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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9 회


섬에 남은 세사람

정 철 학

5

밤은 깊어갔다.

물은 시시각각으로 차올랐고 태풍은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사납게 광란하였다. 그들이 의지한 버드나무는 거센 바람에 시달려 금시라도 통채로 넘어질듯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차거운 폭우는 지칠줄 모르고 그들의 머리우로 내리퍼붓는데 차오르는 강물은 노호하는 격랑을 일으키며 발밑에서 길길이 몸부림쳤다.

이제는 그 누구도 살리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없었다. 그들 세사람은 다들 최후를 각오하였으며 지나간 나날들에 후회되는 일들을 더듬어보았다.

《성준동무, 미안해요, 이전에 늘 뾰족한 소리만 해서.》

선향의 말에 성준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미안하긴, 동무야 늘 원칙적이였지.》

선향은 머리를 저었다.

《아니예요. 나만 똑 원칙이 있는것처럼 놀았지요 뭐. 이제 생각해보면 내가 정말 잘못했어요. 다들 이렇게 훌륭한 동무들인걸…》

폭풍우속에서 선향의 말은 끊어졌다.

한참만에 성준이 입을 다시며 중얼거리듯 말하였다.

《배가 고프구만. 이럴줄 알았으면 낮에 그 선밥이라도 다 먹어두었을걸.》

성준의 말에 광룡과 선향의 입귀로는 부지중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길래 억지로라도 참고 먹으랬는데 말을 안 듣더니.》

광룡의 말을 선향이 받았다.

《다 동무 잘못이지요 뭐. 누가 그렇게 밸을 부리랬어요.》

성준이 짐짓 억울하다는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거야 동무가 자꾸 약을 올리니 그랬던거지.》

《동무가 먼저 투덜거리지 않았어요?》

《그럼 그 선밥을 놓고 칭찬하란 말이요?》

광룡이 웃음섞인 목소리로 말렸다.

《됐소, 됐소. 그만들 하오. 동무들은 나무우에 올라와서까지 다툼질이구만. 이담에 내려가서 마저 다투오.》

선향이 어조를 낮추어 달래듯 성준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이제 여기서 내려가게 되면 내가 맛있는 밥을 가뜩 해줄게요.》

성준이 흐뭇한 어조로 말했다.

《좋구만. 그런데 마른나무는 어디 가서 해오겠소?》

《그거야 동무가 해와야지요 뭐.》

《뭐, 뭐라구?…》

광룡은 끝내 소리내여 웃고말았다.

《동무들도 참…》

밤은 점점 더 깊어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우는 나무줄기를 힘껏 부여잡은 손들에는 점차 강직이 오기 시작하였고 폭풍우속에서 어쩔수 없는 오한이 끼쳐지는 온몸에서는 차츰 맥이 빠져나갔다. 이제 한순간만 맥을 놓거나 아차 발이라도 헛디디게 되면 사품치는 강물속에서 영영 헤여나올수 없을것이였다.

광룡은 오한으로 이발을 덜덜 떨며 성준과 선향에게 말하였다.

《졸지 말라구. 그러다 떨어지면 큰일이야.》

그 말에 성준이 졸음을 쫓으려는듯 흠뻑 젖은 머리를 물방울이 튀여나도록 세차게 흔들고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선향동무가 모심함을 건사하고있는데 그의 몸을 가지에 묶어줍시다.》

광룡은 제꺽 그 말뜻을 리해하였다.

《그게 좋겠소.》

광룡과 성준은 자신들의 혁띠를 풀고 입고있던 옷들을 찢어내여 바줄을 만들어 선향을 나무가지에 든든히 비끄러매였다. 선향이 만류하려 하자 광룡은 엄하게 말하였다.

《어떻게 하든 한사람만이라도 살아서 수령님들의 초상화를 지켜내야 할게 아니요. 만일 다 죽고나면 수령님들의 초상화는 누가 보위하겠소?》

광룡의 이 말에 선향은 어쩔수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지에 묶어주는 그의 손에 몸을 맡겼다.…

자정이 넘어 새벽이 되여오며 폭우는 더욱 세차지고 강물은 무섭게 불어올랐다.

