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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 회


제 5 장

1

뜨락에는 해볕이 따스하게 들었다.

퇴마루에는 사령관동지의 신발과 국제당파견원의 구두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방안에서는 말소리가 도란도란 흘러나왔다. 장군님께서는 대왕청쪽에 나가 토지개혁을 통하여 혁명적기세가 앙양된 근거지인민들을 영농사업에 적극 동원하며 구정부와 공청, 반제동맹, 부녀회 등 대중단체들의 사업을 지도하실 계획이시였는데 그 일들을 모두 뒤로 미루시고 국제당파견원을 만나주신것이다.

차관에 시원한 샘물을 떠가지고 마당에 들어선 전령병 리성림은 좀 뾰로통해진 얼굴로 국제당파견원의 목구두를 흘겨보았다.

그는 국제당파견원이 자기보고 어쩌지 않는데도 공연히 속이 꼬였다.

첫째로는 그가 너무 파고드는듯 한 눈길로 자기의 군복, 신발, 총 등의 차림새를 살펴보는것을 비롯하여 근거지의 모든것에 대하여 지나치게 호기심을 드러내는것때문이였다. 둘째로는 자기가 마음속으로 언짢게 여기는 권일균이와 각별한 사이인것 같아서였다. 국제당파견원이 몇해전에 녕안쪽에 나왔다가 적들의 추격을 받은 일이 있는데 그때 권일균이 필사의 엄호사격으로 그의 생명을 구원해주었다는 소문이 사람들속에서 수군수군 돌아가고있었다.

그는 장군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를 통하여 국제당에 대하여 약간의 상식을 가지고있었으므로 우선 저 사람은 먼곳에서 왔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저명한 활동가들과 한데 어울려 살았을것이며 토레즈와 꾸씨넨이나 가다야마 센과도 친교관계가 있을지 모르며 어찌하면 이오씨프 쓰딸린도 만나보았을것이다.

(그런데 남의 눈은 왜 그렇게 빤히 들여다보는가? 체면없이, 쳇!)

리성림이 퇴마루로 올라서려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농민복차림의 김중권이 뜨락으로 황급히 들어오고있었다. 봄바람에 검스레하게 탄 그의 얼굴에는 초조한 빛이 어려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 계시오?》

김중권은 속삭이는 소리로 물었다.

리성림은 그를 반겨 방긋 웃었다.

《온성에서 들어오는 길입니까? 국제당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국제당에서?》

김중권은 퇴마루의 낯선 목구두를 내려다보고는 좀 난감해진 얼굴로 전령병을 쳐다보았다.

《가있으십시오. 손님이 가면 제가 알리지요.》

《부탁하오!》

방안에는 심각한 기운이 가득차있어 발을 들여놓을 틈조차 없는듯싶었다.

장군님께서도 리기동이도 심각한 얼굴로 마주앉아있었다. 성림이 들어서자 국제당파견원은 하던 이야기를 중둥무이하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성림은 장군님옆에 있는 원다반에 물주전자를 소리없이 놓고는 얼른 물러서려고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를 불러세우시였다.

《밖에 누가 왔더랬소?》

《김중권동지가 돌아왔습니다.》

《어서 들여보내오.》

《병실로 갔습니다.》

《온성에서 무슨 일이 생겼다오?》

《모르겠습니다.》

《그 동무가 벌써 돌아온걸 보니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것 같소. 가서 데려오오!》

전령병이 나가자 사령관동지께서는 다시 국제당파견원을 돌아보시였다. 그는 얼굴인상부터가 진중한 사람이였다. 뒤로 약간 넘어질사 한 높은 이마에 얼굴이 보기좋게 기름한 그는 송구스러운듯 눈을 내리떴다.

동장영의 말에 의하면 본명은 리기동인데 반경유라는 별명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반이란 성뒤에 만주성당위원의 직책을 략어로 붙여 반성위라 부른다고 한다.

