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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8 회


제 7 장

3

김일성동지께서 차잔을 내리시는데 응접실출입문에 박태화가 나타나서 그이께 거수경례를 하고는 조용히 무엇인가 말씀드리였다. 그리고는 문뒤로 물러섰다.

문뒤에서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방안에까지 들려왔다.

방안공기가 긴장되였다.

그이께서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을 디룩거리는 오의성에게 량해를 구하시고 복도로 나가시였다.

복도의 창유리를 통하여 현관앞에 창억이와 동호가 키가 작달막한 청년을 붙잡고 서있는것이 내다보였다. 그 청년은 검은 덧저고리에 군복바지를 입었다.

《무슨 일이요?》

장군님께서는 박태화를 복도끝으로 데리고가서 다급히 물으시였다.

박태화는 손수건을 꺼내 얼굴의 땀을 훔치고는 분격에 씨근거리며 보고하였다.

《저자가 글쎄 우리 숙소뒤 산기슭에 있는 상공당에서 수상하게 어물거리길래 가보니 글쎄… 제돌밑에 수류탄묶음을 밀어넣는게 아닙니까. 상공당이 폭파되면 인민들이 달려올게고… 그럼 혐의가 누구한테 덮씌워지겠습니까. 이건… 이건 담판을 파탄시키고 우리를 모해하려는 배신적책동입니다!》

《소리를 높이지 마오!》 하고 장군님께서는 엄하게 그를 제지시키시였다.

장군님께서 현관앞에 나서자 구국군병사는 자기 팔을 붙잡은 유격대원들을 뿌리치고 그이앞으로 달려왔다. 얼굴이 어수룩하게 생기고 눈이 가늘게 째진 애숭이청년이였다.

그 병사는 울상이 되여 부르짖었다.

《저는… 저는… 왜 상공당을 마스라는지 몰랐습니다. 그저… 그저… 마스라고 해서…》

어느사이에 뒤따라 나왔는지 오의성이 앞에 나서며 애숭이의 어깨를 와락 거머쥐였다.

《어느 부대냐? 누가 지시했냐? 똑바로 말해라!》

병사는 공포에 눈이 뒤집혀서 울음섞인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사령님!… 사령님!… 살려주십시오! 돈을 준다고 해서 그랬습니다.… 살려주십시오. 그걸 대면 전… 전… 죽습니다.》

오사령은 그의 멱살을 와락 틀어잡아 부들부들 떠는 몸뚱이를 넝마처럼 쳐들어올렸다.

《내 손에 죽는건 무섭지 않구? 누가 지시했느냐?》

병사는 얼굴이 검푸르게 질려서 눈물을 뿌리며 부르짖었다.

《살려… 살려주십시오.… 전 외아들입니다. 고향에서 앓는 어머니가 기다립니다. 사령님!…》

《대라!…》

《고… 고참모가…》

《에익!》

오의성은 병사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 병사는 땅에서 몇바퀴 딩굴다가 머리만 싸쥐고 죽은듯이 엎드려있었다.

오의성은 분을 참을수 없어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고참모! 고참모! 네가 감히… 나를 움직여보자구? 네놈들 손탁에 놀 내가 아니다!》

장군님께도 낯익은 이름이였다. 리광사살음모의 장본인인 그 고참모였다.

그이께서는 가슴이 떨리시였으나 오의성의 곁으로 다가가시며 부드러운 위로의 말씀을 하시였다.

《사령님, 진정을 하십시오. 거사를 이룩하자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길수 있는건데 진정을 하십시오.… 시켜서 그랬는데 저 병사는 살려주었으면 고맙겠습니다. 우리와 관련되여 여기서 피가 흐르는걸… 저는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를 사절로 존중하신다면 삼가하여주십시오.》

오의성은 불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쓰러진 병사를 쏘아보다가 홱 돌아서 집무실쪽으로 들어가버렸다.

장군님께서는 쓰러진 병사를 일으켜세우시고 그의 잔등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주시였다.

애숭이병사는 머리를 떨구고 흑흑 느껴울었다.

《고향은 어디요?》 하고 그이께서는 부드럽게 물으시였다.

《목림입니다.》

《몇살인가?》

《열아홉살입니다.》

《이름은?…》

《하영이라고 부릅니다.》

병사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그이를 우러러 쳐다보았다.

《김사령님, 고맙습니다. 살려줘 고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련민이 어린 따뜻한 손길로 병사의 가냘픈 어깨를 쓸어만지며 엄하게 타이르시였다.

