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 회


제 8 장

6

전투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치렬해졌다.

적들은 만신창이 되여 허덕이면서도 후방에 있던 부대들까지 동원하여 유격구를 봉쇄하고 전 전선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였다.

대포들이 울부짖고 보병과 기병들이 련대, 대대, 혹은 중대와 소대단위로 근거지의 골짜기와 산발들을 타고 누렇게 달려들었다. 어느 산발, 어느 골짜기, 어느 길, 어느 버덩에나 왜놈의 군대들과 중무기들, 각종 전투기재들이 한벌 깔려서 붐비였다.

하늘은 뭉게쳐오르는 초연에 거멓게 흐려졌다. 포성과 기관총들을 쏘아대는 소리들이 산악들의 바위벼랑에 부딪쳐 자지러지게 메아리치면서 골짜기들이 와르릉와르릉 울었다.

산간의 처처에서 조선사람들에 대한 가장 야만적인 도륙이 시작되였다.

왕청지구에서는 백초구와 왕청에서 밀려올라온 일제의 대무력이 대왕청과 소왕청 앞쪽에 공격출발진지를 차지하고 산개하였다. 그것은 쯔루하라부대인데 사또라는 놈이 선두부대를 이끌고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놈들은 본격적인 전투행동은 개시하지 않고 소대, 분대가량의 작은 병력들을 여러 방향들에 들이밀군 하였다. 근거지의 방위력과 화력배치정형을 타진해보려는 수작이였다.

유격대원들과 자위대원들은 허위진지들에서 집적거려보는 식으로 달려드는 왜군들의 작은 무리들에 혼뜨검을 내주고는 기본진지로 와서 전호들을 더 깊숙이 파올리고 위장을 철저히 하였다.

그날도 하늘은 찌뿌듯이 흐렸다. 아침에 싸락눈이 날리는듯 하다가 인차 멎고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뾰족산의 잡관목들은 을씨년스러운 바람에 바들바들 떨며 앙상한 잔가지들에서 마지막잎사귀들을 털어버렸다.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원형방어선을 이룬 유격대의 전호들에서는 허연 입김이 몰몰 날아올랐다. 유격대원들은 전호앞턱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엎드려 안타까운 얼굴로 고지아래를 내려다보고있었다. 왜놈들은 아침에 고지에 박격포탄을 퍼부으며 부대를 대왕청하기슭을 따라 앞으로 내밀었는데 공격은 하지 않고 모두 개울기슭의 잡관목덤불속이나 바위뒤에 숨어 두시간이 지나도록 총창 하나 번뜩거리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 가슴들이 바작바작 타고 갑갑증이 난것이다. 어떤 대원은 목을 길게 빼들고 소왕청하 건너 다른 중대가 배치된 무명고지를 바라보았다. 그쪽도 역시 고요하다.

장룡산중대장은 적들에게 발견되지 않게 허리를 구부정하고 전호에서 전호로 달려가며 대원들을 진정시켰다. 그는 작탄이 데룽거리는 허리띠에 개암나무가지 몇대를 꽂았다. 다른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긴 몸집을 그따위것으로 가리워보자는것이 괴짜가 아닐수 없다.

그는 경사가 급한데서는 꽁무니에서 춤을 추는 목갑총을 잡고 세발걸음을 쳐서 전호가로 다가가 대원들에게 일렀다.

《조급해도 말고 맘을 늦춰도 안되오. 가만 보니 저 쪽발이들이 와닥닥 달려들 잡도리야. 담배쯤은 피워도 일없소!》

마동호는 눈에 불을 켜고 아래를 내려다보고있는데 그옆 김창억의 전호에는 사람의 머리도 총도 보이지 않았다.

장룡산은 그리로 달려갔다. 김창억은 화김에인지 전호를 두세사람이나 들어가게 깊이 파올리고는 바닥에 퍼더버리고앉아 땀을 흘리며 무엇인가를 쩝쩝 씹어먹고있었다. 그의 앞에 애숭이신대원이 마주앉아 역시 입을 놀리고있었다.

창억이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신대원에게 말하였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요. 우리가 저 동녕현성을 들이칠 때는 굉장했어. 그때부터 저놈들은 우리 사령관동지 명함만 들어도 벌벌 떨거던. 저놈들이 지금 죽어엎데있는건 사령관동지께서 이 뾰족산에 와계시지 않는가 해서 저러는게요. 다른게 아니요.》

《정말 그런것 같아요!》

《그럼! 접어들면 아예 된주먹을 멕여서 사령관동지께서 여기 계신것처럼 보여야 돼. 그래야 움쩍을 못하거던.… 지금은 진득하게 참아야 되오.》

시퍼래졌던 장룡산의 얼굴에 웃음이 피여났다. 그는 긴 허리에 두손을 올리고 벙글거렸다.

《어, 전호를 잘 팠구만!》

둘은 벌떡 뛰여일어났다.

