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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 회


제 4 장

7

큰배나무골어귀에 있는 사령부귀틀집에는 기쁨에 넘친 이야기소리들이 그칠사이 없었다. 토지개혁때문에 화룡, 연길, 훈춘을 비롯한 여러 지방들에 나갔던 공작원들과 군사적임무를 띠고 여러 유격근거지를 돌아본 지휘관들이 즐거운 이야기판을 벌렸던것이다.

각 유격근거지들에서는 거의 같은 시기에 토지개혁을 실시하였다.

연길현의 유격근거지들에서는 농호당 평균 5천평으로부터 6천평까지의 토지를 분여받았다. 화룡현 어랑촌유격근거지에서는 한 유격대원가족이 천평이나 되는 옥답을 받았다. 삼도만에서는 농민들이 평균 3천 6백평의 땅을 가지게 되였다. 어랑촌에서는 6천평의 땅을 받은 농민에게 마을사람들이 이 넓은 땅을 어떻게 다루겠는가고 물으니 그 농민은 걱정이 있는가, 이제 일본《천황》놈이나 조선총독놈도 다 머슴으로 끌어다가 보습을 끌게 하고 코로 밭이랑을 째게 하겠노라고 하여 온 동네를 웃겼다고 한다. 어떤 농민들은 너무도 꿈만같고 기뻐서 분여받은 밭머리의 패말옆에 요를 쓰고 화로를 끼고앉아 밭흙을 쓸어보고 만져보며 며칠밤을 새웠다고 한다.

기쁜 소식들이 련일 날아드는 사령부는 기쁨의 집, 웃음의 집으로 변한듯싶었다.

사령부지붕우에 높이 올린 붉은기발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선홍색을 자랑하며 봄바람에 기운차게 나붓겼다.

그날 장군님께서는 부모들이 토지를 분여받은 유격대원들을 집에 보내여 첫 밭갈이에 참가시켜 가족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자신께서도 농민들의 첫 밭갈이를 돌아보기 위해 사령부를 나서시였다.

전령병 리성림이와 한흥권, 장룡산이 그이의 뒤를 따랐다. 마을길에서 리재명이와 림성실이 따라나섰다.

길바닥에는 보습날을 끌고간 자리들이 여기저기에 패여있었다. 어떤 집에서는 벌써 점심차비를 하는지 굴뚝에서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르고 얼굴이 환한 아낙네들이 함지나 장작단을 안고 들락날락하였다.

물동이를 이고 밭으로 나가는 젊은 녀인들과 처녀들도 한둘씩 보였다. 그런 처녀들의 치렁치렁한 머리태에는 어느새 빨갛고 파란 댕기가 드리워져 명절색을 돋구었다. 마을뒤의 소나무들이며 개천가의 버드나무줄기들에는 봄물이 거멓게 오르고 잔가지들의 끝에서는 연두빛이 느껴졌다. 대지와 공간에 가득차서 태동하는 막을수 없는 봄기운에 마을의 동기와지붕들마저도 눅눅하게 젖어보였다.

밭들에는 사람들이 하얗게 널렸다. 여기저기에서 소들의 영각소리가 울리고 《이랴- 이랴-》 하는 농부들의 건드러진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장군님께서는 여러 밭들에 들려 농민들과 담화하시고는 마종삼이네 밭으로 가시였다.

삼태기로 밭에 퇴비를 주던 마동호가 장군님을 보더니 아버지한테로 달려갔다.

마종삼은 손에 든 쇠스랑을 땅에 떨구고는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서서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그의 얼굴은 흙빛으로 굳어지고 눈에는 후더운것이 번쩍거렸다. 그러다가 무슨 힘에 이끌렸던지 장군님앞으로 허둥지둥 달려나가 땅에 엎드려 절을 하려고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로인의 팔을 잡아 일으켜세우시였다.

