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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7 회


제 4 장

9

김동주는 벌써 며칠째 짝패들과 함께 이 뜨락에 와서 과외로동을 한다. 그가 우리 마을 도서실앞뜰에 야외열람실을 꾸리자고 발기해나선것이 바로 닷새전 일이다.

설계는 김동주와 고철룡, 장일남 셋이서 공동으로 하였다. 우선 앞뜰에 오리대로 울타리를 쳐서 우리 마을 도서실을 교원사택의 다른 집들과 차단하고 그 울타리안에 탁자와 의자들을 만들어놓는다는것이였다. 그후 고철룡이 도서실뜨락에 자갈을 깔자는 안을 내놓았고 야외열람실 한복판에 천리마조각품을 만들어세우자는 장일남의 혁신적인 안까지 나와 설계는 흐뭇할 정도로 완벽한것으로 되였다.

셋이서 소문도 없이 조용히 시작한 일을 미구에 우리 마을 도서실에 드나드는 열람자들이 알게 되고 그들을 통하여 온 학교가 다 알게 되였다.

맨 처음으로 공사장에 나타난것은 정애경의 지도를 받는 녀성중창조 학생들이였다. 그들은 두패로 갈라져 울타리에 회칠을 하였다.

김동주네 학급의 열성독자들은 목도와 들것을 가지고 화대천 강바닥에 가서 앞뜰에 깔 자갈들을 날라왔다. 여기에 우리 마을 도서실의 어린 사서들과 장철갑이 휘동해가지고 다니는 상급학년의 롱구선수들도 합세하였다.

어제는 최창화와 엄호철이 손수레에 널판자와 각재들을 싣고와서 열람자들이 야외에서 사용하게 될 장의자 2개를 조립해놓고 갔다.

김동주는 지금 우리 마을 도서실옆구리의 공지에서 고철룡과 함께 삼합토반죽을 하고있다. 삼합토란 진흙과 모래, 회가루의 혼합물이다. 이 혼합물이 있어야 천리마조각품도 만들어낼수 있다. 오늘의 기술고문은 장일남이다. 그는 목각에도 뛰여났지만 그만 못지 않게 흙공예에도 놀라운 솜씨를 가지고있었다.

《일남아, 이쯤하면 반죽이 잘되지 않았니?》

고철룡이 삼합토반죽덩어리에서 손을 떼며 하는 말이다. 장일남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 덩어리에서 흙을 한줌 뜯어 손가락짬에 넣고 만지작거리며 한참동안 그 질감을 가늠해보았다. 그러다가 고개를 기웃해보이였다.

《아직은 점토질성분이 너무 강해.》

그는 나무주걱으로 소랭이안의 회가루를 듬뿍 떠서 그것을 삼합토반죽에 골고루 섞기 시작했다. 김동주와 고철룡은 묵묵히 그의 거동을 지켜보기만 하였다. 장일남이 옳다면 옳은것이고 장일남이 그르다면 그른것이다. 이런 일에서는 그를 따를만 한 인물이 없다. 설사 그가 콩을 팥이라고 해도 두 조수는 곧이들을판이다.

장일남은 먼저 나무로 천리마모형을 만들고 그것을 모델로 하여 삼합토로 된 천리마를 빚으려고 하였다. 그는 사흘품을 들여 목각모형을 만들었다. 그 모형이 지금 긴의자우에 놓여있다.

《반죽을 그만 이기려무나.》

고철룡이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 또 재촉하는 말이였다.

《아직 10분쯤은 더 이겨야 해.》

장일남은 거꾸로 뒤집어놓은 법랑소랭이우에 엉치를 붙이고앉아 여유작작하게 반죽덩어리를 주물러댔다. 왼쪽것을 뜯어 오른쪽에 붙이고 안쪽것을 뜯어 바깥쪽에 붙이는 식으로 손바닥우에서 반죽덩어리를 쉬임없이 굴리며 세 성분의 흙들이 고루고루 섞이게 하였다. 그의 얼굴과 목덜미에서는 비지땀이 빠질빠질 돋았다.

