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6 장
2
이날
하루종일 새 방어진지들을 돌아보시고 저녁무렵에 큰배나무골어귀로 들어서신
문득 리광의 얼굴이 그 맑은 물우에 얼추 비껴든것 같아 마음이 쓰려오시였다. 이 샘물은 리광이가 희생되기 전에 사령부에 찾아왔다가 새로 파놓은것이였다.
그토록 깊은 동지적우정을 맺었던 반성위마저 세상을 떠나고나니 분통하게 목숨을 잃은 또하나의 혁명동지 리광이가 못견디게 그리워지시였다.
어느덧
…
《글쎄 성림이 솜씨같지는 않아…》
《하하하… 모르겠지요?》
《모르겠는걸…》
《라자구에서 리광동지가 왔습니다!》
그 말에
《뭐요?》
《리광동지는 사령부 박우물이 낡았다고 하며 이렇게 샘구멍을 찾아 제꺽 새 박우물을 만들어놓았습니다. 솜씨가 어찌나 날랜지 히야- 그냥 번개입니다.》
《어디… 어디 있소?》
《마을을 돌아보고 사령부에서 기다립니다.》
리광은 무슨 생각에 골똘하였는지 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사령부의 마당가에서 왔다갔다하고있었다. 보기좋은 중키에 몸매가 단단하고 미끈하게 생겨 어디 내세워도 유격대지휘관답게 의젓해보이던 그였건만 타관에서의 고초때문인지 좀 수척해진듯 하였다. 그의 군복잔등은 희누렇게 색이 날았다.
《리광동무!》
리광은 화닥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리광은 두손을 앞으로 뻗치며
《이게 얼마만인가. 그래 모두 잘있소?》
《예, 잘있습니다!》
《부인도… 아이도?》
《예, 다 잘있습니다.》
《나도 보다싶이 건강하오.》
주전자를 들고 막 달려들어오던 전령병도 걸음을 멈추고 이 감격적인 상봉을 바라보다가 실눈을 지으면서 활짝 웃었다.
이윽고
《내가 보낸 편지는 받았소? 그래 거기 형편은 어떻소?》
리광은
라자구일대에 주둔하고있는 구국군의 내부형편은 의연히 복잡하며 우리 혁명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서로 달랐다.
라자구일대의 구국군부대들을 통솔하고있는 오의성사령은 반일의 기상은 높으나 철저한 반공산주의자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리해는 매우 유치한것으로서 심히 외곡되여있다. 때문에 그는 공산주의자들과의 련합전선에 대하여는 생각도 안하고있다.
요즘 오의성은 와해되여가는 부대들을 묶어세우고 자기의 통솔권을 확립하려고 무진애를 쓰고있다. 그는 총살까지를 포함한 각종 징벌처분과 《쟈잘리》와 같은 결의형제를 뭇는 방법으로 이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며 삼국지나 고대병서들에서 령군술의 비결을 찾아내려고까지 한다. 그의 부하 려장들은 겉으로는 그를
오의성의 밑에 있는 려장들중에서 제일 경향이 좋고 온전한 사람은 하층계급출신의 사려장이며 제일 경향이 나쁜 사람은 경찰관출신의 채려장이다.
사려장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하여 중립적인 립장이나 자기의 계급적출신으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이 매우 강하다.
그는 량곡징수도 지주나 부농들에게 국한시키고있다. 략탈을 적게 하는 그의 부대는 자주 기근에 허덕이고있으며 따라서 탈주병도 많다. 고향으로 도망치는자도 있고 잘사는 부대로 가서 편입되는자도 있다.
채려장은 공산주의자들이 민족을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으로 갈라놓고 내란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며 공산주의자들을 적으로 치부하고있다. 그에게 지독하게 반공바람을 불어넣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 부대에 모사격으로 있는 리청천이란 사람이다. 그는 일제를 반대하여 싸우기 전에 공산주의자들을 소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채려장의 부하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짐작되는 사람이면 덮어놓고 잡아서 사살한다. 게다가 그의 부대는 수적으로 제일 우세하다. 하지만 오합지중에 지나지 않는다.
채려장의
때문에 그는 한때 자기 상관이였으며 결의형제를 무은 사이인 사려장을 오사령보다 더 존중한다.
그밖에 동두령의 부대를 비롯한 적지 않은 부대들이 반일을 한다고 무장을 들기는 했으나 거의나 토비화되여 이 일대를 돌아치고있다.
