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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 회


제 4 장

2

《새별눈》은 아이들을 막아낼수 없었다. 한 아이에게만 장군님께 꽃다발을 올리라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유격대지휘관들과 대원들에게 골고루 꽃다발을 안겨줘야 한다고 거듭 일러두었건만 동구앞에 유격대가 나타나자 아이들은 대오의 앞에서 걸어오시는 장군님께로 왁 하고 달려갔다. 엎어진 아이를 뛰여넘으며 서로 부딪쳐 비칠거리기도 하면서 정신없이 달려갔다.

철없는 그것들은 꽃다발을 올리는것도 가맣게 잊고 장군님을 에워싸고 깡충깡충 뛰여오르며 마구 매달렸다. 이런 경사날, 이런 격동속에서 무슨 례법이며 격식이 제대로 잡히랴만 그것들이 너무 철없이 굴어 박현숙은 울상이 되여 발을 동동 굴렀다.

근거지에 남아있던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은 처음에는 길옆에 담장을 이루고 서서 목청껏 만세를 부르고 박수를 치고 목에 바줄같은 피줄을 살리며 외마디 환성을 지르면서 환호하다가 와- 달려가 대오와 한데 어울러졌다. 어른들도 아이로 되여버렸다. 그들은 유격대원들의 손을 잡아흔들고 목을 그러안고 돌아가고 번쩍 안아올리기도 하였다. 업고가자고 등을 들이미는 로인도 있다. 웃음, 눈물, 환성…

이 끓어번지는 환호속에서 장군님께서는 아이들을 한아름에 가득 안고 큰소리로 물으시였다.

《얘들아- 잘- 있었느냐? 공부랑도 제대로 하고?》

장난군얼굴의 사내아이가 버들강아지같은 코를 훌 들이끌며 우쭐해서 대답했다.

《장군님, 우리는 학교를 찾았습니다!》

《학교를?…》

《예…》

그 아이는 김진세의 손자 봉남이였다.

어느틈에 장군님의 팔곁으로 다가선 오돌차게 생긴 처녀애가 동그란 눈에 웃음을 담뿍 담고 책을 읽듯이 또박또박 끊어서 챙챙한 목소리로 묻지도 않는 말을 하였다.

《유격대가 새 병실에 나가고 구정부는 유격대자리에 갔습-니다. 우리는 구정부자리에 왔습-니다.》

《오- 그래- 잘됐다-》

장군님께서는 그 애를 덥석 안고 일어서시였다.

장군님께서 걸음을 떼시였는데도 그 애는 그이의 목을 꼭 그러안고 얼굴을 어깨에 묻은채로 내리려고 하지 않았다.

감자만 한 발끝에서 짚신이 벗겨지려고 데룽거렸다.

장군님을 따라가며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밀려가면서 박현숙은 애끊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삼녀야! 삼녀야! 그만… 그만… 내려라!》

그러나 처녀애는 장군님의 품에서 떨어지기 싫어 죽은듯이 그이의 가슴에 붙어있었다.

장군님께서는 한손으로는 처녀애를 안고 다른 손을 높이 들어 흔드시며 환호하는 군중들의 물결속을 누벼나가시였다.

봉남이는 장군님의 옷자락에 매달려 따라갔다. 그이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봉남에게 물으시였다.

《할아버지랑도 잘 계시냐?》

《옛!》 봉남이는 깡충 뛰여오르며 힘차게 대답하였다.

산꼭대기의 망원초들에서도 적위대원들이 이쪽을 향하여 총을 높이 들어 흔들기도 하고 모자를 벗어 흔들기도 했다.

장군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그들에게 손을 높이 들어 흔들어주시였다.

인민들은 부상병을 눕힌 담가를 맞들기도 하고 로획물자들을 받아메기도 하면서 대오와 한덩어리가 되여 마을쪽으로 걸어들어갔다. 받아들것이 없는 로인들과 아낙네들과 조무래기들은 길량옆에서 대오를 따라 밀려가며 웃고떠들고 만세를 불렀다. 이 열광의 흐름속에서 물면을 튕기며 날아가는 팔매돌과도 같은 충격적인 말들이 앞뒤로 날아다녔다.

《온성에까지 나가셨다우.》

《조선에?》

《경원 류다섬에두 나갔대.》

《큰 회의를 하시구 국수대접까지 받구 돌아섰다누만!》

《조선땅이 들썩했다우.》

《야-》

조국땅을 밟았다는 그 한마디에 사람들의 환호는 절정에 이르렀다. 쓰거운 타관밥을 먹으며 이날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이국의 하늘밑에 묻히기가 제일 억울했던 로인들은 온성과 경원이라는 그 두마디의 말에 눈물부터 훔치였다. 환호하는 사람들의 물결속에는 김진세며 림성실의 얼굴도 보였다. 최형준은 담가옆에서 걸으며 한쪽채를 잡아주기도 하면서 부상병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그는 셋째섬쪽에 나갔다가 거기서 유격대를 만나 내내 같이 왔던것이다. 중대와 함께 근거지에 남아있은 김창억이도 마중하러 달려나와 대오의 후미에서 오판단이를 끼고 걸어왔는데 그들의 모습이 제일 볼만하였다. 그들은 그냥 반갑고 좋아서 마주보며 껄껄 웃어대기도 하고 어깨와 잔등을 툭툭 때려주기도 하였다. 창억은 제 모자로 짝패의 얼굴에서 땀을 훔쳐주는가 하면 훨훨 부채질도 해준다.