《제가 시간을 너무 침범하는게 아닙니까?》

사령관동지께서는 시원하게 미소를 지으시였다.

《괜찮습니다. 이렇게 만나기가 드문 일인데 시간에 구애되지 말고 띠를 풀어놓고 이야기합시다.》

그러시고는 차관을 들어 고뿌에 물을 부으시였다. 고뿌에 물이 떨어지는 쪼로록소리가 방안의 고요를 더욱 짙게 하였다.

반성위는 눈을 내리뜬채 모두숨을 조용히 내쉬였다.

《한마디로 말하여 유럽과 아시아에서 파시즘의 대두로 세계대전의 위험은 더욱 커졌고 국제공산주의운동앞에는 엄중한 난관이 조성되고있습니다. 일본에서도 파쑈분자들의 거듭되는 쿠데타끝에 군부독재정권이 수립되여 세계제패와 대륙침공의 열을 미친듯이 올리고있습니다.

전세계 모든 대륙의 인민들 특히 약소국가인민들의 운명에는 엄중한 위험이 닥쳤습니다. 도이췰란드와 일본에서의 사태발전만 보아도 파시스트들의 첫째 공격대상이 공산주의운동이라는것이 명백하여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파시즘의 반공공세로부터 자기 대렬을 보존하고 그 전투력을 백방으로 강화하겠는가? 어떻게 하면 파시즘의 대두를 막고 세계대전의 참화에서 인류를 구원하겠는가? 오늘 국제공산주의운동앞에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전략과 전술을 세울 절박한 과제가 나서고있습니다.

옳바른 전략과 전술이 없이 파쑈의 반공공세앞에서 대렬이 와해되고 변절하는자들도 생기고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하여 김일성동지와 충분한 의견을 나누고싶어 불원천리하고 찾아왔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저으기 감동되시여 미소를 지으시였다.

《고맙습니다.… 모스크바에서 하바롭스크까지, 하바롭스크에서 할빈까지, 할빈에서 여기까지 얼마나 먼길입니까? 정말 오시느라고 수고했습니다.》

《코민테른에는 김일성동지의 투쟁이 잘 알려져있습니다.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고있습니다. 저는 조선사람으로서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올 때마다 늘 자랑스러웠습니다. 이제는 복도를 걸어도 머리를 뻐젓이 들고다닙니다. 이전에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파쟁의 추태때문에 외국의 벗들앞에서 조선사람이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웠습니다. 동지를 만나고싶었습니다. 몹시… 몹시…》

그의 눈에는 심각하고 진중한 그 무엇이 번쩍이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시였다.

《고맙습니다!》

반성위의 얼굴이 밝아졌다.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말씀을 이으시였다.

《국제파시즘의 대두에 대해서는 저도 많이 생각해왔습니다. 우선 파시즘의 정치리념자체에 그자들의 멸망의 합법칙성이 내포되여있다고 저는 보아왔습니다. 얼마전에 한 신문을 보니까 히틀러가 나치스당의 한 간부회에서 이렇게 줴쳤습니다. 〈국민중에서 가장 우량한 두뇌의 소유자를 택하여 그에게 지도적지위를 주어야 한다.… 다수가결의 존재는 결코 우리가 허용할바가 아니다. 오직 책임을 진 개인이 존재할뿐이다.…〉 보십시오, 제놈이 독재를 하겠다는 소리입니다. 히틀러는 이 연설에서도 제놈의 정치적야심을 로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국내의 모든 정치세력들과 인민대중을 무참히 짓밟는 무서운 독재의식, 민족적으로는 아리아족의 우월성을 광신적으로 주장하며 세계의 다른 모든 민족들을 짓뭉개놓고 노예화하려는 지독한 민족배타의식의 고취… 초인철학에 고무되고있는 바로 이런 열광에 파시즘멸망의 기본요인이 배태되여있지 않을가요? 일본의 파쑈군벌들도 조금도 다른 점이 없습니다. 아니, 봉건적인 사무라이정신에 뿌리를 두고있어 더 야수적입니다. 이에 대처하여 우리는 인민대중에게 그 어느때보다도 철저히 의거하고 그들을 반파쑈, 반침략투쟁에 적극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로동계급과 그의 동맹자인 농민뿐아니라 각계각층의 광범한 인민대중을… 정견, 신앙, 재산정도, 민족별의 차이를 불문하고 각계각파의 모든 력량을 반침략, 반파쑈전선에 묶어세워야 합니다. 이것을 해내는가 못해내는가에 따라 우리의 승패가 결정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 근거지에서도 좌경적인 쏘베트로선을 비판하고 광범한 인민대중을 묶어세울수 있는 인민혁명정부로선을 관철하고있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토지개혁을 하면서도 친일매국적인 지주들의 토지만 몰수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사상이 다른 민족주의군대인 중국인반일부대들과도 련합전선을 형성하려고 합니다.》

