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 회
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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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정각에 정애경은 금애를 안고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섰다. 이른아침이여서 거리에는 아직 인파가 흐르지 않았다. 아침공기는 청신하고 산뜻하면서도 쌀쌀하다. 1백화점옆구리에 있는 정류소에서 무궤도전차를 타고 평양역으로 향하였다.
오늘은 평양학생소년궁전 작곡가로 임명된 아버지가 어머니를 거느리고 수도에 입성하는 날이다. 얼마전에 퇴거수속에 달라붙었다는 편지가 왔고 어제 낮에는 청진발 평양행급행렬차로 청진을 떠나게 된다는 전보가 왔다. 급행렬차의 평양역도착시간은 아침 7시이다. 아침 7시이면 수도의 관문이 고객들로 제일 흥성거리는 시간이다.
무궤도전차는 5분만에 손님들을 역전광장모서리에 내려놓고 주차장을 서서히 경유하였다가 평양종합인쇄공장옆에 있는 련못동행정류소로 미끄러져갔다. 전차에서 내린 손님들중 절반이상은 짐짝들을 들고지고 역사쪽으로 밀려간다. 역전백화점쪽에서도 사람들이 몰려든다. 광장에 울리는 사람들의 발자국소리와 활력에 넘치는 걸음걸이가 심신을 유쾌하게 해준다.
《엄마, 걸을래!》
정애경의 팔에 안긴 금애가 갑자기 몸을 좌우로 흔들며 종알거렸다.
사람들로 붐비는 역전광장의 약동하는 정경에 그도 심기가 들뜨고 팔다리가 근질근질해나는 모양이였다. 정애경은 분홍치마에 색동저고리를 입고 하늘색리봉을 단 딸애의 인형같은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나서 그 애를 광장 한가운데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아이는 어머니의 품에서 떨어지자마자 무작정 앞으로 뜀박질해갔다.
엄지를 따라 들판에 나온 망아지처럼 여기저기로 달음박질하였는데 보면 볼수록 그 모습이 앙증스러웠다. 출생직후부터 소화불량으로 골몰하던 아이가 이제는 젖살도 오르고 밥살도 올라 온몸과 넋에서 제법 생고무같은 탄력이 느껴졌다.
금애는 한 1분쯤 부모들의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갈갬질을 하다가 쪼르르 달려와 아버지의 팔에 덥석 매달리였다.
《아빠, 난 안길래!》
그것은 요청이라기보다 명령이였다. 응해주지 않으면 행악질이나 울음폭탄으로 부모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드는 만능의 힘을 가진 요구였다. 정애경이 어린시절에 그랬던것처럼 금애도 집안에서 폭군행세를 하였다. 그는 성미는 물론 눈과 입매도 어머니를 꼭 빼물었다. 강석민은 쇠장대처럼 딴딴한 팔로 딸애를 번쩍 안아들고 아이의 미간에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이 애를 보면 얼마나 기뻐들 하실가, 두벌자식이 더 곱다는데 아마 나를 키울 때보다 더 고와하실거야, 금애는 정말 좋겠구나, 친할아버지, 친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사랑을 다 받게 되였으니 그런 복을 누린다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런데 그 애가 첫눈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알아볼가.
정애경은 며칠전부터 아버지, 어머니의 사진을 놓고 금애에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얼굴을 익히는 훈련을 시키였다. 처음에 독사진을 놓고 《이건 외할아버지》, 《이건 외할머니》하고 알려준 다음 몇시간간격으로 그 사진들을 보이며 《이건 누구예요?》하고 묻군 하면서 딸애가 정확한 표상을 가지도록 훈련을 주었다. 그러다가 5명이상이나 10명이상이 함께 찍은 집체사진에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찾도록 훈련을 심화시키였다. 일단 표상이 생기자 금애는 어떤 사진에서든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꼭꼭 짚어냈다.
《외할아버지가 어떻게 생겼나요?》
정애경은 딸애의 기억력을 다시한번 시험쳐보고싶은 생각이 나서 이렇게 물었다. 사진이 없는 상태에서 금애가 어떤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의 표상을 그려내는가 하는것은 자못 흥미있는 일이였다. 금애는 오른손 엄지가락과 둘째가락으로 눈주위에 안경을 형상하는 동그라미를 그려보이였다. 정애경은 박수를 쳐주었다.
