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제 2 장
6
신문지로 도배를 하고 구름노전을 깐 아담한 방안에는 단란한 가정의 따뜻한 화기가 가득차있었다. 사슴과 학이 수놓인 벽장보며 옷궤우에 반듯하게 개여놓은 이불, 원앙새가 그려진 베개모 그리고 구석쪽의 책상우에 피워놓은 진달래꽃에도 시골선생의 가난한 살림을 알뜰하게 꾸려나가려는 안해의 지성이 스며있었다.
전장원은 아래목에 포대기를 펴놓고 기다리다가 안해가 보금을 데리고 들어오자 수난자를 그 자리에 앉혔다. 해산달이 가까와 숨이 차서 운신조차 하기 어려워하던 안해는 보금의 불행에서 자기 생활의 안정감을 크게 느꼈는지 부엌으로 나가 더운물을 떠온다, 베개를 안고와서 누우라고 자리를 권한다 하면서 날렵하게 뛰여다녔다. 아는것이 없어 남편의 뜻을 잘 리해하지 못하나 그를 받드는데서 기쁨과 보람을 찾는 안해였다.
보금이는 눕지 않았다. 속을 덥히라고 권하는 더운물도 마시지 않았다.
그는 아래목에 한손으로 이마를 고이고 오도카니 앉아있다가 얼굴을 들었다. 전장원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 눈물이 끓었다.
《선생님, 그때 죽으라구 놔두지 어째서 구해줬습니까?》
보금이는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조용히 흐느꼈다.
전장원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보금이는 시집을 떠날 때의 마음이며 그후의 고생살이, 친정부모들을 속였던 일, 순사놈들의 심문, 부모들한테서 당한 무서운 오해에 대하여 죄다 털어놓았다.
《친부모들이 알아주지 않는 제 맘을 이 세상 누가… 누가 알아주겠어요!》
그는 한손으로 입을 싸쥐고 섧디섧게 흐느꼈다.
장원은 얼굴이 새까맣게 질렸다. 자기가 우연히 동정을 보인탓으로 한 녀자의 불행한 운명, 더 나가서 마촌과 풍인동에 있는 두 가정의 불화에 끼여들게 되였다는 놀라움때문이였다.
그리고 보금의 고백에서 근거지의 사태가 가늠이 되여서였다.
《선생님, 저는 어쩌문 좋습니까?》
장원은 대답을 못하였다.
방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문득 보금이 눈물이 번들거리는 얼굴을 들었다.
《선생님, 제 이야기를 누구한테나 옮기지 말아줘요.》
《걱정마오.》 하고 장원은 한숨을 내쉬였다.
《내 한가지 물어봐도 일없겠소? 거기서는 근거지바깥을 모두 〈백색구역〉이라 부르고 사람들 래왕을 엄중히 단속하는 모양인데 앞으로도 내내 그럴것 같소?》
《예?… 제 있을 때는 그랬는데 장차는 어쩔는지…》
보금이는 왜 이런것을 물을가 의아하게 생각하는듯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거기에
《제가 있을 때까지는 계시지 않았어요. 모두 말하기를 어디 계시는지 모른다고 했어요.… 그렇지만
장원은 눈길을 맥없이 떨구었다. 그를 마차에 태워가지고 오던 날부터 좋은 소식을 직접 들을수 있겠지 하고 은근히 품어온 기대가 꺾어지며 가슴이 한꺼번에 허물어져내리는듯 하였다.
보금이는 갑자기 달라지는 방안공기를 느낀듯 움쭉 일어나며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안해는 여기서 자고가라고 그를 붙잡았다. 그러나 장원은 그를 눌러앉힐 기운도 나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야학을 필하고 야학방의 퇴마루에 주먹으로 턱을 고이고 걸터앉아 자기의 지난날과 앞으로의 일들에 대하여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였다.
그는 온성에서 나서 온성에서 자랐다. 그의 몸에는 온성땅의 흙냄새가 깊이 배여있었다. 온성사람들은 어디가나 표적이 난다고 하였다.
그것은 《서》를 《셔》로, 《김》을 《짐》으로 발음하는것과 같은 말씨때문이였다.
이러한 말씨는 두만강건너 사람들의 말씨와 한데 어울려져서 그렇게 되였다고도 하고 조상때로부터 세상에 대고 큰소리 한번 쳐보지 못하고 억눌려살아왔기때문이라고도 하였다.
