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 회


제 8 장

7

산악과 계곡을 휩쓰는 전쟁의 불길속에서도 반점만 한 어린시절의 추억 하나가 반짝 빛나고는 어디로인가 사라졌다.

실개천의 종개를 잡아 큰물의 소용돌이속에 놓아주었더니 어리어리해져서 제대로 꼬리치지도 못하고 물결에 밀려 빙빙 돌아가기만 하였다.

사령부에 온 창억이는 거창하게 설레이는 혁명의 한복판에 들어섰다는 아름찬 감격과 긴장에 어정쩡해진 자기를 발견하고 추억속의 그 종개처럼 되여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 일이나 손에 잡아보려고 했으나 되지 않고 열기가 북받치고 흥분이 앞서 료량이 없이 들락날락하며 돌아가게 되였다.

리성림이 그를 조용히 붙잡아세우고 깔끔한 눈으로 아래우를 훑어보며 어려운 때지만 사령부에 온것만큼 복장정돈부터 잘하라고 일렀다. 고맙기도 하였으나 그 깔끔한 눈은 좀 섭섭하였다. 성림이 장군님을 모시고 마촌에 처음 왔을 때 자기는 유격대원이 될 엄두도 못 내고 유격대병실에 땔나무짐을 지고 다닌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너무 경험자연하면서 만나자부터 가르치려드는것 같아서였다.

창억이는 창억이대로 성림의 사업을 들여다보는 눈이 있었다. 그가 보기에 성림에게는 사령관동지의 신변을 돌보는데서 소홀한 점이 한두가지 아니였다. 창억에게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되였다.

사령관동지의 침구로는 보위색군용모포 한장밖에 없었다. 그것도 한쪽모서리가 불에 타서 기운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어찌다가 밤이 깊어 주무실 때면 그 모포 한장에 털외투를 덮고 누우시였다. 그 모포는 침구로만 쓰이지 않았다. 회의를 할 때에는 상보로 쓰이고 뙤창문의 불빛을 가리울 필요가 있을 때에는 휘장으로 쓰이였다. 그때마다 기운 자리가 떳떳치 못한 흠집처럼 보기 딱하였다. 모포를 개여놓거나 말아서 배낭에 붙일 때에라도 그 흠집이 안에 들어가게 했으면 좋으련만 성림이는 그런것에는 전혀 마음을 쓰는것 같지 않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신발여벌이 없어 내내 얼어서 소가죽처럼 꽛꽛해진 신발을 신고다니시였다. 그 신발이 언제 녹아서 언제 마르는지 몰랐다. 이때까지 신발 한컬레 여벌로 마련해두지 못하고 뭣을 했단 말인가? 더욱 참을수 없는것은 식사형편이였다. 사령부의 다른 성원들이 강냉이죽을 먹을 때면 사령관동지께도 강냉이죽을 드리였다. 전령병들이 수수밥에 된장을 찍어먹을 때면 그이께도 같은것을 올리였다. 창억이네 집에서는 아무리 어렵게 살 때에도 아버지의 밥상에는 산나물채 한가지라도 딴것을 올려놓았으며 조무래기형제들은 아버지의 밥상을 넘겨다보지 않도록 길들여졌었다. 하물며 우리 근거지, 우리 혁명군이라는 이 대가정에서 만민이 그처럼 큰 기대를 걸고 우러러 바라보는 사령관동지를 이렇게 소홀하게 대접한단 말인가?

창억이는 중대에 있을 때 사령관동지께서 성품이 소탈하시고 생활이 소박하시다는 말은 많이 들어왔으나 사령부에 와서 측근에서 보좌하는 동무들이 그이를 이렇게 모시는것을 보니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고 의분을 참을수 없었다. 그는 리성림이와 대들이판으로 붙고싶었으나 우선 전에부터 있던 동무들을 존중하며 배우는 립장에 서는것이 옳을것 같아 분을 가까스로 삼키고있었다.

