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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3 회


제 5 장

6

강석민과 정애경의 결혼식에 신부측 대표로 참가한 송금주는 식이 끝난 다음날 오전 11시경 무궤도전차를 타고 서평양역으로 향하였다. 평양-라진행 준급행렬차의 발차시간까지는 아직 두시간 더 남아있었다.

전차는 출발정류소에서 종점까지 10분이면 가닿는다. 출퇴근시간이 아닌 낮시간이여서 그런지 차안이 예상외로 조용했다. 흔들리는 차의 률동에 몸을 맡기고 명상에 잠기였다.

수도에서의 이틀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그 이틀동안 줄곧 고속렬차를 타고난 기분이다. 눈앞이 핑핑 돌아갈 지경으로 복작복작하던 결혼식장면들이 아직도 머리속에서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복잡한 인사소개에 치닥거리가 뒤따르는 번잡한 결혼식이였으나 매듭은 잘 지었다. 그 결혼식은 역마다 손님들이 분주하게 오르내리는 옹근 하나의 완행렬차를 련상시키였다. 굼뜨게 흘러가는 렬차속에서 떠들썩한 말소리와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들리고 손풍금소리와 기타소리까지 겹칠 때에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고 마음의 안정을 이를수가 없었다.

결혼식에 참가한 손님들의 대부분은 신랑측 인물들이였는데 그중에서도 출판보도계와 문학예술계의 신인들이 주류를 이루고있었다. 손님들은 신랑신부의 결합에 만족해하였고 신랑신부도 손님들의 열정적인 축하에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그 모든것이 지금은 과거로 되였다. 한 처녀의 인생에서 분기점으로되는 사변이 세월의 저쪽기슭으로 가버리였다. 처녀동맹이라는 거대한 성곽속에서 한명의 열성동맹원이 성문밖으로 나와 불귀의 몸이 되여 부인동맹의 울타리안으로 들어갔다. 송금주는 가장 친근하고 귀중한 생활의 동반자를 잃어버리였다.

두 처녀의 눈에서 애간장을 태우는것 같은 따가운 눈물은 더는 흐르지 않았다. 송금주의 심장을 지배하던 애잡짤한 감정은 리성의 수림속으로 소리도 없이 스며들었다. 전차정류소에서 송금주를 바래준 정애경의 얼굴에서는 따뜻한 웃음만 남실거리였다. 오히려 강석민의 표정이 더 진지하고 심각했다.

송금주는 력사의 한페지를 넘기는 심정으로 두사람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나서 전차정류소를 떠났다.

애경이, 잘있거라. 수도시민의 자랑을 지니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행복은 저절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니 땀과 지혜를 바쳐 창조하거라. 총점 1등으로 언제나 집단의 앞장에서 달리던 그 정열, 그 기세로 새 고장에서도 선구자가 되여 사람들의 사랑속에 살기를 바란다. 멀리 영천땅에서도 너의 걸음걸음에서 눈을 떼지 않으련다. 네가 생활의 적극적인 창조자, 생활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녀인으로 되여 시대의 앞장에서 달린다는 소식을 들을 때 나는 그것을 나에 대한 너의 변치 않는 우정으로 받아들일것이다.

《탈출기》의 한구절이 생각나는구나. 《박군, 말은 다 하였으나 정은 그저 가슴에 넘치누나.》 지금의 내 심정이 박군을 생각하는 김군의 심정과 다를바가 없다는걸 너도 알겠지. 내 가슴에는 지금 그저 정만 가득차서 출렁거린다. 부디 잘있거라. 사랑하는 내 동무, 나의 영원한 종다리야!

렬차가 덜커덩- 하고 차체를 흔들며 출발을 알릴 때 송금주는 승강대에 서서 정애경의 시집이 있는 대동문동쪽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그와 이런 인사를 나누었다. 그다음은 좌석에 들어가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하였다. 신부측 둘러리로 옹근 하루반동안이나 손님들에게 시달린 피곤이 복병처럼 웅크리고있다가 한꺼번에 그의 육신에 달려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잠은 오지 않았다.

