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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8 회


제 5 장

10

장군님께서는 방안에서 반성위의 이야기를 들으시다가 침침한감이 들어 밖으로 나오시였다.

하늘에는 붉은 노을이 비꼈다.

그이께서는 반성위와 함께 큰배나무골에서 흘러내리는 시원한 물에 발을 씻고나서 풀밭에 엇비스듬히 누우시였다.

저아래 굽어보이는 마을에서는 집집의 굴뚝에서 저녁연기가 그물그물 피여올랐다. 어디선가 풀벌레 우는 소리가 가락맞게 들려왔다.

바지가랭이를 장딴지우에까지 걷어올리고 그이곁에 앉아있는 반성위도 기분이 자못 상쾌해져 풀대를 잘근잘근 씹으며 풀벌레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사이 국제당파견원의 사업보장을 책임진 리재명이를 통하여 그의 활동정형과 생활조건을 일상적으로 료해하시고 아낌없는 도움을 주시였다.

반성위는 처음에는 이전에 장군님께서 계시던 로인네 집 웃방에 들어있으면서 마촌의 구정부에 나가 리재명이와 장시간 담화하는가 하면 권일균이도 만나고 홍병일이도 찾았다.

그가 나타나지 않는 곳이란 거의 없었다. 그는 큰배나무골의 유격대병원과 출판소, 무기수리소에도 들려보는가 하면 밭머리에서 마종삼농민과 오래동안 마주앉아있기도 했다.

장군님께서는 그가 가까운데로 나갈 때에는 리재명이 안내하도록 하시고 황갈촌이나 십리평같은 곳으로 나갈 때에는 신변호위를 위하여 자신의 전령병 리성림을 붙여보내시였다.

성림은 그럴 때면 언제나 얼굴이 찌뿌둥해졌다.

성림은 좀처럼 웃는 일이 없고 근엄한 얼굴에 늘 심중한 빛을 띠고다니는 국제당파견원의 성미를 가늠할수 없었다. 그는 엄하고 까다로운 사람인것 같으면서도 아무데나 앉아 사람들과 이야기하는품이나 변변치 못한 식사도 나무라는 기색이 없이 드는것을 보면 소탈한데도 있는 사람인것 같았다. 그와 먼길을 같이 다니기란 과연 재미없는 일이였다. 이때까지 지내보면 누구나 단둘이 길에 나서면 길동무와 지나간 생활이야기랑 하면서 흥겹게 먼길을 걸어가는것이 상례인데 이 사람은 국제당에서 사업하고 견문도 넓어 할 이야기랑 많겠으나 거의 말이 없었다. 단지 쉰다든가 쉬다가 떠날 때에는 어김없이 성림의 의사를 묻는것이였다. 성림은 이 사람이 신변호위를 위하여 땀을 뻘뻘 흘리며 쫓아다니는 자기를 거의 무시하고있지 않는가싶어 속에 은근한 불만이 찼다. 성림은 그것이 자기에 대한 무시이라면 흘려버릴수도 있겠지만 근거지의 현실에 대한 그 어떤 감정이 비쳐진것이 아닌가 하여 마음을 더 쓰게 되였다.

전령병은 그를 따라 멀고 가까운 길을 수없이 걸어다니면서도 가파로운 고개길도 단숨에 넘는 국제당파견원이라는 이 사람의 눈에서 번쩍거리는 빛이 뜨거운것인지 찬것인지도 가늠할수 없었다.

그런데 근거지에는 누가 어떤 심보에서 꾸며낸것인지 국제당파견원이 유격근거지의 여러곳을 참관하는것을 그 무슨 《순시》로 묘사하는 헛소리들과 황당한 소문들이 파다하게 퍼졌다. 사람들은 수군수군 귀속말로 이야기하였다.

국제당파견원이 근거지의 현실을 돌아보고 매우 분격하였는데 이제는 그 감정을 돌려세울 가능성이 없다는것이였다. 리성림에게 이것이 사실이냐고 조용히 물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마다 성림은 분해서 그런 일이 없다고 잘라 말하였으나 제 혼자의 힘으로는 이런 소문을 도저히 막아낼수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봄빛이 짙어가는 근거지의 푸른 하늘밑에 험악하고 불길한 공기가 떠도는듯싶었다.

권일균이 언제인가 국제당파견원의 생명을 구원해준 은인이라는 말도 떠돌았다. 어느날 아침 권일균이 구정부앞에서 그를 만나 여러 사람들이 보는데서 자네 아침을 먹었나 하고 인사하는것을 본 사람들도 있다는것이다. 그런가 하면 홍병일의 《억울한 사연》을 다 듣고난 국제당파견원이 그를 로씨야식으로 포옹하며 국제당의 지지가 있으니 용기를 내라고 고무해주었다는것이다.