《일남아, 반죽이 너무 굳은것 같구나. 물을 좀 쳐야 하지 않을가?》

장일남의 끈끈한 손동작을 인내성있게 지켜보던 김동주가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아니야, 정상이야. 이보다 물기가 더 많으면 조각품이 틀수 있어.》

장일남은 이번에도 짝패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는 조각이 요구하는 기술지표들과 수치들을 완강하게 고수하였다. 김동주는 속에서 불이 일 지경으로 갑갑증이 났으나 꾹 참고 그가 선언한 10분이 건들바람처럼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10분이 지나야 장일남의 조각솜씨를 구경할수 있을게 아닌가. 그는 장일남의 손끝에서 일어나게 될 귀신같은 조화를 한시바삐 보고싶었다. 무료감에 시달릴대로 시달린 고철룡은 바지주머니에 두손을 지르고 짝패들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가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래도 장일남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한참후에야 그는 반죽덩어리로 모형을 빚기 시작하였다. 잠간사이에 형체가 잡히였다. 단필로 물체의 몰골을 손쉽게 표현하는 화가와도 같이 서른번안팎의 손놀림으로 말의 머리와 몸체, 날개, 다리, 꼬리를 만들어냈다. 그 신묘한 솜씨에 깜짝 놀란 고철룡은 휘파람소리를 급히 씹어삼키였다.

《거 정말 대단한데!》

눈을 흡뜨고 장일남의 어깨너머로 틀거리가 점점 더 선명하게 잡혀가는 모형을 굽어보았다. 김동주도 감탄과 부러움이 섞인 심정으로 침을 꼴깍 삼키였다. 아까는 갑갑증을 참지 못해 침을 삼켰다면 이번에는 리유가 180도로 급전하였다.

《일남이손은 정말 보배손이야!》

그는 긴의자앞에 다가가 거기에 놓은 고뿌를 집어들고 사이다를 따라 장일남에게 내밀었다.

장일남은 고뿌가생이에 입을 대고 거품이 이는 사이다를 꿀꺽꿀꺽 마시였다. 그리고는 가죽케스에서 규격이 서로 다른 세개의 조각용칼을 꺼내여 본격적인 형상작업에 달라붙었다.

《그렇게 자꾸 비행기만 태우다가는 천리마가 백리마로 되겠다. 이런 땐 말이야 칭찬보다 비평이 더 필요해.》

그가 머리도 쳐들지 않고 어른스럽게 튕겨주는 말이였다.

김동주는 딱- 소리가 나게 손가락끝으로 장일남의 이마를 튀기였다.

《넌 잠자코 있어. 칭찬도 우리 권리고 비평도 우리 권리야.》

그날 장일남은 천리마조각품을 완성하였다. 앞다리를 쳐든 적동색의 날개달린 준마가 긴의자우에 놓이였다. 이제 열람실 한복판에 대돌을 세우고 그우에 천리마를 설치하면 된다.

셋은 흐뭇한 심정으로 땅바닥에 퍼더버리고앉아 한담을 나누었다.

김동주는 한담에 끼여들면서도 금주선생이 우리가 하는 일을 알게 되면 뭐라고 하실가 하는 한가지 생각만 줄곧 하였다. 아직은 누구도 선생에게 야외열람실에 대한 소식을 귀뜀하지 않았다. 그런 소식만 들으면 선생이 치료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당장 병원에서 뛰쳐나올수 있기때문이였다.

우리 마을 도서실사서들도 문병을 하느라고 병원에 뻔질나게 드나들었지만 입을 함부로 나불거리지 않았다. 모두가 공모라도 한것처럼 철통같이 비밀을 지키였다. 김영찬도 정애경도 최창화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보니 조각이라는것도 헐치 않은 일이구나.》

고철룡은 줄땀을 뻘뻘 흘리는 장일남의 모습을 보고 연방 혀를 차다가 드레박과 소랭이를 들고 우물가로 터벌터벌 걸어갔다. 물을 한소랭이 떠다가 세면비누까지 받쳐 장일남에게 섬기며 너스레를 떨었다.

