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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2 회


제 5 장

4

풍인동경찰관출장소앞에 이른 전수원은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리며 걸음을 멈추었다.

경찰관출장소의 지붕은 밤이슬에 젖어 번쩍거리고 창문마다에는 불빛이 환했다.

건물전체에는 괴괴한 정적이 깃들었다.

전수원이 황황히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비수리나무의 어둑한 그늘밑에서 농민복차림의 청년이 불쑥 나와서 그의 팔을 우악스럽게 붙잡았다. 그 손아귀가 어찌나 드센지 팔이 잘려지는듯 하였다.

전수원은 살이 찢기는듯 한 아픔에 몸을 비틀며 그를 돌아보았다. 전혀 낯선 얼굴이다. 시큼한 땀내와 풀냄새가 확 풍겨왔다.

《누구야?》 하고 청년이 거칠게 물었다.

《여기 면장이요!》

그러자 청년은 그 직함에 놀란듯 팔을 놓고 길을 비켜주었다.

전수원은 현관문을 드르릉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에 유리쪼각들이 널려져있고 거치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순사실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순사실안을 들여다본 그는 화닥 놀라 한걸음 물러섰다가 발이 바닥에 얼어붙고말았다.

순사실의 안쪽벽밑에 하야시, 최순사가 포승줄에 결박되여 꿇어앉아있고 그옆에 포승줄이 모자랐던지 황순사가 묶이지 않은 손을 무릎우에 공손히 올려놓고 꿇어앉아있다. 그자들의 견장은 뜯어져 어깨에서 너덜거리고 이마며 관자노리에 피자국이 시뻘겋고 단추들이 날아났는가 하면 팔소매들이 험상궂게 찢어졌다. 격투의 흔적이였다. 마당에서 만났던 청년처럼 농민복차림을 한 두 청년이 그자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고있다. 장원은 손을 풀고 자유로운 몸이 되여 걸상에 앉아있다.

전수원은 몸에서 피가 얼어붙는것 같았다.

(저쪽에서 왔구나!)

키가 큰 양복차림의 청년이(그는 장룡산이였다.) 눈앞에 쳐들었던 종이장을 내리며 그를 날카롭게 돌아보았다.

《당신은 누구요?》

《…》

걸상에 앉아있는 장원이 이쪽을 흘깃 돌아보고는 그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주었다.

전수원은 온몸에 뻣뻣한 마비가 와 혀바닥도 돌처럼 굳어져 말이 나가지 않았다. 가슴이 화들화들 떨리기만 하였다.

키 큰 청년은 장원의 말을 듣고 얼굴에 놀란 빛을 띠며 다시 물었다.

《당신이 전수원면장이요?》

《…》

그는 대답을 못했다.

《들어오시오.》

전수원은 최후의 시각이 왔다는것을 의식하며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이들이 무슨 변명을 하여도 자기를 용서치 않으리라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져 정신없이 한걸음 들어섰다. 중키에 얼굴이 근엄하게 생긴 농민복차림의 사람이(그는 김중권이였다) 그의 팔을 잡아끌어 자기 옆에 세웠다.

양복차림의 청년은 종이장을 다시 들어올렸으나 그것은 보지 않고 꿇어앉아있는자들을 내려다보며 한마디한마디에 저주와 멸시를 담아 언명하였다.

《풍인동경찰관출장소 소장 하야시 사부로… 순사 최도만… 네놈들은 일제식민지통치의 촉수로 되여 무산대중을 탄압, 구타, 략탈, 학살하는 만행을 일삼아왔으며 우리 혁명군의 국내공작원을 살해하고 우리 국내조직의 광범위한 활동을 악랄하게 저애해왔으므로 인민의 이름으로 하야시 사부로와 최도만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우리는 죄악의 거점인 이 자리에서 언도를 집행하려고 한다. 마감으로 할말이나 있으면 해라!》

황순사는 자기 이름이 진짜 빠진것인지 아니면 자기가 못 들은것인지 몰라 비굴한 눈으로 두리번거리며 이 사람, 저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최순사는 무릎을 옴지락거리며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시오, 벽에 돌려앉히구 해주시오.》

놈에게 총을 겨눈 억척스럽게 생긴 청년이(그는 김창억이였다) 랭소를 머금고 뇌까렸다.

