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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4 회


생 명 지 표

한 은 희

4

이밤도 못 견디게 그리운 당중앙뜨락으로 달리는 마음안고 기세충천하게 일손을 다그치는 군인건설자들.

그들과 함께 땀으로 온몸을 흠뻑 적시며 삼봉구살림집건설장에서 밤올 보낸 지훈은 아침일찍 출근길에 올랐다.

첫눈이 내린다.

읍거리가 삽시에 흰눈으로 단장된다.

소복이 내려앉는 흰눈을 떠이고서 즐비하게 늘어선 처마들.

그속에서 헤치고들 나와 제나름대로의 모습을 뽐내며 우중충하게 솟구친 굴뚝들.

암팡진 북쪽녀인들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말처럼 무덕무덕, 푹푹 기세차게 한입씩 쏟아져나와서는 무산땅의 돌풍에 온몸을 맡기고 각이한 모양으로 흩날리던 연기가 안주인들의 드바쁜 출근시간이 되자 굴뚝에서 맥없이 기여나와 지붕우를 슬슬 감돌기만 한다.

출근길에 오른 자전거행렬이 꼬리를 물고 지훈의 곁을 스치며 지나간다. 지훈은 뒤에서 들려오는 청높은 북쪽녀인들의 사투리에 귀를 강구었다.

《이 무지막지한 하늘도 미안함을 알아서 살림집건설이 거의다 끝날 때에야 첫눈을 내려보낸다이.》

《그렇지 않음, 하늘이 감심하지 않을수 없지비. 그래서 살림집외부공사가 끝나기를 착실히 기다렸다가 겨울할아베를 내려보내준거지.》

옳은 소리였다.

함북도에서도 제일 북부에 자리잡고있는 무산에는 해마다 10월 7일경부터는 눈으로 길이 막혀 오도가도 못하고 꼭 잡혀있군 했다.

특히 첫눈이 제일 무서웠다.

첫눈이 오면 차유령은 그야말로 귀신이나 다닐수 있는 장애물극복스키장으로 변했다.

그래서 타향에서 온 출장자들은 모두 10월초가 되면 일을 마무리하고 부랴부랴 떠나가군 했다. 그때 못 나간 사람들은 날씨가 풀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올해는 날씨도 화선용사들의 눈물겨운 투쟁에 감복하였는지 살림집건설이 완공된 11월이 되여 소담한 눈송이들을 축하의 꽃보라마냥 뿌려주었다.

지훈은 저도 모르게 품속에서 손전화기를 꺼내들었다.

기분이 좋아지니 안해하고 말 한마디라도 나누고싶었다. 손전화기의 전원을 켜니 화면에 올해 한살짜리 귀여운 아들애를 안고있는 안해의 웃는 모습이 나타났다. 신호를 보내니 안해의 탄성에 가까운 정겨운 목소리가 울려나온다.

《아이, 어떻게 된 일이예요? 오늘은 먼저 전화를 다 하시구…》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구만. 그저 불쑥 당신생각이 나더라니까.》

《음- 뚝쟁이! 난 막 보고싶어죽겠는데… 내가 하루하루 얼마나 당신을 기다리는줄 알아요? 그러면서두 일에 지장이 될가봐 참고참지요 뭐.》

《하, 우리 미옥동무가 인제야 철이 드는가. … 헌데 당신 지금 출근시간인데 바쁘지 않소?》

《아이참, 전선에 계시는이한테서 이런 안일한 소릴 듣다니, 우리 돌격대관리국은 출퇴근이 따로 없어요. 나도 어제 출근해서는 북부지구에 보낼 지원물자를 포장하느라구 현장에서 밤을 밝힌걸요.》

《그렇소?! 여보 아니, 돌격대 계획참모 박미옥동무, 전투적인사를 보냅니다!》

《쉬엿하시오! 미남자 부인과선생님, 호호… 힘드시지요?》

《힘들었댔소. 그런데 당신의 그 시들지 않는 목소리를 들으니 새힘이 솟구치누만.》

《참, 현희환자랑 보육기에 넣어 살려냈다는 아기랑 다 무고한가요?》

《그럼, 현희환자의 마지막수술은 래일 하게 되고 아기는 오늘래일 퇴원하게 되오.》

《그래요?! 야, 정말 수고하셨어요. 고마워요!》

《고맙다는건?》

《고맙지요 뭐. 당신은 우리 평양녀인들의 마음을 안고 일선에 선 병사가 아닌가요.》

《여보 미옥동무, 당신 거 분석이 멋들어지구만. 고맙소!》

《호호, 서로 고맙다는 인사만 하다가 해를 지우겠네.》

전화는 두절되였으나 인생의 추진기가 되여주고 조타가 되여 말없이 이끌어주는 안해의 목소리는 지훈의 마음속에 차분히 자리잡혔다.

