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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 회


제 4 장

1

오늘은 영천중학교 녀교원합숙과 지붕을 같이 이게 될 우리 마을 도서실이 착공의 첫삽을 뜨는 날이다. 송금주가 이 도서실설립을 발기하고 학교지도일군들에게 자기 의사를 공개한 때로부터 두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송금주는 어려운 고비를 여러번 겪었다. 적지 않은 교원들이 그의 발기를 회의적으로 대했기때문이였다. 일부 교원들은 그에게 공명주의자라는 딱지까지 붙이였다. 교직원집단은 우리 마을 도서실의 필요성과 실용적가치를 두고 맹렬한 론전을 벌리였다. 결국은 지지파가 우세를 차지하고 거기에 학교당조직까지 개입하여 송금주에게 손을 들어주게 됨으로써 론쟁은 일단락을 지었다. 군당 교육부와 군인민위원회 교육과에서도 송금주의 구상에 전적인 지지를 표시하였다. 편제도 없는 도서실이여서 건설부지를 줄수가 없다고 잡아떼던 군인민위원회 도시경영과도 나중에는 송금주의 열정과 파도식공격앞에 손을 들고말았다.

한칸짜리 도서실이니 설계도면 같은것도 필요없었다. 그저 기초구뎅이를 파고 휘틀속에 혼합물을 처넣은 다음 그우에다가 토피를 쌓고 지붕을 씌우면 되였다. 시공주는 송금주자신이였고 기술고문으로는 화목창고를 지을 때 그 주역을 담당했다는 리철순생물교원이 자진해나섰다.

기초구뎅이를 파는 일과 토피를 쌓는 일은 학급의 굵직굵직한 학생들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그런 류의 단순로동은 중학생들도 얼마든지 할수 있었다. 목공작업과 지붕작업 같은것을 할 때는 도시경영사업소의 전문가들도 인입할 작정이였다.

지금은 개학후 보름정도 지난 9월 중순의 쾌청한 일요일 아침이다.

타래를 지으며 무섭게 몰켜들던 구름장들은 밤사이에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고 가없이 펼쳐진 하늘은 초록색으로 아스라하다. 이 계절을 위해 천고마비라는 말보다 더 생동하고 훌륭한 말을 찾아내지 못하는것이 유감스럽다.

송금주는 식사당번인 정애경이 기지개를 켜며 부뚜막앞으로 내려갈 때 삽을 들고 합숙마당을 나섰다. 1분정도 심호흡을 한 다음 어제 오후 리철순이 공사장부지에 노끈을 늘여 표시한 부위를 따라가며 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땅속깊이 박혔다가 들리는 삽날에 흙과 함께 아침해살이 한가득 담기였다. 로동에 대한 갈망과 희열이 두팔뚝에 힘살로 솟아오른다.

도서실부지는 녀교원합숙 석탄창고가 있던 자리이다. 석탄창고를 합숙앞으로 옮기고 합숙옆에 도서실을 덧달아짓기로 하였다. 그러면 한면의 벽체는 쌓지 않아도 된다. 사설도서실의 면적이 24평방이면 대단하다고 해야 할것이다.

노끈을 기준으로 하여 직각으로 땅을 파내려갔다. 잠간사이에 1평방메터되는 면적을 30센치정도 파제꼈다. 부실부실한 사토질의 땅이여서 삽날이 잘 먹어들어가고 일자리가 푹푹 났다. 이전날 개천이 흐르던 곳이여서 터밭농사도 할수 없는 불모지였다.

송금주가 2평방메터쯤 되는 기초구뎅이를 파는 사이 정애경은 세번이나 우물터에 다녀왔다. 동이굽도리의 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입술을 옥물고 걸어오는 모양이 부뚜막일을 갓 시작한 새색시꼴이다. 그래도 자그마한 주머니가 달린 행주치마만은 그 날씬한 몸매에 제법 잘 어올린다. 우물터로 오가는 아낙네들은 벌써부터 선녀같다느니 뭐니 하면서 그에게 눈독을 들인다. 그들은 스물세살밖에 안되는 녀교원합숙의 거주자들을 다 익은 음식으로 여기고 추근추근 혼담까지 걸어온다. 혼담이 오가지 않는 우물터는 우물터가 아니다.

