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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2 회


오산덕기슭의 녀인들

김 홍 균

3. 어머님처럼 살자!

이튿날부터 허정숙이네 식구들은 주둔구분대에 물을 보장하기 시작했다.

허정숙이네가 속한 산업동 1지구인민반들이 주둔구분대의 물을 보장하기로 약속했던 까닭이였다.

김성숙이네 반원들은 허정숙이와 함께 부대에 찾아가보고는 이제부터는 자기들도 자체로 할바를 찾겠다고 했다.

허정숙이 알아보니 려단에서만도 하루에 물을 수천리터나 소비한다고 했다. 그래서 32개의 통두번 나르기로 했다. 32개의 수지통도 문제였고 통이 있다해도 물을 한집에서 받는것도 문제였다.

지구반장 조창순이와 려진숙동녀맹부위원장이 협력해주었다.

조창순이와 려진숙이 가정들에 호소하여 수지통들을 모았고 또 집집들에서 수도물을 받아 허정숙이네 집마당에 모아오도록 조직했다.

허정숙이 물을 받아보니 여간 품이 드는 일이 아니였다.

그래서 시간이 당하는대로 허정숙이 물을 받기도 했고 은철이가 어머니를 대신하기도 했고 그마저 시간을 못 내면 침상에 누운 남편 강창걸이 일어나 그 자리를 차지했다.

옆에서 언니, 동생하며 사는 최춘희가 와서 성의껏 도와나섰다.

허정숙은 아무래도 하는 일을 같은 값이면 물갈이를 하는 군인들을 위해 팔을천샘터에서 음료수로 쓸 샘물을 매번 몇통씩 길어다주기로 했다. 샘물터도 10리길이니 장담하고 나선 아들 은철이도 시간을 용의하게 내기 어려워 쩔쩔맸다.

그도 맡은 일은 일대로 하면서 그 일을 하자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타발이 없었다. 되려 어머니쪽에서 미안해하면 아들은 어머니를 위안하려들었다.

《그렇게 시간을 받아가지고 할바에야 시작부터 하지 말아야지요. 뭘 한다고 내를 내는건 싫어요. 어머니, 전 이렇게 맡은 일을 하면서 하는 일이 더 긍지롭습니다.》

허정숙은 조창순, 려진숙이와 함께 부대에 찾아갔다. 가면서 보니 신발수리공녀인이 군인건설자들의 신발수리를 해주려고 보초막가까이에 자리를 잡은게 보였다.

인민반가까이에서 살아 이미 안면이 있는 김윤애였다. 그 맞은편에는 리발사녀인이 가설풍을 치고 군인건설자들의 머리를 깎아주고있었다. 그도 알만 한 녀자이다. 머리를 잘 깎는다고 아들이 꼭 자기는 리발소에 가서 그 녀자한테서만 머리를 고정해 깎는다고 한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그 녀자의 이름이 도경복이라는것까지 알게 되였다. 어제까지도 보지 못한 광경이였다. 그러니 회령의 녀인들은 누구나가 다 자기할바를 생각하고 실천하고있었다. 가슴이 후더워올랐다.

차에서 내리니 직일군관이 달려와 사연을 들어보고 무척 반가와했다.

《물을 담당해서 보장해주겠다면야 그보다도 반가운 일이 어데 있겠습니까! 부대 전체 장병들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상위령장을 단 군관이 나와 물을 인계받아 그 자리에서 취사장마다 와서 물을 받아가도록 했다.

군관이 어제 일을 가만히 알려주었다. 그러지 않아도 궁금했던 일이기도 했다.

《어제 어머니네가 간 다음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부사령관동지가 김치를 보고 당장 가져다주라고 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집을 압니까, 주소를 압니까? 그렇다고 버릴수는 없고… 나중에 김치 그대로는 먹지 못한다고 해서 그야말로 김치물을 만들어서 마시도록 했습니다. 랭국처럼 말입니다. 그 덕에 우리 부대들이 모두 그 덕을 봤습니다. 모두 꿀처럼 달게 마셨습니다.》

《그게 회령의 물이여서 그렇게 단거라네.》

허정숙은 아무래도 아쉬워 한마디 했다.

《많이 했다니 좋긴 하네만 그래도 김치맛을 보라구 해온건데.》

《어머니, 물과 공기만 리용하라는건 최고사령관동지의 뜻인데 어느 누가 감히 어깁니까? 부사령관동지가 그걸 되돌려보내지 않은것만 두 다행입니다.》

모두 성수가 나서 물들을 받아갔다.