송금주의 흐리마리한 의식속에는 점차 두고온 고향과 학교와 제자들에 대한 생각이 자리를 비집고들어서기 시작했다. 생활의 흐름은 평양으로부터 영천쪽으로 서서히 방향을 바꾸었다. 우정이 아무리 귀중한 것이라고 해도 생활의 전부는 아닌것이다. 생활의 대하속에는 그보다 더 크고 절박한 문제들도 수두룩하다.

학교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을가. 학생들이 눈이 까매서 나를 기다리고있겠구나. 우리 마을 도서실은 박영실한테 부탁하고 떠났으니 내가 없더라도 자동적으로 가동할것이다. 내가 평양에서 돌아가면 김영찬교무주임선생이 음악소조문제를 토의하자고 했지. 토의하나마나 정애경을 대신할수 있는 후임문제때문에 그럴것이다.

적임자는 나다. 애경과의 연고를 봐서라도 내가 학교의 예술소조를 맡아야 한다. 정애경이 닦아놓은 기초를 밑천으로 삼아 라남사범전문학교의 중창조성원들처럼 높은 곳으로 날아올라야 한다. 있는 힘을 다하여 일했지만 정애경은 교단에 선 후 영천땅에서 깊은 흔적은 남기지 못하였다. 총점 1등이나 2등이라는 위치가 실적의 높이로는 될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어느 경우나를 막론하고 그대로 실적의 가치로 된다고 보기는 곤난하다. 우리 교원들은 아니, 우리의 모든 공민들과 청년들은 조국을 위해 특색있는 기여를 해야 한다. 정애경이 못다한 몫까지 합쳐 더 많은 일을 해야지. 왜 고향이, 교단이, 제자들이 이전보다 몇곱절 더 귀중해보일가. 나를 진정을 다하여 도와주던 탄부들도 그립다.

차석진지배인과 박만삼아저씨, 화약고의 박경만아바이도 무척 보고싶다. 마치 몇해동안 고향을 떠나 방랑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처럼 그의 복잡한 상념은 영천땅에서 오래도록 오락가락하였다. 정애경과의 작별에서 오는 상실감을 메꿔주려는 의식의 본능일가, 아니면 감정의 자비일가, 달리는 렬차안에서 하는 사색이란 참으로 생산적이고 능률적이다. 차창밖으로 획획 스쳐가는 가지가지 풍경들은 불안하고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은 세척해주고 따뜻하고 유쾌하고 아름다운 감정은 증폭시켜 랑만과 희열로 채색해준다.

송금주는 신성천을 지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잠을 자고나면 모든게 깨끗이 세척될것이다. 온갖 허접쓰레기들이 다 망각의 대하에 실려 형체도 없이 떠내려가고 뇌리에는 필요한 알맹이만 남게 될것이다. 정애경과의 헤여짐에서 생긴 상처에도 더께가 앉을것이다.

그는 고원역에서 잠을 깼다. 정차중이였지만 차안을 진동하는 고향사투리가 수면중에 있는 그의 의식을 흔들어놓았다. 고원역에서부터 라진까지는 함경도방언이 판을 치는 활무대이다. 송금주는 헝클어진 머리를 비다듬으면서 구름다리우로 형형색색의 손님들이 빠른 걸음으로 오가는 모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 세척된줄 알았던 석별의 고통이 느닷없이 꿈틀거리며 명치끝으로부터 칼에 살을 베이는듯 한 모진 아픔을 몰아왔다. 인간심리의 변증법이란 참으로 오묘하고 까다롭다. 렬차가 평양가까이에 있을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석별의 고통이 렬차가 평양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 강도높은 아픔으로 변한다는것을 송금주는 고원역에 와서부터야 뒤늦게 깨달았다.

