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날자별열람


제 20 회


제 4 장

2

착공의 날로부터 한달이 지나갔다. 2학년 1반 학생들과 열성교원들, 최창화를 비롯한 고덕탄광 전차갱 탄부들과의 협동으로 우리 마을 도서실은 완공단계에 이르렀다. 한달사이에 볼로크축조를 끝내고 사흘전에는 트라스까지 올리였다. 트라스우에 널판자를 댄 다음 기와를 얹어 지붕을 만들고 오리대로 천정을 눌렀다. 벽체안팎에 세멘트미장을 하고 바닥에 널마루까지 깔아놓으니 그 누가 와보아도 손색이 없을 집이 되였다. 벽체와 천정에 도배를 하고 창문을 달고 서가만 앉히면 공사는 끝난다.

송금주는 지금 이깔나무판자를 깐 널마루우에 서서 흐뭇한 마음으로 방안을 둘러본다. 이 집 터전에 첫 삽을 박던 때가 어제같은데 벌써 30여일이 지나갔다. 화살같이 흘러간 한달 아니, 화살은 소리를 내며 날아가지 않는다. 급행렬차와도 같이 고속으로 소란스럽게 질주해온 한달이다. 그 한달에는 기적소리도 있고 차바퀴소리도 있고 승객들의 고함소리와 웃음소리도 있다. 기나긴 려행끝에 오는 피로와 빈혈, 불면증도 있었다. 그래서 그 한달은 천년같이 느껴졌다.

벽체도 천정도 널마루도 무심히 볼수가 없다. 모든것에 그의 넋이 배여있고 그의 손때가 묻어있다. 녀교원합숙과 도서실을 하나로 이어주게 된 사이문도 착상은 송금주가 하였다. 얼마나 많은 궁리를 하고 얼마나 많은 타산을 했으며 얼마나 많은 걱정을 하면서 속인들 얼마나 썩였던가. 그 모든 고뇌와 신고가 바야흐로 열매를 맺고있다. 지상만물이 한해동안의 성장을 총화하는 이 수확의 계절 10월에 영천땅 한구석에서는 송금주의 첫 창조물인 우리 마을 도서실이 고고성을 울리게 된다.

정말 꿈같이 해제꼈어, 꿈같이! 송금주는 이렇게 뇌이며 마음속으로 한달사이에 엮어온 생활의 필림을 돌리고 또 돌리였다. 그 필림우에 새겨진 화폭들은 어느것이나 다 감동과 충격이 없이는 바라볼수 없는 명화들이였다. 때로는 필림을 거꾸로 돌리면서 자기와 함께 토피도 찍어내고 혼합물을 이기던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되새겨보기도 하였다. 얼마나 많은 교원들과 제자들과 학부형들이 나를 지지하고 고무하고 물심량면으로 도와주었던가. 이 공사의 주역을 담당한 탄부들은 또 나를 도와 얼마나 많은 구슬땀을 흘리였던가. 트라스와 기와를 담당한 도시건설사업소 일군들도 다 잊지 못할 은인들이였다.

그 사람들속에서 송금주는 인간을 알고 집단을 알고 로동을 알게 되였다. 그리고 인생의 참맛이 무엇인지도 깨달았다.

오늘은 착공후 다섯번째로 맞는 일요일이다. 첫새벽에 보슬비가 내린탓인지 아침대기는 서늘하면서도 상쾌하였다. 비가 더 내려 길바닥을 진창판으로 만들면 어찌나 했는데 다행히도 땅거죽만 눅눅하게 적셔놓았다. 전차갱의 탄부들이 오겠다고 약속한 날이여서 그런지 자꾸만 천기에 신경을 쓰게 되였다.

방안에 진동하는 이깥향기를 페장깊이 들이마시며 송금주는 창문도 달리지 않은 창틀너머로 젖빛하늘을 점도록 바라보았다. 한달사이에 이 지붕밑에서 엮어진 만단사연들이 그 하늘가에 죄다 찍혀있기라도 한것처럼 거기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나날들은 뒤로 물러가고 지금은 아늑한 고요만이 방안을 감돈다. 정애경은 아침일찍 학교로 나가고 없다.

그도 제나름의 일거리를 붙잡고 매일과 같이 음악과 씨름하고있다.

