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제 4 장
6
마종삼은 자기 몸에서 더러운것이 묻어날가봐 베개와 포대기를 개여서 옆에 밀어놓고 목침만 베고 다시 누웠다. 그는 실신한 사람처럼 멍한 눈으로 천장을 쳐다보았다.
자기가 어떻게 되여 이렇게 김진세네 집 웃방에 누워있게 되였는지 알수 없었다. 지난날 마실을 와서 진세형과 한담도 즐기고 싱갱이질도 하던 그 방이 분명하다. 저 문이며 벽, 천장구석밑에서 허공에 드리워 시계추처럼 흔들거리는 거미… 이 모든것이 꿈만 같으면서 믿어지지 않는다. 살아숨쉬며 편안히 누워있는 이것이 현실이고 지난 몇달동안 방황의 길에서 겪었던 고초들은 모두 악몽이 아닌가.
눈꼬리에서 뜨끈뜨끈한것이 주르르 흘러내려 귀안에 떨어진다.
작년 가을 근거지를 떠난 그는 식구들을 데리고 여기저기로 돌아다니며 온갖 고생을 다하였다. 왜놈들이 살판치는 바깥세상에 나오니 나날이 입에 풀칠하기 어려워졌고 천대와 멸시가 더해졌다. 온 식구가 거지몰골이 된 다음에야 그는 욱한김에 근거지에서 나온것을 뼈저리도록 후회하였다. 모든것이 땅때문이였다.
땅때문에 생긴 수난이였고 땅때문에 커만 지는 불행이였다. 낟알을 심어먹을만 한 땅을 찾아 헤매던 그의 눈에 들어온것은 두만강의 작은 섬들이였다. 여름날 높은 하늘에서 굽어보면 강물에 떠있는 쪽박처럼 보일 그 섬들은 마종삼의 궁색한 마음을 끌었다. 3월하순 몇개의 섬을 거쳐 동섬에 오른 그는 얼음버캐가 덮인 눈을 헤치고 땅을 파보았다.
이때 그는 섬으로 다가오는 군대의 작은 행렬을 보았다. 첫눈에 왜군이 아니라는것이 알렸다.
한설봉은 그를 호되게 꾸짖으며 마을에서 묵고간 유격대원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하여주었다.
천장구석밑에 내리드리운 거미는 여전히 시계추처럼 흔들거리고있다.
마종삼은 일어나앉아 고목그루터기처럼 까딱 움직이지 않고 그 거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쪽에 얼굴을 돌렸다. 그의 얼굴에 보일듯말듯 경련이 일고 눈에 구슬픈 빛이 어리였다.
밖에서는 난생처음 들어보는듯 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가까운 곳 같기도 하고 먼곳 같기도 한데서 들려오는 기쁨에 넘친 말소리와 웃음소리들 그리고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높은 목청으로 누구를 부르는 소리, 노래소리, 꽹매기와 북을 두드려대는 쿵짝쿵짝 캉- 캥 하는 소리들…
마종삼에게는 그 소리들이 모두 자기와는 인연이 먼 별천지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는 몸이 서서히 얼어드는듯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며 성긴 수염발이 거푸수수 일어섰다.
(어째… 여태 소식이 없을가?)
홍씨에게 짓밟히던 일, 모르는사이도 아닌 장룡산이 엄엄한 얼굴로 다시 찾아오게 된 경위를 꼬치꼬치 캐고들던 일, 결의형제를 무었던 김진세가 반갑다는 인사도 없이 무섭게 쏘아보며 베개를 던져주던 일들이 가슴을 쳤다.
마종삼은 가슴이 쩡쩡 얼어들어 한숨도 내쉬지 못하였다.
(모두 내가 미울게다. 의논들이 구구한 모양이구나. 덜미를 쥐고 끌어내기 전에… 뭇사람들앞에서 창피를 당하며 쫓겨나기 전에 슬그머니 없어지는게 옳은 처사가 아닐가?)
그렇게 하자니 아들에게 해가 미칠것 같고 앉아기다리자니 바늘방석에 앉은것처럼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이때 밖에서 다급한 발자욱소리가 나더니 방문이 벌컥 열렸다.
쏟아져들어오는 해빛을 등지고 흰두루마기를 걸친 김진세가 달려들어왔다. 소스라쳐 일어난 마종삼은 그의 얼굴에서 번쩍거리는 눈물을 본 순간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김진세는 그의 팔목을 덥석 잡아 올리끌었다.