《개같은 놈, 네놈이 인민들의 눈앞에 총구멍을 들이댈 때는 어떻더냐?》

하야시가 말라서 꺼풀이 진 입술을 놀리며 《미즈… 미즈…》 하고 애걸하였다.

장룡산이 창억에게 조용히 일렀다.

《창억동무, 물을 주오.》

그리고 뒤이어 전수원을 돌아보며 밖에 나가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가 밖으로 나오니 다른 세계의 대기처럼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전수원은 그 공기를 욕심스럽게 정신없이 들이켰다.

잠시후에 황순사가 뒤따라나왔다.

황순사는 겁에 질린 눈으로 전수원을 쳐다보며 《시작하려는게지요?》하고 물었다. 전수원이 대답이 없자 그는 와들와들 떨면서 두서없이 입을 놀렸다.

《나두 나가 기다리라고 했소. 왜 기다리라고 할가? 최씨는 어제 부친한테서 편지를 받고… 휴가를 신청했는데. 아하 참… 면장님, 우린 딴데로 끌어다가 어찌자는게 아닐가요? 면장님, 뛰자요! 뜁시다!》

《…》

전수원은 대답을 안했다. 비수리나무밑에 숨어있는 사람의 총구가 무서워서가 아니였다. 별로 살고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살아보자고 헤덤비는 황순사가 못내 역겹게 느껴졌다.

《면장님, 왜 기다리라고 할가요? 예? 우리보구 송장을 치우라는겔가요? 포로로 잡아가자는 눈치가 아닌가요? 포로로…》

이때 안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야무진 총소리가 울렸다.

황순사가 으악소리를 지르며 전수원을 붙안았다. 전면장은 그를 뿌리치지 않았다. 의지가 되면 의지하라고 그에게 몸을 주며 우두커니 서있었다. 총소리가 울릴 때마다 탄알이 자기 잔등에 박히는듯 황순사는 흠칫흠칫 놀라며 키를 낮추었다. 집안은 인차 고요해졌다.

현관문소리가 드르릉 하고 울리더니 장룡산이 나왔다.

비수리나무밑에서 아까 그 청년이 걸어나오며 《반항했습니까?》 하고 그에게 물었다.

《순순히 뒈지자는 놈이 있소?》

장룡산은 이렇게 대답하며 전수원과 황순사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몸에서 화약내가 확 풍겨왔다.

그는 적의가 식지 않고 황황 불타는 눈으로 그들을 번갈아 쏘아보았다.

《우리는 당신들이 조선사람이고 비록 왜놈의 주구이긴 하지만 개심할수 있다고 보아 용서해주오. 그러나 한가지 약속해둘 문제가 있소. 당신들은 여기에 없었던것으로 되여야 하오. 이 약속을 어기거나 우리의 활동을 저애해나설 때에는 다시 나와서 저자들처럼 징벌하겠소. 알겠소? 우리를 도울만 한 담이 없으면 중립을 지키란 말이요!》

《예… 예…》 황순사가 허리를 굽석거리며 대답했다.

《황순사, 빨리 이 자리를 피하시오. 사건당시 먼곳에 가있은것으로 처신하오. 빨리 뛰시오!》

황순사는 절을 하는것도 잊고 냅다 뛰여나가다가 한번 뒤돌아보고는 어둠속에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쪽을 지켜보던 양복차림의 청년은 어조를 바꾸어 전수원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은 이제 곧 읍으로 달려가시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걸 보고하십시오. 전장원선생건은 빼놓고… 기습현장을 목격한것으로 말하십시오.》

《예?》

전수원은 화닥 놀라서 한걸음 물러서며 화들화들 떨었다.

《여보시오, 떠보자는겝니까? 시험해보자는겝니까? 저두 조선사람입니다!》

《조선사람이면 그렇게 너절하게 사우? 빨리 가서 고발하시오. 우리가 왜 이렇게 하는가는 후에 전장원선생한테서 들으시오!》

《여보시오, 안됩니다. 읍에는 수비대무력이 와있습니다. 기마병들입니다. 그것들이 달려오면 당신들은 빠지지 못합니다!》

비수리나무밑에서 나온 청년이 버럭 역증을 터뜨리며 강박했다.