홈에 내려 서남방향의 하늘을 바라보며 정애경도 지금 이 금주를 그려보고있을가 하는 당치 않은 생각을 하였다. 하염없이 바라보는 평양쪽하늘에서는 무심한 구름만이 눈에 밟히였다. 정애경도 물론 작별의 후유증으로 말 못할 심리적고통을 겪을수 있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그가 잡념에 잠기지 않도록 살틀히 위로해주고 격려해줄 남편 강석민이 있다. 강석민은 그 존재만으로도 정애경의 모든 시름을 다 덜어줄수 있는 힘을 갖고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렬차에 홀로 앉아서 가슴속에 마구 달려드는 심리적고통과 백병전을 벌려야 한다. 문자그대로 고군독전이다. 고통도 심해지면 불로 되는 모양이다. 내 마음속에서는 지금 검붉은 화염이 훨훨 타오르고있다. 무엇으로 이 화염을 끌것인가. 그 화염은 허탈이라는 무기력한 생명을 낳고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허탈이란 수초와 부유생물은 물론 물마저 말라버린 늪과 같은것이다.

이 늪에 무엇이든 채워야 한다. 생신한 물로 늪을 채우고 거기서 온갖 생명들이 왕성하게 자랄수 있게 해야 한다.

심야의 어둠을 헤가르며 렬차는 북으로, 북으로 속절없이 달린다. 두역만 지나면 이모네가 살고있는 양호진에 가닿는다. 이모와 이모부는 다같이 양묘장에서 로동자로 일하고있다. 어머니의 3년제에 참가하려고 영천에 온 이모와 이모부를 만나본게 7년전 일이다.

가만있자!

송금주의 머리속에서는 기발한 착상이 번개처럼 번쩍했다. 이왕이면 양호진에 들려 나무모를 떠가는게 어떨가. 그 나무모들을 교정에도 심고 우리 마을 도서실앞마당과 녀교원합숙의 뒤뜨락에도 심자. 그러면 정애경과의 작별로 하여 생긴 공백의 늪은 푸른 생명으로 넘쳐날것이 아닌가.

렬차가 양호진역에 닿자 송금주는 단호하게 홈에 내렸다. 손짐이 없으니 걸음도 가벼울것이다. 심야면 어떻고 새벽이면 어떤가. 역구내를 나설 때 그는 벌써 수종에 대해 생각하였다. 어머니가 폭사한 이듬해에 다녀간 후로는 한번도 와보지 못한 이모네 집이다. 읍변두리의 두칸짜리 함석집, 한달전에 온 이모의 편지를 보면 상기도 그 집에서 산다고 한다.

《에그그, 하늘에서 뚝 떨어져내린것 같구나. 어떻게 된 일이야? 기별도 없이,》

새벽문을 열고 갑작스레 들이닥친 조카를 보자 이모는 눈이 등잔만 해졌다. 그도 송금주처럼 키가 늘씬했다.

《평양 갔다오다가 이모가 보고파 들렸지요 뭐.》

송금주는 목에 두겹으로 칭칭 감긴 양털로 뜬 머리수건을 벗어쥐고 이모가 권하는 정지칸 아래목에 올방자를 틀고앉았다. 이모는 자기가 덮고자던 이불을 아래목으로 끌어당겨 그 귀의 한끝으로 조카의 무르팍을 감싸주었다. 40줄에 갓 들어선 이모의 손은 온통 주름으로 주글주글했다.

《이모, 양묘장일이 힘들지요?》

송금주는 이불거죽우에 놓인 이모의 손을 잡고 한참동안 이리저리 쓸어보았다. 로동속에 트고 장알이 박힌 손이지만 본래는 어머니의 손처럼 고왔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녀라는게 어벌뚝지도 크구나. 이 심심야밤에 무섭지도 않더냐?》 이모가 혀를 차며 묻는 말이였다.

《이모도 참, 무섭긴요. 이 금주를 어떻게 보고 그래요.》

《하긴 네 어머니가 어려서부터 그렇게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미였다. 이를테면 녀장부였지. 너도 그 성미를 닮은것 같구나. 저녁은 먹었니?》

《네, 차에서 곽밥을 사먹었어요. 이모, 나 물 한사발만!》

송금주는 이모가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물드무앞에 씽하니 다가가 바가지로 물을 떠서 꿀꺽꿀꺽 소리가 나게 마시였다. 목안을 화염처럼 지지던 갈증이 대번에 잦아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이모는 웃목에서 코를 골며 자던 남편을 흔들어깨웠다.

