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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6 회


제 6 장

2

오후 6시부터 영천중학교 음악실에서는 노래이야기 《삼천리려행단》에 나오는 곡들에 대한 시청회가 열리였다. 이날의 시청회에는 정애경이 형상한 녀성중창 《보람찬 우리 나라》의 시연에 참가하였던 교원전원이 참석하였다. 김영찬은 전쟁때 조선인민군협주단에서 성악배우로 활동하다가 제대된 고덕탄광 문화회관 관장 태상록과 전차갱에서 채탄공으로 일하는 현직작곡가 림시영도 이 시청회에 초청하였다. 한 인간의 예술적창조물에 대한 사회적평가가 쏟아지게 될 음악실안의 분위기는 전에없이 엄숙하였다.

시청회는 노래이야기 《삼천리려행단》에 출연하게 될 음악소조성원들이 송금주가 작곡한 6곡을 순서대로 부른 다음 그것을 하나하나 평가하는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곡을 감상하고는 모두가 기탄없는 의견을 내놓았다. 6개 곡에 대한 합평회참가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였다.

이번에도 첫 발언은 최춘숙문학분과장이 하였다.

《나는 우선 송금주선생의 음악적재능에 탄복하였습니다. 송선생이 이처럼 훌륭한 선률을 가지고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훌륭합니다.》

그는 이렇게 일괄하여 6개 곡에 대한 총평을 하고나서 구체적인 분석으로 넘어갔다.

《이 노래들에는 무엇보다도 우리 시대의 동심이 잘 반영되여있습니다. 매개 곡들이 하나같이 밝고 명랑하며 재치가 있고 아기자기합니다. 기차를 타고 려행하는 기분을 그대로 느끼게 합니다. 모든 곡들이 시대정신을 잘 담고있습니다.》

이번에는 리철순이 계주라도 하듯이 인차 최춘숙이 넘겨주는 바통을 잡았다.

《최춘숙선생의 말에 나도 동감입니다. 어려서 기차를 타고 려행하면서 얻었던 체험이 그대로 되살아나는것 같습니다. 4분의 2박자와 4분의 4박자, 4분의 3박자계통의 노래들이 잘 배합되여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있습니다. 한가지 의견이 있다면 주제곡을 좀더 재미나게 다듬었으면 하는겁니다.》

태상록이 주제곡이라는 말에 얼른 맞장구를 쳤다.

《옳습니다. 다른 곡들에 비하면 주제곡의 선률이 탁 트이지 못하고 가드라드는감이 납니다. 선률을 쭉쭉 펴주어 류창한 곡을 만들었으면하는 욕심입니다.》

그는 잠시 방안을 둘러보다가 기침을 몇번 하고나서 감상적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나는 오늘 〈삼천리려행단〉의 노래를 들으면서 전쟁때 우리가 밟아보았던 남조선의 도시들과 마을들, 산들과 강들을 눈앞에 다시 그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룩하지 못한 조국통일에 대하여, 그것을 위해 청춘을 아낌없이 바친 나의 전우들과 통일애국인사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통일은 한시도 미를수 없는 민족의 숙원이고 시대의 요청입니다. 〈삼천리려행단〉은 이 요청에 훌륭한 대답을 주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노래들을 들으며 갈라진 조국을 빨리 통일해야겠다는 열망과 통일된 미래의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저절로 가슴이 부풀어오르게 됩니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낸 송금주선생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태상록의 말에 합평회참가자들은 모두 숙연한 기분에 잠기였다.

태상록의 뒤를 이어 고덕탄광 현직작곡가 림시영이 토론에 참가하였다.

《지난해 가을에 정애경선생이 가사 한편을 가지고와서 나에게 작곡을 해달라고 부탁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나는 그 선생에게 남의 힘을 빌어 곡을 해결할게 있는가, 정수일선생슬하에서 음악공부도 많이 했다는데 한번 자기 힘으로 곡을 만들어보라고 권고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애경선생이 하는 말이 〈음악공부를 많이 했다고 다 작곡을 하는건 아닙니다. 제같은게 어떻게 감히 작곡을 합니까.〉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아동곡은 아이들과의 사업을 전문하는 교원들이 제일 잘 만들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오늘 송금주선생은 내 주장이 정당한 주장이였다는걸 증명해주었습니다.》

림시영은 격려의 표시로 송금주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나서 6개 곡에 대한 실무적평가에로 넘어갔다.