국제당에서 이랬다, 국제당에서 저랬다는 말가운데서 두드러지는것은 유격대의 국내진출에 관한 평가였다. 유격대가 왕재산에까지 나간것은 혁명의 국제적의무를 소홀히 하고 편협한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군사행동으로서 국제당의 분격을 샀다는것이였다. 이러한 소문의 파도속에서 분여받은 땅을 도로 떼울가봐 불안해하는 농민들이 한명 두명 생겨났다. 권일균은 각계각층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에없이 부드럽게 대하였으며 입가에 노상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다녔다.

홍병일이 전에없이 자위대원들에게 우스개소리까지 하게쯤 된것으로 보아 떠돌고있는 풍설이 사실인것 같다고 하면서 걱정에 잠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배포유하게 생각하는 축들도 많았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게 생각하는것이였다.

(전에야 종파쟁이들이 국제당을 먼저 업으려고 감자도장이랑 새겨가지고 뛰여갔지만 지금은 어떤가! 허, 국제당에서 우리를 찾아왔거던. 일이 이쯤 된걸 보면 우리가 세계혁명을 들썩하게 해놓은게 분명해.…)

리성림은 떠도는 소문이며 그에 따르는 착잡한 반영에 대하여 장군님께 죄다 보고하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국제당파견원이 불편해하는 점이 없도록 잘 돌봐주라고만 일러주시였다. 또한 그가 누구와 담화할 때면 절대로 참여하거나 옆에서 듣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고 하시였다.

그리하여 리성림은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처럼 얼굴이 시무룩해졌으나 자기 임무를 철저히 집행하여 길안내도 잘하고 그의 방에 찬물도 떠가고 젖은 신발도 말려주군 하였다.

어느날 산속 오솔길을 따라 마촌으로 돌아올 때였다. 땅에서 화끈화끈한 지열이 풍겨올랐다. 둘은 잔등이 땀에 척척히 젖었다. 양복저고리를 벗어 한팔에 건 국제당파견원은 성림에게 고향은 어디며 부모님들 생각은 나지 않는가, 배고프지는 않는가고 물었다.

성림이는 그만 속에서 불길같은것이 터져올랐으나 그의 위엄에 눌리워 아무 말도 못하고 외면해버렸다.

(당신은 어디까지… 도대체 어디까지 따져봐야 속이 시원하겠어요? 우리가 피땀을 뿌리며 근거지를 꾸려놓은 다음 이제와서 무얼 따진단 말입니까? 당신도 조선사람인가요? 조선사람의 량심이 있어요? 내가 배고프다면 어쩔텐가요?)

반성위는 어안이 벙벙해서 그를 돌아보다가 그의 어깨를 다정하게 만져주었다.

성림은 머리가 뗑해졌다.

그날 밤 반성위는 장군님을 찾아와서 그이의 가까이에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방도 넓으니 다른데서 기식할것 없이 함께 있자고 하시였다.

반성위는 한방에서 장군님과 함께 열흘나마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틈을 내시여 그와 마주앉아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시는 일이 자주 있었다.

반성위는 아침이면 그이와 함께 개울로 나갔는데 이전과는 달리 떠들썩하게 물을 푸푸 뿜으며 세면을 하였다. 그리고는 유격대병실로 달려가서 아침체조에 참가하였다.

그는 장군님께서 일이 바쁘신 낮이면 아동단학교에 나가 교수참관도 하고 유격대원들의 작탄던지기훈련이나 소년선봉대원들의 등산훈련에도 참가하고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돌아왔다. 그는 동심이라도 되살아오른듯 어처구니없이 천진하게 구는 일이 있는가 하면 때때로 장군님께 엉뚱한 질문을 들이대여 그이를 다소 당황케 만들었다.

이 상쾌한 저녁에도 그는 명상에 잠기신 장군님곁에 앉아있다가 무엇인가를 또 묻고싶은듯 벌겋게 상기된 얼굴에 어줍은 미소를 머금고 그이를 흘끔흘끔 돌아보았다.

그는 한동안 망설이던 끝에 문득 이런 말을 꺼냈다.

김일성동지는 녀성의 미덕중에서 어떤것이 제일 귀중하다고 생각합니까?》

장군님께서는 의아한 눈길로 그를 돌아보시다가 큰소리로 쾌활하게 웃으시였다.

