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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2 회


제 5 장

5

그날의 미용은 영천에 와서 일곱번째로 하는 미용인 동시에 영천을 떠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하는 미용이였다. 정애경이 한사코 평양에 올라가 파마를 하겠다고 했으나 송금주는 막무가내로 그를 미용원으로 끌고갔다. 전날 벌써 그는 미용원의 그 유명한 사리원내기 책임자를 만나 미리 표를 예약해두었다.

오늘은 영천미용원이 주마다 《쉬는 날》이라고 선포하는 날이다. 송금주가 무슨 수로 어떻게 구슬려놓았던지 책임자는 창문유리바깥쪽에 《쉬는 날》이라는 패쪽을 매단채 땀을 뻘뻘 흘리며 정애경 한사람만을 위해 특별봉사를 하고있다.

《한주일후에는 결혼식을 한다는데 특급으로 잘해주세요.》

송금주는 오늘 이 말을 세번이나 하였다. 말해놓고나니 쓸데없는 잔소리를 곱씹은것 같아 화끈한 생각이 들었다.

《그 말반찬덕으로 일손에 날개가 달리는것 같수다.》

미용사는 눈까풀을 우로 밀어올려 눈의 흰자위를 넓히며 우스개 비슷이 말했다. 그동안 그 녀자는 두 교원과 허물을 탓하지 않는 자매같은 사이가 되였다.

셋은 만나기만 하면 교감도 잘하였다. 미용사는 놀라울 정도로 박식한 녀자였다. 그는 못 본 소설이 없었고 못 부르는 노래가 없었다. 뜬금으로 줄줄 외우는 시가 10편도 더 되였다. 리상화도 잘 알고 하이네도 잘 알았다. 고중밖에 다니지 않았다는 녀자가 그만하면 현대인다운 풍격을 충분히 갖추고있는셈이였다.

정애경과 송금주는 이 미용원에만 오면 사리원에서 온 미용사녀인과 함께 정세를 론하고 문학을 론하고 세태를 론하였다. 미용원에서는 벙어리도 수다쟁이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크게 과장된것도 아니다. 기나긴 로동시간에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지루하게 보낼수야 없지 않는가. 말도 안 나누고 오랜 시간을 부처님처럼 버티고있자면 얼마나 답답하고 고리타분하겠는가. 그래서 미용원에만 오면 초면들끼리도 인차 친숙해지는것이다. 두번째부터는 벌써 언니, 동생하며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송금주와 정애경이 이 미용사와 가깝게 된 리유는 좀 달랐다.

그들은 별로 많은 말을 나누지 않고도 쉽사리 친밀한 벗으로 되였다.

《애경선생, 3년전에 여기 와서 첫 파마를 할 때 내가 하던 말이 생각나요?》

미용사가 리발가위를 들고 정애경의 등뒤에 와서 하는 말이였다. 그 녀자의 얼굴에는 신령스럽고 음험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런 표정을 대할 때마다 정애경은 공포에 가까운 무시무시한 기분에 잠기군 하였다.

그런데 거기에도 이제는 면역이 생기였다.

《호호, 〈어느 독수리가 채가게 되겠는지.〉하는 그것 말이지요?》

정애경은 부끄럼을 타는지 볼편이 발그스름해졌다. 그는 이 말만 들으면 가벼운 알레르기를 일으키군 하였다.

《음, 잊지는 않았구만. 영천독수리들은 모두 어디 가서 뭘 하는지. 결국은 평양독수리가 1500리를 날아와서 냉큼 채가지 않나 말이야.》

《영천독수리들은 아직 날개가 채 달리지 않은가봐요.》

미용사의 말에 송금주가 양념을 쳤다.

《참 한심한 독수리들이지.》

미용사는 정애경의 얼굴에 오른 홍조가 귀뿌리로 번져가는것을 보면서 그가 가려워하는데를 계속 슬근슬근 긁어댔다. 정애경은 입을 오물거리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다가 슬쩍 말머리를 딴곳으로 돌리였다.

《미용사언니, 언닌 사리원 있을 때 어떤 독수리한테 걸려들었댔나요?》

《나? 난 송림독수리한테 걸려들었댔지. 그 고장 독수리가 쇠독이 들어서 그런지 부리가 사납더구만. 꼼짝 못하고 잡혔다니까. 다음차례는 송선생인데 어떤 독수리가 채가게 되겠는지. …》

《그 독수린 내가 평양에서 날려보내지요.》

《오라, 그럼 됐어. 걸려들바에야 평양독수리한테 걸려들어야지. 저 인물, 저 몸매, 저 성격… 영천독수리한테 떼우기는 아깝거던.》

그러는 사이에 미용사는 가위로 머리형태를 잡고 말개에 머리를 말기 시작했다. 그는 한참동안 입을 다물고 일손만 놀리다가 또 말을 꺼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송선생한텐 영천독수리가 날아올것 같단 말이야. 예감이 그래.》

그의 예감에 따라 송금주는 평양독수리의 몫으로도 되고 영천독수리의 몫으로도 되였다. 평양과 영천을 이어주는 1 500리의 광활한 공간에서 송금주의 운명은 바람에 날리는 구름장들처럼 오락가락하였다.

