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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 회


제 2 장

7

눈에 묻힌 마을과 마을들은 며칠째 계속되는 쏘베트의 시책에 대한 토론으로 들썩거렸다.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에 의하여 각계각층의 근거지주민들을 망라하여 진행되는 이 토론은 사람들의 흉금을 털어놓게 하였다. 난생 사람들앞에서 큰소리 한번 쳐본 일이 없던 사람들까지 식솔들의 명줄과 이어진 토지며 그 경작문제가 화제에 오르자 목에 피대를 세우고 열을 내여 자기 의사를 말하였다. 어떤 집에서는 부자간에 론쟁이 벌어져 룡마루가 울리도록 소리치기도 하였다. 이러한 토론들에서 제기된 의견들은 촌쏘베트를 거쳐 구쏘베트에 올라가 종합되였다.

그날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중권의 보고를 마감으로 다시한번 가필하시느라고 좀 늦어서 모임장소로 나가시였다.

길가의 나무가지들에는 눈꽃이 하얗게 피여 해빛에 눈부시게 반짝이였다.

그이께서는 흰 입김을 날리며 걸어가시면서 뒤따르는 김중권, 한흥권, 장룡산 등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나무짐을 진 두 청년이 지게작시미를 겨드랑이에 끼고 길바닥만 보면서 성큼성큼 마주 걸어왔다. 나무짐이 어찌나 높은지 사람은 밑에 깔려서 보이지 않을 지경이였다.

장군님께서 길을 피하여주시려는데 지게군들도 그이를 알아보고 창황히 길옆으로 물러섰다.

그들은 김창억이와 마동호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시였다.

《수고들 하오. 나무를 어디서 해오오?》

김창억이 시뻘개진 얼굴에 밝은 미소를 그려보이며 쾌활하게 대답하였다.

《저 뒤산에 올라가면 이런 삭정이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집에서 땔 나무요?》

김창억은 웬일인지 대답을 못하고 쭈밋거렸다. 마동호가 겨드랑이에 낀 지게작시미로 그의 옆구리를 툭툭 건드렸다.

《유격대병실에 가져가는겝니다.》 하고 창억이는 대답하였다.

《유격대병실에?… 땔나무야 유격대에서 하면 되겠는데… 누가 시켰소?》

창억이는 발끝을 내려다보며 망설이다가 주눅이 든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저희들이 있으면서 유격대동무들이 땔나무까지 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그들을 보내고 한동안 말씀이 없이 걸으시다가 한흥권을 돌아보시였다.

《저 동무들이 얼마나 유격대에 들어오고싶으면 저러겠소.》

한흥권은 그이의 말씀에 공감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때 내내 말이 없던 장룡산이 한흥권의 옆으로 나서며 그이께 말씀올렸다.

《요새 와서는 입대하자는 말이 싹 없어졌습니다. 이전에는 입대하지 못해 설설 끓었는데…》

《?…》

《사령관동지께서 데리고오신 대원들과 자기네를 비교해보고 주눅이 든것 같습니다. 겉모습을 보나 속에 든걸 보나 비교가 됩니까. 왕청산골에서는 뚝심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저 창억이는 안해때문에 몹시 괴로와하는것 같습니다. 자기가 전혀 돌보지 않아 그렇게 됐다고 저한테도 말했습니다.…》

《음…》

그이께서는 더 말씀이 없으시였다.

쏘베트마당에는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가득 모여서 붐비고있었다.

출입문앞에서 리재명이 팔을 내흔들며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여러분, 물러들 가시오. 오늘 여러 지방에서도 사람들이 왔기때문에 참가인원이 제한돼있습니다. 방이 네칸밖에 없어서 다 못 들어갑니다!》

웅성거리는 군중속에서 털벙거지를 눌러쓰고 꼴망태를 멘 작달막한 농민이 약이 바싹 올라서 그에게 맞받아 소리쳤다.

《여보- 가라면 가구 말라면 말줄 아우? 새벽에 떠나 60리나 걸어왔소!》

리재명이도 화가 동하는듯 목이 벌개져서 소리쳤다.

