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날자별열람


제 44 회


제 7 장

3

오후에 송금주는 꼬마도서원 한명을 데리고 고덕탄광 전차갱으로 떠났다. 오늘은 주에 한번씩 돌아오는 이동도서의 날이다. 이동도서의 날의 봉사대상은 마평덕과 인덕촌, 고덕탄광 전차갱이다. 마평덕과 인덕촌은 읍농장에 속해있는 부락들이지만 외진 산골이여서 도서실이 없다. 제1주에는 전차갱, 제2주에는 마평덕, 제3주에는 인덕촌 하는 식으로 한주에 한곳씩 찾아다니며 탄부들과 농민들에게 도서를 보급해주는데 이것을 가리켜 《이동도서의 날》이라고 한다. 전차갱에도 아직은 도서실이 없다.

생활이 유족해지니 책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도 나날이 높아졌다. 그동안 전차갱에는 이동봉사를 9번 하였다. 기본은 주문에 의한 봉사이고 일부는 주입식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책들도 뒤섞어서 보급하였는데 탄부들의 반영이 대단히 좋았다. 중요도서들에 한해서는 감상문을 꼭꼭 받아냈고 감상문을 내지 않는 사람들한테서는 독후감을 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송금주는 탄부들의 친근한 벗으로 되였다.

오늘은 열번째로 운영하게 되는 이동봉사의 날이다. 송금주와 꼬마도서보급원 한영옥은 지금 량손에 책을 10권씩 갈라들고 저탄장을 지나 전차갱으로 통하는 둔덕길에 오르고있다. 도서보급과 공연활동을 하느라고 한해동안에만도 십여번 오르내린 길이다. 오늘 대출하게 되여있는 도서의 대부분은 소설책들이다. 《두만강》 1, 2부와 《시련속에서》, 《석개울의 새봄》과 같은 국내소설들이 있는가 하면 《청년근위대》,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와 같은 번역소설들도 있다. 그 하나하나가 다 주문에 따르는 도서들이다.

이맘때면 《병》번을 나가는 탄부들이 갱 휴계실로 모여든다. 모여서 독보도 하고 간단한 협의회도 한 다음 4시정각이면 인차를 타고 갱으로 들어간다. 송금주의 탄광행차는 입갱전의 1시간을 노린것이였다. 1시간동안이면 도서대출도 하고 탄부들과 독후감도 충분히 나눌수 있다.

오후 3시 10분에 송금주는 갱 휴계실에 들어섰다. 얼마전에 공훈탄부가 된 신영국갱장이 나들문앞에서 그를 맞이하였다. 그는 갱적으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독서광이다.

《송선생이 왔구만. 이거 송선생덕에 우리 탄부들이 너무 호강하는것 같다.…》

갱장이 송금주가 가지고온 책보따리를 받아들며 말했다.

《갱장동지도 참, 그쯤한걸 가지고 뭘 그러십니까.》

송금주가 하는 말에 갱장은 반백에 가까운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송선생이 우리를 위해 바치는 수고가 왜 그쯤한거겠소. 일생에서 제일 갈개는게 중학시절인데 그 망아지같은것들을 옆구리에 끼고 탄부들까지 맡아서 돕자니 얼마나 힘들겠소.》

신영국갱장은 휴계실 한복판에 가로놓인 길다란 탁자우에 책보따리들을 내려놓았다. 벽을 따라가며 《ㅁ》자형으로 배치한 의자들에 듬성듬성 앉아 소책자도 보고 담배도 태우던 예닐곱명의 탄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송금주에게 저마끔씩 인사를 하였다. 이제는 모두가 구면들이고 걸쭉한 롱질까지도 서슴없이 할수 있는 친구들이다.

송금주는 채탄2소대 선동원에게 책을 인계하기 시작하였다. 2소대에서는 선동원이 도서보급원임무까지도 맡아하고있다. 송금주는 보급원에게 대장 두권을 내밀며 말했다.

《선동원동지, 도서대출대장과 도서주문대장인데 오늘부터는 이 대장들을 써야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하, 이것 참 우리가 할일까지 금주선생이… 어쨌든 고맙습니다.》

선동원은 못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오리대로 된 걸개의 끄트머리 빈자리에 도서주문대장과 도서대출대장을 걸어놓고나서 탁자앞에 다가가 40종에 달하는 책들의 제목을 하나하나 걸탐스레 읽어보았다. 다른 탄부들도 그의 곁에 어깨성을 쌓고 서서 책구경에 정신을 팔았다.