정애경이 드무에 물을 붓는 소리가 귀맛좋게 들린다. 날마다 이 합숙에서 듣게 되는 생활의 음악이다. 감자누룽지 같은것이 가볍게 타는 냄새가 공사장에까지 날아온다. 통감자를 찌겠다더니 어느새 벌써 저렇게 익었을가. 입에서 군침이 저절로 돌았다. 식전작업을 했더니 배가 출출해난다.

송금주는 방금 파올린 흙더미우에 삽을 박고 한참동안 땀을 들이였다. 옆구리에 두손을 올리고 심호흡을 하느라 씨근거리였다. 그때 정애경이 심각한 얼굴빛으로 송금주의 곁으로 다가왔다.

《오늘 착공까지 했으니 속이 후련하겠구나.》

그는 이런 말로 시까스르며 무슨 핀잔이라도 하듯이 상대를 흘겨보았다. 명랑하던 기상은 흔적도 없고 무엇인가 단단히 승치를 먹은듯도 하고 토라진듯도 한 표정이다. 이럴 때면 그의 눈섭끝에서 하늬바람이 일든가 싸락눈이 쏟아지군 한다. 하지만 송금주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않고 태평스레 말했다.

《아무렴, 후련하구말구. 무엇을 창조한다는거야 얼마나 흥겨운 일이니?》

송금주는 마치 그 누가 자기에게서 로동의 권리라도 빼앗을가봐 저어하듯이 상체를 앞으로 숙여 삽의 손잡이에 가슴팍을 기대고 웃음기가 자글거리는 눈으로 정애경을 돌아보았다.

《흥, 창조라구? 흥겹기두 하겠다.》

정애경은 방금전에 짝패가 한 말을 이렇게 뇌이며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얼굴에는 한여름의 고추처럼 새파랗게 독이 번져갔다.

《금주, 오늘은 아무래도 너와 좀 말을 해야겠다.》

그는 송금주에게 눈총을 얼핏 쏜 다음 입을 감쳐물었다. 그리고는 서슬이 파래서 물었다.

《너 정말 아직도 이 공사를 네 힘으로 할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럼, 할수 있지 않구.》

《듣기 싫다. 내가 우정을 걸고 하는 말인데 이제라도 이 일에서 손을 떼는게 좋겠다. 지금 사람들이 뒤에서 뭐라는지 알아?》

《뭐라게?》

《송금주란 인물이 온 다음부터 조용하던 학교가 복잡해진다는거야. 방금 우물터에서도 교원사택 아낙네들이 너에 대한 뒤소리를 하던데 귀구멍에 바늘이 와 박히는것 같더라.》

《이것봐, 그런 말은 한쪽귀구멍으로 듣고 다른 귀구멍으로 내보내면 돼. 애경이, 명심하거라. 선진분자, 혁신자가 가는 곳에서는 언제나 보수주의자들과 건달군들의 비방중상이 뒤따르는 법이야.》

송금주가 이런 말로 자기의 말을 일축해버리자 정애경은 어조를 한도 낮추면서 기세를 조금 숙이였다.

《물론 네가 선진분자이고 혁신자라는건 나도 부인하지 않아. 그렇지만 말이야 선진분자, 혁신자도 할수 있는걸 하겠다고 해야지 하지도 못할 일을 하겠다고 하면 어쩌니. 그럼 너만 선진분자가 되고 할수 없는 일을 한다고 시비하는 사람들은 다들 락후분자라는 모자를 쓰게 되지 않아. 결국은 너 한사람떼문에 숱한 락후분자가 생산되게 되니 그래 내가 친구로서 이걸 보고만 있어야 하니?》