《도련님, 어서 세면을 하시고 집에 가서 푹 쉬시오이다.》

장일남은 소랭이에 손을 잠겼다 뽑아들고 손가락들을 차례로 튕겨 고철룡의 얼굴에 물방울세례를 안기고는 푸푸 소리를 내며 세면을 하였다. 노염을 잘 타던 고약한 성미가 요 몇달째는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갱견학을 갈 때 병신흉내를 내던 일이 언제 있었던가싶게 그 주인공인 고철룡과도 단짝이 되였고 뚱뚱보 오장수와의 랭전관계도 허물어버리였다.

로동의 뒤끝에 오는 휴식이란 참으로 달콤하다. 게다가 오늘은 만가지 시름을 다 파묻어두게 되는 일요일이다. 날씨가 쾌청한데다가 교원 사택마을의 공기도 여간 호젓하지 않았다.

세 소년이 한담을 하는 사이에도 우리 마을 도서실로는 책에 미친 애독자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이 도서실에는 쉬는 날이라는것이 따로없다. 패쪽은 만들어놓았지만 한번도 걸어보지 못했다는것이 어린 사서들의 고백이다.

정오경에는 학교롱구주장인 장철갑이 옆구리에 《등에》를 끼고 흔들흔들 도서실 앞마당에 나타났다.

《아, 친구들!》

그는 손바닥으로 김동주와 고철룡의 손바닥을 짝짝 소리가 나게 마주치며 수선을 떨었다. 그도 롱구시합이 있은 후부터는 거만한 선배로부터 다정한 선배로 되였다. 김동주와 고철룡도 시합을 한번 하고난 후부터는 그를 형이라고 깍듯이 대하였다. 요새는 형이 우리 마을 도서실의 열성독자가 되였다. 처음에는 롱구와 관련한 참고서적을 찾더니 《죽음의 축구시합》이라는 도서를 본 다음부터는 사흘에 한번씩 도서실을 찾는 책미치광이가 되였다. 며칠전에 그는 자기 팀 선수들을 데리고 병원에 찾아가 송금주선생면회도 하였다.

지내놓고보면 나쁜 사람이라는것이 별로 없다. 롱구시합이 있은 다음날 장철갑은 공설운동장에서 김동주와 고철룡이 내가에 처박았던 자전거를 가지고나와 해가 질 때까지 그들에게 자전거훈련을 시키였다.

두 소년 다 사흘을 훈련하고나자 남들의 부축을 받지 않고도 능란하게 자전거를 다룰수 있게 되였다.

장철갑은 김동주와 고철룡이 자전거를 타고 공설운동장을 다섯바퀴씩 무사히 도는것을 보고서야 그들에게 합격을 매기였다.

《형님, 그러다 문학가가 되지 않겠나.》

김동주가 장철갑의 옆구리에 끼인 《등에》를 뽑아들고 책장들을 후르륵 번지며 시까슬렀다.

《문학가? 될수도 있지 뭐. 저 유럽쪽엔 감옥살이를 하면서 장편소설을 하나 써낸 작가도 있다는데.》

《형두 참, 유럽에까지 갈거 있어. 그런 작가는 우리 나라에도 있어. 리기영선생 말이야, 금주선생님이 그러는데 〈인간수업〉이란 장편소설은 그 선생이 감옥에서 말짱 구상하고 쓴거라지 않아.》

《가만, 도서실마당이 천지개벽을 했구나.》

장철갑은 바지주머니에 두손을 찌른채 자갈이 깔린 야외열람실바닥을 산책이라도 하듯이 이리저리 거닐며 연방 탄성을 내질렀다.

《대단한데! 금주선생님이 참 똑똑한 제자들을 뒀거던. 난 똑똑한 동생들을 두구. 이런!》

그는 천리마조각품앞에서 걸음을 못박아세우고 장일남이 만들어낸 창조물을 홀린듯이 감상하였다.

《철갑형, 우리 일남의 솜씨가 어때?》

김동주가 넌지시 묻는 말이였다.

《솜씨? 이건 솜씨라기보다 굉장한 재능이야.》

장철갑은 이런 말을 하고나서 김동주에게 느닷없이 물었다.

《대돌은 준비됐니?》

《응.》

김동주는 도서실 왼쪽공지 동발우에 놓여있는 나무형타속에 혼합물을 넣어 만든 대돌앞으로 장철갑을 끌고갔다. 그는 이번에도 장철갑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오게 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장철갑은 단마디로 《불합격이야.》하고 찬물을 끼얹었다.