《이러지 마십시오. 로인님, 가족은 다 데려왔습니까?》

마종삼은 목이 꺽 메여 대답을 못하였다. 그는 턱을 덜덜 떨며 눈물이 끓는 눈을 슴벅거릴뿐이였다. 아들이 안타까운 눈으로 아버지를 돌아보며 마른침을 삼키였다.

곁에 선 리재명이 마을에서 도와 부엌을 고치고 굴뚝을 새것으로 세우니 불도 잘 들고 솥도 잘 끓는다고 말씀올렸다.

《됐습니다. 지난날에는 쏘베트바람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이제는 마음을 푹 놓고 이 밭에 정을 붙이고 잘 살아보십시오. 보란듯이 말입니다.》

마종삼은 막혔던 목이 확 열리는듯 갑자기 《장군님!》 하고 부르짖으며 그이의 손을 덥석 싸쥐였다.

《차라리 비탈밭귀퉁이나 떼주십시오. 금이야 옥이야 다루겠습니다. 주신다고 받아놓고보니 남보기 더 부끄럽습니다. 저녀석을 유격대에 붙여주신것만도 고맙기 그지없는데 제 무슨 면목으루 이런 밭을…》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머리를 떨구었다.

《로인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로인님은 땅때문에 고생도 제일 많이 했고 또 아들도 유격대원이기때문에 응당 이런 밭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이건 제 혼자 생각도 아니고 마을에서 다 의논이 있고 찬동한겁니다. 이제부터 이 밭임자는 로인님입니다. 지난 일은 다 잊고 활개를 훨훨 저으며 사십시오.》

마종삼은 흑흑 느껴울었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그이의 손등이며 군복저고리자락을 적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앙상한 어깨를 쓸어만지시였다.

《그치십시오. 기쁜날에 이러면 됩니까. 저는 땅을 받은분들을 축하하고 기쁨을 함께 나누자고 나왔습니다.》

《아버지!》 하고 부르며 동호가 그의 팔을 잡아흔들었다.

장군님께서는 밝게 웃으시며 따뜻한 눈길로 동호를 돌아보시였다.

그이의 눈길은 아버지가 이런 1등전에서 농사를 짓기 떳떳하게 훌륭한 유격대원이 되라고 고무해주시는듯 하였다.

《동호동무, 오늘은 어디도 가지 말고 내내 아버지곁에 있으면서 밭갈이도 하고 집안일도 돕소. 밤에는 어머니, 동생들이랑 함께 자고 래일 아침 병실로 돌아오오.》

《옛!》

마동호는 감격과 행복에 겨워 얼굴이 붉게 상기되여 물기가 번쩍이는 눈으로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동행한 사람들속에서 장룡산이 물기가 어린 시꺼먼 눈을 슴벅거리다가 머리를 외로 돌리고 주먹을 입에 가져가며 《어험… 어험…》 하고 헛기침을 깇었다.

장군님께서는 이어 웃쪽에 있는 김진세네 밭으로 올라가시였다. 그 밭에서는 이미 밭갈이가 시작되여 대여섯고랑을 갈아엎었다.

밭가운데서 김진세와 창억이 소에 쟁기를 다시 메우며 짐승에게 욕설을 퍼붓는듯 꿱꿱 소리치고있었다.

밭머리에 물동이를 내려놓던 허씨가 장군님을 먼저 알아보고 허리를 굽혀 인사하였다.

그이께서는 반겨 인사를 받으시였다.

밭가운데서는 털빛이 거밋거밋한 황소가 주둥이를 하늘에 쳐들고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지르는가 하면 뒤발질로 흙을 뿌려올렸다.

창억이 고삐를 머리우에 높이 쳐들어올리며 소주둥이를 후려치려고 하였다.

그이께서는 손을 쳐드시며 유쾌한 음성으로 웨치시였다.

《어- 어- 가만있소!》

김진세와 창억이는 비로소 그이쪽을 돌아보고 눈이 커졌다.

