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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9 회


제 6 장

5

송금주네 학급의 상식소개판이 영천중학교의 모든 학급들에 일반화되기 시작한것은 지난해 정초부터였다. 그 바람을 타고 이웃학교들에 서도 학생들에게 상식을 주는 여러가지 조치들을 취하였다. 한점의 불꽃이 온 군으로 번져가 영천땅은 상식열풍이라는 거세인 회오리에 말려들었다. 반별, 학급별, 학교별로 되는 상식경연이 벌어지고 뛰여난 상식소유자들을 표창하고 내세우는 새로운 류행이 학교들을 휩쓸었다.

이 류행은 일반사무기관들과 공장, 기업소들, 농장들에도 파급되였다.

영천은 유식한 고장으로 되고 영천사람들은 유식한 주민들로 되였다.

류행이란 참으로 지독한 열병이였다.

송금주의 발기에 따라 영천중학교에서는 학교도서실과 우리 마을 도서실의 운영에 참가하고있는 도서보급소조원들로 상식수집조를 뭇고 그들을 발동시켜 필요한 상식자료들을 보급하게 하였다. 모든 학급들에서 모임전 10분은 상식을 소개하는 시간으로 되였다. 교원모임도 례외로 되지 않았다.

오늘은 방학간 상식공부를 총화하는 전교적인 알아맞추기경연의 날이다. 매 학급들에서 5명씩 선발하여 필답의 방법으로 상식소유정도를 측정하고 표창하는 지식경연의 날이다. 선발된 선수들은 두개 교실에 나뉘여 실력을 다투었는데 한 교실에 교원이 두명씩 시험관으로 들어가 경연장을 관리하였다. 송금주도 시험관으로 선발되였다.

정치지식 3문제, 력사지리지식 3문제, 과학기술지식 3문제, 문예지식 3문제를 내고 90분동안에 답안정리를 끝내야 하는 만만치 않은 경연이였다. 송금주는 1조경연장에 들어가 학생관리를 하면서도 2조경연장에서 시험을 치르고있는 자기 학급 선수들을 두고 은근히 왼심을 썼다.

순위권에 들지 못하면 상식학습의 선구자, 선구학급으로서의 위신이 땅바닥에 떨어지게 되고 송금주자신도 난처한 립장에 빠지게 된다.

드디여 경연마감을 알리는 종소리가 길게 울렸다. 16개 학급을 대표하는 80명의 학생들이 시험관들을 앞세우고 두개의 교실에서 동시에 쏟아져나왔다. 2조경연장을 나선 3학년 1반 선수들이 송금주에게로 다가왔다. 3학년 1반은 송금주가 맡고있는 학급이다. 선수들은 희색이 만면해서 담임교원을 에워쌌다.

《어때요? 자신들이 있어요?》

송금주는 학생들을 돌아보며 두루거리로 물었다.

《자신있습니다.》

학급에서 첫째가는 실력가인 분단위원장 리주일이 대답했다. 그는 그렇지 않느냐는듯 한 눈길로 동무들을 둘러보았다. 상식에서의 우승을 응당한것으로 여기는데 습관된 리주일분단위원장이였다.

《석화학생은 어때요?》

송금주는 뛰여난 두뇌를 가지고있으면서도 덤벼치는 성미때문에 이따금씩 억울한 실점을 당하군 하는 1반반장에게 물었다. 정석화는 씽긋 웃으며 머리를 한번 외로 틀었다가 담임선생을 쳐다보았다.

《선생님, 이번에는 실수가 없었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장해요, 석화학생!》

송금주는 정석화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여주고나서 교원실로 들어가 이번 경연의 총감독으로 임명된 리철순의 책상에 시험지묶음을 가져다놓았다. 그가 리철순에게 시험장감독결과를 보고하고 교원실을 막 나서고있을 때 군체신소의 낯익은 처녀통신원이 복도 저쪽끝에서부터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묵직한 소포꾸레미를 그의 가슴에 텁석 안겨준다.

《송선생한테 오는거예요. 평양짝패!…》

통신원은 《평양짝패》라는 말로 보낸 사람의 이름을 대신하고나서 신문, 잡지들과 편지들이 팽팽하게 들어찬 우편가방을 추스르며 교원실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평양짝패란 그가 지어낸 정애경의 대명사이다. 오늘 받은 소포까지 셈하면 정애경이 평양 가서 보낸 소포가 모두 3개나 된다. 첫번째 소포는 화장품일식이였고 두번째 소포에는 녀자용 반장화와 여름구두가 들어있었다.

이번에는 무얼가, 무엇을 보냈을가.

