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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7 회


제 6 장

3

정애경은 석달만에야 구역인민병원에서 퇴원하였다. 산후탈이라는 통속적인 이름으로 불리우는 그 병은 놀랄만치 집요하고 그악스런 병이였다. 무시로 일어나는 오한때문에 그는 오뉴월더위에도 겨울내의를 입지 않으면 안되였다. 오한이 정 심할 때면 뙤약볕이 내려쬐는 한낮에도 솜옷을 걸치였고 머리에서 찬바람이 이는것 같아 수건까지 쓰고다니였다. 무릎마디가 쏘는 바람에 제대로 걸을수도 없었다. 산후탈이란 산모의 진을 다 빼는 지겹고 넌덜머리나는 병이였다. 해산후 병리학의 요구대로 몸건사를 하지 않은 녀성들에게는 추호의 양보나 에누리도 하지 않는 랭혹한 병이였다.

어떻게 되여 이런 탈이 생겼던가. 그것은 해산후 손에 물을 묻히면 안된다고 한 시어머니나 시누이의 말대로 몸건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정애경에게 그자신의 육체가 내린 무자비한 징벌이였다. 사실 의학이 산모들에게 내리는 경고만큼 엄하고 무시무시한것은 없다. 이 경고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산모들은 례외없이 산후탈이라는 진펄에 빠진다.

어떤 녀성들은 일생동안 그 진펄에서 헤여나오지 못한다.

정애경이 금애를 낳은 다음 산후탈로 고생한것은 바로 의학의 엄격한 요구앞에서 성실하지 못했기때문이였다. 그는 스스로 찬물에 손을 적셨고 그로 해서 종신병이라고도 부르는 산후탈을 얻었다.

내가 어떻게 되여 그날 리성을 잃을 지경으로 만용을 부렸던가. 시어머니는 장천에 있는 친정에 잠간 다녀오겠다면서 집을 나섰는데 몸간수를 잘하라고 거듭 당부하였다. 그런데 오후 5시까지는 꼭 돌아온다던 시어머니가 저녁 8시가 다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정애경은 조바심을 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궁금했고 다음은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때 그는 무엇을 생각했던가. 시어머니가 돌아오기 전에 세식구의 밥을 지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어머니와 남편, 자기자신의 밥이다. 시아버지는 출장지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정애경은 이 저녁만은 산모에게 주어진 특전을 포기하기로 했다. 산후탈이 아무리 무서운 복병이라고 해도 새색시의 직분을 망각하는 행실보다는 더 무서울수 없었다. 산후탈도 사람이 앓는 병이니 무슨 용수가 있겠지. 그는 산모들에게 주는 웃어른들의 금기사항도 절반이상은 엄포이고 산후탈을 종신병이라고 하는 항간의 말도 과장된 랑설이라고 생각하였다.

태여난지 사흘밖에 안되는 갓난애를 요람속에 두고 정애경은 찬물에 손을 적시며 밥을 지었다. 늘 그랬던것처럼 자기 밥과 시어머니 밥은 흰쌀에 강낭쌀을 섞어 수수하게 짓고 남편의 밥은 순수한 흰쌀로 지었다. 봉건의 흔적을 꼬물만치도 찾아볼수 없는 가문이였으나 식생활에서만은 남녀불평등이 가법으로 존재하였다. 이것은 이 가문의 남자들이 세운 질서가 아니라 녀자자신들의 선택이였다.

그날따라 정애경은 남편의 밥상에 올릴 식찬도 가지수를 늘여 특별히 잘 만들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자기 아들의 식생활에 특별한 정성을 고일것을 요구했고 또 그런 정성을 볼 때마다 못내 만족해하였다. 정애경은 손을 붙인김에 닭알볶음과 미나리채도 마련했고 적쇠에 꽁치도 구워냈다.

