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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0 회


제 6 장

1

대왕청하기슭의 풀밭에 몸집이 우람한 사람이 벌렁 누워 뿌옇게 흐려진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고있었다.

그는 권일균이였다.

십리평에 나갔다 돌아오던 그는 다리쉼을 하려고 풀밭에 앉았다가 온몸이 녹작지근해져 누워버리고만것이다.

수풀속에서 숨을 죽였던 풀벌레들이 다시 기승을 부리며 울어대기 시작하였다.

송이구름 한점 없이 파란 하늘이 웬일인지 어둑하게 보였다.

그는 미풍에 살랑대며 이마를 간지럽히는 새잎을 홱 잡아채여 끊어서는 한끝을 입귀에 물고 질근질근 씹었다. 땀이 질벅한 미간과 눈가에 깊은 주름살들이 잡히고 관자노리가 푸들푸들 떠는듯 하더니 눈에서 랭랭한 빛이 뿜어나왔다.

(그자때문에 이제는 끝장이란 말인가?)

권일균은 며칠전에 떠나간 반성위에 대하여 앙심을 품고 생각하고있었다.

반성위는 처음에 와서 이틀동안 같이 지낸 다음에는 단 한번밖에 만나주지 않았다. 만나서도 한동안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고는 매우 공식적으로 담화하였다. 거기에 모욕을 느끼고 심사가 뒤틀어진 그는 쏘베트로선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하면서 자기의 의사와 감정을 순탄하게 표현하지 못하였다. 그는 혁명일반과 자신에 대한 회의심을 드러냈는가 하면 자기반성의 빛을 보이기도 하고 우려의 말도 두서없이 하였다. 그러자 반성위는 그의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쏘베트로선을 제창했던 사람들의 사회운동경력과 파벌관계 그리고 국제당에 보낸 무기명서한의 필자가 누구인지 가늠이 가지 않는가고 물었다.

그리고 마감으로 유격대의 왕재산진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질문하였다.

권일균은 마지막의 그 물음으로 국제당이 자기의 사상을 최종적으로 꿰뚫어보려고 한다는것을 직감했다. 그는 가슴이 돌덩이처럼 굳어지며 대답을 망설이였다. 그때 국제당파견원이 의미심장하게 실눈을 지으며 건너다보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좀 시간을 달라고 얼버무렸다.

모든 징후로 보아 국제당파견원의 립장이 인민혁명정부로선에로 기울어졌다는것이 명백해졌을 때 권일균은 왕재산진출에 대한 자기의 립장을 밝혀야 하겠다는 절박한 생각에 쫓겨 그를 조용히 만나려고 구정부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반성위는 자리를 뜨고 없었다. 책상우에 있는 보고문초안을 읽어본 그는 가슴이 허물어져내리는듯 하여 저도모르게 신음소리를 내였다.

이틀후 권일균은 왕청과 훈춘현계의 산간마을에서 박두남을 만나 반성위가 쓴 보고문내용을 알려주고는 그가 이제 훈춘에도 갈수 있는데 형세가 이렇게 기울어진것만큼 모두 자중하는것이 좋을것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반성위가 근거지의 현실을 외곡하여 써보낸 무기명서한의 필자가 누구인가를 아는것 같다고 말하면서 당신네도 이제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여 그 어떤 지지도 못 받게 될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두남은 그를 설복하지 못했다고 화를 내는가 하면 처세가 능한자들이 바른소리하는것을 못 봤다고 로골적으로 비꼬면서 훈춘에 오면 어떤 수단을 써서나 돌려세워놓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던졌다.

권일균은 홍병일에게는 아무런 말도 안했다. 자기에 대한 감정이 나쁜 그로부터 배신적인 보복을 당할 우려도 있고 또 속이 얕고 성미가 팔팔한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서였다.

국제당파견원까지 돌아섰으니 이제는 어디에 기대를 걸데도 없다.

