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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 회


제 4 장

5

기러기들의 구성진 울음소리가 하늘에 가득차넘치였다. 허씨는 일손을 놓고 장작가리옆에 우두커니 서서 이마에 손채양을 붙이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새파랗게 물이 들어가는 하늘로 솔잎처럼 앞머리는 맞붙고 뒤꼬리는 벌어지게 두줄을 지은 기러기떼가 유유히 날아들어오고있다.

허씨의 눈에는 눈물이 괴여오르고 입에서는 노래가락 비슷한 구슬픈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아바이도 돌아오고… 너희들도 날아드는데…》

외따로 떨어진 기러기 한마리가 성급히 날개를 저으며 무리속에 끼여들자 기러기때의 날음은 더욱 활기에 넘치고 울음소리 또한 더 구성지게 울린다.

허씨는 치마자락으로 눈굽을 찍어내고 코물을 풀었다.

날아가는 기러기떼를 쳐다보노라니 저 봄하늘에 가득 며느리의 고운 얼굴이 떠올라서였다.

《젠장, 기러기를 봐두 줴짠다니까.…》

뒤에서 령감의 걸걸한 목소리가 울렸다.

허씨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봄바람에 얼굴이 검붉게 탄 김진세가 노상 쥐고다니는 목책을 덧저고리주머니에 넣으며 못마땅하게 바라본다.

《오늘같은 날에 그 애가 있으문…》

그러자 령감은 꽥 소리를 질렀다.

《그만두라는데… 패말감은 골라봤소?》

《예… 꼭 박달나무래야 되우?》

《든든한걸루 세우자니 그러지.…》

《참나무는 안되우?》

《참나무는 자꾸 터서 틀린다니까.》

《에이구 원, 아무거문… 땅이… 도망칠가봐?》

이렇게 말하는 허씨는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그린다.

김진세는 장작가리밑에서 굵은 박달나무토막을 끌어냈다. 그는 그놈을 안고 바람을 일으키며 마당을 나서 활개를 훨훨 저으며 마을길을 걸어갔다.

하늘에는 해빛이 눈부시였다.

아동단학교쪽에서 아이들의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토지개혁날에 연예대공연을 한다더니 그 련습이 한창인 모양이다.

앞에서 부녀회장 림성실이와 《새별눈》이 마주 달려오다가 걸음을 멈추며 인사를 했다. 림성실의 손에는 꽹매기가 들려있고 《새별눈》은 상모를 안았다.

《어이구, 선생님들! 어디로 이렇게…》

김진세도 반겨 인사를 하였다.

《김위원아바이, 래일 모레면 정말 토지개혁이 발표되나요?》

《새별눈》 박현숙이 봄바람에 저고리고름을 날리며 밝게 웃는 얼굴로 묻는다.

《예- 장군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였으니 틀림없을게우다.》

김진세는 그들의 손에 들린것들을 보며 놀랐다.

《아니, 그건 뭐요? 상모에 꽹매기라… 어디서 그런게 다 났소?》

《사람들이 들썩들썩해지니 안 나오는게 없어요.》 하고 림성실이 시원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 그럴테지. 그런데 아니, 상모꼬리를 돌릴줄 아는 사람이 마을에 있겠나?》

《자위대에 한 동무가 있대요!》

《원, 저런!》

그들과 헤여져 오풍헌이네 집쪽으로 걸음을 다그치는 김진세는 발이 길바닥에 닿는것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냥 훨훨 날아가는것 같았다.

오풍헌이네 집마당에는 농민들이 가득 모여들어 왁작 떠들며 웃어대고있었다.

《그래그래, 썩썩 문대게!》

《과시 그 손이 보배로다!》

《풍헌이 허풍은 쳐도 오늘은 새색시처럼 곱구나!》

《하하하!》

《챠, 이거 일을 해먹겠는가. 썩 물러가라구! 수염이 석자인게 애들같이 군다니까, 넨장…》

담장처럼 빙 둘러선 사람들속에서 오풍헌이 땀을 뻘뻘 흘리며 대패질을 하고있다. 그가 어찌나 걸싸게 대패를 미는지 돌돌 말린 대패밥이 어깨우로 휙휙 날아넘는다. 분여받을 땅에 박을 패말들을 밀어주고있는것이다.