남편은 그 늘씬한 체구에 어울리게 식성도 좋았다. 그는 일밖에 모르는 불도젤형의 사나이였는데 밤늦게 퇴근해와서도 안해가 챙겨주는 밥상을 반반히 비우군 하였다. 피곤에 몰려 입맛을 잃을 때에조차 절대로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었다. 강원도출신인 어머니의 음식솜씨보다 함경도출신인 정애경의 음식솜씨가 훨씬 짭짤하다고 이불속의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정애경은 생소한 대도시의 낯설은 사람들속에서 교육이라는 어려운 사업에 종사하면서도 남편의 뒤바라지를 꼼꼼하고 이악스레 하였다. 결혼후 2년동안의 삶전체가 남편을 위한것이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는 남편한테 푹 빠지였다.

이럴 때에 새생명이 태여나 강석민이 송금주에게 편지로 언명한 이름을 가지고 자기의 존재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딸애의 출현은 강씨가문에 굳어진 생활질서와 전통을 뒤흔들어놓았고 오직 남편을 위해서만 고동치던 정애경의 심장에 모성애라는 새로운 심실을 이식함으로써 그의 사랑에 혼란을 조성하였다. 하지만 딸의 출생으로 해서 남편에 대한 사랑이 감소되거나 희석되는 일은 없었다. 딸은 딸이고 남편은 남편이였다.

그가 가시물에 수저를 행구어 행주로 하나하나 씻어내고있을 때 친정갔던 시어머니가 불쑥 나타나 야단을 쳤다.

《아이에미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너 어쩌자구 부엌엘 내려왔니.》

《어머니, 요쯤한걸 가지고 뭘 그래요.》

《요쯤한게라니, 손에 물을 묻히면 큰 변이 난다구 내가 몇번이나 말했니. 에그, 산모를 집에 두구 자리를 뜬 내가 천벌을 받아야지.》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오봉선은 문턱에 걸터앉아 눈물을 줄줄 흘리였다. 그는 눈두덩에 치마자락을 대고 한참동안 죽은듯이 앉아있었다.

《금애 에미야, 이 일을 어쩌면 좋니. 내 불찰로 네 몸을 그르쳤으니 정말 후회막급하구나. 내가 죽을 정신이 들었지. 친정에서 산꿀을 주겠다기에 그만 귀가 뻘쭉해서…》

《어머니, 너무 락심마세요. 이만한 동자질에 아무렴 산후탈이 오겠나요.》

《넌 정말 어쩌면 그렇게 마음이 태평스럽니. 효도가 아무리 중하단들 네 건강에야 비길수 없지 않느냐. 내사 이제 금애 애비를 무슨 낯으로 볼가.》

오봉선은 부뚜막앞에 내려와 정애경의 량어깨를 잡고 다짜고짜 아래방으로 떠밀었다.

《남들이 보면 뭐라겠니. 못된 시에미를 만나 귀한 며느리가 산후 사흘만에 부엌일을 했다구 입들을 나불거리지 않겠나 말이다.》

이번에는 정애경이 행주치마자락으로 눈언저리를 훔치였다. 사람을 아끼는 이 집안사람들의 훈훈한 마음씨가 그대로 가슴에 흘러들어 눈물을 자아냈다.

《어머니, 제가 어머니의 당부를 너무 소홀히 한것 같애요. 그렇지만 너무 걱정마세요. 난 어떤 병이든지 이겨낼 자신이 있어요.》

그날 밤 자정도 넘어 고열과 오한으로 와들와들 떨며 이불속에서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내지르지 않으면 안되였을 때에야 정애경은 산후탈이 얼마나 무서운 병이며 자기가 산모들이 지켜야 할 규범을 무시한것이 얼마나 경솔한 행위였는가를 눈물속에서 깨닫게 되였다.

