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2 장

4

쌍암촌은 동기와집과 초가집 30여호가 옹기종기 모여앉은 산간마을인데 멀리에서 바라보기에도 그 전경이 어수선하게 느껴졌다.

마을복판에 서있는 정자나무의 앙상한 가지들이 하늘을 간신히 떠받들고있는듯 하였다. 마을앞을 감돌아간 시내는 눈속에 묻혔다. 마을뒤의 비탈밭 한가운데에 서로 의지하고 붙어선 커다란 바위가 높이 솟았는데 쌍암촌이란 마을이름이 그 바위에서 나왔으리라는것이 인차 알렸다.

장군님께서 전령병과 함께 마을에 들어서신것은 저녁무렵이였다.

마을길에는 사람그림자 하나 얼씬거리지 않고 집집의 문들은 굳게 닫겨져있었으나 촌쏘베트쪽에서만 지붕에서 날름거리는 불길을 끄느라고 대여섯명의 농민들이 쇠스랑으로 불이 달린 짚을 긁어내린다, 눈을 뿌려올린다 야단법석을 떨었다. 한시간전에 마을에 달려들어 략탈질을 한 구국군들이 지른 불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불을 다 끈 다음 쏘베트사무실로 들어가 그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쌍암촌의 형편은 마촌과 비슷하였다. 그런데 유격근거지의 중심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이 외진 마을은 근처의 산속에 숨어있는 구국군들의 략탈질에 시달리고있었다. 농민들은 앞을 다투어 왜놈들과 싸우지는 않고 략탈질을 일삼는 구국군들에게 원망에 찬 말을 퍼붓는가 하면 쏘베트지붕에 불이 달렸는데도 얼굴을 내밀지 않는 마을사람들을 나무리였다. 그러자 얼굴이 강마른 농민이 쏘베트가 시책을 잘못 써서 사람들에게 돌리였기때문에 그런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들의 말을 주의깊이 듣고계시던 장군님께서는 구국군들이 쏘베트에 달려들어 자주 행패질을 하는가고 물으시였다.

내내 말이 없이 고개를 숙이고있던 얼굴이 너부죽하고 무던하게 생긴 농민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나이가 마흔살쯤 되여보이는 그 농민은 자기를 지유복이라고 소개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때까지는 량곡이나 수탈해갔는데 오늘은 도대체 무슨 심산인지 쏘베트회장을 잡아가겠다고 으르다가 그 사람이 몸을 피하고 없자 이 사무실에 불을 지르고 달아났습니다. 장군님, 제 무식한 소견에두 그것들이 쏘베트에 무슨 승치를 먹은것 같습니다. 우리 조선사람들한테도 썩 마음에 내키지 않는데 그 사람들한테야 달가울리 있겠습니까. 쏘베트는 그 이름부터가 생소해놔서 첨부터 모두 정을 붙이기 어려워했습니다. 여기에 쏘베트가 첨 생겼을 때 현에서 큰 쇠버치를 마차에 실어왔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낯선 말에 혀가 잘 돌지 않아 쏘베트를 쇠버치라고 부른 사람들이 있어 그런 소문이 돈것 같습니다. 쇠버치가 얼마나 큰가 구경하자고 찾아오는 로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쏘베트가 우리 농군들 심정을 알아 못 주고 시키는 일들도 다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왜놈들이 없구 지주가 없는 정치구 해서 여태까지 참아왔는데 이제는 저 구국군들까지 접어드니 어떻게 합니까? 마을에 있는 얼마 안되는 적위대로는 도저히 막아낼수 없습니다. 장군님, 이 고장에두 유격대부대를 주둔시켜주시면 마음편히 살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날 밤 마을사람들을 모아놓고 쏘베트의 그릇된 시책들과 이미 카륜회의에서 제시하고 명월구회의에서 구체화하신 인민혁명정부로선에 대하여 알기 쉬운 말로 하나하나 깨우쳐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구국군들과는 무력으로 맞설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 혁명에 대하여 옳은 인식을 가지도록 참을성있게 꾸준히 좋은 정치적영향을 주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밤이 깊도록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신 그이께서는 자정이 썩 지나서 쌍암촌을 떠나시였다.

하늘에 얼어붙은 둥근달은 눈길우에 차거운 달빛을 깔았다.

발밑에서 눈밟히는 소리가 빠드득빠드득 하고 울렸다.