《아니, 누가 오라 해서 왔습니까?》

《여보시오, 아들이 촌쏘베트에서 일하는데 그녀석과 엿새동안 말씨름을 하다가 왔소다. 그녀석은 쏘베트가 하는 일은 덮어놓고 좋다는 판인데 내 여기서 결판이 나는걸 보구 가서 그녀석을 꺼꾸로 매달 작정이요.》

사람들은 그 소리에 와 웃어댔다.

리재명이도 하는수없이 벙글거렸다.

군중속에서 검정덧저고리를 입은 키가 훤칠한 장정이 호기있게 소리쳤다.

《여보게 회장, 우리는 밖에 조용히 서있겠네. 그저 요긴한 대목에서 뙤창문을 슬쩍 열어주게. 새나오는 소리를 듣는게야 일없겠지?》

장군님께서 쏘베트마당으로 들어오시자 사람들은 길을 내드리며 량옆으로 물러섰다.

그이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사람들의 인사에 답례를 하시고는 여기서 토론된 문제들은 다 알려드릴테니 추운데 돌아가라고 이르시였다.

그러자 털벙거지를 쓰고 꼴망태를 멘 작달막한 그 농민이 그이께로 다가서며 자기 심정을 토로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웃지 않고 심중하게 들으시더니 리재명에게 이분만은 들여놓을수 없겠느냐고 말씀하시였다.

그 농민은 우쭐해져서 리재명에게 이끌려 방안으로 들어갔다.

쏘베트의 네 방에는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앉아있었다.

《쏘베트와 그 시책에 대한 소감》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받으며 김중권이 작성하여 쏘베트관계자들의 협의회에 제출한 보고의 표제는 이렇듯 소박하고 부드러운것이였다.

장군님께서 김중권에게 보고를 시키신데는 깊은 의도가 계시였다.

우선 그가 이 지역에 파견되여 공작하였으므로 이 고장의 형편에 밝은것이며 다음으로는 그의 리론수준을 한층 높여주시려는것이며 그리고자신께서 직접 보고를 하시면 사람들이 그것을 곧 결론으로 받아들일수 있기때문이였다. 그렇게 된다면 론쟁은 없을것이며 따라서 사람들은 쏘베트와 그의 시책에 대한 견해들을 충분히 털어놓고 나누어보지도 못하여 무엇이 옳고그른지 석연하게 인식 못할수 있기때문이였다.

김중권은 쏘베트의 시책들중에서도 농민문제, 토지문제에 중점을 두고 보고하였다.

그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조용히 울리였으나 보고가 진술되는 사이 쏘베트의 네칸 방에 빼곡이 들어앉은 사람들의 머리우에서는 격랑이 휩쓰는듯 했다. 보고자의 예리한 분석이 가해질 때마다 사람들은 마른번개라도 치는듯 눈앞이 아찔아찔해지였다.

진홍색상보를 덮은 낮은책상에 마주앉아계시는 장군님께서는 내내 눈을 조용히 내리뜨시고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다가는 인차 조용해졌다. 보고자의 입에서 페부를 찌르는듯 한 표현이 튀여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가운데방 복판에 앉아있는 권일균이며 홍병일, 리재명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권일균은 눈을 지그시 감고 조용히 앉아있었다. 독감때문인지 부석부석해진 그의 얼굴에는 저항도 반성도 아닌 피곤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그는 이따금 커다란 주먹으로 무릎을 툭툭 두드릴뿐이였다.

웃방의 문턱곁에 앉은 홍병일은 열기가 번뜩이는 눈으로 보고자를 쏘아보다가는 권일균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고 환멸의 쓴 침을 꿀꺽 삼키는듯 하더니 최형준을 돌아보며 무엇이라고 수군거렸다.

최형준이 그에게 꽁다리연필을 넘겨주자 홍병일은 목단추를 끌러놓고 목책우에 연필을 달리였다.


장룡산동무!

말을 준비시키시오!


그의 어깨너머로 목책을 내려다보던 최형준의 눈이 커졌다.

홍병일은 책장을 찢어내여 쪽지로 접어 앞사람에게 주며 장룡산중대장에게 전하라고 일렀다. 쪽지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제일 아래방 문옆에 앉은 장룡산에게로 가닿았다.

장룡산은 언제나와도 같은 심드렁한 얼굴로 쪽지를 풀어보더니 그것을 무릎밑에 깔았다. 그리고는 아무일도 없었던듯 배포유하게 앉아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 그쪽을 내려다보시였다.

