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날자별열람


제 45 회


제 7 장

4

정애경은 오후 첫시간부터 친정집에서 한시간동안이나 피아노훈련을 하였다.

그것은 훈련이라기보다 여러해동안 두절되였던 음악과의 교감이였고 퇴화되여가던 기교의 재생이였다. 현악기도 그렇지만 건반악기도 오래동안 다루지 않으면 손이 굳어지고 그 기교도 물거품이 되고만다.

10분동안 운지훈련을 미친듯이 해대다가 머리속에 얼핏얼핏 떠오르는 선률들을 아무렇게나 두서없이 건반에 담았다. 그러자 뇌수가 명민하게 움직이고 어떤 막연한 열정과 흥분으로 심장이 달아올랐다.

《한주일쯤 더 훈련하면 고중시절의 수준을 회복할수 있겠구나.》

아래방에서 바느질을 하던 로춘영이 웃방에 대고 하는 말이였다. 의학을 전공한 50고개를 바라보는 어머니였지만 음악에 대한 감수성이 여간 예민하지 않았다. 그는 요새 경림진료소에 들어갈 입직수속을 하고있었다.

어머니가 차려주는 빵과 단물로 간신히 점심을 굼땐 정애경은 오후 3시경에 친정을 나섰다. 대동문식료상점에 들려 생닭알 한구럭과 참기름 2병을 사가지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광장을 하나 사이에 두고 시집과 친정집이 대칭으로 나란히 자리잡고있으니 얼마나 편리한지 몰랐다. 정애경은 시집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친정에서 풀었고 친정에서 얻은 안정을 힘으로 바꾸어 시집살이의 어려운 고초를 이겨나갔다. 금애는 두집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사랑이란 사랑은 다 받았다.

정애경의 성취감은 절정에 달하였다. 그는 세상에서 자기보다 더 행복한 녀성은 없다고 자부하였다. 리상적인 남편과 평화로운 시집, 총명한 딸애, 수도중심부의 3칸짜리 주택, 아무때나 들락날락할수 있는 친정, 인정많은 이웃들… 행복에 도취된 정애경은 날이 언제 저물고 밤이 언제 가는지도 몰랐다. 영천서 신고다니던 신보다 뒤축이 2센치메터나 더 높은 가죽구두를 신고 딸가닥딸가닥하는 귀맛좋은 발자국소리를 내면서 김일성광장을 지나갈 때면 온넋이 그대로 시가 되고 선률로 되여 하늘로 훨훨 날아오르는듯 한 기분이였다.

《에그, 발이 짧았구나. 방금 금주선생이 왔다갔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시어머니가 말했다. 정애경은 금주선생이라는 말에 신발도 벗지 못하고 다우쳐물었다.

《송금주요?》

《학생소년예술축전에 참가하려고 올라왔다더구나. 오후 4시부터 자기네 도가 공연하는데 꼭 와서 봐달라고 하더라.》

《삼천리려행단》이라는 노래이야기를 준비한다더니 도경연에서 당선된 모양이지. 금주, 나는 기초구뎅이만 파다가 왔는데 넌 어느새…

달콤하고 아늑한 가정생활에 파묻혀 4년세월을 보내는 사이에 그 음성과 모습마저도 희미해진 단짝친구 송금주! 천리밖으로 떨어져 때로는 구름속의 달처럼 두간두간 추억속에 얼굴을 내밀기도 하고 때로는 안개바다와 같은 망각속에 잠겨 그 허울조차 보이지 않던 그의 모습이 눈앞으로 선명하게 육박해왔다.

정애경이 무슨 열변을 토하든가 자기식의 철학을 풀 때면 늘 입가에 빈정거리는듯 한 웃음을 담고 한쪽눈귀를 좁히면서 상대를 치떠보군 하던 그의 독특한 눈매가 새삼스럽게 추억의 쪽문을 들치고 맨선참으로 들어선다. 그다음은 함박에 쌀을 일 때마다 팔목을 성칼지게 젖혀 손가락에 묻어다니는 낟알들을 털어버리군 하던 재치있는 동작과 뒤짐을 지고 은반의 굽인돌이를 돌 때의 그 유연하면서도 경쾌하고 멋스러운 모습이 눈앞으로 얼핏얼핏 스쳐지나갔다. 그의 몸에서 이따금씩 풍기던 《은방울》향수냄새까지도 이 문가에 실려온듯싶었다.