《모든 곡들에 동심이 철철 넘치고있습니다. 내자신도 아이들과 함께 렬차를 타고 통일된 삼천리강산을 려행하는듯 한 기분이 납니다. 송선생이 이 작품을 평양으로 달리는 렬차에서 착상했다는데 착상의 계기 자체가 좋은 작품이 나올수 있는 전제로 된것 같습니다. 모든 곡들이다 좋지만 남해에서 어로공들이 고기그물을 끌어올리는 장면에서 려행단어린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기막히게 재미가 납니다.

얼마나 곡이 경쾌하고 동심에 차넘침니까. 나는 이 곡을 들을 때 저도 모르게 손으로 고기그물을 당기는 시늉을 해보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선률이 생활을 잘 반영했다는걸 말해줍니다.》

《제가 좀 말해볼가요.》

조학문이 마치 발언권이라도 빌듯이 정중한 몸가짐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공식석상에서나 사사로운 좌석에서나 말꼭지를 뗀 다음 늘 3~4초의 공간을 두군 하는 그는 이번에도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런 화법은 그의 말에 무게를 실어주는 작용을 하였다.

《〈삼천리려행단〉은 우리 인민의 통일념원을 격조높이 노래하고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작품은 통일이후의 삼천리조국강산을 례찬하고있지만 이것은 본질상 전도된 통일념원의 표시라고 봅니다. 학생소년들에 대한 교양뿐이 아니라 근로자들에 대한 애국주의교양에서도 한몫 단단히 할수 있는 작품이라고 봅니다. 렬차를 타고가는 률동을 펼치면서 이 노래들을 부르고 거기에 대사까지 적당히 섞어 공연을 펼치면 절찬을 받게 될것입니다. 우리 학교 교원들속에서 대본을 쓰고 작곡까지 하는 사람이 나온것은 전후 처음으로 되는 일인데 앞으로 만사를 자기힘으로 하는데 대해 적극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면 학교교무행정이 송금주선생의 수업시간을 조절하여 선생이 음악소조지도에 더 많은 시간을 돌릴수 있도록 충분한 조건을 지어주자는것을 제기합니다. 나는 가까운 몇해안으로 우리 학교 음악소조원들이 전국적판도에서 이름을 떨치게 될 날이 오리라는걸 확신합니다. 송금주선생은 조만간에 기적을 창조하게 될것입니다.》

조학문의 말은 송금주를 흥분시키였다. 그자신도 대본을 쓰고 작곡을 하는 과정에 자기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신심을 얻었다. 금년 한해동안 품을 들여 기초를 잘 닦아놓으면 학교의 음악예술이 인차 용을 쓰게 될것이라는 확신이 생기였다.

김영찬은 시종 흐뭇한 얼굴표정으로 합평회 전과정을 유심히 지켜보고있었다. 조학문의 말이 끝나자 그는 장내를 쭈욱 둘러보며 말문을 열었다.

《좋은 말씀들을 해주어 고맙습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태상록관장선생과 림시영선생이 우리의 초청에 응해주고 귀중한 조언을 준데 대하여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바입니다. 음악실무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다 이야기했기때문에 나로서는 더 할말이 없습니다. 다만 송금주선생을 비롯하여 우리 교원들에게 강조하고싶은것이 있습니다. 그건 뭔가. 금년 1년동안에 작품을 잘 형상하여 래년이나 그 다음해에는 전국학생소년예술축전에 기어이 참가할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하자는겁니다. 승산이 있는가. 승산이 보입니다.》

교무주임의 말에 장내가 술렁거리였다. 모두가 그의 말에 공감하였다.

《송금주선생, 우리가… 우리 당조직에서 잘 도와주겠으니 한번 본때있게 해보시오.》

김영찬은 송금주에게 다시한번 고무적인 눈길을 보내고나서 태상록과 림시영을 앞세우고 음악실을 나섰다.

시청회참가자들이 다 돌아간 다음에도 송금주는 텅 빈 방에 홀로 앉아 합평회참가자들이 남기고간 말마디들을 조용히 음미해보았다. 그 말마디들의 대부분은 귀맛이 당기는 찬사였고 고무였다. 좌절을 몰아오는 비난이나 혹평은 하나도 없다. 첫 작품에 대한 평가가 이런 정도면 대단한 수확이라고 볼수 있다.

