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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의사는 분주했다. 소아과치료에서 이름이 높아 환자들이 그칠새없이 찾아오는데 그 환자들은 다 어린 아이들이였다. 어린 환자는 어디가 어떻게 언제부터 아픈지 전혀 말할수 없는 젖먹이거나 말은 해도 표현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이였고 또 병원에 오면 공포에 질려 울음부터 터치기때문에 소아과의사는 진찰을 하는데서 여간 애를 먹지 않는다.

한 어린 환자에 대한 진찰과 치료, 투약이 끝났다. 환자는 큰 방직공장을 경영하는 사장의 아들이였는데 어머니가 아이를 하녀의 손에 안겨가지고 승용차를 타고왔었다. 화려하게 차려입고 고급향수내를 풍기는 아이어머니는 의사에게 거듭 사례하며 병원회계원에게 많은 진찰비, 치료비, 약값을 물고도 사례금을 듬뿍 주었다. 의사는 병원마당에까지 나가 어린아이를 안고있는 하녀와 아이어머니를 바래워주었다.

진찰실로 들어와 간호부에게 환자가 더 있는가고 물었다. 그는 없다는 대답을 듣고싶었다. 종일 아이들의 병진찰과 치료에 시달릴대로 시달려 피곤하였으며 쉬고싶었다.

《환자가 한명 있습니다. 해도 기우는데 래일 오라고 할가요, 선생님?》

간호부가 동정하여 묻는 말이다.

《무슨 소릴 하오? 빨리 들어오도록 하오.》

간호부를 독촉하는 의사도 피곤하여 걸상에 앉아있던 자신을 탓하며 기운을 내여 일어섰다.

간호부의 안내를 받아 들어오는 어린 환자는 녀자애였는데 어머니가 안고있었으며 아버지도 따라왔다. 방금 치료받고 나간 환자와는 심한 대조를 이룬다. 아이도 부모들도 허름한 옷을 입고있었으며 볕에 타고 여윈 얼굴에서는 땀이 흘렀고 몸에서는 가난과 고역이 가져온 무슨 불쾌한 냄새가 풍겼다.

《아이를 여기 침대에 눕혀놓고 우선 땀부터 씻으시오.》

의사가 친절하게 권고하자 아이어머니는 딸애를 침대에 눕히고 죄송스러운 표정으로 연방 허리를 굽힐뿐 땀을 씻으려 하지 않았다. 아이아버지도 황송스러워할뿐이였다. 의사는 그들이 손수건이 없어 그런다는것을 알고 자기가 쓰는 세면수건을 내주었다.

의사는 침대에 죽은듯이 누워있는 어린 환자에게 몸을 숙이고 푹 꺼져들어간 눈과 창백하고 초췌한 얼굴을 살폈다. 아이는 뼈만 남은것처럼 여위여 숨도 겨우 쉬고 눈정기도 풀려있었다.

간호부가 병력서를 작성했다. 주소, 이름, 나이, 아버지의 직업… 아이는 네살이고 아버지는 인력거군이였다. 그가 인력거에 아이와 아이어머니를 태워왔었다.

《선생님, 딸애가 병도 이상한 병에 걸렸습니다.》

아이어머니가 말했다.

《특별히 앓는데는 없고 입맛을 싹 잃었는데 통 먹지를 않습니다. 음식만 보면 토하는데 이제는 심해져서 피까지 토합니다.》

의사는 아이의 가느다란 손목을 쥐고 맥박을 가늠한 다음 웃옷을 밀어올리고 여윈 가슴에 청진기를 가져다댔다. 그러자 아이가 바들바들 떨며 울먹이였는데 울힘도 없는지 입만 삐죽거리였다.