김진세는 큰기침을 떼며 마당에 들어섰다.

김진세가 내놓는 박달나무를 본 오풍헌은 웃음 절반, 짜증 절반으로 소리쳤다.

《또 박달이요? 모두 쇠기둥을 박을셈인가. 이런것만 들구오니 대패날이 견디겠소?》

《이 사람아, 나무람 말라구… 머리털이 허옇게 세서 첨 제땅을 가져보는건데 든든한걸루 패말을 쳐야 할게 아닌가!》 하고 김진세는 얼굴이 벌겋게 되여 벙글거렸다.

《모두들 하나같이 박달이나 물푸레를 들구오니 하는 소리요.》

이때 퇴마루에서 오돌차게 생기고 흰수염발을 가슴우에까지 드리운 로인이 장죽으로 오풍헌에게 삿대질을 하며 챙챙한 소리를 내질렀다.

《풍헌이, 이 사람아! 왜 좋은 일을 하면서 그렇게 좀상스럽게 노는가, 엉? 아니, 대패날이야 저 대장간에 가서두 얼마든지 벼려올수 있지 않나!》

《그럼 성님이 어디 좀 해보슈-》

그러자 로인은 발을 탁 구르며 호령했다.

《에익, 고약한 사람!》

오풍헌이는 허리를 굽석거리며 껄껄 웃어대다가 주먹으로 눈물을 씻었다.

《허허허, 성님- 나두 속이 들썩해서 흰소리를 한번 해봤수다. 흐흐흐…》

로인은 얼굴이 대뜸 밝아지며 채머리를 떨었다.

《암, 우리 대목이 그럼 그렇지… 한데 속에 담긴 심보는 좀 묘하거던, 묘해. 하하하…》

그리고 로인은 퇴마루에서 내려 김진세앞으로 다가왔다.

《여보게 김위원, 내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 패말들에 어느 다른 사람의 글씨를 써넣는다는게 말이 아니거던… 말이 안돼. 장군님께서 우리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시는건데… 여보게, 장군님께서 친히 우리 이름자들을 써넣어주신다면 얼마나 고맙겠나. 리재명회장 말이 패말 몇개만 잘 밀어서 먼저 가져오라는걸보니 아마 거기다간 친히 붓을 대시게 청을 드릴 모양이야.》

《성님 말을 들으니… 과연 그렇습니다. 한데 장군님께서 우리 패말에 언제 일일이 손을 대시겠습니까?》

《그러게 자네가 청을 올려달라는게 아닌가… 자네야 우리 위원인데 이 백성들 맘을 대표해서 한번 청을 올려주게나. 장군님께서 과히 나무람을 하지는 않으실거네.》

김진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곧 도움을 받으려고 리재명을 찾아갔다.

리재명은 그가 위원으로서 인민들의 청원을 접수한것이니 직접 장군님께 말씀올리는것이 더 좋을것이라고 일렀다.

김진세가 장군님을 찾아가 청을 올리자 그이께서는 그가 인민들의 의사를 대표하여 나선줄 알게 된것을 못내 기뻐하시였으나 붓을 드는것만은 굳이 사양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토지개혁준비위원회 위원장인 리재명이 패말을 쓰는것이 옳다고 주장하시였다. 리재명이와 김진세가 인민들의 간절한 소원을 설명하며 거듭 청을 드린 다음에도 그이께서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힘들게 응하시였다.

그날 오후부터 장군님께서는 패말들에 토지를 분여받을 농민들의 이름자를 적어나가시였다.

그리 넓지 않은 토지개혁준비위원회의 방안에는 새로 깎아온 패말들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나무진내와 참먹냄새가 가득차서 흘렀다.

장군님께서는 오른쪽팔소매단을 보기좋게 약간 걷어올리고 붓대를 가볍게 쥐시였다. 벼루의 먹물에는 연한 기름기가 흐르고있었다.

그이께서는 벼루우에 붓털을 이리저리 눕혀가며 먹물을 정히 묻히시고는 매끈하게 대패질을 하고 백묵칠까지 한 패말에 곧추 세운 붓끝을 주저없이 박으시였다. 순간에 쏠려드는 힘에 붓끝이 바르르 떠는가싶더니 어느덧 이름자의 획이 활달하게 씌여졌다. 그것을 보는 림성실의 눈이 커지며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였다.