《젠장, 이건 뭐 흥정거린줄 아오? 빨리 가란 말이요!》

장룡산이 그를 홱 돌아보며 위혁적으로 소리쳤다.

《빨리! 우린 시간이 없소. 시키는대로 안했다간 저주를 받을줄 아시오!》

전수원은 읍으로 달려갔다가 기마병들을 앞세우고 뒤쫓아왔다. 그가 경찰관출장소앞에까지 달려왔을 때 뒤산에서는 벌써 총소리가 끓어번지고있었다.

기마병들의 일부는 말을 버리고 경찰들과 함께 산으로 치달아오르고 주력은 경비도로를 따라 내달렸다. 포위의 태세를 취하는것 같았다. 어둠속에서 총쏘는 불빛이 펑끗거리고 말울음소리가 아츠럽게 터져올랐다. 그사이로 왜놈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쪽인가?》

《이쪽이다!》

《잡아라!》

전수원은 가슴을 화들화들 떨며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아니, 저 어른들이 왜 뛰지 않았는가? 그사이면 두만강을 넘어가고도 남았겠는데 왜?… 왜 뛰지 않았는가? 아하- 아하- 내가 이거 무슨짓을 했는가?)

그는 두손으로 머리를 쥐여뜯고 가슴을 들이치며 몸부림쳤다.

총소리는 산중으로 점점 멀어져가고있었다.

량수천자쪽에서도 폭음이 련이어 터져오르고 자지러지는 총소리가 울려왔다. 어둠속에서 하늘이 허물어져내리고 땅덩어리가 산산이 부서져 날아나는것 같았다. 량수천자의 뒤쪽 어디에선가 불길이 충천하였다. 그 대화재의 불빛은 하늘에 낮게 드리운 구름에 비쳐 온 밤하늘이 시뻘건 화염에 덮인듯 하였다.

뒤번져지는 세상의 격동에 경악한 전수원은 자신도 알수 없는 함성을 지르며 어디라없이 허둥지둥 달려가다가 벌판가운데에서 뚝 멎어섰다.

그는 술취한 사람처럼 비청거렸다.

(아, 아, 그들은 왜 나한테 그런짓을 시켰는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전수원은 머리를 움켜잡고 비틀거리다가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풀덤불속에 쓰러졌다.


×


한편 무장소조는 탄우에 쓰러지는 수풀과 꺾어져내리는 나무가지들에 묻히며 퇴각하였다. 적이 바싹 따라왔을 때에만 대응사격을 하였다.

김창억은 한쪽다리를 질질 끌며 뒤따라갔다.

그는 적의 기마대가 들이닥칠 때 현관문을 차고나와 건물의 모퉁이를 돌다가 총탄에 다리를 부상당하였던것이다.

장룡산중대장이 림기웅변으로 세운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무장소조의 네명은 뒤산의 유리한 위치에 매복한다. 나머지 한명은 방안에서 기다리다가 적이 오면 황급히 뛰여나가 발견되면서 놈들을 산으로 유인한다.

창억은 그 임무를 자기에게 달라고 청원하였다. 그리하여 창억은 현관안에 홀로 남게 되였다.

그는 현관문의 창유리를 통하여 밖을 내다보고있었다. 밤의 고요를 뒤흔드는 말발굽소리에 창유리가 드릉드릉 울리고 기마대의 선두대렬이 국경경비도로로부터 이쪽으로 들어오는 갈림길에 들어선 다음에도 그는 배심이 좋게 다리를 떡 뻗딛고 서있었다.

장룡산은 적이 2백메터지점에 나타나면 탈출하라고 지시하였었다.

그러나 창억은 기마대가 그 지점을 넘어섰을 때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적이 더 가까이 온 다음에 뛰여나가 발견될수록 전수원의 보고에 더 진실성을 부여할수 있기때문이였다.…

창억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숲속을 누벼가면서 뒤따르는 놈들에게 총을 쏘아댔다.

그는 목구멍에서 불이 일고 상처의 아픔이 골수에까지 지끈지끈 사무쳐왔으나 이를 사려물고 걸음을 다그쳤다. 그는 장군님께서 그처럼 관심을 두고계시는 반유격구창설의 기초를 마련하는 일에 자기의 피방울도 떨어져들어가고있다는것을 생각할 때 아픔보다도 자랑이 더 컸다. 그리하여 장룡산이 달려와서 견딜수 있느냐고 묻자 웃으면서 괜찮다고 대답하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적들은 온성의 경찰과 수비대무력뿐아니라 경원에 집결하여 훈춘으로 넘어가려고 하던 보병 한개 대대까지 이 수색전에 동원하였다.

