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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1 회


제 6 장

7

최창화채탄소대에 천리마작업반칭호를 수여하는 모임은 고덕탄광을 비롯한 군내 여러 기관, 기업소, 학교예술소조원들이 출연한 종합공연으로 막을 내리였다. 공연의 마감을 장식한것은 영천중학교 예술소조원들이 들고나온 노래이야기 《삼천리려행단》이였다. 출산후 한달동안 노래와 대사와 률동을 미끈하게 다듬어오다가 고덕탄광 문화회관무대에서 첫 딱지를 뗀 《삼천리려행단》은 이 고장에서 처음 보는 걸작으로 만장을 뒤흔들어놓았다.

객석과 통로를 가득 채운 600명관중은 숨을 죽이고 《삼천리려행단》의 나어린 소녀들과 함께 남행렬차를 타고 통일된 조국의 산야와 도시들을 흥겨운 기분으로 누벼가고있었다. 무대옆에 몸을 가리고 열정적으로 손풍금을 휘둘러대는 송금주의 가슴에도 작품의 세계에 도취되여 무대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관중들의 열기와 흥분이 그대로 와닿았다.

송금주는 려행단을 태운 렬차가 언제 부산항에 와닿았고 언제 종목이 끝났으며 출연자들이 언제 객석에 인사를 하고 무대뒤로 사라졌는지 아무것도 분별하지 못하였다. 그는 그저 장내에 우뢰치는 박수소리와 탄성만을 고막이 터지게 느낄뿐이였다. 모든 감각기관들이 다 수면상태에 들어가고 오로지 청각만이 살아서 만장에 차넘치는 소음을 고스란히 빨아들이는것 같았다.

고덕탄광예술소조의 어여쁜 소개자가 무대앞코숭이에 나가 공연 끝을 알리는 소개를 하고 돌아설 때에야 송금주는 비로소 무아경에서 깨여나 제대로 맞단추를 채우지도 않은 손풍금을 아무렇게나 둘러메고 회관앞마당에 있는 탄광예술소조전용의 훈련실쪽으로 허둥지둥 걸음을 옮기였다.

훈련실문고리를 막 잡아당기려고 할 때 장일남의 아버지 장철우가 뒤에서 불쑥 나타나 인사를 하였다.

《금주선생, 〈삼천리려행단〉을 잘 보았습니다. 나는 울면서 공연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남해에서 고기그물 당기는 률동을 하면서 노래를 부를 때에는 통일이 금시 다 된것 같은 생각이 들어 신바람이 났습니다. 1940년에 고향을 떠났는데 이제는 스무해가 넘었습니다. 선생님, 좋은 공연을 보여주어 고맙습니다.》

장철우의 눈가에는 물기가 어려있었다. 그 물기가 남해가의 한방울의 물이라도 되는것 같아 무심히 스칠수가 없었다.

훈련실에 들어서자 군체신소와 식료공장의 예술소조원들이 우르르 쓸어와 송금주를 에워쌌다.

《송선생, 대단합니다!》

군체신소의 고수머리재담수총각이 선참으로 토해놓는 찬사였다. 무엇이 대단하다는 설명은 없었다. 그러나 송금주는 그 찬사가 오늘 공연의 초점으로 된 《삼천리려행단》에 대한 평가라는것을 의심치 않았다.

《우린 〈삼천리려행단〉에 홀딱 반해버렸습니다.》

대화시의 주역으로 출연한 식료공장예술소조원처녀도 선망에 찬 눈길로 송금주를 바라보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사람사이에서 이런 대화가 오가는 사이 《삼천리려행단》출연자들이 가락지모양으로 그들을 둘러쌌다. 하나같이 긍지와 자랑에 빛나는 얼굴들이였다.

《다들 공연을 잘했어요!》

송금주는 연한 분화장의 덕으로 과원의 사과알들처럼 예쁘장해보이는 소녀애들을 정겹게 둘러보며 약간 자제하는듯 한 음성으로 그들의 공연성과를 축하해주었다. 그 이상의 평가나 칭찬은 필요없었다.

《삼천리려행단》성원들은 그 짤막한 평가가 수백마디의 찬사를 대신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자, 그럼 화장을 지우고 학교로 돌아갑시다.》

송금주의 입에서 이런 지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소조성원들은 손수건에 물을 묻혀가지고 화장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때 태상록 문화회관 관장이 훈련실문을 열고 송금주를 찾았다.