《아니, 왜 갑자기 그런걸 물어볼 생각이 들었습니까?》

《저는 김일성동지의 혁명관에 대해서는 충분히 들었습니다.》

《아- 참, 우리는 만나자부터 오늘까지 내내 혁명에 대해서만 이야기했군요. 이렇게 풀밭에 척 누우면 서정적인 생각이랑 하고싶은 때가 간혹 있지요. 그러나 어디 그런 여유가 있습니까.…》

《제가 듣기에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김일성동지의 혁명활동을 헌신적으로 도와나선 녀성들도 있었다던데요?》

《그런 녀동무들이 있었습니다. 길림과 카륜… 할빈으로 가는 기차안에서도 녀성들의 도움을 받았지요. 정말 어려운 위기에서 나를 도와줬습니다. 나는 한평생 그들을 잊지 못할것입니다.… 나한테는 누이가 없었습니다. 우리 삼형제뿐이였으니까요. 아버지와 삼촌… 이렇게 남자들판인 가정에 녀성이라고는 어머님 한분뿐이였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하여 이 세상 모든 녀성들의 수고와 미덕에 대하여 알게 되였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의 혁명사업을 깊이 리해하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죽을 고생을 다하면서도 묵묵히 참아가시며 아버지의 혁명사업을 뒤받침해주시였습니다. 아버님이 광복의 뜻을 이루지 못하시고 비명에 돌아가실 때까지… 어려서부터 내 가슴에는 어머님의 그 헌신성이 깊이 새겨졌습니다.》

장군님의 음성은 갑자기 갈리시며 고요히 잦아드시였다.

그이께서는 잠시 이야기를 끊으시였다가 생각에 잠기신 조용한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잊혀지지 않는 어머님모습때문인지… 나한테는 헌신성… 헌신성이 녀성의 미덕중에서 가장 귀중한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녀성들이 혁명의 한쪽수레바퀴를 담당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물었다가 이런 진지한 대답을 들은 반성위는 다소 당황해진 얼굴로 자기 심중을 털어놓았다.

《저는 해외에 있으면서 여기 근거지생활에 대해 아주 편협하게 생각하고있었습니다. 전투와 류혈이 계속되는 간고한 나날이 흐르고있는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새로운 혁명적인 문화, 새로운 혁명적인 생활양식이 창조되고있습니다. 그리고 청춘남녀들의 사랑도 꽃피여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여기에서 창조되고있는 모든 새로운것들처럼 이 사랑도 새로운 륜리에 기초하고있을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랬습니까? 허허허…》

《저는 오늘 낮에 십리평마을에 들렸다가 거기서 여러쌍의 신혼부부들이 자기들이 분여받은 밭에 서서 결혼사진을 찍는것을 봤습니다. 결혼사진은 흔히 자기들이 살 집이나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하고 찍는게 상례인데 그들은 혁명이 자기들에게 준 밭에 서서 찍었습니다. 이것만 해도 새로운 식이 아닙니까.

그들의 사랑이 열매를 맺을 때까지는 동무들사이에 서로 의견도 나누고 조언도 주었을게고 그러느라면… 사랑이란 선택적인 감정인것만큼… 거기에 그 어떤 기준이 있었을게 아닙니까. 그게 무엇이였을가 하고 저는 오늘 내내 생각했습니다.》

《너무 까다롭게 생각한게 아닙니까?》

《제가요?》

《허허… 무슨 특별한 기준이 있겠습니까. 그저 마음들이 맞아서 서로 사랑하게 되고 결혼하게 됐겠지요.… 우리 동무들사이에 이따금 그런 문제를 놓고 심각한 론의들이 있는건 사실입니다. 나는 우리 한 동무가 그런 문제를 두고 자기 동무에게 조언을 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동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녀성의 용모도 중요하지만 마음씨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혁명가들인것만큼 호상 사상에 대한 열렬한 공감이 필요하다. 남자의 혁명사업을 깊이 리해하고 헌신적으로 도울수 있는가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다음에 용모도 보고 개성을 보라. 리상적이기는 남자의 개성을 깊이 알고 존중하면서도 그에 동화되지 않고 자기의 독자적인 개성을 영원히 간직하면서 새것을 부단히 창조해내는 정신력… 만약 이런 정신력의 녀성이 못되면 상대에게 없는것을 보태여주고 만들어야 한다. 사랑도 소비가 아니라 창조라는 립장에 서서 한떨기의 꽃을 가꾸어주는 심정으로 열정을 다 바쳐 가꾸어주면 어떤 녀성이나 아름답게 피여날것이다! 어떻습니까? 나는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성위는 눈에 물기를 번쩍거리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 견해에 나같은 목석도 다 취해버리는것 같습니다, 허허허.…》

하늘도 행복에 겨워 홍조를 띠는듯 연한 장미빛으로 물들여져갔다.