근거지에서 명필로 이름난 림성실이도 이런 힘찬 글씨체는 처음 보는것이였다.

리재명이 토지분여대장에 표식을 해가며 토지를 분여받을 농민들의 이름과 평수를 불러올리면 그이께서 그것을 패말에 적어나가시였다.

림성실이 이름자를 써넣은 패말들을 아래벽에 줄지어 세워놓고 새 패말감들을 소리없이 가져다 상우에 놓군 하였다. 리재명의 옆에서는 전령병 리성림이 꿇어앉아 조용조용 먹을 갈았다.

장군님께서는 붓을 멈추고 먹을 가는 전령병에게 자주 주의를 돌리시였다.

그이께서는 먹은 가볍게 쥐고 벼루를 꽉 누르지 말고 살살 갈아야 부드럽게 잘 갈려진다고 이르시였다.

리재명이와 림성실은 황홀경에 빠진듯 패말에 뚜렷하게 그려지는 붓글씨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붓끝에서는 먹물이 아니라 그이의 의지가 흘러나와 힘차게 굽이치며 누구도 모르던 이름들을 세상앞에 보란듯이 내세우는듯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이따금 붓을 벼루우에 놓으시고 손끝을 주무르시였다.

《허, 이것도 헐한 일은 아니요…》

장군님께서는 불깃하게 상기되신 안색으로 리재명을 돌아보시였다.

리재명은 아래벽에 줄지어 세워놓은 패말들앞에 엉거주춤 웅크리고 돌아앉아 흥겨운 노래가락을 넘기듯이 이름자들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장대로요, 김창순이라… 엄장수에… 김진세, 허일녀, 오풍헌이라… 에- 이거는 또 누구냐?… 마증손에 주쌍가매요, 마영삼에 이게 누구냐… 머슴살이 한생에 장가두 못들구, 에- 이름도 변변한게 없는 장꺽대 장깡대에 리후남이라, 조돌쇠요, 하- 이거는 불쌍한 눈물녀구나.…》

림성실은 그의 노래가락을 무심히 들을수 없어 귀를 기울이다가 눈을 슴벅이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그 노래가락에는 전혀 주의를 돌리지 않으시는듯 책상우의 토지분여대장과 농민호구조사부를 다시 펼쳐드시였다.

그리고 토지가 로력자당, 매 농호당 세칙에 어긋남이 없이 분배되였는가를 다시 또다시 확인해보시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농민호구조사부와 토지분여대장의 책장들을 번지시다가는 자주 깊은 생각에 잠기시는것이였다. 이 몇달동안 좌경분자들이 빚어낸 엄중한 후과를 가시기 위한 피눈물나는 투쟁과 위험을 무릅쓰고 단행한 조국진출과 힘에 부치는 전투의 어렵고 복잡한 나날에 선차적인 관심을 돌리시여 시간을 내고 밤을 밝히며 지도에 지도를 거듭하시였건만 이 거창한 토지혁명에서 사소한 실책이나 티끌만 한 흠집이라도 없으리라고 담보하기는 어려우시였다. 그리하여 혹시 미흡한 점이라도 없는가 하여 거듭거듭 검토해보시는것이다.

패말을 벽에 정돈하여 세워놓던 리재명은 그이께서 저토록 오랜 침묵을 지키시며 토지분여대장을 살펴보시는것으로 보아 무슨 잘못된 점이 있는게 아닌가싶어 은근히 가슴을 조이였다.

이때 방문이 열리며 장룡산이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땀이 철철 흐르고 바지가랭이에는 엉겅퀴의 가시털이 성글게 붙어있었다.

그는 웃음이 넘친 얼굴로 장군님을 보며 보고하였다.

《알아봤는데 틀림이 없습니다. 상경리에 마동호동무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와있습니다.》

《동무가 상경리에까지 갔다왔소?》 하고 장군님께서 물으시였다.

《예.…》 장룡산은 군모를 벗어 얼굴의 땀을 훔치고는 벙글거렸다.

