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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5 회


제 5 장

7

꿀벌들이 앵- 앵 소리를 지르며 뙤창문밖에서 날아다녔다.

공기속에도 들크무레하고 껍진거리는 꿀물이 흘러든듯 산이며 나무며 내물이 모두 부옇게 흐려보였다.

근거지병원의 입원실안은 조용했다. 실개천이 반사하는 해빛이 뙤창으로 흘러들어 천장에 현란한 무늬를 그리며 어른거렸다.

뙤창밑 대수 거두어놓은 자리에 두사람이 마주앉아 이야기를 주고받고있었다.

장룡산이와 김창억이였다.

《정말 만났습니까. 그 녀자를 봤습니까?》 하고 창억은 다그쳐 물었다.

장룡산은 그가 자기 안해를 그 녀자라고 부르는 바람에 다소 아연해져서 시꺼먼 눈을 슴벅거렸다.

《봤네… 내 눈으로 봤네. 봤다뿐이겠나, 두만강가까지 내뒤에서 따라왔다니까.》

《정말입니까?》

《이거 참,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과연 꿈같은 일이군, 허-》

장룡산은 한숨같기도 하고 허거픈 웃음같기도 한 소리를 내며 창억의 무릎우에 놓인 자주색저고리에 눈길을 주었다.

입원실안은 조용했다. 환자들은 모두 소풍하러 밖으로 나갔다.

저 구석쪽에 산에서 굴러 팔을 상한 권일균이 번듯하게 누워서 한가롭게 코를 골며 자고있었다. 사이벽저쪽에서는 얼마전에 룡정에서 들어왔다는 안경쟁이의사가 기침을 쿨럭거리며 덜그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창억의 얼굴은 심상치 않았다. 장룡산은 요새 큰배나무골의 유격대병원으로 자주 찾아와서 창억의 문병을 하였는데 오늘은 그가 어디서 찾아내였는지 보금이 그의 머리밑에 괴여주었던것이 분명한 저고리를 내보이며 따지고들어 이런 난감한 처지에 빠진것이다.

장룡산은 보금이를 만났던 이야기를 그가 완쾌되여 나온 다음에 하려고 생각했었다.

《다… 죄다 이야기해주십시오!》 창억은 장룡산이 무엇을 감추려는것을 밝혀내려고 눈을 번쩍거리며 다우쳐물었다.

장룡산은 숨이 막힐 지경이였다.

《나두 뭐가 뭔지 모르겠다!》 하고 그는 벌컥 역증을 냈다. 그러자 창억은 좀 주눅이 들었다.

《내 말하지 않았어, 꼭 꿈같은 일이라구… 범을 쫓다가 놓친 포수군의 잠자리에나 깃드는 꿈같단 말이여.

모두 두만강기슭에 와서 배에 탔는데… 자네도 싣구… 허참, 모를 일이야. 보금이가 탄줄 알았는데 글쎄 어디론가 사라졌네. 물살에 배는 밀려나지… 총소리는 울려오지… 사공령감은 재촉을 하지… 별수 있나, 기다리다가 노를 젓기 시작했지. 허참, 녀자들속이란 조화먹었거던.… 솔직히 말하네만 나는 배가 안개에 묻힐 때까지 고물에 서서 목을 빼들고 찾았네.》

《제집으로 돌아갔겠지요. 지금에 와서야 제가 무슨 남편이구… 그리 귀하겠습니까. 다 잊어버렸을겝니다.… 그까짓것 나두 인젠 속이 편해지겠습니다.…》

《원, 사람이 옹졸해가지구서…》

장룡산은 눈을 부릅뜨고 그를 치떠보며 혀를 찼다.

《병원에 엎데있더니 별나게 됐군.… 누가 옷가지들을 다 찢어서 자네를 애지중지 싸주구 덮어주구 괴여줬는지, 누가 자네 가슴에 눈물을 소나기처럼 쏟았는지 알기나 알구 흰소린가, 엉?》

창억이는 머리를 싸쥐고 기여들어가는듯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 달콤한 말루 보태지는 말아주우.…》

《뭣이 어째?》 장룡산은 왈칵 어성을 높였다.