×


반성위는 보금이까지 만나고나서는 어디로 더 돌아다니거나 누구를 만나는 일도 없이 구정부에 나가앉아서 국제당 원동국에 가서 할 보고문초안을 썼다.

건망증이 심한 그는 인상들이 흐려지기 전에 보고 느끼고 체험한것들을 보고문에 생동하게 반영하려고 여기 현지의 불편한 조건에서 집필의 낮과 밤을 이어갔던것이다.

밤에는 등잔불심지를 자꾸 돋구어올려 코밑에 그을음이 까맣게 올랐다.

…나는 왕청에 이르러 농민들과 함께 밭갈이를 하는 김일성동지를 보게 되였다. 상봉은 극적이였다. 나는 처음에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첫상봉의 시각 그는 밭머리에서 나에게 반겨웃으며 흙이 묻은 손을 내밀었다. 이 하나의 사실은 심각한 사상의 암시이며 상징이기도 했다고 나는 지금 생각하게 된다.

김일성동지의 밭갈이솜씨는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대지에 깊이 박는 보습날우로 시커먼 흙발이 파도쳐오르며 잡초를 묻어버리고있었다.…

그는 전세계 프로레타리아트의 재부로 된 로씨야 10월사회주의혁명의 경험을 비판하고있는가?

아니다. 나는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로씨야혁명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이며 그 전취물로서 세계의 6분의 1을 차지하는 대륙에 세워진 쏘베트정권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자이다.

우리에게로 들어왔던 통보자료들과 무기명서한의 내용들은 이곳 근거지의 현실에 대한 엄중한 외곡이며 비방이며 중상이다.

나는 여기에 나와서 그 진상을 알게 되였다. 나는 여러 지방의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담화하였으며 내 눈으로 직접 놀라운 현실을 보았다.

김일성동지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남만진출을 마치고 어려운 투쟁로정을 거쳐 왕청근거지로 와서 쏘베트를 비판하였다. 쏘베트의 좌경적시책을 뒤엎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는 일부 동만유격근거지에 선 쏘베트정권과 그 좌경적시책을 비판한것이지 로씨야혁명과 그의 산아인 쏘베트를 비난한것은 아니다.

김일성동지는 이미 재작년 12월 중순에 있은 명월구회의에서 유격구의 창설과 거기에 세워질 혁명정권의 형태와 임무에 대하여 명철하게 밝혔다. 그는 조선혁명의 성격과 임무로부터 각계각층의 모든 반일력량을 하나의 반일전선에 집결할수 있는 정권의 형태를 취하여야 하며 그 정권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는 무기로 되여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쏘베트는 그 선거세칙에서부터 광범한 반일력량을 다 망라할수 있는 견인력을 상실한 전제조건을 가지고있었다. 실례로 쏘베트의 대표자 선출비률을 보면 로동자는 5명에 1명이고 농민은 30명에 1명이다. 이것은 너무나 현격한 차이이다. 쏘베트가 실시한 제반시책들은 더욱 엄중한 후과들을 가져왔다.

쏘베트는 사회주의혁명의 구호를 내걸고 조선혁명의 성격과 농민들의 준비정도에는 관계없이 토지의 《공동소유》, 《공동경작》을 실시하려고 광분하였으며 실제상 농민들을 혁명의 대상으로 밀어놓고 그들과 투쟁한셈이다. 많은 농민들이 유격근거지를 떠났으며 그것이 사회에 여론화되여 혁명은 대중적지반을 잃을 위험에 처하였다.

김일성동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로씨야혁명의 경험에서 쏘베트를 직수입해들여 그것을 우격다짐으로 내리먹이려는것이 쏘련에 대한 지지가 아닙니다. 우리의 준엄한 혁명실천은 그것이 10월혁명의 귀중한 경험에 대한 란폭한 훼손이라는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김일성동지는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의 성격과 임무로부터 여기에서 대담하게 토지개혁을 단행하였다. 여기 근거지에서는 토지가 없거나 적은 전체 농민들이 땅을 분여받았다. 오늘 이 력사적사실은 세상에 널리 퍼져 전체 무산민중의 심장을 뒤흔들고있다.

그는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풀어줌으로써 수백만 근로민중을 한품에 걷어안게 되였다. 농민대중들의 혁명기세는 하늘을 찌르고있다.

