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날자별열람


제 55 회


섬에 남은 세사람

정 철 학

1

두만강중류에 이름없는 섬이 하나 있다.

이 섬에서 늦여름의 어느날 온성군 고성협동농장 청년작업반원들의 모임이 진행되였다.

《래일부터 우리 작업반은 농장으로 건너가 남산밑의 갈기미밭머리 주변에서 풀베기를 하게 됩니다.》

작업반장이 이렇게 말하자 반원들의 얼굴에는 희색이 떠올랐다. 청년작업반이 맡은 100여정보의 강냉이밭이 이 섬에 있는 까닭에 년중의 많은 날을 여기서 보내는 반원들에게는 집과 가족이 있는 농장에서 작업을 하게 된다는 소식이 반가울수밖에 없는것이였다. 그러니 적어도 풀베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집에서 다닐수 있을것이였다.

《그런데 섬을 아예 비워둘수는 없는 일이니 세사람정도는 남아야겠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그동안 강냉이밭도 관리하고 작업반합숙도 보수해야겠습니다. 》

반장은 반원들을 둘러보았다.

《그래 섬에 누가 남겠습니까?》

반장의 이 말에 반원들은 서로 얼굴만 돌아보며 선뜻 일어나지 못하였다. 한참만에 작업반에서 그중 나이들어보이는 30대 중반의 한사람이 일어나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저… 그러면 제가 남겠습니다.》

일어난 사람을 본 반장의 얼굴에는 안도감에 어울려 미안한 빛이 짙게 어리였다.

《늘 봐야 이런 땐 조광룡동무가 나서는구만. 거 집의 아주머니랑 딸애들이랑 본지 오랠텐데 일없겠소?》

안해와 딸애들의 소리가 나오자 조광룡은 흐려드는 낯빛을 보이고싶지 않아 머리를 숙이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괜찮습니다. 제가 남지요.》

반장은 미더운 표정으로 광룡을 보며 말하였다.

《광룡동무가 남겠다니 마음이 놓이오. 합숙을 보수하려면 미장이며 목수일들을 해야 할테니 손재간이 좋은 최성준동무가 같이 남소.》

반장의 말에 최성준은 옆사람들에게 들리리만큼 큰소리로 투덜거렸다.

《젠장, 무재간이 상팔자라더니 재간은 왜 남보다 좋아가지구…》

앞에 앉아있던 리선향이 돌아보며 맵짜게 쏘아붙였다.

《동문 언제봐야 불평이 많군요. 처자가 있는 광룡동지도 남겠다고하는데 동무야 총각이 아닌가요?》

성준은 불끈하여 대들었다.

《총각이면 집에 보고싶은 사람도 없다오? 나한텐 어머니가 있단 말이요.》

처녀도 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보고싶어서 남기 싫다는거예요? 부끄럽지도 않아요, 지금 나이가 몇이게.》

《나이가 몇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요. 암만 나이가 들어두 어머니야 어머니지.》

반원들이 흥미있게 바라보는 속에서 두 처녀총각사이에 자주 있군 하는 말다툼이 또 시작되였다.

《그래도 어린 자식들을 보고싶은거하구 어머니를 보고싶은거하구 어디 같애요? 하긴 장가도 못 간 사람이 그걸 알게 뭐람.》

《동문 뭐 시집을 갔소?》

《됐어요. 무슨 남자가 시시하게 그래요. 가겠으면 가요. 대신 내가 남겠어요.》

반장이 듣다못하여 그들의 말틈에 끼여들어 말렸다.

《됐소, 됐소. 그만하오. 성준동무가 정 어머니를 보고싶다면 남지 마오.》

성준은 다투던 열이 채 식지 않아서인지 볼부은 얼굴로 말했다.

《됐습니다. 내가 어머니가 보고싶다고 남지 않았다는걸 알면 되려 어머니가 야단을 칠겁니다. 기왕 제가 필요하다니 남겠습니다.》

성준의 대답에 반장은 우선우선해진 얼굴로 선향을 보며 물었다.

《아닌게아니라 그동안 식사보장도 하고 남새밭도 가꾸어야 하니 녀동무도 한명 떨구려댔소. 선향동무, 어떻게 하겠소? 섬에 떨어지겠소?》

리선향은 새침해진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싫습니다.》

《싫다니? 아깐 남겠다구 하구선.》

선향은 성준쪽을 흘깃 노려보고나서 대답하였다.

《성준동무하고는 싫습니다.》

반장은 허허 웃고마는데 성준이 쓰거운 어조로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남보고는 남으라고 하더니 막상 저보고 남으라니 싫은게지.》

그 말에 새파래진 선향은 성준쪽으로 아예 돌아앉으며 쏘아붙였다.

《누가 여기 떨어지는게 싫대요? 동무같은 사람하구 같이 남는게 싫다고 했지. 좋아요, 나도 섬에 남겠어요.》

섬에 떨어질 사람들이 이렇게 결정이 되자 반장은 광룡에게 말하였다.

