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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5 회


제 6 장

1

정애경의 결혼은 그의 단짝인 송금주에게서 생활의 반쪽을 앗아갔다.

송금주는 나머지 반쪽을 붙잡고 모지름을 쓰며 돌아갔다. 몇달동안 육체를 혹사하며 바쁘게 돌아가던 그는 정신적으로도 몹시 쇠약해졌다.

퇴근시간이 되여 합숙방에 들어서면 우울증이 가을안개처럼 밀려들고 온몸과 넋을 녹작지근하게 하는 허탈에 빈혈까지 겹쳐 걸핏하면 끼니를 건느고 이부자리도 없이 곧잘 선잠에 들기도 하였다. 송금주는 지탱점을 잃은 사람처럼 허청거리였다. 그는 이 모든것이 정애경을 떼운데서 오는 후유증임을 잘 알고있었다.

교원총회에서 집중포화를 받은 후 송금주에게 공명주의자의 딱지를 붙인 교원들은 다같이 입을 봉하였지만 그들의 시선에서는 아직도 랭기를 풍기고있었다. 리신태는 포문을 닫은 대신 그를 슬슬 피해다니였다. 어떤 도전도 하지 않았고 지어는 말조차 걸지 않았다. 정애경이 차지했던 큰 공간을 메꾸어줄만 한 그런 인물이 영천중학교에는 없었다.

송금주가 하는 일에 매번 지지표를 던지던 교원들도 어째서인지 그와는 인간적으로 잘 섭쓸리려 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가 안고있는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사업에서는 동조하는데 생활에서는 왜 친숙하려고 하지 않는지 그 수수께끼를 도저히 풀수 없었다.

오전수업을 끝낸 송금주는 지금 분과실창문가에서 머리속에 갈피없이 떠오르는 번뇌를 달래며 말뚝처럼 서있었다. 오늘은 왜 그런지 김영찬을 만나 그 번뇌를 고스란히 터놓고싶은 욕망이 자꾸만 인다. 지금까지는 그와 사업상으로만 상대하였지 인간적인 교감은 별로 해보지 못하였다. 김영찬은 송금주가 하는 일을 제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떠밀어준 사람이였다. 우리 마을 도서실이 한창 일어설 때에는 매일같이 공사현장에 나타나 필요한 방조를 주군 하였다. 당조직을 걸머지고있으면서도 세포위원장이라는 티를 조금도 내지 않고 교원들속에 조용히 스며들어 사람들과의 사업을 능란하게 해나가는 김영찬의 모습을 볼 때마다 송금주는 그에 대한 존경심을 금치 못하군 하였다. 그의 모습에서는 늘 따뜻하고 부드러운 정이 느껴졌다.

김영찬과의 대화를 하는데 제일 리상적인 시간은 퇴근후였다. 교원들이 다 퇴근한 후에도 그는 한시간이상씩 교원실에 남아 다음날의 사업을 설계하군 하였다. 그렇다고 그 시간까지 기다릴수는 없었다.

송금주는 교원실로 내려갔다. 몇몇 교원들이 둘러앉아서 한담을 하고있을뿐 김영찬은 보이지 않았다. 방안보다 교사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교무주임이였다. 때로는 운동장에 나가 비물에 패인 자리를 모래로 메꾸기도 하고 때로는 롱구장에서 선수들의 훈련모습을 보며 잔소리도 하는 김영찬의 모습을 볼 때면 그가 무슨 직업을 가진 사람인지 도저히 가늠할수 없다.

송금주는 복도창문으로 해서 김영찬이 제일 많이 다니는 학교후원을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야외무대도 있고 교재림도 있고 공작실습실과 토끼사도 있었다. 그가 예상한대로 김영찬은 물초롱을 들고 교재림쪽으로 걸어가고있다. 그 교재림 변두리에는 송금주가 지난해 봄에 양호진 양묘장에서 떠다옮긴 20그루의 은행나무도 있었다. 나머지 30그루는 운동장둘레에도 심고 우리 마을 도서실뜨락에도 심었다.