《마동무가 봐주겠다고 해서 땀을 들이자고 좀 앉았더랬습니다.》하고 창억이 변명조로 말했다.

《먹는건 뭐요?》

《미역입니다. 청진에서 보낸건데… 이걸 씹으면서 눈을 감아보십시오. 동해가 환히 보입니다.》

창억이는 미역쪼박지를 올리밀었다.

장룡산은 그것을 받지 않고 기분좋게 껄껄 웃기만 하였다.

《허허… 젠장, 동무 못하는 소리 없구만!》

그는 전호들을 더 돌아보지 않고 산경사면을 따라 흙먼지구름을 뽀얗게 날리며 아래로 뛰여내려갔다. 산중턱에 담벽처럼 높다랗게 쌓아올린 돌무지뒤에 김진세와 마종삼이 든장대를 안고 숨어있었다. 그쯘하게 쌓아올린 그 돌무지가 그들이 생각해내서 사령관동지의 인정까지 받은 《돌대포》였다. 든장대로 돌무지밑에 깔려있는 통나무를 밀어제끼면 돌들이 한꺼번에 허물어지며 밑으로 날아내려가게 되여있다.

유격대 중대장이 나타나자 김진세와 마종삼은 움쭉 일어났나.

《시작되는가!》하고 마종삼이 눈에 불을 켜고 갈린 목소리로 물었다.

《아닙니다.…》

《넨장…》

그들도 속이 타드는듯 얼굴들이 캄캄하게 질렸다.

김진세가 그를 보며 허거프게 웃었다.

《우리는 중대장이 오길래 시작되는가 했지… 여보게, 저놈들이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인가! 와지끈 붙어보자는겐가, 그만두자는겐가 ! 에익, 좀스러운것들…》

장룡산은 돌무지를 슬슬 쓸어만지며 벙굿이 웃어보였다.

《아바이네도 속이 타지요?》

그러자 마종삼이 김진세의 잔등을 가볍게 도닥이며 웃었다.

《오늘 이 석전사령이 폴싹 늙네.》

《헛허… 그럴겝니다. 좀 기다리십시오. 왜놈들은 다 속이 마른것들인데 오래 엎데 견뎌내지 못합니다. 이제 발딱 일어나 접어들겝니다.》

장룡산은 흐뭇하게 웃으며 산중턱이며 아래를 둘러보았다. 산중턱을 돌아가며 《돌대포》가 다섯군데나 쌓여졌다. 그리고 열댓걸음 아래쪽에 숨어있는 오판단의 전호로는 인발선 세줄이 흘러들었는데 그 줄을 잡아당기면 소왕청하기슭에 묻어놓은 작탄지뢰들이 터진다.

왕청에서 올라오는 큰길과 소왕청골안으로 들어오는 길은 여러곳에 돌장벽을 쌓아 차단하여놓았다. 산기슭, 오솔길, 은페지로 쓰일수 있는 후미진 곳들에는 함정들이 파져있다.

함정밑바닥에는 무기수리소에서 벼려온 날이 선뜩선뜩한 창들을 세워놓고 마른 삭정이로 그우를 덮어놓았다. 그리고 적들의 기동이 예견되는 모든 곳들에 널판자에 못을 박은 차단물들과 두꺼운 널판자에 물레가락을 여러개 박은 《물레송곳》장애물들을 묻어놓았다.

장룡산은 지휘관다운 엄숙한 낯빛으로 두 로인을 돌아보았다.

《저 아래서 오판단이가 줄을 당겨 작탄지뢰를 터뜨리면 왜놈들이 이 산밑으로 밀릴겝니다. 그때 〈돌대포〉를 쏴야 합니다. 오판단이가 꿰올라오기 전에는 절대 쏴서는 안됩니다.》

김진세는 심중하게 들으며 머리를 끄덕이고 마종삼은 넌지시 웃어보였다.

《걱정 말게, 우리 석전사령이 다 회계가 있네.》

장룡산이 산꼭대기의 자기 전호로 돌아와 담배를 피워물고 몇모금 맛스럽게 빨아들이는데 대기를 찢는 아츠러운 비명이 머리우를 스쳐지나갔다. 박격포탄들이 산꼭대기의 여기저기에서 터지며 시꺼먼 연기가 풀썩풀썩 날아올랐다.

장룡산은 담배대를 홱 뱉어버리고 전호앞턱우로 몸을 솟구치며 산밑을 내려다보았다.

소왕청하 저쪽 무명고지와 마반산일대에서도 박격포탄이 터지는 시커먼 연기가 솟구쳐오르며 폭음이 대기를 뒤흔들었다.