거기에 심혈을 깡그리 바쳐가고있는 그의 모습은 볼수록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도서실건설에만 옴해있던 나머지 정애경을 잘 돕지 못했다는 자책이 때늦게나마 마음속에 또아리를 틀었다. 곁눈을 팔새도 없이 바쁘게 보냈다고는 하나 그것은 우정의 륜리앞에서 구실로 될수 없었다. 더구나 정애경은 공사가 벌어지는 전기간 있는 힘을 다하여 송금주를 도와주었다. 이 기간에는 식사당번도 그가 전적으로 도맡아하였다. 그는 매일 저녁 짝패와 함께 토피를 찍었다.

송금주는 정애경의 그 사심없는 우정앞에서 채무자가 된듯 한 심정이였다. 좀전에 밥상앞에서 그의 핼쑥해진 얼굴과 부르튼 입술을 보았을 때에는 일종의 죄의식까지 느끼였다.

내가 너무했지, 너무했어. 도서실만 도서실이라고 하면서 제 욕심만 차렸거던. 애경이가 나보고 중창가사를 써달라고 부탁한지 열흘도 넘는데 난 꿈도 꾸지 않고있으니 얼마나 무정한 인간이 됐나 말이야. 언제부터 이 송금주가 이런 리기주의자가 됐을가. 애경이, 미안해. 송언닌 너를 볼 면목이 없구나. 내 어떻게 해서나 너한테서 진 빚만은 꼭 갚겠어. 빚이라고 하면 넌 막 성을 낼테지. 친구들사이에 빚은 무슨 빚 인가구 하면서. 하지만…

송금주는 사이문을 열고 합숙방에 내려가 책상우에서 마분지에 얇은 모시천으로 표구를 한 장방형의 액자를 내린 다음 어제 미술교원한테서 빌려온 벼루에 먹을 갈았다. 초리가 굵직한 붓에 먹을 듬뿍 묻혀 액자속의 하얀 바탕에 우리의 청년들은 훌륭한 사회주의적로력자로 될뿐아니라 우리 나라에서 문화혁명의 선도자로 되여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교시를 한자한자 정성을 다하여 써넣었다.

그것은 1958년 3월 19일 전국청년사회주의건설자대회에서 한 어버이수령님의 연설에서 발취한 명제였다. 송금주는 연설전문을 학습하는 과정에 청년교육자의 사명과 임무를 두고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보았다. 그 사명과 임무란 두말할것도 없이 수백만 우리의 청소년들을 지덕체를 겸비한 믿음직한 사회주의건설자로 키우는것이다. 수백만의 이 대오속에 송금주가 담당한 50명의 제자들도 있다. 그 50명은 어버이수령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보배들이지. 난 이 보배들을 책임진 지휘관이구. 아니, 누나라고 하는게 더 적합할지도 몰라. 수령님께서는 매일, 매 시각 나와 나의 50명 제자들을 살펴보고계실거야. 아이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는 우리 수령님이신가. 아이들을 굽어보시는 그이의 안광에 언제나 기쁨과 만족만이 차넘치도록 청춘을 아낌없이 바쳐야 한다. 이것이 사회주의교육의 건설자인 나의 본분이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나의 사명과 임무가 끝나는가. 아니다, 나는 고향사람들의 넋속에 사회주의사상과 문화를 심어주며 그들을 사회주의적인 문명의 창조자, 향유자로 이끌어주어야 할 영예로운 과제도 걸머지고있다. 우리 마을 도서실도 그래서 착상한것이 아닌가.

송금주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수령님의 명제를 두번세번 곱씹어 읽어보았다. 이제 창문을 달고 도배만 하면 이 명제를 도서실에 모실수있다. 행길쪽에서 자동차기관소리가 들리자 송금주는 상념에서 깨여나 다짜고짜 문밖으로 뛰여나갔다. 박만삼이 발동을 끄고 운전대에서 내려 적재함쪽으로 걸어가는 모양이 바라보이였다. 그는 도서실공사를 도우려고 이 사택마을에 벌써 세번째로 찾아온다. 처음에는 모래를 실어왔고 두번째 날에는 트라스와 세멘트를 실어왔다. 오늘은 조립한 창문과 서가를 만드는데 쓸 목재를 실어온다고 했다.