밖에 끌려나간 마종삼은 해살이 눈을 찔러 앞을 똑똑히 가려볼수 없었다. 그는 김진세가 이끄는대로 발을 돌부리에 걸채이며 허겁지겁 따라갔다. 옆을 스쳐지나는 사람들이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며 무엇이라고 소리치고 웃는것 같았으나 그들쪽에 눈길도 돌리지 못하였다.
온 마을사람들이 바깥으로 쏟아져나온듯 하였다.
산기슭, 들, 버덩, 골짜기 어디를 보나 밭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하얗게 널려 떠들며 웃어대며 흥성거리고있었다. 아, 저들은 얼마나 좋을것인가!
어디로인가 바삐 뛰여가는 사람들, 밭머리에서 집쪽에 대고 누구인가를 목청껏 부르는 아낙네, 먼곳 가까운 곳에서 손에 손을 잡고 덩실덩실 춤추며 돌아가는 장정들, 꽹매기소리, 북소리, 밭가운데에서 합창을 부르는 아동단연예대, 그앞에서 춤을 추며 돌아가는 처녀아이들.… 한 할머니가 며느리인듯 한 이쁘장한 색시의 팔을 끌고 달려가며 꾸지람을 한다.
《아니, 이런 날에 아프다고 방구석에 누워있다는게 말이 되느냐? 소왕청골안이 생겨 첫 일이다! 세상이 생겨 첫 경사다!》
며느리는 웃으며 끌려가고 할머니는 돌부리에 채워 벗어진 천신을 다시 신을념도 못하고 손에 쥔채 그냥 달려간다.
저아래 버덩에 모여서 설레이는 사람들의 머리우에서 상모꼬리가 핑핑 돌아간다. 동림촌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높다랗게 세운 솔대문옆에서 대여섯명의 구호대가 입에 종이나팔을 대고 구호들을 웨친다.
《농민은 땅의 주인이다!》
《분여받은 땅을 옥답으로 가꾸고 식량생산에 전력하자!》
《우리 혁명의 책원지인 근거지를 철통같이 다지자!》
《
길을 가던 사람들, 밭에서 춤을 추던 사람들, 붉은기를 높이 들고 달려가던 자위대원, 노래부르던 아동단유희대… 모두가 멈추어서서 구호대의 웨침에 따라 팔을 높이 쳐들며 만세를 불렀다.
그 시기 사람들의 관념속에 만세를 부른다는것은 하나의 뜻깊은 거사에 참여하는것으로 인식되여있었다. 이전에는 온 겨레가 떨쳐나서서 만세를 부르면 조선이 독립이 되리라고 믿었던 민족주의운동자들도 있었으니 그후 오래동안 일반민중에게도
김진세도 걸음을 멈추고 옷매무시를 바로잡고는 두팔을 높이 쳐들며 만세를 불렀다. 마종삼은 얼굴이 시뻘겋게 되여 엉거주춤 서서 두리번거리기만 하였다.
누구도 그에게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모두들 하나의 기쁨, 하나의 열광에 떠서 마종삼의 존재따위는 물론 이 세상사람들의 생활에 수억만가지의 사연이 있으며 수백수천만가지의 비운이 있다는것조차 가맣게 잊은듯 하였다.
외인에게 제일 민감한 개들도 사람들의 열광에 휘말려들어 저희들끼리 쫓거니 쫓기거니 하면서 밭에서 딩구느라고 그를 보고 짖기는 고사하고 돌아보지도 않았다.
마종삼에게는 그것이 다행스러웠다.
김진세는 만세를 부르고나서 다시 걸음을 떼였다. 그는 길을 따라가다가 밭을 가로질러 활개를 훨훨 저으며 동림촌쪽으로 곧바로 내려갔다. 그의 뒤를 따라가는 마종삼은 얼굴빛이 캄캄하게 질리여 곁눈을 팔지도 못하였다.
김진세는 이따금 따라오는가 돌아볼뿐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었고 마종삼은 그것을 묻기 두려웠다. 그는 입술이 말라들고 목구멍에서 겨불냄새가 풍겨올라왔다.
동림촌마을 좀 못미쳐 길옆에 펼쳐진 흙발이 거뭇거뭇한 밭에서 양복차림과 조선옷차림의 장정 몇이 몰켜서서 이쪽을 빤히 보고있었다. 모두 처음 보는 얼굴들이다.
마종삼은 그들속에서 리재명이만을 인차 알아보았다. 후렁후렁한 토목양복을 입은 리재명은 손에 든 장부책을 들여다보다가 얼굴을 번쩍 들고 마종삼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마종삼은 뚝 멈춰섰다. 목구멍이 꽉 막히고 가슴이 메슥메슥해나도록 활랑거렸다.