집안분위기는 말그대로 초상난 집처럼 스산해졌다. 치차처럼 꼭꼭 맞물려 돌아가던 정교한 생활의 프로그람이 뒤죽박죽으로 되였다. 순풍에 돛단 배처럼 생활의 창파우를 무난하게 미끄러져가던 정애경의 진로에 제동이 걸리고 삐걱소리가 났다. 다음날로 그는 딸애와 함께 구역인민병원에 입원하였다.

입원후 한달이 지나서부터는 병세가 누그러들기 시작했다. 정애경은 퇴원을 서둘렀다. 산전산후휴가기일을 초과하고보니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것 같은 심정이여서 조마조마한 생각만 앞섰다. 먹은 밥이 살로 가지 않았고 입은 옷이 몸에 붙지 않았다. 정을 붙인 교단이 눈에 삼삼히 어려오고 때를 묻힌 학생들에 대한 그리움이 무시로 마음을 들썽거리게 했다.

내가 휴가기간을 초과하면 다른 교원들이 보충수업을 하거나 대리수업을 하게 될테니 이거야말로 얼마나 딱한 일인가. 나 한사람의 부재가 과정안집행에 혼란을 줄수도 있고 학교생활전반의 순조로운 흐름을 헝클어뜨릴수도 있은즉 내가 어찌 병을 핑게로 무한정 침상에 처박혀있을수 있겠는가. 교장도 교무주임도 병이 완치될 때까지 애당초 퇴원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데 선의는 고맙지만 사람이 힘든 고비를 겪는다고 제 생각만 할수는 없다.

교원들이 문병을 자주 올수록 정애경은 퇴원할 구멍수만 노리였다.

그리고 마침내는 퇴원해도 좋다는 허락까지 받아냈다. 바로 그런 때에 금애가 급성페염에 걸리는 특대형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퇴원을 단념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갓난애의 병이 얼마나 위급했던지 의사, 간호원들은 집에도 가지 못하고 한주일동안이나 금애의 요람곁에서 치료전투를 벌리였다. 강석민은 사색이 되여 하루에도 두세번씩 병동에 찾아와 딸애의 머리맡에 한참씩 앉아있다 가군 하였다. 출장지에서 돌아온 시아버지도 이따금씩 병원에 찾아와 손녀애의 병세를 알아보군 하였다.

갓난애가 급성페염에 걸리면 생명을 건지지 못하는것이 통례이다.

그런데 사람의 형체를 채 갖추지 못한 궁주리속의 병아리같은 이 아이는 연약하고 가냘픈 몸집에 비해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있었다. 아이의 병은 보름만에 기적적으로 호전되였다. 발병후 20일이 지나서부터는 정상상태로 돌아갔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감시속에서 치료를 더 받아야 한다는것이였다.

몇분전에 정애경은 침상에서 해방되여 병원문을 나섰다.

입원할 때 54키로였던 몸무게가 석달사이에 48키로로 내려갔다. 남들은 몸을 내가지고 병원을 떠난다는데 그는 까나리같은 몰골로 집에 돌아간다. 그런 몰골로는 거울조차 보기 싫다. 병실의 벽거울을 비쳐 본지도 까마득하다. 체중이 6키로나 줄어들었다는데 몸은 왜 이렇게도 땅으로만 잦아드는지 알수 없다. 남들은 모두 살이 피둥피둥 쪄서 병원문을 나선다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일가.

하지를 앞둔 하늘이 벌써부터 불볕을 들붓는데 정애경은 눈이 시그럽고 머리가 휘휘 내둘리여서 얼굴을 쳐들고 그처럼 그립던 하늘을 바라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입원할 때 순도 돋지 않았던 가로수잎새들은 퍼렇게 독을 쓰며 모든것이 즙을 모으고 활력이 넘치는 초여름의 풍만하고 건장한 생명력을 뽐내고있었다. 신혼기의 정애경도 저 잎새들처럼 싱싱하고 탄력에 넘치였다. 지금 그 정애경은 없다. 탄력도 즙도 생기도 산후탈이라는 그 몹쓸놈의 병마가 다 앗아갔다. 금애를 위해 애간장을 태우던 그 무수한 낮과 밤들이 모조리 징발해갔다.