동산호는 략탈을 일삼아 부하들을 잘 먹이기때문에 무지한 병사들속에서는 《광야의 범》으로 우상화되고있다. 그는 물욕을 비롯한 타락한 욕망을 성취시켜주는것으로써 병사들을 끌어당기고있기때문에 부대안에는 풍기가 문란하다.…
리광은 서글서글한 눈을 번쩍이며 열정적으로 말하였다.
《우리에 대한 두령들의 감정과 립장에는 약간한 차이들이 있습니다.
이 차이에 우리가 손을 들이밀수 있는 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틈에 손을 넣기만 하면 두령들도 움직여놓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새 하층병사들속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이 보입니다. 근거지에서 토지개혁을 하여 빈농민들에게 땅을 무상으로 나눠줬다는 소문을 듣고 빈고농출신 병사들이 부러움을 금치 못해하며 이것저것 물어오는가 하면 적대감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드물어졌습니다.
특히 제가 일전에 편지로 보내드렸듯이 동두령의 부대가 고참모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경향성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리광은 신심에 넘쳐 말하였다.
《이거야말로 좋은 기회가 아닙니까? 이런 기회에 선전공작을 대대적으로 벌릴가 합니다. 우선 연극을 하나 잘 준비해 그들을 공연에 초청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연극각본도 가져가고 도움을 받자고 왔습니다. 선전자료랑 있으면 한짐 지고 가자구요…》
《구국군내부에 왜놈들의 선이 들어와있는것 같지 않소?》
《아직까지는 그런 기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왜놈들이 구국군의 손을 빌어 동무들까지 해치려고 책동할수 있소.》
《구국군이 쉽게 놀아나진 않을겁니다.》
《아니요. 왜놈들이 무슨짓인들 못하겠소. 정신을 차려서 구국군내부에 왜놈들의 선이 들어오지 않았는가 알아보고 구국군상층부의 움직임도 예리하게 감시하면서 공작해야 되오. 만약에 조금이라도 불길한 기미가 느껴지면 즉시 철수하오. 알겠소?》
리광은 선뜻 대답을 하지 않고 머리를 수굿하고있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예…》
《그러나 피동에 몰리거나 수세에 빠져서는 안되오. 우리는 이제부터 대대적인 공세로 나가 인민혁명정부로선을 철저히 관철해나가겠소. 동무는 라자구에서 구국군과 반일련합전선을 결성하는데 꼭 성공해주오. 그래야 우리 혁명이 새로운 앙양을 일으킬수 있소!》
밖에는 달빛이 환했다. 시원한 바람에 이슬맺힌 잎사귀들을 반짝거리며 나무가지들이 부드럽게 설레였다. 골짜기에 가득한 희푸르스름한 달빛을 받아 바위밑의 어스름속에서 리광이 파놓은 박우물이 거울판처럼 번쩍거렸다.
《아무쪼록 조심하오. 조금이라도
그러자 리광은 배포유하게 웃어보이며
《허허허, 그러지…》
그렇게 떠나간 리광이였다.
그런데 샘물은 지금도 이렇듯 철철 넘쳐흐르지만 리광이는…
난데없이 들려오는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가슴속을 아프게 누비는듯 하였다.
×
이튿날 이른아침 사처의 망원초들에서 적의 침습을 알리는 검은 봉화들이 타올랐다.
왜놈들은 셋째섬방향과 대왕청어귀, 뾰족산방향으로 일시에 공격해들어와 유격대병력이 이전에 배치되였던 고지들로 접어들었다. 이것은
장룡산은 골짜기를 따라 누렇게 기여드는 왜놈들의 행군종대를 내려다보며 중대를 이끌고 숲속을 누벼나갔다. 참나무숲이 무성한 나지막한 산등성이에 올라선 그는 중대를 전투대형으로 산개하려고 지형을 돌아보다가 이끼오른 진대나무뒤에서 웬 사람의 그림자가 움쭉 일어나는것을 보고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썩은 진대나무통을 두손으로 짚고 이쪽을 노려보는 그 사람은 권일균이 틀림없었다. 어디에서 딩굴었는지 구겨지고 찢어진 옷은 흙투성이가 되였고 독기어린 얼굴은 푸들푸들 떨고있었다.
장룡산은 그자의 눈빛을 보고 모든것을 깨달았다. 그자는 자기 정체가 드러났는가 어쨌는가 기미를 알아차리려고 산속을 헤맨것이 분명하였다.