김영찬은 교재림의 20그루를 교원들에게 분담시키고 그 담당자들의 이름을 새긴 패쪽을 나무마다 달게 하였다.

김영찬을 포착한 송금주의 시선은 촬영기의 렌즈처럼 집요하게 그를 따라갔다. 김영찬은 교재림에 다닫자 바로 문제의 그 은행나무들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송금주는 가슴이 뭉클했다. 저렇게 교원들이 하는일을 막뒤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일군이 바로 김영찬이였다.

송금주는 분과실에 뛰여올라가 물바께쯔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운동장 한쪽구석에 있는 우물터에 가서 드레박으로 물을 퍼올렸다. 그리고는 나는듯이 교재림으로 달려갔다. 바께쯔의 물을 교재림 저쪽끝에 있는 애어린 은행나무에 부은 다음 김영찬의 손에서 다짜고짜 물초롱을 앗아들었다.

《허, 이거 어쩌다가 차례진 로동의 권리를 이렇게 마구다지로 빼앗으면 어떡하나.》

뜻하지 않은 급습에 얼떠름해진 김영찬이 허리를 펴고 손수건으로 목덜미를 문대며 혀를 찼다. 송금주는 바께쯔의 물까지 은행나무에 붓고 나서 단도직입적으로 교무주임을 나무랐다.

《선생님두 참, 이신작칙도 분수가 있지 이런 식으로 고군독전하시면 어쩝니까.》

《왜 고군독전이겠소. 저길 좀 보오.》

김영찬은 교사서쪽의 제방뚝을 손짓하였다. 그 뚝너머에서 40명도 넘는 녀학생들이 물그릇들을 들고 교재림쪽으로 쓸어오고있었다. 3학년3반 학생들이였다. 그들은 교재림에 들어서자 김영찬의 지휘를 받아가며 은행나무들에 물을 주었다. 나무모는 송금주가 구해왔지만 그 관리에 대해서는 교무주임이 도맡아보고있는셈이였다. 송금주는 이것이 자기에 대한 간접적인 방조로 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금주선생, 그럼 우린 저기 가서 이야기나 좀 나누어볼가.》

김영찬은 빈 물초롱을 손에 들고 야외무대근처의 소나무밑에 놓여있는 긴의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내 그러지 않아도 금주선생을 만나보려던 참이였소.》

그는 의자에 앉아 송금주에게 자리를 권하면서 소탈하게 말했다.

《저도 세포위원장선생님을 만나보고싶었습니다.》

《새삼스럽게 세포위원장은 무슨 세포위원장이요.》

《오늘은 교무주임 대 교원으로가 아니라 당위원장 대 민청원이라는 각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싶었습니다.》

김영찬은 핀잔이라도 하듯이 웃입술로 아래입술을 짓눌렀다가 흠, 흠하고 코소리를 냈다.

《거 서론이 너무 어마어마하구만. 선생의 의향이 그렇다면 편리한대로 합시다. 그럼 언권은 먼저 금주선생에게 주겠소. 어디 용건을 들어봅시다.》

송금주는 입가에 열적은 웃음을 그리며 상대를 마주보았다.

《세포위원장동지, 이건 사실 용건이라기보다… 전 조언을 듣고싶은게 하나 있습니다.》

《뭔데?》

《우리 교원들 대부분이 저의 사업을 지지하고 진심으로 도와주면서도 왜 인간적으로는 저와 잘 섭쓸리지 않는지… 그게 고민입니다.》

《그건 아주 심중한 인간학적문제로구만. 언제부터 고민을 하게 되였소?》

《애경선생이 떠나간 다음부터라고 할가…》

김영찬은 손수건으로 안경알을 문대며 잠시 침묵을 지키였다. 그것은 그가 아래사람들앞에서 무게있는 발언을 할 때마다 늘 보게 되는 버릇이였다. 그는 안경다리를 귀에 건 다음 헝클어진 말꾸리를 더듬거리며 풀었다.