《애에미야, 너 그 몸으로 과연 아이들을 가르칠수 있겠니?》

옆에서 며느리와 손녀애의 옷가지들을 꿍져넣은 보따리를 들고 길라 잡이처럼 걸어가던 오봉선이 걱정스레 물었다. 시어머니는 벌써 이 말을 세번째나 한다. 오죽 걱정이 되면 그러랴싶었다.

《가르칠수 있어요. 아니, 아무리 힘들어도 가르쳐야지요.》

정애경의 목소리는 몹시도 메마르게 울리였다.

《아무래도 네 건강이 걱정된다. 그 몸으로야 어떻게 교단에 서겠니.》

《어머니, 내 몸은 내가 알아요. 중학교에 다닐 때 건성륵막염으로 고생한적도 있지만 난 그 고비를 이겨냈거던요.》

《넌 정말 너무 천진해서 탈이구나. 건성륵막염이라는건 앓고나면 그것으로 그치는 병이지만 산후탈이라는건 종신병이나 다름없는 못된 병이다. 그런 병을 몸에 걸치고 교단에 그냥 선다는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이제 케를 봐서 휴직을 신청하는게 좋겠다. 그래야 너도 살고 애기도 산다. 금애도 그렇지, 어디 새들새들한게 사람구실을 하겠니.》

《그렇다고 휴직이야 어떻게 하겠나요. 그보다 더 중한 병을 가진 사람들도 직장생활을 하며 천리마를 타고 달리는데… 나이 스물일곱살에 휴직이라니 난 그런짓을 못하겠어요.》

정애경은 시어머니가 더 바람을 불어넣지 못하게 단호히 잘라던지였다. 시어머니의 인정극에 자꾸 끌려들어가면 자기를 지탱하지 못하고 휴직이라는 그 달콤한 유혹을 이겨낼것 같지 못했다. 오봉선은 그이상 더 말을 붙이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절대로 며느리에게 자기의 의사를 강요하거나 내리먹이는 법이 없었다. 그대신 말을 많이 하여 상대를 계몽시키려고 애썼다. 강석민의 아버지가 그에게 달아준 직함은 《선전부장》이였다. 해방전의 평양녀고출신인 오봉선은 그 나이의 녀인들중에서는 흔치 않은 식자였고 인격자였다. 그는 산부인과계통의 상식에도 도통하고있었는데 온갖 지식을 다 동원하여 퇴직의 당위성을 줄곧 품을 들여 력설하였다. 하지만 퇴직을 성사시키려는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검질긴 시도는 정애경의 완강한 저항앞에서 매번 물거품이 되였다.

시집의 모든 사람들, 지어는 시아버지 강우일까지도 그들의 공세에 편승하여 어떻게 하나 정애경의 마음을 돌려세우려고 안깐힘을 썼다.

다만 남편인 강석민만은 철저한 중립을 지키였다. 안해가 퇴원한 날 그는 다른 날보다 한시간쯤 일찍 퇴근해들어와서 이렇게 말했다.

《여보, 그 몸을 가지고 꽤 견디여낼수 있겠소?》

강석민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요람속에서 쌔근거리는 딸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마치 그 애의 연약하고 가냘픈 모습속에서 안해의 대답을 찾으려고 모대기는듯 한 거동이였다. 정애경은 입에 너무 자주 올려 익을대로 익은 제강을 또다시 반복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견뎌내야지요. 그만한 난관앞에서 동요하면 내가 무슨 정애경이겠나요. 차라리 성을 갈구말아야지.》

《나는 금애의 건강까지 념두에 두고 말하는거요. 이 애 건강이 변변치 못하오. 모녀가 다 병다리들이면 설사 무직업이라고 해도 견뎌내기 힘들게 되오. 당신과 애생각을 하면 솔직히 말해서 직장에 나가서도 손에 일이 잘 잡히지 않거던.》