그 모습이 대견스러워 입을 하 벌리고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김창억은 열기에 번쩍이는 눈으로 그를 돌아보며 주먹을 내흔들었다.

《〈토벌대〉놈들은 몽땅 녹아났네. 마지막번에는 냅다 공격을 들이댔지. 왜놈이라는게 속은 텡텡 빈것들이야. 줄행랑을 놓는다는데 야, 쫓아가기 뻐근하데. 그 좋은 무장을 가지구 자식들, 하하하… 몽땅 잡아치웠네!》

오판단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총도 왕청장작단으로 서너단이 될만하게 걷어왔어. 체코스나 토퉁따위는 없구 말짱 38식인데 총신이 유리구멍처럼 알른알른해서 한참 들여다보니 머리가 핑 돌더라, 하하하…》

그 소리에 오판단은 입이 딱 벌려졌다.

창억은 그사이 근거지에서 적의 《토벌》을 물리친 이야기를 하는것이다. 그가 어찌나 큰소리를 탕탕 쳤던지 오판단은 조국진군에 참가하고 돌아오는 길이면서도 부러운 눈매로 동무를 쳐다봤다.

오판단은 그의 말을 듣다말고 앞쪽을 빤히 내다봤다. 사람들의 물결속에서 아기를 업은 웬 녀인이 장군님께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리는것이 보였다.

《저게 누구야?》 하고 물으니 창억이도 턱을 쳐들사하고 그 녀인을 바라보았다.

《태평촌에서 온 녀자라는데 사흘째 부녀회장방에 묵고있어. 부녀회사업때문에 온 모양이거던.》


×


장군님께서는 근거지에 돌아와서 토지개혁준비사업부터 료해하려고 하셨으나 그 일은 뒤로 미루고 그날밤 전령병도 모르게 부녀회장방으로 찾아가 태평촌에서 온 녀자부터 조용히 만나시였다.

눈치빠른 림성실은 자리를 피하여 아래방으로 내려갔다.

그 녀자는 라자구일대에서 구국군과의 사업을 하고있는 리광의 안해였다.

그 녀자는 속이 틔지 못한 꽁해보이는 인상이나 눈은 령리하게 빛났다. 어렸을적에는 퍽 귀염성스러웠을 얼굴이다.

그 얼굴인상과는 너무나도 대조되게 크고 흙빛인 손은 그 녀자의 고된 일생을 보여주는듯싶었다.

공숙자는 그 손을 무릎밑에도 감추어보고 치마폭으로 감싸기도 하면서 묻는 말에 간신히 대답하였다. 리광이 제 얼굴이 깎일가봐 모질게 주의를 주어서 보낸 모양이다.

장군님께서는 엄마곁에서 자고있는 아기를 정겨운 눈길로 돌아보시였다. 아기는 담찬 아버지를 닮아서 오돌차게 생겼다. 그이께서는 포대기밑에서 내민 감자알만 한 발을 꼭 잡아주시였다. 그 발은 옴지락거리며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하였다.

《이녀석이 안 자는게 아닙니까?》

공숙자는 그 물으심에 대답할념도 못하고 몸을 외로 돌려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부스럭부스럭하더니 편지봉투를 꺼내서 그이앞에 내밀었다.

그이께서는 리광의 편지를 눈으로 내리읽으시였다.


김일성동지.

동두령의 오른팔격인 고참모가 반변을 제의해왔습니다. 우리에게 지원을 청원합니다. 동두령과 그의 막료들을 처단한 다음 려단을 끌고 유격근거지로 나가 우리의 항일전에 합세할 결심이라고 합니다. 닷새전에 그와 동향인 병사 여섯명이 고향으로 도주하다가 잡혀서 총살당하였는데 그 사건이 직접적인 동기로 된것 같습니다. 고참모는 동두령앞에서 자기 정체를 감추기 위하여 이때까지 우리에게 무례하게 굴었다고 하며 자기를 믿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 결론하시면 우리는 곧 행동을 개시하여 반변을 배후에서 지원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편지에서 눈길을 떼고 리광의 안해를 넘겨다보시였다. 그 녀자의 얼굴표정을 보아 편지내용을 모르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장군님께서는 편지를 호주머니에 넣으시며 다른 말을 물으시였다.

《거기서 지내기 불편하지 않습니까?》

《그럭저럭 지냅니다.》

《여기 근거지로 이사를 나오는게 어떻겠습니까?》

《장군님, 거기 있겠습니다. 큰 도움은 못돼도…》

그리고는 머리를 소곳이 숙이며 곧은 가리마를 보이였다. 남편가까이에 있으면서 따뜻한 밥 한그릇이라도 대접하고싶어하는 안해의 갸륵한 심정이 가슴뜨겁게 안겨왔다.