《내 생각에는 금주선생곁에 애경선생이 너무 밀착되여있었기때문에 누구도 거기에 비집고들어가 친교를 맺을 엄두를 못낸게 첫번째 원인인것 같고 두번째 원인은 천리마를 타고가는 금주선생의 몸에서 회오리가 일어나는데 있는것 같소. 회오리에 잘못 말려들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모르니까 누구도 거기에 뛰여들 엄두를 못낸단 말이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송금주는 김영찬의 말을 대뜸 시인하였다. 그의 말을 듣고나니 모든게 석연해지고 눈앞이 활 트이는것 같았다. 무엇을 리해하지 못하겠는가. 정애경과의 밑착으로 다른 교원들이 자기곁에 범접하지 못한것도 사실이고 사업과 생활을 개척해가는 자기의 일본새가 너무나 급진적이고 파격적이여서 동료들이 거기에 미처 따라갈 엄두를 못낸다는것도 사실이였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의 발걸음을 속보로부터 평보로 고치고 심장이라는 이 자그마한 용광로에서 불을 절반쯤 꺼버려야 하는가. 아니다. 그렇게 할수는 없다. 천리마시대는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전진운동에서 기준은 수령님의 요구이다.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남들이 열걸음을 걸을 때 백걸음을 걷고 남들이 백걸음을 걸을 때 천걸음, 만걸음을 걸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천리마가 달리면 회오리가 일기마련이다. 그것은 없앨수도 없고 또 없애서도 안된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 다른 교원들과 자유롭게 섭쓸릴수 있겠는가.

《그러면 그 회오리속으로 다른 교원들을 어떻게 끌어들이는가 하는거요. 내 언제부터 말해주자던건데 금주선생은 자기만 잘할 생각을 하는게 흠이라고 보오. 천리마시대는 자기자신뿐만아니라 남들까지도 다 이끌고 떠밀어서 선진분자로 만드는 시대요. 그러므로 자기가 좋은 궁리를 하면 남들까지도 거기에 적극 끌어들여 모두가 천리마를 타도록해야 하오. 우리 수령님께서 바라시는것이 바로 이거요. 남들이 자기하고 잘 섭쓸리지 않는다고 고민할것이 아니라 그들을 다같이 데리고갈 생각을 해야 하오.》

《세포위원장동지, 이제는 잘 알겠습니다. 모든게 남의탓이 아니라 제탓이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나도 고맙소. 내가 금주선생을 좀더 일찌기 만나보지 못한게 후회되오. 아무쪼록 몸을 잘 돌보면서 일하시오. 거듭 부탁하는바이지만 혼자서만 영웅이 되지 말고 모두가 시대의 선구자가 되고 영웅이 되도록 잘 돕고 이끌어주시오.》

김영찬은 뒤짐을 지고 긴의자앞을 천천히 거닐기 시작하였다.

송금주는 그가 한 말을 속으로 곱씹으며 감사의 정이 넘치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렇다. 잘못은 혼자서 만사를 다 잘하려 한데 있다. 왜 모두가 다 시대의 전진운동에 발을 맞춰나가도록 도와주고 이끌어주지 못했던가. 그것은 내자신이 시대의 요구가 무엇인가를 잘 알지 못한데 있다. 이제부터라도 채심을 해서 천리마시대라는 위대한 시대를 떠밀고나가는 치차의 이발이 되자.

《금주선생, 내 당조직의 이름으로 분공을 하나 줄가?》

잠자코 있던 김영찬이 송금주앞으로 돌아서서 능청스럽게 눈을 시물거린다. 송금주는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가를 인차 간파하고 앞질러 입을 열었다.

