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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 회


제 5 장

3

다음날 오후에도 강석민기자는 취재를 계속하였다.

보충취재라고 하지만 기자가 던지는 질문은 끝이 없었다. 강석민은 세시간쯤 송금주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와 연고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아야겠다면서 고덕탄광으로 떠나갔다. 반면짜리 기사를 계획한다는 사람치고는 취재종심이 상당히 깊었다. 취재를 당하는 사람의 정신육체적피로가 어떤것인가를 처음으로 실감하였다.

오늘은 어쩐지 눕고싶은 생각만 났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방에서 대여섯시간쯤 늘어지게 자고싶었다. 입원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고 도망친 후과가 막심하였다. 퇴원후에도 어지러운 증상은 멎지 않고 이따금씩 그를 위협하였다.

송금주는 퇴근시간이 되자 분과실에서 어물거리는 교원들을 뒤에 두고 곧장 합숙으로 향하였다. 함께 퇴근하려고 정애경을 찾았으나 그는 분과실에도 없고 음악실에도 없었다. 음악실에서는 소조원들끼리 성부별로 《빨간댕기》라는 제목으로 된 가요의 기초훈련을 하고있었다. 지도교원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방안은 어쩐지 한적하고 쓸쓸한감을 주었다.

송금주가 써준 가사 《새집짓기에 우리도 한몫》에 곡을 붙여야겠다는 약속을 받고 고덕탄광문화회관에 현직작곡가를 만나러 간다면서 오후 첫시간에 합숙을 떠났는데 아직 뜻대로 일을 성사시키지 못한 모양이였다.

합숙에 돌아가보니 정애경은 거기에도 없었다. 현직작곡가가 채탄공이라더니 문화회관에서 만나지 못하고 갱까지 직발 찾아간 모양 아니면 회관에서 작곡가를 만나 제창 곡을 만들어가지고 오느라고 좀 지체하는게 아닐가. 지체하는건 좋은 징조다. 좋은 악상만 떠오르면 한시간동안에도 곡을 하나씩 만들어낼수 있는것이 작곡의 생리인즉 버티고앉아서 물건이 익을 때를 기다리느라고 지체할수도 있다.

하긴 그 악발이가 빈손으로 돌아오려고 하지 않을것이다.

현직작곡가 림시영의 재능에 대해서는 송금주도 인정하였다. 그가 작곡한 노래가 전국음악작품현상모집에서 2등으로 당선되여 고덕탄광 사람들의 경사로 된것이 한해전의 일이다. 아동가요이니 좀 생소할수는 있으나 그 재능이야 어디 가겠는가. 이제 정애경이 림시영의 재능이 스민 오선지를 들고 함박꽃같은 웃음을 담고 이 합숙에 들어선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정애경이 없는 방안은 썰렁해보인다. 약간 부산스러울사 한 그의 거동과 체취, 콕콕 쏘는듯 한 그의 말마디가 차넘칠 때라야 이 합숙에는 온기가 돌고 활력이 넘친다.

송금주는 나들이옷을 실내복으로 바꿔입고나서 도서실에 들어가 대출대장을 펼쳐보았다. 하루동안에 이 도서실에 와서 책을 빌려간 교원, 학생들과 마을주민들이 자그만치 35명이나 된다. 35명이면 학교도서실의 하루대출자수와 맞먹는 량이다. 35명중 8명은 교원사택가족들과 그 근방 사람들이다. 송금주는 그 수자에 만족하였다. 사람들이 책에 매달린다는것은 문명과 문학의 진보를 보여주며 그 대문이 넓어진다는것을 의미한다. 대출대장을 정리한 당번사서 박영실의 솜씨도 여간 알뜰하지 않다. 첫날 실적이 이만하면 대단하다.

우리 마을 도서실은 첫시작부터 독자풍년을 만난셈이다. 사이문을 열고 합숙방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벽시계가 일곱점을 친다. 여름날의 19시란 해가 지지 않을 때이다. 하건만 오늘은 류달리 시장기가 심했다. 다섯시간의 수업에 취재까지 겹치다나니 기진맥진해진것 같다.