적들은 점점 더 큰 무력을 들이밀었다. 낮에 밤을 이어 쏘아대는 산포들의 미친듯 한 포격에 마을들이 불타고 허물어져내렸으며 대화재의 불길이 시꺼먼 연기로 하늘을 뒤덮으며 산발들을 휩쓸었다. 근거지들의 모든 산릉선과 골짜기와 산벼랑들에서는 시뻘겋게 충천하는 불길과 흩날리는 연기속에서 가렬처절한 혈전이 계속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부대들을 고정된 위치에 붙박아두지 않고 정황에 따라 부단히 움직이시였다. 부대들은 지형이 유리한 고지들에서 완강하게 방어하다가도 적의 공격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비호같이 옮겨앉아 큰 력량으로 합쳐지는가 하면 밤마다 여러개의 습격조로 나뉘여 놈들의 익측과 배후를 쉬임없이 들이쳤다. 그리고 적이 결정적으로 우세한 력량으로 공세를 취하여오면 력량을 분산시켜 여러개의 방향으로 흩어지면서 유인전술로써 놈들의 력량을 여러 방향으로 분산시켰다. 적이 그렇게 분산되면 유격대는 신속히 력량들을 합쳐 하나의 방향에서 적보다 력량상우세를 차지하여 호된 반타격을 가하군 하였다. 이렇게 적의 력량을 분산시켜 각개격파하기 위해서는 부대들이 신속한 기동으로 분산과 집중을 거듭해야 하였다.사령관동지께서는 적이 공격을 중지하고 숨을 돌리며 지리멸렬된 대렬을 수습하고 탄약과 후방물자들을 보충받으려 할 때에는 밤을 타서 습격조들을 적진으로 파견하여 놈들의 집결처와 탄약적재장소들을 들부시도록 하시였다.

소왕청유격근거지에로 계속 지향되고있는 적의 주타격방향에 대해서는 정면과 익측에서 호되게 답새기는 한편 력량을 집중하여 보조타격방향을 드세게 내쳐 주타격방향의 놈들로 하여금 배후차단의 위험을 느끼고 주춤거리게 만드시였다. 부대들은 놈들이 주춤거리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여러개의 소부대들로 일시에 대담한 기습전을 벌렸다. 적은 공격서렬이 무시로 동강이 나 하나의 전선을 펼수 없었으며 그 어느 한 방향에서도 작전시간을 보장할수 없었다. 적에게는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혼란되고 뒤죽박죽이 된 싸움이였지만 유격대에는 질서정연하고 의도가 명백한 유격전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바로 이 유격전을 위해 필요한 방향에로 부대들을 끊임없이 이동시키고 력량을 분산시켰다가는 집중시키고 집중시켰다가는 다시 분산시키면서 변천되는 정황에 따라 전투서렬과 그 행동을 림기응변적으로 변화무쌍하게 재조직하시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고정된 지휘처에 계시지 않고 지휘를 부대들에 접근시키시려고 탄알이 비발치는 고지들에로 지휘처를 계속 옮겨가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시고 부대들도 분산과 집중을 거듭하면서 이 방향, 저 방향으로 번개같이 뛰여다녔다.

결국 이 모든것은 량적으로 우세한 일제의 대무력을 력량이 작은 유격대가 전술적우세로써 타승하기 위한 과정이였으며 전반적인 전선에서는 력량이 비교도 안되게 작지만 중요한 국면에서는 우세를 차지하여 적을 수세에 몰아넣고 치기 위한 묘술이였다. 이런 사령관동지의 의도를 점점 깊이 깨달을수록 창억의 가슴에는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그이를 목숨바쳐 호위해야 한다는 결심이 바위처럼 들어앉았다. 그는 사령관동지께서 지휘처를 옮기실 때마다 사령부의 다른 성원들의 앞장에 서서 억척같은 힘으로 은페호를 팠고 귀틀막을 지었다. 그리고 적들이 지휘처의 뒤와 옆으로 달려들 때면 비호같이 뛰여다니며 놈들을 쓸어눕히고 사령관동지의 전투지휘를 보장하였다.

전투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정황이 복잡하게 얽혀지자 사령관동지께서는 호위대원인 창억에게도 련락임무를 주시였다. 그리하여 창억이는 뭉게치는 초연속을 뚫고 하루에도 여러차례씩 부대들로 뛰여다녀야 했다. 그는 안 가는데가 없었다. 가까이로는 뾰족산, 마반산, 백바위, 절골, 십리평, 셋째섬, 멀리로는 요영구, 라자구, 대황구… 그가 가는 길은 평탄치 않았다. 불길이 날아오르고 총탄이 비발치는 숲속을 누비고 초연이 자욱한 골짜기들을 지나야 하였다. 포격에 허물어져내린 마을들과 시체들이 너저분한 버덩의 혈전터를 지나 달리고 또 달리였다. 때로는 앞을 막아서는 적병들을 쏴제끼고 달려나가고 때로는 기마병들의 추격을 받았다.

적병들이 와글거리는 속을 배밀이로 기여서 지나 포위된 부대에 가닿기도 하였으며 위치를 이동한 부대를 찾아 온 산판을 헤매이기도 하였다.

창억이 부대들에 갔다오면 사령관동지께서는 그곳 전투정황이며 도중에 목격한 일들에 대하여 자세히 묻군 하시였다.

그는 사령관동지께 전투정황에 대하여는 빠짐없이 보고하였으나 다른 문제들에 대하여서는 될수록 적게 말씀드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그의 눈빛이며 얼굴표정에서 모든것을 다 읽어보시는듯 하였다.