《오, 일없다. 무서워말아.》 의사는 위생복주머니에서 딸랭이를 꺼내여 흔들었다. 《이걸 봐라, 딸랑딸랑… 멋있지? 이 딸랭이는 달나라에서 사는 토끼가 나한테 아이들을 잘 돌봐주라며 내려보내준거다. 어떻게 내려보냈는가구? 그거야 구름에 실려 내려보냈지.》

아이는 눈만 깜박이며 이야기를 듣느라 공포를 잊었다. 그러는 사이 의사는 청진을 끝냈다.

《아이를 병원에 처음 데려오는것 같지 않은데요?》

의사의 물음에 아이어머니가 대답했다. 몇군데 가보았는데 모두 머리를 저으며 고치지 못할 병으로 진단을 내렸다. 맥이 진하고 돈도 다 떨어져 포기했다가 락원정소아과병원 원장에게 마지막기대를 걸고 찾아왔다. 선생까지 머리를 흔들면 할수 없다는것이다.

《아이를 입원시킵시다. 애어머니도 같이 입원해야지요?》

의사가 결심을 말했다.

부모들의 얼굴에 순간 화색이 확 퍼지였다.

《선생님! 살릴수 있습니까?》

《노력해보겠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애어머니가 흐느끼였다. 《저희같이 가난한 집 아이를 차별없이 대해주시고 살려주시겠다고까지 하니 정말 어떻게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흰 사실 이 병원부터 찾아오려 했지만 관청고관들이나 부자들의 아이들이 치료받으러 다니는 유명한 병원이라니 치료비가 비쌀것이고 인력거군같은 막벌이군의 자식을 상대해주겠는지 알수 없어 주저했댔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죽게 된 자식이지만 한이라도 남기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했습니다. 체면없이 돈도 마련하지 못하고 맨손으로 왔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러나 맨손에 온 저희들이 어떻게 입원까지 바라겠습니까?》

의사는 묵묵히 듣고나서 말했다.

《우선 아이를 살려놓고 봅시다. 돈걱정은 말고 애어머니도 같이 입원해서 아이를 돌보도록 하십시오.》

이 각박하고 박정한 세상에 이런 의사도 있단 말인가? 아이부모들은 너무 감격하여 의사의 인정미 풍기는 너부죽한 얼굴을 넋잃고 바라볼뿐이였다.

의사는 아이를 진찰하고 검사하고 관찰해보았지만 몸에는 다른 이상소견이 없었다. 애어머니도 말했지만 단지 먹지 못해 쇠약해졌다. 이튿날 아침 의사는 간호부에게 돈을 주며 시장에 가서 사과, 배, 바나나 같은 과일들과 사탕, 과자, 떡, 사이다, 귤물 지어 얼음과자까지 사오게 했다. 어떤 원인으로 입맛을 잃었는지 알수 없으나 그래도 혹시 이중에서 먹고싶은것이 있지 않겠는가.

의사는 사과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사온것들을 내놓으며 《먹고싶으냐?》 하고 묻는데 아이는 매번 싫다고 했으며 어떤것을 보고는 게우기도 했다. 그래도 의사가 꾸준히 묻는데 아이는 점차 시끄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하기까지 했다. 의사는 기력이 지쳐 잔등에서 땀이 흘렀고 짜증이 났다.

(이 애는 정말 먹고싶은것이 없는가보다. 공연한 헛수고를 하는게 아닐가?)

의사는 포기하려고 했다. 아이가 싫어하는데 무엇때문에 계속하겠는가. 하지만 어린 생명을 위해 용기를 냈다.

《먹고싶으냐?》 하는 물음에 아이가 먼저 지쳐 이제는 대답도, 머리를 흔들지도 않았다. 의사는 희망을 거의 잃은 상태에서 얼음과자를 집어들었다.

《먹고싶으냐?》

이때 놀라운 일이 생겼다. 아이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의사의 손에서 얼음과자를 잡아 입으로 가져가는것이였다.

됐구나! 의사는 눈굽이 확 달아올랐다. 이 순간이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려오지 않았던가.