송금주와 헤여진지도 이제는 어언 4년, 얼마나 보고싶었던 벗인가.

이 시각을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날과 달을 참아왔던가.

《어머니, 내 금주선생을 만나고 올게요.》

시어머니에게 이 한마디를 남기기 바쁘게 정애경은 층계를 구르며 아빠트아래로 내려갔다. 공연시작시간이 4시라니 그때까지는 20분이 남은셈이다. 그는 친정집에 가서 2시간동안이나 머무르다가 온것을 후회하였다. 주먹을 부르쥐고 달음박질을 해도 시간전으로 공연장소에 가닿기는 벌써 코집이 글렀다. 그런데다가 날씨는 왜 이다지도 찌물쿠는지.

정애경은 종로동쪽으로 갈가, 서문동쪽으로 갈가 하고 잠간 망설이다가 1백화점옆을 돌아 학생소년궁전 극장으로 직행할수 있는 서문거리쪽으로 방향을 잡고 숨이 턱에 닿도록 뜀박질을 하였다.

궁전극장에서는 공연시간 30분전에 입장을 끝내는것이 관례로 되여있다. 일단 공연이 시작되면 나들문에 빗장을 지르고 근무성원도 철수시킨다. 그런즉 정애경의 이 때늦은 행차는 실패를 내다보면서도 요행수를 바라고 무작정 내짚는 줄타기나 다름없었다.

예상했던바 그대로 극장 앞마당은 텅 비여있었다. 손에 입장권을 들고있는 두명의 지각생들이 온통 유리문으로 련달린 극장 정면을 헛되이 오락가락하며 근무성원을 찾고있을뿐이였다. 주차장에는 옆구리에 무사고주행거리를 표시하는 오각별을 새긴 대형뻐스 4대가 서있었다. 극장홀에 근무성원인듯 한 사람의 모습이 얼씬거리자 지각생들은 맹렬하게 문을 두드려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은 신경질적으로 팔을 홱 저을뿐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였다.

정애경은 절망에 빠져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였다. 저 지각생들한테는 입장권이라는것이 있지만 자기한테는 그런것조차도 없다. 그런즉 근무성원더러 문을 열어달라고 애걸할만 한 건덕지도 없다. 무슨 타산을 가지고 헐레벌떡 뛰여왔을가. 아무런 타산도 요령도 없이 맹목적으로 뛰여왔다. 있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송금주의 심혈로 태여난 《삼천리려행단》 의 공연을 꼭 보아야 하겠다는 미친듯 한 열망뿐이였다.

시계는 어느새 오후 4시 5분을 가리키고있었다. 지금쯤은 소개자의 소개도 끝나고 첫 종목의 공연도 거지반 끝나갈것이다. 정애경은 속이 바질바질 끓었다. 《삼천리려행단》이 첫 종목이나 두번째 종목이라면 어쩌나 하는 불안과 조바심으로 혈관속에서 피가 마구 요동을 쳤다.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빨리 무슨 수를 찾아야겠는데… 정애경은 비상수단을 쓰기로 결심하였다. 이런 순간에는 계교가 필요하다.

정애경은 궁전 반대쪽정문에 가서 근무성원녀자에게 들이댔다.

《정수일작곡가의 딸입니다. 수고스러운대로 아버지를 좀 찾아주실수 없습니까?》

《정수일선생은 지금 극장 심사석에서 축전작품 심사사업에 참가하고계시는데요.》

근무성원녀자의 친절한 태도와 사근사근한 어조에 정애경은 힘을 얻었다. 그의 계교는 한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를 만나 전달해드릴 사연이 있는데 잠간 만나고 돌아서면 안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세요.》

무던하고 어질고 선량해보이는 근무성원녀자는 뙤창밖으로 반쯤 얼굴을 내밀고 연고가 깊은 구면들에게나 베풀수 있는 류다른 친절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결국은 아버지의 존재가 딸에게 궁전입장권을 해결해준셈이다. 아버지는 새 고장에 와서도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고맙습니다.》

정애경은 허리를 수평으로 굽혀 진심으로 되는 고마움을 표시한 다음 나들문으로 여유작작하게 걸어들어갔다. 그러나 근무성원녀자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부터는 체면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복도로 해서 극장쪽으로 막 달음박질하였다. 꿀벌로 알락달락하게 분장하고 화장까지 한 스무나문명되는 소녀무용수들이 화재현장을 찾아 고속으로 질주하는 소방차라도 보듯이 혼겁한 눈길로 정애경을 돌아보았다.