방금 휴계실로 쓸어들어온 탄부들이 송금주를 보자 제가끔 한마디씩 물었다.

《금주선생, 〈시대의 탄생〉 1부는 가져왔습니까?》

《쉑스피어의 작품집은요?》

《〈개마고원〉도!…》

탄부들이 송금주를 에워싸고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고있을 때 문밖에서부터 《형수니-임!》 하는 노죽으로 철철 매닥질을 한 18살의 애젊은 탄부 배기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책더미에 달라붙었던 탄부들은 모두 나들문쪽을 돌아보았다. 손에 칸데라와 밥곽을 든 배기태는 사또님을 찾는 걸음새와 같은 걸음걸이로 어푸러지듯이 허둥지둥 방안에 달려들어와 송금주의 팔에 덥석 매여달렸다.

《형수님!》

목소리는 라졸식으로부터 병사식으로 돌변하였다.

《이 아우를 만나기도 전에 책장사를 하시면 어쩝니까.》

그다음 배기태는 송금주의 귀전에 입을 바투 가져다대고 귀속말로 물었다.

《누님, 전번에 부탁한 〈력사〉도 가지고 왔겠지요?》

《그럼, 누구의 부탁이라구.》

《다른 사람한테 주면 안돼요.》

《걱정말아요.》

배기태는 두팔을 비행기의 날개처럼 활짝 펼치고 방안을 빙그르르 돌며 《우리 형수님이 제일이다!》하고 소리질렀다. 탄부들은 다들 혼란에 빠져 그가 하는 짓거리를 멍청하니 지켜보기만 하였다.

이 혼란에서 맨처음으로 깨여난 사람은 갱장이였다. 그는 활주로에서 리륙준비를 하는 비행기처럼 방안을 어지럽게 돌아가는 배기태의 뒤통수를 딱- 소리가 나게 튕기며 말했다.

《기태 이녀석, 촌수도 모르고 헤덤비는 놈, 송선생이 언제부터 네 형수가 됐다는거야?》

배기태는 물우에 뜬 붕어처럼 《아가미》를 벌렸다다물었다 하다가 인차 반격에로 넘어갔다.

《갱장동지, 금주누님이 혹시 우리 전차갱의 모모한 형님과 짝을 뭇게 될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미리 시아우가 되게 해달라고 신청을 했다는거겠구나?》

《그럼요. 송선생이 누구하고 짝을 뭇든 나야 전차갱의 막내니까 당당하게 시아우자격을 가지게 될판이지요.》

《에끼, 욕심이 함지박같은 녀석!》

갱장이 주먹을 쳐들자 배기태는 《형수님!》하면서 탁자끝에 서있는 송금주의 뒤에 가 숨어버렸다.

휴계실안에서는 폭소가 터져올랐다. 송금주는 소리를 내여 마음껏 웃었다. 그는 짜장 그 누구인가의 형수라도 된듯 한 기분이였다. 갱장은 담배를 꼬나물고 연기를 듬뿍 내뿜으면서 푹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금주선생이 하도 마음에 드니까 저 망둥이같은 기태녀석까지도 형수로 삼고싶어 시아우행세를 하는거지.》

《그렇게 믿어주고 사랑해주니 고맙습니다. 탄부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겠습니다. 탄부동지들, 주문받은 책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가지고왔으니 대출대장에 이름을 적어놓고 열람하도록 합시다.》

송금주의 이 말에 책더미를 둘러싸고 옥작복작하던 탄부들은 대출대장에 책이름과 대출자의 이름을 적어넣은 다음 주문한 책을 들고 조용히 자리에 가앉군 하였다. 여기서는 책을 주문하고 대출하고 반납하는 전과정에 상점의 무인매대들에서 보는것과 같은 규범과 질서가 작용하고있었다.