《지성이 그랬다면 왜 가버렸겠소?》

《그래서 답답하다는게야!》

장룡산은 저도 안타까와 벌떡 일어나 방안을 거닐며 허벅다리에서 데룽거리는 목갑총을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헝, 이건 꿈같은 일이야. 뭐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거던. 개판이야. 야, 창억아, 너무 속을 썩이지 말아. 네가 정 소원한다면 내 오늘 밤으루 온성으로 나가겠다. 젠장, 자루속에 넣어 둘러메오든지 가마를 빌어 태워오든지 결판을 내자. 사령관동지께 건의해보자꾸나!》

창억은 펄쩍 뛰여올랐다.

《중대장동무, 이러지 마십시오. 저때문에 또 무슨 변을 당하자구 이럽니까. 제가 이런 일로 속을 썩인다는걸 아시면 뭘로 여기겠습니까. 요전날 병원에 와서 온성에 나가 잘 싸웠다고 치하하실 때 정말 잔등에서 진땀이 흘렀습니다. 내 다시는 이런 시시한 일로 속을 썩이지 않을테니 싹 그만둬주십시오. 유격대원으로서… 말하는겝니다.》

장룡산은 두손을 허리에 올리고 몸을 뒤로 젖힐사 하며 실눈을 지어 그를 내려다보더니 벙글거리며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허- 과시 창억이로다! 내 님자가 이렇게 시원하게 나올줄 알았다니까. 허허허… 한데 여보게, 나두 소시적에 지내봤지만 이런 생각이란게 엉큼해놔서 안하자 맘을 먹는다구 나무판대기에 박힌 모다구처럼 쑥 뽑아지는게 아니야. 단단히 잡도리를 해서 아예 썩둑 베버려야지. 좋기는 애초에 들크무레한 생각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게거던!》

《중대장동무, 걱정마십시오!》

《됐다!》

장룡산은 주먹으로 공기를 내리치고는 그의 옆으로 와서 털썩 주저앉더니 들고온 보꾸레미를 풀어 음식들을 내놓았다. 그는 량수천자와 백초구, 라자구 어디를 돌아보나 왜군들이 득실거리고 사처에서 총포성이 울려오는데 이제 큰 싸움이 붙을게라고 하며 어서 나와서 같이 본때를 보이자고 하면서 유격대식당에서 보내온 절편떡을 창억에게 련거퍼 권하고 자기도 먹었다.

창억은 장룡산이 가버리자 그의 텁텁하고 덜퉁해보이면서도 진정이 밴 사랑에 가슴이 뻐근해져서 한동안 움직일줄 모르고 앉아있었다. 그가 곁에 있을 때에는 방안에 활기와 생기가 가득차는듯 했으나 지금에는 모든것이 허전하고 적막하게 느껴졌다.

그는 음식들을 보자기에 도로 싸서 머리맡에 밀어놓고는 자리에 누워버렸다. 꿀벌 두마리가 날아들어 앵- 앵- 하고 야릇한 소리로 울며 천장밑을 날아돌았다.

창억은 크게 뜬 눈을 까딱 움직이지 않고 천장의 한점을 응시했다.

그는 담가에 실려 유격대병원에 들어온 날 상처에서 붕대를 풀며 의사가 누구인가와 주고받는 말을 몽롱한 의식속에서 들었었다.

