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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3 회


제 5 장

5

이튿날 아침 경찰관출장소담장앞과 동구앞의 바위와 아름드리 느티나무둘레에 사람들이 하얗게 모여서 왁작 끓어번졌다. 거기에는 포고문이 나붙어있었던것이다.

까막눈들은 그저 입을 하 벌리고 경탄만 하고 야학에서 눈을 틔운 사람들은 목소리를 합쳐 읽어내려갔다.

 

포 고

 

두만강연안의 군청, 면사무소, 경찰, 자위단, 소방대, 세관, 은행, 철도에 종사하는 악질관료배들과 그리고 친일지주, 매판자본가들에게 경고한다.

우리 유격대의 군사활동과 정치공작, 경제모연공작을 악질적으로 방해하는자들은 풍인동경찰관출장소 소장 하야시 사부로, 순사 최도만이와 같은 운명을 면치 못한다. 상기 두자는 인민의 총의를 접수한 우리 유격대의 결심으로 처단되였다.

우리 유격대는 우리의 성전을 지지하거나 중립을 지켜주는 인사들에 한하여서는 그의 과거와 재산정도를 불문하고 열렬히 환영, 포섭하며 조국광복후의 안정된 생활을 담보하여준다.

현자들은 두 주구의 죽음에서 교훈을 찾을것이다.

조국동포들이여!

일제의 폭압통치에 공포를 먹지 말라! 당신들의 뒤에는 우리가 서있다! 용약 항일성전에 떨쳐나서자!

일제와 주구배들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신세이다.

사랑하는 무산대중, 형제자매들이여!

우리 혁명군의 항일구국성전을 다방면적으로 원호하라!

혁명 만세! 만세! 만세!

 

반일인민유격대 국내파견대

 

사람들은 읽고 또 읽었다. 모두 가슴들이 부풀어 뒤설레였다.

보금이는 사람들의 어깨너머로 포고문을 읽어내려갔다. 벅찬 감격에 숨이 막혀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으로만 읽었다.

이때 저아래 경비도로로 기마대렬이 지나갔다. 모두 군복이 찢어지고 흙투성이가 되여 후줄근해진 몰골들이다.

말을 기세좋게 달리지도 못하고 느릿느릿 몰아가는데 대오도 제대로 짓지 않았다. 말우에서 졸고있는 놈도 보인다.

사람들은 그 무리들을 눈아래로 내려다보며 저마다 한마디씩 던졌다.

《저… 저놈을 보오. 하하… 조는구만, 졸아. …》

《밤새 죽자구 돌아치다가 허탕을 쳤으니 맥이 풀릴수밖에…》

《말을 탔으면 뭘해. 하루 천리씩 난다는 유격대를 당해?》

《에- 쪽발이들, 자리에 오줌이나 싸지 말라!》

《흐흐흐…》

《흐아… 흐아… 흐아…》

《유격대어른들이 우리 맘을 그렇게 꼭 알아준다구야. 그 두놈이 뒈지니 삼년전에 얹힌 가슴이 쑥 내려가는것 같수다.》

《민심이 천심이란 말이 꼭 맞아. …》

《어제만 해도 제세상 같았지, 개-놈들…》

《하루걸음뒤에 우리 근거지가 생겼는데 제놈들이 이제야 꿈쩍이나 해?》

《좋아만 말구 바늘 한개라고 보내서 도와야 하우다!》

《어이구, 이거 가재미눈깔이 오래간만에 용한 소리를 한다. 누가 아니래?》

《무엇이 어째? 다시… 다시 말해!》

《아니, 이거 싸우겠수다, 성님! 하하하…》

《허허허…》

《가재미눈두 오늘은 바루 배기우다.》

경찰관출장소안을 거두는데 정신이 나갔던 경찰놈들이(읍에서 내려온 놈들이였다.) 그제야 담장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쫓았다.

집으로 돌아온 보금이는 뒤울안의 딴가마에 흙매질을 하고있는 어머니곁에 앉아 진흙소랭이를 옆에 밀어놓고 조씨의 얼굴을 밝게 웃으며 들여다보았다.

《어머니!》

《무슨 일이 있었냐?》

보금은 지난밤의 기습이며 포고문이야기를 하였다.

《이눔세상이 뒤번제는 지겠구나!》

《근거지에서 나와서 처단했더군요.》

《근거지에서? … 마촌에선 누가 안 왔을가?》

《글쎄요. …》

《예, 보금아! 이 마을에는 법도가 없다. 원을 풀어준 유격대어른들한테 찰떡이나 쳐갔으문 얼마나 낯도 나구 좋겠니. 남정들이란것들은 담배질이나 하구 안깐들한테 꿱꿱거리기나 했지. 에그… 이런 때에나 옳게 처사를 했으문…》

《글쎄말이야요. 어머니, 어머니가 한번 나서서 여러분- 동지들- 해보지요? 호호호…》

조씨는 흙물이 묻은 손으로 딸의 이마를 찰싹 때리려다가 말고 돌아앉았다. 눈에 눈물이 가득 괴여올라서였다. 어머니는 세상일보다 수모속에 살아온 딸자식이 오래간만에 이렇게 밝게 웃는것을 보니 너무 기뻐서 눈물까지 났던것이다.