갱장이 송금주의 곁에 다가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지금 〈시대의 탄생〉을 읽고있는데 세계에 대고 당당히 자랑할만 한 작품이더구만. 새로 등장한 작가인데 그 실력이 만만치 않은것 같소.》

《소설계에서도 전도가 촉망되는 재사라고 칭찬들이 대단합니다.》

《세월이 하도 좋으니 문학도 흥하는구만.》

갱장은 싱글벙글하면서 방금 대출대장에 자기 손으로 제목을 등록한 도서를 밥곽주머니에 넣어 걸개에 걸어놓았다.

갱장이 물러서기 바쁘게 이번에는 눈알이 어리광대들처럼 정도이상으로 팽글팽글 돌아가는 유모아적인 생김새를 가진 중키의 땅딸막한 탄부가 송금주의 곁에 다가와 흥정이라도 붙이듯 말했다.

《금주선생,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어서 부탁하십시오.》

젊은 탄부는 무슨 굉장한 밀담이라도 벌리려는 사람처럼 우습강스러운 표정으로 동료들을 흘끔흘끔 돌아보고나서 갱장에게 말을 붙이였다.

《갱장동지, 제가 소대에서 무슨 분공을 받았는지 금주선생에게 공개해도 되겠습니까?》

별치 않은 사연에도 어마어마한 해석을 붙이고 남들이 무심히 스치고 지나가는 세부도 희극적으로 재미나게 윤색해서 후세에 남길만 한 떠들썩한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는 특기를 가진 채탄2소대의 총아 조일록이다. 그는 무슨 말이나 우스개로 채색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성미다.

《공개하고 말고가 있나. 금주선생이야 한집안식구나 다름없는데.》

갱장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이 익살쟁이는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안고있는 사람처럼 우물쭈물하는 시늉을 해보이였다.

《그럼 공개합시다.》

그는 갱장의 뒤에 대고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 펴고나서 송금주에게 귀속말로 말했다.

《조기천의 〈백두산〉중에서 〈동포들이여! 저 불길을 보느냐?〉하는 장면 있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중심으로 한개 절을 보천보전투기념일에 우등불앞에서 랑송하라는 과업을 받았는데 원문이 있어야지요. 탄광도서실에 가도 〈조기천선집〉만은 행불이라는겁니다. 집단소유를 개인소유로 만들자는 심산이지.… 이거야 력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저- 거시기.》

송금주는 대장편이 될지도 모르는 탄부의 푸념을 웃는 얼굴로 인내성있게 듣다가 팔을 홱 내리그었다.

《좋습니다. 〈백두산〉의 원문을 구해봅시다.》

장편서사시 《백두산》의 원문은 학교도서실과 우리 마을 도서실에도 없었고 장서가인 정문호에게도 없었다. 이상하게도 인기도서들은 종적을 찾기가 힘들었다. 전쟁전에 그림책형식으로 출판된 원천은 구경한지도 오래고 전쟁때 나온 《조기천선집》도 모두 어데로 사라졌는지 찾을길이 없었다. 전후에 재판된 《조기천선집》이 군도서관에 한부 있었지만 비치하고 열람은 시켰지만 대출을 하지 않았다.

송금주는 군도서관에 며칠동안 들어박혀 보천보전투장면만이 아니라 《백두산》의 원문 전부를 필사하는 신고를 겪는 한이 있더라도 조일록의 부탁을 깨끗이 들어주리라고 결심하였다. 그가 탄부들이 대출했다가 반납한 책들을 보자기에 싸가지고 휴계실을 나서려는 순간 갱장이 《송선생!》하고 그를 불렀다.

《송선생, 나도 부탁을 하나 좀 합시다.》

《갱장동지, 말씀하십시오.》

송금주는 무슨 책을 부탁하려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갱장을 향해 돌아섰다. 갱장은 좀 미안쩍어하는듯 한 표정을 미간에 담고 입을 열었다.

《다른건 아니구… 한달에 한두번씩 여기에 올적마다 탄부들에게 노래보급을 해줄수 없겠나?》

《하지요. 아주 멋있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런 부탁이라면 밥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들어주겠습니다.》

갱장은 장알이 박힌 손으로 송금주의 손을 꽉 잡았다 놓았다.