그것은 어떤 녀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기의 새옷을 다 찢어서 상처를 싸매준 녀자에 대하여 의사는 칭찬의 말을 했다. 그러나 창억은 캐여물을 힘조차 없었다. 그는 인차 의식이 몽롱해졌으나 구름바다가 흐르는 밤하늘에서 순간적으로 비치다가 사라진 별빛에 대한 인상처럼 그 이야기는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며칠후 지팽이에 의지하여 밖으로 나갔다가 병원앞에 높이 늘인 바줄에 깨끗이 빨아넌 붕대오리들이 바람을 안고 가볍게 날리는것을 보았다. 붕대오리들과 나란히 색색의 천쪼박지들이 바람에 날리고있었다. 창억은 거기로 다가갔다. 그것은 녀자의 저고리안이며 치마자락, 저고리고름들이였다. 창억은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부드럽고 매끈한 저고리고름을 만져보았다. 자기가 의식을 잃고있는 사이에 살뜰한 손길이 몸을 스쳐지나간것이 분명하다.

그 녀자는 누구일가? 창억이는 연분의 일깨움이였던지 그 녀자를 온몸으로 느끼고있었으나 차마 그렇게 생각할 렴치가 없는듯, 그러다가 아니면 절망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기가 더 무서운듯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도 부르지 못하였다. 그는 며칠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그러다가 오늘 장룡산이 오자 단도직입적으로 따져물었던것이다.

(어째서 돌아가버렸는가?)

창억이는 몇십, 몇백번 이 물음을 되풀이하며 자기 가슴을 짓이겼다. 난생처음 이런 무시와 배척을 당한다고 생각한 그는 훼손된 자존심때문에 가슴에서 뜨거운 피가 뚤렁뚤렁 떨어져내리는것 같았다.

그리고 보금이가 이제는 보고싶으면 오고 싫으면 물러가는 호락호락한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지 밖에 서있는 존재로 느껴지며 허망하기도 하고 분한 생각도 들었다.

그는 환자들이 다 잠든 깊은 밤중에도 끙끙 앓음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몸을 뒤채기기도 하고 벌떡 일어나앉아 눈에 불을 켜고 허공이며 문쪽을 바라보다가는 도로 쓰러지기도 했다. 지금에야 보금의 진가가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지고 못견디게 그리워지는것은 무슨 까닭일가?

전에없이 보금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히 떠올랐다. 그것은 이전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마음씨 곱고 보기좋게 수수하고 아름다운, 그래서 어디에 내세워도 부끄럽지 않을 녀성이였다.

무서운 가책이 엄습해들었다. 자기와 보금이사이에 있었던 지난날의 일들이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것은 어느날 밤 자기를 뒤쫓아온 보금이를 다른 녀자인 박현숙이 보는 앞에서 윽박질러 느티나무밑으로 끌고갔던 일이다. 왜 사람을 그렇게 업신여겼던가?… 눈물이 번들거리던 보금의 얼굴… 당신 일만 잘된다면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일없다고 눈물을 머금고 속삭이던 보금이… 물동이를 떨구고 마당복판에 쓰러졌던 그… 지난 생활의 갈피갈피에 피자욱처럼 찍힌 그 얼룩들은 그를 단죄하는 론거로 되여 눈앞에 언뜻거렸다.

(아, 무슨 정신에, 무슨 미친바람이 들어 그따위로 놀았던가? 내가 그처럼 가혹하고 그처럼 우직한 놈팽이였던가? 제 안해도 그렇게 몰라봤으니까 내가 천대받고 압박받는 무산민중의 심정이야 알면 얼마나 알았겠는가?)

창억이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보금의 소행이 섭섭하기도 하였다. 그가 짧게 생각하고 자기와의 깊은 인연을 제 혼자서, 제멋대로 앙갚음하듯이 끊어버린것이 아닌가싶으면서 은근한 분노가 가슴밑창에서 꿈틀거렸다. 그러나 이제는 그가 자기의 의지 밖에 있어 자기로서는 어쩔수 없는 존재라는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더 안타깝게 끓어번졌다.

창억은 어느 누구에게나 먼저 말을 건네는 일이 없었고 내내 울기오른 얼굴로 누워있었다. 끼니때마다 밥도 몇숟가락 들다가는 그만두었다.