김일성동지, 저… 쏘베트로선을 비판하신데 대해 설명을 좀 해줄수 없겠습니까? 좀… 약간한 몰리해가 생겨서 그럽니다. 일부 사람들속에서…》

《무슨 일이 있은게로군요.》

《코민테른기관지 〈공산국제〉에 실리는 여기 유격근거지에 대한 기사들을 읽으셨겠지만 여기서 벌리시는 시책들은 커다란 감명을 불러일으키고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당황케 한 얼마간의 통보자료들과 무기명서한이 날아들었습니다. 무기명서한은 훈춘쪽에서 보낸것 같습니다. 거의 백서의 성격을 띤 장문의것이였는데 그 서한의 필자는 여기 근거지에서는 사실상 로씨야사회주의혁명의 경험을 비판하고있다, 유격대는 혁명의 국제적임무를 저버리고 국내진출부터 단행하고있다, 토지의 개인소유를 장려함으로써 자산계급의 부활을 조장시키고있다… 이렇게 썼습니다.

일부 사람들속에서 그 서한이 충격으로 되여 론쟁이 생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필자가 무기명으로 서한을 쓴것은 자기의 신변보호를 위한것이라고 추측하고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저으기 놀라시였으나 침착하신 안색으로 물고뿌를 그의 앞으로 밀어놓으시였다.

반성위는 고뿌를 받아 물을 마시였다. 그는 정신이 쩡 저려드는듯 눈을 빛내이며 입을 벌렸다.

《하, 샘물이 이렇게 시원합니까?》

《예, 여기 물맛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신변보호라니 그건 도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우리가 어느 누구의 생명이라도 함부로 위협했단 말인가요?》

《아니, 그런게아니라 그건 어디까지나 여기 실태를 모르는 몇사람의 추측이지요.》

《우리는 쏘베트의 좌경로선을 비판할 때에도, 토지의 공동소유, 공동경작을 비판할 때에도 최대한의 민주주의를 발휘하도록 애써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사표시를 할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왕청에서만도 전체 인민대중의 저주를 받는 단 한사람의 일군만이 해임되고 과오를 범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아직도 제자리에서 공작하고있습니다. 혁명실천을 통하여 깨닫게 하여 의사일치를 도모하자는것이 우리의 일관한 방침입니다. 그런데 추측이나마 그런 생각을 하다니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반성위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의 꾹 다문 입가장자리에 깊은 주름살이 잡혔다.

《있을수도 있는 인식부족이겠지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필자가 무기명으로 서한을 쓴데 무엇인가 흐린 구석이 있지 않는가 하고 어렴풋이 생각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장난으로 우리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킬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속이 설익은 사람인것 같습니다.

좀 생각해보십시오. 쏘베트형태의 정권을 세우고 좌경적시책을 실시한것을 비판한것이 어째서 로씨야혁명의 경험을 비판하거나 부정하는것으로 됩니까? 어째서 우리 유격대가 조국에로 진출한것이 민족주의적편견에 사로잡힌 행동으로서 혁명의 국제주의적의무를 저버린것으로 됩니까?》

장군님의 음성은 점점 의분에 떨리시였다.