《세포위원장선생님, 그게 무슨 분공인지 저도 짐작이 갑니다. 제 그러지 않아도 두번째 용건으로 그 문제를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정애경선생이 맡았던 예술소조를 통채로 저에게 넘겨주십시오.》

《그렇다면 됐소. 내가 주자던 분공이 바로 그거였소. 나도 선생도 꼭같은 생각을 하고있었구만. 금주선생, 고맙소!》

《제 곧 〈삼천리려행단〉이라는 노래이야기를 만들어 시연에 넘기겠습니다.》

《잘 생각했소! 어디 한번 본때있게 만들어보시오.》

김영찬은 이런 말을 하고나서 교사쪽으로 걸어갔다.

송금주는 그와의 담화에서 받은 충격을 안고 의자우에 한참동안 그냥 앉아있었다. 그는 롱구소조지도교원 조정국이 가까이에 다가오는것도 모르고 속으로 김영찬이 남기고간 말들을 음미해보았다. 음미하면할수록 후회되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김영찬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쩔번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은행나무도 자라고 나도 자랄것이다.

《금주선생, 지금 한창 경기를 하고있는데 여기서 뭘하고있습니까?》

조정국이 의자앞에 다가와 이런 말을 했을 때에야 송금주는 펄쩍 정신을 차리였다. 오늘 아침 조정국은 오후에 진행되는 룡산중학교 녀자 롱구팀과 영천중학교 녀자롱구팀의 대항경기를 봐달라는 요청을 하였었다. 두 팀의 대항경기는 군공설운동장 한쪽구석에 있는 롱구장에서 벌어졌다. 지난해부터 두 학교에서는 한해에 두번씩 4월과 9월에 축구, 롱구, 배구대항경기를 해오고있다. 친선경기라고 말하는 교원, 학생들도 있지만 사실은 전번경기에서 패한 팀이 요구하는 임의의 날자에 진행하는 도전경기나 다름없다.

전반전경기는 20 대 17로 룡산중학교팀이 석점을 앞선 상태에서 끝났다. 지금은 후반전경기다. 시간이 벌써 5분 흘렀다. 경기점수는 23 대 19로 룡산중학교팀이 여전히 우세를 차지하고있다.

기세가 이만저만 아니다. 룡산중학교에서는 100명쯤 되는 응원단까지 데리고와서 와와- 하는 함성과 박수갈채로써 선수들의 사기를 돋궈주고있었다. 영천중학교에서도 그와 맞먹는 응원단을 동원시키였다. 그런데 사기가 말이 아니다. 지난해 봄부터 지금까지 경기를 세번 했는데 영천중학교 녀자롱구팀은 세번 다 패자가 되고말았다.

지난해에 당한 참패를 만회해보려고 반년남짓하게 조정국교원이 선수들에게 고강도훈련을 시켰으나 크게 발전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수 없었다.

조정국이 송금주를 찾아온것은 제3자의 입을 통하여 팀이 약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뭉개는 요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보려는것이였다.

송금주의 중학 1년후배인 조정국은 지난해에 교원대학을 졸업하고 영천중학교 체육교원으로 배치되였다. 그는 중학시절에도 롱구선수로 뽑히였고 교원대학에 가서도 롱구선수로 이름을 날리였다. 크가 크고 돌파력이 뛰여난 그는 륜밑슛을 잘하는것으로 유명하였다.

학교에서는 그에게 큰 기대를 걸고있었다. 조정국선생이 왔으니 살았다고 다들 환성을 올리였다. 그렇지만 롱구수준은 답보상태에 있었다. 온 학교가 실망하였다. 롱구팀의 거듭되는 참패는 영천중학교 교원, 학생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였다.

송금주는 측선옆의 초대석에 앉아 조정국과 함께 경기를 관람하고있었다. 맞은켠측선옆에 진을 친 룡산중학교응원단 한복판에는 그 학교 롱구지도원과 체육광으로 소문난 소년단지도원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경기시간이 10분이나 지나간 때였지만 영천중학교팀이 상대를 압도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경기방법과 전술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것이 첫눈에도 헨둥하게 알리였다. 개인기술이 상대보다 더 높은 영천팀이 룡산팀한테 밀려 매번 수세에 빠진다는것은 정말 황당한 일이였다.