《송선생, 우리 탄광 간부동지들이 선생을 만나보겠다는구만.》

회관응접실에서는 탄때가 올라 하나같이 얼굴이 검실검실해보이는 일군들이 한담을 나누고있었다. 구면은 군당위원장과 지배인, 전차갱 갱장뿐이고 나머지사람들은 모두 초면이였다.

8쌍의 눈동자가 일제히 그에게로 날아왔다. 송금주는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쳐들며 그 눈동자들을 향해 조용하면서도 저력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경사를 축하합니다.》

《허허, 저것 보지. 우리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도 전에 선생이 먼저 선손을 쓰는구만.》

지배인의 곁에 앉은 코마루가 류달리 높고 눈정기가 또릿또릿한 사람이 말마디마다 정이 푹푹 담기는 어조로 말했다. 송금주는 인사소개가 없어도 그가 고덕탄광 당위원장이라는것을 알아맞추었다.

보통로동자들처럼 인상이 푸수하고 차림새와 몸가짐도 텁텁하였다.

《선생에 대한 소문은 지배인동무를 통해 많이 들었소. 영천중학교에서 오늘 세 종목이나 준비해가지고나와 우리 탄광의 천리마기수들을 축하해주었는데 정말 고맙소. 영천중학교의 예술소조로 오늘행사가 더 빛을 냈소. 군당위원장동지, 그렇지 않습니까?》

탄광당위원장은 입가에 서글서글한 미소를 담고 키가 작달막하면서도 다부지게 생긴 군당위원장을 돌아보았다. 군당위원장은 마치 그가 한 말이 자기자신에게 쏟아진 평가이기나 한것처럼 숫저운 기색으로 딴전이라도 부리는듯 말했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군당의 그늘밑에 저런 인재가 있는줄은 몰랐거던.》

《우리 로동자구학교에 저런 인재가 없는게 유감스럽군.》

탄광당위원장은 얼굴에 아쉬운 표정을 그리였다. 두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들으며 벙글벙글 웃기만 하던 지배인이 까치다리를 풀고 의자등받이에 허리를 꼿꼿이 붙이면서 흥정이라도 걸듯이 말했다.

《금주선생, 예술소조를 데리고 전차갱과 대사갱에 와서 공연을 해줄수 없겠소? 오늘 무대에 올린 종목들에 가지수를 더 늘여가지고 말이요. 그럼 탄부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소.》

《지배인동지,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생산현장에 나와서 한바탕 탄부들을 선동해보란 말이요. 아마 반향이 굉장할거요. 〈삼천리려행단〉이라는 그 노래이야기는 갱휴계실 같은데서도 할수 있겠지?》

《네, 얼마든지 할수 있습니다.》

《무대가 협소해서 좀 손해는 볼수 있겠지만 그 종목은 꼭 공연에 포함시켜야겠소. 탄부들의 이름으로 부탁하오.》

송금주는 응접실을 나서자 소조원들을 앞세우고 문화회관을 떠났다.

회관주변에는 아직도 수여식이 남긴 여흥이 진하게 떠돌고있었다. 행사장에 왔다가 채 돌아가지 않은 탄부들과 그 가족들이 구석구석에서 오래간만에 만난 친지들을 붙잡고 회포를 나누고있었다. 식당에서 차릴 축하연에 참가할 최창화채탄소대의 천리마기수들이 회관뒤로 난 소로길을 따라 신작로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고있었다.

세명의 꼬마가 소로길옆에서 그들에게 색테프를 던져주고있었다.

분홍색테프의 한쪽끝이 최창화의 목에 휘감기였다. 최창화는 그것을 벗길 생각도 하지 않고 테프를 던진 장난꾸러기의 볼을 다독여주고나서 벌씬벌씬 웃으며 걸음을 옮기였다. 보는것마다가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풍경들이였다. 천리마작업반의 출현으로 하여 탄광은 사람도 산천도 죄다 새로운 모습으로 태여나는상싶었다.

대렬은 문화회관앞의 사택마을을 지나 읍중심부를 남쪽으로 길게 가로지른 간선도로에 들어섰다. 여기서부터는 인도와 차도가 가로수들을 사이에 두고 따로 갈라져있다. 대렬이 인도를 따라 얼마쯤 걸어갈 때 은행건물앞에서 김동주와 고철룡이 송금주앞에 불쑥 나타나 중학시절처럼 소년단경례를 하였다. 그 모습을 보고 소조원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였다.