장군님께서는 털외투의 호주머니에 손을 지르시고 무겁게 발걸음을 옮겨가시였다.

그이의 군화밑에서 눈이 다져지는 소리가 성림의 가슴을 아프게 저미였다.

장군님께서 마을을 떠나서 퍼그나 걸어나오시였을 때 뒤에서 웬 사람이 따라오고있었다.

지유복이라는 농민이였다.

그는 덧저고리의 품속에서 검정보자기에 싼 자그마한 꾸레미를 꺼내여 전령병에게 내밀었다.

전령병은 한걸음 물러섰다.

《이게 뭡니까?》

《아까 방에서 보니까 장군님께서 발이 젖어계시던데 갈아신도록 해주시오.》

아래목에 놓아 덥힌것인지 따뜻한 온기가 스며있는 버선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다가서시여 우리는 노상 발이 젖어있는데 습관이 되여 괜찮다고 하시며 굳이 사양하시였다. 그러자 농민의 얼굴에는 노여움에 가까운 서운한 빛이 어리였다.

《저희들이 아무리 도리가 없어두 어찌 발이 젖어계시는 장군님을 이 추운 길에 떠나보내고 발편잠을 자겠습니까?》

농민은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였다.

장군님께서는 하는수없이 받아야겠다고 전령병에게 이르시였다.

전령병이 버선을 받고 장군님께서 사의의 말씀을 하신 뒤에도 지유복은 물러설 차비를 안했다.

그는 덧저고리의 앞자락을 바로 여미기도 하고 두손을 마주잡기도 하면서 쭈밋거리기만 했다.

《우리 걱정은 마시고 추운데 어서 들어가보십시오.》

그러나 지유복은 머리를 들지 못하고 사죄하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까는 장군님께서 무한정 아량을 보여주시니 모두 별의별 소리를 다했습니다.… 쏘베트를 내오구 처음 정치를 하는건데 어떻게 백이면 백가지를 다 잘하겠습니까.… 유격대는 목숨들을 내놓구 왜놈들과 싸우는데 여기서는 그까짓 밭 몇평을 공동소유에 내놓는다구 가슴들을 앓는데 그저 저희들이 깨지 못하구 제 리속만 생각다나니 그렇습니다. 이 깨지 못한것들의 말을 흘려버리시구 개운하신 마음으로 돌아가주십시오!》

장군님께서는 그와 헤여진 다음에도 여러번 뒤를 돌아보시였다. 지유복농민 역시 가다가는 돌아서서 이쪽을 바라보군했다.

멀어지는 그의 모습이 어스름속에 녹아없어지자 장군님께서는 성큼성큼 걸음을 다그치시였다.

(아, 어떤 인민인가?)

눈보라가 일었다. 안개구름처럼 하늘을 뒤덮는 눈보라는 달을 삼켜버렸다.

그이께서는 몸을 앞으로 숙일사 하고 바람과 싸우며 힘겨웁게 발걸음을 내디디시였다. 외투자락이 바람을 안고 펄럭거렸다. 맞받아 밀려드는 눈보라에 숨이 막히고 속눈섭이 떡떡 얼어붙었다.

야수의 아우성처럼 울부짖으며 기승을 부리는 눈보라속을 걸어가시는 그이께서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우다가는 얼어붙는 속눈섭을 씻군 하시였다.

마촌에 돌아오신 장군님께서는 이튿날 하루종일 여러 지방에 파견되였던 공작원들로부터 실태보고를 받으시였다. 지방마다 형편이 서로 달라 일이 잘되는 고장도 있었지만 쏘베트가 선데서는 좌경바람에 엄중한 사태가 빚어지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여기로 오시기 전에 근거지에서 좌경적편향이 발생하여 일이 순조롭게 되여가지 못하고있다는것을 이미 알고계시였다.

그러나 사태가 이 지경에, 이런 파국적인 위기에 이르렀으리라고는 상상 못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가슴이 허물어져내리는듯 하시였다. 좌경적인 쏘베트로선을 주장하고 실시한 사람들에 대한 분격이 치밀어올라 진정할수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밖으로 나가 마을길을 홀로 걸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털외투를 걸치시고 고개를 수굿하신채 무거운 걸음을 옮겨가시였다.

눈길을 밟는 소리만이 밤의 정적을 조용히 흔들었다.