앞으로도 토지개혁때처럼 숨을 죽이고 지낼 일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졌다. 토지개혁날 땅을 분여받은 농민들이 밭들에 하얗게 널려서 흥성거릴 때 그는 방구석에 누워있었다. 기세가 오른 농민들이 토지의 《공동소유》, 《공동경작》을 실시하려고 사람들을 몰아댔던 자기에게 앙심을 품고 덤벼들가봐 무서웠던것이다.

이제 여기서 인민혁명정부로선이 철저히 관철되는 날에는 자기를 근거지에서 아주 들어내자고 접어들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니 가슴속에서 피거품같은것이 끓어올라 권일균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신음소리를 내였다.

《음…》

이때였다.

독립군때부터 훈춘에서 넘어오는 파발이 다니던 고개길로 말 한필이 흙먼지구름을 날리며 질풍같이 뛰여내려왔다.

말잔등에 납작 엎드린 사람은 말을 정신없이 몰아댔다. 선지피냄새를 맡은 말들만이 저렇게 미친듯이 달린다는 생각이 뇌리에 번개쳐 권일균은 벌떡 일어나앉았다.

땅을 구르는 말발굽소리들사이사이로 채찍이 공기를 가르는 아츠러운 휘파람소리가 울려왔다.

말은 주저없이 대왕청하에 뛰여들어 물을 튕겨올리며 서너걸음의 뜀으로 이쪽기슭에 올라섰다.

권일균은 말앞으로 달려나가며 소리쳤다.

《여- 서라- 섯, 무슨 일인가?》

말우의 젊은 유격대원은 그를 사납게 돌아봤다. 새까맣게 질린 그의 얼굴에서는 땀물이 철철 흐르고 군복 앞가슴과 한쪽 팔소매에 피물이 즐벅했다.

《어디를 다쳤소?》 하고 권일균은 재차 목청껏 소리쳤다. 유격대원은 그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거칠게 물었다.

《여보, 당신은 누구요?》

권일균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것으로 보아 그가 훈춘유격대에 속한 대원이라는것을 알았다.

《나는 현당조직책이요!》

《뭐요?》

《현당조직책이란 말이요!》

유격대원은 사납게 날뛰는 말을 멈춰세우려고 고삐를 힘껏 뒤로 잡아챘다. 말은 지독한 땀냄새를 풍기며 권일균의 둘레를 돌았다. 말주둥이에서 날려오는 실거품이 그의 얼굴이며 목에 선뜩하게 휘감겼다.

말우의 유격대원은 숨이 턱에 닿아 부르짖었다.

《국제당파견원이 피살됐소!》

《무엇이- 어째?- 누가 쐈는가?》

《박두남이란자가 쐈습니다.》

《뭐라구? 박두남이 쐈다는걸 어떻게 아오?》

《마당에 있던 많은 대원들이 목격했습니다.》

《뭐?… 좋-소. 동무는 돌아가오. 내가 알았으니 됐소. 돌아가오!》

권일균은 그를 돌려세우려고 황황히 말앞으로 다가섰다.

유격대원은 고삐를 잡아채여 말을 비켜세우며 끌날같은 눈으로 그를 흘깃 돌아보았다. 내가 뭐 당신에게 복종하는줄 아는가 하는 표정이였다.

그는 말을 몰아 소왕청쪽으로 내달려갔다.