그러나 송금주는 그들이 그런 식으로 인사하는데 대해 범상하게 여기였다. 김동주와 고철룡은 중학을 졸업한 후에도 옛 담임교원을 만날 때면 내내 소년단경례만을 해왔던것이다. 그 파격적인 인사법으로 그들은 중학시절의 담임교원에 대한 특별한 친근감을 표시하군 하였다.

《오래간만이군요. 무슨 바람이 불어 여기까지 왔나요? 혹시 이 은행에 구좌라도 두고있는게 아닌가요?》

김동주와 고철룡을 만날 때면 늘 그러하듯이 송금주는 오늘도 가벼운 롱으로 그들을 맞아주었다.

《구좌》라는 말에 두 제자는 씩- 하고 웃었다.

《우린 구좌가 없지만 장일남이넨 구좌가 있다고 했습니다. 장수네도 그렇구요. 하긴 지금이야 탄부들이, 로동자들이 잘사는 세상이 아닙니까.》

이태사이에 키가 한뽐이나 자라고 풍채가 름름해진 김동주가 변성기에 접어든 목소리로 점잖게 말했다. 사람이 어쩌면 두해사이에 저다지도 몰라보게 달라질수 있을가. 그는 손풍금건반들을 유심히 굽어보다가 고개를 쳐들고 벌쭉 웃었다.

《선생님, 어째서 그런지 은행건물앞에 서있기가 멋적습니다. 저기 조용한데로 갑시다.》

은행에서부터 50m쯤 떨어진 오동나무밑에 이르자 김동주는 주머니에서 종이쪽지를 꺼내여 송금주앞에 내밀었다.

《우선 이것부터 봐주십시오.》

《이건 무슨 쪽지예요?》

《최창화아저씨가 부탁한겁니다.》

《그래요, 어데서 만났게?》

《공연이 끝난 다음 회관을 나서다가 만났습니다.》

《그러니 동주네도 공연을 구경한게군요.》

《네.》

《대단한데요. 회관 수위의 드살이 보통이 아니라던데…》

《그런데 오늘은 어른이건, 아이들이건 다 무사통과였습니다.》

《탄광에 경사가 생기니 수위도 마음이 넓어진 모양이군요.》

송금주는 쪽지를 펼쳐들었다


송금주선생에게 씁니다.

정말 멋있습니다. 힘이 납니다.

통일된 조국을 노래한 《삼천리려행단》원들의 생기발랄한 모습을 보면서 석탄을 더 많이 캐야겠다는 생각을 또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미래를 열렬히 사랑하는 송선생의 미더운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우리 소대의 탄부들에게 《삼천리려행단》과 같은 옥동자를 선물한 금주선생과 그 제자들에게 진심으로 되는 감사를 보냅니다.

최창화


모든 사람들이 《삼천리려행단》을 론하고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충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축복을 보내주고있었다. 송금주는 《삼천리려행단》으로 하여 자기라는 존재가 탄부들과 더 가까와지고 자기의 운명이 그들의 운명과 더 공고히 결합된것만 같은감을 느끼며 쪽지를 양복주머니속에 정히 집어넣었다. 가슴을 부풀게 하는 희열과 행복감으로 하여 몸도 마음도 구름을 타고 아득한 천상으로 끝없이 훨훨 날아가는것 같았다.

무엇이 관객들을 그토록 매혹시키고 흥분시키였는가.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삼천리려행단》을 향해 그토록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내고 거기에 《옥동자》라는 이름까지 붙이게 하였는가. 그것은 작품의 갈피갈피에 흐르고있는 미래에 대한 사랑, 미래를 앞당기려는 정신, 조국통일에 대한 끓어번지는 열망일것이다. 그렇다, 우리 인민은 오늘의 행복에 자만자족하지 않고 더 좋은 래일을 위해 천리마의 기세로 질풍같이 내달리고있다. 저 멀리 지평선에는 사회주의의 완전승리라는 높은 봉우리가 노을속에 거연히 솟아있다.