소왕청하와 대왕청하의 합수점부근의 잡관목숲과 후미진 곳들에서 누런 왜군의 무리들이 구름처럼 기여나왔다. 물건너 산굽이 뒤쪽에서 총소리, 말발굽소리… 대기는 무섭게 떨어댔다. 말을 탄 두 장교놈이 길을 따라 뾰족산앞으로 거드름스럽게 달려나와서 이쪽을 손가락질하며 무엇이라고 지껄여대다가 소왕청하기슭으로 달려올라오는 보병서렬을 향하여 뭣이라고 꿱꿱 고함소리를 쳤다.

그러자 보병서렬은 둘로 갈라져 한무리는 무명고지쪽으로 향하고 다른 무리는 뾰족산앞으로 곧바로 달려올라왔다. 이쪽에서 사격하자 두 장교놈은 말을 내몰아 길가의 벼랑밑으로 숨어들었다. 연막탄 몇발이 산중턱에 와 터져 시허연 연기가 솟구쳐오르더니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여오르며 퍼졌다.

장룡산은 전호앞턱에 뛰여올라서서 권총을 틀어쥔 주먹으로 공기를 내리치며 무서운 함성을 내질렀다.

《야- 오판단이-》

다음순간 왜놈들이 한벌 깔린 소왕청하기슭에서 작탄지뢰들이 터져 시뻘건 불기둥들이 줄줄이 솟구쳐오르며 무서운 폭음이 골짜기를 들었다놓았다. 확확 퍼져오르는 시꺼먼 연기와 흙먼지구름우로 검은 물체들이 날아올랐다. 단말마적인 아우성속에서 왜놈들은 앞을 다투어 밀고닥치며 뾰족산밑의 길바닥으로 밀려올라왔다.

이때였다. 밑에서 우르르 하고 산이 뿌리채 뒤흔들리는듯 한 어마어마한 땅울림이 일었다.

왼쪽끝에 있는 전호에서 누구인가 숨이 넘어가는듯 한 소리를 내질렀다.

《저것 봐라- 돌이다- 바위돌이 날아간다-》

산중턱에서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흙먼지구름속에서 바위돌들이 휙휙 튀여오르는것이 보였다. 산을 울리며 질풍처럼 밀려내려가는 바위돌들은 산기슭과 길바닥에서 와글거리는 왜놈들의 무리들을 흙먼지구름으로 휘감으며 사태처럼 쏟아져내렸다. 바람을 타고 날아내린 어떤 바위돌은 길바닥에 부딪쳐 두세쪼각으로 갈라지며 다시 튀여올라 소왕청하에 곤두박히면서 시허연 물기둥을 일으켰다. 산밑에서 비명소리, 고함소리, 군마의 바스러지는 울음소리들이 끓어번졌다. 왜놈들은 전투서렬이 뒤죽박죽이 되여 소왕청하쪽으로 내리뛰기도 하고 산기슭으로 올리붙기도 하고 길을 따라 무질서하게 도망쳐내려가기도 했다.

머리를 싸쥐고 개울쪽으로 뛰여가는 놈, 눈알이 빠졌는지 두팔을 허우적거리며 길바닥에서 맴돌이치는 놈, 등자에 발이 걸린채 거꾸로 늘어진 장교를 끌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군마… 놈들에게 정신을 차릴 여유를 주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뇌리에 번개치자 장룡산은 권총으로 하늘을 찌르며 목이 터지게 웨쳤다.

《반-돌-격-앞-으-로!-》

전장의 소음속을 헤치고 날아오른 기다리고기다린 그 웨침소리를 듣자 창억이는 전호앞턱으로 어떻게 날아올랐는지 몰랐다.

그는 어깨에 거치장스럽게 붙어있는 위장용나무가지들을 와락와락 뜯어서 내동댕이치고는 옆으로 머리를 홱 돌렸다. 마동호가 총창을 꼬나들고 달려내려갔다. 그의 저쪽에서도 유격대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나가는것이 보였다. 긴허리를 구부정하고 달려내려가는 장룡산중대장은 권총을 내흔들며 대원들에게 무엇이라고 웨쳐대고있었다.

창억이는 귀전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아리숭하게 들을뿐 발바닥이 땅에 닿는것은 전혀 느끼지 못하였다. 그는 바람을 탄 바위돌처럼 껑충껑충 뛰여오르며 자신도 모를 함성을 터뜨리며 달려내려갔다. 누구인가 옆에서 부르는것 같아 홱 돌아보니 《돌대포》자리에서 아버지가 달려나오려는 동호 아버지의 허리를 안고 뒤로 끌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안돼, 우리가 섞이면 방해만 돼!》

《놓소!》

《여보게!》

마종삼아바이는 든장대를 머리우에 높이 쳐들어 흔들어대며 피타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동호- 동호야-》

저만치에서 달려내려가던 마동호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버지-》

《저놈들을 골안에 들여놓지 말라-족쳐라-족쳐라-》

《아버지-》

《이녀석아, 저안에 우리 밭이 있다-》

동호는 아버지가 보라는듯 총창을 번쩍 쳐들고 무서운 함성을 내지르며 초연속으로 뛰여들어갔다.