그리하여 온 산발들과 골짜기들에 적의 총성과 호각소리, 꿱꿱 불러대는 소리들이 가득차서 메아리쳤다.

무장소조는 도처에서 맞다드는 수색병들을 쏘아눕히며 퇴각했다. 그들은 위험한 고비들을 여러번 넘기면서 깊은 수림속으로 들어갔다.

새벽녘에 그들은 시야가 환히 트인 높은 산마루에 이르러 숨을 돌리며 요기를 하였다. 적은 수색을 단념한것 같았다. 사위가 고요했다. 날이 훤히 밝아왔다. 뒤쪽에 병풍처럼 둘러선 산봉우리들, 우에 비낀 희푸르스름한 하늘에서는 새별이 반짝이였다. 저아래에 굽어보이는 두만강우에서 흐르는 젖빛안개가 산골짜기들을 따라 기여올랐다.

요기를 끝낸 다음 두 대원이 골짜기로 물길러 내려갔다.

장룡산은 창억이 내의를 찢어 상처를 싸매는것을 도와주고는 일어나서 바위우에 올라갔다. 그는 허리에 두손을 올려놓고 사방을 두리번 두리번 살피며 어느 골짜기로 빠져나가서 두만강을 건늘것인가를 궁리했다.

창억은 바위에 등을 붙이고 기대여앉아 저려나는 다리를 주물렀다.

그는 온성에 나왔다가 일이 맹랑하게 되여 처가집에도 못 들렸다고 중뿔난 생각을 하며 시무룩 웃었다. 그러자 보금이 못견디게 그리워나며 마음이 언짢아졌다.

바위우의 장룡산이 그를 내려다보며 나직한 소리로 물었다.

《우리가 이거 경원땅에 들어선게 아니야?》

《아니요, 온성이요!》 창억은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아-니, 군계를 넘어섰어.》

《챠, 내가 온성땅을 모르겠습니까?…》

그들이 이렇게 옥신각신하는데 두 대원이 내려간 골짜기밑에서 총소리가 련거퍼 울렸다. 새벽의 고요를 깨뜨린 총소리는 산들에 요란하게 메아리쳐 하늘에서 굴러가는 우뢰소리처럼 온 산발들을 들었다놓았다.

《왜놈이다- 피-하-라-》

골짜기밑에서 이런 웨침소리가 터져올랐다.

바위에서 뛰여내린 장룡산이 권총을 빼들고 골짜기밑으로 날아내려갔다.

창억은 번개같이 총에 장탄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뒤에서 버스럭소리가 났다. 그는 선뜩한것이 뒤더수기를 치는것 같아 홱 돌아보았다.

두개의 검은 그림자가 바위에 붙어서 살금살금 기여나오고있었다.

그는 놈들을 향하여 발사하고는 릉선의 반대쪽경사를 따라 냅다 뛰여내려갔다. 돼지멱따는것 같은 놈들의 고함소리와 총소리들이 뒤따라왔다.

탄알이 날아가는 비명이 귀전과 머리우를 스쳤다. 나무가지들이 얼굴을 후려쳤다. 눈앞에서 시퍼런 번개가 펀뜩거렸다. 그는 자기가 어디로 해서 어느 방향으로 뛰여가는지 의식하지 못했다. 그저 적을 달고 동무들한테로 뛰여가서 한데 몰킬것이 아니라 놈들을 분산시켜야 하겠다는 생각뿐이였다.

미끄러져내리기도 하고 딩굴기도 하면서 뛰고 또 뛰던 창억은 자기 몸이 캄캄한 어둠속으로 날아떨어진다는것을 느끼는 순간 (낭떠러지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악소리를 내질렀다. 의식이 혼미해졌다. 밑에서 부드러운 물체가 머리며 등을 때려올려 훈훈한 안개바다속으로 내던지는것 같았다. 그리고 몸뚱이에서 벗어져나온 자기 마음이 그 안개바다속을 유유히 날면서 그지없이 편안한 안식을 누리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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