전장원은 3년제 간이학교인 영신학교를 다니면서 그 말씨를 고쳤다. 그 학교를 졸업한 후 룡정에 건너가 동흥중학교를 다니다가 어머니의 병과 학비를 댈수 없는 집사정때문에 고향마을로 돌아왔다. 불행은 한꺼번에 닥쳐들어 그의 운명을 짓눌렀다. 어머니가 사망하고 왜놈들이 새로 놓는 철길이 지나가게 되여 아버지는 얼마 안되는 화전마저 떼우게 되였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철도공사장에 나가 일하여 입에 풀칠을 하는 신세가 되였다.
왜놈들은 로일전쟁시기에 부설한 협궤철도를 광궤로 넓혀나가는 이 공사에 길회선철도부설공사에 참가했던 로동자들까지 밀어넣어 공사장은 낮이나 밤이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장원은 길회선에서 나온 그 로동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것을 첫눈에 느꼈다. 그들은 견문이 넓고 속이 트인데다가 생활태도도 도도하여 왜놈의 십장쯤은 우습게 알고 지내였다.
전장원은 대뜸 그들에게 마음이 끌렸다. 장원은 그들에게서 길림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학생운동이며 길회선철도부설로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새로운 공산주의운동의
그리고
얼마후 철도공사장에는 로동자들의 자치조직인 친목회들이 무어졌는데 전장원도 그 조직에 들었다. 때마침 두만강건너에는 쟁의의 불길이 터져올라 온 간도땅을 휩쓸고있었다.
농민들이 지주들의 집을 들이쳐서 량곡과 땅을 나누어가지고 로동자들은 8시간로동제와 임금인상을 요구하여 파업을 일으켰다고 하였다. 날에날마다 놀라운 소식들이 두만강을 건너왔다.
이때 굴진중인 기차굴이 허물어져 7명의 로동자가 사망하고 여러명이 치명상을 입는 사고가 생겼다.
7명의 사망자중에는 전장원의 아버지도 들어있었다.
온성친목회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대규모적인 폭동을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전장원은 방화대의 성원으로 뽑혔다. 폭동준비는 착착 진척되여갔다.
어느날 밤 그는 읍에 나가 인화병제작에 쓸 휘발유를 한초롱 지고 합숙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조직의 지시로 그 휘발유를 강에 나가 쏟아버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폭동계획이 중지되였던것이다.
이미전에
그후 전장원은 조직의 조치에 따라 풍인동에서 농민협회사업을 책임지고 활동하게 되였다.
그러던중에 그는 온성지구에 나오신
혁명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칠 각오로 충만되여있던 그였지만 면장을 하는 사촌형때문에 마음속 한구석은 늘 어두웠다. 그러나
그후 그는 풍인동에 《진명서숙》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세우고 밤에는 야학도 열었다.
전장원이 학교를 세우려했을 때 면장 전수원은 못마땅히 여기는 사촌동생의 일이라 여러모로 따져본 다음 힘들게 허가하였다.
마을에서는 윤치석을 비롯한 여러 농민들이 야학계를 뭇고 도와나섰다. 그들은 옛서당집의 고삭은 지붕을 헐어내리고 새 벼짚으로 지붕을 덮었으며 벽을 바르고 문창호지를 붙이고 부엌과 온돌까지 뜯어 고쳤다.
앞벽기둥에는 읍의 명필 주영백이 청수에 손을 씻고 일필휘지로 흘려쓴 《진명서숙》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처마끝에는 종까지 매달았다.
진명서숙에는 40명 남짓한 학생들이 다녀 언제나 글읽는 소리 랑랑히 울리고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들썩했다. 그것은 단순한 배움터뿐이 아니라 마을과 그 린근에 생긴 사건들의 시비가 날카롭게 갈라지는 론쟁터, 총각과 처녀들의 소박한 우정들이 맺어지고 깊어지는 곳, 이 무지의 벽지로부터 세상에 풍미하는 새 사조를 발돋움하여 내다보는 창문이기도 했다.
장원은 당조직의 지도를 받으며 우선 진명서숙을 잘 운영하여나가려고 아글타글 애를 썼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문명의 거창한 흐름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의 가난한 독학자와도 같은 안타까운 모대김이 느껴졌다. 그는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밤이면 야학생들에게 한글과 조선력사, 지리, 산술 등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밭은 지식에 교육학의 기초상식이나 경험도 없으며 교편물도 변변한것이 없는 그로서는 안타까운 점들이 한두가지 아니였다. 그는 회령이나 북경성쪽에 나가는 일이 생기면 이런저런 줄을 타고 교원생활의 오랜 경험자들이나 민족교육의 뜻을 품은 인사들을 찾아가서 조언을 받고 교편물도 더러 얻어왔다. 진명서숙은 괜찮게 운영되여갔다.