아들의 장한 모습을 보는 마종삼은 북받쳐오르는 격정을 못이겨 갑자기 허리를 꺾으며 꺽꺽 느껴울었다.

김진세는 허리를 꿋꿋이 펴고서서 수염발을 날리며 근엄한 얼굴로 아들을 지켜보았다.

창억이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문득 눈굽이 저려올라와 홱 돌아서서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내려갔다.

얼굴을 스치는 열기, 입안으로 휩쓸어드는 쓰거운 초연냄새, 시꺼먼 연기, 날아오르는 흙발… 산포탄들이 여기저기에 날아와 터졌다. 잡관목숲에서 불길이 춤을 추었다. 산중턱에까지 기여올라갔다가 도망쳐 내려가는 왜놈들이 돌아서서 총질을 하고 수류탄을 던졌다. 총알들이 비명을 지르며 귀밑을 스치고 수류탄파편들이 날아왔다.

바위뒤에서 얼굴에 구레나룻이 시꺼먼 놈이 짐승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나오는 순간 시퍼런 빛살같은것이 휙 날아들었다. 총창이다!

창억은 날렵하게 몸을 피하며 총창으로 놈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놀랍게도 총창은 거침없이 푹 먹어들었다. 놈은 눈이 뒤집혀서 훌쩍 뛰여오르는것 같더니 몸을 비틀며 총신을 틀어잡았다. 놈의 단말마적인 몸부림이 창억에게 전달되여 팔은 물론 온몸이 푸들푸들 떨려 내장이 온통 뒤집혀지는듯 하였다. 창억은 자신도 알수 없는 소리를 내지르며 놈의 옆구리를 발길로 걷어찼다. 놈은 허공에 피줄기를 뿜어올리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창억이도 힘의 균형이 기울며 모재비로 쓰러졌다. 그는 다시 후닥닥 뛰여일어났다. 총창끝에서 실오리같은 김이 피여올랐다. 그것을 보는 순간 심한 현훈증을 느꼈다. 딸꾹질이 났다. 코구멍에서 피비린내같은것이 풍겨나왔다. 뒤에서 선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번개같이 몸을 돌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가슴팍에 불길이 달린 놈이 총탁으로 그를 내리까려고 접어들었다.

창억은 미처 어쩔사이 없이 뒤걸음질쳤다. 순간 귀가 꽉 메고 놈은 앞으로 푹 거꾸러졌다. 뒤쪽에서 장룡산이 놈을 갈겨치운것이였다.

장룡산은 얼굴이 험악하게 이그러지며 《한놈도 살려보내지 말라-》하고 웨쳤다.

창억은 그의 뒤를 따라 달려내려갔다.

소왕청하건너쪽의 무명고지에서도 유격대원들이 왜놈들을 뒤쫓아 달려내려오는것이 나무와 포연사이로 언뜻언뜻 보였다.

왜놈들은 뾰족산밑과 길바닥, 소왕청하의 얼음판과 그옆의 새밭에 몰키면서 와글거렸다.

반돌격서렬은 질풍같이 달려내려갔다. 산밑에까지 달려내려간 창억은 5, 6명의 왜놈들이 깊은 함정에 빠져 뻐드럭거리는것을 보았다. 그는 난생처음으로 느껴보는 크나큰 희열에 하늘을 찌르는 환성을 내지르고싶었으나 웬일인지 목구멍이 꽉 메여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그저 가슴팍이 부들부들 떨릴뿐이였다.

옆에서 누구인가 챙챙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야-하하하… 이놈들이 메돼지처럼 배때기를 창날에 찔렸다. 하하하…》

소왕청하의 얼음판우와 그 량옆의 새밭속에서도 치고 받고 찔러넘기는 혈투가 벌어지고있었다. 골안어귀로 도망쳐나가는 놈들의 무리속에서는 시꺼먼 연기를 날리며 작탄들이 터졌다. 폭풍에 허궁 들리웠다가 언땅에 내동댕이쳐지는 몸뚱이, 공중에 뿌리워올라가는 총대들과 돌쪼각들… 아우성, 비명, 욕설, 울음소리들… 이 혈투의 수라장속에서 미쳐버린 군마들이 불붙는 새밭속을 뛰여다니며 사람들과 시체들과 구원을 청하는 부르짖음소리들을 마구 짓밟는가 하면 갈기에 불이 달려 바스러지는 울음소리를 내지르며 무명고지쪽으로 올리뛰였다.

《저놈들이 말에 술을 멕였구나, 개자식들 야-말을 잡아라-》

창억은 누군가의 이런 고함소리를 들으며 싸움판으로 뛰여들어갔다. 그는 연기와 화기속으로 달려들어가며 접어드는 놈들을 마구 찔러넘겼다.