마을은 고요에 묻혀있었다. 눈보라가 집집의 울타리밖이며 나무가리옆에 눈을 한길이나 되게 쌓아올렸다. 길바닥의 눈은 바람이 말끔히 쓸어가 사람들의 발에 다져진 자리만이 달빛에 희미하게 번들거렸다

장군님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고 집집의 방문들을 돌아보게 되시였다.

고삭아서 후줄근하게 처져내린 처마의 그림자가 드리워 침울하게 보이는 문들도 있고 새 동기와지붕의 빳빳하게 쳐들린 처마밑에 달빛을 받아 환한 문들도 있으며 불빛이 발기우리하게 어린 방문들도 있다.

사람들의 얼굴모습처럼 서로 다른 그 문들은 한없는 기대에 차서 그이를 바라보는것 같았다.

저 문들안에서는 가슴에 피멍이 들게 고생살이를 하며 각이한 운명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아이들과 안해와 부모들을 옆에 눕혀놓고 살아갈 걱정을 하다가 시름많은 가슴을 펴지 못한채 쪽잠이 들었을것이다. 어찌 보면 그 모든 집집의 방문들에서는 그들의 요구와 주장과 희망이 숨쉬고있는듯 하였다.

(인민들의 요구가 혁명의 구호로 웨쳐지며 혁명이 참되게 인민대중을 위한것으로 되게 한다면 혁명은 몇몇 사람의것이 아니라 인민대중자신의 일로 될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도대체 어떤 사태가 벌어졌는가?)

현당의 일부 사람들은 근거지안에서는 사회주의혁명을 해야 한다고 그릇되게 주장하면서 쏘베트를 통하여 《공동생활》, 《공동경작》을 실시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인민들이 그것들을 기쁘게 받아들이는가, 마지못해 받아들이는가, 반감을 품고 받아들이는척만 하고있는가에 대하여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고려하지 않았다. 혹심한 주관주의에 사로잡혀 몇몇 사람의 의지면 못해낼 일이 없을것 같이 여기고 인민들의 리익, 인민들의 념원, 인민들의 감정과 생활풍습까지도 무시하면서 좌경적인 쏘베트로선을 내휘둘렀다. 리재명이같은 사람들은 인민들의 심정을 대변하려고 하였다가 그들로부터 강박을 당하였다.

그들은 인민들에 대하여 소경이였으며 인민들은 자기들의 심정을 알아주지 않는 그들을 자기네와는 다른 사람들로 여기고 반신반의하면서 간격을 두고 대하게 되였다. 눈에 보이지 않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서서히 맺혀진 티끌만 한 이 하나의 문제점으로부터 시작하여 혁명과 인민대중의 뉴대에 금이 가고 혁명의 대중적지반이 흔들리우는것과 같은 엄중한 사태가 생겨났다.

그이의 눈앞에는 문득 쌍암촌의 쏘베트지붕에서 날름거리던 시뻘건 불길이 떠올랐다. 다른 지방들에 갔다온 공작원들도 최근시기 구국군들이 구나 촌의 쏘베트들에 달려들어 행패질을 한 사실들을 보고하였다. 그들의 이런 기습을 식량을 빼앗으려는 비적행위로만 볼수 없다. 쌍암촌을 비롯한 여러 지방들에서 쏘베트에 대한 그런 기습이 거의 같은 시기에 거듭된것으로 보아 그 방자한 행패질밑에 그 어떤 정치적감정이 깔려있는것이 아닌가? 구국군은 쏘베트의 좌경적인 시책때문에 우리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우리 혁명에 대하여 적대감을 품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좌경적인 쏘베트로선은 혁명과 인민대중의 혈연적인 뉴대를 심히 약화시켰을뿐아니라 구국군들과의 관계도 극도로 악화시킨것이 아닌가?

쏘베트로선의 제창자들은 여태 이런 엄중한 후과가 빚어지고있는것을 모르고있었는가? 알면서도 모르는척 했는가?

그들은 발생하는 후과들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왜 그토록 험악하게 놀아났는가? 무식으로부터 다른 나라 혁명의 경험을 통채로 받아들여 쏘베트로선이 옳다고 믿었기때문에, 《정의감》에 불타서 그토록 광분하였는가? 종파적야심때문인가? 근거지를 해치려는 의식적인 리적행위인가? 고의적인 리적행위라면 문제는 간단히 서며 해결하기도 훨씬 쉬울것이다.