《열아홉살이면 적지 않은 나이인데 시킨다고 그런짓에 떠밀려다녀서야 되겠소? 그래도 집에서는 어머니가 아들이 나라를 찾자고 성스럽게 항일을 하는줄로 알겠는데… 우리는 구국군과 손을 잡고 왜놈들과 싸우자고 여기로 찾아왔는데 이런 일을 당하니 참 섭섭하오. 하영이… 하영이에게 그런짓을 시킨 사람들은 아주 나쁘오.》

애숭이병사는 입술을 오무리며 눈을 꼭 내리감았다. 그의 속눈섭에 구슬알같은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장군님께서는 병사의 운명이 못내 걱정되시였다.

《부대에 돌아가면 고참모라는 그 사람이 자기 이름을 댔다고 어쩌지 않을가?… 응? 우리가 어떻게 하면 도울수 있겠는지 알려주오.》

병사는 죄를 지은 자기 운명까지 걱정하여주시는 그이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김사령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참모가 때리긴 해도 죽이진 못합니다.… 서려장님과 채려장님이 결의형제를 무을 때… 두 려장님이 그 기념으로 서로 사마병을 바꽈 제가 사려장님한데서 채려장님한테로 왔습니다.… 의리를 파기하는거로 되기때문에 죽이진 못합니다.》

《아- 그렇소? 그럼 내 별일이 없도록 오사령님한테 잘 얘기해줄테니 우리 숙소에 가서 좀 쉬다가 부대로 돌아가오.》

그이께서는 박태화와 김창억이를 돌아보시며 하영이를 숙소로 데려가 식사랑 시켜서 돌려보내라고 이르시였다.

그이께서 집무실로 들어가시니 오의성은 사과의 말을 하는것도 잊고 분격에 숨을 험하게 몰아쉬며 방안을 왔다갔다하였다. 그는 담판을 파괴하려고 꾀했다는것보다는 자기 얼굴에 흙탕칠을 한것이 분하여 노발대발하다가 지쳐서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는 군복저고리의 단추들을 다 끌러놓고 가슴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고는 면구스러운 눈으로 장군님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내 당장 고참모놈을 끌어다가 목을 쳐버리는게 도리이지만… 그렇게 못하니 량해하시오.… 그놈은 얼마전에 채려장의 부대에 기여든 놈인데… 채려장이 감정이 상하여 부대를 거느리고 떠나가버리면 우리 군은 다 허물어지고맙니다. 그 부대가 제일 크니까… 어허 참…》

《아, 그렇습니까?》

오의성은 시름겨운 한숨을 내쉬고는 문득 이렇게 물었다.

《리청천이라고 모릅니까?》

《왜 모르겠습니까. 그는 나와 구면입니다.》

리청천은 일본륙군사관학교를 중퇴하고 민족주의운동자들속에 끼여든 극단적인 반공분자였다. 그는 독립군안에서 령도권쟁탈을 위한 파쟁을 일삼아오다가 세상에 《흑하사변》으로 널리 알려진 류혈적인 참극을 빚어내여 전독립군을 괴멸시킨 장본인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길림에서 활동하실 때 3부통합을 위하여 그와도 얼마간 접촉하신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채려장네 부대에 배겨서 고문노릇을 하는데… 이건 몇 사람만 아는 비밀입니다. 그 사람이 온 다음부터 채려장은 엇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채려장을 뒤에서 조종하는건 그 사람입니다. 상공당을 폭파하자는것도 그 사람 머리에서 짜냈을겝니다. 우리가 련합전선을 결성해도 그 사람네는 응하지 않을겝니다. 틀림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리광을 통해 이미 알고있는 그 사실을 두고 오래전부터 리청천의 존재를 몹시 우려하시였다. 만약에 고참모가 왜놈들의 밀정이고 리청천이 고참모의 손에 놀아난다면 극악한 반공분자인 그가 어떤짓을 할지 알수 없었다.

《제가 채려장을 만나보면 어떻습니까?》

《김대장이? 아니, 그만두십시오. 무슨 흉책에 걸려들지 모릅니다!》 하고 오의성은 손을 저어보였다.