보금이는 마촌 시집으로 인차 돌아가려 했으나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는데다가 왜놈들의 국경경비가 너무 심해져서 망설이기만하고 선뜻 길을 떠나지 못하다나니 오늘에 이르렀다.

그는 얼마후에 찬거리를 들고 전장원선생댁에 갔다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얼굴이 흐려서 돌아왔다.

보금이는 어머니가 이모저모로 캐여물어봐도 대답을 안하고 몸살이나서 그런다고 하며 안방에 들어가 누웠다.

저녁녘에 윤치석이 타막골 숯구이터에서 돌아왔다.

윤치석은 얼굴이 시꺼매져서 로친을 눈짓으로 굴뚝쪽으로 불러내였다.

언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안해를 굴뚝께로 불러내는데 습관이 된 그였다.

조씨는 가슴이 한줌만 해졌다.

《저 애가 왜 누워있소?》

《전선생집에 갔다오더니 저런다오.》

《무슨 소리 없습데?》

《아무리 물어봐야 대답을 하우?… 혼자 사는 녀자마음이 장마철 하늘같다더니… 에그, 박달몽둥이같애두 그저 제 랑군곁에 있어야지 에미인들 속이 썩어서 시중을 들겠소.…》

그러자 령감의 얼굴이 갑자기 험해지며 부르쥔 주먹을 쳐들었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어디다가 옮겼다간 내 주먹밑에서 없어질줄 알아…》

조씨는 한걸음 물러서서 두손을 가슴우에 모아쥐며 눈이 올롱해져서 령감을 쳐다봤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고싶으나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고 올롱해진 눈에 눈물만 가랑거렸다.

머리가 파파 세여가는 이날까지도 자기를 업수이여겨 무슨 일이 생기면 으름장부터 놓는 령감의 처사가 억울하고 분해서였다.

《여보…》

《깨끗한 솜하구 깨끗한 천같은게 몇자 없겠소?》

《예? 어디다 쓸려구?》

《아, 글쎄 없는가 말이야?》

조씨는 목구멍에 눈물이 끓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어제 빨아서 풀해놓은 이불안이 있는데… 솜은 농짝에 좀 있겠는지?》

《내오우… 여기로 내오란 말이요!》

《여보, 무슨 일이요. 나는 알면 못쓰우?》

《간밤에 저 사람이 왔댔어.》

《누구요?》

조씨는 눈이 커지며 가슴부터 활랑거렸다.

《창억이 말이요. 순사들을 친 담에 큰 접전이 있었는데… 다쳤어… 피를 너무 쏟아 가망이 있겠는지 모르겠소. 잘 싸매라도 보내야겠는데 빨리 내오오.》

《아-니, 이게 무슨 벼락이요!》

로친의 소리가 높아지자 윤치석은 다시 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불끈 틀어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거 그저!》

《여보!…》 조씨는 령감의 주먹을 잡고 그에게 매달렸다.

《차근차근 말해주오, 내 사위가… 이게 무슨 변이요!》

그러자 윤치석은 얼굴빛이 캄캄하게 죽으며 휘파람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모가지를 비틀어치우겠다! 왜 소리를 내? 안방애가 듣겠는데…》

조씨는 숨도 못 쉬고 화들화들 떨다가 집안으로 달려들어가 의농문을 열고 옷가지들을 걷어내며 솜을 찾았다.

그러나 눈앞이 캄캄해져 어느것이 어느것인지 분간할수 없었다. 그는 누데기같은 옷가지들을 앞에 활활 꺼내놓고 이것저것 뒤지다가 겨우 솜을 찾아내였다. 령감이 들어섰다. 령감의 눈은 비감에 흐려있었다.

그 눈을 보자 조씨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기절초풍을 하여 벌떡 일어났다.

이때 안방문이 벌컥 열렸다. 보금이 내려왔다.

《무슨 일이 생겼어요?》

윤치석은 얼굴이 무섭게 근엄해지며 범접 못할 기상을 풍기였다.

《아무것도 아니다!》

보금이는 얼굴빛이 새까맣게 죽은 어머니를 돌아봤다.

《저도 낮에 전선생한테서 그 사람이 왔댔다는 이야긴 들었어요. 그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닌가요?》

그러자 조씨가 울음을 터뜨리며 령감에게 대들었다.