이번 주간의 식사당번은 정애경이다. 다른날 같으면 그가 팔을 걷어붙이고 동자질을 하느라고 부뚜막앞에서 뱅글뱅글 돌아갈 때이다. 정애경이 돌아올 때까지 책이나 볼가. 송금주는 책꽂이에서 박달의 《조국은 생명보다 더 귀중하다》를 뽑아들었다.

30페지쯤 내처 읽자 눈앞이 아물거리고 눈시울이 자꾸만 내려앉았다. 요즈음은 무슨 일을 하나 이상스럽게 피로가 빨리 온다. 한번 졸도하고난 후유증일수 있다. 전등을 얼핏 쳐다보기만 해도 눈이 시그럽고 머리가 핑 돈다.

5분동안만 눈을 감고있자,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무아경에 잠겨보자, 그러면 피곤도 덜어질것이고 머리도 말쑥해질것이다. 송금주는 이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5분도 되기 전에 깊은 수면상태에 들어갔다.

그는 무명필처럼 길다란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여났다. 그다음은 너무도 질둔하고 차거운 정적에 소스라치듯 놀라 누웠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어느새 창밖이 새까매졌다. 문을 열자 밤하늘에서 바글거리던 별들이 한꺼번에 합숙방으로 쓸어드는것 같았다.

구식벽시계의 시침은 21시를 가리키고있었다.

부뚜막앞에 있어야 할 정애경은 없고 밥가마도 싸늘했다. 어떻게 된 일일가. 밤 9시까지 합숙에 돌아오지 않는것은 사변이기 전에 우선 반칙이다. 기어이 콩나물대가리농사를 마무리하고 올 작정일가.

악발이니까 그릴수도 있다. 그러나 오후 2시에 합숙방을 나간 처녀가 밤 9시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것은 비정상이다. 돌아오는 길에 가정방문이라도 하는게 아닐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거늘 이제 나를 깜짝 놀래울수 있는 어떤 소식을 가지고 새처럼 포르릉 이 방에 날아들수도 있다. 오늘은 어쨌든 내가 정애경을 대신하여 식모노릇을 하는수밖에 없다.

송금주는 행주치마를 두르고 부뚜막으로 내려갔다. 함박에 쌀을 떠서 물에 헹구려다가 무심히 가마뚜껑을 열어보았다. 이런 변이라구야. 가마안에 저녁쌀이 안쳐져있다. 몰도 맞춤히 부어 불만 때면 밥이 되게 되여있다. 칼도마우에는 두개의 생오이와 고추장단지가 놓여있고 찬장안에는 풋절이를 양념에 무친 생채 두접시가 마련되여있다. 그런즉 정애경은 합숙을 나서기 전에 저녁끼니준비를 절반 해놓은셈이다.

시간이 늦어지게 되리라는걸 미리 각오하고있었구나. 정애경은 작곡가를 만나러 가면서 장기전을 예견한게 틀림없다. 저러니까 만사가 잘 풀리고 실적도 남들보다 당연히 높아질게 아닌가. 이런 때일수록 내가 애경이를 위해 받침대구실을 잘해야지.

송금주는 잠간사이에 밥을 지어놓고 저녁상을 차리였다. 밥과 찬들을 네모상우에 올리고 베보자기를 덮었다. 그리고는 밥상앞에 마주앉아 두손으로 턱을 고이고 명상에 잠기였다.

림시영은 우리에게 분명 명곡을 선물할것이다. 애경이가 형상지도를 잘해야 할텐데 그의 성악지도는 물론 나무랄데가 별로 없다. 그런데 가수들의 무대연기가 조형화일면에 치우치고있는게 흠이다. 조형도 생활론리를 떠나면 싱거운 멋따기에 떨어진다. 제때에 귀뜀해서 고치도록 해야지.