(더러운 놈, 끝내 내 손에 걸려들었구나!)
장룡산은 입안에 쓰거운 열물같은것이 도는것을 느끼며 놈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그는 골짜기로 행군해들어오는 왜놈들때문에 소리를 치거나 총소리를 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며 한걸음 또 한걸음 다가갔다.
괴괴한 숲속에는 거치른 숨소리와 발자욱소리만 높았다.
권일균은 왜놈들의 군화발소리가 진감하는 골짜기를 홱 내려다보더니 산짐승처럼 수풀속을 꿰질러 그쪽으로 달려내려가면서 단말마적인 함성을 내질렀다.
장룡산은 가슴에서 터져오르는 증오에 온몸이 확 불타올라 앞뒤를 가리지 않고 뒤쫓아가다가 나무가지들사이에서 언뜻거리는 놈의 잔등을 내쏘았다. 놈은 길길이 뛰여오르는듯 하더니 수풀속에 구겨박혔다.
인민들의 증오를 담아 놈에게 철추를 내린 총성은 골짜기에 메아리치고 왜놈들은 그 소리를 듣고 미친듯한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올라왔다.
때문에 장룡산은 적의 익측과 배후를 기습할수 없게 되였다. 그리하여 기본진지의 유격대부대들은 예견했던것보다는 불리한 조건에서 전투에 진입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천험의 요새를 이룬 근거지의 산봉우리, 험한 산기슭, 깎아지른듯 한 벼랑우로부터 밀려드는 왜군들의 누런 무리들에 불소나기가 쏟아졌다.
전령병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시는
전령병은 불붙는 수풀속과 자욱한 초연속을 헤매며
적의 공격이 중지되면
어느날 밤
장룡산의 몸에서는 시큼한 땀냄새가 풍겼다.
《그게 뭐요?》 하고
생활에서 엉뚱한데가 있는 장룡산은 인차 대답하지 않고 땀이 배여 눅눅해진 신문지를 풀었다. 신문지안에서 네모반듯하게 접은 붉은 천이 나왔다. 광택이 흐르는 천이였다.
《이게 무슨 천이요?》
《어디서 구했소?》
《왕청시가의 포목상과 련계를 맺고있는 지하조직동무들을 통해서 구했습니다.》
《좋소, 아주 좋소! 이걸로 기발을 큼직하게 만들어 하늘에 척 띄워 펄펄 날리면 얼마나 보기 좋겠소! 동무가 어떻게 기발감을 구해올 생각을 다했소?》
장룡산은 분에 넘치는 치하의 말씀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며 수염털이 꺼실꺼실한 턱밑을 슬슬 쓸어만졌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제가 곰이나 범하고 씨름하던 장포리인가 해서 미욱하게 여기지만 저한테두 세밀한 구석이 있습니다. 허허허…》
그 롱말에
이윽고 장룡산의 눈에 심각한 빛이 어리였다.
장룡산의 목소리는 잦아들며 웅심깊게 울렸다.
《이 천을 품고 사령부로 걸어오면서 저는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지난날 총을 잘 쏘면 똑 제일인줄로 알고 우리 혁명로선을 깊이 알지 못했기때문에 권일균이같은 종파쟁이들이 쏘베트바람을 일으키는것도 철저히 반대해 투쟁하지 못했습니다.
저희들이 똑똑했더라면
《동무는 오늘 정말 좋은 생각을 많이 했소. 그렇소. 조국이 광복되면 여기서 하던 경험에 기초해서 정권기관들을 세우고 운영해야 하오. 때문에 여기서 올리는 인민혁명정부의 기발은 조국의 미래를 상징하는 기발이기도 하오.》
그를 돌려보내신
리재명은 기발천을 책상우에 펴놓고 상다리밑으로 흘러내린 천의 한쪽귀를 조심스럽게 만져보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대단합니다. 이 기발을 띄우면 온 천지가 더 환해지겠습니다!》
흥분하면 과장병이 심해지는 리재명의 이런 소리에
이튿날아침 재봉소에서 붉은기발 두폭을 제꺽 만들었다. 리재명이 그 기발 하나를 토목양복속에 품고 림성실이와 함께 쌍암촌으로 떠나갔다.
장룡산은 큰 경사를 맞은듯 새 군복에 새 신발을 신고 노상 벙글거리며 쌍암촌으로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