김일성동지는 근로농민을 로동계급의 동맹자라고만 보지 않고 혁명의 믿음직한 주력군으로 보고있었다.

토지개혁에서는 친일지주들의 토지만 몰수하였기때문에 적지 않은 지주들까지도 혁명에 동정을 표시하며 반일전선을 지원할 기세를 보이고있다. 이것은 민족주의자들과 그들의 허약한 무장력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쳐 반일전선에서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의 련합이 형성될 하나의 국면을 열어놓은셈으로 된다.

지난날 조선농민들은 불행이 닥치면 하늘에 대고 제를 지내며 복을 내려줍시사 하고 손이 닳도록 빌었다. 그런데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김일성동지가 농민들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나누어주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하늘이 낸분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진심으로 흠모하고있다.…

여기에서 쏘베트라는 말은 어느사이엔가 저절로 사라졌다.

김일성동지는 인민혁명정부로선을 내놓았다. 이것은 조선의 전체 반일력량을 하나로 묶어세울수 있는 유일무이하게 정당한 정권수립로선이다. 나는 이에 대하여 김일성동지로부터 거듭 여러 시간에 걸쳐 설명을 들었다. 인민혁명정부로선, 이것은 새로운것이다. 콤뮨이 새로왔고 쏘베트가 새로왔던것처럼 인류의 국가발전사상에 새롭게 나타난 완전히 독창적인 정권형태이다. 이것은 확실히 위대한 발견이다. 나는 작고한 우리의 스승들이 세워놓은 언어생활의 전통에 따라 분식과 과장을 경계해왔건만 이 말에는 력점을 찍어야 하겠다. 내가 위대하다고 하는것은 그 대담한 독창성과 생활력에만 까닭이 있는것이 아니다. 전세계 식민지, 반식민지나라들의 혁명운동에 새 정권수립의 길을 시사해줄 그 영향력을 예감하고있기때문이며 새 형태의 국가건설의 기원을 열어놓은 그 의미를 감수하고있기때문이다.

동지들! 김일성동지는 인민혁명정부를 통하여 토지개혁의 성과를 공고히 하면서 정치, 경제문화분야에서 여러가지 민주주의적개혁을 실시할 결심이다.

일제와 예속자본가들의 기업운영은 엄격히 금지되고 수공업자, 량심적인 민족자본가들의 기업활동이 장려될것이다.

녀자들도 남자들과 평등한 권리를 향유하게 되며 근거지안의 전체 인민들이 글을 배우고 모든 학령아동들은 인민혁명정부의 보살핌속에서 무료로 공부하게 될것이다.

김일성동지가 계시는 마촌에도 무료교육을 실시하는 아동단학교가 있다. 나는 그 학교에 여러번 찾아가서 교수참관을 하였다.

이렇듯 두만강연안유격근거지에는 착취가 없고 압박이 없고 근로대중이 사회의 주인으로 된 지상천국이 꾸려지고있다.

근거지의 이 눈부신 현실은 혁명이 승리한 다음 건설될 새 조국의 본보기로 될것이다.

나는 무식으로부터(솔직히 말하면 그렇다!) 김일성동지께 유격근거지-해방지구를 확대해나가는 방법으로 조국해방을 달성하겠는가라고 물었는데 그는 이에 너그럽게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자면 하나의 전선을 펴야 하는데 그것은 벌써 유격전쟁의 방법이 아닙니다. 맑스나 엥겔스, 레닌의 시대에는 산업혁명의 결과 기술문명의 혜택으로 일정한 정도로 문명해지고 조직성이 강한 산업프로레타리아트의 대군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수령들의 로작들과 혁명적출판물들을 보급하는 방법으로도 대중들에게 혁명적영향을 주고 그들을 조직된 력량으로 결속할수 있는 풍부한 가능성을 가지고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러한 가능성이 매우 적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근대적산업프로레타리아트의 대군이 없습니다. 있어도 아주 적게 있습니다.

주민의 절대다수가 빈고농들입니다. 이들은 봉건통치배들과 일제의 우민화정책의 희생물들입니다. 우리 인민들은 문맹의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글도 제대로 못 봅니다. 그러나 2중3중의 억압과 착취를 체험하여 어느 나라 인민들보다도 혁명성이 강합니다.

때문에 우리 혁명이 목적하는 새 사회의 본보기를 이곳 근거지에 꾸려놓고 실물로 보여준다면 인민들은 우리 공산주의자들을 지지하여 따라나설것이며 막을수 없는 힘으로 혁명전에 떨쳐나설것입니다.