눈앞에서는 시퍼런 총창들이 번쩍거렸다. 피투성이 되여 옆으로 날아지나가는 얼굴들, 살이 시뻘겋게 드러난 잔등, 뻐드럭거리는 다리, 놈들을 깔고앉아 주먹벼락을 안기는 유격대원들, 총탁판으로 왜놈의 면상을 후려치는 마동호… 창억은 숨을 헉헉 몰아쉬며 눈에 불을 켜고 두리번거렸다. 불타는 새밭속에서 관자노리에서 피가 흐르는 한 장교놈이 엉기적거리며 기여나왔다.

거기에서 좀 떨어진 바위옆에서 군마를 붙잡고 서있는 사마병놈이 그 장교놈을 향하여 다급히 소리치고있다. 그놈의 소리에서는 사또라는 말마디가 반복되였다. 아마 이름이나 성인 모양이다.

격전장의 모든 소음을 밀어제끼며 사마병놈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창억이 그쪽으로 달려가려는데 누구인가 쏜 총탄에 사마병놈이 앞으로 푹 거꾸러졌다. 군마가 울음소리를 내지르며 앞발을 번쩍 쳐들더니 어디로인가 내뛰였다.

창억은 몸을 날려 장교놈앞을 막아섰다.

사또는 군도를 뽑아들고 그를 노려보았다. 얼굴이 말쑥한 젊은 놈이다.

군도의 시퍼런 칼날과 놈의 눈이 미묘한 조화를 이루며 가슴이 서늘해지도록 살기를 풍긴다.

창억은 뜨겁게 휘몰아치던 격전장의 대기가 일시에 쩡 얼어붙는듯 한 예리한 감각에 몸서리를 치며 어금이를 꽉 악물었다. 그는 두다리를 떡 뻗치고 서서 놈을 쏘아보았다.

놈의 눈에 비웃음이 스쳐지나가는것 같았다. 그 눈은 이렇게 내뱉는듯 하였다.

(촌뜨기같은 놈!)

창억은 여태 체험한적이 없는 차겁고 쓰디쓴 증오와 혐오감에 악문 어금이를 으드득 갈며 총을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무엇이 어째? 살모사같은 놈! 사람의 골수를 파먹고 살이 찐것 같구나!-)

이 순간 창억은 머리우에서 시퍼런 번개가 지끈 치는것 같은 느낌에 몸을 옆으로 홱 피했다. 장교놈이 몸을 날려 달려들며 군도로 그를 내리찍었던것이다. 놈은 무엇이라고 소리치며 뒤걸음질쳤다. 창억은 불길같은것이 터져오르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놈의 움직임을 노려보았다. 놈은 뒤걸음질치다가 옆으로 게걸음질을 쳤다. 바로 옆에 말주검이 누워있는것도 모르고 과녁만을 노려보며 돌아갔다. 이제 말주검에 다리가 걸려 넘어질것이다. 창억은 놈이 말다리에 걸려 몸을 기우뚱하는 순간 무서운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나가 총창을 내찔렀다. 그러나 장교놈은 날아드는 총대를 잡고 그것을 옆으로 홱 나꾸챘다. 창억이는 앞으로 쓰러지고 놈도 말주검에 궁둥방아를 찧었다. 창억은 벌떡 솟구쳐 일어났다. 가슴이 후둑후둑 뛰였다. 그는 말주검에서 일어나려는 장교놈을 향하여 다시 달려들며 총탁으로 골통을 내리깠다. 놈이 머리를 피하는 바람에 총탁은 어깨를 내리쳤다. 장교놈은 악-소리를 내며 말주검우에서 몸을 팽이처럼 굴리였다.

이때 다른놈이 뒤로 덮쳐들었다. 창억이는 그놈을 땅바닥에 멨다꼰지고 눈이 뒤집혀 푸들거리는 상판을 발로 콱 내리밟아 짓이기며 옆을 돌아보았다. 말주검우에서 딩굴던 놈은 어디로 내뺐는지 보이지 않았다.

살아남은 놈들이 도망쳐가자 유격대원들은 시꺼먼 연기가 흩날리는 산기슭과 아직도 불길이 날름거리는 새밭을 돌아다니며 적의 시체들속에서 총들을 거두었다.

새밭에서 총대를 깔고 늘어진 적병의 다리를 잡아끌던 창억이는 뒤에서 부드러우면서도 쨍쨍한 목소리가 울리는것을 들었다.

그것은 까마득하게 잊었던 살뜰한 목소리이다.

그는 의아해서 머리를 돌렸다. 길우에 커다란 짐을 인 두 녀자가 서서 자기를 바라보며 웃고있지 않는가!

창억이는 무슨 환각이 아닌가싶어 눈을 슴벅거리였다. 동이를 인 키가 좀 큰 녀자는 부녀회장 림성실이고 그옆에 함지를 이고 서있는 녀자는 보금이다.

보금이는 두손으로 함지모서리를 붙잡은채 그에게 소리쳤다.