성준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혼자소리처럼 말하였다.

《이번 비에 아마 피해가 클거야. 이쯤되면 아래쪽에서는 숱한 집들이 떠내려갔겠지.》

광룡은 근심이 섞인 시선으로 마을쪽을 바라보았다.

《집에서는 다들 일없는지 모르겠구만. 뭐니뭐니해도 사람들이 무사 해야겠는데.…》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문득 선향이 소리쳤다.

《저길 봐요. 왕재산대기념비의 봉화탑불빛이예요!》

비구름들사이로 언뜻 보이는 봉화탑의 불빛이 드러난것은 한찰나였으나 그들은 분명 봉화탑의 불빛을 확실히 보았다. 그들의 뇌리로는 봉화탑아래에 거연히 서계시며 바람결에 군복자락을 날리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존귀하신 영상이 선히 떠올랐다.

그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후더운것이 맥맥히 흘러넘치며 나무가지를 틀어잡은 손들로 힘이 솟구쳐올랐다.

《이번에 큰물피해가 아무리 심하다고 해도 우리 원수님께서는 꼭 그 피해를 가시고 우리 인민들에게 새 보금자리를 안겨주실거요.》

성준의 말에 선향이 흥분한 어조로 호응하였다.

《그래요. 작년에 라선시에서 그렇게 큰물이 났지만 우리 원수님께선 그 땅우에 사랑의 새 전설을 아로새기지 않으셨어요. 여기서도 그런 꿈같은 일이 꼭 펼쳐지게 될거예요.》

광룡은 그들의 말을 들으며 처자가 있을 마을쪽을 그냥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사 우리는 그런 날을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남은 사람들은 꼭 그날을 보게 될거요. 우리 그 사람들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지막까지 떳떳이 살기요.》

광룡의 말뜻을 음미해보는듯 한동안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 못하였다. 얼마후 선향이 생각깊은 어조로 말하였다.

《지금 평양에서도 이렇게 비가 내릴가요?》

광룡과 성준도 선향을 따라 평양쪽 하늘가를 바라보았다.

《평양에 내릴 비까지 다 여기에 내렸으면. 제발 원수님 계시는 평양하늘가에는 이런 무더기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구만.》

간절한 어조로 뇌이듯 말하는 광룡의 말을 성준이 받았다.

《원수님께서 혹시 평양에 계시지 않고 먼곳에 현지지도를 가지 않으셨을가요? 그러면 거기엔 이런 장마가 지지 말아야겠는데.》

세사람은 오래도록 말이 없이 평양하늘가를 바라보았다.

품에 안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들을 모신 함을 소중히 쓸어보던 선향이 은근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광룡과 성준도 목메인 어조로 따라불렀다.


단 한분 그이 품을 떠나서 순간도 살수 없기에

기쁨과 아픔 함께 나누며 운명을 같이하네


폭우는 사납게 내리퍼부었다. 태풍은 그들이 의지한 버드나무를 이리저리 비틀고 발밑에서는 파도가 길길이 솟구쳐올랐다. 하지만 물우에 외롭게 선 나무우에서는 구원을 청하는 아우성소리가 아니라 그리움의 노래소리가 어둠을 뚫고 울려갔다. 깊은 밤 와- 와- 소리를 지르며 흐르는 거센 물결소리에 이들의 노래는 멀리로 울려가지 못했어도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심장의 메아리가 되여 울리였다.


그이의 모든것에 온넋이 이끌린 우리이기에

이 세상 그 누구도 못 가를 한피줄 이루었네


번쩍- 하고 눈부신 번개가 비구름이 뒤덮인 캄캄한 밤하늘을 쭉 헤갈랐다. 뒤미처 꽈르릉하는 굉음에 천지가 진동하고 그들이 의지한 버드나무도 몸서리치듯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그들의 노래소리는 더욱 절절히 울려퍼졌다.


하늘이 무너진들 변하랴 죽음도 두렵지 않아

한마음 그이밖에 모르는 불굴의 우리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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