《고맙소, 송선생. 우리가 송선생의 신세를 언제면 다 보상하겠는지.》

《갱장동지두 참, 석탄이 있고 총각들이 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그거면 신세를 갚을수 있습니다.》

《그래그래, 석탄은 얼마든지 있는거구. 우리 갱에 총각들두 많지. 그런데 금주선생이 일생을 굴속에서 보내는 탄부를 신랑감으로 고르자고 할가?》

갱장은 미덥지 않다는듯이 고개부터 내저었다. 송금주는 격한 어조로 그 말에 반발하였다.

《일생을 굴속에서 보내는 탄부면 어떻다는겁니까?》

《송선생말이 옳습니다.》

탄부들이 일제히 그의 말에 호응하였다. 그다음은 약속도 없이 저마다 박수를 쳤다.

《전 말입니다. 세상에 탄부들만큼 진실하고 순결하고 근면하고 문명한 인간들이 없다고 봅니다. 공업에 불을 지펴주고 집집마다 전등불을 환하게 켜주는것도 탄부들이 아닙니까.》

방안의 탄부들이 또다시 열렬한 박수갈채로 그의 말을 환영하였다.

그들은 모두 밖에까지 따라나와 송금주를 바래주었다. 그것은 1년동안 한번도 볼수 없었던 전례없는 환송이였다. 날이 갈수록 송금주는 탄부들과 친밀해졌다. 그는 이 갱에 왔다갈 때마다 늘 그랬던것처럼 오늘도 자기자신이 갱의 한식솔이 된것 같은 기분으로 전차갱을 떠나면서 세계를 보는 탄부들의 시야가 나날이 넓어지는데 대하여, 그들의 문학적감수력과 문화정서적수준이 몰라보게 높아지는데 대하여 가슴뿌듯한 자부심과 만족감을 느끼였다.

갱에서 돌아와 분과모임에 참가하고 《삼천리려행단》의 훈련까지 마쳤을 때는 저녁 7시였다. 송금주는 다른 날보다 한시간 늦게 퇴근하여 저녁요기를 대충 하고는 우리 마을 도서실의 대출대장을 훑어보면서 하루동안의 대출실적을 료해하였다. 23명이 책을 빌려갔으면 평균 수치를 릉가한다. 저녁에 찾아오는 독자들까지 셈에 넣게 되면 30명기준을 뛰여넘을수 있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는 농장원들과 가두녀성들, 군급기관의 일군들이 많이 찾아오는 시간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떻게 된 일인지 한사람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밖에 나가니 어제 걸어놓았던 《오늘은 문을 열지 않습니다.》라는 패쪽이 그대로 걸려있다. 그 패쪽을 뒤집어놓아야 하는건데 전차갱으로 떠나면서 덤벼치다나니 미처 주의를 돌리지 못하였다. 오후에 도서실을 지킨 꼬마보급원들도 그것을 놓쳐버린 모양이였다.

밤마다 도서실문을 두드리던 독자들이 나타나지 않아서인지 허탈감이 심신을 휩쓸고 온몸이 나른해졌다. 송금주는 도서실에 쇠를 잠그고 합숙방에 내려와 두무릎을 곤두세우고 거기에 턱을 얹었다. 갈피를 잡을수 없는 복잡한 상념이 바람에 흩날리는 락엽마냥 형체도 없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열갈래, 스무갈래로 떠돌던 상념의 파편들은 이상하게도 전차갱이라는 하나의 정점으로 모여들군 하였다.

《석탄이 있고 총각들이 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그는 갱장앞에서 자기가 한 말을 다시한번 상기하고는 홀로 얼굴을 붉히였다. 그 말을 뱉아버린 순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는데 무슨 서정시의 결구와도 같은 말치레가 아니였나 하는 간지러운 생각이 인다.

어쩌면 공명과 허영에 들뜬 새빠진 처녀의 허세였는지도 모른다.

아까는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가. 나에게 그런 말을 탕탕 할수 있는 그 어떤 감정적기초라도 있었단 말인가. 물론 위선은 아니다.

이런 때 정애경이 곁에 있다면 이런 물음을 던질수도 있을것이다.

《누가 만일 너더러 탄부에게 시집을 가라고 하면 넌 갈 의향이 있니?》

그러면 나 송금주는 이렇게 대답할것이다.