이모부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하품을 하고는 머리맡에 있는 담배쌈지를 끌어당기였다. 그는 막담배가 아니고서는 어떤 담배에도 손을 대지 않는 마라초고질이였다.

그가 마는 담배는 기장도 길고 맵시가 있었다. 한쪽입귀에 마라초를 문 이모부는 연기를 한모금 삼키고나서 눈을 재게 껌벅거리며 송금주에게 말을 건넸다.

《평양엔 무슨 일로 갔다오니? 신문에 소개되더니 혹시 무슨 경험발표회에라도 갔다오는게 아니냐?》

《이모부도 참, 그쯤한걸 가지고 경험이요 뭐요 하고 떠들게 있나요?》

《그쯤한게라니. 신문을 보니 일을 많이 했던데. 교단에 선지 2년밖에 안되는 햇내기교원이 그만큼 일한다는게 어디 쉬운 일이니. 네 덕에 지금 나나 네 이모 위신이 부쩍 올라갔다. 가문에 혁신자나 영웅이 한명만 나와도 그 가문은 유명한 가문으로 되는거야. 우리 양묘장기술원은 네가 욕심난다고 하면서 나한테 혼담까지 꺼내지 않겠니. 인물은 더 나무랄데가 없는게구… 그 신문기사가 너에 대한 평정서와 같은것이니 결석약혼을 하자구 성화를 먹이는데…》

《호호, 하마트면 양호진각시가 될번 했네. 총각걱정은 안해도 되겠군요.》

《그럼, 이제 줄을 쭈욱 설게다.》

이모부는 한바탕 기염을 뽑고나서 채 토해놓지 못한 말을 마저라도 하는것처럼 독한 담배연기를 또 한모금 후- 하고 내불었다. 시렁에서 콩강정이 담긴 접시를 들어내려 송금주의 손에 쥐여주던 이모가 남편의 말에 끈을 달았다.

《이모부는 네 사진과 너에 대한 글이 실린 〈민주청년〉을 들고 동네방네를 돌아다니며 자랑질을 하였다. 우리 양묘장에는 그 신문을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러자 이모부는 《흥.》하고 코바람을 불었다.

《네 이모는 내가 처조카자랑을 너무 한다고 잔소리를 했다. 그렇지만 난 네 자랑을 그만두지 않았다. 내가 주제넘는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나라에는 돈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아니라 일 잘하는 사람들이 부자라고 본다. 우리 수령님께서도 일 잘하는 사람들을 제일 사랑하시더라. 진응원 , 김직현 , 길확실, 리신자…》

《그건 그래요. 천리마시대는 나라를 위해 일많이 하는 사람들이 대접을 받는 시대지요. 돈많은 사람들이 개화장을 짚고 너덜짝거리며 근로계급을 깔보던 시대하고는 다르지 않나요. 난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해서 나를 무료로 공부시켜준 당과 수령, 조국의 은덕에 보답해야 해요.》

《교육부문에도 이름난 혁신자들이 많더구나. 김수복, 림영균, 김일환, 강영숙… 그리구 장자강반에서 거 학생아이를 업고다닌… 그 강계선생 이름이 뭐더라?》

《박순옥선생 말이지요?》

《오, 그래그래. 다들 얼마나 훌륭한 교육자들이냐! 어떻게 되여 사람들이 이렇게도 아름다와졌는지 모르겠다. 우리 수령님께서 정말 대단한 세상을 만들어주셨지.》

송금주는 이모부가 지니고있는 그 숭고한 시대정신앞에서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이모부는 시대를 안고 몸부림치는 사람, 시대와 함께 울고 웃으면서 성실한 로동으로 당과 조국을 받들어나가는 훌륭한 애국자임이 틀림없었다. 진실은 이런 사람들의 심장속에 있으며 이런 진실이 모이고모여서 국력으로 되는것이 혁명의 리치가 아닐가 하는 숭엄한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애가 피곤하겠는데 이젠 연설을 좀 그만하구려. 담배질도 그만하구.》

이모부의 제강에 지루감을 느낀 이모가 지청구를 한마디 하였다.