《다른 누구를 보내놓고 속이 클클해서 어떻게 기다립니까. 동호동무는 아침에 밥도 제대로 못 먹었습니다.》

《그럴테지… 아버지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한 동무요.》

《마아바이 말을 들어봐두 그렇구 동호 어머니나 누이동생 말을 들어봐도 그렇구 의심스러운데는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에 수상하다면 제가 그쯤한 냄새를 못 맡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자기 대원들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언제나 이렇게 기승을 부리는 그의 사람됨됨에 미소를 금치 못하시며 리재명을 돌아보시였다.

리재명의 귀에 꽂힌 꽁다리연필이 저절로 굴러떨어져 방바닥에 딩굴었다. 그는 그것을 쥐여올릴념도 못하고 난감해진 눈으로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목에서 울대뼈가 오르내렸다.

그도 장군님께서 자기를 돌아보시는 까닭을 인차 느꼈기때문이다.

《재명동무,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예?》

《좌경바람에 화를 입은 사람이 도로 찾아온건 좋은 일인데 우리가 모른다고 할수 있습니까?》

《하긴 그렇습니다만. 에- 참, 찾아오겠으면 한꺼번에 찾아들든지, 이거야 쭐끔쭐끔… 열백번 허물었다가 겨우 맞춰 다시 세운 토지분여안을 이제 어떻게 또 허뭅니까. 토지분여를 당장 시작해야겠는데… 그 령감은 떠나갈 때도 그렇구 찾아와도 그렇구 언제나 골치거리라니까. 곁의 사람들을 들볶구 못살게 굴면서 무슨 성미가 그따위인지…》

놀라시는 눈길로 리재명의 얼굴을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몸을 뒤로 젖히시며 큰소리로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하하하… 속이 떡반죽같던 리재명선생도 신경질이라… 신경질이라니…》

리재명이도 덩덩한김에 턱을 쳐들사 하며 허구픈 웃음을 소리없이 웃었다.

그는 얼굴이 벌개져서 토지분여대장을 끌어다가 무릎우에 펼치고 몇장 번지였다.

《이렇게 합시다. 생산돌격대에서 경작하기로 한 중간지대 밭들에서 좀 떼내지요.》

《거기 밭들은 몇등전입니까?》

《모두 3등전들입니다. 마로인한테는 그게면 과남합니다. 그 로인도 과남하게 여길겝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사실 그렇지요. 여기서 도망쳤던 일만 생각해도 땅을 달라고 손을 내밀 처지가 됐습니까? 3등전이면 과남하지요.》

《과남하다구요? 그 로인이 여기서 떠나게 된 직접적인 동기야 쏘베트의 그릇된 시책때문이 아닙니까. 이런 농민에게 토지가 공정하게 분여되면 우리 로선의 승리를 확증하는 또 하나의 좋은 례로 될것입니다. 이런 대상자일수록 신중하게 대해야 한다고 봅니다.》

《마로인의 아들은 유격대원입니다. 다른 유격대 후방가족들과 차이를 두어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토지분여안을 크게 허물지 않고 하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준비위원들이 잘 토론해보십시오.》

장룡산이 무릎걸음으로 리재명의 앞으로 다가와 열기를 띤 눈을 번쩍이였다.

《준비위원장! 오래 생각할게 있소. 1등전을 떼냅시다. 문서질이야 준비위원장이 좀 수고를 하면 되겠는데 크게 마음을 쓰오. 우리 유격대원들이야 목숨을 바쳐싸우는 사람들이 아니요? 저 창억이와 동호는 토지개혁을 한다니 요새 잠도 제대로 안 자오… 여보, 유격대에 인심을 후하게 써서 랑패가 없다니, 허허허…》

그는 리재명의 무릎을 주먹으로 툭 건드리고는 넌지시 눈을 흘기기까지 하였다. 그 바람에 리성림과 림성실이도 그의 호의를 바라며 빙긋이 웃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엄한 안색으로 장룡산을 돌아보시였다.

《동무는 돌아가오. 이게 어디 누가 선심을 쓰고 안 쓰고 할 문제요?》

장룡산은 여전히 반죽이 좋게 벙글거리며 목갑총을 잡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럼 믿겠습니다!》

그가 나간 다음 그이께서는 웃음어린 눈길을 문쪽에서 떼지 못하시였다.

리재명은 머리를 숙이고 한손으로 이마를 괴였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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