 

×

 

《독립군이 와해된 다음 숲속을 홀로 헤매던 리청천은 저 남호두에서 채려장네 부대로 찾아왔습니다. 그후 그의 전술적방조를 받으며 적과 접전하여 승리하고 기관총까지 로획했답니다. 계속되는 〈토벌〉에 쫓기는 신세이고 중무장이라고는 전혀 없었던 채려장에게는 그 기관총이 대단한게였던 모양입니다. 그후부터 저 채가는 리청천이를 신주처럼 모시고 다니는데… 채려장을 뒤에서 조종하는건 그 사람입니다.》

진한장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장군님곁에서 걸어갔다. 그는 오사령으로부터 성미가 과격한 채려장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그이의 신변에 위험이 없도록 중재역도 잘 수행하고 신변보위도 책임적으로 하라는 임무를 받고 따라나섰던것이다. 그는 련합전선을 형성하려면 채려장을 돌려세우든지 아니면 최소한 중립이라도 지키도록 해놓는것이 중요하다는것을 잘 알고있었지만 장군님께서 그를 직접 만나는것은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길림시절부터 지내봐서 그이께서 일단 결심하시고 나서시면 무엇으로써도 그 걸음을 막기 어렵다는것을 잘 아는 그는 하는수없이 따라가고있었다. 그는 채려장이 어디로 나가고 없었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은근히 바라는것이였다.

채려장의 지휘부는 시가북단에 자리잡고있는 토호의 저택에 들어있었다.

여러채의 기와집으로 이루어진 토호의 저택은 높다란 토성으로 둘러막혀 지붕들만 바라보였다. 토성은 세월의 풍상에 시꺼멓게 퇴색했고 군데군데에 이끼와 담장풀까지 자라올랐다. 그 토성에 숭숭 뚫린 가병들의 총구멍들은 적의를 품고 세상을 내다보는듯 하였다.

굳게 닫긴 대문앞에 장총을 멘 쌍보초가 서있었다.

진한장이 대문앞으로 다가가서 오른쪽보초병에게 무엇이라고 이야기하자 그는 전령병 리성림의 무장상태를 언짢게 흘겨보며 팔굽으로 대문을 들이밀었다. 이뿌리까지 저려드는 마찰음을 내면서 대문이 두쪽으로 갈라졌다. 안으로 사라졌다가 나온 보초병은 진한장이만을 데리고 들어갔다. 진한장은 이윽하여 밖으로 나왔는데 그의 얼굴은 해쓱하게 질려있었다. 그는 리청천이도 방에 있는데 담판을 거절한다고 장군님께 말씀드리였다.

이때 뒤에서 《김대장!》 하고 웅글은 목소리가 울렸다.

김일성동지께서도 놀라서 뒤를 돌아보시였다. 몸집이 우람하고 얼굴이 호인답게 너부죽한 사람이 다가오며 손을 내뻗치였다.

진한장이 사려장님이라고 그이께 알려주었다.

사려장은 장군님의 손을 잡으며 사과의 말부터 앞세웠다.

《김대장, 이거참 죄송합니다. 인사가 늦어서… 어디 좀 갔다오다나니 좀전에야 오사령한테서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사려장은 그이의 팔을 부드럽게 잡아 문쪽으로 가볍게 이끌었다.

《갑시다.… 갑시다.… 저 사람은 성미가 말라놔서… 인차… 인차… 뉘우칠겝니다. 갑시다. 가서 이야기랑 좀 합시다.》

진한장이도 더 지체하지 말기를 바라는 표정이였다.

바깥에는 해빛이 눈부시였다. 땅에 던져진 나무그림자들의 륜곽이 그린듯이 뚜렷하였다.

사려장은 장군님의 결에 붙어서 걸어가며 채가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채려장은 한때 이 듬직한 사람밑에서 영장으로 복무한 일이 있으며 그때부터 그들은 결의형제를 무은 사이라는것이였다. 사려장은 그의 지휘부에 리청천이 식객으로 와있는것을 못마땅히 여겨왔었다. 그가 리청천이 온 다음부터 오사령의 명령에 불복하여나서기도 하고 제멋대로 놀며 따로 떨어져나가려는 기운을 보였기때문이였다. 채사령은 용맹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출세도 해보자는 야심이 큰 사람인데 리청천이 이 공명심에 키질을 하면서 그의 환심을 사고있다. 채려장은 그의 군사지식만 습득하면 자기가 맹과 지가 겸비된 두령으로 될수 있다고 확신하고있다.

채려장이 리청천이와 의형제까지 무었을 때 사려장은 분격하여 그를 찾아가 자기와의 관계는 파기하자고 들이대였다. 그때 채려장은 매우 섭섭해하며 리청천이에 대한 속심을 털어놓았다. 채가는 자기가 리청천이와 이런 관계를 맺는것은 진심이 아니며 그의 군사지식과 전술들을 긁어내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사형에게 위험이 닥치면 그래도 자기가 제일먼저 뛰여들것이라고 말하였다.

