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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 회


제 3 장

2

안개처럼 부옇게 흩날리는 눈발속에 묻혀있는 근거지안의 산간지대에는 괴괴한 정적이 깃들어있었다. 셋째섬과 십리평사이의 달구지길을 따라 한사람이 눈에 미끄러져 자주 비칠거리며 걸어가고있었다. 그는 나무군차림에 도끼자루와 톱자루가 삐죽 내민 꼴망태까지 진 김중권이였다.

그의 가슴팍과 다리에는 눈이 허옇게 묻었고 얼굴에서는 눈석임물이 줄줄이 흘러내렸다. 그는 얼굴을 씻을념도 못하고 막막한 생각에 잠겨 허둥허둥 걸어가고있었다.

김중권은 지금 정찰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며칠전 적통치구역의 지하조직들로부터 일제의 새 부대들이 길철령을 넘어와서 근거지를 봉쇄할 태세를 취한다는 통보가 들어왔었다. 유격대의 각 부대들은 방어에 유리한 고지들을 차지하고 전호들을 서둘러 파기 시작하였었다.

그런데 사령관동지께서는 지휘관들의 모임을 여시고 유격대가 적의 봉쇄선을 뚫고 두만강연안국경일대에로 진출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최춘국이네 중대와 각 중대들에서 선발된 10여명의 지휘관, 정치일군들로 국내진출대오를 편성하시였었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였다. 그이께서는 김중권을 따로 부르시여 근거지바깥 서남방향의 산악지대에 나가 그곳 지하조직들과 인민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적의 움직임과 두만강국경일대에로 나가는 통로를 정찰해오라는 지시를 주시였다.

김중권은 어리둥절한 마음을 수습하지 못한채 길을 떠났다. 산길에서 흔히 만날수 있는 수수한 나무군으로 변장한 그는 왕청, 백초구를 거쳐 고려령과 청구자령일대의 산간마을과 골짜기와 령길을 돌아다니며 눈을 밝혀 적정을 정찰하다가 석수촌이라는 마을에 들렸다. 그 마을의 지하조직책임자는 온성에도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였다. 김중권은 그와 물건너의 형편에 대한 이야기를 이것저것 나누다가 유격근거지에 대한 《토벌》을 앞두고 온성일대에 대한 놈들의 경계가 더욱 심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였다. 전장원은 김중권이 희생된줄 알고 유격근거지에까지 찾아왔다가 랭대를 받고 돌아갔다고 한다. 게다가 또 얼마전에는 안해까지 사망했다고 한다.

김중권은 국경일대에로의 진출을 앞두고 사령관동지께 좋지 못한 소식을 보고드릴 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부대가 국경일대에 진출하면 그곳 지하조직과의 련계밑에 움직여야 할것이다. 이러한 때에 혁명조직들이 자기 역할을 원만히 수행하지 못하는것은 이미전에 이곳에 파견되여 활동한 자신의 책임이 크다는것을 의미한다.

흩날리는 눈발은 얼굴을 선뜩선뜩 스쳤다.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눈석임물이 턱밑에 방울져 맺혔다.

단숨을 몰아쉬며 걸어가던 김중권은 뒤에서 누구인가 자기를 부르는것 같아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눈투성이가 된 사람이 허둥지둥 달려왔다. 최형준이였다.

그의 앞으로 달려온 최형준은 허연 입김을 내뿜으며 거칠게 소리쳤다.

《아니, 귀가 멨소?》

김중권은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그늘이 비낀 얼굴로 그를 빤히 바라볼뿐이다.

《정찰에 나갔다더니 벌써 돌아오오?》

김중권은 대답이 없이 손바닥으로 얼굴의 눈석임물만 훔쳐내렸다.

《부대가 빠져나갈수 있겠소?》

《동무는 어디 갔다오는 길이요?》

《서대포적위대에 나갔댔소. 장군님께서 말씀이 계셔 전투준비를 빨리 할데 대한 강연을 하고 십리평으로 가는 길이요. 돌아가면서 강연을 하오. 야단났소. 왜놈들이 봉쇄하고는 언제 달려들지 모르겠는데 적위대는 무장도 변변치 못하고 큰적과 싸워본 경험도 없지…》

최형준은 속이 달아오르는듯 숫눈을 한줌 쥐여 입에 쓸어넣었다.