《여보- 점심을 어디다 차리면 좋아요?-》

이 스산한 격전장에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소리이다.

창억이는 거칠어진 가슴에 단란한 가정의 온기를 부어주는듯 한 그 소리가 그지없이 반가우면서도 어정쩡해져서 선뜻 대답을 못하였다.

뒤쪽에서 누구인가 걸걸하게 소리친다.

《아주마에- 어디라구 여기까지 나왔소?-》

《예?-》

《여기가 밭머리인줄 아우? 우리가 뭐 밭김을 맸는줄 아우?-》

《콩마당질을 해도 허기가 나는데 모두 얼마나 시장하겠어요?》

《하하하…》

《허허허…》

보금이는 눈이 더 또릿해져서 이쪽을 바라본다. 림성실은 아무말없이 그저 빙그레 웃고있다.


×


산기슭의 여기저기에서는 불길이 날름거리고있었다.

자기 총과 로획한 총들을 두세자루씩 어깨에 건 유격대원들은 보금이와 성실이를 에워싸고 떠들썩하게 웃고 말을 주고받으며 뾰족산으로 오르고있었다. 보금의 머리에서 밥함지를 번쩍 들어 자기 어깨에 올려놓은 장룡산은 긴 허리를 가락맞게 휘청거리며 앞에서 걸었다. 림성실은 더운 국이 든 동이를 누구에게도 내맡기려 하지 않았다. 그는 남자들은 쏟는다고 하며 동이를 고집스럽게 이고 올라갔다.

아차 하는 순간에 발이 미끄러지면 국동이는 머리에서 떨어져 박산이 날수 있었다. 모두 부녀회장의 머리우에서 위태위태하게 흔들거리는 그 동이에 마음을 썼다.

그들은 가파롭게 턱이 진데를 올라설 때에는 앞에서 한손을 잡아끌어주고 뒤에서 가볍게 떠밀어주는가 하면 발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발로 턱을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그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마동호와 오판단이는 동이에 손을 올리뻗치고 떨어지면 받아안을 태세를 취하였다. 그러나 녀자들에게는 남자들로서는 도저히 따를수 없는 신기한 재주가 있어 림성실은 동이를 한번 기우뚱거리지도 않고 사뿐사뿐 걸어올라갔다. 그는 오히려 유격대원들이 동이가 떨어질가봐 쩔쩔매는것이 재미나고 우스운듯 눈을 고요히 내리뜬 얼굴에 보일듯말듯 한 미소를 머금고있었다. 발그레하게 상기된 그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내돋았다.

유격대원들에게 더운 점심을 먹이자고 국을 동이에 퍼담아 이고 전장으로 달려나온 부녀회장, 김중권의 애인! 그는 유격대원들에게 이렇게 떠들썩하게 둘러싸여 걸어나가는것이 무척 행복한듯 그리고 여기에 자기 생활의 보람이 있고 락이 있는듯 앵두빛으로 타오르는 입술에 이름할수 없이 그윽한 미소를 그리였다.

동이에서는 국물이 찰랑거리고 유격대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넘실거리였으며 부녀회장의 저고리고름은 바람결에 날아올라 목에 휘감기며 나풀거렸다.

창억이는 로획한 총들을 어깨에 메고 열댓걸음 뒤에 떨어져서 걸어올라갔다. 안해가 있는 곁에 가기 무엇해서였다.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조화먹은것인지 예전에는 장가든것이 창피해서 안해를 멀리했다면 지금은 속에 자랑이 넘치니 또 곁에 서기 어색해진다. 창억이는 시무룩이 웃으며 어깨를 묵직이 누르는 총들을 번쩍 추슬러메였다.

그들이 산중턱을 지나올라갔을 때 앞에 가던 대원들이 무춤 서버렸다. 누구인가 큰소리로 웨쳤다.

《사령관동지다!》

《뭐?》

《어디?》

사령관동지께서는 뾰족산꼭대기로부터 걸어내려오시며 군모를 벗어 머리우에 높이 쳐들어 흔드신다.

《동무들, 수고했소- 첫 승리를 축하하오!》

그이의 우렁찬 음성이 울리자 하늘과 땅에 승리의 환희와 신선한 기운과 거대한 열정이 가득차서 설레이는듯 하였다.

《사령관동지!》

《사령관동지!》

대원들은 그이를 향하여 헤덤벼 엎어지면서 뛰여올라갔다. 창억이도 다른 대윈들과 부딪치며 뛰여올라갔다.

달려내려오시는 그이의 가슴에서도 쌍안경이 들썩거렸다. 그이의 존안은 초연에 그슬렸고 군복의 팔굽이며 무릎에는 흙이 묻었으며 불길속을 헤쳐온 흔적인듯 행전에는 거멓게 불탄 자리가 얼룩졌다.