점수가 31 대 27이 되였을 떼 조정국은 송금주를 돌아보며 귀속말로 물었다.

《케가 글렀지요?》

《그래요.》

송금주도 귀속말로 대답하였다.

《원인이 무얼가요?》

《훈련을 잘시키지 못했어요.》

《강도를 최대한으로 높였는데…》

《훈련강도가 문제를 결정하는게 아니지요.》

《그럼?》

《경기전법과 전술에 문제가 있는것 같아요.》

송금주는 상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속생각을 그대로 꺼리낌없이 터놓았다. 조정국하고는 그이상의 아픈 말도 할수 있는 사이였다.

그러나 오늘 송금주의 경기관평을 듣고난 그의 표정은 평온치 못하였다. 그 관평에 공감이 되지 않는 모양이였다.

영천중학교팀은 5번선수를 주축으로 하고 모든 선수들이 그의 륜밑투사를 보좌해주는 가장 보수적이며 소극적인 경기전법을 쓰고있었다.

그것은 조정국자신이 학창시절에 완고하게 써오던 전법이였다.

개인기술이 뛰여난 한두명의 선수를 축으로 하여 경기를 하는것은 어느 체육종목에서나 다 쓰는 고답적인 수법이다. 이것이 자살적인 수법이라는것을 아는 사람은 그닥 많지 않다. 영천의 5번선수가 몰고나가던 공을 룡산팀의 선수 두명이 단꺼번에 달려들어 빼앗아냈다. 룡산팀에서는 영천의 5번선수에게 매번 두명의 선수를 붙여 그의 수족을 얽어매고있었다. 룡산방어수가 중간선으로 뛰여나가는 7번선수에게 준공을 왼쪽날개를 차지한 9번선수에게 길게 련락하였다. 9번선수는 영천팀방어수 한명을 기만동작으로 물리치고 륜밑으로 벼락같이 뛰여들어 링속에 공을 집어넣었다. 룡산중학교응원팀은 경기장이 떠나가게 와- 환성을 올리였다.

조정국은 더는 경기를 보지 않았다. 그는 팔짱을 지르고 룡산팀응원단의 대렬너머로 어딘가 먼곳을 망연히 바라보고있었다. 서글픈 좌절감과 수치감이 초점을 잃고 생기를 잃은 눈망울에 어른거리고있었다. 경기마감을 알리는 호각소리가 길게 울리고 량팀선수들이 퇴장할 때까지도 그는 무서운 허탈상태에 빠져 자기를 다잡지 못하고있었다. 세차례의 패전을 거듭하고 절망에 빠진 선수들이 휘주근한 모습으로 우줄우줄 자기앞에 다가와 그 무슨 처분을 바라는 죄수들처럼 고개들을 수그리고 서있을 때에야 조정국은 리성을 되찾고 조용하면서도 무게가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총화는 래일 짓겠소. 오늘은 다들 집으로 돌아가시오.》

그리고는 선수들이 어깨를 떨구고 돌아서는 모양을 착잡한 눈길로 바래주었다.

《나는 저 애들한테 완전히 실망했습니다, 저렇게도 교원의 기대를 허물어버리다니.》

한참만에 그가 말했다. 송금주는 한바탕 론전이라도 벌릴 심산으로 의자를 들고 일어나 그와 마주앉았다.

《그럼 내 소감을 좀 말해볼가요.》

《그렇게 해주십시오. 어떤 혹독한 의견이든지 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조정국은 까치다리를 허문 다음 선수들의 경기실적과 실수를 일일이 적어내려가던 수첩을 펼치고 만년필을 뽑아들었다.