어느날 밤 권일균이 초불을 들고 그의 자리로 주춤주춤 다가왔다. 그는 초대를 창억의 머리맡 어디엔가 붙여놓고 부상당한 팔을 아기다루듯이 조심스럽게 배앞에 옮겨놓으며 곁에 앉았다.

권일균은 묵묵히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시꺼멓게 꺼져들어간 권일균의 눈확언저리에 침통한 그늘이 비꼈고 얼굴전체가 어딘지 모르게 이그러진 인상이였다.

《너무 속을 썩이지 말라구. …》

권일균은 석쉼한 소리로 이렇게 속삭였다.

《나는 인간적으로 말하고싶네.… 장룡산동무가 온 날 우연히 잠을 깨게 되여 다 들었소. 남의 사생활비밀을 엿들었다구 나무람할수도 있겠지만… 비루하게 생각지는 말라구… 여기서는 내가 좌상이거던… 년장자는 그런것도 알아 조언도 줘야 하니까.》

창억은 대꾸없이 멍한 눈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자네가 이렇게 고민하니 나도 괴로와 잘수 없네.… 아, 우리가 다 지난날 시책을 잘못 썼던탓이네.… 너무 고심말라구. 크게 생각해야 되네. 혁명이 심각일로를 걷고있는 때에 혁명전사가 쬐쬐한 문제로 몸부림쳐서야 쓰겠나… 속이 정 풀리지 않으면 차라리… 여보게, 차라리 나를 때려주게, 내 뺨을 쳐주게.…》

창억은 외면하여 모로 돌아누웠다.

권일균은 한참 말없이 앉아있다가 자기 자리로 가서 차관에서 물을 따르는것 같더니 고뿌를 두손에 받쳐들고 다가왔다. 창억은 머리를 돌려 허리를 구부정하고 다가오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창억은 그가 동정을 보이며 지꿎게 달라붙는것이 역겨웠다.

《꿀물이네. 마시라구. 속이 후련해질거네.》

마시고싶지 않았다. 창억은 다시 외면하여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

권일균은 그의 등뒤에 말없이 앉아있더니 손을 팔우에 가볍게 올려놓았다.

《여보게 창억이, 흠… 체통만 컸지 졸장부라니까… 이제 아무리 고심한들 무슨 소용이겠나… 가버린 녀자가 돌아서겠나. 속담에 처도 돌아누우면 남이란 말이 있는데 녀자들속내는 몰라.… 혹 저쪽 물건너에 새 배우자가 생겼는네 알겠나.… 사람이란 그저 그래… 아예 단념하구 크게, 모질게 마음을 먹으라구. 툭툭 털구 일어나 보란듯이 싸워야 하네. 창억이야 젊겠다, 혁명군대원이겠다, 앞날에 녀성이 없을가? 여보게 창억이, 내 말을 듣나?》

권일균은 또다시 그의 팔을 건드렸다.

창억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벌떡 일어나앉았다.

《참견마시오!》

권일균을 쏘아보는 그의 눈에서는 원망과 저주의 빛이 번쩍거렸다.

권일균은 놀라서 몸을 뒤로 젖혔다.

《아-니, 이 사람이?…》

《시끄럽소. 가서 자란 말이요!》

옆에서 잠을 깬 환자들이 그에게 소리쳤다.

《창억이!》

《무슨 말본때요?…》

《정신 나갔나?》

그 목소리들을 듣자 권일균은 노여움이 북받쳐올라 엉거주춤 일어나 상한쪽 팔을 싸쥐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창억은 분기를 터뜨려 방자하게 소리쳤다.

《나는 모르오! 모른단 말이요! 대접을 받겠으면 똑똑하게 처신하란 말이요!》

《동무!》

권일균은 발을 탕 구르며 소리쳤다. 이런 위혁에도 그의 웨침은 동강이 나지 않았다.