정애경은 그제서야 숨을 헐떡거리며 황황히 뛰여가는 분별을 잃은듯한 자기의 몰골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되고있다는것을 알아차리였다.

불과 5분도 못되는 사이에 그는 통로가 오불딱꼬불딱해서 무슨 미궁처럼 느껴지는 장대한 궁전건물을 아무런 장애도 없이 횡단하여 축전심사가 한창 벌어지는 극장복도에 들어섰다. 손바닥으로 뒤문을 밀고 방음용으로 친 새까만 천가림막을 들치고 극장안에 들어섰다. 장내에 차넘치는 후끈후끈한 열기가 땀으로 흠뻑 젖은 그의 몸에 사정없이 와닿았다. 객석에 빈자리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오늘은 관중석뒤에 서서 보는것만도 행운이다.

무대에서는 9~12살쯤 되는 소년소녀가 못가에서 낚시대로 잉어를 낚아내느라고 진땀을 흘리는 장면이 펼쳐지고있었다. 고기가 얼마나 큰놈인지 혼자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누이는 힘을 합쳐 낚시대를 잡아당긴다. 요동치던 잉어가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오누이는 그 충격으로 뒤로 벌렁 나가넘어진다.

동심이 물씬물씬 풍기는데다가 유모아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이였다.

가벼운 웃음소리가 잔잔한 파문처럼 장내에 번져갔다. 앞사람에게 제목이 무언가고 물으니 《고기잡이》라고 하였다. 정애경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동심에 끌려들었다. 그것은 생소한 세계가 아니였다. 2년전까지만 해도 그의 몸가까이에서 물결처럼 소용돌이치던 생활이였고 그 소용돌이우에서 풀이파리처럼 춤추며 재롱을 부리던 동심이였다. 전에는 이 생활, 이 동심에 물젖어 그것을 그저 범상하게만 여겨왔다. 그리고 후에는 그 모든것을 망각해버리였다.

정애경은 지금 자기가 여러해전에 졸업한 모교의 울타리밖에 서서 자기를 잘 알아보지도 못하는 후배들이 뛰노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며 애틋한 심회에 잠기는 사람처럼 서글프고 애잡짤한 기분으로 무대에 펼쳐지는 장면들을 망연히 바라보고있었다.

2인무 《고기잡이》가 끝나고 그뒤를 이어 두 종목을 더 하고났을 때 소개자는 마침내 노래이야기 《삼천리려행단》의 출연을 선포하였다.

영천과 아무런 인연도 없는 관중들은 그 소개를 듣고도 모두 덤덤히 앉아있었지만 정애경만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는 작은 고개마루들을 몇개 넘어 바다가 보이는 산정에라도 올라선듯 한 심정으로 무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심사석에서는 아버지가 무대를 지켜보고 관중석에서는 딸이 지켜본다. 아버지는 제자의 작품을 기다리고 딸은 벗의 작품을 기다린다.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기묘한 인연인가.

숨막히는듯 한 정적이 잉- 하고 고막에 와 부딪쳤다. 2~3초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이였으나 정애경에게는 마치 천년처럼 느껴졌다. 류창하고 랑랑한 손풍금소리가 갑자기 무대 한쪽구석에서부터 쏟아져나왔다.

남들보다 분산화음과 장식음을 특별히 많이 쓰는 장쾌하고 화려한 저 손풍금소리는 분명 송금주의 주법이다. 눈을 감고 들어도 인차 그 연주자를 알아낼수 있는 특색있는 손풍금소리에 정애경은 가슴이 후두두해졌다.

하늘색치마에 하얀 반소매를 입고 야영모를 쓰고 등산배낭을 멘 15명의 소녀들이 두줄로 서서 렬차가 달리는 률동을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칙칙폭폭 떠난다 폭폭칙칙 떠난다

통일렬차 달린다

천리마아저씨들 보내준 기관차

산을 넘고 강을 지나 번개처럼 달린다

신호기를 올렸다 기적을 울려라


(손풍금이 《빵-》 하고 기적소리를 낸다.)