대원들과 한데 어울려지시니 나이도 얼굴색도 차림새도 모두 어슷비슷하여 사령관다운 유표한 점이라고는 전혀 없다, 쌍안경외에는…

장군님께서는 기쁨에 설레는 대원들의 손을 잡고 이름을 빠짐없이 불러주시며 잘 싸웠다고 치하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옆에 서있는 김진세와 마종삼에게로 다가가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량손에 두 로인의 손을 뜨겁게 잡아쥐시고 기쁨에 넘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돌대포〉가 크게 은을 냈습니다.》

두 로인이 어줍게 웃자 장룡산이 밥함지를 어깨에 멘채 끼여들었다.

《다섯군데서 돌사태를 퍼부었는데 정말 굉장했습니다. 왜놈들이 그냥 묵사발이 되고… 혼비백산이 됐습니다.》

《허허허…》

《이 아바이들이 오늘 정말 〈돌대포〉로 한턱 잘 썼습니다.》하며 장룡산은 벙글거렸다.

《다섯군데라면서 왜 한턱이요? 다섯턱이지, 허허허…》

장포리는 밥함지를 멘 어깨를 들썩 추슬리며 한수 더 떴다.

《아, 그런데 부녀회에서 점심까지 내오니 사령관동지, 그럼 이거 오늘 우리 중대가 여섯턱을 받아먹는셈이 아닙니까?》

대원들도 웃음보가 터졌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어서 진지로 올라가자고 손을 저으시였다.

모두 뾰족산뒤경사면의 펑퍼짐한 자리에 빙 둘러앉아서 점심밥을 먹었다. 장군님께서는 김진세, 마종삼이와 자리를 같이하시고 식사를 드시였다.

림성실이와 윤보금이는 한옆에 서서 자기들이 지어온 당콩을 섞은 기장밥이며 감자를 잘게 썰어넣은 미역국을 모두 맛스럽게 드는가 살펴보다가는 소곤소곤거리기도 하고 무엇이 그리 좋은지 키득 웃기도 하였다. 림성실은 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그러다가도 얼른 바가지에 덧국을 떠가지고 식성이 좋은 장룡산이나 김창억에게로 가서 밥그릇에 부어주는것이였다.

보금이는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치마폭에 두손을 감추고 서서 다른쪽을 보는척 하면서도 내내 장군님쪽에 마음을 쓰다가 그이께서 식사를 마치시자 얼른 물사발을 들고 다가가서 두손으로 받쳐 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사발을 기울여 물을 쭉 들이키시고는 환하게 웃으시며 그를 돌아보시였다.

《내 이 뾰족산에서 창억동무의 아주머니가 주는 물을 마실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소? 허허허…》

보금이는 행복에 겨워 홍조가 피여난 얼굴을 푹 숙이였다.

그이께서는 짐짓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밥함지를 이고 전장으로 곧바로 달려나오다니? 그러다가 왜놈들이나 불쑥 나타나면 어쩌자고 그랬습니까?》

《보금이는 잡도리가 다 돼있었습니다.》 하고 림성실이 그를 대신하여 대답올리고는 밥함지밑에 손을 밀어넣었다.

그러자 보금이는 화닥 놀라 달려가서 그의 손을 붙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림성실은 어느틈에 팔을 뽑아 머리우에 높이 쳐들었다. 그의 손에는 빨래방치같은것이 쥐여있었다.

《이걸로 왜놈들이 접어들면 때려잡겠다고 했습니다.》 하고 림성실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니, 그게 뭐요?》 장군님께서는 물으시였다.

성실에게서 보금의 무기를 받아쥐신 그이께서는 그것을 이리저리 쓰다듬어보시였다.

《이거야 다듬이방망이가 아니요?》

《그렇습니다. 점심밥을 이고 떠나려는데 그걸 밥함지우에 올려놓지 않겠어요. 어디다 쓰자는겐가고 물었더니 왜놈들과 맞다들겠는지…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나 맞다들지 말아야지 총잡은 놈을 그걸로 어떻게 당하는가고 했지요. 그랬더니 글쎄 하는 말이 자그만해도 박달이라고 하지 않겠어요. 다듬이방망이가 박달인지 제가 박달이라는겐지, 호호호…》

유격대원들은 그 소리에 모두 유쾌하게 웃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다듬이방망이와 보금이를 번갈아보시며 《박달이라… 박달이란 말이지…》 하고 뇌이시다가 즐겁게 웃으시였다.

두손으로 볼을 싸쥐고 몸둘바를 몰라하던 보금이는 애정에 넘친 눈길들에 쫓겨 장군님의 뒤로 해서 시아버지에게로 달려갔다. 김진세는 뭇시선들에서 며느리를 막아주려고 앉은키를 높이고 눈꼬리에 깊은 주름살을 잡으며 훤하게 웃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다듬이방망이를 머리우에 높이 쳐드시며 대원들을 둘러보시였다.