《창화아저씬 나에게 쪽지를 접어주면서 〈너희네 모교가 이거다!〉하고 엄지손가락을 쳐들어보이지 않겠습니까. 우리 눈으로 보기에도 〈삼천리려행단〉은 기막히게 좋았습니다.》

김동주는 가로수그늘의 종심에 송금주를 세우느라고 옛 담임교원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잠자코있던 고철룡이 손가락마디들을 꺾으며 점잖게 한마디 하였다.

《아마 선생님의 얼굴이 오늘처럼 환해진적은 없었을겁니다. 마치 백촉짜리 전등빛에 서있을 때처럼… 환합니다.》

《그런가요? 오늘 내 마음이 상당한 정도로 격동된것만은 사실이예요. 그런 격동상태가 얼굴에 반사되지 않을수 없겠지요. 자,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자요.》

송금주는 가로수그늘속에서 빠져나와 네거리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였다. 앞에서는 2렬종대로 걸어가는 예술소조원들의 대렬이 느릿느릿 움직이고 옆에서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첫 제자들이 옛 담임선생의 보폭에 걸음을 맞추며 즐거운 화제를 이어가고있다.

첫 심혼을 바쳐 키운 제자들이여서 그런지 더 사랑스럽고 대견스럽다. 세월이란 문자그대로 류수같다. 아니, 달리는 급행렬차와도 같다.

스물두살때 교단에 선 송금주는 그 급행렬차에 실려 어느덧 스물일곱번째 생일을 쇤 처녀로 되였다. 그사이에 숱한 제자들이 어깨죽지에 날개를 달고 둥지에서 퉁겨난 새들과 같이 그의 곁을 떠나갔다. 군인이 된 제자도 있고 탄부가 된 제자도 있으며 협동농장원이 된 제자도 있다.

대부분의 제자들은 물론 상급학교에 진학하였다. 고덕역사앞에서 처음으로 만났을 때 풋밤송이처럼 까시시하던 김동주가 이제는 리수복영웅이 적의 화구를 막을 때의 나이와 맞먹는 18살의 대장부가 되여 1m 70이나 되는 키를 자랑하고있다. 남들의 말밥에 자주 오르던 어제날의 뒤골목대장 고철룡은 인민군후방가족들에 대한 지원을 잘하여 군청년동맹열성자회의 주석단에까지 오르는 인물로 되였다. 그들의 어른스러운 말투와 진중한 행동거지는 오히려 송금주를 옹색하게 하였다.

《선생님, 그 손풍금을 왜 선생님이 직접 메고 다니십니까? 아이들에게 메우지 않고…》

김동주가 느닷없이 꺼내는 말이였다.

《왜요? 내가 손풍금을 메고다니는게 꼴불견인가요?》

《꼴불견은 아니지만 고립무원해보입니다. 학부형들이 보면 속으로 영천중학교 예술소조원들을 욕할수 있습니다. 스승도 섬길줄 모르는 철딱서니없는 계집애들이라고 손가락질할수 있습니다.》

《뭘 그렇게까지야.…》

송금주는 김동주의 말에 일단의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자기는 문제를 그런 각도에서 보지 못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자기가 손풍금을 메고다니면 뭇사람들의 눈총이 학생들에게로 돌아갈수 있다는 리치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선생님, 저희들이 학교까지 메다주겠습니다.》

김동주는 손풍금을 통채로 닁큼 들어 송금주의 어깨에서 벗겨내리였다. 그러자 송금주는 빌붙듯이 말했다.

《동주, 이러지 말아요.》

제자의 어깨우로 반원을 그리며 날아오르는 손풍금의 멜끈을 얼른 잡아쥐고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하지만 김동주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 마지막날인데 오늘은 우리가 하는대로 내버려두십시오.》

송금주는 마지막날이라는 의미심장한 말마디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건 무슨 소리예요? 그럼 오늘만 나를 보고 래일부터는 서로 만나지도 못한단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선생님, 나하구 철룡인 인민군대에 나가게 되였습니다. 래일 새벽차로 도에 올라갔다가 모레는 군복을 타입고 초소로 떠나게 됩니다. 선생님에게 작별인사를 드리려고 문화회관에도 갔댔습니다. 저녁 일곱시까지는 모두 집결해야 합니다.》

김동주는 손풍금의 멜끈을 꽉 틀어쥐고 자랑스러운 얼굴로 송금주를 바라보았다. 송금주는 무심결에 팔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집결시간이 저녁 일곱시면 3시간동안의 여유가 남은셈이다. 그는 그 3시간의 여유중에서 자기가 차지할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를 재빨리 타산해보았다. 1시간? 너무 적다. 1시간동안에 도대체 무슨 일을 할수 있겠는가. 그러면 1시간반? 그건 너무 욕심스러운 계산법이다. 기본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아니겠는가.