송금주는 불현듯 어깨를 내리누르는 무거운 사명감을 느끼였다. 찬사가 요란하고 믿음이 클수록 사명감도 배가되는가. 좋다, 나를 믿으라. 내 어떻게 하나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겠다. 이 송금주의 정열이 어떤 정열인가를 실물로 보여주리라. 내가 음악예술로 모교의 영예를 떨치게 되면 정애경도 멀리서 나를 축복해줄것이다.

밖에서 갑자기 꽈르릉- 하는 뢰성이 울리였다. 그 뢰성은 머리우에서 울리다가 어딘가 먼곳으로 천천히 굴러갔다. 그것은 레루우를 달리는 밀차바퀴소리를 련상시키였다. 이번에는 먼 변방에서 울리던 우뢰소리가 영천의 하늘로 자리를 옮기며 노성을 터뜨리였다. 번개불이 번쩍- 하고 하늘을 찢어놓다가 음악실 창유리를 직타하였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송금주는 그제야 상념에서 깨여났다. 청소당번들에게 대청소를 하라고 분부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청소당번들이 청소를 끝냈을가, 청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을가. 시청회와 합평회가 한시간이나 걸리였으니 청소는 이미 끝나고도 남았을것이다. 남학생들의 대청소란 그저 그런것이다.

송금주는 음악실을 나서자 교실로 바삐 걸어갔다. 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서자 걸레로 널마루를 밀었을 때의 슴슴하면서도 누기찬 냄새가 확 밀려왔다. 방안이 몇시간전보다 정결하고 멀쑥해보이였다. 남학생들의 솜씨치고는 퍼그나 알뜰했다. 3학년에 올라와서부터는 교원이 앞질러가면서 이래라저래라 하고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일거리를 스스로 찾아서 할 정도로 학급전체가 셈이 들었다.

교실뒤쪽에서 갑자기 인기척소리가 났다. 장일남이 의자를 뒤로 밀어제끼며 자리에서 일어나 옆구리에 짝지발을 끼고 교탁으로 걸어왔다.

송금주는 놀랐다. 저 애가 왜 아직도 교실에 남아있을가. 무슨 의논할 일이라도 생긴걸가, 아니면 누가 또 그를 노엽혔을가. 요즈음은 장일남의 앞에서 절름발이흉내를 내는 아이들도 없고 그를 조롱하는 아이들도 없다. 장일남도 2학년 말기부터는 노여움을 타지 않았다. 지금은 모든 학생들이 그를 동정하고 도와줄뿐이다. 그렇다면…

《일남인 왜 상기도 집에 가지 않나요.》

송금주가 착잡해지는 생각을 앞세우고 물었다.

《선생님하구 의논할 일이 있어서…》

《그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자요.》

의자 두개를 들어다 교탁옆에 놓고 장일남과 마주앉았다.

《그래 무슨 문제인가요?》

《중학교를 졸업한 다음 무슨 일을 했으면 좋을지 몰라서 그럽니다.》

송금주는 가슴 한끝에서 어떤 동통비슷한것이 밀려오는것을 느끼였다. 입만 벌리면 오열이 터져나와 온몸을 뒤흔들어놓을것 같아 말도 못하고 몇초동안 폭우가 쏟아져내리는 창문밖만 덤덤히 내다보았다. 장일남의 말은 그의 심중에서 아직 피부에까지는 와닿지 않았으나 미구에 닥쳐올 제자들과의 작별을 예고해주었다.

두달후이면 그가 교단에 선 후 처음으로 맡아키운 첫세대의 제자들이 중학과정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게 된다.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던 제자들인가. 그 제자들이 지금 둥지를 떠나 스스로 깃을 치며 대공으로 날아오를 차비를 하고있다.

그런데 장일남이 날아가려고 하는 곳은 대공도 아니고 대양도 아니다. 그는 지금 짝지발을 짚고 다니면서도 살아갈수 있는 적합한 무대를 찾고있다. 언제인가 난 그에게 고등기술학교는 물론 대학공부까지도 해야 하며 또 할수 있다는 선동을 했었지. 그래 그게 실현가능한 전도란 말인가. 그때는 학업을 포기하겠다고 나가누운 장일남을 설복하느라고 그런 선동을 했다치고…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나.