권일균은 그의 뒤를 쫓아가며 서라고 소리치다가 먼지가 풀썩풀썩 이는 달구지길을 따라 허겁지겁 발걸음을 옮겨갔다. 그의 얼굴로는 식은땀이 줄줄이 흘러내렸다. 박두남이 그자가 왜 그따위 망나니짓을 했는가? 몰래 손을 써서 없애치울게지 숱한 사람들앞에서 그따위 미욱한짓을 하다니. 미친놈, 도깨비, 망종이! 숱한 사람들앞에서 그런짓을 했으니 그 자리에서 붙잡혔을것이다. 그자는 심문을 당하면 내가 국제당파견원의 보고문내용을 알려준것부터 불것이다. 그리고 평소에 악의를 품고있은 홍병일은 이 기회에 나를 제거하고 저도 협의에서 벗어나려고 기를 쓰고 접어들것이다. 아, 이 일을 어찌는가? 권일균은 오늘 저녁 아니면 밤중에 자기를 체포하려고 유격대원이나 자위대원들이 달려들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는 해빛이 싫어났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어디로인가 그늘진데로 숨어들어가고싶었다. 그는 소왕청쪽으로 간다는것이 길을 헛갈려 서대포쪽으로 달려갔다.

이때 장군님께서는 사령부방에서 주먹으로 책상을 치시며 뛰여일어나시였다.

《어느놈이?》

그이의 격한 음성이 방안에 쩌러렁 울리였다. 천장에서 흙모래가 떨어졌다.

훈춘유격대원은 이 참변이 자기의 실책에서 오기라도 한듯 죄스러워하며 눈길을 떨구었다. 처음 방에 들어섰을 때만 하여도 새까맣게 질린 그의 얼굴에서는 땀물이 창창 흘러내리고 격렬한 흥분과 비감에 온몸이 푸들푸들 떨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얼굴에서 피기가 가셔지고 입술이 파랗게 질려서 화석으로 굳어진듯 까딱 움직이지 못한다.

《누가 쐈소?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이런 일이 생겼소?》

《대대정치위원 박두남이 쐈습니다.》

훈춘유격대원은 주눅이 든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자가 왜? 어째서 그를 사살했는가?》

훈춘유격대원은 한마디로 대답할수 없어 자기가 먼곳에서 총성을 듣고 아우성이 끓어번지는 사건현장으로 달려가던 일부터 떠듬거리며 이야기하였다. 그는 달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한테서 여러가지 소리들을 들었다. 모두 제정신들이 아니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다른 사람은 저렇게 말하고 온통 뒤범벅이였다.

회의를 하다가 국제당파견원 반성위와 박두남사이에 론쟁이 붙었다.

론전은 칼부림처럼 격렬해지다가도 반성위의 리성에 의하여 잦아들군 하였다. 반성위는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인민혁명정부로선에 전적인 지지를 표시하였고 좌경적인 쏘베트로선의 부당성을 진지하게 분석비판해주며 그를 납득시키려고 애썼다.

박두남은 야비하고 비렬한 어투를 섞어가며 그의 모든 론거들을 다 반박하여나섰다. 그자는 론전에서 궁지에 빠지자 당치않게도 어디서 얻어들은 레닌의 하나의 《명제》에 매달리였다. 국가란 사회가 불상용적인 대립으로 분렬되였다는것의 고백이다. 국가는 사회우에 서있는 세력으로서 충돌을 완화시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것이다. 때문에 쏘베트의 관할구역도 하나의 사회인것만큼 모순과 충돌들이 있을수 있는것이며 이러한것들을 례를 들어 쏘베트의 시책을 비난하는것은 리치에 맞지 않는것이다. 반성위는 그의 무지에 아연해진듯 너그러움을 보이며 레닌에게는 그러한 명제가 없다고 일러주고는 그가 레닌을 거들었기때문에 구태여 이런 말을 하게 된다고 하면서 긴 설명을 하였다. 레닌은 자기의 저서 《국가와 혁명》에서 엥겔스의 말을 인용하였는데 엥겔스는 국가에 대하여 대체로 이러한 사상을 피력하였다. 국가는 사회가 해결할수 없는 자체모순에 빠졌으며 자기의 힘으로는 벗어날수 없는 불상용적인 대립으로 분렬되였다는것의 고백이다. 그런데 이 대립, 즉 경제적으로 서로 모순되는 리해관계를 가진 계급들이 무익한 투쟁에서 자신과 사회를 기진맥진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하자면 외관상 사회우에 서있는 세력, 충돌을 완화시켜 사회를 《질서》의 한계내에 유지할 세력이 필요하게 되였다. 사회로부터 발생하였으나 그우에 서서 사회와는 더욱더 멀어져가는 세력이 곧 국가이다. 반성위는 명석한 두뇌의 갈피갈피에서 레닌이 인용하였던 엥겔스의 명제를 술술 풀어내며 진심으로 박두남을 일깨워주려고 하였다. 그는 국가에 대한 엥겔스의 이 분석은 이 세상에 로동계급의 국가가 발생하기 이전시기의 착취계급의 국가에 대한 규정이라고 말하였다.