넨장, 밥이 다 식어가는구나, 이상한걸, 이건 늦어도 너무 늦어진단 말이야, 하여간 비정상이야.

명곡에 대한 기대가 갑자기 영문모를 불안으로 바뀌여졌다. 까닭도 없이 등골이 으시시해졌다. 송금주는 외출복을 주어입고 슬렁슬렁 밖으로 나갔다. 마중이라도 가야지 그렇지 않다가는 마음이 뒤숭숭해서 견더낼것 같지 못했다. 고덕탄광 문화회관까지는 1 500m쯤 되였다.

15분만 걸으면 가닿을수 있는 거리였다.

처음에는 평보로 걷다가 100m정도 지나서부터는 속보로 걸어 단숨에 문화회관앞마당까지 가닿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회관에는 외등만 켜있고 사무실은 암전상태였다. 수위에게 영천중학교 음악교원을 보지 못했는가고 물으니 자기가 근무인계를 받은 후에는 그런 선생을 못 보았다고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가정방문밖에 없다. 낮에 현직작곡가를 만나고 련이어 가정방문길에 올랐을수도 있다. 학부형들이 저녁식사를 하라고 눌러앉혔을수도 있다.

송금주는 총총히 돌아서서 합숙으로 돌아왔다. 부엌문을 열고 들어서자 신발장부터 살펴보았다. 좀전까지 보이지 않던 정애경의 자주색 구두가 맨 웃단에 덩그렇게 놓여있었다. 그 신발을 보는 순간 긴장이 풀리고 숨이 활 나갔다. 그는 《애경이!》하고 사이문을 활 열어제꼈다. 웃방에서 《금주, 나 여기 있어.》하는 정애경의 잠에 취한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금주는 문보를 들치고 웃방에 성큼 들어섰다. 그는 눈이 퀭해서 하늘색옥양목으로 거죽을 씌운 이불속에 머리도 내밀지 않고 죽은듯이 누워있는 정애경의 형체를 불안과 의혹이 뒤섞인 착잡한 눈길로 굽어보았다.

《어떻게 된거야? 너도 빈혈이야?》

그 순간까지만 하여도 그의 마음속에는 롱질할 여유가 없었다. 정애경도 송금주의 물음에 롱으로 대답하였다.

《아- 아- 아니야, 나- 난 다혈이야.》

《어디가 아파서 그래?》

《응, 머- 머리가 조- 좀 아파.》

《어디 보자.》

송금주는 이불깃을 잡아 우로 젖히였다. 그러나 허사였다. 정애경이 두손으로 이불깃을 꼭 움켜쥐고있었던것이다. 이불밑으로 손을 밀어넣어 그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열감은 그닥 나지 않는데 이마에 땀이 축축히 배여있었다.

《음, 죽지는 않겠다. 그쯤한걸 가지구 골골해, 엄살쟁이같은게.》

《남은 골이 아파서 그러는데…》

《허튼수작말고 저녁밥이나 먹자.》

《나- 먹었어. 너 혼자서 머- 먹으렴.》

《그따위 거짓말에 속을줄 알아.》

《아- 아니야, 정말이야.》

《그럼 나두 단식이다!》

《금주, 그러지 마. 제발 빈다.》

송금주는 입을 다물었다. 식사를 못할 정도로 몸이 불편하다면 아픔이 정상수위를 넘어섰다는걸 의미한다. 열감은 없던데 편두통에라도 걸린걸가. 아니면 과도한 정신활동으로 인한 스트레스일가. 아무튼 대단히 고통스러운 상태에 있는것만은 사실이다. 그는 식탁우의 베보자기를 벗기였다. 저녁동자질을 할 때만 해도 배속에서 요동치던 식욕은 씻은듯이 가버리였다. 구수한 밥냄새마저 시큰둥해졌다. 그래도 싫은대로 거죽의 밥을 한술 떠서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밥알이 아니라 톱밥을 씹는 맛이다. 정애경을 두고 홀로 먹는 밥이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겠는가. 어떤 흥겨운 도락을 도적맞힌것 같은 을씨년스러운 심정으로 밥숟갈을 놓았다. 그대신 오이를 고추장에 찍어 한입 물고 씹었다. 그것 역시 소태맛이였다.