《혁명은 수출할수도 수입할수도 없는것입니다. 혁명은 민족국가의 구체적인 력사적, 사회적모순을 반영하여 폭발되여오르는것입니다. 우리는 조선혁명을 세계혁명의 한 고리로 보고있으며 자기 나라 혁명을 잘하는것이 곧 세계혁명에 이바지하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타협할수 없는 우리의 신념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두만강을 건너 조국으로 진출했습니다. 왕재산이라는 산에서 회의를 열고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할 방침을 내놓았습니다. 우리는 조선혁명가들이기때문에 무엇보다도 먼저 조선혁명을 생각해야 하며 조선혁명을 잘해야 하는것입니다. 우리의 이 결심은 확고부동합니다. 국제당이 내놓은 1국1당제원칙만 알고 우리의 이 결심을 리해 못하는것은 터놓고 말하면 대국주의적이며 좌경기회주의적인 사고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제당이나 어느 다른 나라 당이 우리 혁명을 대신해줄수 없는것은 자명한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조선혁명은 우리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책임지고 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 신념과 감정은 어느 누구도 꺾을수 없습니다!》

《저도 조선사람입니다. 조국에 대한 향수는 이국의 하늘밑에서 살아온 이십여년간 한시도 제 가슴을 괴롭히지 않은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조선공산주의자들의 그 숭고한 감정을 어찌 외면할수 있겠습니까… 저에게 쏘베트를 비판하게 된 근거에 대하여, 토지개혁에 대하여, 혁명군의 국내진출의 목적과 의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하여주실수 없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눈길을 떨구시고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

《국제파시즘의 대두를 반대하는 투쟁과 여기 근거지의 현실은 하나의 고리로 련관된 문제라고도 볼수 있습니다. 내 설명을 듣는것보다 동지가 직접 인민대중속에 들어가서 근거지의 실태를 료해해보는것이 어떻습니까? 이곳 생활을 체험도 해보면서 말입니다.》

반성위의 눈에 기쁨이 번쩍이였다.

《아니,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만약 동지가 원한다면 우리는 혁명조직들에 지시를 내려 동지의 사업조건과 생활상편의를 적극 도모해주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내키는대로 돌아다니며 찔러보고 따져봐도 좋습니다.》

장군님의 이런 호방한 제의에 반성위는 저으기 당황해하였다. 그는 몸을 뒤로 젖히며 밝게 웃었다.

김일성동지, 제발 그런 말씀은 말아주십시오. 허허허…》

《아, 아, 알만합니다. 좌우간 그렇게 하기로 합시다.》

장군님께서도 환하게 웃으시였다.

이때 김중권이 들어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를 반성위와 인사시키시였다.

김중권은 무뚝뚝한 얼굴로 그와 인사를 나누고는 책상옆에 자리를 잡고앉아 온성형편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반성위는 자기가 들어서는 안될 이야기라고 생각한듯 움쭉 일어서려고 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손을 들어 그를 앉히시였다.

《앉아계십시오. 함께 들읍시다. 들을 필요가 있을겁니다.》

국경의 봄바람에 얼굴이 검스레하게 탄 김중권에게서는 조국의 봄기운이 확확 풍겨오는듯 하였다.

그는 침착한 목소리로 보고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지금 조국인민들은 들끓고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 왕재산에 나왔다 가셨다는 소문이 두만강대안 6읍에 파다하게 퍼진데다가 근거지에서 지주의 토지를 빼앗아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준다는 소문이 건너가 인민들의 혁명적기세는 정말 굉장합니다.

여기 유격근거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하루이틀사이면 두만강을 건너가 인민들속에 쫙 퍼집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저으기 기뻐하시였다.