정애경은 송금주의 삽자루를 붙잡고 앞뒤로 안타깝게 흔들어대다가 옆으로 탁 제끼였다. 그러나 삽자루는 넘어지지 않고 요지부동으로 땅속에 박혀있었다. 송금주는 땀에 젖은 귀밑머리를 손으로 쓸어올리고나서 무슨 추상파화가들의 그림이라도 감상하는듯 한 눈으로 한참동안 흥분을 참지 못하고 할딱거리는 정애경을 지켜보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둘이서 이런 언쟁을 해보기는 처음이다. 정애경의 주장이나 걱정은 롱으로만 받아들일수 없는 심각한 사회적문제였다. 그렇다고 하여 정색해서 뾰족한 말로 짝패를 타이를수 없었다. 송금주는 그런데 습관되지 않은 처녀였다. 그는 아무리 날카로운 문제도 우스개로 처리해버리는 천성을 가지고있었다.

《애경이, 난 사람과 사물현상을 보는 너의 눈에 문제가 있다고봐. 넌 지금 락후분자들의 사고방식을 기준으로 하여 내 능력을 재고있어. 그러니 어떻게 나를 제대로 리해할수 있겠니. 수령님께서 강재 1만톤만 더 있으면 나라가 허리를 펴겠다고 호소하실 때 강선의 로동계급을 보신 기준점은 강철전선의 앞장에 서있던 혁신자들이였어. 이 혁신자들이 결국은 6만톤능력의 분괴압연기에서 12만톤이라는 엄청난 강재를 뽑아내지 않았나 말이야.》

정애경은 입을 삐쭉 내밀며 《흥.》 하고 코바람을 불었다.

《제가 무슨 진응원작업반의 명예작업반원이라도 된것처럼 으시대누나. 강선의 용해공들하고 네가 같아? 그분들은 로동속에서 단련된 쇠덩이같은 사람들이지만 너야 백묵냄새밖에 나지 않는 책상물림이 아니니. 뭐 그런 주제에 도서실을 짓겠다구?》

송금주는 한쪽팔을 쳐들어 정애경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애경이, 너무 걱정말어. 이 금주는 한다면 하는 녀자야.》

정애경은 어깨우에 놓이는 송금주의 손을 성칼지게 뿌리치며 발칵 화를 냈다. 눈에서 눈물같은것이 번들거리였다.

《듣기 싫다. 말끝마다 벗이라면서도 내 충고는 귀등으로 넘기구. 난 네가 총점 3등쯤 돼두 이렇게 바가지를 긁지 않겠다. 글쎄 8등이 뭐야, 8등! 나 혼자서 1등을 암만 하면 뭘하니. 먹은 밥이 살로 안 간단말이야. 그걸 이리 다구.》

정애경은 송금주의 손에서 삽을 앗아들고 한 5분쯤 다기차게 흙을 퍼올렸다. 그는 땀을 전혀 흘리지 않았지만 그대신 숨건사를 잘하지 못했다. 힘든 육체로동을 얼마 해보지 못하다나니 인차 숨을 헐떡거리였다. 고생을 사서 하지 말라고 훈시하면서도 일손을 덜려고 삽질을 하는 정애경을 보자 송금주는 가슴이 쩡해졌다. 그래도 송아지동무인 정애경이 정애경이다.

《부엌에서 감자가 타는구나.》

송금주가 코를 벌름거리며 아부재기를 쳤다. 정애경은 그 말을 듣자 부엌으로 뛰여들어갔다. 혼자서 일손을 잡으니 오히려 마음이 안정되였다. 고생을 해도 혼자서 하고싶은것이 송금주의 솔직한 심정이였다.

자기가 발기한 일에 남들까지 끌어들여 신고를 시키는것을 그는 바라지 않았다. 일손에 불이 달리니 점점 더 힘이 나고 능률도 올랐다. 식전작업이란 이래서 신명이 나는가보다. 입속으로 영차, 영차하며 연방 걸싸게 흙을 퍼올렸다. 혼자서 하는 신역이지만 일자리가 푹푹 났다. 청춘이란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멋들어진 시절에 우리는 지금 살고있는가. 청춘시절이 한100년쯤 계속된다면 나나 애경인 후대들을 위해 참으로 많은 일을 해놓을수 있을것이다. 송금주는 고급중학교시절에 강계청년발전소건설장으로 탄원해가는 동무들을 바래줄 때 역두에서 부르던 《청년사회주의건설자행진곡》 을 저도 모르게 입속으로 불러보았다.