《중권동무, 회령련대놈들까지 들어왔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요? 이런 때에 부대가 근거지밖으로 나간다는건 아주 위험한 일이 아니요? 좀 생각해보오. 왜놈들이 쳐들어온다면 변변치 못한 적위대나 유격대의 작은 력량으로 어떻게 막아내오. 그것도 그렇지만 중권동무, 부대가 적구로 들어간다는건 더욱 위험한 일이요. 거기는 도처에 적이고 밀정들이요. 력량을 둘로 가르지 말아야 하오. 이건… 이건… 중권동무, 나 혼자생각이 아니요. 현당의견이요! 이 시각에 정찰나갔던 동무가 책임적으로 말씀올리는게 아주 중요하오.》

김중권은 얼굴에 내려앉는 눈송이들을 한손으로 훔치고는 열기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래 동무는 나한테서 뭘 바라는게요?》

《장군님께서 옳게 결심을 내리도록… 하여간 장군님께 잘 말씀드려주오. 모든게 동무의 보고에 달려있소.》

《나는 본대로 보고해야 되오! 놈들의 경계가 비록 심해졌지만 국경일대에로 진출할수 있는 통로는 열려있소.》

그 말에 최형준의 얼굴은 어두워지고 입가에는 보일듯말듯 한 경련이 일었다.

《하… 야단났군. 중권동무, 근거지의 존망과 관련된 문제요. 유격대가 떠나간 다음 적이 달려들어 근거지가 수습 못할 위험에 빠지면 어찌오? 사람들은 동무를 원망할게요!》

김중권은 분격이 욱 치밀어올라 한순간 숨이 막히는듯 하였다.

《뭐요? 나를 원망한단 말이요? 동무네가 반유격구로 꾸리는데 일찌기 관심을 돌렸다면 이런 때 유격대가 적구로 나가지 않아도 될게란 말이요. 에익, 참…》

《그건 그렇소.》 하고 최형준은 주눅이 들어 얼굴을 숙이며 괴로움에 모대기였다.

그가 괴로와하는것을 보니 김중권은 너무 모진 말을 한것 같아 은근히 량심에 가책이 되였다. 반유격구가 일찌기 꾸려지지 못한데는 자기에게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지 않은가.

사령관동지의 파견을 받고 여기로 먼저 나온 자기가 적통치구역을 《백색구역》이라고 외면하는 사람들을 바로잡아놓고 일을 쓰게 하였더라면 지금쯤 한두 지방에라도 반유격구가 꾸려졌을지 모른다. 그랬더라면 사령관동지의 어깨에 놓여진 짐도 한결 덜어졌을것이다.

흩날리는 눈발속에서 김중권은 흐린 얼굴로 최형준이와 헤여졌다.

그가 사령부에 도착하니 장군님께서는 방에 계시지 않았다.

사령부의 생활을 돌보기로 된 림성실이 방 웃목에 앉아 바느질을 하다가 반겨 뛰여일어나 장군님께서는 어제저녁부터 유격대에 나가계신다고 말하였다.

그의 저고리앞섶에 꽂힌 바늘에서 흘러내린 실오리가 보일듯말듯 흐느적이였다. 림성실은 그를 위험한 곳에 내놓고 몹시 걱정한듯 가슴팍이며 팔소매에 맺힌 물방울들을 털어주면서 고생을 하지 않았는가고 물었다.

김중권은 대답을 안했다. 그는 웬일인지 반가운줄도 모르겠고 물기를 털어주는 살뜰한 손길도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림성실은 근심어린 눈으로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김중권은 그의 눈길을 피하여 뚝한 얼굴로 방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바느질자리에 놓여있는 낡은 행전을 보자 미간을 찌프렸다.

《사령관동지께서 치시던게요?》

《네… 끈이 떨어져서…》

《새걸 만들어올리면 안되오? 아무리 어려운들 여기에 그만한 천이야 없겠소?》

《그래서 새걸 만들어올렸어요.》

《아니, 한컬레가 아니라 대여섯컬레는 여벌로 있어야 되겠단 말이요. 사령관동지만큼 많이 걸어다니는분이 어디 있소. 그래서 대원들것 보다 먼저 헐어지고 판이 나오. 동무는 세밀하지 못하오.》

림성실은 한숨을 내쉬였다.

《아마 그런것 같아요.…》

이때 밖에서 여러 사람들의 발자욱소리가 울렸다. 입속으로 부르는 은은한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사령관동지의 음성이시였다.

바로 문밖에서 그이의 쾌활하신 음성이 높이 울렸다.

《허- 봄눈이 얼마나 좋소! 저 왜놈들만 아니면 웃도리를 훌렁 벗어던지고 한바탕 눈싸움이나 해봤으면 좋겠소, 허허허… 최춘국동무, 아이적에 눈싸움을 좀 해봤소?》

《예…》 침울한 대답소리이다.

김중권이와 림성실은 꼿꼿이 일어서서 옷매무시를 바로잡으며 근심스럽게 마주보았다. 방안에는 벌써 신선한 기운이 차넘치는듯 하였다.

방문이 열리며 김일성동지께서 들어오시였다.

그이의 온몸에는 생기와 열정이 넘치였다. 머리칼이며 어깨에서 녹고있는 눈송이들은 젊음이 넘치는 안색이며 눈정기를 더욱 돋우는듯 하였다.