송금주는 소포의 내용도 중시했지만 거기서 풍겨오는 정애경의 다심한 정서와 변함없는 우정을 더 귀중히 여기였다. 그래서 그가 보낸 물건들을 무슨 보물이라도 다루듯이 하였다. 화장품은 명절날에만 썼고 신발도 마른 날만 골라가며 드문드문 신었다.

송금주는 상식경연답안지들에 대한 채점을 다 하고나서 퇴근시간이 되여 합숙에 돌아가서야 소포꾸레미를 풀었다. 포장을 두겹으로 한 전번 소포들과 달리 이 소포는 별스럽게도 포장이 세겹으로 되여있었다.

바깥포장을 천으로 하였다면 두번째 포장은 비닐보자기로, 세번째 포장은 눈덩이같이 하얀 종이로 하였다. 두번째 포장과 세번째 포장사이에는 편지가 끼여있었다. 포장을 헤치고 소포의 내용물을 보기도 전에 편지부터 덥석 집어들었다. 봉인도 하지 않은 봉투에서 속지를 뽑아드니 사진 한장이 뚤렁 떨어진다. 색동옷을 입고 음식상앞에 앉아있는 금애의 사진이다. 사진 아래단에는 《금애의 생일 세돌을 축하한다.》는 문구가 하얗게 새겨져있었다. 첫돌에 생일을 쇠지 못했다더니 그 봉창으로 세돌생일을 쇤 모양이지, 어쨌든 몸이 이 정도로 추섰으니 다행이라고 봐야지, 애경이 한시름 놓게 됐는걸. 송금주는 이런 생각을 하며 속지를 펼쳤다.


금주에게

금주, 두달만에야 회답을 보내는 이 무정한 벗을 용서해다오. 너의 편지가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었는지 아마 넌 상상도 못할거야. 누가 너처럼 나를 그렇듯 혹독하게 그리고 진정으로 꾸짖을수 있겠니. 너의 그 줄폭탄에 얼마나 혼쌀이 났던지 정신이 아찔해지고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가질 않겠어. 혈압이 껑뚱 뛰여올랐다고 할가. 하여간 난 만신창이 될번 했어.

사랑이고 신혼생활이고 딸자식이고 다 귀찮다고 한 나의 그 투정질에 네가 그처럼 격노해서 나를 두드려팰줄은 정말 몰랐구나. 넌 그때 편지로 이렇게 욕설을 퍼부었지. 《너같은 팔삭둥이가 내 벗이라는게 창피스럽다. 천리마동상가까이에서 사는 녀성으로서 부끄럽지도 않니. 너의 그 명석하던 머리는 온통 썩어문드러진 패배주의, 염세주의, 감상주의의 벌레로 가득차있구나. 사랑에 겨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온몸을 덜덜 떨며 눈물까지 흘리던 그 순결한 감정은 어데다 매몰해버리고 함부로 사랑이고 신혼생활이고 딸자식이고 다 귀찮다는 푸념질이냐. 그래 네 사랑이라는게 고작 4년만에 시들어버리는 그런 오작품이였단 말이냐.

너의 그 곰팡내나는 넋을 가지고 제발 존경하여마지않는 강석민동지와 금애를 모독하지 말아라.》

금주, 너의 그 질책은 나를 일으켜세우는 채찍이였다.

나는 나에게 그런 채찍질을 할수 있는 벗을 가지고있는데 대해 무상의 행복으로 생각한다. 남편과 딸자식에 대한 애정을 잃어버린 녀성이 어떻게 이 사회가 요구하는 유익한 인간이 될수 있겠니.

천리마시대라는 이 벅찬 시대를 선도해가는 수많은 길확실과 리신자와 진응원이들앞에 큰 죄라도 지은 심정이다.

나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 남편과 딸과 시부모들을 사랑하고있다. 정애경이라는 이 쪽배가 대양으로 진출할수 있는 일차적인 조건은 가정에서 충실한 안해가 되고 어머니가 되고 며느리가 되는데 있다고 봐. 나는 모든 힘을 다하여 가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흔연히 떠메고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련다. 믿어다오.

오늘 우리는 온 가족이 모여앉아 금애의 세돌생일을 쇠였다. 한돌 생일과 두돌생일을 병원침상에서 보낸 봉창이라고 해야 할지. 이 즐거운 자리에 금애의 큰엄마인 네가 없는것이 유감스럽다. 그래, 너야 당당한 큰엄마지. 내가 금애한테 그렇게 소개하였다. 입만 벌리면 세상만사를 두고 제법 질질거리는 금애는 네 사진만 보면 큰엄마라고 부른다.

금애의 큰엄마를 위해 평양숭어국집 3층에 있는 빵집에서 산 고급빵 10그릇을 소포로 보낸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평양특산이다. 온 가족이 식당에서 먹다가 네 생각이 불쑥 나서 사보내니 이 애경이를 생각하며 맛있게 먹어다오.