정애경의 참가가 없는 녀교원합숙의 생활은 생활이라고 할수 없다.

둘이서 공동으로 재미나게 엮어오던 생활의 리듬에 이상이 생기였다.

송금주는 정애경의 머리맡에 앉아 심란한 기분으로 그가 뒤집어쓰고있는 이불만 굽어보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애경의 하루동안의 행적과 행동이 수상하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가 정말로 몸에 탈이 생겼다면 숨결이 저렇게 평온하고 고르로울수 없다. 열에 떠서 씨근거릴것이고 숨결에 따라 이불도 풀떡풀떡 오르내릴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애경의 호흡은 신기할 정도로 조용하다. 오한도 나지 않는데 이불을 뒤집어쓰고 굿을 보고있다. 그는 몸고생이 아니라 마음고생을 하고있다.

무슨 고민을 하고있는지 알아보자. 송금주는 이불귀를 갑작스레 옆으로 홱 잡아젖히였다. 지구가 자전을 멈춘것 같은 충격이 그의 가슴을 힘껏 떠박질렀다. 그다음은 그 가슴에서 우박같은것이 와르르 쏟아져내리였다. 그는 아연해진 나머지 아무 말도 못하고 눈만 껌벅거리였다. 얼굴전체가 눈물범벅이 된 정애경이 공포에 질린듯 한 갈팡거리는 눈길로 자기를 쳐다보고있었기때문이였다.

《금주, 이걸 어쩌면 좋니?》

그것은 고백이 아니라 비명에 가까운 애원이였다. 마음의 금선 저쪽끝에서 충격을 안고 들리는 진심의 비장한 토로였다.

《뭐가 어쨌다는거야? 그만큼 숨박곡질을 하고 이실직고해!》

송금주는 법관처럼 뻣뻣한 어조로 을러메며 정애경의 팔을 앞으로 와락 나꾸어챘다. 정애경은 그 힘에 잠자리에서 끌려나왔다. 올방자를 틀고앉아 눈물감탕이 된 얼굴을 쳐들고 송금주를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그 크고 유혹적인 눈동자는 용기와 주저, 단호함과 수집음의 부단한 교차로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색조를 띠고 그 무엇인가를 절절하게 피력하고있었다. 하나 처녀의 요염한 입술사이로 새여나오는 말소리는 풀잎을 스치는 바람소리처럼 갸날프게 들리였다.

《금주, 나-난 상사병에 걸렸어.》

《무슨 병이라구?》

《사-상사병, 사랑병 말이야.》

《뚱딴지같은 소리, 준비동작도 없이 사랑병은 무슨 놈의 말라빠진 사랑병이야. 롱담도 분수가 있지.》

《저-정말이야.》

송금주는 정애경의 진속을 가늠하느라고 그의 눈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머루알같이 까만 동자가 까딱도 않고 그를 쳐다보고있었다. 그 눈동자는 그의 고백이 진실임을 말해주고있었다. 정애경이 사랑병에 빠지다니,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였다. 누구나 한번씩은 앓게 되여있는 홍역이지만 너무도 일찍 그리고 너무도 갑작스레 왔다는 충격때문에 정신이 얼떨떨해졌다.

《그래 너한테 비루스를 전염시킨 주인공은 누구야? 림시영이냐?》

《아니야, 그 주인공은 강석민기자야.》

그다음 송금주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였다. 잉- 하는 소리와 함께 귀가 갑자기 절벽이 되였다. 무슨 사랑이 그렇게도 고속으로 진행된단 말인가. 기자가 영천에 머무른것이 하루밖에 안된다. 그 하루동안에 생판 모르는 남녀사이에 사랑이라는 열매가 그렇게도 쉽사리 무르익다니. 이걸 믿어야 하는가 믿지 말아야 하는가. 믿자니 허풍같고 믿지 않자니 당자의 고백이 너무도 진실하고 진지하다.