장군님께서는 갈개는 소곁으로 주저없이 다가가시여 땀이 내밴 잔등이며 척 드리워 쭈글쭈글한 멱살을 쓸어만져보시였다.

《이게 어디서 온 소입니까?》

김진세는 두손을 앞에 모아쥐고 눈가에 잔주름을 잡으며 미소를 지었다.

《구에서 보내준겝니다.》

《소가 힘은 쓰겠습니다. 어디 제가 좀 보탑을 잡아볼가요?》

장군님께서는 시원한 미소를 지으시며 목갑총을 벗어 전령병에게 주고 군복저고리단추를 벗기시였다. 동행한 사람들은 얼굴들에 웃음을 띠우며 흥성거렸다. 그러나 김진세는 몹시 당황한 얼굴로 말씀드렸다.

《안됩니다. 소가 몹시 갈갭니다.》

《그렇습니까?》

창억이 성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소눈을 쏘아보았다.

《성미가 고약합니다. 떡 버티고 안 나가다가도 보습을 끌고 냅다 달아납니다. 밭갈이만 아니면 그저…》

황소는 자기 흉을 보는 소리를 죄다 알아듣고있는듯 시커먼 눈을 슴벅거리며 코김을 거칠게 내불었다. 시큼한 냄새가 풍겼다.

《황소가 창억이를 얕본게 아니요?》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롱말을 던지시며 군복저고리를 벗어 전령병에게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소의 코등이며 귀밑을 슬슬 긁어주신 다음 뒤로 가서 보탑을 잡으시였다.

김진세가 소의 목에 붙어서서 함부로 갈개지 못하도록 고삐를 바싹 바투 잡았다.

장군님께서는 한손으로 보탑을 움켜잡고 다른 손에 든 회초리를 높이 들어 휘- 휘두르며 《이랴-》 하고 힘차게 소리치시였다.

황소는 주둥이를 쳐들고 무서운 함성을 내지르며 발을 육중하게 옮겨디디다가 쟁기를 왈칵 끌며 앞으로 내뛰였다.

김진세는 얼굴이 흙빛이 되여 발을 벋딛고 고삐를 잡아채다가 소목에 데룽데룽 매달려 끌려가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와- 와-》

장군님께서도 몸을 한껏 젖히고 보탑을 뒤로 끌어당기며 끌려가시였다.

한흥권, 장룡산을 비롯한 동행한 사람들이 앞으로 달려나오며 벅적 떠들어대였다. 림성실은 손에 흙덩어리까지 들고 소앞으로 달려나갔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에게 소리치시였다.

《동무들, 모여들지 마오. 소를 놀래우겠소. 이놈이 경사날에 나하고 씨름을 해보자는 속심이요. 하하하…》

허궁 들려 끌려가던 보습날이 어느 순간엔가 땅에 쿡 박히고 장군님께서는 몸의 무게를 보탑우에 실으시였다. 그이의 팔뚝이 부르르 떨고 쟁기가 부서져나갈듯이 우지직거렸다.

억척같은 힘에 붙잡혀 떡 멎어서게 된 황소는 주둥이를 하늘에 쳐들고 내흔들며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지르면서 거품을 뿜었다.

소궁둥이우에서 회초리끝이 휙 날아돌고 《이- 랴-》하는 흥겨운 목소리가 또다시 울렸다.

그이께서는 땅에 깊이 박힌 보습날을 약간 들어주는듯 하시였다. 보습날은 처음에는 돌부리같은것에 부딪쳐 탁탁 소리를 내며 뛰여오르다가 땅에 푹 먹어들었다. 보습날옆으로 누기를 머금은 시꺼멓고 부들부들한 흙발이 물결처럼 갈라져오르며 척척 번져졌다.

손에 땀을 쥐고 뒤따르던 사람들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이께서는 회초리로 소궁둥이를 치지는 않고 이따금 휙- 휘둘러만 보이시였다.