강석민은 한숨을 내쉬였다. 락천가인 그도 이 여름에는 안해와 딸의 병때문에 어지간히 기가 죽었다. 정애경은 남편의 컴컴한 얼굴을 보는것이 가슴아팠다. 결혼후에도 그렇고 금애가 태여났을 때도 그렇고 얼마나 희열에 넘쳐있던 남편이였던가. 정애경을 안해로 맞아들인 때부터 강석민은 이전보다 두곱이나 더 많은 기사를 써냈다. 그가 써낸 큼직큼직한 글들이 련이어 신문지상에 발표되여 독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기자동맹에서도 그에 대한 평판이 좋았다. 그가 쓴 공산주의교양기사들을 읽고 써보낸 편지들이 수십통이나 되였는데 정애경은 그 수십통을 다 보고 남편에 대한 긍지를 다시한번 느끼였다.

《여보, 미안해요. 정애경이라는 이 걱정덩어리때문에 온 집안이 몸살을 앓고… 당신까지 일에 집념할수 없게 만들었으니…》

《정애경이 왜 걱정덩어리겠소. 난 자나깨나 당신생각뿐이요. 당신을 떠난 내 인생이란 상상할수도 없고 설계할수도 없게 되였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와 당신의 인연을 맺어준 송금주와 그의 창조물인 우리 마을 도서실에 때없이 감사를 표하군 하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내 심장은 낮이나 밤이나 당신에 대한 생각으로 고동치고있어요. 난 당신이 날 얼마나 끔찍이 위하는가를 잘 알아요. 그렇지만 이것 보세요, 남자가 녀자한테 너무 깊숙이 빠지면 큰일을 못쳐요. 난 당신이 나때문에 일에 지장을 받는걸 바라지 않아요.》

강석민은 시꺼먼 눈섭밑으로 안해의 얼굴을 정답게 쓰다듬어주었다.

《고맙소. 그러나 그런 걱정은 마오. 난 녀편네 치마꼬리에 붙어서 제 할일을 다 안하는 그런 반편들을 경멸하오. 이 강석민은 그런 인간이 될수가 없소. 당신의 존재는 내 사업에서 하나의 강력한 추진력으로 되고있을뿐이요.》

잠에서 깨여나 칭얼거리던 금애가 무엇이 못마땅한지 갑자기 오만상을 찡그리며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갓난애가 밤중에 우는것은 두가지 경우라고 했던가. 하나는 수면상태에서 무엇인가를 배설했을 때이고 다른 하나의 경우는 심한 배고픔을 느낄 때이다. 기저귀를 헤쳐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정애경은 딸애를 얼른 들춰안고 젖을 물리였다. 아직은 입이라고 말할수 없는 만문만문한 고무꼭지같은것이 젖꼭지를 물고 앙증스레 젖을 빨아댔다.

정애경은 그 순간 딸애는 자기와 한몸이라는 새삼스러운 생리를 다시한번 가슴쩌릿하게 체험하였다. 임신부의 배속에 있을 때는 태줄로 어머니와 련결되고 몸밖을 나와서부터는 산모의 유두를 통해서 어머니와의 뉴대를 확증하고 과시하는것이 갓난애들이다. 아직은 피덩이나 다름없는 그 쪼꼬만 폭군들은 부모의 다툼질과 대결까지도 조절하는 신비스런 마력을 발휘한다.

《당신은 왜 여적 한번도 금애를 안아보지 않아요?》

딸애가 젖빠는 모양을 사랑스럽게 굽어보던 정애경이 남편에게 느닷없이 물었다. 급습을 당한 강석민은 남들한테 안주머니를 뒤져보인듯한 어줍은 표정을 담고 변명비슷이 말했다.