박두남의 무지는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는 사람들앞에서 망신을 당한데다가 그의 진지한 해설을 모욕으로 받아들여 얼굴빛이 시퍼렇게 되였다. 그는 눈을 독살스럽게 번뜩이며 반성위를 쏘아보았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는 거칠게 울렸다.

반성위는 침착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당신들은 김일성동지가 맑스-레닌주의 고전이나 다른 나라 혁명의 경험에도 없는 전혀 새로운 정권형태인 인민혁명정부로선을 내놓았다는 그 하나의 리유때문에 그 사상을 접수하지 않고 별의별 시비질을 다 하여왔소. 이 사실자체가 당신들이 그토록 숭상하는 맑스의 립장과도 얼마나 어긋나는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소? 레닌의 표현에 의하면 맑스는 국가라고 하는 프로레타리아트의 이 조직이 어떠한 구체적형태를 취하게 될것인가, 바로 이 조직이 어떻게 가장 완전하고 철저한 〈민주주의의 전취〉와 결합될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대중운동의 경험에서 그 해답을 기다렸소. 때문에 맑스는 빠리콤뮨의 경험에 대하여 그토록 깊은 주의를 가지고 연구하였소. 만약에 맑스가 지금 생존해있다면 인민혁명정부로선에 대하여도 커다란 환희를 가지고 연구 분석하였을게요. 박두남동무, 나는 마감으로 당신에게 한가지 묻겠소. 당신은 유격대의 왕재산진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오?》

박두남은 왈칵 분통을 터뜨렸다.

《나는 모르오! 애당초 나는 관여하지 않았고 또 관계하고싶지도 않소!》

그래도 반성위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침착했다.

《그러면 무엇에 관심이 있소? 자기 나라 혁명보다도 자파의 령도권쟁취에 더 관심이 컸다고 봐도 일없겠소? 우리는 자기 나라 혁명에 무관심한 사람을 참된 혁명가로 볼수 없소. 그러한 사람은 국제혁명에도 성실할수 없소. 내가 여기 와서 료해하고 종합한 제반 사실에 의하면 국제당에 무기명서한을 보낸 사람들은 쏘베트로선을 고집하면서 인민혁명정부로선을 접수하지 않은 종파잔당들이요. 그들은 국제당을 업어 김일성동지의 로선을 뒤엎으려고 꾀하였소. 천만에, 안되오! 김일성동지편에 진리가 있소. 만민이 따라야 할 위대한 진리가 있소! 어떠한 음모와 간계로도 우리 혁명의 지평선우에 떠오르는 저 진리의 태양을 막을수 없소!》

회의장은 뒤설레였다.

박두남은 당회의결정에 따라 자기 직무에서 해임되였다.

회의가 끝난 후 앙심을 품은 박두남은 대원들이 마당에서 구경하던 전리품 38식보총을 앗아 글을 쓰고있던 반성위를 쏘았다.…

《옆에 있던 사람들은 뭣들을 했는가!》 하고 장군님께서는 절통하게 부르짖으시였다.