정애경은 영천독수리라는 미용사의 말에 열을 내여 항변하였다.

《영천독수리라니요. 결코 그렇겐 안될거예요. 두고보세요. 내 송선생을 꼭 평양에 데려가지 않나.》

《애경선생, 미용사언니의 예언이 맞을수도 있어. 난 어쩐지 이 영천땅과 영원히 운명을 같이할것 같은 예감이 드누나.》

송금주가 확신에 가까운 어조로 말했다. 나직나직 하는 말이였으나 그 말마디들에는 반박할수 없는 무게가 실리였다. 작별이라는 사변을 앞두고 생긴 정애경의 상처에는 소금이 내려앉았다. 상처에서 동통이 일었다. 정애경의 눈에서는 눈물이 찔끔 솟아올랐다. 다가오는 작별이 돌이킬수 없는 영원한것으로 되고 평양과 영천사이의 1 500리라는 공간이 서글픈 력사의 수레에 실려 다른 운명의 길을 걸어가게 될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면 안돼. 그래서야 안되지. 나와 금주는 보고싶으면 아무때에나 오갈수 있는 그런 곳에서 백발이 될 때까지 변치 않은 우정을 나누면서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야 해. 이것이 내 꿈이고 의지야.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것을 얼마나 뜨겁게 갈망해왔던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소망을 기어코 실현해야 해. 내가 금주에게 평양독수리를 날려보내지 못하면 정애경이 아니야.

《금주, 우리한텐 하루반이라는 시간밖에 없구나.》

시간에 대한 말을 느닷없이 꺼내는 정애경의 음성은 몹시도 처량하였다. 그 말에 흠칠 놀라는 송금주의 모습이 거울에 반사되여 그의 눈에 날아들었다. 하루반이라는 시간이 흐르면 정애경은 고향땅 영천을 영영 떠나 청진을 거쳐 평양으로 가게 된다. 어제 오후까지 그는 수속도 끝내고 필요한 인계도 다 하였다.

《오, 그래. 정말 하루반밖에 없구나.》

송금주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어려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익살을 부리며 정애경의 울적한 기분을 밝게 해주던 그가 오늘은 말수더구도 적어지고 옷음기도 말라버렸다. 작별이 얼마나 가슴아프면 저 락천가가 저다지도 비장한 표정을 짓고있겠는가. 나야 신랑이 될 사람과의 결합을 위해 평양으로 가는 기쁨도 있고 수도시민이 되는 행복감으로 취해있지만 금주한테야 친구와 헤여지지 않으면 안되는 아쉬움과 허전함밖에 없지 않는가.

《금주, 네가 입을 꼭 다물고있으니 나도 우울해지는구나.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 좀 하려무나.》

《애경이, 내가 이제 무슨 말을 더 해야 하니? 비록 입은 다물고있지만 난 지금 속으로 너와 그 어느때보다도 더 많은 말을 나누고있어. 내가 지금 속으로 무슨 말을 하고있는지 그건 평양에 가서 고향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순간이 올 때 가늠하게 될거야.》

송금주는 《될거야.》라는 마지막말마디를 혀끝소리로 겨우 얼버무리고나서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정애경은 눈굽이 쿡 쑤셔나는것을 느끼며 마른침을 꿀꺽 삼키였다. 화끈한 눈확으로 눈물이 몰박으로 쏟아져내렸다.

《두 선생사이가 보통이 아니구만. 오늘 밤 금주선생이 잠을 못 잘거야.》

정애경은 훌쩍훌쩍 울며 손수건으로 눈굽을 싸쥐고 한참동안 묵상속에 앉아있다가 떠드름떠드름 말했다.

《나만 아니였다면 송선생은 지금쯤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작곡가가 되였거나 피아노연주가가 되였을거예요. 나때문에 금주선생은 음악을 포기했지요.》

미용사는 일손을 멈추고 의혹에 찬 눈길로 정애경을 굽어보았다.

《그럼 애경선생이 그의 전도를 망쳐놓았다는 말인가?》

《망쳐놓았다고는 할수 없지만 송선생의 발전에 내가 제동을 건셈이지요.》

《무슨 사연인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구만.》

《송선생이 8년동안 나와 함께 우리 아버지한테서 피아노수업을 받았다는건 지난해에 내가 이야기했지요?》

《그랬지.》

《중학교를 졸업할 때 우린 둘 다 음악대학 피아노과에 추천받았답니다. 포부가 대단했지요. 우리 아버지의 기대도 컸구요. 아버진 송금주의 실력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어요. 입학시험에 꼭 합격한다는거지요. 나의 실력을 두고는 반신반의하더군요. 나와 금주는 입학시험을 치르기 전에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둘 다 합격하면 별문제이지만 둘중 하나만 합격하고 하나가 불합격일 때에는 나도 금주도 입학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거지요. 이런 약속을 하고는 맹세의 표시로 손가락까지 걸지 않았겠나요.》

《호호, 참 어처구니도 없네. 세상에 그런 엉터리없는 약속이 어디 있을가. 그래서 어떻게 됐게?》

미용사의 눈가에 심각한 빛이 떠올랐다.