《애야, 용타! 용해, 어서 먹어라.》

만일 의사가 아이에게 먹을것을 내들며 먹고싶으냐고 물어보는 일을 시끄러워 중도에서 그만두었더라면 그것으로 끝장이 났을것이다. 친부모도 못해낸 일을 의사는 해냈다.

아이는 며칠간 계속 얼음과자만 먹더니 점차 다른 음식도 먹게 되였고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애어머니는 하루에도 몇번씩 의사를 만날적마다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퇴원하는 날 아이아버지가 돈을 얼마간 장만해가지고 왔다.

《약소하지만 받아주십시오.》

의사는 썩살이 박힌 인력거군의 거친 손을 밀며 말했다.

《아이한테 영양보충을 해주는데 쓰십시오.》 그는 회계원에게서 돈을 가져다가 인력거군의 손바닥우에 덧놓아주며 말했다.

《이것도 보태서 쓰십시오. 얼마 되지 않습니다.》

애어머니는 이마가 땅에 닿게 절을 했고 아이아버지는 돌덩이같은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였다.

의사는 퇴원하는 소녀와 그의 부모들을 앞마당에까지 나가 바래워주었다. 업혀들어왔던 아이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걸어서 나갔다. 의사는 그들이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대문밖으로 사라진 후에도 한동안 서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무정한 이 세상에서 돈많은 부자들은 병이 나도 치료비와 약값을 걱정하지 않지만 돈없는 빈곤한 사람들은 그 걱정에 시달리고 병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약 한첩 못 써보고 죽는다. 돈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개별적인 의사들이 일부 자선과 동정심에서 무료치료를 해줄수 있지만 인간사회의 절대다수를 이루고있는 그들에 대한 그러한 의료봉사를 근본적으로 해결할수 있는가? 의사는 가슴이 묵직해났다. 그것은 오로지 희망으로만 간직할수 있을것이다. 아이들의 병을 치료하는 한 소아과의사의 꿈에 지나지 않는것이다.


1

국경역을 떠나 평양으로 향하는 려객렬차를 타고있는 두 청년은 겉모양뿐아니라 성격도 매우 대조적이였다. 나이가 우인 청년은 중키에 가슴이 넓고 성격은 쾌활했으며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는데 웃을 때마다 그쯘한 하얀 이발들이 눈부시였다.

《이것 보게, 기차가 거침없이 달리네. 우리가 조국을 떠날 때만 해도 패망하여 쫓겨가면서 왜놈들이 파괴한 기관구들과 철길, 차굴, 정거장들을 한창 복구하는중이였고 기차들은 가며서며하면서 굼뜨게 달렸지.》 그는 사이다 한고뿌로 목을 추기고나서 말없이 듣기만 하는 동행자에게 계속하였다. 《자, 차창을 내다보게. 논에서 벼들이 누렇게 익어 가을바람에 설레이고있네. 좀 보라구.》

짝패인 나이가 아래로 보이는 청년은 거무스름한 철색의 얼굴을 돌려 차창밖으로 흘러지나는 농촌풍경을 내다보았다. 키가 큰 그는 어깨가 좀 구붓했고 좀처럼 말이 없었다. 얼굴표정은 뚝했다.

이 두 청년은 두해전 여름에 평양을 출발한 우리 나라의 첫 류학생들과 동행하여 외국에 실습을 갔다가 오는 전문가들로서 야금기사와 외과의사였다.

기나긴 씨비리횡단철도를 며칠간 지나오며 지쳐있던 그들인지라 두만강을 건너 우리의 려객렬차로 달리면서부터 생신한 기분에 떠있었는데 야금기사는 《조국이군! 내 나라야!》 하고 감동을 터뜨렸고 외과의사는 눈을 빛내이며 벙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였다. 외과의사도 벙어리가 아닌 이상 무슨 말인지 짧게나마 입밖에 내였지만 야금기사가 도맡아놓고 떠들어대는통에 차라리 침묵하고있는것이 낫겠다고 작정한것 같았다. 그러나 결코 그때뿐만은 아니였으니 조국에 나오는 그의 심정은 한마디로 말하여 무거웠다.