그러나 쏘베트의 일군들속에는 혁명이라는것은 이렇게 하는것인가 하여 쏘베트로선을 적극 지지하고 그 집행을 위하여 헌신분투한 사람들이 많지 않는가. 과거에 피눈물을 삼키며 살아온 소박한 인민들속에도 못마땅한것은 울며겨자먹기로 참으면서 왜놈이 없고 지주놈이 없는 정치라고 쏘베트를 진심으로 떠받든 사람들이 많지 않는가.… 한가지나 두가지 원인이 아니라 크고작은 그리고 뚜렷하기도 하고 희미하기도 한 여러가지 요인들이 하나로 뒤엉켜 이런 사태를 빚어낸것이 분명하다.

장군님께서는 마을을 벗어나 동림촌쪽으로 멀리까지 가셨다가 다시 돌아오시며 이 사태를 어떤 방법으로 수습할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하시였다. 하나의 원인으로부터 생긴 사태라도 그 하나의 원인을 제거하고 사태를 바로잡는데는 여러가지 방도가 있을수 있을것이다. 하물며 인간과 생활이 배태하고있는 헤아릴수 없는 원인에 의하여 생긴 사회적현상을 수습하기 위한 방도를 찾아내기란 헐한 일이 아니였다.

좌경적편향이 심하게 나타난 지방들에 나갔다온 동무들이 리적행위라고 규탄하며 부르짖던 말들이 귀전에서 쟁쟁히 울리였다.

그이께서는 걸음을 뚝 멈추시였다.

(그럼 주동인물들은… 조직적인 제거란 말인가?)

푸르스름한 달빛이 흐르는 하늘에서 별들이 흠칫 움츠러들며 얼어붙는듯 하였다.

그이께서는 민족주의자들과 종파분자들의 그 피비린내나는 파쟁을 조금이라도 련상시킬수 있는 방법을 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시였다.

(우리는 새형의 공산주의자들이다!)

그러면 근거지에 처음으로 정권을 세우고 아무런 경험도 없이 그 정권을 운영해보는 과정에 생긴 과오로, 이를테면 세상에 갓 태여난 아기가 앓는 소아병과 비슷한 하나의 좌익적인 소아병으로 보고 조심스럽게 고쳐나갈것인가?

장군님께서는 결론을 내리시는데 서두르지 않으시고 심중하게 거듭거듭 생각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날 밤에만 마을길을 거니신것이 아니였다. 사람들은 그 다음날, 다음다음날 밤에도 그이께서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마을을 에도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이의 사색에 방해로 되지 않게끔 멀리 뒤에 떨어져서 걸으며 호위의 밤을 밝히는 전령병의 얼굴도 눈에 띄게 깎이웠다.

마을에 며칠째 고요가 계속되였다. 그 고요속에서 밤마다 마을을 거니시는 장군님의 발걸음소리만이 울렸다.

그것은 비상한 침묵이였으며 류다른 고요였다. 사람들로 하여금 반성케 하고 사색케 하고 자각하고 헌신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침묵이며 고요였다.

리재명을 비롯한 쏘베트 일군들은 매일아침 비자루와 가래를 들고 나와 유격대원들과 한데 어울려서 마을길을 쓸고 우물터의 얼음을 까내고 재를 뿌리였으며 낮에는 산에 올라가 화목을 찍어내려 렬사가족들과 유격대후방가족들의 집에부터 나누어줬다.

부녀회장 림성실은 부녀회원들을 이끌고 유격대원들의 빨래를 삶아 먼 원정의 길에서 오른 먼지와 땀때를 깨끗이 씻었다. 집집에 늘인 바줄에서 하얀 빨래가 바람을 안고 펄럭이여 사람사는 마을같이 화기가 돌았다.

현당이 마련한 원호물자가 여러대의 말파리에 실려 마촌에 도착하였다.

원호물자운송대를 인솔하여온 홍병일은 장군님께 앓는 몸이라 만나뵙지 못해 미안하다는 권일균의 의사를 전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괜찮다고 하시고는 그의 독감은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홍병일은 좀 나아간다고 대답하였다.