어느 역을 떠나니? 평양역을 떠난다

천리마동상도 학생소년궁전도

려행가는 우리를 바래주누나


장내에는 가벼운 술렁거림이 일어났다. 렬차놀이형식을 빌어 어린이들의 통일열망을 노래하고저 한 그 참신한 시도에 대한 반응일가.

아니면 동심이 넘실거리는 률동과 풍만한 성량때문일가. 정애경의 가슴에서도 파도가 일었다.

트럼베트소리를 방불케 하는 옹골차면서도 랑랑한 발성, 아무런 치장이나 꾸밈도 없는 청청하고 씩씩하고 거침없는 저 목소리! 저것은 내가 영천에서 가꾸어 놓은 발성도 아니고 창법도 아니다. 발성도 창법도 송금주의것이다. 이 애경이가 영천땅을 떠난 후 그가 고군독전하면서 창조해놓은 열매이다. 저 재치있는 률동도 그가 만들어낸것이다.

첫시작부터 심장을 틀어잡는 작품, 내가 교단을 떠난 후 가정이라는 울타리속에 틀고앉아 그것을 견고한 성곽으로 구축하고있는 사이 송금주는 얼마나 멋들어진 일을 해놓았는가.

꼬마려행가들을 태운 통일렬차는 군사분계선패말이 있던 곳을 지나고 서울을 지나 호남벌에 들어선다. 《아저씨, 금년농사가 잘됐나요?》하는 려행단원의 물음에 호남벌농민이 《어, 잘되구말구. 올해도 풍년이란다.》하고 대답한다. 어린 려행가들이 아기자기한 률동을 펼치면서 무대를 돌아간다.


강마다 제방쌓고 제방마다 잔디입혀

억년가물 억년장마 모르는 호남벌에

우릉우릉 뜨락또르 스리슬슬 밭을 간다

살초살충 좋은 농약 밭마다 뿌려간다


통일후의 호남벌을 형상한 저 춤과 노래는 송금주의 꿈이다. 얼마나 많은 꿈을 꾸었으면 호남벌에 찾아오고야말 미래까지 그려놓았을가. 남녘동포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열화같은 동포애가 송금주의 심장과 뇌수에도 흘러들어 무지개처럼 찬연한 통일풍경을 펼치고있다. 꼬마들을 태운 통일렬차가 앞으로 달리면 달리수록 정애경은 자기라는 존재가 송금주의 곁에서 아득히 멀어지는것 같은 거리감을 느끼였다.

술렁거리던 장내엔 숨소리조차 없다. 모두가 어린 소녀들이 펼치는 꿈같은 통일풍경에 심취되여 무대만 지켜보고있었다. 헛눈질을 하는 사람도 없었고 잡담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삼천리려행단》이라는 자그마한 존재가 그들의 혼백을 깡그리 앗아간것 같았다. 통일렬차가 마침내 남해가에 와닿는다.

려행단원들은 입에 손나팔을 오그려붙이고 어로공들과 말을 주고받는다. 어로공은 오늘도 만선은 문제없다고 뽐낸다. 바다의 랑만을 담은 건드러진 선률이 정애경의 넋을 앗아간다.


어여차 올려라 지여차 실어라

어여차 올려라 스리슬쩍 실어라

맛좋은 생선들 왁실왁실 뛰논다

깊은 바다 온갖 보물 그물속에 들었다

지리산 두메에도 어서야 보내자 어서야 보내자

백두림산마을에도 많이야 보내자 많이야 보내자


어려운 일 힘든 일 기계로 해내는

어려운 일 힘든 일 기계로 해내는

보람찬 바다일 신바람 난다네

어여차 지여차 어여차 지여차

어여차 차차 지여차

어여차 지여차 어여차 지여차

어여차 차차 지여차

신바람 난다네


가사와 선률이 어찌나 재미나고 건들건들한지 정애경은 저도 모르게 어깨바람이 났다. 저 모든 곡들을 송금주자신이 지었다고 하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저 가사와 선률들은 그의 심장에서 분출된 용암이고 화염이라고 말할수 있다. 정애경은 지금 송금주의 심장에서 길길이 솟구치는 애국의 불길을 보고있었다.