《조국의 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기차가 동해안을 따라 달리고있을 때 야금기사는 이렇게 환성을 올렸으며 공업지구를 지날 때는 《석철이, 보라구. 저 공장굴뚝에서 오르는 연기를 보란말이야. 숨죽었던 공장들이 돌아가고있네.》 하며 주먹으로 다른 손의 손바닥을 치는것이였다.

(그래, 기차가 정시로 달리고 공장굴뚝에서 연기가 뭉게뭉게 오르고있지.) 외과의사 김석철은 생각하고있었다. (정다운 내 조국이 일떠서고있어. 그런데 이상하지 않는가. 나는 왜 저 야금기사처럼 흥분되지 않을가.)

그는 트렁크와 나란히 당반우에 올려놓았던 천구럭을 내리여 고기통졸임을 터뜨리고 워드까를 꺼내여 고뿌에 술을 따랐다.

《친구, 마시자구.》

《마셔야지.》

술에 들어가서도 야금기사는 많이 마셨고 석철은 조금 마시였다. 야금기사는 석철이가 술을 절제해마신다고 혀를 찼다.

《의사들이란 참! 〈술을 많이 마시면 건강에 해롭다〉 이거겠지. 사람은 다 제 명에 살고죽고하는것이지 의사들 덕에 명이 연장되는건 아니야. 내가 한번은 씨비리에서 왔다는 87살난 로인을 만난적이 있는데 그는 술도 정신을 잃도록 마시고 담배를 어찌나 세게 피우는지 숨이 막혀 같이 앉아있을수가 없었네.》

석철은 빵에 빠다를 발라 먹기만 할뿐 대꾸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 동행자가 술에 취해 잠이 들어 그는 정신적여유를 얻을수 있었다. 그의 실습을 도와준 외과학박사 쇼린은 아시아의 작은 나라 조선의 의학을 침이나 놓고 부항이나 붙이는 정도로 알고있었으며 현대의학에서는 《황무지》라고 했다. 석철은 자존심이 상하고 격분했지만 보이라에 땔 석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입원실들이 춥고 전기가 자주 가군 하여 때로 초불을 켜놓고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사실과 페니실린을 구하기 힘들어 유명한 녀성활동가이고 《정로》 신문기자인 허정숙의 복막염을 수술하고도 항염증치료를 제대로 하지 못해 달포가 넘도록 완치할수 없었던 사실 등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참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래 이를 악물고 실습에 전력을 다했다. 그는 시간을 아껴가며 탐구하고 또 탐구하여 수술수기에서 높은 경지에 이르렀으며 쇼린박사가 그의 의술을 인정하게 되였다. 김석철은 어느덧 자기가 선진공업국이고 대국인 쏘련의 의학수준에 올라선것 같은 자부심을 느끼였다.

그는 세계적인 의학과학기술발전수준이라는 높은 안목을 가지고 귀국의 길에 올랐다. 그 수준에 도달하자면 아직 자신은 출발지점에 있으며 먼길을 가야 한다는것을 그는 알고있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의학수준이 세계를 향하여 돌진하려는 지향을 위한 도약대로 될수 있겠는지?…

로씨야의 농가를 련상시키는 정거장의 초라한 역사들과 농촌마을의 초가집들, 소달구지를 몰고가는 농민들, 굴뚝에서 연기는 나지만 보잘것 없는 공장들이 차창밖으로 흘러지나갔다. 발벗은 아이들이 먼지이는 구불구불한 달구지길에서 손을 흔들고있었다.

마침내 종착점인 평양역에 도착하였다. 려객렬차는 역홈에 서서히 들어섰다. 기차가 멎어서자 먼길을 려행하여온 손님들이 트렁크, 가방, 보짐, 배낭들을 들고 이고지고 우르르 내려 역사로 향했다.