그이께서는 경례를 붙이는 김중권을 보자 기쁨에 넘쳐 크게 말씀하시였다.

《중권동무, 벌써 왔소?》

그러시고는 그의 손을 뜨겁게 잡으시였다.

《그래 어떻소? 뚫고나갈만 한 통로가 있소?》

김중권이 정찰결과를 보고하기 시작하자 그이께서는 야전가방에서 지도를 꺼내시여 탁자우에 펴놓으시고 고려령을 가리켜주시였다.

《여기가 고려령이요.》

《고려령일대에는 적의 움직임이 거의 없습니다. 적은 왕청과 백초구에 〈토벌〉지휘부들을 두고 그 주변의 농촌들에서 숙영준비를 하고있습니다. 우리 근거지주변의 산간마을들에는 놈들의 기마정찰들이 싸다니고있습니다. 여기 지형이 생소해서 라침판을 꺼내놓고 방향판정하는 놈들을 길에서 자주 만났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의 보고를 들으시고는 매우 만족해하시였다.

《수고했소. 우리가 예견했던대로요. 고려령 서남단을 넘어 국경지대로 진출해야 하겠소!》

김중권은 그이의 뒤에 서있는 한흥권이와 최춘국, 장룡산의 얼굴들을 곁눈으로 훔쳐보았다. 그들의 얼굴 한구석에도 우려의 그늘이 비껴있었다.

최춘국은 얼마전까지만도 반유격구창설문제로 석현에서 활동하다가 장군님께서 유격구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돌아왔기때문에 적통치구역의 실태를 어느 정도 알고있었다.

그래서 감출수 없는 불안을 안고 김중권을 뚫어지게 건너다보았다. 김중권이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최춘국의 눈에서는 섬광과도 같은 빛이 펑끗거렸다. 김중권이 그 뜻을 깨달은듯 저도모르게 입을 열었다.

《사령관동지!》

사령관동지께서는 미소를 거두시고 의아하신 안색으로 그를 쳐다보시였다.

《무슨 일이 있었소?》

《오다가 최형준동무를 만났습니다.》

《최형준이를?…》

김중권은 그가 표시한 우려를 그대로 말씀올렸다.

《중권동무,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우려하고있소. 큰 적을 앞에 두고 력량을 둘로 가르는건 위험한 일이요. 위험한건 사실이요.… 그러면 어떻게 하겠소? 피동에 빠져 방어만 한다는건 패배의 함정에 스스로 빠져들어가는것이요. 이건 또 적들이 바라는것이요. 설사 위험하다 하더라도 빨리… 한시라도 빨리 적통치구역으로 달려나가 넓은 지역에 반유격구를 꾸려야 하오. 이건 군사적인 측면이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봐도 그렇소. 놈들은 근거지를 군사적으로 포위할뿐아니라 경제적으로 완전히 봉쇄하려고 접어드오. 경제적으로 봉쇄되면 근거지를 어떻게 유지하오? 숱한 인민들이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고 살아가오? 내가 알아본데 의하면 여기 마촌에서만도 지난 가을 소금이 없어 김치를 담그지 못한 집이 여러 집이요. 놈들은 근거지에 소금이 들어가는걸 막기 위해 염치관이란걸 국경일대와 근거지주변 도처에 설치했소. 사람이 살아가자면 소금도 있고 바늘도 있고 실도 있고 다 있어야 되오.… 놈들의 경제봉쇄선을 뚫고 후방물자를 보급받을수 있는 믿음직한 통로를 개척하자고 해도 빨리… 한시빨리 반유격구를 꾸려야 하오. 이건 어느 누구의 주관적욕망이 아니요. 정세의 절박한 요구요. 근거지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구요.

거의 모든 동무들이 우리가 국경일대로 진출하는것을 우려하고있소. 그건 다 진심에서 나오는 우려고 그럴만 한 근거도 충분하오. 그러나 개중에는 우려의 외피속에 그릇된 사상관점으로부터 절대 반대를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소.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근거지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그 어떤 지지성원도 받지 못하고 고립되거나 사처에서 득실거리는 밀정들한테 걸려들어 참혹한 손실을 보리라고 믿고있소. 그런 사람들은 적통치구역인민들을 량면파군중이라고 보고 믿지 않는데로부터 그렇게 생각하오. 이건 아주 위험한 사상이요.》

김중권은 머리를 숙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다른 지휘관들을 둘러보시였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부드러운 말로 우려를 표시하지만 속으로는 1국1당제원칙을 위반하는 민족주의적경향이라는 말을 들을가봐 겁을 먹은데로부터 반대의사를 고집하고있소. 동무들의 우려가 그들에게 장단을 맞추는것으로 돼서야 되겠소? 우리가 이번에 국경일대로 진출하는건 이건 다른 의미에서는 쏘베트좌경로선의 후과를 가시는 로선투쟁의 연장이기도 하오. 지금은 반대하는 사람들도 후날 반유격구가 은을 내게 되면 우리가 얼마나 옳았는가를 깨닫게 되리라고 믿소.》

지휘관들의 얼굴에는 심각한 결심이 어리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다시 지도를 짚으시며 두만강국경지대에로의 진출로를 확정하시였다. 가느다란 붉은선이 고려령의 서남단을 가로질러 청구자령을 넘어 두만강기슭의 한 촌락에 가닿았다.