《그자가 그렇게까지 나오리라고는 모두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놈은 체포했소?》

《못했습니다.》

《놓쳤단 말이요?》

《모두 반성위동지를 붙잡고 상처를 싸맨다, 지혈을 시킨다 야단법석을 떠는 사이에 밖에 매놓은 말을 타고 내뺐습니다.》

《박두남이… 그놈이… 도망치면 어디로 도망치겠는가?》

《그놈이… 왜놈들한테로 넘어갔습니다.》

《종파악당, 거기밖에 갈데 없겠지!》

《훈춘방향도로를 차단하고있던 우리 잠복초에서 발견하고 쐈는데 그놈이 빗맞아 피를 흘리며 훈춘시가쪽으로 내뛰였습니다.》

《그놈이!…》

장군님께서는 무릎우에 놓인 주먹을 꽉 움켜쥐시고 분노와 혐오감에 치가 떨리시여 한동안 말씀을 못하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갈리신 음성으로 나직이 물으시였다.

《반성위동지는 어디 안치했소?》

《그 자리에… 기발을 덮어놓은걸 보구 떠나왔습니다.》

《무슨 유언이라도 남긴게 없소?》

《그건 모르겠습니다. 탄알이 가슴을 뚫어 인차 숨이 졌는데…》

《동무… 수고했소. 돌아가서… 우리가 가기 전에 장의를 하지 말라고 전하오.》

그이께서는 이렇게 침착하게 말씀하시고는 그 무슨 가책에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성림이를 돌아보며 지휘관들을 불러오라고 이르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달려온 지휘관들에게 반성위의 피살에 대하여 알리시고 근거지형편을 잘 아는 놈이 왜놈들한테로 변절투항하여간것만큼 전투경계를 강화하라고 지시하시였다.

그리고 예견되는 정황때문에 움직일수 없게 된 그이께서는 리재명이와 한흥권에게 훈춘으로 갈 준비를 하라고 이르시였다.

그이께서는 유격대에서 2개 소대가 그들과 함께 동행하도록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가서 반성위의 령전에 손수 고별주 한잔이라도 부어주고 맨 앞장에서 령구를 메고 나가 마지막영결의 순간까지 벗을 바래여주면 가슴아픔이 잦아들것 같으시였다. 남아있게 된 그이께서는 가슴에서 불이 황황 일었으나 그런 내색은 내비치지 않고 훈춘으로 떠나가는 사람들의 차비를 하나하나 보살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부녀회에 호소하여 장의에 쓸 약간의 쌀과 천, 추도식장에 드리울 기발을 마련하시였다. 떠남에 앞서 리재명이 사령부로 헐떡거리며 달려들어와 배갈이 출렁거리는 오지병을 들어보이며 이게 생겨서 다행이라고 하였다.

《반성위동지가 우리 집에 들렸을 때 잘 대접도 못했는데 제상에 술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그 배갈이 있어 다행스럽게 여기는 그를 서글픈 미소로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배낭속에서 비상용으로 간수해두시였던 양초 한곽을 꺼내시였다.

《나는 이것밖에 보낼게 없습니다. 반성위동지 머리맡에 불을 켜서 세워놓아주십시오. 동무가 되게… 벗이 되게…》

리재명은 갑자기 코마루가 시큰거려 외면하며 두손으로 그 양초곽을 받았다.

《가거든 장례를 될수록 조선식으로, 우리 풍습대로 하게 하십시오. 반성위동지는 해외에서 오래동안 조국에 대한 향수에 젖어 살아온 동지인데 될수록 우리 풍습대로 하십시오.》

리재명은 울먹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예, 알았습니다.》

《아- 참 나는 언제 장례가 시작되는지도 모르고 앉아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좀 토론이 있었는데 령구가 묘혈속으로 들어갈 때 훈춘 망원초에서 검은 봉화를 올릴가 합니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우리도 여기서 그 시각에 반성위동지를 추도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훈춘으로 가는 일행을 멀리까지 바래주시였다.

그 일행은 장군님께서 얼마전 반성위와 가지런히 말을 달리시던 그길을 따라 멀어져갔다.