《평양의 관문이군!》하며 야금기사는 역홈에 트렁크를 내려놓고 물결처럼 흘러가는 려객들의 머리너머로 단층건물인 역사를 바라보는것이였다.

그의 목소리에서 환희는 그리 느껴지지 않았다.

김석철의 눈에는 더 말할것 없고 그의 눈에도 평양역사가 너무 작고 소박하게 보였던것이다. 그들은 담배를 한대씩 태우고 여유있게 마지막으로 역사를 빠져나갔다. 역전광장에서 강선제강소로 가는 야금기사와 인사를 나누고 헤여졌다.

석철은 자기가 근무했던 평남도립병원이 가까이 있었으므로 걸어서 가기로 작정하고 광장을 꿰질렀다. 광장과 거기에 잇달아 대동강쪽으로 곧게 열린 큰길은 전차가 종을 땡땡- 울리며 달리고 승용차들과 화물차들이 오가며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인 짐군들이 손짐수레들을 땀을 철철 흘리면서 끌고가고있었다.

형형색색의 옷차림을 한 시민들이 끓고있는 거리 량켠에 양철집, 벽돌집, 기와집들이 촘촘하고 답답하게 잇달아있다. 대개가 단층집들이고 2~3층건물들이 이따금 눈에 뜨인다.

왼쪽으로 곧 평남도립병원이 나타났다. 그옆에 석철의 모교인 평양의학전문학교가 있는데 두 건물이 다 3층이며 의료일군양성과 환자치료에서는 북조선에서 첫손가락에 꼽는 거점들이다. 석철은 여기서도 땅우에 트렁크를 잠시 내려놓고 역홈에서 평양역사를 바라본것처럼 모교와 병원을 이윽히 바라보았다.

감회가 깊었다. 동시에 서글퍼졌다. 평양역사를 보며 느끼였던 그 감정이 되살아났다.

서도에서는 제일간다는 아담한 단층건물인 평양역사가 그리고 그가 지나온 거리와 평양에서뿐아니라 북조선에서 첫손가락에 꼽는다는 모교와 병원이 이곳에서 떠나갈 때는 몰랐는데 2년간 쏘련의 큰 도시들에 체류하면서 또 민주도이췰란드에 가보며 시야가 넓어진 지금의 시점에서 얼마나 자그마하고 소박하게 보이는가! 얼마나 초라한가.

김석철은 트렁크를 다시 들고 뚜벅뚜벅 걸어 병원마당을 지나고 환자들이 분주하게 드나드는 정문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밟으며 2층으로 올라가는데 마주 내려오던 흰 위생복을 입은 의사가 깜짝 놀라며 멈추어섰다.

《김선생 아니요?》

그가 부르짖는데 석철은 알릴듯말듯 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지금 귀국하는 길인가?》

석철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고 피곤한 어조로 물었다.

《원장실은 그전 그 방이요?》

《그 방이요.》

《지금은 누가 원장이요?》

《최응석박사요. 김일성종합대학 의학부 부학부장을 겸하고있지. 종합대학이 서자 이전 평의전은 그 의학부에 편입됐소. 승격한셈이지. 하지만 교사는 여전히 옛 의전교사를 그대로 쓰고있소.》

얼굴이 갸름하고 체소한 그 의사는 다사한 성미여서 묻지 않는것까지 설명을 했다. 그가 반갑기는 했으나 두해동안 몸집이 크고 살결이 희며 코가 길고 파란 눈이 우묵 들어갔으며 향수내 풍기고 건강이 넘쳐나는 유럽의사들속에 있다보니 조국에 와서 처음 맞다든 체소한 조선의사가 의사같지 않았고 낯선감이 들었다. 동료의사도 석철의 옷차림과 몸짓에서 이국냄새를 강하게 느꼈는지 어색해하는것 같았다.