《만삼아저씨, 안녕하세요!》

송금주의 부드러우면서도 웅글은 목소리가 교원사택뜨락에서부터 행길쪽으로 날아갔다. 적재함 뒤꽁무니를 따고 각재묶음을 받아내리던 박만삼은 그 목소리를 듣자 반사적으로 《금주선생, 잘 있었소?》 하고 답례인사를 하였다. 적재함우에서 각재묶음과 널판자들을 들어 박만삼에게 섬겨주던 최창화와 엄호철이도 《안녕하십니까?》 하고 송금주에게 인사말을 건네였다. 오늘도 최창화는 곤색줄무뇌가 어룽어룽한 해군샤쯔같은 내의를 입었다. 한사람이 네탕씩 넷이서 열여섯탕을 해서야 적재함에 싣고온 널판대기들과 각재들을 도서실로 다 날라갔다.

박만삼을 탄광으로 돌려보낸 후 최창화는 엄호철과 함께 인차 일에 달라붙었다. 차에서 날라온 각재들과 널판자들을 방 한쪽에 쌓아놓고 벽에 바싹 붙여놓았던 대패틀을 복판으로 끌어냈다. 최창화가 대패로 널판자와 각재들을 밀어내면 엄호철이 도면의 규격대로 그것을 톱으로 잘랐다. 송금주에게는 오늘 처음으로 일거리가 떨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널마루를 깔 때 한몫 단단히 하였다. 리철순이 톱으로 나무판자를 잘라서 넘겨주면 그것을 굵직한 가름대틀우에 걸쳐놓고 이를 맞춰가며 못을 박아 고정시키였다. 한데 오늘은 졸지에 실업자가 되였다.

《창화동지, 제가 대패질을 좀 해볼가요.》

송금주는 대패틀우에 삼송나무판자를 올려놓고 나무의 결을 가늠하느라고 손바닥으로 판자를 쓸어보는 최창화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것은 손님들에게 일감을 맡기고 자기는 팔짱을 지르고 구경만 해야 하는 주인들이 항용하는 그런 인사치레가 아니였다. 처녀는 진심으로 대패질을 하고싶어하였다. 최창화는 그 요청을 우습게 생각해서인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대패질만 해댔다. 결이 곱고 옹이가 하나도 없는 삼송나무판자에는 상모끝에 매달린 댕기를 련상시키는 하얗고 강굴강굴한 대패밥들이 연송 말려올라왔다가는 대패틀아래로 떨어지군 하였다. 그런 광경을 볼 때면 철부지코흘리개들도 대패질을 하고싶어 팔뚝을 들먹거린다. 스륵스륵 하고 대패밥이 밀려나오는 소리가 송금주의 감질을 더 돋군다. 그는 대패틀앞에서 짜장 최창화를 밀어내기라도 할듯이 팔소매까지 걷어붙이였다.

《창화동지하구 나하구 30분씩 교대제로 대패질을 하는게 어때요?》

그래도 최창화는 웃기만 할뿐 묵묵부답이였다.

《창화동진 내가 석달동안이나 공작실습과목을 맡은 경력이 있다는걸 모르지요. 이걸 좀 고려해야 하지 않아요?》

최창화는 대패질을 멈추고 송금주를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이럴 땐 딱 내 막내동생 창국이처럼 막무가내구만. 차석진지배인이 금주선생 떼질에 학질을 뗄번 했다고 하더니… 그렇게도 대패질을 하고싶소?》

《네, 손이 막 근질근질해나요.》

《그래도 안되오. 이 방안에 사내대장부가 둘이나 있으면서 녀자한테 대패를 맡긴다는게 말이 되오?》

《그래도 막내동생이 떼를 쓸 땐 들어주겠지요?》

《내 그녀석한테는 꼼짝 못하오.》

《그럼 이 송금주를 막내동생이 된셈치고 한번 선심을 쓰시지요.》

《아니, 그건 못하겠소.》

최창화는 또 대패틀에 달라붙었다. 하얗고 강굴강굴한 대패밥들이 아까처럼 송금주의 감질을 돋구며 다시금 마루바닥에 떨어져내리였다.

《창화동지, 나같으면 대패밥을 좀 더 얇게 밀겠어요. 삼송이 막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약사발을 올려두 대패질을 못 맡기겠소.》

송금주는 정면돌파로는 어림도 없다는것을 간파하자 잠시 입을 다물고 최창화의 무표정한 얼굴을 얄궂은 눈길로 바라보았다. 엄호철이 보다못해 지원포를 한방 쏘았다.