《이랴- 그렇지- 좋다- 이랴-》

소를 몰아가는 부드러운 그 소리는 건드러진 노래가락처럼 하늘에 울려퍼졌다.

어느덧 그이의 이마며 목에 땀물이 번들거렸다.

갈개던 황소는 보탑을 잡은분의 손아귀맛에 주눅이 든듯 머리를 가락맞게 내흔들며 느릿느릿 발을 옮겨갔다.

그이께서는 밭지경에까지 다 갈아나가서는 보습날을 번쩍 들어올리고 고삐를 옆으로 툭툭 채며 《돌아서-》 하고 엄하게 소리치시였다. 그러시고 보탑을 들고 반원을 그리며 돌아가자 황소는 제자리걸음으로 고분고분 돌아섰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한이랑 두이랑 계속 갈아나가시였다.

그이께서 깊이 갈아엎어놓은 시꺼멓고 부들부들한 긴 밭이랑에서는 허연 김이 문문 피여올랐다.

동행한 사람들이 그 밭이랑을 따라 걸어나갔다.

장군님의 뒤모습을 얼이 빠진 눈으로 내내 지켜보던 리재명이 갈아엎은 밭흙을 한줌 쥐여 쓰다듬어보다가 전령병을 돌아보았다.

《회초리를 놀리시는 품이 다르다 했더니 이걸 보오. 이건 그냥 떡가루라니까!》

봄볕에 감스럼하게 탄 얼굴에 웃음이 넘친 리성림은 장군님쪽에 눈길을 돌렸다가 좀 우쭐해져서 귀뜀해주듯이 속삭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안해보신 일이 없어요.… 머슴살이까지 하셨는데요.》

《머슴살이?》

리재명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푸르허라는데서 머슴을 살았댔어요.》

《안도 푸르허말이요?》

《네… 농촌을 혁명화하시느라고…》

《하, 그러니 내가 들은 얘기가 풍설이 아니였댔구만.…》

어느사이에 근처의 밭에서 달려온 사람들이 밭지경에 담장을 이루고 서서 장군님께서 밭갈이하시는것을 바라보았다.

갈아엎어놓은 사래긴 밭이랑을 따라 땅김이 엇비스듬히 날아오르는 광경은 장관이 아닐수 없었다.

경탄의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속에는 하늘을 흘깃흘깃 치떠보는 로인들도 있었다. 모든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하늘에서 복이 내려주기를 대대로 빌며 살아온 옛시절이 문득 비쳐들었는지도 모른다.

옛시절에는 하늘에는 복이 있고 땅에는 재난만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장군님께서 땅을 주시여 모두가 땅임자가 되니 하늘이 우러러보이지 않는다. 땅이 하늘로 된듯 하다. 그러니 저 하늘따위가 무엇이란 말인가.… 밭이 점점 넓게 갈려질수록 하늘까지도 더 시원히 트이며 푸르러지는것 같다.

창억이는 보탑을 잡으신 장군님의 뒤를 따라 걸어나가며 보습날에서 흙발이 뒤번져지는것을 지켜보는가 하면 갈아엎어놓은 밭이랑을 굽어보았다. 김이 문문 피여오르는 시꺼멓고 부들부들한 밭흙이 발밑으로 물결쳐 흘러나가는듯 하였다. 구수한 흙냄새가 섞인 눅눅한 김이 얼굴을 스쳐 날아오른다. 가슴이 찌르르 저려나며 눈앞이 흐려진다.