장룡산이 시커먼 눈을 몇번 슴벅이더니 홍병일이쪽은 보지도 않고 무릎밑에서 쪽지를 꺼내 그이께 올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쪽지를 보시더니 근엄하신 안색으로 홍병일을 바라보시였다.

홍병일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리여 그이의 시선을 외면하였다. 무엇인가 달가닥- 하고 소리를 내며 방바닥에 떨어졌다. 홍병일의 무릎옆에 꽁다리연필이 떨어진것이다. 최형준은 그것이 자기것이지만 쥐지 못하였다. 그는 순식간에 얼굴이 확 붉어져 동정이라도 구하는듯 한 눈으로 권일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권일균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다.

최형준은 입술을 피터지게 깨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있단 말인가! 저 방심한듯 한 얼굴표정은 무엇을 뜻하는것인가? 저 귀는 왜 저리도 보기 흉하게 늘어졌는가. 저 큰 두개골속에서는 지금 무슨 생각이 끓고있는것인가. 비게만 차있는게 아닌가? 최형준은 혐오와 의분으로 가슴을 끓이며 그를 쏘아보았다.

보고가 끝났다.

김중권이 앉기바쁘게 홍병일이 앞사람의 어깨를 짚으며 일어났다.

그는 누구인가를 찾는듯 좌중을 둘러보다가 크게 뜬눈으로 보고자를 삼켜버릴듯이 노려보았다. 그의 고수머리가 밤빛을 더 띠며 뻣뻣하게 살아오르는듯 하였다.

홍병일은 옆구리에 드리운 목갑총을 뒤로 밀어제끼고 곧추 편 두손가락으로 머리우의 허공을 찔렀다.

《본질을! 본질을 놓고 이야기합시다!》

그는 보고자가 현상적인 결함만을 긁어모아 렬거하였지 우리가 진행한 혁명의 본질에 대하여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고는 다음과 같이 이었다.

《여기서 초창기에 조직되였던 토지개혁준비위원회를 해산하고 토지의 공동소유를 선언하였다고 비판하였는데 이건… 이건 혁명의 리치에 맞지 않는 평가요! 우리 혁명이 어디에로 지향하는가? 우리 혁명의 종국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사회주의,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자는것이여! 여기서 우리가 거인적인 힘으로 민중을 떠밀어 사회주의에로 접근시켜놓은게 좋으면 좋았지 나쁠게야 뭐냐 말이요?

물론 과정에 무리도 있고 마찰도 있었지만 보고자인 당신도 생각해보시오. 근대문명의 세례를 받은 산업프로레타리아트가 없어 암매한 농민대중을 동력으로 삼고 혁명을 추진시켜온 우리에게 어떤 고충들이 있었겠는가도 생각해보시오. 그런데 김중권동지! 당신은 무엇때문에 무슨 목적을 추구하여 여기에 온 첫날부터 왕청에서 일해온 우리의 결함만을 들추는거요? 만약에 우리 자리가 탐이 나면 그렇다고 말하시오. 내-놓-겠-소-》

이때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한 일이 벌어졌다.

내내 불상처럼 올방자를 틀고 무표정의 얼굴로 앉아있던 권일균이 눈을 부릅뜨고 홍병일을 쏘아보며 불호령을 한것이다.

《야비하오! 자리를 운운하다니! 아직도 화요파의 때를 벗지 못하고 파심에서 문제를 고찰하는가? 비렬해-》

홍병일은 어정쩡해서 입을 벌린채 굳어져버렸다. 최형준은 이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듯 권일균을 뚫어지게 보다가는 홍병일, 리재명 등에게로 눈길을 돌리는가 하면 김중권을 쳐다보기도 하고 김일성동지를 우러러보기도 했다.

권일균은 침착하게 일어나서 양복깃을 여미고는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는 손가락끝으로 홍병일을 가리키고는 세련되게 손세를 써가며 무게있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하기 시작하였다.

《홍병일동무… 내가 동무에게 몇번이나 경고했소. 직에서 물러앉아 반성케 하는 조치까지 두번이나 취했더랬소. 당신도 생각날게요… 솔직히 말하면 나도 사실 지난날 당신의 지나친 열광이 두려웠더랬소! 무서웠소! 이제는… 이 유리한 환경에선 내놓고 따질수 있소.》

권일균은 그를 《당신》이라고 불렀다. 그 부름은 창끝같이 번쩍이던 그의 명예에 찬물을 끼얹는듯 했다. 사람들은 그 부름이 공산주의자의 자격을 박탈하는 말처럼 들리여 모두 웅성거렸다.