《동무들, 보시오. 이런것에 마음을 의지해서 탄알이 비발치고 적이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전장으로, 동무들한테로 달려왔습니다. 더운 밥을 대접하겠다고… 부녀회장동무 말대로 박달이야 박달이 아닙니까?… 창억동무! 창억동무가 어디 있소?》

앉아있는 대원들의 제일 뒤쪽에서 장룡산이와 오판단이 창억의 옆구리를 쥐여박아 일으켜세웠다.

창억이는 난생처음 이런 면구스러움을 당한다는듯 얼굴이 벌개져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창억동무, 말해보오. 동무면 그렇게 할수 있겠소? 없을거요, 없지 않구. 허허허…》

대원들은 모두 큰 경사가 난듯 기쁘게 웃으며 설레였다. 창억이도 짐짓 창피스러운척 하다가 입귀를 약간 말아올리며 싱긋이 웃었다.

장군님께서는 다듬이방망이를 대견스럽게 쓸어만지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장룡산중대장 말에 의하면 오늘 김진세아바이와 창억동무도… 마종삼아바이와 마동호동무도 다 잘 싸웠습니다.… 동무들이 보는것처럼 지금 여기에는 한 가정에서 아버지, 아들, 며느리가 자리를 같이하고있습니다. 다른데도 아니고 이 뾰족산에서…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유격대와 함께 전체 인민이 근거지방위에 떨쳐나섰다는것을 보여주는 좋은 실례입니다. 그리고 이건…》

그러시고 다시 다듬이방망이를 들어보이시였다.

《이건… 단순한 다듬이방망이가 아닙니다. 옛날 우리 할머니도 어느 집 다듬이방치에나 내인들의 눈물과 한숨… 기쁨과 서러움이 배여있어 기름기가 반들반들하다고 얘기해준 일이 있습니다.… 이건 정말 단순한 다듬이방망이가 아닙니다. 녀성들까지 우리와 함께 싸우고있다는 산 증거이고… 뭐라고 할가… 그 상징이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보금의 눈에 눈물이 가득 어렸다. 그것을 본 사람은 몇이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환하게 웃으시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그런데… 이 다듬이방망이가 아까 내 귀에 대고 가만가만 속삭여준 말이 있습니다. 그걸 공개하고 동무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하겠습니다. 아… 아… 너무 떠들지 마오. 이건 아주 신중한 문제요. 어떻게 속삭였는고 하니… 이런 날에 신랑이 가만있을수 있는가 이런단 말이요.

내 생각에도 그렇소. 옛날에는 구차한 사람들이 어찌다 돈을 벌면 안해한테 사랑의 표시로 구리가락지쯤은 하나 사서 선사했다는데 우리는 오늘 숱한 총을 로획했는데 총을… 총을 주는게 어떻소?》

처음에는 무슨 말씀인가 해서 숨을 죽이고 듣던 대원들이 와와 떠들어대며 웃음에 넘쳐 박수를 쳤다.

《좋습니다!》

《줍시다!》

장군님께서는 손을 저어 대원들을 진정시키시였다.

《가만… 가만… 총은 유격대의 이름으로 주되 어느것을 주겠는가 고르는건 창억동무한테 맡기는게 어떻소? 그리고 응당 부녀회장동무한테도 제일 좋은걸로 골라줘야 한다고 보오.》

그 말씀에 대원들은 더 기쁨에 겨워 흥성거리며 박수를 쳤다. 어떤 대원들의 눈에는 눈물이 번쩍이였다.

기쁨에 넘친 박수소리와 떠들썩한 웨침소리에 떠밀리워 창억이 뒤쪽에 있는 총무지로 가서 허리를 굽히고 총들을 이것저것 골라보는데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졌다. 섬찍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의아해서 눈길을 들었다.

이쪽으로 치달아오른 릉선길에서 사령관동지께서 중키의 유격대지휘관과 마주서시여 이야기하고있는것이 바라보였다.

낯선 그 지휘관은 군복이 흙투성이가 되였고 머리에는 피가 내밴 붕대가 감겨져있었다. 장룡산중대장도 긴장된 얼굴로 그옆에 서있었다.

이윽고 사령관동지께서는 장룡산중대장에게 무엇이라고 이르시고는 그 지휘관과 함께 릉선길을 따라 사령부쪽으로 올라가시였다. 매우 긴박한 정세가 조성된 모양이다. 장룡산중대장만 이쪽으로 돌아왔다.

장룡산은 유쾌한 미소를 지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창억이 고른 두자루의 기병총을 림성실이와 윤보금에게 주고는 그들의 손을 꽉 잡아흔들었다.

그리고는 창억에게로 돌아섰다.

《곧 사령부로 올라가오. 동무는 이제부터 사령관동지를 호위해야 되겠소. 이건 우리 지휘관들이 심중하게 토의한 문제요. 정황이 점점 엄혹해질것이 예견되는것만큼 동무 임무가 매우 중요하오. 요영구쪽도 정세가 매우 긴장된 모양이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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