갈아엎은 흙속에서 발이 빠져 비칠거리군 하면서 걸어나가는 그는 자기 눈물이 밭이랑에 흩날려떨어지는것을 느끼지 못하였다. 저앞에서 번쩍이는 보습날에서는 흙발이 계속 사품쳐오르며 뒤번져진다. 장군님께서는 밭이 아니라 자기네 처지와 이 세상을 몽땅 뒤번져놓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그래서 자기는 유격대원이 되고 아버지는 땅임자로, 토지개혁준비위원으로 된것이 아닌가! 문득 발밑으로 물결쳐 지나가는 밭이랑이 흙의 이랑이 아니라 기쁨의 이랑, 행복의 이랑으로 느껴진다. 희뜩희뜩 번져지고 뒤채기며 희롱질을 하는듯 한 그 이랑들에 몸을 던지고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누르며 창억이 허리를 굽혀 흙을 두손에 가득 담아올리는데 누구인가 그의 옆으로 달려왔다. 마동호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넘쳤다. 그는 사래긴 밭 저쪽에서 밭갈이를 하시는 장군님을 바라보다가 갈아엎은 흙을 쥐여 만져보고 부스러뜨려보더니 《좋구나!》 하는 환성과 함께 이랑우에 척 누워버렸다.

《야, 창억이, 이렇게 누워봐라. 하늘을 다 안을것 같다. 하하하.》

창억이도 몸을 날려 그의 옆에 누웠다. 과연 높고 푸른 하늘이 한가슴에 안겨드는듯 하였다. 그들은 제김에 웃어대며 다시 일어나앉아 두손에 밭흙을 퍼담아올렸다가 쏟아보았다. 부들부들한 흙은 해빛에 번쩍거리며 주르르 흘러내렸다.

《하하하…》

《허허허…》

언제 나타났는지 장룡산이 한손으로 목갑총을 잡고 그들의 둘레를 돌아가며 껄껄 웃어대다가 밭지경의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여러분, 이 친구들을 보시오. 좋아서 송아지처럼 딩구오, 하하하…》

밭지경의 사람들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어대였다. 장룡산은 두 대원을 일으켜세우고 잔등의 흙을 털어주며 껄껄거렸다.

이때 밭지경의 사람들속에서 놀란 목소리가 터져올랐다.

《히야- 저걸… 저걸 보우-》

창억이는 장룡산이와 동호와 함께 의아해서 두리번거렸다.

이쪽에서 갈아엎은 밭이랑들과 저아래 밋밋하게 기복이 진 버덩의 밭들에서 문문 피여오르는 땅김이 잔잔한 바람결에 한데 어울려지며 대하처럼 흐르다가 안개바다를 이룬다. 그 안개바다는 어느덧 밭들이며 사람들의 아래도리를 뿌옇게 묻어버린다.

굼실거리는 그 젖빛안개바다속에서 기쁨에 넘친 탄성이 들려왔다.

《여- 땅이 숨을 쉰다-》

밭지경의 사람들이 벅적 떠들었다.

《저거… 저거… 저거 보게…》

《허… 정말 땅이 숨을 쉬는데.》

《이런 일은… 이렇게 이르게 땅김이 오른적은 일찌기 없었네.》

《허, 이게 천지개벽이란게 아닌가!》

《글쎄말이요. 하하하…》

《허허허…》

창억이와 동호가 그 어떤 신비감 비슷한 감격에 휩싸여 눈을 빛내며 안개바다를 둘러보는데 보탑을 놓으신 장군님께서 곁으로 다가오시였다.

그이의 붉게 상기된 존안에서는 땀이 번들거렸다.

저쪽 뒤에서는 창억의 아버지가 보탑을 잡고 밭을 계속 갈고있었다.

수건으로 목을 훔치며 다가오신 장군님께서는 볼이며 가슴팍에 흙이 묻은 장룡산을 보시며 넌지시 웃으시였다.

《여기 밭은 중대장동무가 다 받은것 같소. 허허허…》

장룡산은 볼의 흙을 손바닥으로 씻으며 벙글벙글 웃었다.