그리고는 무슨 불만을 표시할 때면 늘 그러듯이 이새로 찍- 하고 침을 내쏘며 빈정거리였다.

《콩크리트로 대돌을 만들다니 참, 이건 너무 초라해.》

세 소년은 그만 풀이 죽어서 장철갑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그럼 뭘루 대돌을 해야 하나?》

장일남이 락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가만, 내 얼른 책을 바치고 나올게.》

장철갑은 대답대신 우리 마을 도서실안으로 뿌르르 달려들어가 한설야의 장편소설 《력사》를 대출해가지고 몹시 우쭐거리는듯 한 걸음걸이로 흔들흔들 세 소년앞에 다시 나타났다.

《이제 재덕산이 너희들을 도와줄거야.》하고 그는 의미심장한 어조로 수수께끼같은 말을 하였다.

《재덕산이 도와주다니?》

세 소년은 아까처럼 또 장철갑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장철갑은 답답하다는듯이 입을 쩝쩝 다시였다.

《재덕산이라고 까밝혔으니까 절반대답은 한셈인데 그래도 모르겠어?》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렇게 빙빙 에돌지 말구 직판 말해주려무나.》

고철룡이 감질을 참지 못하고 증이 나서 말했다. 장철갑은 어림도 없다는듯이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이건 사실 공짜로 넘겨주기는 아까운 비밀이야. 너희들이 내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약속만 하면 그 비밀을 당장 대주지.》

《무슨 부탁인데?》

고철룡이 물었다.

《〈력사〉독후감을 써달라는거야. 요전날 병원에 면회하러 가니까 금주선생님이 나한테 그런 임무를 주는게 아니겠어. 그런데 난 감상문이라면 꼼짝 못하거던.》

고철룡은 그제서야 미심쩍은 표정을 풀고 희색이 만면해서 장담했다.

《철갑형, 그런 부탁이라면 걱정 안해도 돼. 그건 동주한테 맡겨두 돼.》

《그래?! 그럼 동주를 믿고 발편잠을 자볼가.》

김동주는 난처해서 머리를 긁적거리였다. 송금주선생이 알게 되면 톡톡히 망신을 당할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딴 아이들이 그런 부탁을 했다면 단박에 입총을 쏘아 범접도 못하게 했을것이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장철갑이한테만은 그런 입침을 빼들게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싶은 충동까지 생기였다. 사람의 본색이 고와보이면 버드렁이도 고와보이고 곰보딱지에도 정이 푹푹 박힌다고 하지 않았던가.

《철갑형, 내가 한장 써주겠는데 그걸 형이 자기식으로 다듬어가지고 바쳐야 해.》

《그런것쯤은 나도 알아.》

장철갑은 눈웃음을 지으며 김동주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그리고는 큰 고역이라도 치르고난것처럼 장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두루거리로 이렇게 물었다.

《너희들 월장석이라는 돌을 구경한적이 있니?》

세 소년 다 구경한적이 없다고 도리머리를 하였다. 장철갑은 입을 쩝쩝 다시였다.

《참 한심두 하다. 월장석도 모르면서 어떻게 영천을 사랑한다고 말할수 있니. 그건 재덕산에서 나는 고급석재야. 팥죽색바탕에 비취색구슬알갱이들이 다문다문 박혀있는 멋진 돌인데 수요가 굉장히 높다누나. 수도에까지 실어보낸다지 않아. 천리마를 세울 대돌이라면 적어도 그쯤은 돼야지. 난 월장석 모아둔데를 잘 알아.》

《건 어디게?》

세 소년이 일제히 물었다.

《만호덕 5호부락이야.》

그 말을 듣자 김동주는 혼자소리로 중얼거리였다.

《만삼아저씨 신세를 또 져야겠구나.》

귀가 밝은 장철갑은 어느새 그의 속생각을 알아차리고 손으로 타임신호를 해보이였다.

《동주, 건 안돼. 거기엔 자동차길이 없어.》

《그럼 등짐으로 월장석을 날라야겠구나.》

고철룡이 하는 말에 장일남이 발을 달았다.

《등짐이라니? 거기가 얼마나 멀게…》

장철갑은 두 소년이 방금 한 말을 멀리로 날려보내기라도 할것처럼 두손을 홰홰 내저었다.