《이 자리에 당신의 권총앞에 섰던 사람들이 몇이 있소. 리재명동무도 생각날거요.… 쏘베트회장이 농민들의 의사와 감정을 대변했다고하여 가슴에 권총을 내대던 그 소름끼치던 밤이 나한테도 잊혀지지 않는데 피해자자신의 가슴에서야 어떻겠소?… 토지문제에 대한 농민들의 의견이 분분하였을 때 다른 동지들은 다 쏘베트의 시책이 잘못된것이 아닌가 하고 의혹을 품고 반성도 하며 괴로와하였소. 그러나 당신만은 유독 추호의 주저도 없이 냅다 밀었소. 사람들을 위협하고 공갈하고 사살할 기세를 보이면서 총구로 일체 장애를 해치며 내밀었소.

그리하여 당신의 명성은 자자해졌소. 이 왕청하늘밑에서 말이요! 나는 이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문의하오. 당신의 이런 열광은 도대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것인가? 리성도 인륜도 무찌르며 내뻗는 그 열은 어디에서 나온것인가? 쏘베트의 시책의 진리성을 의심치 않은 철석같은 신념에서인가? 아니요! 그러면 무엇인가? 당신이야말로 자리를 탐냈소! 이 산간오지에서 공명을 떨쳐 우리를 밀어내고 현당을 독차지하며 나아가서는 새로운 공산주의운동안에서 자기파의 지반을 닦자는것이였소. 령도권을 노리는 비렬한 파심의 광란때문에 쏘베트가 하는 일은 백배나 더 잘못되여 죽탕이 됐단 말이요!》

권일균은 치를 떨며 두팔을 높이 쳐들었다가 맥없이 떨구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를 제지시키시였다.

그이께서는 오늘 이런 모임을 가진것은 어느 한사람을 공격하자는데 목적이 있는것이 아니라 쏘베트와 그의 시책에 대한 광범한 의견을 나누어보자는것이라고 하시며 여러 동무들이 짤막하게라도 좋으니 의견들을 터놓고 말하라고 말씀하시였다.

권일균이 앉자 리재명이 일어났다.

그는 얼굴이 벌겋게 되여 쏘베트가 농민문제, 토지문제를 어떻게 그릇되게 다루었는가를 실례와 수자를 들어가면서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마종삼농민의 경우를 입에 올렸다. 그의 목소리는 갑자기 의분에 떨렸다.

《그 농민은 혁명의 변절자로 락인되고 아버지를 돌려세우려고 쫓아갔던 그 아들은 도주자로서 혁명감옥에 갇히웠으니 민심이 어떻게 돼버렸겠습니까. 사실상 우리 혁명이 딛고선 대중적지반이 이 귀퉁이, 저 귀퉁이에서 금이 갔습니다.》

리재명은 갑자기 말을 중둥무이하고 홍병일이쪽을 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따졌다.

《시끄러운 일이 생길가봐 마동호를 여기서 추방하려고 했지요? 로자까지 줴줘서…》

여기저기서 분격한 목소리들이 터져올랐다.

《누가 그랬단 말이요?》

《그게 누구요?》

리재명은 말없이 홍병일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온 방안이 규탄의 목소리로 끓어번졌다. 그중에서도 권일균의 목소리가 유표하게 두드러졌다.

그는 주먹으로 무릎을 내리치며 절규하였다.

《우리가 저런자를 믿었던가! 아-》

이때 사람들의 목소리의 파도우로 탄알소리처럼 날카로운 녀자의 목소리가 날아올랐다.

장군님께서는 그 목소리가 울리는쪽을 바라보시였다.

그 목소리의 임자는 제일 웃칸의 문뒤에서 일어나고있었다.

흰 동정이 산뜻한 검정저고리에 검정치마를 단정하게 받쳐입은 녀자였다. 살결이 맑은 수수한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여 더욱 청신하게 눈에 띄는 모습이다.