《창화동무, 동문 정말 인정머리가 꼬물만치도 없구만. 그쯤 보챘으면 금주선생의 소원을 풀어줘야지 그게 뭔가. 사람두 원, 뚝박쇠라니까.》

지청구만으로는 성차지 않았는지 그는 쯧쯧쯧하고 혀까지 찼다. 사람들을 대하는데서는 그래도 그가 훨씬 더 사근사근하고 붙임성이 있었다. 청색과 동색의 차이처럼 성미가 판판 다른 그 두사람이 어떻게 되여 짝패로 될수 있었는지 세상만사란 정말 요지경같다.

《대패밥이 아깝네.》

널마루우에 떨어져내리는 대패밥들을 한참동안 구경하던 송금주가 아쉬움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물었다.

《그 대패밥들을 버리는가요?》

《그걸 왜 버리겠소. 금주선생, 정 일을 하고싶으면 보자기를 가져다가 그 대패밥이나 싸주시오.》

최창화가 이런 부탁을 하자 송금주는 신바람이 나서 합숙방으로 뛰여갔다.

그리고는 보자기를 세개나 들고와 대패밥을 정신없이 주어담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실업을 면하는것이 기뺐다. 단 하루라도 실업자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벌써 비극이다. 손님이 주인노릇을 하고 주인이 손님노릇을 하면서 건달을 부린다면 그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꼴불견이 어디 있겠는가.

5분도 못되여 보자기 세개나 넘쳐나게 대패밥을 모았다. 더 모으고 싶었으나 호실에는 보자기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웃집들을 찾아다니며 보자기를 빌려달라고 구걸할 생각은 없다.

송금주는 합숙에 뛰여가 부뚜막에 있던 양철대야를 들고왔다. 대패틀밑에 무릎을 접고 앉아 대패밥이 떨어지는족족 그 대야에 걸탐스레 주어담았다. 쓸모가 있어서 보자기에 싸놓으라고 했을것이다. 그것은 그가 탄부들한테서 받은 유일한 부탁이다. 지금까지는 줄곧 그들한테서 일방적인 도움만 받아왔다. 송금주가 그들에게 리로운 일을 한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최창화의 부탁을 받자마자 신명이 나서 들락날락하였다. 부탁이란 일종의 믿음이다. 교원이 로동자들의 믿음을 받는다는것은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로동자들은 아무 사람한테나 믿음을 주지 않는다. 로동계급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그들의 언어와 지향, 도덕과 인정세계를 리해할줄 아는 사람한테만 믿음을 주고 정을 준다. 송금주와 같은 햇병아리, 그것도 털면 얼마간의 학문밖에 떨어질것이 없는 지식인이 탄부들의 벗이 된다는것은 자랑할만 한 일이다.

왜 대패밥을 보자기에 싸라고 했을가. 내가 무료해하니가 심심치 말라고 일부러 일감을 만들어준것일가. 아니야, 그건 아니야. 삼송이 아깝다고 한 내 말에 갑자기 무슨 착상이 떠올랐을는지도 모르지. 무슨 착상일가, 최창화가 무슨 궁리를 하고있는지 그의 내속을 헤쳐보고싶지만 저 바위돌같이 무뚝뚝한 사람한테는 도대체 말을 걸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제는 대패밥을 담을 보자기도 그릇도 없다.

《금주선생, 수고스러운대로 그 대패밥들을 두 보자기에 모아주시오.》

최창화의 두번째 청탁이였다. 송금주는 그 청탁을 받기 바쁘게 양철대야와 남색보자기의 대패밥을 나머지 두 보자기에 올려놓았다.

《됐소. 이제는 더 모으지 않아도 되겠소.》

그 말 한마디에 송금주는 또다시 실업자가 되였다. 그는 엄호철의 조수가 되여 그가 톱질을 할 때마다 판자와 각재를 잡아주었다. 세사람은 한 5분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덤덤히 일손만 놀리였다.

대패로 나무를 미는 소리와 망치소리, 톱질소리가 그 공백을 메꾸어주고있었다.

방안공기가 오늘처럼 호젓해보기는 처음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 미완성건물은 교원, 학생들로 북적거리였다. 어떤 날은 정애경이 중창조의 처녀애들을 몽땅 데리고와서 물도 긷고 토피도 날랐다. 교원, 학생들과 학부형들의 인파에 파묻히다나니 탄부들의 존재는 별로 두드러지지 않았다.

송금주는 오늘 처음으로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고 그들과 롱도 하고 오손도손 말도 나누며 그들의 일손을 직접 거들어줄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였다. 숨결과 눈빛은 물론 얼굴의 색조마저 지척에서 나누고 관찰할수 있는 날이다.