놈들은 산 하나, 길 하나, 밭이랑 하나, 문턱 하나를 넘어서자고 해도 피를 쏟고 시체더미를 쌓아야 했다. 유격대의 손실도 적지 않았다. 매일과 같이 부상자들과 희생자들이 났다. 근거지의 어느 산, 어느 골짜기에서도 숫눈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눈은 사람들의 발과 말발굽에 짓밟히고 포탄과 수류탄의 작렬로 튀여난 흙발과 재에 덮여 거멓게 어지러워졌고 피가 뿌려져 벌겋게 얼룩이 졌다. 그우에 얼어서 나무뿌리처럼 꽛꽛해진 팔과 다리들이 드러났다. 유격대에 두들겨맞은 왜놈들은 텅 빈 마을들과 산속에 대피한 주민들에게 야수적인 복수전을 들이댔다.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평화가 숨쉬던 마을들이 놈들이 지른 불길에 몽땅 타버렸다. 연기가 문문 피여오르는 재무지우에 시커먼 숯으로 된 기둥들이 망두석처럼 드문드문 서있있다. 놈들은 량곡뿐아니라 쌀겨며 조겨, 강냉이속 등 대용식량으로 쓰일수 있는 모든것에까지 불을 질렀다. 사람들이 물도 마시지 못하도록 우물들에는 시체를 처넣었다. 산속의 대피소들을 샅샅이 《토벌》하여 기관총의 몰사격으로 어른들을 학살하고는 어린것들은 눈속으로 기여다니다가 얼어죽으라고 눈구뎅이에 뿌려던졌다.

눈속을 달리는 창억의 발길에 그런 어린것들의 시체가 걸려드는적도 있었다.

창억이는 이 모든것을 사령관동지께 다 말씀드릴수 없었다. 그가 그런다고 사령관동지께서 모르시지는 않겠지만 작전구상과 부대지휘에만도 시름이 무거우신 그이를 더 괴롭히고싶지 않아서였다.

창억이 그러거나말거나 근거지의 하늘에는 암담한 기운이 나날이 짙어갔다.

혈전의 나날, 백병전의 하루하루가 지났다.

다른 모든 군수물자들과 같이 식량도 떨어졌다. 왜놈들의 량곡소각책동으로 손실을 본데다가 멀고 가까운 유격구들에서 피난민들이 밀려들어 근거지에서 생산된 식량과 지원물자로 들어온 식량마저 거덜이 났다. 사람들은 굶어죽지 않고 근거지를 지켜 끝까지 싸우기 위해 무서운 추위속에서 떨며 송기를 벗기고 칡뿌리를 캐냈다. 소나무숲들을 료정내다싶이 송기들을 벗겨내여 희끗희끗 벌거벗은 나무줄기들이 멀리에서도 바라보였다. 그것을 바라보느라면 근거지가 겪고있는 난관이 극한점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억이를 쳐다보는 누렇고 부어오른 얼굴들은 말없는 가운데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고 묻는듯 하였다. 탄알이 떨어져가고 작탄이 떨어졌다. 무기수리소에서는 인민들이 가져온 마지막솥까지 깨여서 작탄을 만들었다. 맥없이 잦아내리는 풀무의 불길을 바라보는 대장간아바이의 땀이 번들거리는 얼굴에도 그 무서운 질문이 어리였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지들에서는 굴릴수 있는 바위들은 모조리 굴러내렸다.

멀고 가까운데서 언뜻거리는 송기를 벗겨 희끗희끗한 소나무줄기들, 산에서 굴러내려 골짜기의 눈속에 구겨박힌 바위돌들, 깨져딩구는 그릇들, 포격에 시꺼멓게 파헤쳐진 산봉우리들, 불타버린 마을들, 사람들의 몸뚱이를 겨우 가리는 누데기같은 옷들… 그것들은 모두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고 묻는듯 하였다.

왜놈들은 마촌에까지 들어왔다.

베천으로 기운 사령부의 빈 쌀주머니가 나무가지에 걸려 바람에 펄럭거리였다.

부엌간의 솥에서는 칡뿌리가루와 통강냉이알 몇줌이 들어간 멀건 죽이 끓고있었다.

창억이는 드디여 분이 터져 성림이를 귀틀집뒤로 끌고갔다.