《당신이 무슨 근거로 남을 헐뜯느냐 말이요! 남의 량심에 흙칠을 하느냐 말이요! 다른 배우자한테 간걸 당신이 봤소? 그런 녀자는 아무렇게나- 말이 나가는대로 줴쳐도… 좋은가 말이요?》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자리에 마구 엎어졌다.

이때 림성실이 뛰여들어왔다. 그는 하얗게 빤 내의꾸레미를 가슴에 안고있었다.

내의꾸레미를 얼른 내려놓은 림성실은 시원하게 고운 눈에 겁을 머금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둘러보았다.

《아니, 왜들 이래요? 아닌밤중에…》

권일균은 그의 물음에는 아랑곳없이 창억의 등뒤에 대고 욕설을 퍼부었다.

《괴롭고 분하다구 아무나 물구뜯는가? 내가 당초에… 동무를 동정해나선것부터가 잘못이였소. 얼굴을 들구 좀 보라구. 온 입원실이 다 잠을 깼소. 그리구 이랬거나저랬거나 가버린 안해인데… 그렇게 내놓구 두둔하는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소?》

잠자코 있던 창억이 베개에 얼굴을 묻은채로 조용히 말했다.

《내… 다 잘못했소. 가서 쉬시오!… 앞으로 참견마오. …참견만 마시오.… 당신만은…》

림성실은 얼굴이 해쓱해져서 권일균이곁에 다가섰다.

《아니, 무슨 일이세요?》

권일균은 숨을 씨근거리며 혼자소리로 뇌까렸다.

《수양이 덜됐소…》

《무슨 일인데요?》

권일균은 그를 흘깃 돌아보고는 비양조의 미소를 지었다.

《흠, 철학적인 문제요. 부녀회장동무, 참 잘 왔소. 동무가 어디 이 동무들 이야기를 듣고 판결을 내려보오.》

그리고 그는 자기의 구석자리로 무겁게 걸어갔다.

방안에는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어디선가 우뢰소리가 울려왔다. 방안공기가 떨렸다. 구석쪽 천장에서 흙모래가 우수수 떨어졌다.

얼마후 림성실은 밖으로 나왔다. 동남쪽하늘에서 마른번개가 치듯 시퍼런 화광이 펑끗거렸다. 큰배나무골을 흐르는 산골물은 여느때없이 소리를 솨-솨- 높였다.

림성실은 무거운 마음으로 오솔길을 따라 걸어내려왔다. 그는 오늘 부녀회일로 하루종일 앉을 사이 없이 뛰여다녔으나 아직도 할일을 채 못하였다. 요사이 김일성동지께서는 사령부에 계시지 않았다. 장군님께서 계시지 않는 사이에 부녀회원들은 그이께서 덮으실 여름이불과 요를 만들어놓자고 의논하고 이틀째 리재명회장네 집에 모여앉아 솜을 다듬고 바느질을 하였다.

그 이불과 요가 다 되였다면 장군님께서 오늘 밤에라도 돌아오시면 덮으실수 있도록 사령부에 올려와야 하였다.

림성실은 내리막길을 따라 종종걸음을 쳤다. 풀숲이 스칠 때마다 이슬에 다리정갱이가 척척히 젖어들었다.

그가 골짜기어귀에 거의 다 내려갔을 때 아래쪽에서 여러 사람들의 그림자가 웅성거리며 올라왔다. 모두 흥분된 걸음걸이들이다.

앞에서는 김일성동지께서 걸어오고계시였다. 그이께서는 요영구쪽에 가서 유격대와 구정부사업을 지도하시고 돌아오는 길이였다.

(어쩔가… 벌써 오시네.)

림성실은 길에서 물러서 풀덤불속에 들어섰다.

《성실동무가 아니요?》

앞을 지나가시던 장군님께서 인차 그를 알아보고 걸음을 멈추시였다.