《있지. 문제는 어떤 탄부인가 하는거야.》

송금주는 마음속으로 이런 일문일답을 하고나서 자기도 모르게 최창화가 선물한 대패밥꽃을 힐끗 쳐다보았다. 오늘은 별스럽게도 그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최창화, 적어도 그런 준비정도를 가진 탄부라면 그는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한생의 동반자로 선택할것이다.

그런데 정애경은 얼마전에 《너의 신랑감은 내가 평양서 고르고있으니 영천서는 제발 헛눈을 팔지 말아달라》는 통첩을 해왔다. 그의 속심은 자기의 몸가까이에 송금주를 끌어다놓고 영천에서부터 움트고 꽃펴온 우정에 갑옷을 입히자는것이였다. 시골총각은 고르지 말고 평양총각을 고르라는것이 정애경의 요구이다. 저 애경이가 언제부터 저렇게 오만방자해졌을가. 도회지생활을 몇해 하더니 허파에 바람이 든게 틀림없다.

자기친구를 위해주자는걸 나쁘다고 탓할수는 없다. 그러나 시골을 홀시하고 시골사람들을 무시하는건 절대로 용납할수가 없다. 모두가 수도에 시집가고 연줄을 따라 수도로만 모여든다면 시골은 누가 지키고 누가 건설하겠는가. 정애경이 평양각시가 되면 송금주도 평양각시가 되여야 하는가. 모두가 평양각시로만 되면 농촌각시는 누가 되여야 할가. 고약한것, 어느새 골통에 노란물이 들기 시작했거던. 무직자가 되더니 방향감각도 잃고 체면이고 량심이고 다 집어던진거야.

송금주는 어떻게 하면 정애경의 오만방자한 사고방식을 바로잡아주고 그의 허파에서 불결한 바람을 빼주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바람벽에 허리를 기대고 점도록 앉아있었다.

바로 그때 임철옥이 소리도 없이 나타나 그의 사색을 마구 뒤흔들어놓았다. 사흘이 멀다하게 이 합숙방에 마실을 와서는 송금주의 생활에서 고독이라는 비루스를 무자비하게 박멸해치우군 하는 리신태의 안해다.

《오늘은 송선생의 얼굴이 별스레 환해보인다.》

임철옥은 편리화를 벗어 신발장에 넣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관상쟁이처럼 무슨 조준경이라도 달린듯 한 눈으로 송금주의 얼굴을 이리 쓸고 저리 쓸고 하였다. 그 큰눈의 동자가 와닿을 때마다 송금주는 내장은 물론 껍데기속에 웅크리고있는 넋이라도 샅샅이 뒤져보는것 같아 저도모르게 몸을 움츠러뜨리군 하였다.

《처녀가 총각생각을 할 땐 얼굴이 환해지구 눈알이 반짝반짝해지는 법이라우.》

《언니두 참, 남은 피곤해서 그러는데 총각이 다 뭐예요. 그런 뚱딴지같은 객설은 그만하고 이 잔등이나 주물러주세요.》

사실은 잔등보다도 쿡쿡 쏘는 무릎마디와 시그러운 발목이 더 급했다. 그렇지만 임철옥이 자기 눈을 들여다보며 총각생각이니 뭐니하고 속뽑이를 할것 같아 허리안마부터 부탁하였다. 임철옥은 도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일할 때 안마기술을 배운 녀자였다. 영천땅에서 그가 안마사라는것을 아는 사람은 송금주뿐이였다. 임철옥은 안마술을 람발하지 않았다.

《송선생이 속생각을 감추려고 나를 등뒤로 빼돌렸지만 나를 속이진 못해. 이 한오리한오리의 머리칼들이 자기 주인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다는걸 다 말해주고있으니까.》

임철옥은 송금주의 척추를 우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한마디한마디씩 안마해주면서 또 시까슬렀다. 그는 일단 꼭지를 뗀 화제는 마지막까지 밀고나가는 뚝심과 이야기가 가지를 치며 아무리 복잡하게 뻗어나가도 절대로 기본주제에서 탈선하지 않는 장끼를 가지고있었다.

《언니, 너무 그렇게 우쭐대지 마세요. 처녀가 총각생각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걸 어떻게 안다는거예요.》

《알지, 체험이 있으니까.》

임철옥은 척추로부터 어깨박죽으로 손을 옮기면서 말을 이었다.