《이 동무네가 받은게야 다 제가 받은게지요.》

《허, 하긴 그렇소!》

《사령관동지, 밭갈이솜씨가 정말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정말이요? 허허허…》

《하, 오늘은 별스럽게 고향생각이 납니다. 고향에서 땅이 없어 고생하는 친척들이 여기서처럼 토지를 분여받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도 밭갈이를 하면서 내내 그 생각을 했소. 우리 나라 전체 농민들에게 이렇게 토지를 나누어줬으면 얼마나 좋겠소. 그날은 꼭 올게요! 우리가 잘 싸우면…》

창억이는 그 말씀에 가슴이 뭉클해져 저도모르게 곁에 선 동호의 손을 찾아 꽉 움켜쥐였다. 동호도 손아귀에 힘을 넣으며 그의 손바닥을 뜨겁게 잡았다. 손과 손이 하나의 주먹으로 엉켜진 거기에 불같은 결의가 묵직이 뭉쳐지는것 같았다.

이때 창억이 어머니 허씨가 바가지에 물을 철철 넘치게 떠가지고 달려오고 동행한 사람들이 모여왔다.

장군님께서는 창억이 어머니에게서 바가지를 받아 물을 마시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무슨 소리엔가 귀를 기울이시였다. 그러시다가 기쁨에 넘친 시선으로 사람들을 돌아보며 속삭이는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들리오?… 들리지 않소?》

한흥권, 장룡산, 리재명, 림성실… 모두가 두리번거리며 귀를 강구었다. 들리는듯 마는듯 한 그 소리는 뻐꾸기의 울음소리였다. 마반산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파란 하늘에 보이지 않는 파문을 그리며 울려퍼지는듯 하였다. 바가지의 물에도 보일듯말듯 파문이 일어 해빛이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그 반사광이 그이의 존안에 어른거렸다.

이때 총성이 메아리쳤다.

마촌쪽에서 울린것이다.

이윽고 안개바다속에서 재빛말 한필이 뛰여나와 개울을 건너 저쪽언덕으로 날아오르는것이 보였다. 말에 탄 사람은 언덕 건너편에 대고 무엇이라고 꿱꿱 소리치다가 말을 홱 돌려세웠다.

말은 어느사이에 개울물을 튕겨올리며 이쪽으로 달려오더니 달구지길에 들어섰다.

말에 탄 사람은 권일균이였다.

그는 말안장우에서 허리를 꿋꿋이 펴며 이쪽에 대고 큰소리로 물었다.

김일성동지가 어디에 계시오?》

《여기 계시우다!》 하고 누구인가 대답했다.

권일균은 말을 밭머리에 세우고 밭가운데로 달려왔다.

그의 얼굴에서는 비지땀이 번들거렸다. 흥분에 볼이 부들부들 떨고 크게 뜬 눈이 이름할수 없는 기쁨을 감추며 불덩이처럼 이글거렸다.

장군님앞에 다가온 그는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리며 말했다.

《저, 동만특위동지가 국제당파견원과 함께 왔습니다!》

《국제당파견원?… 무슨 일로 왔소?》

장군님의 음성은 침착하시였다.

《글쎄요. 우선 제방에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마촌쪽에서는 웬 총소리요?》

《제가 그만… 저놈 말이 갈개는 바람에 오발을 했습니다.》

《오발이요? 상한 사람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저놈 말이 어찌나 갈개는지…》

이때 저 아래쪽 밭머리에서 다부산자차림의 키가 후리후리한 사람이 동만특위 동장영과 함께 밭가운데로 걸어들어왔다. 그 사람은 모자를 벗으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이마에서 해빛이 번쩍 빛났다.

전령병이 어느새 밭지경에서 군복저고리와 목갑총을 안고 뛰여와 그이께 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그것을 전령병에게 도로 밀어주시였다. 그리고는 흙이 묻은 손만 툭툭 털며 갈아엎은 밭이랑들을 가로질러 손님에게로 마주 걸어나가시였다. 밭이랑들에서 피여오르는 허연 김이 그이의 발에 휘감겨들며 고즈넉이 굼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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