《멀다구 걱정할건 없어.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그는 장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김동주와 고철룡의 어깨에 손을 하나씩 얹고 기세가 도도해서 말했다.

《동주하고 철룡인 래일부터 나하구 같이 자전거행군으로 월장석을 나르자. 자전거는 자체해결이다. 어때?》

김동주는 자전거행군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무작정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고철룡도 《거 참 멋진 생각인데!》하고 입안의 소리로 중얼거리였다. 이런 경우를 당하자고 자전거훈련에 그토록 열을 냈던가. 한번도 써먹어보지 못하고 묵여둘번 했던 재간이 마침내 은을 내게 됐다.

문제는 자전거다. 영천중학교에서 자전거를 가지고있는 학생이란 장철갑이밖에 없다.

김동주가 잘 아는 사람들가운데는 김영찬선생과 아간장에서 읍으로 통근하는 군영화관의 고수머리 영사기술원 박주철이한테 자전거가 있다. 그 자전거들을 빌려달라고 하자. 사연을 터놓고 떼를 쓰면 거절하지는 않을것이다. 나는 교무주임선생의것을 빌리고 철룡이는 영사기술원한테 보내자.

김동주는 그달음으로 김영찬선생한테 찾아가 자전거를 빌려왔다. 고철룡도 영사기술원을 구슬리는데 성공하였다.

다음날 세 소년은 공설운동장에서 출정식을 가지였다. 그 《출정식》이란 김동주와 고철룡이 자전거로 먼거리를 다녀올수 있는가 하는것을 검증하는 일종의 시연같은것이였다. 장철갑은 두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공설운동장 둘레를 10바퀴 도는것을 보고서야 그들에게 출발구령을 내리였다.

운동장을 빠져나간 세 소년은 자전거를 타고 종대대형으로 길게 늘어진 읍거리를 보란듯이 달리였다. 영천과 같이 자그마한 고장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거들먹거리는것도 하나의 행세거리였다. 김동주는 온 거리가 자기네 일행을 지켜보는것만 같아 공연히 으쓱해서 발바닥이 화끈화끈해지게 베달을 밟아댔다.

그래도 10살때부터 자전거기술을 익혔다는 장철갑의 솜씨가 다르기는 달랐다. 그는 경기장에 나선 직업선수들처럼 허리를 조종간쪽으로 잔뜩 까부리고 빠른 속도로 자전거를 몰아갔다. 그러면서도 이따금씩 고개를 돌려 뒤따르는 두 하급생에게 칭찬도 하고 잔소리도 하면서 속도를 조절하였다.

《전속력으로!》

장철갑이 선두에서 이렇게 고동을 울리면 김동주와 고철룡도 그 메아리인양 동시에 《전속력으로!》 하고 소리치면서 질풍같이 앞으로 내달리였다. 심장에서도 귀전에서도 팔다리에서도 온몸과 넋을 들뜨게 하는 미친듯한 격류가 일었다. 김동주는 그 격류에 몸과 마음을 깡그리 내맡기고 빠른 속도로 베달을 돌리였다.

일행은 고덕탄광구내를 지나자 자전거에서 내려 물매가 급한 만호덕 비탈에 올랐다. 여기서부터는 월장석이 쌓여있다는 5호부락막바지까지 오불꼬불한 달구지길을 따라 자전거를 밀면서 가야 했다.

《야, 이거 감상문 한장값이 너무 비싸구나.》

장철갑이 반소매자락으로 얼굴과 목덜미에 번질거리는 땀을 씻으며 지쳐서 당장 쓰러질것 같은 기색으로 두다리를 흐물떡흐물떡 우습강스럽게 접었다폈다하였다. 그런 다음 한쪽눈을 쪼프리고 물었다.

《어때, 힘들지?》

《응, 힘들어.》

김동주의 대답이였다.