《처음에는 이랬는데 이제는 저 리가의 꾀에 아주 넘어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 사람은 나를 배신하지는 못합니다. 오사령과 내가 김대장네와 손을 잡으면 저 사람도 아주 떨어져나가기 전에는 공산당에 대한 적대행동은 못합니다. 저 사람은 나한테 맡기면 됩니다.》 하고 사려장은 락관적인 기분으로 말하였다.

구국군사령부로 돌아왔을 때 오사령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린듯 한숨을 내쉬였다. 그는 사려장과 진한장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채가는 그저 갈범같은 성미라니까.…》

오의성은 밝게 웃으며 김일성동지를 응접실로 안내하였다. 응접실에는 성대한 오찬이 마련되여있었다.

오의성은 장군님께 자리를 권하고 그이의 곁에 앉아 은잔에 술을 따르며 상공당건에 대하여서는 이 사죄의 술로 씻어버려달라고 말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사건은 오사령의 뜻과는 전혀 관계도 없는 아이들의 장난같은것인데 사령께서도 다시 상기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시였다. 오의성은 그 말씀에 만족하여 배갈이 찰찰 넘치는 잔을 그이께 권하였다. 그이께서는 감사를 표시하고 사양하시였다. 오의성은 펄쩍 놀라며 무인이 술을 사양하다니 이 어인 일인가고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항일대전이 승리한 다음 큰 잔으로 축배를 들자고 하시였으며 오의성은 그 말씀에 통쾌한 웃음으로 공감을 표시하면서 그이께 식사를 권하였다.

오찬이 거의 끝나갈무렵 밖에서 왁작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사령부마당으로 구국군 군인들이 밀려들고있었다.

오사령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그이께 말하였다.

《우리 병사들이 김대장을 보고싶어 모여드는겝니다.》

김일성동지께서 오사령과 사려장의 뒤를 따라 현관앞에 나서시였을 때 마당에 빼곡이 들어서서 와글와글 끓어번지던 구국군 군인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지며 장군님만을 우러렀다. 그이의 젊음과 기상에 경탄하는 조용한 탄성들이 회오리바람처럼 군중들의 머리우로 날아지나갔다.

그들은 모두 혈색이 좋지 못하고 옷차림도 람루하였다. 헐어빠진 구동북군군복과 일본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태반이고 군복저고리에 사복바지, 사복저고리에 군복바지를 얼럭덜럭 섞어 입은 병사들도 보였다. 총을 멘 병사, 탄띠만 두른 병사, 채양이 꺾어진 둥글모자를 쓴 장교가 있는가 하면 아직도 털모자를 쓴 병사들이 있고 맨머리바람의 병사들도 여기저기에 보였다. 시큼한 땀냄새와 곰팡이냄새 같은것이 확 풍겨왔다.

그들속에서 여느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보이는 병사가 총을 높이 추켜들며 피타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김사령님- 한가지 물어봅쉐다.》

그 병사는 군중속을 비집고 걸어나왔다. 피골이 상접했으나 강기가 있어보이는 얼굴이다. 움푹 꺼져들어간 눈확에서는 시꺼먼 눈동자가 탐욕적인 빛을 번쩍이고있었다. 병사는 앞줄에 나와서더니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김사령님! 형제가 되자면서 조선유격대는 왜 자꾸 우리를 시비하는겝니까? 마적이다! 토비다!… 백성들한테서밖에 량곡을 징발할데가 있습네까? 우리는 배고픕니다. 군대야 먹어야 싸울게 아닙네까?》

그 병사의 뒤에서 털모자를 제껴쓴 익살군얼굴의 병사가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주눅이 좋게 벙글거렀다.

《여보게 꺽다리, 님자는 남보다 내장이 더 기니까 배고픈게야, 흐흐흐…》

오의성은 뜻밖의 창피를 당할 일이 벌어져 몹시 당황해하며 그 병사더러 어서 물러가라고 손짓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진중하신 안색으로 병사를 측은하게 바라보시다가 절절한 동정이 흐르는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언제부터 배고픈 고생을 했습니까?》

병사는 뜻밖의 동정에 설음이 북받치기도 하고 무안스럽기도 하여서인지 얼굴빛이 수수떡처럼 되여 분격을 터뜨리듯이 거칠게 대답하였다.

《일본놈들한테 저 동녕현성을 떼운 다음부터는 내내 이 모양이웨다. 거기에는 우리 군량이 산더미같이 쌓여있었는데 젠장, 거기를 떼우니 내내 이 고생이웨다.》

장군님께서는 군중들쪽을 바라보시며 큰소리로 그 병사의 말을 되뇌이시였다.