근거지는 이러한 역할도 수행하게 됩니다.》

김일성동지의 이 말을 념두에 둘 때 이 근거지야말로 그의 피땀으로 씌여진 《로작》이라는 생각이 가슴을 뜨겁게 친다.

김일성동지는 유격근거지에서 하고있는 이 거창한 사업들의 총괄적인 목적, 총체적인 지향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대하여 그것은 혁명의 뿌리를 인민대중속에 깊이 박아 혁명력량을 키우며 광범한 반일력량을 근거지두리에 묶어세우는데 있다고 매우 간명하게 말하였다. 그리고 그 의미를 통속적으로 알기쉽게 설명하여주었다. 그는 땅바닥에 나무와 그 뿌리를 그리고는 뿌리가 땅속에 굳건하게 깊이 내려져야 나무가 어떤 풍운에도 끄떡없이 억세게 자라오른다고 하였다. 이 인상적인 비유는 나로 하여금 문제의 본질을 선명하게 깨닫도록 하였다.

혁명은 유격근거지와 그 둘레에 꾸려지는 반유격구, 적통치구역의 지하조직들과 혁명활동거점들을 통하여 인민대중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다. 비록 근거지가 대륙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지 않고 유격대의 력량이 적에 비하여 적다 하더라도 인민대중속에 무궁한 종심만 형성하면 혁명력량은 소멸되지 않고 끊임없이 자라나 일제를 타승할수 있다.

김일성동지는 이것을 확신하고있다. 이 확신은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존재가 인간이며 인민대중의 힘을 믿고 그에 의거하여 투쟁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그의 철학적신념에서 우러나오는것인것 같다.

김일성동지가 친솔하는 유격부대의 두만강국경지대와 조선국내에로의 진출이 우리 국제당일군들속에 큰 충격을 준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여기에 와서 알아보니 조선국내의 왕재산에 나가 회의까지 하였다.)

그러나 일부 동지들은 이것을 혁명의 국제주의적의무를 소홀히 하는 민족주의적편향이 아닌가 해서 경솔하게 의문을 가지였으며 또 혹자는 국제당이 내놓은 1국1당제원칙에 대한 위반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시하였다.

이런 반향에 대하여 김일성동지는 어떠한 립장을 취하고있는가?

우선 김일성동지는 분격하고있다. 조선혁명의 주인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이다. 어느 누구도 조선사람을 대신하여 조선혁명을 해줄수 없다.

국제당이나 이웃나라 혁명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지금 강도 일본제국주의는 만주를 강점하고 중국본토에로 침략의 마수를 뻗치고있으며 몽고와 쏘련의 씨비리평원을 넘겨다보며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리고있다. 일제에 의하여 도발된 침략전쟁의 불길은 대륙으로 휩쓸어들어가고있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 유격대가 무장투쟁을 조선국내에로 확대하는것은 일제침략무력의 배후를 타격하는것으로써 놈들의 대륙침략에 치명적인 난관을 조성한다.

그렇게 되면 이웃나라들의 혁명에도 유리한 국면이 열릴것이다.

우리는 조선혁명과 함께 바로 이것을 생각하며 왕재산으로 나갔다. 이 엄연한 리치, 이 전략적가능성을 보지 못하는것은 정치적근시안이다. 민족배타주의, 좌경기회주의의 열광에 리성이 흐려진 사람들만이 이 모든것을 보지 못한다.

조선혁명은 세계혁명의 한 고리이다.

조선혁명을 잘하는것은 곧 세계혁명에 이바지하는것이다. 조선공산주의자들은 조선혁명을 통하여 세계혁명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조선사람이 조선혁명을 하는것은 국제당의 1국1당제원칙과는 관계없는 문제이다.

김일성동지는 이렇게 주장하고있다.

나는 그의 강철의 론리앞에서 탄복하였다. 나는 그의 사상에 완전히 공감하였다.

내가 여기로 오게 된 기본목적은 국제파시즘의 대두와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전략과 전술에 대한 김일성동지의 견해를 들어보자는데 있었다.

나의 이 목적은 달성되였다고 생각한다.

김일성동지는 나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는 파시즘의 정치리념자체에 그들의 패망의 숙명적인 불가피성이 배태되여있다고 보고있다.

그는 파시스트들의 극단적인 개인독재의식과 배타주의를 념두에 두고있다.

모든 나라 공산주의자들이 정견, 신앙, 민족별의 차이를 불문하고 각계각층 각파의 정치력량들과 인민대중을 파시즘을 반대하는 하나의 전선에 결속하기만 하면 국제파시즘을 능히 타승할수 있다는것이 김일성동지의 주장이다.