피끓어라 청춘아 불타라 심장아

우리들은 청년들 사회주의건설자다


나도 애경이도 피끓는 사회주의건설자다. 우리들은 손에 교편대를 들고 사회주의교육을 건설하고있다. 저기 강계청년발전소건설장이나 송남청년탄광개발지에 가있는 동무들에게 뒤져서는 안된다. 많은 동창생들이 인민군대에도 입대하고 탄광과 바다, 농촌에도 진출하였다. 제철소와 철도에서 일하는 동급생들도 있다. 그들은 모두 사회주의건설의 1선에서 힘든 육체로동을 하고있다. 언제 어디서 그들과 맞다들게 되든 떳떳한 마음으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볼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야 한다.

《영차!… 영차!…》

입속으로만 영차소리를 내던 송금주는 온 사택마을이 다 듣게 그 소리를 입밖으로 터뜨리였다. 정애경이 슬그머니 옆에 다가서는것도 모르고 열심히 삽질을 해댔다.

《잘 놀아댄다. 이 세상 일은 마치 제가 다 하는것 같구나. 어서 식사나 하자.》

그는 송금주의 손에서 무작정 삽을 나꾸어챘다.

잠시후 두 처녀는 식탁앞에 마주앉았다. 조반이라야 찐 감자 한그릇과 열무김치 두종지뿐이다. 아직은 나라의 살림살이가 유족하지 못할 때였다.

사람들은 강낭밥과 강낭국수, 강낭죽을 먹고 살았다. 강낭가루에 흰쌀을 섞어 범벅을 해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타발하지 않았다. 우리의 근로자들은 그런 음식을 먹으면서도 미래를 위하여, 후대들이 비단옷을 입고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기와집에서 살게 될 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였다. 모두들 세월이 좋아지고 나라가 흥해가는 멋에 취해 힘든줄 모르고 일했다.

《이거 내가 오늘 작식대원노릇을 잘하는지 모르겠구나. 이렇게나 먹고 꽤 일을 해내겠니?》

정애경이 식사당번답게 진심으로 걱정하는 말이였다. 송금주는 껍질이 타질사 한 감자를 한알 집어들고 곱게 눈을 흘기였다.

《넌 참 별소릴 다하는구나. 감자가 어떻다구 그래. 이거야 특식이지. 아마 세종대왕도 이런 감자는 못 잡숴봤을거야. 탁 탁 터진게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단숨에 두알을 먹었다. 정애경도 두알을 넘기였다. 오륙을 놀리고난 뒤의 조반인지라 너 한알이면 나도 한알이다.

《아닌게아니라 꿀맛이다. 소금에 찍지 않아도 목구멍으로 슬슬 넘어가누나.》

《삽질을 한 덕이라는걸 알아야 해. 그러니 이 송언니의 일에 자꾸 찬물을 끼얹지 않는게 좋아.》

《찬물이야 뭐. 그저 네가 꺼꾸러질가봐 걱정돼서 그러는거지. 그리구 말이야, 난 네가 공명주의자라는 감투를 쓰는게 싫어.》

《혁신자가 되자면 그런 감투도 각오해야지. 까짓것, 마음내키는대로 찧고 까불고 하라지.》

정애경이 설겆이를 마치고 중창훈련을 하겠다면서 음악실로 나간 다음 송금주는 다시금 삽으로 기초구뎅이의 흙을 파냈다. 나른하던 팔뚝에서 새힘이 또 솟아올랐다. 이런 속도로 일해나간다면 혼자서 적어도 5메터정도는 파제낄수 있을것 같았다. 깊이가 50센치밖에 안되는 구뎅이니 별로 품이 많이 들것도 없었다.