마촌에 도착한 유격대원들의 빨래를 조직하며 뛰여다니던 날부터 장군님의 눈에 몇번이나 띄였던 부녀회장인것이다.

그 녀자는 달려내려오고싶은 충동에 문설주를 짚고는 정의감에 또렷하게 빛나는 눈으로 권일균이쪽을 보며 맵짜게 소리쳤다.

《의견이 있어요! 저는 현당조직책동지한테 의견이 있어요!》

장군님께서는 어서 말하라고 머리를 끄덕여보이시였다.

《권일균동지는 책임이 없어요? 왜 슬쩍 빠져서 남을 비판만 해요?》

권일균은 첫 순간에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돌아보더니 인차 자신을 수습하여 넌지시 웃어보이였다.

《부녀회장동무, 왜 나라구 책임을 느끼지 않겠소. 다 내 책임이요, 내 책임이요.》

그러자 림성실은 타오르는 분노에 얼굴모습이 더욱 단정하게 영글어졌다.

《저는 그런 말이 아니예요! 직책상으로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는 가책이 되는 점이 없나요?》

장군님께서는 얼결에 옆에 앉은 김중권을 돌아보게 되시였다.

김중권은 눈을 내리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림성실을 다시 바라보시였다.

그 녀자는 이마에 흘러내린 윤나는 머리칼을 쓸어올리고는 당돌하게 서서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고있었다.

《이제부터 조혼매혼을 안하면 되는거지 무엇때문에 의좋게 지내는 부부들까지 조혼이란 루명을 씌워 갈라놓자고드는가요? 김진세농민네집 가정파탄을 봐요. 창억동무의 안해 윤보금녀성은 일솜씨가 알뜰하고 성미도 순하고 무던한 동무였어요. 조혼했다고 창억동무의 입대를 부결하자 그 녀자는 저를 찾아와 남편일이 풀리게 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고 물었어요. 머리칼을 잘라 신을 삼아 바치라면 바치고… 목숨이라도 기꺼이 바치겠는데… 그렇게 해서 풀리는 일이라면 좋지 않겠느냐고 하며 울었어요. 이런 심정이던 녀자가 지금은 어떻게 됐어요? 가슴이 아프지 않는가요?》

옆에 앉은 박현숙이 한손으로 림성실의 치마자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실밥같은것을 훔쳐내고는 의기양양해진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림성실은 그를 흘깃 돌아보고는 말을 이었다.

《저는 녀성으로서 정말 참을수 없고… 가슴이 아픕니다! 또 봅시다.

박현숙동무가 큰 포부를 안고 근거지로 찾아들어왔을 때 어떻게 대했습니까? 선전사업에 돌리려고 했지요. 그가 말을 안 듣자 구박을 하고 교육사업에 아무런 방조도 안줬지요. 그래서 아이들이 이집저집의 웃칸으로 옮겨다니며 흑판도 없고 난로도 없는데서 글을 배웠어요. 박현숙동무는 박현숙동무이고 아이들이 오돌오돌 떠는게 불쌍하지 않던가요? 가슴이 아프지 않던가요? 직책상책임은 제쳐놓고라도 인간적으로 말입니다. 일반사람들의 심정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있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일반사람들의 소소한 심정이 혁명이라는 큰일을 밀고나가는데 무슨 그리 대수로운 일인가 하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한고리한고리에서 사람들의 심정과 떨어지다나니 결국 쏘베트는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됐어요. 리재명회장동무한테도 할말이 있어요. 토론을 들어보면 회장동무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품고있었는데 이전에 벌써 흉금을 털어놓고 의견을 나누고 힘을 모았더라면 여기 일이 훨씬 잘되였을거예요. 아이들이 추운 고생을 덜했을거야요.》

리재명은 되알진 매가 후려치고 지나가기라도 한듯 손바닥으로 뒤덜미를 슬슬 쓸어만지며 벌개진 얼굴을 숙이였다.

여러 사람들이 일어나 쏘베트와 토지문제에 대한 의견을 말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의견들이 충분히 나누어졌다고 생각되였을 때 홍병일에게 쪽지를 내보이며 말은 왜 준비시키라고 했느냐고 물으시였다.

홍병일은 얼굴이 해쓱해져서 개별적으로 말씀올리겠다고 했다.

《좋소.…》

그이께서는 이 한마디 말씀을 하시고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시였다.