《동주, 철룡이, 우선 인민군대에 입대하는 영예를 지니게 된 동주와 철룡이를 열렬히 축하해요. 중학시절부터 군대, 군대하더니 끝내 소원을 이루게 됐군요. 이건 동무네 경사이자 내 경사예요.》

이런 류의 인사는 누구나 다 아는 상식에 지나지 않는다. 하기는 내자신도 상식이상의 특별한 례절을 차릴수는 없다. 하나 입대하는 제자들은 성의를 다하여 인상깊이 바래주어야 한다. 동주나 철룡이가 먼 후날에 가서도 두고두고 잊지 못할 특색있는 전송은 할수 없을가. 그러자면 다문 며칠이라도 시간적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못난이들 같으니,

군대에 입대하게 되였으면 하루전에라도 미리 귀뜀할것이지.

《가서 사진을 찍자요, 입대기념으로…》

《찍읍시다!》

두 제자도 기꺼이 호응하였다. 그들의 얼굴에 촉수높은 환한 웃음발이 번지였다. 입대를 앞둔 제자와 스승사이의 사진보다 더 훌륭한 기념물이 어디 있겠는가. 사진은 사랑과 친선의 증인이며 서로가 상대를 영원히 잊지 않는다는 의지의 물질적인 징표이다. 5분이면 사진관에 가닿을수 있고 10분이면 차례를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을수 있다. 푼푼하지는 못하나 사진을 찍을 시간적여유를 가지게 된것은 천만다행이다.

송금주는 귀전에 초침소리가 따라오는것 같은 촉박을 시시각각으로 느끼며 경황없는 걸음을 옮겨놓았다. 머리속에서는 두 제자에게 해주고싶은 말마디들이 두서없이 맴돌고있었다. 조국보위는 공민의 신성한 의무라는 헌법의 조항을 그대로 되풀이하기에는 그들의 사상정신적준비가 너무나도 빈틈이 없다. 중학생들까지도 다 아는 상식으로 구태여 그들을 따분하게 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 리수복영웅의 시를 읊으며 그처럼 살라고 당부할가, 아니면 인생은 통털어 명곡으로 되여야 한다는 내자신의 좌우명을 그들에게 그대로 심어줄가.

《선생님, 우리는 한평생 군복을 입고 살겠습니다.》

김동주가 하는 말에 송금주는 정신을 번쩍 차리였다. 지난해에 입대한 리기석과 한영춘도 그런 결의를 피력했었다. 그것은 중학시절에 송금주자신이 심어주었고 고등광업기술학교 교원들이 보석처럼 련마해온 넋의 반영일것이다. 이런 제자들에게 훈시는 해서 뭘하며 당부는 또 무엇때문에 하겠는가.

《선생님, 우리가 대학에 안 가는게 섭섭치 않습니까?》

고철룡이 고개도 쳐들지 않고 넌지시 물었다.

《왜 섭섭하겠어요. 병사시절만큼 훌륭한 대학은 이 세상에 없다고 봐요. 인민군대는 싸움에서도 이거, 예술에서도 체육에서도 이거, 도덕품성에서도 이거예요.》

송금주는 엄지손가락을 곧추 쳐들고 그것을 네번이나 열정적으로 흔들었다.

《병사시절이 얼마나 훌륭한 대학인가 하는건 창화아저씨와 호철아저씨만 봐두 잘 알수 있지요 뭐. 요즈음은 시집가는 처녀들도 제대군인들만 찾는다고 그래요.》

김동주는 이런 말을 하고나서 실언이라도 한 사람처럼 손으로 입을 가리고 점적스러운 눈길로 송금주를 쳐다보았다. 고철룡도 김동주의 허벅다리를 꼬집으며 옛 담임선생의 얼굴을 슬쩍 훔쳐보았다.