《송선생만 합격하고 난 불합격이였어요. 송선생이 건강상리유로 입학을 포기한다고 선포했을 때 대학교원들은 다들 아연해하더군요. 글쎄 동무와의 약속에 얽매여 휘황한 전도를 담보하는 대학입학을 단념하고 덜렁덜렁 고향으로 돌아간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교원들이 한시간동안 설복했는데도 금주는 막무가내였습니다. 나도 물론 설복했지요. 약속은 약속이고 내가 얼마나 립장이 딱했겠나요. 약속을 무효로 선언하니 마음을 돌리라고 온밤 구슬렸지만 마이동풍이였습니다.》

《세상에 원, 그런 희한한 일도 있나!》

《결국은 우정이라는 그 올가미가 송금주의 전도에 차단봉을 내리고 그를 옴짝달싹할수 없게 비끄러맨거지요.》

《애경선생이 참 급했겠구만. 얼마나 미안했겠나. 금주선생은 그때의 일을 두고 후회하지 않았을가?》

《아니요. 난 지금까지 금주선생이 그 문제때문에 후회하는걸 한번도 보지 못했어요. 금주는 내앞에서 음악대학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어요. 인간은 일구이언을 하면 안된다는게 송선생의 지론이라고 할가, 인생관이라고 할가.》

《참 드문 처녀로구만!》

미용사는 이런 말을 하고나서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그는 일손을 다시 잡을 궁리를 하지 않고 정애경의 어깨에 손을 얹은채 거울속의 한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있었다. 한 인간이 발휘한 순결하고 강직한 우정앞에서 압도당한 표정이였다. 송금주의 그 대바르고 드팀없는 우애와 의리앞에서 어느 누구인들 감심하지 않겠는가. 음악은 문전에까지 날아든 어린 재사를 놓쳐버렸지만 우정은 그 대가로 자기의 자서전에 한편의 감동적인 서정서사시를 새길수 있었다.

미용사는 얼마후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세트에 달라붙었다. 말개에 말려 강굴강굴해진 머리에 방울을 짓기 시작했다. 그는 오늘 매 공정마다에 보통때의 한배반쯤 되는 시간을 소모하고 품도 곱절 많이 들이였다. 미용사의 일손에 열이 오르고 굽실굽실한 파마방울들이 뚜렷하게 형체를 드러낼 때 송금주의 모습이 거울속에 나타났다.

《언니솜씨가 오늘 절정을 이루는것 같아요.》

송금주는 정애경의 머리모양을 이쪽저쪽으로 살펴보다가 아까와는 판판 다른 명랑한 색조로 말을 이었다.

《미용사언니, 우리 애경동생이 사람복이 있지요. 아버지를 만나도 일등급아버지, 애인을 만나도 일등급애인, 미용사를 만나도 일등급미용사…》

미용사가 얼른 그 말에 줄을 달았다.

《친구를 만나도 일등급친구!》

송금주와 미용사는 《하하하.》하고 소릴 내며 마음껏 웃어댔다.

《애인이 일등급인가 하는건 아직 10년쯤 두고봐야 알테지만 친구가 일등급이란건 내가 장담할수 있지. 애경선생이 이제 어디 가서 송선생과 같은 이런 친구를 얻느냐 말이야.》

《그건 옳아요.》

정애경이 얼른 맞장구를 쳤다.

《얼굴이 간질간질해지게 비행기는 왜 태울가. 미용사언니, 비행기를 탄김에 부탁을 하나 합시다.》

송금주는 의자에 앉았다가 상체를 불쑥 앞으로 내밀고 물었다.

《외성미용원 고급미용사가운데 언니의 중학동창생이 한명 있다고 했지요?》

《그럼, 있지.》

《그 미용사한테 소개신을 한장 써주세요.》

미용사는 대답대신 금이발을 드러내며 씨무록이 웃었다.

《사람마음이 어쩌면 이렇게도 한곬으로 통할가.》

그는 수수께끼같은 말을 이렇게 흘리고나서 위생복주머니에 손을 넣어 봉투 한장을 꺼냈다. 그다음 아무런 주해나 설명도 없이 그 봉투를 송금주의 손에 쥐여주었다. 속지를 뽑아 읽어가는 송금주의 눈가에 알릴듯말듯 한 환희의 물결이 일고 그 물결이 파도가 되여 얼굴전체를 휩쓸었다.

《언니두 어쩌면!…》

편지는 송금주의 손에서 정애경의 손으로 넘어갔다. 거기에는 전보문을 련상시키는 글이 굵직굵직한 필체로 이렇게 씌여있었다.


최초옥동무에게

너에게 정애경이라는 미인을 소개한다. 단골로 받아들이고 최상급의 봉사를 해주기 바란다.

손소영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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