려행단원들은 조국의 통일을 위해 한몸 다 바칠 굳은 결의를 다지며 격조높이 노래를 불렀다.


아름다운 남해가 우리를 기다린다

부산 가자 마산 가자 남해끝까지 타고가자

분계선을 마스고 통일의 문 열어라

온 세상에 길이 빛날 부강조국 세우자


장내에서는 우박알갱이들이 양철지붕을 두드려대는것 같은 우렁찬 박수갈채가 오래동안 계속되였다. 2층의 심사석에서도 관례에 없는 박수소리가 일었다. 공연은 문자그대로 대절찬, 대성공이였다.

금주가 4년사이에 정말 큰일을 해놓았구나. 그가 저렇게 만사람의 감탄을 자아내는 매혹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이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였던가. 교단을 떠나 남편의 그늘밑에서 공밥을 먹었다.

송금주가 남행렬차를 타고 통일된 조국의 산야를 달리고있을 때 나는 피아노앞에서 칼피스로 목을 추기며 《강아지의 왈쯔》를 탔다. 자기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녀자라고 자처하며 저 영천의 금주도 평양각시로 만들어야겠는데 하는 주제넘은 생각을 하였다.

내가 이런 소시민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으로 전락되였다는걸 알면 송금주는 얼마나 실망할가. 그는 내가 건설한 개인주의라는 천당에 침을 뱉고 돌아설지도 모른다.

정애경은 《삼천리려행단》이 일으킨 신선한 충격에 몸을 움츠러뜨리며 무대쪽의 조명이 덜 미치는 어둑시근한 구석쪽으로 자리를 옮기였다. 송금주가 거인이라면 나는 소인이다. 그가 참인간이라면 나는 속물이다.

종목들이 몇개 더 무대에 올랐지만 정애경의 눈에는 그 모든것이 아무런 색채도 없는 그림처럼 얼핏얼핏 지나갈뿐이였다. 그는 공연이 막을 내리기 전에 분장실에 가서 송금주를 만나야 한다는것도 잊고 진펄에 빠진듯이 끝없는 자감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공연마감을 알리는 소개자의 소개를 듣고서야 황황히 홀로 뛰여나갔다.

사태처럼 쏟아져나오는 관람객들의 물결에 밀려 오도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고있을 때 심사석에서 내려온 정수일이 그를 데리고 인총이 설핀 복도 저쪽으로 걸어갔다.

《금주를 만났니?》

《아직 못 만났어요.》

《금주가 정말 큰일을 해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켰니.》

《저도 충격이 얼마나 큰지 모르겠어요.》

《오늘 무대에 오른 단체들은 이 길로 황철에 가서 현장공연을 하고 제고장으로 돌아가게 되여있다. 어서 가서 금주를 만나거라.》

정애경은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궁전동쪽에 있는 분장실쪽으로 뛰여갔다. 그러나 어느 방에도 방금 무대에 올랐던 예술소조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창작과》라는 패쪽이 달린 방에서 나오던 사람이 그에게 주차장쪽에 가보라고 튕겨주었다. 주먹을 부르쥐고 오던 길을 되돌아 달리였다. 하지만 넉대의 대형뻐스는 어디로 갔는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주차장에는 배기가스냄새만 가볍게 떠들뿐이였다.

《삼천리려행단》이 퇴장하자마자 뒤따라가서 만나는건데 타산을 잘못하였다. 송금주와 만날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였다. 오늘은 첫시작부터 모든게 뒤죽박죽이다. 갑자기 허탈이 사정없이 달려들었다. 발이 어디에 놓이는지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걸음을 옮기다가 차도옆의 가로수밑에 무릎을 쭈그리고앉아 마음을 가다듬느라고 시간을 지체하였다.

나와 송금주사이에 어떻게 되여 이런 격차가 생기게 되였을가. 어떻게 되여 금주가 엮어온 인생의 악보는 명곡으로 되고 나의 악보는 평곡으로 되였을가. 아니, 평곡이라고 하기에는 과분하다. 나의 인생은 평작이 아니라 졸작이다.