《전에 난 청진서 살 때 김책제철소총각과 사랑에 빠진적이 있었다우. 참 똑똑하고 매력있는 총각이였지비. 우린 한주일에 한번씩 밀회를 했소. 어떤 날은 제철소근방에 있는 솔밭에서도 만나고… 만나고와서는 밤새 모포를 뒤집어쓰고 그 총각생각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얼굴에 울기가 오르고 가슴이 활랑활랑해지는게 아니겠나.》

《모포는 왜 뒤집어썼나요?》

《남들이 내가 총각생각을 하는걸 눈치챌가봐… 처녀시절에는 왜 그렇게 못나게 수집음을 탔던지…》

《그 총각이 리신태선생인가요?》

《그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용광로를 파괴하려고 달려드는 반동놈과 격투를 벌리다가 칼에 찔려 희생되였다우. 금주선생이 모포를 뒤집어쓰지 않았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총각을 그려보는지 난 다 안다니까.》

임철옥의 손은 어깨박죽으로부터 옆구리로 자리를 옮기였다. 과로로 하여 경직되였던 근육이 풀리고 불규칙적으로 뛰던 심장의 박동도 고르로와졌으며 몸도 전에없이 거뜬해졌다.

《신태선생은 정말 좋겠네. 언니한테서 매일 안마를 받겠으니.》

《말도 마우. 그 어른은 안마도 못 받는 괴상한 체질이야. 간지럼을 몹시 타니까. 손만 닿으면 개미가 기여가는것 같아서 못 견디겠다나.》

임철옥은 안마를 마치자 밥상을 가운데두고 송금주와 마주앉았다. 송금주는 그때에야 외출복을 실내옷으로 갈아입었다. 방금 안마를 하고 난탓인지 심신이 홀가분해졌다.

《언니손은 정말 보배손이군요.》

그가 칭찬을 한마디하자 임철옥은 당치 않은 평가라는듯이 입을 삐쭉해보이였다. 그러다가 송금주의 손을 느닷없이 끌어당겨다가 무릎우에 놓고 한참동안 소리없이 쓰다듬어주었다.

《사실이야 이 손이 보배손이지.》

《내 손이 보배손이라면 온 세상 손이 다 보배손이게.》

《이 손끝에서 얼마나 멋진 가사와 곡들이 쏟아져나오게 그렇게 아닌보살을 하나. 자, 그럼 객담은 그만하구 본론으로 들어가자구.》

임철옥은 달린옷주머니에서 봉투 한장을 꺼내여 그속에서 하늘색과 진달래색으로 된 헝겊오리 두개를 끄집어냈다. 그 헝겊오리들을 송금주의 앞으로 밀어놓았다.

《오늘은 내 금주선생하구 장사거래를 좀 하자는거야. 이 두가지 색갈중에서 어느게 더 마음에 드나?》

《두가지 다 내가 좋아하는 색갈이군요.》

송금주는 헝겊오래기를 량손에 하나씩 갈라들고 《흠.》, 《흠.》하며 냄새까지 맡아보았다. 두가지가 다 색갈만 다를뿐 꼭 같은 은초사였다.

《이걸로 애들의 무대복을 만들면 어떨것 같소?》

《그저그만이지요. 거 참 욕심이 나는데요.》

《삼천리려행단》이 쓰는 무대복은 가지색의 스프천으로 지은 멜끈이 달린 치마와 하얀 데트론적삼이다. 임철옥이 가지고온 은초사에 비하면 너무나도 소박하고 촌스럽다. 그런데 이 수다스러운 아낙네는 지금 나한테 천을 도매로 넘겨 일확천금이라도 할 심산인가. 본론은 꺼내지 않고 빙글빙글 에돌기만 하니 도무지 그 속내를 알수 없다.

《그렇다면 됐어!》

임철옥은 갑자기 무릎을 탁 치며 밥상앞에서 일어났다.