《내가 안으면 바스라지지 않을가. 이제 한두달 지나 완전한 인간의 형체를 갖추게 될 때면 하루 백번씩이라도 안아주겠소.》

그는 말을 마치고나서 미안해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정애경은 눈을 흘기였다.

《남들은 아들딸들이 태여나면 자식한테 빠져 안해를 돌아보지도 않는다는데 당신은 금애를 안아보지도 않고 줄창 내 걱정만 하고있으니 강석민이라는분을 어떻게 리해하면 좋아요.》

《솔직히 말하면 아직 정이 확 쏠리지 않는구만.》

《딸이라구 그러는게 아니예요?》

《성별은 아무 상관도 없소. 난 남존녀비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요.》

그날 밤 정애경은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휴직》이라는 그 서늘한 말마디가 가슴에 와 박힌채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시한탄이라도 안은듯 한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멀리서부터 육박해오는 폭발음에 귀를 기울이였다. 휴직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사회적존재로서의 가치를 잠간 보류해두는것이다. 선수교체를 당하고 경기장밖으로 나온 선수의 처지와 비슷한 경우라고 할가. 다만 다른점이 있다면 휴직상태에 있는 사람이 종전의 초소로 되돌아가는데서 결정적역할을 하는것이 자체의 결단이라면 교대선수가 다시 경기에 참가하는가 마는가 하는것은 팀의 감독에게 달려있다는것이다.

이 애경에게 감히 휴직을 권고하다니. 나야 그런 권고를 받아들일수 없지. 내가 어떻게 그걸 받아들여, 어림도 없는 일이지.

정애경은 강씨가문사람들이 다시는 그런 흥정을 붙이지 못하게 성벽을 더 높이 쌓고 빗장도 더 단단히 질러야겠다고 생각하였다.

허나 생활이란 그렇게 단순한것이 아니였다. 10여일이 지나 정애경은 또다시 병원에 실려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입원후 얼마 안되여 금애도 소화불량에 걸려 어머니의 속을 썩이였다. 산모가 비들비들하면 갓난애도 비들비들한다는 뭇녀인들의 말이 틀린데가 없었다. 딸애는 심한 영양부족으로 사경에서 골골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 애의 불행때문에 흘린 정애경의 눈물이 얼마인지 그것은 누구도 모른다.

어느날 강석민은 문병을 하고 돌아가다가 안해에게 물었다.

《첫딸은 금딸이라고들 한다는데 저 금애가 과연 금딸이 될가?》

《글쎄요, 금딸이 되겠는지 은딸이 되겠는지 그건 두고봐야 알겠지만 난 그저 애가 앓지만 말았으면 좋겠어요. 아버지도 건강체이고 어머니도 그만하면 강질인데 저건 누굴 닮아 저렇게 애를 말리는지.》

두달후 정애경은 48키로로부터 45키로의 체중을 가진 녀인이 되여 집으로 돌아왔다. 딸애도 소화불량에서 해방되였으나 팔다리가 저가락같이 되였다.

그때부터 정애경은 자기가 사회에 보탬을 주는것이 아니라 부담을 주는 시끄러운 존재로 되였으며 휴직으로 시간을 얻어 건강을 회복한 다음 교단에 다시 서든가 사퇴하지 않으면 안되는 기로에 서있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였다. 휴직도 싫고 사퇴도 싫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학교에 달려나가 정든 교직원, 학생들을 만나보고싶었고 가정방문도 하고싶었다. 허나 지금의 정애경은 머리를 쳐들고 하늘의 해를 쳐다볼 경황도 없었고 딸애와 재롱을 부릴 정신적여유도 없었다.

휴직도 사직도 죽도록 싫지만 학교에 부담스런 인물이 되여 뭇교원들의 짜증을 자아내는것도 싫었다. 운명앞에 순종하기로 결심한 정애경은 퇴원한 다음날로 학교에 나가 휴직을 신청하였으며 건강상태가 악화되자 반년후에는 교단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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