여기 유격근거지에서는 그것이 벌써 산 현실로 구체화되고있다. 여기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기 위한 투쟁, 인민혁명정부로선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 유격근거지주변의 광활한 지역에 반유격구를 꾸리기 위한 투쟁… 이 모든것이 다 각계각층의 광범한 반일력량들과 인민대중을 하나의 반일통일전선에 묶어세우는 과정이다. 여기에서는 중국민족주의군대인 구국군과도 련합전선을 결성하기 위하여 실질적인 대책을 취하고있다.

한마디로 말하여 유격근거지의 산 현실은 국제파시즘을 반대하는 전략과 전술문제에서도 생동한 모범을 보여주고있다. 아직 갓 피여난 싹에 지나지 않지만 이 모범은 파시즘을 반대하는 하나의 전선을 형성할데 대한 새로운 사상을 시사해주고있다. 이 사상은 국제파시즘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우리 공산주의자들의 국제적전략으로 되여야 한다고 나는 다시금 강조하고싶다.

이것은 하나의 위대한 발견이다.

때문에 나는 아래의 두가지 문제에 대하여 국제당 모스크바뷰로에 제기하고저 한다.

첫째, 통보교환사업을 개선강화하여 두만강연안유격근거지들에서의 혁명실천경험과 성과들을 널리 소개선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둘째, 국제당은 조선공산주의운동내에 남아있는 종파적경향에 대하여 경각성을 높이며 그 청산을 돕기 위하여 과단성있는 조치를 취할것이다. 급선무로 국제당의 모든 부서들과 개별적인사들은 종파적그루빠나 인물들과의 일체 공식적, 비공식적련계를 끊어버리며 오직 김일성동지가 령도하는 새로운 공산주의혁명력량에만 지지나 련대성, 적극적인 성원을 보낼것이다.

지금 내 가슴은 김일성동지에 대한 흠모심에 가득차있다.

나는 그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할수 있을것이다. 나는 그와 퍼그나 오랜 시일을 같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 실무적인 보고에서 그의 인품의 전모를 생생하게 재현할수는 없다.

나는 여기에서 다만 인상적으로 느끼고 생각했던 몇가지 점에 대하여서만 말하려고 한다.

그는 유격근거지의 실태에 대하여 중상적으로 써보낸 《통보자료》들과 무기명서한의 필자에 대하여 나에게 묻지 않았다. 범상한 인격의 소유자라면 그것이 누구인가고 집요하게 파고들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늘까지 단 한마디도 그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있다.

그는 처음에 근거지의 실태에 대하여 자신이 나서서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근거지를 개방하였다. 내가 제 눈으로 보고 체험하고 생각하고 스스로가 판단하도록 배려하여주었다. 그다음에 나와 마주앉았다. 그는 나의 모든 질문에 대하여 지어는 무엄하기 짝이 없는 물음에 대하여서조차 진지하고 솔직하게 대답하여주었다.

나는 여기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담화하는 과정에 그들중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의 사상을 파악하고 그에 공명하기에 앞서 그의 인격에 먼저 감화되여 다시말하면 그가 베푸는 사랑에 감동되여 그를 따르게 되였으며 그다음에 그의 사상으로 점차 무장되면서 혁명가로 자라났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근거지에서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부녀회원으로 일하는 한 녀성과 만나 김일성동지가 그와 그의 가정을 보살펴준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를 밤새도록 들었다. 그의 남편도, 시아버지도 모두 김일성동지의 사랑과 믿음에 의하여 새 인간으로 소생되여 혁명의 길에 나섰다. 그들이 어떤 풍운속에서나 은인인 김일성동지를 배반할수 있겠는가? 나는 없다고 확신하게 되였다. 김일성동지가 그처럼 짧은 기간에 수백만민중을 쟁취할수 있은 비결의 하나는 바로 인민대중에 대한 무궁무진한 사랑이다.

낡은 사회에서 제일 압박받고 천대받는 가정에서 태여났으며 가장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가정에서 성장하여 근로민중의 아픔과 괴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의 심혼에서 우러나오는 이 심오한 사랑은 그 깊이나 크기에서 어느 누구도 모방하거나 가식으로나마 흉내낼수조차 없는것이다. 그의 초인간적인 정력적활동의 원동력은 바로 무산민중에 대한 이 위대한 사랑이다!