《송선생, 하늘색과 진달래색을 각각 30m씩 끊으면 〈삼천리려행단〉꼬마들에게 무대복을 두벌씩 해입힐수 있겠지?》

《그럼요. 있구말구요.》

《거래는 이게 다야. 래일 내가 음악실에 은초사 60m를 가지고 갈테니 영접할 준비나 하라구.》

《값은 얼마예요?》

《무상이니까 돈은 필요없어.》

《아니, 그 많은 천을 무상으로?》

《김제원농민의 애국미 30가마니에 비하면야 아무것도 아니지.》

송금주는 얼떨떨한 나머지 임철옥의 얼굴을 말똥말똥 쳐다보기만 하였다. 이것은 전혀 바라지도 않았던 횡재였다. 기적으로 날과 달이 이어지는 천리마시대라고 하지만 송금주를 공명주의자라고 비난해온 리신태의 가정에서 그런 착상을 했다는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어떻게 되여 이런 기적이 일어났을가. 도대체 무슨 곡절이 있었기에 이 가정에서 이런 엄청난 발기를 했을가.

《리신태선생이 이 일을 알고계시는가요?》

《이건 내 발기가 아니라 그 어른의 착상이라우. 그 어른이 이틀전에 〈삼천리려행단〉을 보고 돌아와서 별안간 그런 궁리를 하는게 아니겠나.》

임철옥은 두손으로 량쪽안경다리를 추슬러올리는 시늉을 하며 남편의 입내를 내기 시작했다.

《〈여보, 내 오늘 군문화회관을 지나다가 우리 학교 애들이 출연하는 《삼천리려행단》을 보고 송금주선생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되였소. 보통재간덩이가 아니구만. 나는 특히 작품에 반영된 그의 높은 랑만과 지향에 반해버렸소. 지금까지 그를 물덤벙술덤벙하는 공명주의자로 보면서 랭대해온게 후회되오.〉 다음날 아침 그 어른이 나보고 뭐랬는지 알우? 〈여보, 내 온밤 자지 않고 궁리했는데 우리 집 저금통장을 몽땅 털어 그 애들의 무대복을 해주는게 어떻소? 7월이나 8월에는 전국학생소년예술축전에 참가한다는데.〉 라고 하지 않겠나. 그 말을 들으니 내 서방님이 얼마나 돋보이는지 이 철옥이의 눈에 그날처럼 남편이 고와보인적은 없었다니까.》

임철옥은 눈이 젖어드는지 손등으로 눈두덩을 얼른 훔치였다. 송금주의 눈에서도 눈물이 왈칵 쏟아져내렸다. 리신태의 급작스런 변신을 알게 된 이 순간 그는 가슴 한구석에서 만년빙하와도 같은 얼음장들이 녹아내려 폭포수처럼 사품치는듯 한 격정에 휩싸이였다.

《언니, 고마워요. 그리고 리신태선생님!… 고맙습니다!》

송금주는 임철옥에게 따뜻한 눈인사를 보낸 다음 그들부부가 사는 집쪽을 향해 두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정중히 숙여보이였다. 임철옥의 손을 잡아쥐고 정이 담뿍 실린 눈으로 그를 보고 또 보았다. 그 이상 더 강렬하고 적절한 표현을 고를수 없는것이 안타깝고 민망스러웠지만 도무지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그대신 그의 심중에서는 인간과 인생에 대한 참대와도 같이 강건한 철학과 다박솔의 설레임과도 같은 아늑한 서정이 넘실거리고있었다.

인간은 아름답다. 무한히, 무한히 아름답다. 인간은 그 본성과 모양에서 선량하고 아름답고 정의로운것을 지향한다. 천리마시대라는 이 장강은 인간의 아름다움으로 흐르고 엮어지는 대하이다. 이 대하우에서 움트고 무성하는 인생의 숲은 아름답고 향기로울수밖에 없으며 거기서 그려지는 인생의 악보도 명곡이 될수밖에 없다. 송금주는 《인간만세!》라고 부르고싶은 심정에 이끌려 임철옥의 곁에 다가가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언니, 지금 당장 신태선생에게 절을 드리고싶어요. 집으로 가시자요.》

임철옥은 그의 잔등을 툭툭 두드려주며 푹 가라앉은 음성으로 달래듯이 말했다.

《이것 보라구, 절은 우리가 아니라 금주선생이 받아야 해. 선생이 창작한 〈삼천리려행단〉이 그 량반을 개조시켰거던. 선생이야말로 인간개조의 기수야.》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