《이슬에 옷이 다 젖겠소. 어서 나오시오.》

그러시고는 지휘관들을 돌아보며 쾌활하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우리 부녀회장동무한테 봉건이 제일 많이 들어차있지 않소? 이걸 보오, 삼십리밖에 물러섰소!》

장군님께서는 껄껄 웃으시였다. 지휘관들도 큰소리로 따라웃었다. 무엇인가 그들은 여기로 오기전에 론의된 문제때문에 그렇게 흥분되고 신명이 난것 같았다.

림성실은 길로 나섰다.

《어디로 갔다오오?》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물으시였다.

《병원에 갔댔습니다.》

림성실은 대답했다.

《아, 병원에!… 우리 동무들은 모두 어떻소? 창억동무랑…》

림성실은 여기에서 그만 창억의 사연을 쏟아놓고말았다. 권일균이와의 충돌에 대하여서는 말씀올리지 않았다.

장군님께서는 지휘관들에게 먼저 방에 들어가라고 이르시고는 그에게 주의를 돌리시였다.

《그래서 밥도 제대로 안 먹는단 말이요?》

《무엇이라고… 무슨 말로 위로해주었으면 좋겠는지 정말…》

그이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땅을 내려다보시였다.

《바쁘다나니 나도 요새 못 가봤지… 장룡산동무한테서 대충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러한 때에 그런 일에 마음을 쓴다고 나무람할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생활이란 그런게 아닌것 같소. 특히 그런 문제에서는…》

《장군님께서 찾아가주시면…》

《내가?… 그건 누구의 명령이나 지시로 헐하게 풀리는 문제가 아닌것 같소. 좀 속을 썩이게 둬두오!》

《?…》

《제 안해 귀중한줄 모르는 사람이 근로민중을 참되게 아끼고 사랑할수 있겠소? 지내보면 인격이 변변치 못한 사람이 진정한 혁명가로 된 경우는 드물었소.》

《저도 괴로와하는걸 보고서도 그냥 나왔어요.》

《괴로와하오?》

《예.…》

《음… 진정으로 괴로와하면 바로잡혀지오.》

《…》

《밥이야 좀 먹지 말라지!》

《그래도…》

《괜찮소. 둬두오.》

림성실은 장군님께서 지나가신 다음에도 그 자리에 한동안 못 박힌듯 서있었다. 소곳이 숙인 그의 얼굴은 달빛에 환해졌다.

그는 장군님께서 창억이를 두고 하신 말씀을 되새겨보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참된 인간성에 기초를 둔 사상과 의지만이 어떤 풍랑속에서도 변절과 동요를 모르고 만난을 이겨나갈수 있다고 일깨워주신듯싶었다. 평범한 대원인 창억이를 그런 요구성으로 키우시려는 심정, 온성에 나가시여서는 보금이까지 보살펴주신 그 은정이 가슴에 뜨겁게 젖어들었다.

림성실이 다 만든 여름이불과 요를 하불에 싸서 이고 사령부로 달려올라가니 지휘관들은 모두 돌아가고 방안에는 그이께서 전령병과 함께 계시였다. 방에 들어선 그는 스스로도 기쁘고 흥분되여 이불짐을 내려놓고 서둘러 하불을 풀었다.

빛갈이 연한 명주이불과 요를 펴놓으니 방안이 대뜸 환해졌다.

장군님께서는 저으기 어리둥절해져 그를 쳐다보시였다.

《이게 무슨 이불이요? 내가 덮으라는게요? 이런 솜과 천은 모두 어디서 났소?》

《토지를 분여받은 농민들이 한푼두푼 모아 도시의 상점에 줄을 놓아 사들여왔습니다. 토지를 분여받은 인민들의 감사의 정이 깃든건데 꼭 덮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이런 이불을 덮어도 되겠소? 이거야 새신랑이나 덮을게지… 하하하… 토지는 응당 농민들이 가져야 하는게고… 좌우간 참 고마운 일이요.》

장군님께서는 못내 기뻐하시며 환하게 웃으시였다.