《우리 금애 정말 똑똑해요. 그럼 외할머니는 어떻게 생겼나요?》
금애는 두손으로 량쪽뺨을 꼭 눌렀다 놓았다. 그것은 외할머니의 갸름한 얼굴모습에 대한 원시적인 형상수법이였다. 딸애는 두 인물의 외형적특징을 정확히 포착하고있었을뿐아니라 그것을 아주 간결하고 생동하게 표현하고있었다.
《금애에게 빨간 별 두개를 주겠어요.》
정애경은 딸애의 통통한 볼을 가볍게 다독여주고나서 머리를 곧추 쳐들고 기운차게 발걸음을 옮기였다. 역사의 시계탑유리가 해빛에 주홍빛으로 부서지는 광경이 바라보이였다. 그 주홍빛반사광은 그에게 신기루와도 같이 아슴푸레하면서도 화려하고 장엄한 그 무엇인가를 약속해주는상싶었다. 요 며칠사이 그가 가꾸어놓은 생활은 온통 주홍빛이나 분홍빛으로 물든 풍경화와도 같았다.
정애경은 류다른 감회와 정서를 안고 손님들의 래왕이 그칠새 없는 역사정문에 들어섰다. 도교육간부학교졸업을 한달 앞두고 조직한 수도견학때 한번 드나들었던 잊을수 없는 역사이다. 그때 정애경은 이 현대적인 건축물을 얼마나 놀라운 눈길로 바라보았고 수도시민으로 살며 일하는 행운을 안고 거리와 광장을 활보하는 사람들의 행복에 겨운 모습을 보며 얼마나 부러워하였던가.
그런데 오늘은 정애경자신이 온 나라가 동경하여마지않는 평양시민이 되여
시가켠사람들은 하나같이 인정미가 줄줄 흐르는 무던하고 점잖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정애경을 진정으로 사랑해주고있다.
사람이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자신이 교단을 떠나 20대전반에 벌써 남편의 그늘밑에서 무위도식하는 가두아낙네가 된것이다.
그가 사회주의근로자의 대렬에서 떨어져나와 시대의 락오자로 된것은 수치이고 불명예이다. 그러나 옥에도 티가 있다고 사람이 사느라면 그쯤한 흠도 없겠는가.
사회주의근로자의 대오에 복귀하는것은 시간문제이지 불가역적인것이 아니다. 결심만 서면 래일이라도 당장 교단에 복직할수 있다. 문제는 정애경자신이 아직 정신육체적으로 그럴만한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정신적동요가 장애로 되고있다. 산후탈로 혼쌀난 후부터 정애경은 교단을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두번다시 넘어설수 없는 성벽처럼 생각하였다.
그는 자기라는 약골은 교단에 적합치 않은 인물이며 교단과 자기사이에는 연분이 멀다는 관념에 점차적으로 버릇되여갔다. 처녀시절에는 몸에 탈이 없은 덕으로 그럭저럭 버티여냈는데 결혼과 해산이라는 홍역을 치른 다음부터는 직업에 대한
교육이란 너무도 강도높은 로동이야, 내 체질로는 어림도 없는 직업이고. 송금주와 같은 강자들한테나 어울린다고 할가, 다신 얼씬도 말아야지.
머리속에 무직업자라는 멋적은 의식이 갈마들 때마다 정애경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청진발 평양행급행렬차는 정시에 도착하겠습니다. 다시한번 알려드리겠습니다. 청진발 평양행급행렬차는…》
기다림칸바람벽에 매달린 확성기에서 려객안내원의 명랑한 목소리가 울리였다. 약간 들뜬듯 한 그 목소리에 정애경의 기분도 고무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부부는 표파는 곳에서 나들표 두장을 사가지고 지하도로 해서 홈으로 나갔다. 친척, 친우들과 친지들을 마중하려고 나온 사람들이 구내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렬차의 도착시간을 기다리고있었다.
정애경과 강석민은 홈 중간쯤에 자리를 잡았다.
《여보, 어쩐지 꿈만 같구려!》
강석민이 눈을 쪼프리고 서포쪽으로 뻗은 철길 저쪽끝을 바라보며 혼자소리처럼 뇌이는 말이였다.