지금까지는 일에 부대끼다나니 탄부들과 깊이있는 교감도 별로 해보지 못하였다. 만나면 만날수록 더 끌리는것이 탄부들이고 그들이 지니고있는 순박하면서도 과감하고 헌신적이며 전투적인 품성과 고상하고 아름다운 정신세계였다. 그 세계의 빗장을 잡아제끼고 자기자신을 그들의 정신과 도덕으로 동화시키고싶은것이 송금주의 심정이였다.

그런데 저 뚝박쇠같은 최창화와 엄호철은 그의 심정 같은것은 안중에도 없이 입들을 꾹 다물고 열심히 일손만 놀리고있다. 서가만 완성되면 그들은 이 방에 두번다시 나타나지 못할수도 있다. 그러면 아버지의 분신과도 같은 그들의 호방하고 씩씩한 모습을 시야에서 영영 놓쳐버릴수도 있다. 결승테프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이 결정적인 시각에 와서야 송금주는 도서실공사의 주역들인 박만삼이나 최창화, 엄호철과 같은 탄부들이 자기의 생활에서 얼마나 친근하고 귀중한 동반자로 되였는가를 새삼스럽게 절감하였다.

《탄부동지들, 휴식합시다!》

엄호철을 도와 판자를 잡아주던 송금주가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며 휴식구령을 느닷없이 내리였다. 그 구령이 얼마나 자신만만하고 위압적이였던지 두 탄부는 동시에 일손을 멈추고 송금주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수건으로 땀에 젖은 얼굴을 훔치였다.

《창화동무, 우리가 너무 어리무던한 기업주를 만난게 아닌가? 이런 기업주밑에서는 로자간의 모순도 생기지 않겠는걸.》

엄호철이 최창화를 향해 눈을 끔쩍해보이며 말했다. 가뜩이나 가늘죽한 눈이 감길듯이 작아졌다. 눈귀에는 잔주름까지 생기였다.

최창화는 깨도가 되지 않는지 《건 왜?》 하고 물었다.

《한시간도 되기 전에 휴식구령을 주니 이거야 신선놀음이지 뭔가.》

《그럼 담배나 한대 꼬슬리세.》

최창화는 주머니에서 가치담배 두대를 뽑아 한대는 입에 물고 다른 한대는 엄호철에게 주었다. 그가 라이터를 찾느라 주머니를 뒤지는 사이 양복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낸 송금주가 요술사와도 같이 날랜 솜씨로 성냥을 탁 그어 그의 담배대끝에 갖다댔다. 미처 탄복할새도 없었고 경악을 표시할새도 없었다. 최창화는 얼결에 담배를 빨아 불을 붙인 다음 연기를 한모금 맛나게 삼키였다.

두번째 성냥가치는 엄호철에게로 날아갔다. 그는 볼이 볼룩해지게 담배연기를 듬씬 삼켰다가 후- 하고 내불었다.

《창화동무, 난 오늘에야 드디여 기준을 찾았네.》

《무슨 기준?》

《배우자를 선택할 때의 기준 말이야.》

《그래 자네의 기준은 뭔가?》

《남편이 담배를 피울 때 성냥불을 켜드리는 녀자! 어떤가!》

《좋지. 그런데 호철이, 금주선생의 담배불선심은 우리에게서 로동도구를 탈취해내기 위한 유인작전이였네그려. 저것 보라구.》

최창화는 턱짓으로 대패틀쪽을 가리켰다. 그 작업대앞에서는 방금전까지 담배불봉사를 하던 송금주가 대패질을 하고있었다. 엄호철은 뒤로 벌렁 넘어지며 배를 그러잡고 앙천대소하였다.

《세상에 원, 이런 변도 있나. 눈을 펀히 뜨고 자기 진지를 빼앗겼으니 이거야말로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그러니 자네의 기준이라는것도 달라져야겠네.》

《그렇구말구, 남편이 일에 시달릴 때 담배를 권하고 남편의 일을 대신해서 해주는 녀자!》

엄호철은 이렇게 말하고나서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는 사이에 송금주는 각재 석대를 깨끗이 밀어내고 옆구리에 두손을 올리며 보란듯이 탄부들쪽으로 돌아섰다. 그 석대중 한대를 가까이 끌어당겨 이리저리 살펴보던 최창화가 엄호철의 앞으로 그것을 밀어보내며 혀아래소리로 말했다.