《정국선생, 수첩을 거두세요.》

《그럼 좋을대로 합시다.》

조정국은 양복주머니에 수첩과 만년필을 집어넣고 몸가짐을 바로잡았다. 장엄하고 맵시있는 체구와 기교에 비해 성미만은 무한히 어질고 겸손한 청년이였다.

《지난해 가을이나 오늘이나 우리 선수들은 달라진게 하나도 없어요. 약간의 발전이 있다면 이전보다 손발이 잘 맞고 득점수가 늘어난거예요. 그렇지만 우리 선수들의 경기전법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요.》

《그 약점이 뭔지 기탄없이 지적해주십시오.》

《우선 경기속도가 너무 굼뜬게 탈이라고 봐요.》

《그건 사실입니다.》

《정국선생은 왜 경기속도가 굼뜬가 하는걸 생각해봤어요?》

《생각은 좀 해봤는데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송금주는 이 순박하고 어리무던한 교원을 무슨 말로 납득시켜야 할지 궁리가 떠오르지 않아 잠시 입을 다물고 사색을 가다듬었다. 그는 고중시절에 집중훈련을 할 때에도 경기속도를 높이지 못하는 자기 팀의 약점때문에 고민을 한적이 있었다.

《그 주되는 원인은 5번선수를 축으로 그에게만 공을 집중하는 경기운영방식에 달려있다고 봐요.》

《5번만큼 뛰여난 선수가 없으니 어차피 그렇게 되는게 아닐가요?》

《아니예요, 그건 5번만을 중시하고 다른 선수들은 홀시하는 정국선생의 보수적인 관점에 달려있는거지요. 리념은 정치에만 있는게 아니예요. 체육에도 그것을 움직이는 리념이 있고 철학이 있어요. 집단주의에 기초한 경기방식과 경기전법을 구사하는 팀만이 승리의 월계관을 차지할수 있다는게 내 소박한 견해예요.》

《나도 경기에서 집단주의적의식을 구현하느라고 애는 많이 써왔습니다.》

《5번선수만이 영웅이 되고 나머지 선수들은 다 그 부속물이 되는 그런 집단주의 말인가요?》

《그럼 금주선생이 념두에 두고있는 집단주의는 어떤건지…》

《그건 모두가 공격하고 모두가 방어하는 그런 집단주의, 말하자면 전인공격, 전인방어!… 모두가 경기의 주인이 되여 자기 몫을 다하는 그런 집단주의를 말하는거지요. 여기에 뛰여난 특기를 가진 선수들의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법을 배합하면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는거예요. 그렇게 되면 경기속도도 자연히 당길수 있게 되지요. 그런데 정국선생은 학창시절에 자기가 기본공격수로서 독판치기를 하던 그 경기모델을 기계적으로 끌어들여 팀을 운영했으니 어떻게 승자가 될수 있겠어요. 반대로 룡산중학교 롱구팀은 경기 전과정에 초보적이나마 전인공격, 전인방어의 원칙을 시종일관 고수했거던요. 그렇게 하니까 경기속도도 우리 팀보다는 훨씬 빠르지 않나요.》

송금주는 여기까지 단숨에 쭉 내리엮고나서 너무 일방적인 훈시만 하는것 같아 말을 멈추고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였다. 조정국은 미간을 한데 모아붙이고 송금주의 조언을 경청하였으며 그가 잠간 입을 다문 다음에도 자세를 헝클지 않고 그가 한 말의 여운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저런 형의 인물들이 일단 결심을 품으면 어떤 어려운 문제든지 다해결할수 있을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 그런데 지난해에 준 조언이 지상공문으로 남아 아무런 은도 내지 못했다는것은 정말 리해할수 없는 일이였다. 타성이란 참으로 검질긴것이다.