《뭐가 꿈같다는거예요?》
《금애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평양에 올라와 우리곁에서 살게 된것 말이요.》
《그래요. 나도 꿈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애경은 긴 속눈섭을 살풋이 내리깔고 입가에 까닭모를 미소를 그리다가 고개를 쳐들고 남편의 얼굴에 정찬 눈길을 보냈다. 강석민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안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버지를 추천해준 일군들이 고맙소.》
《그 사람들한테 인사는 단단히 해야 할것 같애요.》
《잠시후 청진발 평양행급행렬차가 도착하겠습니다.》
구내확성기에서 려객안내원이 알리는 말이 들려왔다. 홈에 서있는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것처럼 일제히 아침해살에 번들거리는 철길 저쪽 서평양방향으로 머리를 돌리였다. 그쪽 어디에선가 려객안내원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뿡- 하는 기관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철길우로 굴러가는 차바퀴소리가 점점 역사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차가 역구내로 서서히 미끄러져들어오자 아버지의 품에 안긴 금애는 차창에 매달린 손님들을 향해 무작정 손을 흔들어주었다. 정애경은 앞으로부터 세번째 칸에서 내리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자 강석민의 등을 떠밀어 승강대앞으로 총총히 다가갔다. 닭알색 제낀깃 옷에 와이샤쯔를 받쳐입은 정수일이 승강대를 먼저 내리고 그뒤로 트렁크를 든 간편한 양장차림의 로춘영이 홈에 내려섰다.
강석민은 금애를 안은채 한발 앞질러나가 장인, 장모에게 인사를 하였다.
《안녕들 하십니까? 먼길에 피곤들 하시겠습니다.》
그러자 금애가 그 작은 입을 나불거리며 밤새 어머니가 훈련준대로 인사를 하였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반갑습니다!》
정수일은 사위의 품에서 금애를 훌쩍 앗아들고 공중으로 두어번 추슬러올렸다 내리며 어린것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오냐, 고맙다. 우리 금애가 사진에서 보던것보다 더 곱구나!》
금애는 정수일의 품에서 로춘영의 품으로 넘어갔다. 로춘영은 남편에게 트렁크를 넘겨준 다음 외손녀를 안고 한참동안 이마며 볼이며 턱이며에 정신없이 입을 맞추었다.
《아이구, 요 눈! 아이구, 요 입! 정말 깜찍하구나.》
홈에서는 얼마동안 금애를 둘러싸고 실랭이가 벌어졌다. 정수일과 로춘영이 번갈아 외손녀를 끌어당기는 바람에 정애경과 강석민은 홈을 뜨지 못하고 그 광경을 관망할뿐이였다.
네사람은 역전공원 긴의자에 앉아 20분쯤 땀을 들이였다. 옹근 하루동안이나 로독에 시달린 사람들답지 않게 정수일과 로춘영은 생신한 모습으로 공원주변의 아침풍경을 감상하였다.
《수도의 아침풍치가 확실히 다르긴 다르구나.》
정수일이 긴의자등받이에 팔을 걸치고 손가락으로 장단을 치면서 하는 말이였다.
《아무렴 , 다르구말구요.》
정애경이 그의 말에 얼른 맞장구를 쳤다.
《이 광장에 한시간동안만 앉아있어도 멋있는 선률이 저절로 흘러나오겠거던.》
정수일은 긴의자등받이에 그냥 손가락장단을 쳤다. 그가 지금까지 써낸 가요들은 서정성이 강하면서도 랑만적이고 생기발랄한것들이였다. 그리고 통속적이였다. 정애경은 아버지가 새 직무에 자리를 잡으면 인차 아동음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여 그를 소환하는데 관여했던 모든 일군들과 과외교양부문의 창작가들을 흐뭇하게 해주리라는것을 의심치 않았다.
공원구내를 아장아장 돌아가던 금애가 조팝나무이파리 하나를 뜯어들고 정수일의 앞으로 달음박질해와 그의 품에 탈싹 안기였다. 아이는 그 나무이파리를 외할아버지앞에 내밀며 큰 적선이라도 베푸는듯 한 관대한 표정을 입가에 그리였다.