석철은 그에게서 빨리 떨어지려고 손을 약간 쳐들며 《후에 천천히 이야기하기요.》하고는 층계를 서둘러 마저 올라갔다.

원장실에서 체격이 좋고 침착한 의학자가 석철을 맞이했다.

《김석철입니다. 방금 도착했습니다.》

《반갑소.》 최응석원장은 그의 손을 힘껏 잡아주고 걸상을 권했다.

《앉으시오. 김선생이 곧 귀국한다는 통보를 받고 기다리던중이요. 전보를 쳤더라면 역에 사람을 내보냈겠는데…》

《공연한 말씀입니다. 내가 무슨 큰 인물이라고 마중까지 나오겠습니까?》

《큰 인물은 아니라 해도 귀중한 인재요. 지금 제일 부족한것이 의사요. 의사도 의술이 높은 의사가 특히 귀하오. 나는 석철선생에 대해 이야기를 좀 들었소. 의학전문학교시절 실습을 할 때 벌써 수술솜씨를 보였고 높은 탐구열로 두각을 나타냈고 졸업후 우리 병원 외과에 와서도 이름을 냈다는데 선진국에 가서 실습을 하고왔겠다, 나이가 젊겠다, 정말 기대가 크오.》

석철은 눈길을 떨구고 묵묵히 들었다. 박사의 평가를 응당한것으로 받아들이였다. 석철은 최응석박사를 오늘 처음 만나보지만 그에 대해서는 실습을 떠나기 전에 벌써 이야기 들었다. 최응석박사는 평양출신인데 일본으로 건너가 도꾜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그 부속병원에서 일하다가 해방을 맞아 서울로 왔다. 그곳에서 얼마간 체류하다가 고향도시로 왔는데 평양에서는 그를 따뜻이 맞아주었으며 김일성장군님께서 친히 만나주시였다. 북과 남의 의학자들치고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망이 높았다. 석철은 자기도 장차 최응석같은 유명한 의학자로 될뿐아니라 나아가서 그를 릉가하는 의학자로 되여야 할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하고있었다. 쏘련에서 세계적으로 이름난 원사, 교수, 박사들을 직접 보기도 하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그들이 쓴 의서들을 읽기도 하며 얼마나 부러워했고 황홀해졌던가. 그들처럼 세계적인 의학자로는 못된다 해도 조선의 유명한 의학자로야 왜 못되겠는가. 최응석박사가 인재를 중시하는것은 옳다. 인재가 모든것을 해결한다고 했다. 박사의 평가를 받은 김석철은 자신에 대한 긍지감을 강하게 느끼였다.

최응석은 석철에게 선진국에 가서 배운점이라든가 느낀점, 우리 나라 의학발전과 관련한 의견 등 폭넓은 담화는 천천히 하고 어서 합숙으로 가서 목욕을 하고 려정의 피로를 풀라고 권고하고 래일의 행동방향을 알려주었다.

《래일 보건성에 가서 도착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아야 할거요, 보건상에게도 인사를 하고.》

《보건상은 리병남선생이지요? 쏘련을 떠나기 전에 평양에 통일적중앙정부가 서고 내각이 조직된 소식을 들었습니다.》

《리병남선생이 보건상이요. 석철선생이 알고있는지 모르겠지만 널리 알려진 소아과의사고 박사요.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나오고 서울에서 소아과개인병원을 운영하며 유명해졌는데 남조선에서의 5. 10단선을 반대하고 전조선적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 참가하여 대의원이 되였고 정부성원으로까지 발탁되였소. 보건상선생의 인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소. 래일 만나보면 알게 될거요.》

김석철이도 리병남박사에 대해 이미 말을 들어서 알고있었지만 구체적으로는 모르고있었다. 그는 래일 보건성에 가겠다고 대답한 후 트렁크를 열고 포장한 면도칼을 꺼내여 원장에게 기념으로 주었다.

《고맙소. 잘 쓰겠소.》

최응석박사는 석철에게 미소어린 눈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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