《물보장소대가 호강하게 됐군.》

마침 물통을 목도해서 메고 오던 군인들이 그 소리에 끼여들었다.

《호강은 무슨 호강, 다행이야. 우리두 이젠 물보장이 아니라 건설장에 나가야겠어.》

허정숙은 한쪽에 따로 놓은 물통마저 처리하려는 공급장에게 일렀다.

《그건 샘물이네. 물을 가리는 동무들이 마시도록 하게. 이것두 매일 가져다주겠으니 식당마다 놓아주라구.》

려진숙이 한마디 보탰다.

《10리길을 가서 가져온거니 이 어머니의 마음을 안고 마시도록 하게.》

《어머니의 마음을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

허정숙이네 빈통들을 차에 싣는데 군관이 부사령관동지가 온다고 소곤거렸다.

벌써 부사령관은 차곁으로 다가서고있었다.

《이 차가 어제 우릴 감쪽같이 속여넘기고 달아난 차가 맞지?》

아마 멀리서 차를 알아보고 온것 같았다.

《어제 일은 잘 안됐습니다.》

부러 뚝해서 하는 소리에 허정숙은 그만 속이 한줌만 해졌다.

《장령동지, 사실 속이자고 해서 한건 아닙니다. 그저 자식가진 어머니들의 마음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리해는 합니다만 그럼 우린 뭐가 됩니까?》

《장령동지, 그래서 오늘은 물을 가지고왔습니다.》

공급장이 여쭈었다.

《이 어머니가 우리 려단의 물보장을 전적으로 맡겠다고 합니다.》

《음, 고맙습니다.》

다행 그것으로 어제 일은 무난히 넘어갔다.

돌아오는 허정숙의 마음은 흡족했다. 돌아오는 길에서 김성숙이네를 만났는데 그들도 어제 일을 두고 궁금해 물었다.

《그런 일로 먹는 욕은 백번도 좋은거지.》

그 녀자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우린 암만해두 은철이 어머니한텐 안되겠군요.》

강성희가 옆에서 하는 소리였다.

《우린 바쁘네. 한탕 더 해야 하니까.》

붙잡고 자꾸 늘어지는 그들을 떼여놓고 서둘러 돌아왔다.

첫날은 조창순이며 려진숙이네들이 지역인민반내 녀인들을 휘동해가지고 와서 물통을 차에 실어주어 별로 힘든줄 몰랐다.

시내가 큰물피해를 입어 온통 감탕에 덮인 조건에서 가두녀맹이 밤낮없이 구간을 맡아가지고 전투를 벌리고있으니 지구반장인 조창순이나 동녀맹부위원장을 하는 려진숙이 자기 맡은 일을 전페하고 허정숙이네 물보장에 붙어있을 형편이 못되였다. 그들의 위치를 아는 그 녀자로서는 그것을 무턱대고 바랄수도 없었다.

허정숙은 두 녀인이 오지 않은 사흘째 되는 날 앞으로 물보장이 조련치 않으리라는것을 대뜸 깨달았다. 물은 인민반원들이 더러 받아준다고 해도 싣는것이 문제였다.

녀인의 몸으로 아들과 함께 32통의 물을 차에 싣고나면 목에서 겨불내가 나고 전신의 맥이 졸지에 어덴가로 새여나간것처럼 나른해져 까딱 움직이고픈 생각조차 없었다.

심장이 나쁜 그 녀자에게 있어 이런 중량물을 다룬다는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대신할 사람이 없으니 시간보장을 위해 악을 쓰고 물통을 들어야 했다. 그것도 두탕을 해야 하니 돌아오고나면 식사고 뭐고 드러눕고픈 생각밖에 없었다. 잠간 허리를 펴려고 누우면 어구구! 어구구! 하는 아픔소리가 절로 새여나왔다. 웃칸에 누운 남편이 그 소리에 엉금엉금 네발걸음으로 나와 근심스레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였다.

《당신을 도울수 없는게 안타깝구려!》

그리고는 세면장으로 나가 물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안해의 손을 덜어주려는 남편의 심정이 눈물겹게 고마왔다.

침상에 누워서도 안해를 위해 마음쓰는 저런 남편한테 나약한 꼴을 보이지 말자고 입술을 깨물고 일어났다.