림성실이도 행복에 겨워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여 이불모서리로 돌아가며 부풀어오른데를 손으로 꼭꼭 눌러도 주고 여기저기에 묻어있는 솜보풀을 뜯어내기도 하였다. 저고리앞섶에 꽂혀있는 바늘에서 길게 흘러내린 흰실이 그를 따라 끌려다녔다.

장군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이불거죽을 쓸어만져보시고 폭신한 안에 손을 넣어 여기저기를 쥐여도 보시였다.

《아, 참 좋구만. 이런 이불속에 누우면 십년은 내처 잘것 같소.… 참 이불이란걸 덮어본지도 오래오.…》

그이께서는 추억을 더듬으시는듯 실눈을 지으시였다.

《아주 어렸을 때 칠골외가집에 갔다가 이 비슷한 이불을 덮어본것 같소. 그다음에는 이불이 다 뭐요.… 길림감옥에서 나온 다음 할빈에 갔다가 백계로인의 호텔에서 묵은 일이 있는데 그때에… 그다음엔 없어… 없지, 아주 없소. 그야말로 풍찬로숙이였으니까. 허허허 …》

다시 이불깃을 쓰다듬으시던 그이의 손이 무엇에 걸리기라도 한듯 문득 멎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림성실을 돌아보시였다.

《창억동무가… 그 드센 친구가 그렇게 고민하는가?》

《예.… 보금이가 부상당한 자기를 보고도 따라오지 않고 돌아선것때문에 그러는것 같습니다. 》

《무시당하고 버림을 받은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한겐가? 부녀회장동무 생각엔 왜 돌아선것 같소?》

《글쎄요… 그 속내를 어떻게 알겠어요.》

《어쨌든 그럴만한 리유가 있었을게 아니요. 나도 장룡산동무한테서 그때 두만강가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들었는데… 배를 타려고 따라오다가 없어졌다더군. 만약에 온성에 나가 살면서 마음속으로 아주 인연을 끊었다면 그렇게 따라왔겠소? 장룡산동무랑 모두 오래간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를 했을뿐이지 괴로움을 줄만한 다른 소리를 한것도 없다오, 그럴 경황도 없었고…》

《그런데 왜 돌아섰을가요?》

《그 녀성의 모든 성품으로 미루어보아 자기가 떠나면 생길수 있는 다른 문제에 겁을 먹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오. 그게 어떤 문제겠는가? 례를 들면… 놈들은 처음에 그를 공작원으로 의심해서 불러다가 심문도 하고 별의별 수작질을 다 했댔소.… 그러니까 유격대가 놈들을 기습한 다음날 그가 간데온데없이 사라지면 틀림없이 공작원이라고 인정할게란 말이요. 그러면 친정부모도 전장원동무도 다 큰 화를 입을수 있지. 그런 걱정에 돌아선게 아닐가? 부녀회장동무 생각에는 어떻소?》

림성실은 그이의 추리에 감동되여 눈을 빛내이며 부르짖었다.

《참, 정말 보금이는 그 성격에 그럴수 있겠어요!》

《만약에 사실이 그렇다면 그 녀성은 얼마나 속이 참되고 저 창억동무는… 허허허… 사람이 아직 멀었소.》

《보금이를 데려오자요! 공작원동무들이 나갔다오는 걸음에 데려올수 있지 않아요?》

《나는 창억이가 더 괴로와하게 둬두자는 생각이요.

부녀회장동무가 래일 내가 그러더라는 말은 말고 창억이를 만나 좀 따끔하게 얘기해주시오.… 우리 동무들속에는 녀성이나 애정문제를 혁명과 갈라놓고 보면서 좀 별나게 노는 동무들이 있소.》

림성실은 그이께서 김중권이와 자기를 념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닌가싶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얼굴을 흘깃 여겨보시는듯 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부녀회장동무가 우선 그런 문제를 다 알고 바로잡아야 할것 같소.》

림성실은 홍조가 발갛게 타오른 얼굴을 소곳이 숙이며 겨우 대답하였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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