일행이 먼 산굽이에 사라진 다음에도 그이께서는 사무쳐오는 감회에 목이 메시여 돌아서지 못하고 길복판에 서계시였다.

사위는 고요했다. 미풍이 살랑거렸다.

장군님께서는 반성위와 함께 말을 달리였던 길을 끝없이 바라보시였다.

길은 줄기찬 추억의 흐름처럼 끝없이 뻗어나가며 나지막한 고개들을 기여넘고 산굽이들을 우불구불 감돌아서 저 먼 산골짜기의 검푸른 그림자속에 녹아없어졌다.

석양의 해빛이 아늑하게 깔린 길바닥에서는 지금도 어제날의 가지런한 말발굽소리가 흐르는듯 하고 석별의 정을 못이겨 반성위가 석쉼하게 부르던 《사향가》의 가락이 들려오는듯 하였다.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 마차길 여기저기에 황토색먼지구름을 휘몰아올렸다. 길가에 피여난 하얀 꽃들과 풀포기들이 회오리치는 뿌연 흙먼지속에 묻히며 몸부림쳤다.

그이께서는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시며 한걸음 또 한걸음 걸어나가시였다.

(그처럼 가기 싫어하는 사람을 왜 보냈던가? 그때 무작정 십리평에 데리고 가 하루이틀 더 붙잡아두었어야 하는건데… 아, 그랬더라면 이런 일이 안 생기지 않았을가?… 아니, 그 열정에 충돌은 불가피했을것이다. 그저 할빈으로 돌려보냈어야 하는건데…)

그이께서는 너무도 비통하고 분하시여 먼지가 날리는 길을 터벅터벅 걸어나가시며 비분을 삼키시였다.

그날밤 권일균이 어디로인가 자취를 감추었다. 어떻게 기미를 알아차리고 선참으로 추격한 홍병일이 놈이 쏜 총탄에 팔을 부상당하여 병원에 업혀들어왔다고 하였다. 이 보고를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곧 놈에 대한 추격을 조직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박두남의 도망과 권일균의 행방불명을 련관시켜 생각하시였다.

그놈들은 엠엘파와 화요파로서 지난날 적대관계에 있었으나 새 로선을 반대하기 위해 은밀히 손을 잡았을것이다. 반성위를 사살하기 전에 그들사이에 무슨 공모가 있은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박두남이 도망치자 권일균이 켕겨서 자취를 감춘것이다. 놈들이 뒤에서 벌린 종파책동을 생각할수록 장군님께서는 분격을 참으실수 없으시였다. 사람들은 선량한 마음으로 권일균이 새 로선을 받들고 일한다고 믿고싶어했으며 또 그렇게 믿었었다. 그러나 놈은 겉으로만 새 로선을 따르는척 하면서 동상이몽을 해오다가 끝내 간악한 배신의 길을 걷고만것인가. 왜놈들은 틀림없이 근거지형편을 잘 아는 박두남을 《토벌》의 앞장에 세우려고 할것이며 복수심에 독이 오른 놈은 광적으로 호응해나설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놈의 도주로 하여 생길수 있는 후과를 생각할 때 치가 떨리시였다.

그이께서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시였다.

이튿날 오전 훈춘방향의 먼 고지들에서부터 봉화들이 련이어 타올랐다. 대왕청과 소왕청유격구의 모든 망원초들이 그 신호를 보고 일시에 약속된 봉화를 올렸다. 높은 봉우리들에서 엇비스듬히 타래쳐오르는 시꺼먼 연기들은 하늘에 날리는 조기의 댕기처럼 엄숙한 비장감을 풍겼다. 고지들에 배치된 유격대원들도, 아동단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어린이들도, 밭에서 김을 매던 농민들도 모두 일어나 1분간 묵상하며 반혁명의 흉탄에 쓰러진 국제당의 사절을 추모하였다. 경건한 고요가 깃든 하늘밑에서 갑자기 요란한 말발굽소리가 울렸다. 십리평쪽으로 뻗은 마차길을 따라 장군님께서 말을 질풍같이 몰아가고계시였다. 길을 따라가며 길게 피여올라 하늘에서 타래치는 흙먼지구름… 산천을 뒤흔드는 말울음소리…