20분쯤 일하고나서 땀을 들이고있을 때 삽과 곡괭이를 멘 소년단열성자들이 리기석을 앞세우고 우르르 작업장으로 몰려들었다. 김영찬교무주임이 로력은 념려말라고 하면서 오는 수요일부터 교직원들로 로력협조대를 무어 공사장에 투입하겠다고 했지만 자기를 건설주 겸 시공주로 자처하고있던 송금주는 그때까지 팔짱을 지르고만 있을수 없어 소년단열성자들에게 일요일부터 당장 일에 달라붙자고 호소했었다. 단순로동이나 다름없는 기초구뎅이파기 같은것은 로력협조대가 들이닥치기전에 일찌감치 해놓고싶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의 일손도 덜고 우리마을 도서실의 발기를 지지했거나 반대했던 모든 교원들앞에서 처신도 떳떳하게 할수 있을것 같았다. 사실 이 도서실의 설립을 두고는 여론이 분분했다. 송금주가 모살이도 온전히 하지 못하면서 첫시작부터 너무 부산스럽게 군다고 빈정거리는 교원이 있는가 하면 일을 창조적으로 하는건 좋으나 너무 분별없이 굴어 믿음이 덜 간다고 걱정하는 교원도 있었으며 저 송금주때문에 우리모두가 이제 열병을 앓게 될지도 모른다고 어부재기를 치는 교원도 있었다.

정애경은 이런 여론의 생산자들을 두고 열에 떠서 비난했지만 당자인 송금주는 끄떡도 하지 않고 웃기만 하였다. 원래 그에게는 뒤소리에 잘 견디는 특수한 면역이 있었다.

공사장에 온 열성자들은 모두 12명이였다. 10분후에는 고철룡과 허장수, 박종학이 그들과 합류하였다.

《선생님, 우린 뭐 2학년 1반이 아닙니까?》

고철룡이 볼부은 소리로 하는 말이였다. 뜻밖의 급습에 송금주는 어지간히 당황해났다.

《철룡학생, 그건 무슨 투정질인가요?》

《왜 소년단간부들한테만 도와달라는 말을 하고 우리 무깍지들한테는 아무 말도 안했습니까? 섭섭합니다.》

《아, 그것 말이나요. 그거야 소년단열성자들이 무슨 일에서나 앞장에 서야 하니까요. 리수복영웅도 분대장이였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럼 나도 3학년에 올라가면 열성자가 돼야겠구나. 동주, 너 그 반장표식을 나한테 인계해야 해.》

고철룡은 가까운 사람들과 마주설 때일수록 트집을 잘 거는 류형의 소년이였다. 그가 트집을 걸 때에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주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상대방과 더 친숙해진다. 하지만 송금주는 고철룡의 그 롱을 받아줄수 없었다. 고철룡이 소년단열성자가 될만 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기때문이였다. 한데 무엇인가 끄는데가 있었다. 실력은 비록 높지 못했지만 정의감이 강하고 자존심이 높았다. 그리고 솔직하면서도 웅심깊었다. 남들에게 속을 잘 주지 않는 대신 일단 믿음이 가기만하면 속털까지 다 뽑아 섬기였다.

송금주는 1년가까이 고철룡의 검토를 당한셈이였다. 학년말시험을 칠 때까지만 해도 고철룡은 송금주를 슬슬 피해다니였다. 어떻게 된 심통인지 묻는 말에도 잘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방학 첫 소집날부터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그가 오늘 담임교원의 요청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공사장에 나타난것은 송금주에 대한 완전한 신뢰의 표시로 된다.

리기석은 15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나무꼬챙이로 금을 그어가면서 기초구뎅이가 들어앉을 땅을 일일이 토막쳐주었다. 고철룡에게는 송금주의 옆자리가 차례지고 김동주에게는 맨 끄트머리에 있는 자투리가 분배되였다. 리기석이 고철룡에게 송금주의 옆자리를 맡긴것은 담임선생의 몫까지 도맡아서 해제끼라는 요구의 표시일것이다.

《기석아, 나한텐 왜 이런 자투리를 주니? 큰 땅을 달라.》

김동주가 학급반장에게 항의를 들이댔다. 리기석은 손가락으로 그의 이마를 탁 튕겨주었다.