《마침 잘 만났어요. 나도 그런 문제때문에 일남학생을 만나고싶었어요. 문제는 일남학생이 장차 무슨 일을 하고싶어하는가 하는데 달려있다고 봐요. 오늘 이 선생님앞에서 솔직히 말해보세요. 중학을 졸업한 다음 무슨 일을 하고싶은지…》

《선생님, 절 욕하지 마십시오. 전 탄광 생필직장에서 일하고싶습니다. 공부는… 일하면서 하자는겁니다.》

《잘 생각했어요. 내 생각과도 꼭 같아요.》

《선생님, 정말입니까?》

《정말 아니구요.》

《난 또 선생님이 상급학교공부를 포기한다고 야단칠줄 알았습니다.》

《2년전이라면 그랬을거예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수가 없어요. 이 선생님은 일남이더러 상급학교에 가라고 강요하지 않겠어요. 생필직장이 좋아요. 그런 직장에 가서 기술조작공 같은걸 하면 보람도 클거예요. 생필직장에 가는건 내가 차석진지배인과 직접 교섭해주겠어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장일남은 무슨 말인지 더 하려고 머뭇거리다가 책보자기에 달린 끈을 목에 걸고 짝지발로 마루바닥을 쿵쿵 짚으면서 복도로 나갔다. 송금주는 그가 집으로 고생스레 갈것 같아 걱정되였다. 이 폭우속에서… 비만 내리면 영천의 모든 도로들은 진창이 된다. 찐득찐득한 진흙이 신발과 바지가랭이에 매달리고 진창물이 얼굴에까지 튕겨오른다. 짝지발로 진창을 찍으면서 어떻게 집으로 가나. 오늘따라 그가 더 가엾고 불쌍해보였다.

《일남이, 저기 현관문앞에서 조금만 기다려요.》

송금주는 이렇게 이르고나서 분과실에 뛰여가 비닐로 지은 비옷을 들고 내려왔다. 무작정 장일남에게 입히였다.

《이걸 입고가면 비를 덜 맞을거예요.》

《내가 입고가면 선생님은 어떡합니까?》

장일남은 비옷을 벗어 송금주에게 도로 주려고 소매에서 뿌둥뿌둥 팔을 뽑았다. 송금주는 그에게 눈총을 쏘았다.

《못난이처럼 굴지 말고 그냥 입고가요. 선생걱정은 안해도 돼요. 내가 교문있는데까지 바래주지요.》

송금주는 폭우에 옷을 적시며 성큼성큼 교문쪽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장일남은 현관앞에서 발을 떼지 않고 울상이 되여 애원하였다.

《선생님, 그만두십시오. 제발!… 빕니다!》

《일남이, 이 선생마음을 그렇게도 몰라.》 송금주는 어성을 왈칵 높이며 반말로 넘어갔다.

《이제 두달만 있으면 졸업이야. 제자와 스승이 폭우속에서 함께 걷는 이 광경! 이런 장면은 두번다시 돌아오지 않아. 먼 후날에 가서는 이런 광경이 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는거야.》

장일남은 그 말에 감전된듯 옆구리에 짝지발을 끼고 현관앞을 떠났다. 비물인지 눈물인지 알수 없는것을 입으로 연방 삼키면서 묵묵히 걸음만 옮기였다. 송금주는 그의 보폭에 보폭을 맞추면서 나란히 걸었다.

그는 교문까지 가서는 인차 돌아서려고 작정하였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교문을 지나면 공설운동장인데 그 운동장이 반나마 흙탕물속에 잠기였던것이다. 그 탕수속으로 짝지발올 짚고 건너가는 제자의 모습을 가슴이 아파서 차마 바래줄것 같지 못했다. 송금주는 장일남에게 등을 대고 무릎을 접었다. 그리고는 더 거역하지 못하게 명령조로 말했다.

《자, 업혀라!》

장일남은 이번에도 주춤거리며 흥정을 붙이려고 하였다.

《선생님, 제 혼자서도 건늘만 합니다.》

《그 다리로 어림도 없어. 어서 업히라는데두.》

《선생님, 제발 혼자 가게 해주십시오. 내 몸은 온통 물천지입니다.》

《업히지 않으면 일남인 내 제자가 아니야. 자, 성내기 전에 어서!》

장일남은 그제서야 담임선생의 말에 순종하였다. 그는 가슴팍에서 데릉거리는 책보자기를 등뒤로 돌리고 짝지발을 송금주에게 넘겨주었다.