그들부부는 어제날 청년운동사적관건설장의 야간지원돌격대원들이였다. 남몰래 충정의 구슬땀을 바치면서 서로 알게 되였고 사랑도 하게 되였다. 결혼사진도 방금 지붕을 얹은 건물을 배경으로 찍었다. 결혼후에도 그들은 어제날처럼 변함이 없이 지원물자도 마련하고 건설장들에 달려나가 애국의 더운 땀을 흘리였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그들의 소행을 보고받으시고 감사를 보내주시였으며 지훈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제9차대회 대표로 불러주시고 사랑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시였다. 아, 그때 대회장에 차넘치던 만세의 환호성!…

의무실에 들어선 지훈이 흥그러워진 마음으로 현희환자의 수술준비를 다그치고있는데 문이 빠끔히 열리더니 애기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살그미 들어와 무작정 지훈의 손을 잡아끌었다.

얼떠름해서 그가 이끄는대로 애기방에 가니 애기아버지와 할머니, 일심이가 울상이 되여있었다.

《선생님, 우리 애긴 아직 이름이 없습니다. 낳은지 닷새만에 앓기 시작했으니 언제 이름같은걸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애기아버지가 절절하게 사연을 이야기했다.

하긴 처음부터 애기이름을 놓고 웃지 못할 희극이 벌어졌었다. 병력서를 작성하려고 이름을 물으니 애기엄마가 《아직 이름도 없는 아인데 당장은 〈생명〉이라고 올려주십시오.》 했던것이다. 아이가 제발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이름 아닌 이름이 엄마의 입에서 튀여나온것 같았다.

그 애기엄마가 눈물이 그렁해서 말했다.

《선생님, 이 애야 평양에서 보내준 선생님덕에 살아났으니 우린 토론했습니다. 평양선생님한테서 이름을 받자구요. …》

지훈은 급히 그의 말을 제지시키며 할머니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할머니, 제가 언제부터 묻고싶었는데 이 애의 어머니를 작업반의 세포위원장이 구원했다지요?》

할머니가 눈굽을 훔치며 이야기했다.

《그렇수다. 큰물이 난 그날 밤 우리 사윈 뜨락똘을 가지구 비룔 실러가있었구 난 미역을 구하려구 친척집엘 가있었수다. 세포위원장이 사람들을 피신시키느라구 온 동네를 돌고돌다가 마감집인 우리 집까지 왔을 땐 물이 허리를 칠 때였수다. 그때까지 우리 이 앤 몸이 둔한데다 얼이 나가서 어찌할바를 모르고있었다질 않소. 그러는걸 끌구나오는 참인데 어디선가 물에 떠내려오던 아이 하나가 나무가지에 붙어 엉엉 울고있었다고 합데다. 나무에 올라 그 애를 안아내리느라구 시간을 허비했지요. 그러니 그 용한 세포위원장은 만삭이 된 우리 딸과 그 아이를 산기슭으로 올려밀고 자긴 맥이 진해서 끝내…》

지훈은 눈굽이 저려들었다.

지어주자, 이 애를 위해 생명을 바친 이름모를 그 농촌작업반 세포위원장의 마음까지 담아서 이름을 지어주자. 하늘같은 사랑을 안고 전선으로 파견되여온 평양의사의 자격으로 당당히 지어주자.

지훈은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모두의 마음에 드시겠는지, 제 생각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이 제도를 빛내이며 오래오래 살라고 〈장명〉이라고 했으면 하는데…》

짜락짜락 울리는 박수소리와 함께 애기를 부르는 눈물섞인 목소리가 방안을 꽉 채웠다.

《장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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