《잘 밀었소. 수정할 여지가 없구만.》

두 청년은 서로 마주보고나서 그 눈길을 송금주에게로 보냈다. 송금주가 대패틀우에 다섯번째 각재를 들어올리는 순간 간식보따리를 든 정애경이 사이문을 열고 작업장에 소리없이 나타났다. 그는 좀 들뜬듯한 목소리로 《안녕들하십니까?》 하고 두루거리로 인사를 한 다음 보자기에 병맥주와 건태를 펼쳐놓았다.

《애경선생 덕분에 또 호사를 하게 됐구만.》

엄호철이 병마개를 따면서 정애경에게 고개를 갑삭해보이였다. 정애경은 겸양의 표시로 생긋 웃음을 지어보이였다. 5일에 한번씩 주기적으로 공사장에 후방물자를 지원해온 정애경이였다. 그는 석달분생활비를 고스란히 그 후방물자를 마련하는데 바치였다.

《탄부동지들의 수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두 탄부는 서가 3개를 만들어 설치한 다음 한담을 좀 벌리다가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작업장에서 떠나갔다. 최창화는 송금주가 싸준 대패밥들중에서 그중 길고 탐나게 생긴것들을 따로 골라서 보자기에 싸가지고 돌아갔다.

그들이 자리를 뜬 다음에도 송금주와 정애경은 한시간남짓이 도서실 널마루에 앉아 한담을 나누었다. 처음에는 대패밥을 깔고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그다음에는 방안을 거닐면서 쌓이고쌓인 회포를 풀었다.

《금주, 난 너의 그 갱견학이 이런 요란한 반사를 일으킬줄은 몰랐어.》

정애경이 방금 엄호철이 조립해주고간 서가를 이모저모 살펴보다가 심각해서 말했다. 송금주는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나도 마찬가지야. 그 견학덕으로 난 명예탄부가 됐다고 말할수 있지.》

《한달사이에 이런 집을 만들어냈으니 얼마나 장한 일이냐. 솔직히 말해서 난 네가 허망한 꿈을 꾼다고 생각했어. 허파에 바람이 들었다고 속으로 두덜거렸지. 그런데 끝끝내 멋지게 해치웠거던. 금주, 너의 그 완강한 개척정신에 진심으로 탄복하는바이다.》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정 나쁘지 않구나.》

잠시후 두 처녀는 합숙으로 자리를 옮기였다. 정애경이 상점에서 사가지고온 생과자로 간단히 입가심을 한 다음 밥상앞에 퍼더버리고앉아 식후한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금주, 난 어째서인지 우리 둘사이가 점점 버그러지는것 같은 생각이 들어.》

정애경이 밥상에 팔굽을 얹고 정색해서 하는 말이였다. 송금주는 버그러지는것 같다는 말에 흠칫 놀랐으나 전혀 내색하지 않고 한마디 했다.

《그거야 내탓이지. 이 송가가 정가한테 너무 무관심했거던. 일만 일이라고 하면서 말이야. 그러니 서로 멀어질수밖에 없지 않아.》

정애경은 그 말을 듣자 황황히 손사래를 하였다.

《금주, 그래서 그런게 아니야. 그게 왜 네탓이겠니, 내탓이지. 내가 너하구 보조를 못 맞추니까 그럴수밖에 없지 않아.》

《보조를 못 맞춘다는건 또 무슨 생뚱같은 소리야. 지금까지 네가 나를 얼마나 잘 도와줬니.》

《그런 뜻에서 하는 말이 아니야. 우리 둘사이의 관계에서는 어느새 호흡의 불일치, 속도의 불일치, 기백의 불일치가 생겼어.》

송금주는 눈을 흘기였다.

《듣기 싫다, 괜히 심각해서 어쩌구 저쩌구…》

정애경은 이마살을 찡그리고 기분이 편안치 않으면 늘 하는 버릇대로 눈을 내리깔았다.

《남은 진심으로 고백하는데 어쩌면 그렇게 무사태평할수가 있어. 솔직히 말해서 난 널 따라가기가 힘들다. 너하구 보조를 맞추자니까 막 숨이 차.》

그의 눈에는 난데없는 물기가 핑그르르 돌았다. 송금주는 놀란 나머지 정애경의 어깨를 붙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오늘은 왜 이 모양이야. 언제 이렇게 감상적인 처녀가 됐니.》

정애경은 그 말을 듣자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그러다가 송금주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당부하는것이였다.

《요새는 어쩐지 불길한 예감만 드는구나. 무슨 일이 생기든지 날 버리지 말아다구.》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