등에 장일남을 업은 송금주는 량옆구리에 짝지발을 끼고 공설운동장의 탕수속을 걸어갔다. 정갱이를 적시며 감도는 진창물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루룩주루룩하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50메터쯤 돌파하였다. 비에 젖은 소년의 몸뚱아리는 꽤 옹골차고 무거웠다.

장일남이 거칠게 숨을 몰아쉴 때마다 그의 입에서는 따스한 입김이 뿜어나와 송금주의 목덜미를 덥혀주었다. 그 숨결은 어째서인지 시시각각으로 박자를 형클어뜨리며 때로는 거세게, 때로는 약하게, 때로는 짧게 피부에 와닿았다. 그러다가 훌쩍거리는 흐느낌으로 변하였다.

《일남이, 왜 그러나?》

《나두- 모르겠습니다. …》

《울지 말아, 일남이가 우니까 선생도 울고프구나.》

《선생님, 난 더 못 가겠습니다.》

장일남은 땅바닥에 내리려고 발버둥질을 하였다. 물참봉이 된 신발 짝이 량옆에서 송금주의 허리를 직신직신 건드렸다. 그 순간부터 장일남의 육신은 숨이 가빠나도록 무거워졌다.

투정질을 하는 아이가 웃는 아이보다 더 무겁다고 하더니 웃는 아이보다 우는 아이는 곱절로 무거운것 같다. 송금주는 장일남이 버둥질을 하지 못하게 그의 몸을 떠받치고있는 손에 아까보다 더 큰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내리겠다고 태를 쓰는 소년의 힘을 당해낼수가 없었다.

장일남은 담임교원의 등에서 떨어지자바람으로 짝지발을 끼고 지금까지는 한번도 볼수 없었던 맹렬한 속도로 진창속을 첨벙첨벙 걸어갔다.

무직하던 잔등이 가벼워졌으나 송금주는 그 잔등에 일남이가 그냥 매달려있는듯 한 감각을 그대로 안고 진창속에 서있었다. 장일남과 함께 그의 입에서 터져나오던 오열까지도 송금주의 잔등에 그대로 남아 귀전을 맴돌고있는것 같아서 도무지 탕수속에서 발을 뽑을수가 없었다.

왜 울었을가. 남의 잔등에 업히지 않으면 기나긴 인생길을 제대로 갈수 없는 자기의 불우한 처지가 서러워서 울었을가. 아니다, 그건 서러움만으로 우는 울음이 아니였다. 그러면 이 선생에 대한 고마움때문에?… 아니, 그것은 순수한 고마움때문에 폭발한 흐느낌도 아니다. 서러움과 고마움이 한데 겹친 오열이였다.

송금주는 장일남이 롱구공만 한 형체가 되여 보이지 않을 때까지 폭우속에 말뚝처럼 서있었다. 장일남에 대한 련민의 정이, 그의 인생길을 끝까지 지켜주어야 하겠다는 책임감이 그의 발을 진창과 폭우속에 집요하게 비끄러매두고있었다.

합숙에 돌아와 비에 걸레짝처럼 된 옷을 갈아입고 오슬오슬 떨리는 오한기를 누르느라고 아래목에 기대여앉았으나 진창속으로 걸어가던 장일남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도저히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두달만 지나면 모든 아이들이 교정을 떠나가게 된다. 그 순간부터 그들은 내 시야에서 벗어지게 된다. 내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생활을 창조하는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 때면 이 송금주의 사명도 끝나게 된단 말인가. 직능상으로는 끝난다고 말할수 있다. 그다음은 다른 곳에서 그들을 돌봐주고 키워줄 보호자들이 나타날것이다. 그렇다면 소학교와 중학교, 대학은 인재육성을 위한 계주장이고 나는 그 계주장의 한 구간을 담당한 책임감독이란 말인가. 내 임기는 3년? 그럴수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교원이 한번 맺은 인연을 3년만에 내던지고 다음단계의 감독들에게 학생들의 운명을 일임하고 돌아보지도 않는 그런 월급쟁이가 될수는 없지 않는가. 나의 임기는 무한이다. 나는 제자들이 교정을 나선 다음에도 그들의 운명을 지켜보면서 옳은 길로 가도록 이끌어주고 떠밀어주는 영원한 담임선생으로되여야 한다. 이것은 교육자의 의무이기전에 량심이다.