송금주는 눈을 흘기였다.

《이모, 이모부가 오래간만에 날 만난김에 기뻐서 그러시는데 뭘 그다지나 그래요? 난 열밤이라도 팰 자신이 있으니 걱정마세요.》

그러나 송금주는 이런 말을 하고나서 30분도 안되여 이야기를 나누던 그 자리에 그대로 노그라졌다.

다음날 아침 송금주는 이모부와 이모를 따라 양묘장으로 향하였다.

양묘장은 읍에서 5리쯤 떨어진 야산밑에 있었다. 아침안개의 조화로 모든것이 거무칙칙해보이는 양묘장의 정경은 한폭의 수묵화를 련상시키였다. 애어린 나무모들이 일매지게 자라고있는 사래긴 이랑들은 반나마 안개에 묻혀 더 신비스럽게 보이였다.

사무실에 들어간 이모부는 장화목다리안에 바지가랭이를 쑤셔넣고 작업복앞자락을 활짝 열어제낀 다부지게 생긴 사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이 양묘장의 책임자였다.

《이 처녀가 바로 〈민주청년〉신문에 난 송금주선생이겠구만?》

그가 이모부를 향해 물었다.

송금주는 이모부의 뒤에 한발 떨어져서 책임자에게 고개를 숙여보이였다.

책임자는 무슨 미술작품이라도 감상하듯이 그의 얼굴을 미더운 눈길로 쓰다듬다가 말을 이었다.

《이모부가 금주선생자랑을 이만저만 하지 않았소. 나도 그 기사를 읽고 탄복했소. 나무모를 얻으러 왔다지?》

《네.》

《금주선생 부탁이라면 우선적으로 들어줘야지. 그래, 무슨 나무를 가져가고싶소?》

《은행나무모를 50그루만 주십시오.》

《잘 선택했소. 은행나무가 좋지. 줄기나 가지나 잎새나 다 견실하고… 벌레도 끼지 않고 열매는 또 약으로 쓰이구.》

잠자코있던 이모부가 두사람의 대화에 뛰여들었다.

《은행나무가 얼마나 좋은 나무인가 하는거야 락엽만 봐두 알수 있지요. 싯누런 금도금을 한것 같은게 썩기를 하나 변색을 하나.》

책임자가 금주에게 물었다.

《그런데 영천지방기후가 은행나무에 맞을가?》

《그건 걱정마십시오. 칠보산에는 몇백년 묵은 은행나무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됐소. 자, 날 따라오오.》

책임자는 송금주와 이모부를 꽁무니에 달고 나무모밭으로 걸어갔다.

포전에 이른 그는 장화를 신은 발로 고랑을 저겨디디며 은행나무모를 뜨기 시작했다. 이모부는 책임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무모를 선사하려고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일손을 바친 일은 여적 한번도 없었다고 송금주에게 귀뜀하였다.

강석민이 《민주청년》지상에 발표한 소개기사는 결국 송금주에게서 정애경을 앗아가고 그 대가로 50그루의 은행나무모를 선사하는 결과를 빚어낸셈이였다.

나무모단을 안고 양묘장을 나선 송금주는 멀리 평양쪽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였다. 이 나무모들이 과연 애경이를 떠나보낸 나의 상실감을 다문 얼마만이라도 덜어줄수 있을가. 아니다, 그럴수 없다. 말못하는 이 식물체들이 어떻게 10년가까운 세월 내가 그토록 열렬히 사랑해온 정애경을 대신하며 내 가슴에서 무겁게 감도는 석별의 정을 그대로 대변할수 있겠는가.

나는 우리의 우정이 구석구석 스며있는 학교정원과 녀교원합숙뜨락에 이 나무모들을 심고 가꾸는것으로 그와 헤여진 아쉬움과 쓸쓸함을 달래려고 할뿐이다. 이 나무모들에 움이 트고 푸른 이파리들이 돋아나 설렁거릴 때 그 무성한 이파리들이 자나깨나 너를 잊지 못하는 이 금주의 그리움인줄 알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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