내가 왜 그걸 눈치채지 못했을가, 셋이 한자리에 앉아 4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들사이에 오가는 눈길에서 수상한 방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거던, 내가 둔감해서인가, 아니면 그들이 교묘하게 감정을 감추었는가, 사랑과 가난과 기침은 감추지 못한다고 했는데.

하긴 초기의 사랑은 심장에서부터 일어나는거니까 발견 못할수도 있지.

강석민, 그 사람이라면 정애경의 짝이 된다. 만사람이 다 동경하는 평양총각, 그것만으로도 그는 훌륭한 배우자로 된다. 직업도 고상하고 재능도 넘실거리고 용모 또한 름름하고 의젓하다. 뭇처녀틀의 총애를 받을만 한 서글서글한 성격의 사나이, 소설작품에서 작가들이 온갖 기교를 다 동원하여 묘사하는 그런 류형의 쾌남아이다.

《애경이, 축하해!》

송금주는 정애경의 목을 꽉 그러안고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정애경의 눈에서 눈물이 또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그는 손등으로 눈물을 씻고나서 송금주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고마워!》

스프링만 걸친 그의 상체에서는 화독같은 열기가 내뿜기고있었다.

《네 몸이 불덩어리처럼 달아올랐구나, 사랑을 불이라고 하더니.》

정애경의 등을 쓸어보며 송금주가 말했다. 정애경은 불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응, 사랑은 불이야. 아니, 불보다 더 뜨겁고 무섭고 열광적인거야. 단 하루사이에 내 몸과 넋은 그 불에 깡그리 타버렸어. 그 불을 끌수 있는 소방차는 없을가.》

《저것 보지, 하루사이에 사랑이라는 그 괴물한테 완전히 녹아난걸. 그런데 애경이, 사랑에 빠졌다는 처녀가 아까부터 눈물은 왜 자꾸 흘려? 행복이 도를 넘으면 눈물이라는 새로운 원소를 낳는게지.》

정애경은 울먹거리며 힘들게 말을 꺼냈다.

《역에서 석민동무를 바래주는 순간부터 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 그와의 결합이 너와의 작별, 고향과의 작별을 가져오게 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자꾸…》

그는 훌쩍훌쩍 울다가 말을 이었다.

《역에서 내려와 교실에서 한시간동안 울다가 무거운 걸음으로 합숙에 들어오니 너는 없고 베보자기를 씌운 저녁밥이… 그 저녁밥을 보니 또 눈물이 터지더구나.》

송금주는 탄광문화회관에 너 마중을 갔지 뭐 하고 말하려다가 정애경이 더 가슴아파할것 같아 그만두고 그대신 그의 어깨를 철썩 갈겼다.

《이 사람 애경이,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짝을 이루는거야 누구나 다 하는 일인데 이 송금주란 인간때문에 그걸 허술히 대해서야 안되지. 그리구 이 송언니가 공화국경내에 있는 한 우리의 우정도 계속될게 아닌가.》

《우리 송언니가 제일이야.》

《야, 간지럽다. 아첨쟁이같은게.》

송금주는 자기의 목에 휘감기는 정애경의 팔을 탁 밀치고나서 방안이 떠나가게 웃어댔다. 정애경도 명랑한 목청으로 웃음을 합치였다.

밤 12시가 되자 사랑병에 걸린 처녀는 세상만사를 다 잊고 심연같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그는 자기의 어깨죽지곁에서 송금주가 다가올 작별을 생각하며 밤새껏 눈물로 볼을 적시는 모습도 보지 못하고 강석민과 함께 꿈나라의 화원에서 나비를 잡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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