허정숙은 역시 가정주부였고 자식가진 어머니였고 녀성이였다. 남편을 돌보아야 했고 대학에 다니는 아들에 대해 관심을 해야 했고 집안팎을 거두고 빨래를 해야 했다. 일주일도 못되여 허정숙은 볼이 푹 꺼져들어갔다. 하얗던 살갖이 꺼칠해져 볼품없이 되였다. 그래도 녀자인 그는 옆의 식구들을 더 걱정했다. 제 맡은 일을 다하면서 물보장까지 해야 하는 은철이도 며칠새 얼마나 못쓰게 되였는지 둥실하던 턱이 뾰족해졌다. 안해의 부담을 던다고 밤을 새워 물을 받는 남편 또한 요즘 병세가 더한것 같다. 그래도 웃으며 난 낮에 자면 된다고 안해를 안심시킨다. 서로 위해주는 눈물겨운 정이 허정숙이네 식구들을 벋쳐주고있었다.

어느 하루 물을 보장하고 돌아온 허정숙은 방에 들어갈념도 잊고 퇴마루에 주저앉았다. 온몸이 욱신욱신 쑤셔나 저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쳤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시작한 일을 끝을 보지 못하리라는 위구가 갈마들었다. 자기가 쓰러지는것보다도 그것이 더 두려웠다. 새삼스레 품에서 돈을 꺼내는건 너무도 쉬웠다는 생각을 했다. 로력을 바치는건 몇십배로 더 힘들고 실천하기가 힘든 일이였다.

은철이가 들어오다 어머니가 우는걸 띄여보고 놀라 물었다.

《어머니, 몹시 아프신게군요. 어서 들어가 누우십시오.》

허정숙은 민망스런 생각에 급히 눈굽을 찍어내며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너나 들어가 좀 허리를 펴렴. 난 괜찮다.》

아들의 부축으로 일어선 허정숙은 대문쪽으로 허청허청 걸음을 옮겨놓았다.

《어머니, 어델 가세요?》

《내 좀 가볼데가 있다.》

대문밖을 나서는 어머니를 은철이가 따라섰다.

《들어가 쉬라는데.》

《어머니, 전 이제 청진에 갔다오겠어요. 부대에 필요한 기공구들을 여기서 구해서는 수량을 보장 못해요.》

《이밤에 어데가서 그 많은 공구들을 구한단 말이냐?》

《걱정마세요. 이미 형님하구 련계가 있었어요.》

허정숙은 그런 아들들이 못내 미더웠다. 자식들한테 나약한 꼴을 보인게 부끄러웠다.

아들과 헤여진 그 녀자는 발길이 가는대로 천천히 걸었다.

아니, 의식적인 걸음이라고 하는것이 옳았다.

저켠으로 김정숙어머님의 동상이 바라보였다.

천천히 화강석계단으로 톺아올랐다. 집에서는 토방돌우에도 올라설 힘이 없어 주저앉았던 자기가 무슨 힘에 이끌려 화강석계단들을 단숨에 올랐는지 알수 없었다.

가을바람에 수림이 우수수 설레였다.

백두의 수림처럼 느껴지는 숲이다. 군복을 단정히 입으신 어머님께서는 금시 그 수림에서 나서시는 길인듯싶었다.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쳐오시며 고생이란 고생을 다 겪으신 어머님이시건만 어이하여 저리도 밝게만 웃으시는걸가!

허정숙은 해빛같이 웃으시는 어머님을 우러러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어머님, 어머님은 세월의 만고풍상을 다 겪으셨는데 어이하여 그리도 밝게만 웃으십니까?》

어머님께서는 여느때없이 환히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것만 같았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선택해서 걷는 길이니 어떤 고난도 웃으며 넘길수 있더구만요. 힘을 내세요.》

허정숙은 심장으로 어머님의 말씀을 새겨듣고있었다.

어머님의 필승의 락관이 바로 영원히 지지 않는 저 미소속에 새겨져있는것이 아닌가.

《어머님, 고맙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제 다시는 동요하지 않고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어머님처럼 살겠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어머님의 고향 우리 회령을 위해 수많은 군인들을 보내주시였습니다. 회령의 녀인답게 우리 원수님께서 보내주신 군인건설자들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겠습니다.

저를 샘물집어머니라고 불러주는 병사들의 믿음에 어긋나지 않게 살겠습니다. 》

일후 허정숙의 얼굴에서 다시는 나약한 눈물을 볼수 없었으니 《어머님을닮자!》는 불같은 자각이 바로 그를 떠밀어주었기때문이였다.

화강석계단을 내리는데 저쪽에서 김성숙이네 반원들이 오는게 보였다. 그들도 어머님을 뵙고저 찾아오고있는것이였다. 이것이 이 나라 녀성들의 위대한 귀감이신 김정숙어머님을 늘 마음속 가까이에 모시고사는 회령의 녀인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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