깨우면서 휘파람같은 소리로 여기 소왕청이나 대왕청에서 오신분이 없는가고 물었다.

《저는 화룡에서 오는 련락원입니다. 어떻게나 탈출해서 김일성장군한테로 가야 하겠는데 좀 물어봅시다. 유격대가 량수천자를 쳤다는데 장군이 밖으로 나왔는지 아직도 소왕청근거지에 있는지 모르겠습니까? 장군한테 중대한 련락을 전할게 있습니다.》

그는 자기를 화룡유격대 정치위원이라고 하며 도중에서 변절자가 생겨 잡혔노라고 했다. 사람들은 잠을 방해한다고 그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고 동정의 말도 했다.

얼마후 구석쪽에서 한 목소리가 소왕청에 가야 장군님을 만나지 못한다고 일러주었다.

김진세는 장군님께서 소왕청근거지에 계시지 않는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소왕청에 계시지 않습니까? 그게 사실입니까? 예? 그걸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여보시오… 잡니까?》

《자기사… 내 잡혀 끌려오기 전에 사동이란 마을에서 오는 조카를 만났는데… 장군님께서 조카네 이웃집에 들려 아침을 자시고 숱한 군대를 거느리고 두만강쪽으로 나갔다우.…》

《하…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김진세는 그의 인편에 자기 소식을 전할수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어 머리를 들어 그쪽에 대고 속삭였다.

《여보시오, 이리 좀 오시오.》

《로인님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마촌에서 왔소.》

《마촌이요?》

부스럭부스럭 기여오는 소리가 났다.

화끈한 입김이 이마를 스쳤다. 김진세는 입김에서 인단냄새같은것을 느꼈다.

(입안에서 겨불냄새가 날 처지에 이게 무슨 냄샌가?)

그러자 련락원이라는 사람이 자기 신분이며 임무를 이런데서 함부로 루설하는것이 미심쩍어졌다. 가슴이 화들화들 떨렸다.

그 사람은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김진세의 머리며 어깨를 더듬어보더니 옆에 부스럭거리며 누웠다.

《화룡유격대에 내 조카가 있는데… 거기서 중대장을 한다던지 박창억이라고 모르겠소?》

《저는 안도쪽에서 가지 들어와서 잘 모르겠는데 그런 동무가 있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마동호라고는 모르겠소? 내 외가편인데 안도에서 들어왔는데…》

《아, 그런 동무는 있습니다. 아바이, 나를 믿지 못해 이럽니까?》

김진세는 손을 내밀어 더듬어서 그의 어깨를 슬그머니 거머쥐였다. 그는 와뜰 놀라는듯 하였다. 그의 몸서리가 선뜩 손바닥에 느껴지는 순간 김진세는 몸을 날려 놈의 배를 타고앉으며 두손으로 목을 눌렀다.

놈은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고 몸을 뻐드럭거리며 부르짖었다.

《놓소! 놓아! 이 령감태기…》

김진세는 놈의 목을 짓누르며 소리쳤다.

《이놈은 밀정이요. 우리 장군님 행처를 알았소-》

그러자 놈은 갑자기 용을 써 몸을 비틀며 로인의 목에 다리를 걸고 넘어뜨리려고 힘을 쓰며 미친듯이 부르짖었다.

《보초- 보초.》

밖에서 다급한 발자욱소리들이 울리더니 마구간문이 왈칵 열렸다. 어둠속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의 비통한 웨침소리들이 터졌다.

《아바이- 피하오-》

《놓고 피하시오-》

그러나 로인은 두팔뚝에 온몸의 무게를 주며 늘어져 배만 푸들거리는 놈의 목을 꾹 누른채 떨어지지 않았다.

전지불을 들고 달려들어온 두 보초놈이 총대로 김진세를 까눕히고 혀를 빼물고 늘어진 놈을 들어올려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넝마처럼 짚덤불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김진세에게 달려들어 마구 발로 짓밟고 총탁으로 내리깠다.

이윽고 놈들은 그를 량쪽에서 붙잡고 끌어내갔다.

마구간마당에는 희푸르스름한 달빛이 깔렸다. 놈들의 총대에 떠밀려 그 달빛을 밟으며 비칠비칠 걸어나가는 김진세는 눈앞이 자꾸 흐려졌다. 가까운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이런 외진데서 죽기가 원통해서였다. 놈들은 마구간뒤울안에 끌고가서 쏠 작정인지 그를 그쪽으로 몰아갔다.

마구간모퉁이를 돌아설 때 찬바람이 얼굴을 쳤다. 김진세는 숨을 모질게 들이쉬며 헉 하고 느끼면서 근거지의 하늘쪽에 눈길을 주었다. 문득 장군님께서 자기네 밭을 갈아주던 그날이 떠오르고 밭이랑들에서 피여오르던 허연 땅김이 눈앞에서 사품치는듯 하였다. 그 밭에 두번다시 씨를 못 뿌려보고 죽는구나싶으면서 설음같은것이 북받쳐올라 입술을 피터지게 깨물고 가슴을 푸들푸들 떨었다.

그는 다음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느끼지 못했다. 눈앞에서 시퍼런 번개불이 번쩍이고 온 세상을 들었다놓는듯 한 폭음이 들려왔다. 총소리들이 울리고 어디선가 짐승의 멱따는듯 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마구간에서 사태처럼 밀려나오는 사람들이 쓰러진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마당을 가로질러 밖으로 정신없이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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