이윽고 말은 내버려진채로 길가의 풀을 뜯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길에서 좀 떨어져 서있는 느티나무로 천천히 걸어가시였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그루를 안고 훈춘쪽 하늘에서 피여오르는 검은 연기를 지켜보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주먹으로 나무그루를 치며 오열을 터뜨리시였다. 그 울림이 가지들에 퍼지며 잎사귀들이 와스스 설레였다. 잔가지들과 잎사귀들사이로 쏟아져내리는 수백수천가닥의 해살들로 땅바닥에 아롱다롱 그려진 눈부신 동그라미들이 기겁한듯 튀여오르며 불찌처럼 날아다녔다.

비분에 찬 음성이 터져올랐다.

《동지여, 고이 잠드시오!》

먼 하늘가에서 검은연기가 다스러졌을 때 장군님께서는 질풍같이 달려왔던 그 길을 따라 마촌쪽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가시였다. 비감에 젖은그이의 안광에서 번개불같은것이 번뜩이였다.

(이것은 반성위 개인에 대한 살해가 아니다! 이제 우리에 대한 반혁명의 총공세가 시작될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위협도, 어떤 난관도 뚫고 우리 로선을 끝까지 관철할것이다!… 반성위동지의 희생은 우리 가슴속에 아픈 추억으로 오래오래 남을것이다!)

군마는 머리를 수굿하고 뚜벅뚜벅 따라왔다.


×


이때 마반산뒤의 고개길에서는 장룡산중대장과 김창억, 마동호를 비롯한 여러명의 대원들이 맥을 놓고 앉아 다리쉼을 하고있었다. 그들은 지난밤 산속을 누비며 왕청쪽으로 나가 권일균의 종적을 찾아 밤새껏 돌아다니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길이다. 모두 지칠대로 지친데다가 분격이 치밀어올라 눈에 피발이 섰다. 그들은 땀을 어찌나 흘렸던지 얼굴이며 목에는 소금발이 내돋고 신발이며 바지가랭이는 흙투성이가 되였다. 말들이 없었다. 배신자를 저주하며 터져올랐던 증오만이 아직도 잦아들지 못하여 가슴이 후둑후둑 뛰였다.

바람이 선들거리는 나무그늘밑에 앉아있었지만 누구 하나 시원한줄을 몰랐다. 그들은 번열이 나는듯 목단추를 끌러놓기도 하고 모자로 부채질을 하기도 하였다.

장룡산중대장은 무슨 생각에 골똘하고있는지 새잎을 잘근잘근 씹으며 풀밭속의 한점을 쏘아보고있었다. 마동호는 방향을 잘못 잡고 추격하였기때문에 권가놈을 놓쳤다고 분해하는가 하면 그놈과 회계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하면서 씨근거렸다.

장룡산중대장옆에 앉아있는 창억이는 두무릎사이에 세워짚은 총을 으스러지게 틀어잡은채 불이 펄펄 이는 눈으로 땅바닥을 내려다보고있었다. 그놈과의 회계로 말하면 자기만큼 계산할것이 많은 사람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그놈의 좌경로선바람에 5. 30폭동때 두 형이 값없이 죽고 자기가 유격대에도 입대 못하고 수모를 당한 일이며 안해가 겪은 고생이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속을 태우던 일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졌다.

《그따위놈을 대단하게 여기고 마철까지 신겨온 일을 생각하면 이거야 정말…》 하고 창억은 혼자소리로 뇌까리며 분을 이기지 못해 씨근거렸다.

그러자 장룡산이 입귀에 물었던 새잎을 내뱉어버렸다.