《그렇게 빨리?》

《전장원동무의 활약이 큽니다. 그 동무는 활기를 되찾고 본때있게 일하고있습니다. 장원동무는 서숙학생들과 야학생들에게 글공부를 배워주는 틈틈에 근거지소식을 이야기해줍니다. 그러면 그들의 입을 통하여 그 말이 이튿날이면 온 읍에 쫙 퍼지는 판입니다. 이제 격문도 써서 장마당, 역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데 뿌릴 계획이랍니다. 어찌나 열정에 북받쳐 일하는지 로출될가봐 우려됩니다. 제가 떠나올 때 헤여지기 몹시 섭섭해했습니다. 장군님께 꼭 인사를 전해달라고 거듭거듭 당부했습니다.》

《그 동무가 상처도 하고 생활이 매우 어려울텐데…》

《지금은 윤보금녀성의 어머니가 도와주고있습니다.》

《그럼 좀 괜찮겠지만… 어쨌든 남이 끓여주는 밥인데 안해가 끓여주는것보다야 살에 가겠소.…》

김중권의 보고에 의하면 온성의 혁명조직들은 활발하게 움직이고있다.

농민협회는 전장원을 도와 진명서숙교사까지 이전 불타버린 자리에 새로 지었다. 남자들뿐아니라 많은 녀성들도 야학에 나와 공부를 하고있다. 전장원은 근거지에서 찍어내보낸 《농민독본》으로 그들에게 반일교양을 꾸준히 하는 한편 조직을 확대해나가고있다. 한편 왜놈들은 근거지와 내통하고있는 《통비분자》들을 색출한다고 피눈이 되여 날치고있다. 얼마전에는 도경무부장이란자가 온성에 내려와서 살기를 풍기며 돌아쳤다.

그놈은 수많은 애국자들을 체포학살한 인간백정이다. 독을 내뿜는 그놈의 매눈앞에 서면 누구나 가슴속에 성에가 불리고 개들은 십리밖에서도 꼬리를 사리며 도망친다고 하였다.

경무부장놈은 관리들을 모아놓고 김일성사령관이 부대를 거느리고 백주에 두만강을 건너 왕재산에까지 나왔다가 무사히 돌아갈수 있었고 또 국운을 위협하는 그 엄중한 사건이 상부에 즉시 보고되지 않은것만 봐도 너희들전체가 용공화되였거나 너희들중에 《통비분자》가 있다는것을 말한다고 줴쳤다. 놈은 너희들속에서 발생한건이니 너희들스스로가 《통비분자》를 색출하라고 호령하였다.

《그런데 참 공교로운 일이 생겼습니다.》 하고 김중권은 말하였다. 《그놈이 관리들을 보고 리념상으로 공명되여 용공을 할수도 있고 공산무장대의 위협에 투항하여 〈통비분자〉로 될수도 있고 또 친척관계로 말려들수도 있다고 가정하면서 우연히 전수원면장을 쏘아보았는데 그 바람에 다른 몇명의 관리들도 그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러자 면장이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면서 의자에서 굴러떨어졌답니다. 아마 사촌동생인 전장원동무때문에 속이 켕겼던것 같습니다.》

《전장원동무때문에?》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물으시였다.

《예, 무슨 기미를 느끼고있는 모양입니다. 그후 전면장은 며칠 병원에 들어가 누워있다가 나왔는데 요새는 아주 너절하게 놉니다. 경찰놈들을 집에 끌어들여 술대접을 하는가 하면 순사들을 끌고 진명서숙을 비롯한 면내의 학교들과 야학들에 달려들어 교재내용과 공책들을 검열하고 면에서 생기는 소소한 일까지 죄다 경찰에 고해바친답니다. 풍인동주재소놈들이 제일 악착하게 놉니다. 하야시와 최순사에 대한 인민들의 원한은 극도에 달하고있습니다. 전장원동무는 놈들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하고있는 사촌형때문에 몹시 불안해하고있습니다.》

《그렇소?》

《예… 제 보기에도 전면장은 장원동무한테서 무슨 기미를 느낀게 분명합니다. 그가 입을 잘못 놀리는 날에는 온성조직은 엄중한 위험에 빠질수 있습니다. 온성조직은 여기서 무장대를 파견하여 하야시와 최순사 그리고 전면장까지 처단해줄것을 요구합니다.