《예… 그렇겠습니다. 조금만 견디라고 하십시오. 이제 리광동무는 다른 동무와 교대시키겠습니다. 아마 지쳤을겝니다.》

장군님께서는 그 녀자에게 오늘밤사이에 편지를 써놓겠으니 래일아침에 가지고 떠나라고 이르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그이께서는 길에까지 바래주러 나온 림성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부녀회장동무, 아이가 큰집에 왔다가 입고왔던 옷을 그냥 입고가서야 되겠소. 어떻게 무슨 방법이 없을가?》

림성실은 그이의 심정을 인차 가늠하고 기쁨에 넘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우리한테 천이 좀 있습니다. 애기옷을 만들겠어요.》

《그런데 래일아침까지 돼야 하겠는데.》

《밤을 좀 안 자면 되지요.》

그의 대답은 언제나 선선하였다.

《고맙소.》

사령관동지께서는 몹시 피곤하시였으나 따뜻한 방에 들어가면 밀려드는 졸음에 머리가 흐려질것 같아 사령부로 돌아가지 못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마을을 벗어져나가 정신이 쩡쩡 얼어드는듯 한 공기속을 걸으시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시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신호일가?… 반변인가?… 흉계인가?…)

장학량군벌에서 반일구국의 기치를 들고 반변해나온 구국군은 지난 1년사이 거듭되는 왜놈들의 《토벌》과 기만선전 그리고 굶주림과 추위, 두령들의 횡포한 전횡으로 하여 심각한 와해과정을 걸어왔다. 그 와해과정은 구국군총사령 왕덕림이 중앙국민정부의 장개석을 만나 회담하기 위해 쏘련을 경유하여 중국관내로 들어간 후 소식이 감감해지자 더 촉진되였다. 지휘체계가 마비되여 두령들이 지방마다에서 제멋대로 놀았으며 군률이 문란해져 탈주병들이 속출하였다.

그들은 왜놈들과 싸울 대신 먹고살기 위하여 도처에서 인민들의 부락들에 불의에 달려들어 량곡과 가축들을 징발하였는데 그것은 벌써 비적들의 략탈행위와 수법과 양상에서 다른 점이 없었다. 구국군속에서는 반변하여 왜놈들에게 투항하려는 기운도 보이고 반일구국전을 포기하고 관내로 들어가버리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들에게서 공통적인것은 조선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적대감이였다. 그들은 일제의 민족리간책동에 속아넘어가 모든 불행의 화근이 조선공산주의자들에게 있는것처럼 생각하며 여기저기에서 조선사람들을 살해하는데까지 이르렀다.

구국군내부의 실태로 보아 고참모의 반변제의가 진실일수도 있고 유격대를 모해하려는 그 무슨 음흉한 술책일수도 있다.

장군님께서는 어둠속을 홀로 거니시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시였다.

(만약 진실이라면… 리광동무네가 그 반변을 지원하는것이 옳겠는가? 반변이 성공하면 우리는 구국군 몇개 탄이나 려를 얻을수 있다. 그러면 그 소문이 전 만주의 산속에 널려져있는 구국군부대들에 파급될것이다.… 조선유격대의 와해공작으로 반변이 일어났다! 그들은 우리 적이다, 구국군들은 린접부대들에 이렇게 통보하며 험악한 소문을 퍼뜨릴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구국군 1개 려를 얻고 전 구국군을 원쑤로 만들게 된다. 때문에 고참모의 반변제의가 진실이라고 해도 거기에 절대로 동조해서는 안된다. 절대로… 그러나 제의를 받았으니 대답을 해야 한다.

만약에 침묵을 지킨다면?… 고참모가 떠보기 위해서 흉계를 꾸몇다면 그 침묵에 대해서 곧 동두령에게 보고할것이다. 그러면 두령은 리광동무네를 완전히 적대적으로 대할것이며 그 결과에 어떤 사태가 빚어질지 모른다.… 리광이 먼저 동두령에게 면담을 요청하여 반변기도를 통보해준다면… 그건 또 다른 사태를 빚어낼수 있다. 흉계가 아니고 진실인 경우 고참모는 두령의 손에 처형될것이며 그의 동료들은 신의를 배반했다고 리광동무를 복수하자고들것이다. 어떻게 할것인가?… 이 아슬아슬한 국면을 무난히 빠져나갈 묘술은 없겠는가?… 우리는 당신들의 집안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이렇게 대답하면?… 그것도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 롱담으로 받아들인것으로 하고 고참모를 만나 웃으며… 리광동무는 웃어야 한다.… 로형, 요전에는 무슨 그런 롱담을 했소? 하고 웃으면 될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새벽에 박훈을 부르시여 라자구로 가서 당분간 리광의 사업을 도우라고 지시하시고는 쓰신 편지를 그에게 맡기시였다.

이른아침에 박훈은 리광의 안해를 데리고 라자구로 떠나갔다. 그들이 마을을 떠나는것을 본 사람은 밤새워 애기옷을 지은 림성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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