《나야 동무네 정도겠소. 왕청유격대 중대장이라는게 혁명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다나니 쏘베트바람에 일이 잘못되는걸 뻔히 보면서도 어쩌지 못했다니까. 참 기막혀서… 사령관동지께서 여기로 오시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될번했소. 사령관동지께서 근거지에서 일을 벌리시는걸 하나하나 보구서야 점점 눈이 틔였다니까. 종파를 반대하고 로선을 잘 지켜나가자면 배워서 알아야 되네. 우리가 까막눈이니까 권가따위가 맑스행세를 하고 돌아쳤지. 더럽구 지독한 놈! 그놈을 잡아 목을 비틀어놓는건데…》

문득 아래쪽에서 녀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창억이는 그쪽을 돌아보았다.

고개길로 최형준이와 박현숙이 가지런히 걸어올라왔다. 최형준은 밤색양복저고리를 벗어 어깨에 걸치였고 흰저고리에 검정치마를 받쳐입은 박현숙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걸어오다가 이쪽을 빤히 쳐다보았다.

《저게 최형준강사가 아니야? 젠장, 기분이 좋은데? 저 사람은 권가놈밑에서 오래 일했으니까 뭣을 좀 알지 몰라.》

그들이 가까이로 오자 창억이 먼저 움쭉 일어섰다. 그런데 장룡산이 무엇을 느꼈는지 그의 팔을 잡아끌어 주저앉히고는 자기가 최형준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장룡산은 옆구리아래에 드리운 목갑총을 뒤로 밀어놓으며 그를 반겨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둘이서 어디로 이렇게 재미나게 갔다오오?》

박현숙은 수집음에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여 최형준에게서 두어걸음 물러서고 최형준이 좀 당황해진 얼굴로 대답하였다.

《저- 쌍암촌에 가서 아동단연예대를 조직해주고 오는 길입니다.》

장룡산은 훈춘에서 국제당파견원을 사살한 박두남이 도망치자 권일균이 자취를 감추었는데 권가놈이 가면 어디로 갈수 있는지 짐작이 가는데가 없는가고 물었다.

최형준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자기들은 전혀 모르고 쌍암촌을 떠났는데 권가가 어디로 갔겠는지도 짐작이 되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홍병일동무는 모른답니까?》

《홍동무는 권가놈을 추격하다가 그놈 총에 부상당했소. 정신을 잃고 병원에 업혀갔소.》

《예?》

《좀 더 생각해봐주오.》

그리고 장룡산은 더 말없이 모두숨을 후- 내쉬고는 돌아서서 오솔길을 따라 걸어갔다. 대원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 자리에는 최형준이와 박현숙이만 남았다.

그들이 멀어지자 얼굴이 내내 해쓱해져 서있던 박현숙이 그 인상적인 눈을 크게 뜨고 최형준을 돌아보며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최동무, 왜 그렇게 어정쩡하게 말해요. 도움을 받자고 묻는건데 왜 그래요?》

《모르오, 정말 모르오. 모르는걸 어떻게 말하오.》

최형준은 변명조로 말했다.

《그래도 여기서는 동무가 권가놈밑에서 제일 오래동안 일했는데 전혀 짐작이 안돼요?》

《글쎄 어디로 갔을가.》

《동무는 립장이 철저하지 못한게 아니야요?》

박현숙은 홱 돌아서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였다.

최형준은 얼굴이 새까맣게 질려서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두손을 내흔들며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내 가슴에 못을 박지 마오. 그런게 아니요. 내 말을 좀 듣소. 최근시기 나는 그와 사이가 멀어졌댔소. 그가 리유없이 나를 미워하기때문에 서먹서먹하게 사이를 두고 지냈댔소. 그래서 그의 생활을 전혀 모르오. 정말이요. 동무야 날 잘 알지 않소!》

박현숙은 불만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그의 옆을 바람처럼 지나 유격대원들이 사라진쪽으로 달려갔다.

최형준은 망연자실한듯 우두커니 서서 멀어지는 그의 뒤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무가지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그의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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