그이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방안에 가득 울려퍼졌다.

《동무들, 우리가 여기 두만강연안의 넓은 지역에 왜 유격근거지를 꾸리자고 하였는가. 나는 이 자리에서 근본로선상문제를 다시 상기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국가적후방이나 정규군의 지원도 없는 우리 유격대가 반일혁명전쟁을 하자면 의거할 근거지가 있어야 합니다. 유격근거지는 유격대의 전투기지, 후방기지, 혁명의 책원지로 되여야 합니다. 우리는 근거지에 의거하여 유격대를 량적, 질적으로 더욱 강화하면서 무장투쟁을 확대발전시키고 혁명의 골간을 육성하고 우리 혁명의 대중적지반을 튼튼히 닦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들어와 기대했던바와는 엄청나게 다른 현실에 부닥쳤습니다. 근거지에 왜 이런 사태가 빚어졌겠습니까? 그것은 일부 동무들이 우리의 로선과는 어긋나게 좌경적쏘베트로선을 집행하려고 했기때문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이어 홍병일의 주장을 론박하시였다.

《사실상 이것은 론박할 여지도 없는 문제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전제하시고는 우리 혁명의 종국적인 목적이 사회주의,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것이라고 해서 우리 나라의 사회발전단계와 구체적인 사회정치적정세, 계급적인 력량관계를 무시하고 단꺼번에 사회주의혁명의 구호를 든다는것은 아무런 과학성도 없는 극좌경적인 망동이라고 지적하시고 실천이 웅변으로 보여준바와 같이 그것은 혁명을 위험한 구렁텅이에 몰아넣을수 있는 엄중한 해독행위라고 단죄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 혁명의 성격은 우리 나라에 조성된 사회정치정세에 따르는 계급관계와 우리 나라 력사발전의 특수성에 의하여 규정된다고 하시며 우리 혁명은 조선을 강점한 일제와 친일주구, 민족반역자, 친일지주, 예속자본가들을 반대하는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라고 찍어 말씀하시였다.

《어느 개인의 주관적인 욕망에 의하여 혁명의 성격이 규정되는것은 아닙니다. 어느 누가 사회주의혁명을 하고싶다고 하여 우리 혁명의 성격이 사회주의혁명으로 되는것은 아닙니다.

홍병일동무, 혁명은 채찍만 먹이면 냅다 뛰여나가는 공골말이 아닙니다!》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력사발전의 요구, 조성된 정세의 요구, 인민대중이 절박하게 바라는바가 혁명의 요구로 되며 그것이 곧 혁명의 성격을 규정하는것입니다. 혁명의 무기인 정권의 형태도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 혁명의 성격과 임무에 맞는 정권형태라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쏘베트를 세우고 사회주의혁명을 한다고 사람들을 들볶았습니다. 토지가 없어 대대로 내려오며 피눈물나는 고생을 한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줄 대신 모든 밭을 공동소유로 하고 공동경작을 하자고 억지를 썼으니 농민들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인민들은 자연히 쏘베트를 멀리하게 되였고 일부 사람들은 근거지를 떠나게까지 되였습니다. 얼마나 가슴아픈 일입니까. 그러나 쏘베트로선을 고집한 사람들은 불과 몇몇이 떨어져나갔을뿐이라고 안심하면서 그 정치적영향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았을뿐아니라 자기들의 주장을 검토해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사람을 잃으면 열사람, 백사람을 잃게 되며 한사람을 쟁취하면 백사람, 천사람도 쟁취할수 있다는 리치를 몰랐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이께서는 눈이 시커매서 쳐다보는 리재명의 얼굴을 내려다보시며 그에게 오묘한 비결을 하나하나 일깨워주시는듯 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사람은 홀로 살아가는 고립무원한 존재가 아니라 복잡한 사회적관계속에서 호상 부단히 작용하면서 살아가기때문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시고는 다시 머리를 드시여 주의깊게 듣고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시였다.

《우리는 전체 인민을 하나의 력량으로 결속하여 혁명의 대중적지반을 튼튼히 다져야 승리할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우선 우리들자신이 혁명과 인민대중에 대한 옳바른 관점을 세워야 합니다.

혁명은 몇몇 사람의 부귀영화나 공명과 출세를 위한것이 아니라 철저히 인민대중을 위한것으로 되여야 합니다.