《힘들어도 참아야 해. 힘든걸 이겨내면서 사는게 락이라고 했어. 아무런 고난과 장애도 없이 얼음에 베아링을 굴리듯이 슬렁슬렁 호강스럽게만 살아간다면 거기에 무슨 보람이 있고 즐거움이 있겠나 말이야.》

《철갑형은 딱 꼬르챠낀처럼 말하는구나.》

《나라고 꼬르챠낀처럼 못산다는 법이야 없지. 우리 나라엔 꼬르챠낀보다 더 용감하고 헌신적인 인물들이 많아. …》

《형도 그럼 학교를 졸업한 다음 철도공사장에 갈래?》

《아니, 난 채탄공이 되겠어. 공훈탄부가 되는게 내 리상이야. 내가 이제 공훈탄부가 되였다는 소식을 들으면 너희들이 제일먼저 뛰여와서 나에게 꽃다발을 안겨야 해.》

그들은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5호부락막바지의 월장석무지곁에 이르렀다. 한주일전에 롱구선수를 데리고 재덕산성구경을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보던 그 돌무지가 틀림없었다. 월장석더미옆에는 빈달구지 한대가 서있었다.

세 소년이 뻗치개를 내려 자전거를 세우고 뒤꽁무니의 보조좌석에서 월장석을 넣을 마대와 노끈과 바오래기들을 내리느라고 법석대는 사이 그 더미뒤에서 달구지임자인듯 한 로인이 움쭉 일어나 소년들의 동정을 지켜보았다. 언제인가 명절날 주석단에서 본적이 있는 낯익은 얼굴이였다. 이름을 뭐라고 했던지 기억이 삭막하나 읍협동농장에서 모범농민으로 떠받들리던 로인이라는것만은 확실한것 같았다.

《최공수할아버지야.》

김동주가 로인의 이름을 생각하느라고 눈을 슴뻑거리고있을 때 장철갑이 그의 귀전에 대고 속살거리였다.

《저 할아버지의 손녀가 바로 중창조에 있는 최영옥이라는 애야. 지금은 부대로력으로 일하지만 몇해전까지만 해도 알곡수매를 잘 해서 이름을 날렸지. 전쟁때는 애국미헌납도 하구.》

장철갑은 인물백과라고 할만치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사람을 알아도 립체적으로 꿰들고있었다.

최공수로인도 소년들의 얼굴이 낯익어서 그러는지 입가와 눈언저리에 다정한 표정을 그리고있었다. 굴뚝같은 마라초끝에서 구름타래처럼 물씬물씬 피여오르는 담배연기가 로인의 푸수한 인정미를 말해주는것 같아 김동주는 저도 모르게 말을 건네였다.

《할아버지도 월장석을 실으러 오셨나요?》

《그럼, 월장석 실으러 왔지.》

《읍농장에서도 무슨 건설을 하나요?》

《도서실을 짓는단다.》

로인의 주름진 눈가에는 알릴락말락한 웃음기가 스쳐지나갔다. 김동주는 도서실이라는 말에 입을 딱 벌리였다.

《월장석으로 도서실을 지으면 굉장히 멋있겠는데…》

《월장석은 도서실 앞마당에 장치할 천리마조각품대돌을 쌓는데 쓰자는거다.》

《대돌이라구요?!》

세 소년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나온 탄성이였다. 셋은 그 말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 몰라 눈들만 깜빡거리였다. 로인은 그제사 요술할아버지와 같은 표정을 형클어뜨리며 웃음을 탁 터치였다.

《귀들이 항아리만 하구나. 도서실을 짓는다는건 심심풀이삼아 한번 해본 소리고… 사실은 우리 마을 도서실때문에 좋은 일을 한다는 너희들을 돕고싶어 우차를 끌고온거다. 어제 5호담당구역 선전사업때문에 우리 집에 왔던 교무주임선생이 우리 마을 도서실자랑을 한바탕 하다가 너희들이 월장석때문에 자전거를 끌고 만호덕으로 간다질 않겠니. 그래서 내가 자청해나섰지. 자전거를 가지고서야 그 무거운 월장석을 몇개나 나르겠나요, 우리 영옥이도 그 도서실 신세를 많이 지는데 내가 그 값을 갚는셈치고 애들을 도우렵니다라고 했더니 교무주임선생도 더 만류하지 못하더구나. 자, 그럼 어서들 돌을 실어라.》

로인이 이렇게 말했지만 큰 충격을 받은 세 소년은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한참동안 말뚝처럼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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