《여보, 말을 하우! 하우! 누구보다 애가 알아야지 제사람인데… 제사람인데!…》

령감이 발을 탕 구르며 닥치라고 소리쳤으나 로친을 도저히 눌러놓을수 없었다. 로친은 령감의 으름장따위에는 아랑곳없이 눈물을 좔좔 흘리며 딸의 두손을 붙잡고 흔들어댔다.

《이 불쌍한것아, 그 사람이… 창억이… 그 사람이 왔다가 상했다. 물을 건너간다는데… 따라가거라! 이런 때 네가 곁에 있어야 된다. 따라가거라!》

그리고는 안방으로 달려들어가 딸의 옷가지들을 와락와락 벗겨 베보에 꿍져가지고 정신없이 뛰여나와 그것을 딸에게 내밀었다.

《가거라, 다 쓸데없다. 이런 땐 안사람이 곁에 있어 구완을 해야 된다. 가거라, 가거라!》

보금이는 보꾸레미를 턱밑에 꼭 그러안고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기세에 눌려 옴짝 못하고 서있었다. 보금이로서도 난생처음 보는 모습이였다.

바깥빛이 희붐하게 흘러드는 문을 등지고 엉거주춤 서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벼락이 쳐서 거멓게 타버린 고목처럼 처량하게 보였다.

윤치석은 딸에게 따라오라는듯 한숨을 지어보이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보금이는 아버지를 따라 타막골의 숯구이막까지 어떻게 달려갔으며 숯구이막안에서 장룡산이를 비롯한 유격대원들과 무슨 말로 어떻게 인사를 나누었는지 몰랐다.

숯구이막안은 어둑시근하였다.

사람들은 안쪽에 누워있는 농민복차림의 청년곁에 둘러서서 아버지가 가져온 천과 솜으로 상처를 싸매느라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누구의 손인가가 쳐들고있는 불그스레한 등불이 그들의 일손을 밝혔다. 어느 누구도 문곁에 오도카니 서있는 보금에게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막안에는 옥도정기냄새가 지독하게 풍겼다.

사람들의 몸이며 다리들사이로 남편의 억세게 생긴 얼굴과 눈에 익은 커다란 손을 알아본 순간 보금이는 저도모르게 손을 입에 가져갔다.

가슴이 후둑후둑 방망이질하는 소리에 누구의 말소리도 가려들을수 없었다. 목이 타들었다. 그저 저들이 상처를 되는대로 대충대충 싸매는것 같고 무슨 일이 당장 일어날것 같은 조바심에 가슴에서 재가루가 폴싹폴싹 일었다.

그는 보꾸레미를 헤덤비며 풀어 겹저고리안이며 치마를 와락와락 찢어가지고 사람들의 뒤로 다가갔다. 장룡산이 그것을 얼른 받았다.

사람들이 남편을 담가에 눕혀가지고 맞들고 나올 때 보금이는 와락 다가들어 남편의 머리밑에 보꾸레미를 베개처럼 밀어넣어주다가 끝내 흐느낌소리를 터뜨리고말았다.

담가는 그에게 더 어쩔 틈도 주지 않고 사정없이 앞을 지나갔다. 이마에 붕대가 칭칭 감긴 남편의 얼굴은 이전보다 더 애되여보이고 몸도 졸아들어보였다.

바깥은 벌써 어둑해졌다.

담가는 지난 이른봄 장군님께서 걸으셨던 그 길을 따라 타막골어귀를 빠져 두만강가로 향하였다.

보금이는 사람들의 맨뒤에서 허둥지둥 따라갔다. 그의 온 마음은 담가에만 쏠렸다. 담가는 잡관목숲속을 굽이굽이 누벼나간 가파롭고 험한 길을 따라 조심조심 내려갔다. 사람들은 모두 담가에 달라붙었다. 앞에 선 사람들은 담가가 기울지 않도록 채를 어깨에 메였고 뒤에 선 사람들은 두손으로 채를 맞들었다. 앞에서 뒤걸음질치며 두손으로 담가채 끝을 쳐들어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나무가지들이며 풀넝쿨들이 담가채에 시끄럽게 걸리는가 하면 거미줄이 사람들의 얼굴에 덮씌웠다. 모두 담가가 들추지 않도록 가락맞게 발을 옮겨가다가도 나무뿌리나 길바닥에 내민 돌부리를 차서 자주 비칠거리군 하였다. 그때마다 담가가 기우뚱거리며 부상자의 다리며 머리를 들추었다. 그것을 보는 보금의 등골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담가가 펑퍼짐한 길에 나섰을 때 앞에서 누군가의 거치른 목소리가 울렸다.

《전장원 그 동무가 정신이 쑥 빠졌다니까.》

장룡산의 목소리이다.