《이럴수 있는가? 저게 뭐요? 저런걸… 저런걸 음식이라고 사령관동지께 대접한단 말이요? 동무도 사람이요? 량심이 있소?》

《여보, 어찌겠소? 손에 쥔게 아무것도 없는데.》

《없다구? 없다구? 그런 소리가 나오우?》

《동무는 나를 뭘로 보는거요?》

《내 알기엔 쌍암촌에서도 쌀이 스무가마니가 들어왔댔는데 동무가 속궁냥이 좀 있는 사람이면 그걸 한두가마니만 어디다 묻어놨대도 이 지경이 되겠소? 쌍암촌 지유복회장이 저 솥뚜껑을 열어본다면 우리를 때려죽이자구 할게요.》

《창억이, 사령부에서 반년만 더 근무하고 나하고 의견을 나눠보자구.… 신발여벌도 있었고 쌀도 세가마니나 감춰뒀더랬소. 사령관동지께서 아동단학교 아이들에게 다 보내줬소!》

창억이는 목구멍이 꽉 메였다. 안에서 사령관동지께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방안으로 들어갔다가 밖으로 나온 창억이는 허기증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또다시 절골로 넘어가 그곳 부대에 야간기습전을 조직하라는 명령을 전달하여야 하였다. 그는 길을 떠났다. 갑자기 들이닥치는 허기증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발밑에서 땅이 파도치고 눈앞에서 노란 반점들이 날아돌았다. 옆을 스쳐가는 나무가지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나 이상하게도 눈가루는 흩어져내리지 않는다.

절골로 넘어가는 새골치기에 이르렀을 때였다. 눈에 덮인 다래넝쿨뒤에서 한 녀자가 달려나왔다. 눈가루가 안개처럼 뽀얗게 쏟아져내렸다. 그 녀자는 달려나오다말고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검정치마에 무릎우까지 내려오는 남자들의 덧저고리를 입고 어깨에는 기병총을 걸었다. 희멀겋게 부어오른 얼굴의 눈섭이며 인중에는 하얀 성에가 보르르 불리였다. 빠끔히 열린 눈만이 그리움에 타는듯, 반가움에 겨운듯 따뜻하게 빛나며 웃고있다.

《여보…》 하얀 입김과 함께 날아나온 한마디 속삭임에 창억이는 안해를 온몸으로 느꼈다. 아, 사람이 이렇게 몰라보게 되다니!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듯 하였다. 달려나가 두손을 꼭 쥐고 입김으로라도 손과 마음을 녹여주고싶었다.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보금의 손에서 다래끼가 맥없이 떨어졌다.

《그사이 너무 바빠 못 갔소. 집에서는 다 무고하오?》

《저 건너 범골에… 마을사람들이랑 다 막을 치고있어요. 무고해요.》

《무슨 일이 있은게 아니요? 있었다면 있었다고 하오!》

《무고해요.》

보금의 발밑에 떨어진 다래끼에서는 풀뿌리같은것들이 튀여나와 눈우에 시꺼멓게 흩어졌다. 그것들은 그의 모든 대답들이 거짓이라는 비통한 고백인듯 하였다.

창억이는 풀뿌리들을 쥐여들어 살펴보았다.

《이게 칡뿌리 아니요?》

《…》

《집에서 낟알이 떨어진지 오래오?》

《아버님은 이런걸루 뭘 끓여도 좀 드시는데 어머님은 통…》

보금의 눈에 눈물이 가랑거렸다.

창억이는 안해의 눈물을 못 보는척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해서 먹소?》

《끓여 물을 우려내서…》

《통채로?》

《예…》

《허, 아직 모르는구만.… 가루를 내오. 떡가루같다니까. 그 가루에다 통강냉이알 몇줌을 넣어서 죽을 부글부글 끓이면 괜찮소. 구수한게 감칠맛도 있고…》

순간 보금의 얼굴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눈에서 눈물이 싹 말라들고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그는 와락 달려들어 남편의 손을 두손으로 꽉 싸쥐며 질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여보, 거기도… 사령부도 이런걸… 이런걸 자시나요? 장군님도?》

《아니요, 사령부야 사령부지. 아니요, 아니… 허허허…》

《그럼… 세간살이안속은 통 모르던 당신이 어떻게 그런걸 다 알아요? 어떻게요?》

《원… 유격대원이 그쯤한걸 모를가, 허참…》

보금이는 그 말을 믿지 않고 눈물이 말라든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애끊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여보, 사령부도 같은 형편이니 이 일을 어찌면 좋아요? 마을사람들은 피난막에서 모두 맥을 놓고 쓰러졌어요. 유격대가 근거지를 버리고 어디로 가버린다는 뒤숭숭한 소문도 돌아요.》

《그건 나쁜 놈들이 퍼뜨린 소리요. 아버진 뭘하오?》

《지난밤에도 왜놈들을 잡겠다고 도끼를 갈았어요.》

《여보, 기운을 내오. 장군님은덕을 생각해서도 우리 가정은 꿋꿋해야 되오. 흔들려선 안되오. 당신도 유격대를 돕는 일에서 마을사람들 앞장에 서오! 알겠소?》

굼실거리는 안개속에 보금의 얼굴이 꿈속에서처럼 서서히 묻혀버렸다.

절골로 넘어가는 산등성이에 올라서서도 창억이는 안해를 만났던것이 사실인지, 허기증이 심한데서 온 환각인지 분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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