하지만 유격대가 창건되고 두만강연안일대에 유격근거지들이 꾸려지기 시작하자 륙읍일대에 대한 놈들의 경계가 심해지고 인민들에 대한 탄압만행도 한층 강화되였다. 하여 온성지구당조직의 활동도 난관을 겪기 시작했다. 많은 조직원들이 지하로 들어가거나 활동거점을 바꾸었다. 전장원과 함께 온성지구 첫 당조직의 한 성원이 되였던 최춘국은 이미 근거지에 들어가 중대정치지도원을 한다.
전장원은 사령부와의 직접적인 련계를 맺기 위해 이러저러하게 시도해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러한 때에
김중권이
장원은 영민하고 쾌활하고 호방한 김중권의 성미에 그야말로 홀딱 반하여 버렸다.
김중권은 이제
그러면서 그는 지금 유격근거지에서 좌경적인 쏘베트로선때문에 반유격구를 꾸리는 사업도 저애를 받고있다면서 아무래도 유격구에 들어가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겠다고 하고는 인차 두만강을 건너갔다.
김중권이 두만강을 건너간 다음날부터 경찰놈들이 한동안 읍과 근처의 산간마을들을 발칵 뒤집으며 돌아쳤다. 인민들속에서는 온성에 나와있던
얼마후에는 어떤 사람의 시체가 두만강의 훈춘쪽기슭에서 발견되였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전장원은 김중권이 잘못된것 같아 마음을 안정할수가 없었다.
게다가 김중권의 이야기도 그렇고 사람들속에 돌아가는 소문을 들어보아도 근거지안에서의 일들이 심상치 않게 생각되였다.
하여 그는 사령부의 소식도 알아보고 김중권의 생사여부도 확인할겸
그러나 그는 십리평을 20리 못미처 숲속에서 달려나온 다섯명의 무장대원들에게 붙잡히고말았다.
전장원은 김중권의 이름을 대며 자기 신분을 밝혔다.
무장대원들은 그런 이름은 들어본적도 없는데 무슨 허튼수작이냐고 그를 다짜고짜로 밀정으로 몰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어디서 무슨 목적으로 기여들었느냐고 따지였다. 장원은 혁명하는 사람들이니까 외인을 이렇게 날카롭게 경계할수 있다고 선의로 생각하며 자기가 찾아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다가 그들속에서 온성출신인듯 한 한 대원이 전장원이 면장의 사촌동생이라는것을 알아보고는 그를 더 모질게 다루었다.
그들은 전장원의 눈을 싸매고는 어디로인가 끌고갔다.
장원은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공교롭게도 《토벌대》놈들이 유격근거지주변으로 기여들었다. 인차 전투가 붙었다. 장원은 풀덤불속에 쓰러져 딩굴다가 탄우속에서 간신히 몸을 뺄수 있었다. 그는 가슴이 허물어져내리는듯 한 절망감에 술취한 사람처럼 비칠거리며 석현쪽으로 걸어나왔다.
날이 어슬어슬해질무렵 솔고개라고 부르는 고개마루턱에 오른 그는 어느 행인이 버리고간 누데기처럼 길가에 쓰러진 녀인을 발견하게 되였다.
그가 윤보금이였다. 보금이 근거지에서 나왔다는것을 안 순간부터 장원은 남몰래 조용한 틈을 내여 그와 마주앉고싶었다. 자기의 개인적인 감정을 버리고 근거지에 대한 옳은 인식을 가지기 위해서였다. 그가 무엇보다도 알고싶은것은 근거지에
그런데 보금이 한 말들은 차거운 재로 되여 그의 가슴에 끼얹어지는듯 하였다.
그는 숨이 막히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만일 김중권이 희생되였다면 사령부와의 련계가 언제 다시 맺어질지 막연하다고 생각되였다. 장원은 목안이 바삭바삭 말라들었다.
주먹으로 턱을 고이고 앉아있던 그는 어둠속을 내다보며 저도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였다.
온 세상이, 대지의 이끝에서 저끝까지 암담한 어둠에 덮여있는것 같다. 하늘마저도 짙은 안개에 덮인듯 어둑한 공간에서 별들이 희미하게 깜빡거리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