《욕심쟁이같은게, 지주가 되고싶어 그러니. 네 몸엔 자투리가 맞아.》

《난 싫어. 종학이하구 바꿀래.》

《맘대로 하려마.》

김동주의 강떼에 리기석은 손을 들고말았다. 학급에서 주먹이 제일 세다고 공인된 리기석이였지만 김동주의 고집앞에서는 웬일인지 늘 양보를 하군 한다. 리기석 못지 않게 주먹이 세고 왈패스러운 고철룡이도 그의 요구만은 다 받아준다. 김동주는 몸도 체소하고 나이도 그들보다 두살이나 아래지만 그 두 거물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호두알같은 존재이다. 그는 박종학을 자투리쪽으로 밀어내치고 고철룡의 곁에 있는 큰 땅을 차지하였다.

고철룡과 함께 담임교원의 일손을 거들어주려는 속심인것 같았다.

송금주는 그런 의도를 제꺽 간파하였지만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삽질만 하였다. 막대한 물동과 로력을 요구하는 엄청난 공사를 저 아이들을 믿고 시작한게 잘못된 처사는 아니였구나 하는 안도감으로 가슴이 훈훈해졌다. 여기저기서 삽날이 땅을 뚜지고 들어가는 소리가 귀맛좋게 들리였다. 기초구뎅이는 문제없다. 저 학생들의 힘만으로도 오늘중으로 끝낼수 있다. 그러면 토피는? 그것도 역시 무서울게 없다. 지붕을 올리고 천정을 누르는 일은 어른들의 도움을 받자. 그건 리철순선생도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작업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로 법석거리였다.

16명이나 되는 로력이 한데 엉켜돌아가며 왁작거리니 일자리도 푹푹 났다. 우물터로 오가는 아낙네들이 작업장을 흘끔흘끔 돌아보며 옆으로 지나가군 하였다. 교원사택의 졸망구니들도 좋은 구경거리를 만난듯이 굴착작업에 여념이 없는 16명 토공들의 로동을 유심히 감상하고있었다.

물리교원 최찬성과 식물교원 리일룡이 작업장에 들려 따뜻한 말로 송금주를 고무해주고 옆구리에 책을 한보따리씩 끼고 학교로 나갔다. 일요일이지만 영천중학교 교원들은 쉴념을 하지 않는다.

작업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는 대체로 우호적이다. 하지만 모두가 우호적인것은 아니였다. 수학교원 리신태는 먼발치에서 세모진 눈으로 작업장을 마뜩지 않게 지릅떠보다가 새까만 천쪼박지 같은것으로 구두를 한참 문대고나서 무슨 송충이라도 털어버리듯이 발을 탕 구른 다음 에헴, 에헴 하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송금주는 그가 자기의 발기를 두고 《공명주의》라는 딱지를 붙인 사람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렇다고 그를 탓할수는 없었다. 언제인가는 리신태자신이 그런 딱지를 붙인데 대해 후회하게 될테니까. 송금주는 목전의 괴로움보다도 도서실이 완공되여 은을 내게 될 앞날의 경사에 옴해있었다.

교원사택 앞동에서 리철순이 기척도 없이 작업장에 나타나 송금주의 어깨를 툭 쳤다. 그리고는 그를 슬그머니 밀어내고 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에서나 말을 앞세우지 않고 주근주근 실적을 쌓아가는 행동형의 사나이였다. 그는 동료들을 비판할 때에도 절대로 언성을 높이거나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

《시작이 절반이라고 인젠 됐소.》

그가 머리도 쳐들지 않고 귀속말로 하는 말이였다. 그 은근한 말속에 그의 진심이 있었다. 송금주도 귀속말로 답례를 표시하였다.

《선생님, 이모저모로 고맙습니다.》

《고맙긴, 하여튼 송선생의 그 배심이 마음에 드오.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훼방을 놓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데 그런 시비질에는 절대로 신경을 쓰지 마오.》

그다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손만 놀리였다. 송금주는 부엌에 뛰여들어가 로력협조대를 위해 아침에 만들어두었던 랭국을 들고나왔다.

《학생동무들, 목이 마를텐데 랭국이나 마시면서 일하자요.》

그의 말은 아무런 반응도 일으키지 못했다. 학생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랭국통곁에 다가들지 않고 부지런히 일손만 다그치였다.