《여기로 해서 빠져나갑시다. 동무들, 너무 우려할건 없소. 적구로 나가면 인민들이 우리를 열렬히 환영하며 적극 도와나설게요. 거기에는 우리가 이미 파견한 공작원들도 있고 지하조직도 있소.》

김중권은 여기에서 더 참지 못하고 온성일대의 지하조직들이 애로를 겪고있는데 대하여 말씀드렸다.

방안공기는 무거웠다. 온성일대에는 사령관동지께서 유격대를 창건하시기 전부터 품들여 키워온 혁명조직들이 있다. 근거지에 찾아왔다가 밀정으로 몰려 랭대를 받았다는 전장원은 그이께서 직접 온성지구 첫 당조직성원으로 받아주신 핵심성원이다. 그동안 륙읍지대에 대한 놈들의 탄압과 경계가 심해진데다가 유격근거지에서 실시된 좌경적인 로선으로 하여 적통치구역의 혁명조직들도 심히 약화되였다.

김중권은 이 모든 손실이 자기의 불찰에서 생긴것 같아 머리를 떨구었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뙤창쪽에 돌아서신채로 조용히 물으시였다.

《전장원동무는 지금 어떻게 하고있다오?》

《그 동무는 지금 고초를 좀 겪는것 같습니다. 그가 근거지쪽에 다녀온것이 탄로되여 순사놈들이 집에 달려들어 수색을 하고 악착하게 심문도 하다가 얼마전에는 그가 세운 학교에 불까지 질렀다고 합니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그 동무의 안해는 해산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답니다. 온성지구의 다른 조직들도 놈들의 탄압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고 지하로 깊이 숨어들어간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괴로운 안색으로 한동안 침묵에 잠겨계시다가 말씀하시였다.

《전장원동무는 룡정동흥중학교 중퇴생인데 가정사정으로 공부를 계속할수 없어 온성철도공사장에 나가 일하다가 길회선철도부설공사에 참가했던 로동자들로부터 혁명적영향을 받은 동무요.

그 동무에게 면장을 하는 친척이 있는데 그때문에 일부 동무들은 그를 당조직에 받아들이는것을 꺼려했지. 그러나 우리는 그를 믿고 그에게 적통치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혁명적인 영향을 주어 우리 일을 도와나설수 있게 해보라고 과업을 주었댔소. 그런데 그 일도 잘 안되는 모양이구만.…

온성일대의 혁명조직들을 복구하고 국내인민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측면에서도 이번 원정은 꼭 단행해야 하오.》

순간 장군님의 안광에 무엇인가 단호한 빛이 번쩍이였다.

《이번 출정대는 내가 인솔하겠소.…》

조용하나 철석같은 결심이 어린 그이의 음성이 방안에 가득차서 울렸다.

그이께서는 놀라워하는 지휘관들의 옆을 지나 밖으로 나가시였다.

우뢰가 지나간 뒤의 적막과도 같은 고요가 방안에 흘렀다. 제자리들에 바위돌로 굳어진듯 까딱 움직이지 않고 서있는 한흥권이와 최춘국, 장룡산은 난감한 얼굴로 김중권을 바라보았다. 모두 그이의 신변이 우려되여서였다.

김중권은 가슴이 무거워졌다. 그는 자기의 보고가 이런 결과를 가져오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는 장군님의 뒤를 따라 황황히 밖으로 나갔다.

장군님께서는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마당가에 서서 먼 두만강쪽하늘을 바라보고계시였다.

김중권은 그이의 곁으로 조용히 다가서서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저희들이 먼저 나가서 활동지역을 개척한 다음 사령관동지께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이께서는 그 말을 전혀 못 들으신듯 두만강쪽하늘만 바라보시다가 이윽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이렇게 물으시였다.

《봄눈이 내리는걸 보오. 이제 좀 있으면 두만강얼음이 풀리겠지?》

《예…》

김중권은 억이 막혀 목소리가 더 나가지 않았다. 그는 난감해진 얼굴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넓이와 높이를 가늠할수 없는 아득한 재빛공간에서는 수억만개로 헤아려지는 눈송이들이 아물아물 날아돌며 떨어져내려와 그의 얼굴을 선뜩선뜩 적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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