수도생활은 나에게 극장과 공원, 유보도, 유원지, 네온등, 교향악을 주었다. 나는 그 모든것을 즐길줄만 알았지 그것을 우리모두에게 안겨준 당과 수령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내 육신과 넋을 깡그리 바쳐 일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조국이 천리마를 타고 대고조의 령봉들을 넘고있을 때 나는 남편과 시부모의 우산밑에서 이 시대가 선물하는 복을 누리기만 하였다. 아무런 부도 창조하지 못하고 남들이 가꾸어놓은 열매를 따먹기만 하였다. 나는 창조와는 인연이 없는 소비자, 기생아였다.

송금주, 너에게 경의를 보낸다. 지난날 그렇게도 다정하게 허물없이 부르던 네 이름이 왜 이렇게도 생소해지는지 알수 없구나. 너는 딴 행성에서 사는 사람처럼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나 내가 가지고있던 기성관념, 기존상식을 발칵 뒤집어놓았구나. 너처럼 살지 못한 내가 부끄럽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나도 새 출발을 하련다. 내 인생이 그리는 악보가 명곡이 되도록 그렇게 살겠다. 믿어다오. 정애경은 등뒤에서 나는 인적기를 느끼자 옆으로 무심히 고개를 돌리였다. 사무실로 돌아간줄 알았던 아버지가 손수건으로 안경알을 닦으며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근시경을 낀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게 되는 도드라진 눈동자에는 어떤 불꽃 비슷한것이 일고있었다. 그것은 커다란 심리적흥분상태에 빠졌거나 그 무엇에 도취되였을 때 아버지의 안광에서 곧잘 나타나군 하는 방전현상이였다.

《애경아! 금주를 만나보지 못한게 유감스럽구나. 만나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싶었는데…》

정수일은 아쉬운 표정으로 안경다리를 만지작거리였다.

《아버지야 그래도 어제 사무실에 찾아온 금주를 피끗 만나보았다고하지 않았나요.》

정애경의 목소리에서는 일종의 시샘비슷한것이 꿈틀거리였다.

《그래 만나기야 했지. 한 10분쯤 이야기를 나누었을가. 그러나 그건 공연전에 있은 일이고… 난 〈삼천리려행단〉에 비낀 금주의 성장을 두고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싶었다.》

《나도 사실 금주를 축복해주고싶었어요. 우린 둘다 한교정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고 한피아노앞에서 음악공부를 하지 않았나요. 교편도 한교단에서 잡았구요. 그런데 꼭같은 주로를 달려온 나와 금주의 인생이 지금…》

정애경은 말끝을 마무리지 못하고 입술을 옥물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 크고 표정이 풍부한 눈이 금시에 물기로 번들거리였다. 그것은 불같은 세월을 무위도식으로 헛되게 보내온데 대한 회오의 눈물이였다.

정수일은 그 눈물을 외면하며 석양이 짙어가는 먼 하늘가를 바라보았다.

《네가 땅에서 네발걸음을 한다면 금주는 하늘을 날고있는셈이지. 그것도 천리마를 타고 말이다. 그는 지금 길확실, 리신자, 진응원과 같은 천리마선구자들의 걸음에 보폭을 맞추며 시대의 첨단을 걸어가고있다. 금주가 성공할수 있은것은 이 땅에 열풍처럼 몰아치는 시대정신을 자기것으로 만들었기때문이다.》

정애경은 아버지의 말에서 울리는 진실을 기꺼이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옳아요. 난 출발부터가 순결치 못했어요. 첫출발에서 생긴 편차가 오늘은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빚어냈나요.》

《말이 났으니 말이지 난 오늘 심사석에 앉아있었지만 오히려 너와 함께 금주의 심사를 받는 심정이였다. 그의 작품에서 회오리치는 강한 시대정신은 나를 완전히 압도하였다.》

정수일은 딸의 어깨에 손을 얹고 힘이라도 싣듯이 그 어깨를 앞뒤로 가볍게 흔들었다.

《첫 출발부터가 순결치 못했다는 너의 말을 들으니 어쩐지 마음이 가벼워지는구나. 네가 자기를 잘 해부했다. 사람이 살면서 세상에 남기는 흔적을 너희들은 인생의 악보라고 비유했다는데 유감스럽지만 애경아, 네 인생은 악보밖에서 방황하는구나.》

정애경은 방황이라는 그 말에 가슴이 따끔했지만 오히려 방끗 웃으면서 머리를 쳐들었다.