왕청에는 지난날 좌경적과오를 범한 동지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제거되지 않고 제자리에서 일하고있다. 김일성동지는 그들이 혁명실천을 통하여 자신을 뉘우치며 과오를 씻기를 바라고있다. 몹쓸 사상을 털어버리고 사람을 구원하자는 심정도 가슴뜨겁게 하지만 더 놀라운것은 그의 큰 도량과 포옹력이다.

이 포옹력은 진리에 대한 확신 다시말하면 자기 사상의 견인력에 대한 확신, 자신의 위업이 필승불패한다는 자신심에서 오는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강조하는바이지만 그의 철학적신조는 확고부동하다. 이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것은 인간이며 제일 강력한 힘을 가지고있는것도 인간이기때문에 인민대중의 힘에 의거하여 혁명투쟁을 전개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것이다. 이 철학적신념은 그의 인격에 체현되여있다.

그는 인민대중의 령도자로서, 인민대중을 위한 헌신적복무와 희생을 최대의 개인적행복으로 받아들이고있다는것이 그의 모든 행동과 언어와 사색에서 강렬하게 느껴진다.

확실히 그에게 있어서는 령도라는 개념이 이끌고 다스리는것이 아니라 복무한다는, 헌신적으로 복무한다는 뜻으로 직접 통하여있다.

나는 그의 군사활동의 전로정을 연구고찰하였으며 그의 군사로작도 읽었다.

나는 카륜회의와 명월구회의에서 한 그의 연설들을 비롯한 많은 문건들을 연구하였으며 인민혁명정부결성과 토지개혁실시의 전과정, 기타 제반민주주의적개혁안들을 연구하였다.

나는 대중을 혁명화하기 위하여 그가 친히 창작한 수많은 문예작품들을 읽었으며 그 공연을 관람하는 행운을 지니였었다.

그는 탁월한 혁명가, 정치가, 군사가이며 천재적인 예술가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 인민대중에 대한 헌신적복무정신을 중추로 하여 탁월한 리성과 다감한 감성, 철저한 원칙성과 적에 대한 비타협성, 대해같은 포옹력, 강철의 의지와 비범한 예지… 이 모든 훌륭한 자질들이 결합되여 령도자로서의 그의 인격의 총체를 이루고있다.

그는 조선의 피어린 력사와 인민대중이 낸 유일무이한 걸출한 령도자이다.

동지들, 놀라지 말라!

만민이 흠모하며 따르는 김일성동지는 올해 22살의 청년장군이다.

청년장군!

청춘처럼, 봄처럼 아름답고 순결하고 생동하고 강의한 령도자!

그의 모습과 이 봄은 하나의 조화로 어울러져 나로 하여금 심각한 시정에 자꾸 잠겨들게 한다. 나에게는 근거지의 이 봄이 자연의 봄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조선혁명과 세계혁명에 새 기운을 활짝 꽃피운 혁명의 화창한 봄으로 느껴진다.

지금 흐려진 나의 눈앞에는 웬일인지 첫상봉때에 본 밭갈이를 하던 그의 모습, 그때의 모든 전경이 심각한 의미를 띤 상징적인 화폭으로 안겨온다. 그가 팔뚝에 힘을 주어 땅에 깊이 박은 보습… 그 번쩍이는 보습날우로 물결치며 뒤번져지던 검은 흙밭… 아, 김일성동지는 전인미답의 혁명의 황무지를 새 사상의 보습으로 갈아엎어나가는것이 아닌가!

반성위는 구정부사무실에서 며칠밤을 새워가면서 쓰는 일보다 자료들을 연구하고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여 하나하나의 의미와 결론을 도출하여내는데 더 많은 시간을 바쳤다.

보고가 거의 완성되여가던 어느날 밤 지쳐버린 그는 붓을 놓고 개천으로 나가 시원한 물에 정신이 번쩍 들도록 세면을 하고 잠시 소풍을 하였다. 돌아들어오던 길에 그는 사무실문에서 안으로부터 나오는 권일균이와 마주쳤다.

권일균은 좀 당황해하는듯 하다가 인차 여유있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스름속에서 번뜩이는 그의 눈에서는 찬기운이 풍겼다. 그는 리재명회장동무를 좀 만날 일이 있어 왔댔다고 묻지 않는 말을 하였다.

반성위가 방으로 들어오니 책상우의 원고가 이상스럽게 헝클어진것 같았다. 건망증이 심한 그는 자기가 그렇게 해놓고 나간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이 사건은 김일성동지께 보고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채 망각속에 묻혀버렸다. 그리하여 며칠후에는 비렬한 암살의 총성이 우뢰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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