리재명의 옆에 선 자그마한 장정이 웃으며 큰소리를 쳤다.
《좀 빨리 오시오!》
김진세가 그의 등을 떠밀었다.
마종삼은 그 사람들앞으로 다가가며 리재명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였다.
리재명은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거니와 질책하지도 않고 그저 얼마전에 헤여졌던 사람처럼 스스럼없이 대했다.
김진세가 마종삼의 팔을 가볍게 잡고 옆으로 끌어 그의 앞에 똑바로 세워주었다.
마종삼은 시켜주는대로 서서 리재명의 얼굴을 쳐다보려다가 양복저고리 웃주머니쪽에 눈길을 떨구었다.
리재명은 장부책을 펼치였으나 책장은 보지 않고 마종삼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엄숙한 얼굴로 이야기하였다.
《농민 마종삼일가에 다음과 같이 토지를 분여합니다.
우리 토지개혁준비위원회는 댁에 로력자가 두명이라고 계산하고… 아들 마동호를 유격대에 보낸 후방가족이라는것을 또 고려하여… 에- 농민총회의 위임으로 농민 마종삼과 그 부인 고분녀에게 각각 1등전 1 250평… 합계 2500평을 무상으로 분여합니다.》
책장이 바람결에 펄럭거렸다.
《그리고 농민 마종삼이 지난날 지고있던 모든 채무를 벗겨준다는것을 선포합니다.… 잘 알아두시오. 혁명정권은 분배한 일체 토지의 매매나 저당을 엄금합니다.》
마종삼은 구름이 낀듯 탁 흐려진 멍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턱을 덜덜 떨었다.
리재명은 큰숨을 후- 내쉬고 엄엄하게 굳어졌던 몸가짐을 풀었다.
《밭이 마음에 들면 여기
옆에 선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말했다.
《넨장, 도장은 무슨 도장, 나두 손가락도장을 찍었네.》
《어서 큼직하게 도장을 누르구 마종삼이 땅임자가 됐다 하구 세상에 소리치게나. 왜국 〈천황〉놈까지 다 듣게 말이네, 허허허…》
모두들 껄껄 웃는 가운데 양복차림의 젊은이가 인즙통을 내밀었다.
김진세가 마종삼의 뭉툭한 엄지손가락을 쥐여 인즙을 꾹꾹 눌렀다.
마종삼은 얼이 빠진듯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하고 김진세에게 손을 맡겨 장부에 지장을 꾹 눌렀다.
그러자 리재명이 손을 꽉 잡아쥐고는 놓지 않았다.
《마아바이, 잊지 마시오. 이 밭은
마종삼은 헉 하고 숨을 모질게 들이켰다.
저 웃쪽에서 꽹매기소리와 만세소리, 노래소리들이 더 높이 울려왔다.
마종삼은 숨이 끊어진듯 무릎을 꿇며 땅에 푹 엎어졌다.
그는 두손에 밭흙을 그러쥐고 구부린 잔등을 푸들푸들 떨다가 쭉 펴며 황소같은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그러다가 눈물범벅, 흙범벅이 된 얼굴을 쳐들어 불같은 눈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을 둘러보았다.
《여보시오. 이게 꿈이 아니요? 꿈이문 나를 깨워주시오! 깨워주시오!》
김진세는 그 정상을 차마 볼수 없어 돌아서서 팔소매를 눈에 가져갔다. 그러다가 와락 달려들어 마종삼의 어깨를 거머쥐고 우악스럽게 흔들어댔다.
《종삼이… 종삼이!》
《성님!》
《이래도 또 들구뛰겠는가?》
《성님, 때려주시오. 이 대가리를… 이 가슴을… 짓모아주오!》
그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이그러뜨리며 이렇게 부르짖고는 진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김진세는 두손으로 그의 푸들푸들 떠는 잔등을 쓸어만졌다.
《이 사람아, 이 은혜를 잊지 말자구.》
《성님!》
《우리두 삼천평이나… 탔어. 풍헌이네도 타고 다 탔네!》
《성님!》
《종삼이!》
그들은 부둥켜안고 꺽꺽 느껴울었다.
이때 여기로 박현숙이와 최형준이 아동단연예대를 데리고 달려왔다.
눈두덩이 벌겋게 부어오른 리재명이 그들에게 다른데로 가달라고 손을 저어보였다. 여기서는 노래를 부를 형편이 못된다는 뜻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