저놈들을 눌러놔야 전장원동무한테도 유리한 활동조건이 보장될것같습니다.》

방안공기는 긴장으로 얼어붙었다.

반성위는 엄청난 현실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사령관동지와 김중권을 번갈아 돌아보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눈을 지그시 내려뜨시고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무릎우에 놓으신 주먹을 부르쥐시였다.

《그놈들한테 여기서 온성까지 하루걸음이란걸 깨우쳐줘야겠소. 된매를 안겨야 정신이 들겠는 모양이요.》

그러시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시였다.

《전면장은 좀 두고봅시다.》

《이제는 더 기대할게 없을것 같습니다.》

《왜놈들은 그 사람을 믿소?》

《장원동무 보고에 의하면 늘 감시하면서 밤에 집주변에 밀정들까지 매복시킨답니다.》

《면장자신은 그걸 안다오?》

《장원동무가 일깨워줬는데 반신반의하더랍니다. 자기를 왜놈들한테서 떼내기 위한 하나의 선동이 아닌가 해서…》

《선동이? 허… 그럼 왜놈들한테 무슨 신의라도 있다고 여기는겐가? 청맹과니가 다 됐군.… 좌우간 전면장에 대해서 좀더 심중히 생각해봅시다.》

반성위는 그이를 한동안 우러렀다. 국내에 있는 일제주구의 생사판가리가 여기서 론의되는것도 놀랍지만 장군님께서 그의 운명에 이토록 신중하게 대하시는것이 더욱 놀라왔던것이다.

저녁녘에 사령관동지께서는 반성위와 겸상을 하여 저녁식사를 드시고 소왕청하로 내려가 내가의 풀밭을 거니시였다. 하늘에서 불타는 노을빛이 비껴들어 내물은 온통 시뻘겋게 번들거렸다.

시크무레한 풀향기와 시원한 물비린내가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식혀주었다. 풀벌레들의 야릇한 울음소리가 내가에 가득 찼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풀가지로 시끄럽게 달려드는 하루살이떼를 휘휘 쫓으며 반성위의 생활체험담을 듣고계시였다. 그는 여기로 나오면서 고생한 이야기며 국제당에서의 생활에 대하여 이것저것 말하였다. 문득 이야기를 그친 반성위는 발끝으로 풀포기들을 스적스적 헤치며 묵묵히 걸어가다가 심각한 얼굴빛으로 그이를 돌아보았다.

《낮에 이야기된 그 면장은 어떻게 처리됩니까?》

《예?… 면장이요? 그 문제는 좀더 생각하고 토론해봐야 되겠습니다.》

《예.…》

《그 사람은 지금은 면장이지만 한때는 독립운동자들을 도운 일도 있고 애국적인 지조와 민족적량심도 있던 사람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를 중립만 시켜놓아도 온성에 있는 혁명조직에는 아주 유리한 형세가 조성됩니다. 더 나가서 그를 포섭하는데 성공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일제의 말단통치기관을 틀어쥐고 마음대로 역리용할수 있을것입니다. 그 사람문제는 더 깊이 생각해봐야 되겠습니다.》

《그 면장은 여기서 자기 운명이 론의되고있다는걸 전혀 모르겠지요?》

《허허… 물론 그렇겠지요.》

《여기서 온성까지 60리라는게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아, 조국이 지척이군요. 저는 조국을 떠난지 15년이 더 됩니다.》

《그렇습니까!》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의 팔을 조용히 끼시였다.

저 멀리 조국의 하늘가에서는 별들이 하나둘 떠오르며 어서 오라 부르는듯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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