《여러분, 이 병사는 왜놈들한테 동녕현성을 떼운 다음부터 고생이 컸다고 합니다. 우리야 남남도 아닌데 속을 터놓고 말못할게 있습니까.…

우리가 손을 잡고 왜놈들을 친다면 군량도 얼마든지 로획할수 있고 무기도 빼앗을수 있을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편견과 오해를 가시고 지난일을 캐지 말며 오직 왜놈들과 싸우기 위해 손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같이 일제의 침략을 당하여 나라를 빼앗겼으며 우리 부모들도 다같이 일제의 야만통치밑에서 마소처럼 부리우며 갖은 고생을 하고있습니다. 일제는 우리들의 공동의 원쑤입니다. 같은 처지인 우리들에게는 서로 적대시할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일련합전선을 하자고 당신들을 찾아와서 존경하는 오의성사령과 진지한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번 회담은 조중련합전선결성의 확고한 기초를 마련하였습니다. 우리는 근거지로 돌아가면 오사령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준 신의와 환대에 대하여 전체 부대들에 통보하고 앞으로 구국군 여러분들의 군사행동과 생활을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돕도록 하겠습니다.

병사들! 우리는 오사령님이 결심을 내려 적절한 기회에 동녕을 공격한다면 언제나 당신들과 함께 싸울 용의가 있다는것을 확언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주먹을 높이 들어 이렇게 웨치시였다.

키꺽다리병사는 군중을 향하여 돌아서서 총을 높이 쳐들어올리며 목이 터지게 소리쳤다.

《김사령이 제일이요-》

군중들은 그의 웨침에 호응하여 저저마다 제나름으로 뛰여오르기도 하고 총을 흔들어대기도 하면서 웨쳐대기 시작하였다.

《조선유격대는 우리 형제요-》

《손을 잡자-》

《항일전을 함께 하자-》

오의성은 처음으로 보게 되는 자기 군대의 이런 기세와 정신적앙양에 만족하여 장군님의 두손을 덥석 잡아흔들었다.

《고맙습니다! 좋은 말씀을 하여주어 고맙습니다!》

장군님께서도 감격에 겨워 그를 뜨겁게 포옹하시였다.

《손을 잡읍시다! 오사령님, 손을 잡읍시다.》

장군님께서와 자기네 사령이 손을 뜨겁게 잡아흔드는 모습을 보는 군중들은 더욱 환희에 넘쳐 열광적으로 뛰여오르며 환호했다. 높이 쳐들려 설레이는 총창들의 숲우로 군모들이 산새처럼 날아올랐다.

 

×

 

그날 밤 오사령은 사려장과 함께 련합전선결성에 동의하였으며 두 군대사이의 호상 통보와 련락을 위하여 라자구에 반일부대련합판사처를 두는데도 찬성하였다.

이튿날 오전 김일성동지께서는 라자구를 떠남에 앞서 작별인사차로 오사령을 방문하여 그에게 보총 세자루를 선물로 주시였다. 오의성은 처음 만나서 하였던 롱말이 생각나서 몹시 당황해졌으나 인차 례의를 차려 막료들을 다 불러들여 자기옆에 세우고 두손으로 정중하게 선물을 받아안았다.

장군님께서는 친선의 정이 넘치는 은근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사령님, 약소하나마 련합전선결성기념으로 받아주십시오.》

오의성 역시 나직한 목소리로 그이의 말씀을 되풀이하였다.

《련합전선결성기념으로 받겠습니다.》

그날 오의성사령은 김일성동지를 멀리에까지 바래워올리고 돌아와서 방에 오래동안 홀로 앉아있었다. 그는 원탁우에 놓여있는 세자루의 보총을 거듭 쓸어만지며 깊은 생각에 잠기였다.

(김사령은 사살사건에 대해 끝까지 한마디도 없었지. 나라면 가슴이 찢어지고 분통이 터져오르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한마디, 한마디도 없었지. 반일련합전선이란 거사를 생각해서… 그런 감정도 다 희생시켰지. 어허, 얼마나 큰 도량인가! 그 토비 동가때문에 우리는 도의상으로 꿀리고 큰 망신을 당했다. 엑- 미치광이같은 놈!)

오의성은 세자루의 보총우에 머리를 떨구고 오래동안 움직일줄 몰랐다.

(장군이시여, 당신은 나를 덕으로 깨우치셨소!)

그러나 문득 다른 생각이 엄습해들어 머리를 천천히 들고 흐린 눈으로 창문을 내다보았다. 이제 채세영부대가 어떻게 나올지 근심스러웠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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