《제대군인들을 고르는 처녀들이야 똑똑한 처녀들이지요. 가만, 나도 그럼 제대군인총각을 잡아볼가.》

송금주가 김동주의 말을 롱으로 받아넘기자 두 제자는 박수로써 호응하였다. 내가 어느새 이 제자들과 이런 대화까지 스스럼없이 나누게 되였을가. 그사이에 나란 인간이 교육자의 체면이라는 갑옷을 벗어던진탓일가, 아니면 동주나 철룡이가 처녀, 총각들의 움직임까지 거침없이 훔쳐보는 능청스러운 중닭들이 된탓일가. 작별을 앞두고서는 누구나 솔직해지고 겸허해지고 담대해진다더니 그런 리치가 작용했을수도 있다. 송금주는 제자들과 함께 교원과 학생이라는 장벽을 초월하여 인정세태를 론하고 인생대사까지 들먹거리게 된것이 흡족하였다. 그러나 인생과 세태를 두고 그 이상은 더 판을 크게 펼치고싶지 않았다. 판만 넓히면 제자들이 파놓은 어떤 함정에 걸려들어 궁지에 빠질수도 있다는 아슬아슬한 예감이 들었다. 그는 화제를 다시 병사생활로 돌리였다.

《전후 10년사이에 우리 군대와 인민은 조상들이 수천년을 두고도 해내지 못한 수많은 창조물들을 건설했어요. 그런데 적들은 이 창조물들을 해치려고 칼을 갈고있어요. 동주와 철룡인 우리 수령님께서 당부하신것처럼 일당백의 장수들이 되여 선렬들이 피로써 찾아준 조국과 혁명의 전취물들을 목숨으로 지켜야 해요. 그러니 병사가 된다는것은 곧 조국과 인민앞에서 가장 떳떳하고 자랑스럽고 신성한 최고의 대학, 최고의 학부에 입학하는것으로 된다 그거예요.》

《선생님, 그 말을 들으니 더 힘이 납니다.》

고철룡이 두손을 힘있게 마주치며 하는 말이였다.

그리 크지 않은 사진관안은 오늘따라 손님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손님들의 대부분은 초모생들과 그 가족들, 동창생들, 친지들이였다.

송금주는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들고 표파는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나 김동주가 어느새 그를 옆으로 슬쩍 밀치며 바람처럼 표파는 곳에 날아가 간막이너머로 손을 밀어넣었다.

《그러면 인사가 거꾸로 되는거예요. 선생님체면도 봐줘야지요.》

송금주는 별로 덤벼치는 기색도 없이 김동주의 귀전에 얼굴을 바투 가져다대고 귀속말로 말했다. 그러자 그 말을 알아들은 출납원처녀가 맞장구를 쳤다.

《송선생말이 옳아요. 자, 이 돈은 반환해드립니다.》

처녀는 김동주가 들이민 돈을 도로 내보내고나서 송금주에게 물었다.

《몇장 찍겠나요?》

《넉장 찍읍시다. 그러되 〈입대기념〉이라는 글자와 년월일을 꼭 새겨주세요.》

30분을 기다려서야 송금주네 차례가 왔다. 맨 첫장은 셋이서 같이 찍고 두번째, 세번째는 송금주와 두 제자가 따로따로 2인사진을 찍고 마지막사진은 김동주와 고철룡이 어깨를 겯고 찍었다.

사진을 찍고나니 마음이 다소 흐뭇해졌다. 해는 어느새 서산마루로 기울고있었다.

이제 무엇을 더 할수 있을가. 무엇을 더 해야 나도 만족스럽고 동주나 철룡이도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될수 있을가. 송금주는 설핏해지는 저녁해를 초조한 눈길로 비끄러매다가 손목시계를 얼핏 내려다보았다. 일곱시까지는 1시간 50분이 남아있었다.

동주나 철룡이를 기쁘게 해줄수 있는 뭐가 없을가. 욕심같아서는 제손으로 밥이라도 한끼 지어먹이고싶었지만 시간이 없으니 그건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무엇을, 무엇을 하고 속으로 같은 말을 되뇌이던 송금주의 머리에 문득 정애경이 소포로 보낸 평양빵이 불꽃처럼 펑끗- 하고 떠올랐다.

그래, 그거지, 그거다. 지금의 정황에서는 그보다 더 특색있는 기념품이 있을수 없다.

송금주는 만년필과 수첩, 목달개를 각각 하나씩 넣어 포장한 두조의 기념품과 함께 그 평양빵꾸레미를 안고 역으로 줄달음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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