《작업반이 섬에 돌아올 때까지 광룡동무가 책임자로 있어야겠소.》…

그날 저녁 작업반 세포위원장은 반장과 마주앉은 자리에서 이것저것 의논하다가 이런 말을 꺼냈다.

《거 섬에 남는 세사람 있지 않습니까, 성격들이 서로 맞지들 않는데 일없겠습니까?》

그 말에 반장은 잔조롬하게 실눈을 지으며 반문하였다.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가 있을가요?》

세포위원장은 자상한 사람인지라 우려되는바를 차근차근 이야기하였다.

《광룡동무는 일은 잘하지만 여적 누구든 책임지고있어본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보기엔 마음이 너무 어지고 통솔력도 있을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데리고있어야 할 사람들을 보면 성준이는 데면데면한데가 많고 선향이는 성미가 뾰족해서 톡톡 쏘기 잘하지요. 세사람이 성격들이 너무 달라서 마음을 맞추기 힘들겁니다.》

세포위원장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반장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듣고보니 정말 그렇군요. 하지만 한동안만 같이 있을건데 그사이에야 뭐 별다른 일이 없겠지요.》

이제 와서 남는 인원을 달리 정할수도 없는 일이라 섬에 남는 세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그쯤으로 그쳐지고말았다.

하지만 세포위원장의 우려는 결코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그들 세사람은 섬에 남은 첫날 아침부터 다투기 시작하였던것이다.

아침식사를 마친 광룡이 《작업을 시작하기요.》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이끔을 쑤시던 성준이 버릇처럼 투덜거렸다.

《밥알이나 좀 눕히고 봅시다. 그다지나 덤빌게 뭐가 있습니까.》

여직껏 시키는 일이나 수걱수걱 했을뿐 누구든 데리고 일해본적이 없는 광룡은 이런 때는 어떻게 말했으면 좋을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신없이 입을 열었다.

《내보기엔 좀 있으면 장마가 질것 같소. 그러니 그전에 건물보수도 다그치고 강냉이밭에 배수로랑 째놓아야 하니 서둘러야지.》

성준은 의아한듯 눈을 크게 떠보이며 물었다.

《이제 장마가 질거라는걸 어떻게 압니까?》

《로인들이 그러는데 노을색이 요즘같을 때에는 꼭 큰 장마가 진다고 그러더구만.》

광룡의 말을 들은 성준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늙은이들의 말을 듣고 작업방향을 정한단 말입니까? 그리구 시키지두 않은 배수로를 고생스레 파놓았다가 만일 장마가 안 오면 헛수고나 하게요.》

일어날념을 안내고 그냥 늦장을 부리는 성준을 보며 광룡은 차츰 화가 동하기 시작하는것을 느꼈으나 애써 참았다.

《그래두 늙은 말이 길을 안다는 말이 있지 않소. 그리구 장마준비를 해놓아서 나쁠거야 없지. 장마가 안 오면 다행이지만 만일 오면 어떡하겠소.》

성준은 별수 없다는듯 일어서며 또다시 투덜거렸다.

《에이, 부지런한 책임자를 만났더니 고생줄에 들었군.》

이때 한쪽에 앉아 성준을 쏘아보던 선향이 광룡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하였다.

《광룡동지, 아침모임을 안하구 그냥 이렇게 하루일과를 시작하잡니까?》

느닷없는 선향의 말에 광룡은 얼떨떨해졌다.

《아침모임? 섬에 사람이 겨우 셋밖에 없는데 무슨 아침모임을 한다는거요?》

선향은 제 성미 그대로 되바라지게 말했다.

《아무리 셋밖에 없어두 조직인데 아침모임이야 해야지요. 오늘 아침만 해도 성준동무는 늦잠을 잤는데 그걸 비판해야 하지 않습니까.》

성준은 눈을 부릅뜨고 선향을 잡아먹을듯 노려보았다.

《내가 무슨 늦잠을 잤단 말이요?》

성준의 기상은 자못 험악하였으나 선향은 전혀 주눅이 들지 않고 내쏘았다.

《아침밥을 다 차려놓고 깨워서야 겨우 일어난게 늦잠이 아니고 뭐예요. 광룡동지는 일찍 일어나 마당청소랑 다 해놓았는데 젊은 사람이 부끄럽지도 않아요?》

성준이 부아가 나서 뭐라고 응대를 하려는데 중간에서 잠자코 있던 광룡이 끝내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됐소. 이젠 그만들 하오!》

광룡이 큰소리치는것을 처음 보는 성준은 일순간 어리둥절했다가 입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법없이두 살 사람인줄 알았더니 한자리 시켜놓으니까 본색이 나오는군.》

《뭐이 어째?》

성이 난 광룡의 입에서 마침내 벼락치는듯 한 소리가 터져나오자 성준은 찔끔하여 목을 틀어박았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