《저보구 누가 옥도정기를 구해오랬는가? 금시 기습이 있어놔서 꺼떡하다가는 의심을 사겠는데 가만 배겨있지 못하구. 사람은 듬직해뵈는데 그 모양이거던.》

《아까 돌려보내면서 톡톡히 얘기해줬습니다. 깊이 새겨듣습디다.》

《깊이 새겨듣구 뭐구가 있는가. 제가 로출되면 온성조직이 다 드러나는 판인데 여태 그걸 몰랐대?》

《그래서 사령관동지께서 직접 나와 꾸려주신 조직이구… 지금도 얼마나 걱정하시는지 아는가고 오금을 박아놨더니 집에 배겨있겠다고 했습니다.》

《허참…》

담가채를 맞들고 뚱기적거리며 걸어가던 윤치석은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듣자 목안이 칼칼하게 말라들었다.

(전선생이 무사해야 되겠는데… 이걸 어쩐다? 기습이 있자 저 애가 간데온데없이 사라지면 저놈들이 진짜 공작원으로 여길게 아닌가. 그러지 않아도 오라가라 하며 면주재소에까지 불러다가 심문을 하던 놈들인데… 그럼 저 애를 마차에 실어온 전선생은 당장 혐의를 들쓰게 된다. 나나 로친이야 별 고생을 해도 일없지만 저 전선생만은… 어쩐다?…)

담가는 강뚝을 넘어섰다.

사람들은 찬기운과 습기를 풍겨올리며 거창하게 숨쉬는 두만강을 보자 흥분하여 조심성을 잃어버렸다. 걸음들이 빨라졌다. 강기슭에서는 바위에 비끄러맨 나루배가 출렁대는 물결우에서 불안스럽게 기우뚱거리고 저기 강복판쪽에서는 엄청난 위험을 품은듯 한 젖빛안개가 굼실굼실 퍼져오르고있었다. 하류와 상류쪽에서 짧은 동안을 두고 총소리들이 울려왔다. 그 야무진 총소리가 강량안의 산벼랑들에 부딪쳐 와르릉와르릉 울린다.

겁에 질린 국경수비대놈들이 헛총질을 하는것인지, 무슨 기미를 느끼고 경계신호로 쏘는것인지 알수 없다. 사람들은 갑자기 초조감에 휩싸여 가락맞게 옮겨짚던 발걸음들이 흐트러졌다. 담가가 몹시 기우뚱거리며 아래로 걷잡을수 없이 밀려내려갔다.

윤치석은 그들이 사위를 엎질러놓을가봐 조마조마해져 다른 생각은 다 버리고 담가채만 두손으로 꽉 붙잡고 따라내려갔다.

배사공로인은 담가가 배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바위로 뛰여가 바줄을 헤덤비며 풀었다.

사람들은 담가를 멘채 허리까지 치는 강물속으로 들어가서 부상자를 배에 맞들어올렸다. 그들의 머리우에서는 물새가 외마디소리를 피타게 내지르며 날아돌았다. 처절썩 배전을 두드리는 물소리, 튀여오르는 물방울… 어느새 사공은 고물에 훌쩍 날아올라 노를 물속에 철썩 박았다. 그 바람에 튀여오른 물갈기가 윤치석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는 드센 물살의 차거움과 석별의 애석한 정이 가슴을 찢어 으흐흑… 하고 흐느꼈다.

그러나 어금이를 꽉 악물고 배를 지그시 밀어주며 딸을 찾았다. 사돈님에게 인사말이라도 잘 전하라고 당부하고싶어서였다.

그런데 배우에 탄줄 알았던 딸은 사람들속에 보이지 않았다.

보금이는 강뚝 저쪽에서 외롭게 설레이는 오리나무를 붙안고 서있었다.

그에게로 창황히 달려간 윤치석은 다급히 소리쳤다.

《왜 이러구있니?》

보금이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강쪽을 바라볼뿐 대답을 못하였다.

나무가지들이 몸부림치며 이슬이 화라락 떨어져 로인의 몸이며 잔등을 적시였다.

떠나지 못하는 딸의 심정이 가슴에 뭉클 안겨들어 목이 꽉 멘 로인은 부들부들 떨며 아무말도 못하였다. 그는 그저 허물어져내리는 가슴을 두손으로 움켜잡고 허망한 눈길을 강쪽에 돌릴뿐이였다.

기슭에서 멀어지는 배의 고물에 누구인가 엉거주춤 서서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듯 이쪽을 향하여 손을 젓고있었다.

하늘에서는 우- 우- 하는 굉음이 울리며 바람이 일었다. 안개가 무섭게 파도쳐오르며 산산이 흩어졌다. 흩날리는 안개속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배는 어스름에 녹아들어 희미하게 어른거리고 노젓는 소리만이 바람결에 간간이 들려왔다. 삐꺽… 삐꺽… 삐꺽…

그 구슬픈 소리는 저 흩날리는 안개속이 아니라 눈물이 가랑거리는 보금의 눈에서 울려나오는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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