송금주가 생물미역으로 건데기를 넣은 랭국을 양재기에 떠서 리철순에게 권하고있을 때 삽을 멘 젊은 탄부 세명이 작업장에 불쑥 나타났다.

《금주선생, 그새 안녕하십니까?》

단추들을 활짝 열어터친 앞자락밑으로 곤색줄무뇌가 어룽어룽한 샤쯔를 입은 허우대가 크고 어깨가 쩍 버그러진 청년이 일행을 대표해서 인사를 건네였다. 그것은 분명 구면의 인물을 대할 때의 인사였다.

《금주선생》 이라고 부르는 그 어조도 자못 당당하고 자신만만하였다. 《그새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하는것으로 보면 언제인가 한번 만난적이 있다는것을 시사하는것인데 그게 어느때던지 아리숭했다.

《갱견학을 왔을 때보다 퍼그나 축간것 같은데요.》

탄부청년은 굉장한 구면이라도 되는듯이 1년전 일을 거들며 송금주의 얼굴을 힐끗 돌아보았다. 그런즉 청년은 갱에서 송금주를 본 모양이였다. 그런데 송금주에게는 그 청년의 모습이 눈에 설었다. 갱에 들어갔던 날 송금주는 학생들을 탄부들 가까이에 내세우고 자기자신은 그들의 뒤에 서있었다. 동발목에 걸린 간데라불의 작용으로 밝아졌다그늘졌다하는 탄부들의 얼굴모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똑똑한 표상을 가질수 없게 하였다.

하지만 송금주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지낸 친지들이라도 만나는 사람처럼 스스럼없이 탄부들을 맞이하였다.

《탄부동지들, 정말 뜻밖입니다. 저희들 합숙에까지 찾아오실줄은 몰랐습니다. 혹시 어디로 이동작업을 나가던 길은 아닙니까?》

《아니요, 우린 금주선생을 도우려고 찾아왔습니다.》

곤색샤쯔는 큼직한 마라초를 한대 말아물고 허공중에 연기를 후- 하고 내뱉았다.

《도우러 오셨다구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알고…》

《글쎄 차석진지배인이 갱에 왔다가 금주선생이 우리 마을 도서실이라는걸 내오는데 오늘부터 집짓는 공사를 벌린다지 않겠습니까.》

송금주는 지배인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우리 마을 도서실문제는 영천중학교울타리안에서만 론의된것인데 어떻게 지배인동지가 그걸 알게 되였을가.

《그것 참 수수께끼같은 말인데요. 설날에 화약고에서 피끗 만난 이후로는 지배인동지를 한번도 보지 못했는데, 소문이란 정말…》

《소문을 퍼뜨린거야 영천중학교 교장선생이지요. 군당회의실에서 우리 지배인을 만나자 금주선생자랑부터 하더라나요. 그통에 우리 마을 도서실비밀이 로출됐지요, 그 비밀은 또 지배인동지를 통해 우리 갱에까지 흘러들고. 그래서 우린 오늘 아침 후야근을 마치고 나오자바람으로 이리로 달려왔지요.》

《다들 피곤하고 할일도 많겠는데요.》

송금주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곤색샤쯔는 벌써 삽질을 시작했다. 그보다 나이가 더 어려보이는 다른 두명의 탄부들도 일에 돌입하였다. 그들의 탄력있는 근육밑에서 수백년을 두고 굳어져온 지충이 삽날에 담겼다가 흙무지우로 날아가 산산이 헝클어졌다. 삽이 아니라 굴착기가 바가지로 흙을 퍼담아 내던지는것과 같은 격동적인 장면이였다.

송금주의 귀전에는 설날 탄광화약고뜨락에서 자기를 보고 《우리 갱 사람》이라고 하던 지배인의 말이 다시금 생생하게 살아올랐다. 그러자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전차갱사람으로 되고 전차갱탄부들은 그의 방조자, 후원자로 되였다. 송금주라는 인생의 모는 옥토에 뿌리를 내린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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