그래야 인민들도 혁명을 자기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적극 동원됩니다.

동무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처음부터 사람들을 믿고 다시말하면 인민대중이 호응해나설것을 믿고 이 혁명을 시작한게 아닙니까? 사람들을 제 혈육처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들을 위하여 헌신복무할수 없습니다. 더 나가서 그들의 힘을 믿을수도 없습니다. 나는 다시 강조하고싶습니다. 우리가 인민들을 제 혈육이상으로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헌신분투할 때 인민들도 우리를 따를것입니다.

혁명이 승리할수 있는 비결은 그 어떤 허황한 쏘베트로선같은데 있는게 아닙니다.》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끊고 사람들을 둘러보시였다.

《우리는 우선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인민들에게 그 이름부터가 생소하며 또 인민들이 지지하지도 않는 쏘베트를 전체 인민의 의사를 대표할수 있는 정권형태인 인민혁명정부로 개편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민혁명정부를 통하여 토지개혁을 비롯한 제반민주주의적개혁을 실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토지개혁준비위원회를 내오고 농민들의 숙망대로 토지가 없거나 적은 농민들에게 밭갈이전으로 밭을 나누어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다음 남녀평등권을 비롯한 여러가지 정치적개혁과 경제적개혁들을 실시해야 합니다.… 동무들, 우리는 유격근거지를 온갖 억압과 착취가 없고 인민들이 정권의 주인, 땅의 주인이 되여 행복하게 사는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장군님께서 말씀을 마치고 앉으시려는데 리재명이 벌떡 일어나 두손을 높이 쳐들고 박수를 쳤다. 그의 눈에서 물기가 번쩍거렸다.

그러자 네칸 방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뛰여일어나 박수를 치고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였다.

김일성장군 만세!》

《만세!》

《만세!》

이때 밖에서도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김중권이 뙤창문을 열어보니 쏘베트마당에 모여선 사람들이 기쁨에 넘쳐 뛰여오르며 만세를 부르고있었다. 그들도 안에서 새여나오는 말을 듣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번지여 모두 대세가 어떻게 기울어지는지 알게 된 모양이다. 밖에서 흘러드는 환호성은 안에서 터져오르는 만세소리와 한데 어울려져 집안이 떠나가는듯 하였다.

장군님을 우러러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 눈물을 씻는 사람들, 환희에 넘쳐 손에 손을 붙잡고 어찌할바를 모르는 녀성들…

김일성동지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그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하시고는 밖으로 나가시였다. 바깥에는 해빛이 눈부시였다.

그이께서 출입문밖에 나서시자 마당의 사람들은 왁 밀려들며 환호하였다.

장군님을 에워싸고 그이를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밀치고닥치며 설레이는 사람들의 뒤쪽에서 눈물에 젖은 웨침소리들이 터져올랐다.

《고맙습니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털벙거지를 쓰고 꼴망태를 멘 키가 작달막한 농민은 붐비는 사람들속을 비집고나와 매여달리듯이 장군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장군님!》

농민은 눈물이 번쩍거리는 눈으로 그이를 우러러 쳐다보며 부르짖었다.

《장군님, 십년이나 얹혔던 속이 쑥 내려간것 같습네다. 제 아들녀석이 쏘베트에서 일했는데 그녀석이 공동식당이다, 공동경작이다 하고 물덤벙불덤벙 날치는 바람에 제까지 동네에서 돌리워 지냈습네다. 내 이제 돌아가서 그녀석을 꺼꾸로 매달겠수다!》

《아버님, 그러지 말고 아들을 앞에 앉혀놓고 여기서 들은 이야기랑 하면서 차근차근 타이르십시오. 꺼꾸로 매달다니요? 혁명은 그렇게 하는겐가 해서… 몰라서 그랬는데 귀한 자식을 꺼꾸로 매달아서야 쓰겠습니까.》

그 말씀에 모여선 사람들은 유쾌하게 웃어대였다.

장군님께서도 껄껄 웃으시였다.…

그후 장군님께서는 밭갈이철이 다가오는것만큼 인민혁명정부수립과 함께 토지개혁을 빨리 실시하도록 이끄시였다.

점차 사람들속에서는 저절로 쏘베트라는 말이 사라져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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