《그렇지만 아버지, 나도 이제부터는 그 악보에 만사람이 박수를 보낼수 있는 그런 선률을 그리겠어요.》

《아무렴, 그래야지.》

정수일은 딸의 어깨를 다정스럽게 다독여주고나서 오던 때와는 달리 박력있는 걸음걸이로 뚜걱뚜걱 궁전쪽으로 사라졌다.

정애경은 온몸에서 솟구치는 번열을 느끼며 가로수밑을 떠나 7월의 무더위속을 기운차게 걸어갔다. 석양으로 물든 낯익은 거리의 풍경마저 이 저녁에는 새로운 눈으로 보인다.

집에 들어서니 아사직반소매를 입은 청년이 직각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선생님, 그새 안녕하셨습니까?》

거동도 말투도 무척 어른스럽고 례절스럽다.

정애경은 깜짝 놀랐다. 남편의 기사합평결과를 알고싶어 신문사앞에서 서성거리던 날 길을 사이에 두고 눈을 마주쳤다가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던 제자 강영호였다. 그날은 그의 매몰스런 처사를 두고 얼마나 분개하고 실망하였던가. 말 못하는 개도 주인을 보면 반갑다고 꼬리를 치는데 2년동안이나 자기네를 맡아키워준 스승을 보고 못 본척 하다니. 세상에 이런 인사불성이 어데 있을가.

그날의 그 사연은 정애경의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 배은망덕한 제자가 오늘 정애경을 찾아온것이다. 그날의 외면은 무엇을 의미하며 오늘의 이 급작스런 출현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애경은 이 괴이한 대조를 해석할 힘도 없었고 판단할 여유도 없었다.

그저 놀랍고 혼란스럽기만 했다.

《선생님, 그때는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선생님에게 인사를 드리자니 해놓은 일도 없고 또 중학교때 선생님의 애만 말리던게 목에 걸려서 그냥 지나가고말았습니다.》

정애경은 그 말에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던 얼음장이 순간에 녹아내리였다. 사실이 그렇다면 강영호를 질책할만 한 리유는 하나도 없다.

《그새 영호는 어데서 무슨 일을 했나요?》

《평양화력발전소 건설장에서 돌격대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렇게 됐군요. 영호는 정말 좋은 일을 했어요.》

《선생님을 만나려고 몇번이고 갑자르다가 오늘에야 결심을 내렸습니다. 래일은 영천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강영호는 가방속에서 자그마한 수지곽 하나를 꺼낸 다음 그것을 정애경의 앞으로 밀어놓았다. 그리고는 무슨 못할짓이라도 저지르는 사람처럼 얼굴을 붉히였다.

《선생님, 전 그동안 입당도 하고 중간총화에서 훈장도 받았습니다. 국기훈장 3급입니다.》

《대단하군요.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 선생은 아직 입당도 못했어요. 제자들이 벌써 당원이 되는데 난 아직…》

정애경은 말끝을 얼버무리며 수지곽뚜껑을 열었다. 국기훈장 3급의 은빛광채에 방안이 환해지고 눈이 시그러워지는것 같았다. 스무살을 갓 넘긴 내 제자가 벌써 이런 영광을 누리게 되였단 말인가.

이 영광속에 내 몫은 과연 얼마나 될가. 담임교원으로서 강영호에게 손때를 묻힌것은 2년남짓할뿐이다. 그 2년을 위해 바친 나의 수고를 그가 잊지 않고있다는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교육자의 보람중에서도 가장 큰 보람이 바로 성장한 제자, 성공한 제자들의 모습을 보는것이다.

송금주의 《삼천리려행단》이 정애경을 강타한 채찍이라면 강영호의 방문은 그의 허탈과 허약을 힘으로 바꾸는 강심제였다.

정애경은 찬장에서 술을 가져다가 잔에 따라 강영호의 손에 쥐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자, 당원이 된걸 축하해서, 국기훈장 3급수훈자가 된걸 축하해서 이 선생이 주는 잔을 들어요.》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