정수일은 손녀애를 두팔로 꼭 끌어안고 아이의 머리우에 턱을 가볍게 비비였다.
《우리 금애가 마음씨 또한 여간 곱지 않구나.》
첫 두벌자식을 품에 안고 손녀애의 백합같은 순정과 재롱에 취한 정수일의 얼굴에는 그 무엇으로써도 감출수 없는 희열이 떠돌고있었다.
그는 봄날의 회오리처럼 자기의 생활을 갑작스레 뒤흔들어놓은 변화와 행운앞에서 몹시 얼떨떨해하는것 같았다.
《석민이, 애경이, 이 아버지가 받아안은 당의 은덕과 믿음을 생각해서라도 나도 그렇고, 너희들도 그렇고 모두 일을 더 잘해야겠다.》
도착성명과도 같은 정수일의 말에 맞은켠 긴의자에 앉아있던 사위와 딸은 자못 엄숙한 표정으로 몸가짐을 가다듬었다.
《아버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두손을 깍지껴 무릎우에 놓은 강석민이 우선우선한 얼굴로 말했다.
저 결의속에 나의 몫도 있다고 봐야 할가. 남편이 안해의 심정을 대변할수는 있다. 하지만 방금전의 그 결의에는 나의 몫이 있을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근로자가 아니기때문이다. 지금의 정애경은 남편의 그늘밑에서 살아가는 부양가족이다. 그 부양가족이 아버지의 당부앞에서 감히 무슨 말을 할수 있겠는가.
《그럼 그만큼 쉬고 가볼가.》
정수일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하는 말이였다. 그러자 강석민도 벌떡 일어났다.
《피곤들 하시겠는데 어서 가십시다.》
《집을 경림동에 잡았다고 했던가?》
《네, 미술박물관곁입니다.》
《학생소년궁전이 코앞이니 출퇴근에 편리하겠구만.》
《궁전까지는 10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일행은 인쇄공장옆에 있는 무궤도전차정류소로 향하였다. 강석민과 정애경이 트렁크를 하나씩 들고 로춘영이 세면도구가 들어있는 손가방을 들었다. 역홈에서부터 금애를 차지한 정수일은 이번에도 그 애를 안고 전차에 올랐다. 두벌자식을 안아보는 멋이란 붙이면 붙일수록 더 달콤한 충족감을 주는 법이다.
전차에서 내려 대동문동에 있는 사돈집에서 대충 아침식사를 하고난 정수일부부는 딸과 함께 중간복도형식으로 된 경림동의 아빠트 5충에 있는 살림집을 찾아 려장을 풀었다. 출입문앞에 주방이 따로 달리고 미닫이식으로 된 사이문이 웃방과 아래방을 갈라놓고있는 두칸짜리 집이였다. 창가에 마주서면 승리거리의 대통로와
《두 식구가 살기엔 과분하구나.》
두 방을 돌아본 로춘영이 격정에 넘쳐 말했다.
《우리
정애경의 말도 격정으로 떨리였다. 정수일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말을 긍정하였다.
《네 말이 옳다. 궁전작곡가에 두칸짜리 집, 그것도 평양의 노란자위라고 불리우는 수도중심부의 경림동! 정말 송구스럽다. 평양에도 아직 단칸방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그는 양복저고리와 바지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창가에 바투 다가서서 오래도록
정애경도 아버지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다 좋은데 도로옆이여서 전차소리가 들리는게 흠이예요.》
《전차소리가 좀 들리면 뭐라니. 그걸 음악으로 들으면 되는거지.》
《옳아요. 나도 이젠 그 소리에 습관됐어요. 소음이 없는 도시야 죽은 도시지요.》
《범도 제 소리를 하면 온다더니 마침 전차가 지나가는구나.》
차창앞에 번호를 붙인 무궤도전차 석대가 아빠트앞을 지나 대동문쪽으로 줄을 지어 밀려갔다. 그 전차들이 일으킨 진동으로 창문이 가볍게 떨리였다.
정애경은 속으로 만사가 뜻대로 됐어, 멋있어, 송금주까지 평양에 올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무슨 수를 쓰든지 금주를 끌어올려야겠는데, 그게 내 숙제야, 오늘부터는 내 인생의 3막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