정애경


송금주의 입에서 후- 하는 안도의 숨소리가 새여나왔다. 정애경이 탈선할번 했던 인생궤도를 곧바로 가고있다는 믿음에 마음이 누긋해졌다. 아무렴, 그러면 그렇겠지. 정애경이 갑자기 궤도를 바꾸어 다른 방식으로 살수야 없지. 무슨 고통이요, 권태요, 허탈이요 하는건 다 배부른 투정질이지 본심이야 어디 가겠어. 애경이, 장해! 한발자국만 잘못 디뎠더면 네가 무슨 꼴이 되였겠는가를 좀 상상해보렴. 그다음 차례질것은 진펄이고 낭떠러지야. 넌 제때에 몸가짐을 바로잡았어.

송금주는 1 500리밖의 정애경과 마음속으로 이런 말을 나누며 편지를 세번이나 곱씹어 읽어보았다. 글줄마다에서 변치 않은 정이 느껴지고 백지장같은 량심과 순결이 느껴지고 생에 대한 욕구와 열망이 느껴졌다.

그 구절을 읽을 때에는 정애경의 숨결에서 풍기는 달큰한 입내와 머리카락의 향내까지도 느껴졌다. 그의 쌍겹눈이 지척에서 초롱불처럼 자글거리며 자기를 지켜보는듯 한 환각도 여러번 맛보았다.

송금주는 지금까지 소포로 빵을 보내는 사람들을 한번도 보지 못하였다. 그는 고급빵 10그릇이라는 엄청난 수자앞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빵 10그릇이면 어지간한 잔치도 치를수 있는 대단한 량이다. 소포가 류달리 큰 까닭이 비로소 리해되였다.

속지를 접어 봉투안에 넣기 바쁘게 마지막포장을 헤치였다. 보기만해도 군침이 도는 여러가지 빵들이 하얀 포장지속에 층층으로 쌓여있었다. 카스테라와 속빵, 가락지빵… 군과 도의 지경을 넘어 수도에까지 알려졌다는 영천빵보다는 훨씬 품위가 있고 먹음직스러워보이였다.

역시 평양빵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포로 빵을 보낸 정애경의 다심하고 인정깊은 마음씨에 눈물이 찔끔 솟았다.

호호, 이러다간 어벌뚝지가 큰 애경동지가 소포속에 숭어탕도 넣어보내겠는걸.

송금주는 얄팍한 찹쌀가루판대기에 짬을 놓고 그 판대기 량끝을 송편처럼 살짝 오무려붙인 빵을 집어들고 입에 대려다가 소포속에 빵을 도로 내려놓았다. 정애경이 1 500리밖에서 천심만심으로 보내온 그 귀한 음식을 그런 식으로 아무렇게나 소비해버릴수 없다는 생각이 불쑥 일었던것이다. 그는 이 장엄한 소포꾸레미를 앞에 두고 무슨 례식이라도 치르고싶은 심정이였다.

이 많은 빵을 나 혼자서 먹을수야 없지. 이런 맛나는 음식을 혼자서 먹는게 아니야. 나누어먹어야 해. 정애경도 그걸 바랄거야. 누구네하고 나눠먹는다? 학급아이들과… 그럼 학교 교직원들과? 그것도 아니야. 한사람당 한개도 차례지지 않는 난처한 분배가 될텐데 그런 생색은 내서 뭘해. 옳지, 문학분과교원들과 함께? 거기에 교장과 교무주임, 소년단지도원을 초청하고… 가만, 그렇게 하면 분과성원들끼리만 냠냠한다고 눈들을 흘기지 않을가. 그것도 옳은 처신은 못되누나.

언제인가 정애경이 선택에 대한 철학을 늘어놓던 일이 떠올랐다. 그게 아마 입직후 첫 생활비를 받는 날이였을것이다. 우린 그때 둘이서 그 돈을 어떻게 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찧고까불고 했지, 그러다가 애경인 선택을 고통의 한 형태로 락인하고 난 그걸 반박해서 선택을 락이라고 했지, 지금도 그 견해는 변함이 없어, 하지만 선택을 고통의 한 형태라고 규정한 애경의 말에도 일리가 있지 않을가.

나는 지금 50개의 빵을 앞에 두고 그 소비방법과 소비대상들을 결정하지 못해 쩔쩔매고있다. 누구들과 함께 어떤 방법으로 소비하는것이 가장 리상적인것으로 되겠는지 도저히 결단을 내릴수가 없다.

정말이지 선택이란 까다롭고 골치아프면서도 유쾌하고 신바람나는 고통이다. 송금주는 온밤 이 궁리, 저 궁리했지만 신통한 대안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 힘에 부친 숙제를 풀어준것은 그의 두뇌가 아니라 생활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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