오슬오슬한 오한과 고열속에서도 두뇌는 명석해지고 사색은 정확한 결론을 도출해냈다. 그러자 그의 심신에는 정신적인 안정이 깃들었다.

조학문이 합숙방에 들어선것은 그 순간이였다. 그는 비닐보자기로 싼 큼직한 책꾸레미를 방 아래목에 일부러 쿵- 소리가 나게 내려놓으면서 우스개삼아 말했다.

《조대감님 행차요.》

송금주는 오한이고 뭐고 다 털어버리고 자리에서 움쭉 일어났다.

《이놈의 비가 암행어사도 몰라보는구만요.》

그는 천정밑에 대각으로 길게 건너간 빨래줄에서 비누냄새가 풍기는 세면수건을 벗어쥐고 비에 흠씬 젖은 조학문의 얼굴과 이마우에 찰싹 달라붙은 머리카락들을 씻어주었다.

《오늘은 우뢰소리가 별스레 요란스럽다 했더니 암행어사행차를 알리는 신호였군요.》

《글쎄 그런가보오.》

조학문은 롱을 잘 받아넘기였다. 그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방안을 한바퀴 건성으로 돌고나서 말했다.

《내가 오늘 이 합숙방으로 벼락행차를 한건 우리 마을 도서실에 책들을 기증하기 위해서였소. 자 금주선생, 받아주시오.》

아래목에서 책꾸레미를 들어 송금주의 가슴에 덥석 안겨주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송금주는 책꾸레미를 안은채 머리를 꾸뻑했다.

《모두 스물두권이요. 금이야 옥이야 하고 아끼던 책들인데 몽땅 우리 마을 도서실에 바치기로 했소. 지각생이 돼서 미안하오.》

《우리 도서실은 지각생도 환영합니다. 선생님은 지난해 교원총회때 리론활동으로 저를 도와주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누구나 할수 있는거지. 너무 추어주지 마오. 사실 난 마음속으로 한동안 동요도 했소, 바칠것인가 말것인가. 이 동요과정이 바로 나를 지각생으로 만들어주었던거요.》

조학문은 말을 끝내자마자 유리꽃병속에 대패밥꽃이 꽂혀있는 책상앞으로 다가갔다. 그다음 뒤로 물러섰다 앞으로 다가들었다 하면서 그 꽃을 한참동안이나 감상하였다. 《허, 그것 참!》 하고 그는 탄성을 내질렀다.

《이거 금주선생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구만!》

송금주는 그 말을 황급히 부정해버리였다.

《선생님, 그건 내가 만든 꽃이 아닙니다.》

《참 겸손도 하시지. 상점에서 이런 꽃을 팔리는 만무한거구.》

《그 꽃은 최창화동지가 만든겁니다. 도서실을 지을 때 삼송나무에서 떨어지는 대패밥을 보고 아깝다고 했더니 그걸루 글쎄 꽃을 만들어다 주지 않겠나요.》

조학문은 감탄하였다.

《그 젊은이한테 저런 기막힌 솜씨가 있었단 말인가.》

그는 다시 꽃병앞으로 다가가 줄기와 꽃잎들을 손으로 살살 매만지면서 그 질감을 가늠해보았다. 그러다가 넌지시 물었다.

《내가 이런 꽃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최창화가 그 주문을 받아줄가?》

《받아주지 않구요. 아마 영광으로 생각할겁니다.》

《모르는 소리, 영광은 무슨 영광이겠소. 설사 주문을 받아들인다 해도 이만큼 곱게는 못 만들거요.》

《그건 왜요?》

《그 질문은 나한테 하는게 아니요. 시간이 증명해줄거요.》

조학문은 수수께끼같이 아리숭한 대답을 하고나서 합숙방을 나서다가 다시한번 대패밥꽃을 감상하였다.

그다음 입안의 소리로 나직하면서도 엄숙하게 중얼거리였다.

《새로운 력사가 시작되는군. 송선생이 그리는 인생의 악보에서는 바야흐로 새로운 장이 시작되고있소. 나는 벌써 그 선률을 듣고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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