《난 전후에 〈조선시보〉에서 우리 나라 남자롱구종합팀이 외국팀과 경기를 하는 화면을 본 일이 있어요. 공은 땅에서 움직이는 시간보다 공중에서 움직이는 시간이 더 많았는데 무식했던 눈에도 그게 참말 인상적이였어요. 그런데 우리 학교 선수들은 공을 계속 땅바닥에만 치면서 시간을 질질 끌고있어요. 그러다나니 상대편선수들이 방어구역에 돌아가 밀집방어대형을 지은 다음에야 공을 힘들게 돌리며 그걸 돌파하느라고 애를 먹고있어요. 빽판에 맞았다 떨어지는 공은 잡아서 1~2초 내에 적방어구역 종심까지 던져야 득점으로 이어질수 있는데 우리 선수들은 쓸데없이 공을 자꾸 땅바닥에 치기만 하거던요. 그러니 경기가 지루하고 따분해지는게 아니겠나요. 이상 두가지만 해결하면 우리 팀이 가까운 앞날에 꼭 룡산팀을 타승할수 있을거라고 확신해요.》

조정국은 고개를 쳐들고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금주선생 말이 옳습니다. 내 다 접수합니다. 금년 가을 경기에서는 꼭 본때를 보여주겠습니다.》

송금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정국을 다시한번 고무해주었다.

《한번 큰 마음을 먹고 팀을 일으켜보세요. 훈련에서도 파격, 경기에서도 파격!… 모든걸 파격적으로 해보세요. 그러면 성공해요.》

그는 조정국의 발치에 놓인 공을 집어들고 빙글빙글 돌리다가 갑자기 롱구대앞으로 돌진하였다. 빽판에 공을 가볍게 튕겨 륜속에 정확히 밀어넣었다. 공이 그물을 스치는 소리가 귀맛좋게 들리였다. 그 소리를 듣자 송금주는 흥분하였다. 학창시절에 이 롱구장에서 고덕탄광팀과 맞서서 한달에 한번씩 련습경기를 벌리던 일이며 팀을 이끌고 도에 올라가 고전부체육대회에 참가하여 명성을 날리던 일도 되살아올랐다.

송금주는 땅바닥에 공을 툭 치며 중앙선까지 갔다가 두손으로 자기의 특기인 장거리넣기를 하였다. 공은 이번에도 륜속으로 소리없이 날아들어갔다. 그물꼬리가 흔들리는 모양이 기분좋게 눈에 밟혀왔다. 공이 날아가는 자리길을 륙감으로 판단하고는 상대팀선수들이 방어할 사이도 없이 벼락같이 날려보내던 그 솜씨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솜씨가 여전합니다!》

조정국이 혀를 차며 하는 말이였다. 그는 송금주앞으로 가까이 다가와 은근한 목소리로 흥정을 붙이였다.

《금주선생, 내 언제부터 말하려던건데 나하구 같이 롱구지도를 안하겠습니까? 난 남자롱구를 맡고 금주선생은 녀자롱구를 맡고…》

《나도 정국선생이 언제건 그런 제의를 하리라는걸 알았어요. 나도 이따금씩 롱구장을 볼 때면 손이 근질거리군 해요. 그런데 음악소조가 발목을 잡아당기거던요. 롱구는 정국선생 한사람으로도 충분하지만 음악소조는… 어쨌든 정애경선생을 대신할만 한 주인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그래서 경험은 없지만 내가 바통을 잡은거예요.》

《두 선생의 우정이 부럽군요.》

조정국은 가슴에 롱구공을 안은 다음 걸상을 들고 교사쪽으로 걸어갔다. 송금주도 걸상을 들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집으로 돌아간줄 알았던 선수 셋이 동뚝너머에서 나타나 두 교원의 손에서 롱구공과 걸상을 앗아들었다. 셋이 다 고개도 들지 못하고 우거지상을 하고있었다.

《왜 죽지가 부러진 닭들처럼 찌뿌둥해서 그래. 금년 가을에 이길 생각을 해야지.》

송금주는 울상이 된 처녀애들에게 입총을 놓고나서 정문쪽으로 총총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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