이 고요의 나날에 장군님 자신께서도 분과 초를 쪼개여쓰시며 매우 긴장하게 일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우선 라자구일대의 구국군부대에 공작나가있는 리광에게 편지를 쓰시였다. 그이께서는 편지에서 쏘베트의 시책들에 대한 구국군 상층부와 하층병사들의 반향을 구체적으로 알아서 보고할것이며 그들이 우리 혁명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가지도록 꾸준히 정치적영향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리고 구국군들과 협동하여 왜놈들의 창고나 수송대를 치는 습격전투를 진행함으로써 그들에게 무기획득과 식량해결의 방법을 가르쳐주라고 지시하시였다. 그 편지는 중국말을 잘하는 박훈이 가슴에 품고 라자구로 떠나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느날 아침일찌기 한흥권이와 장룡산을 거느리시고 큰배나무골에 올라가 막치기까지 들어갔다가 나오며 유격대병실이며 무기수리소와 병원, 인쇄소들을 지을 자리들을 잡아주시였다. 그리고 짬이 생기는대로 흰종이를 펴놓고 새로 지을 유격대병실설계도 초안을 작성하시였다.

어느날 밤 장군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겨 김진세네 집앞을 걸어 지나가시다가 방문에 불빛이 불그레하게 어려있는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시였다.

끝없이 깊어가는 밤과 함께 마을은 고요히 잠들고있었다. 뒤산의 앙상한 나무가지들에서 바람이 들릴듯말듯 휘파람을 불고 먼 개울쪽에서 얼음판이 갈라터지는 소리가 둔중하게 울렸다.

불빛이 불그레한 방문에는 머리를 떨구고 앉아있는 사람의 그림자가 비껴있었다. 김진세로인이 분명하였다.

왜놈들에게 학살된 두 아들 생각에 가슴이 터져올라 잠 못 드는것인가, 집을 나간 후로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조차 모르는 며느리를 그리며 저렇듯 밤새워 속을 썩이는것인가.…

장군님께서는 한숨을 후 내쉬시였다. 윤보금이라는 그 며느리는 온성의 친정집에 가있기나 한지, 정이 깊으면서도 남편이 잘되기를 바라서 집을 나가자니 얼마나 괴롭고 억울했으랴. 친정에 가있다고 해도 집난이가 친정집에 돌아와 눈치밥을 먹으며 지내자니 하루하루가 얼마나 괴로우랴.…

방안에서 로인의 기침소리가 났다.

장군님께서는 들어가서 로인과 괴로움을 나누며 위로의 말도 해주고싶은 심정이시였으나 밤이 너무 깊어 걸음을 돌리시였다.

삼태성옆에서 별찌가 떨어져 현란한 포물선으로 하늘을 누비였다.

마을길을 걸어가시는 그이의 눈앞에는 김창억의 억대우같은 모습이 삼삼히 떠올랐다. 그런 청년을 유격대에 받지 않으면 누구를 받겠는가. 한때는 조혼했다고 받지 않았다가 그다음에는 안해가 근거지에서 도망쳤다고 떠밀어버렸다. 마동호에 대하여도 그렇게 취급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마종삼이라는 그 농민은 어디로 갔을가. 살길을 찾아 류랑의 길을 헤매는가, 《토벌대》놈들에게 사살되였는가.…

그이께서는 쏘베트로선을 주장한 사람들이 하나하나의 인간들은 전혀 소홀히 여기고 그들의 운명에 대하여 무책임하게 대한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시였다. 그들은 한사람은 열사람, 백사람과 련결되여있으며 따라서 그 한사람을 잃으면 천사람, 만사람도 잃을수 있다는 리치를 모르고있다.그이께서는 윤보금이나 마종삼의 운명이 그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근거지 밖에 있는 인민들에게 줄 영향이 몹시 우려되시였다.

뒤에서 문득 인기척이 났다.

그이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뒤를 돌아보시였다.

길가를 따라 웬 그림자가 엉거주춤하고 걸어오다가 멎어섰다.

김진세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시였다. 로인의 몸에서는 부엌재냄새같은것이 풍겼다.

《로인님, 이 밤중에 웬일이십니까?》

《장군님!》 그는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나직이 부르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로인의 눈확에서는 번쩍거리는것이 보였다.

《전날에는… 무슨 정신에… 그런 쓸소리, 몹쓸소리를 다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며늘아이는 제 친정에 가있을게고… 아들녀석은 적위대원이면… 그쯤하면 무슨 더 바랄게 있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그의 마음이 가늠이 되시였다.

《봉남이는 잘 놉니까?》

그이께서는 말머리를 돌리려고 미소를 지으며 물으시였다.

그러나 로인은 그 물음에는 대답을 안했다.

《장군님! 저희들의 이 소소한 일에 마음을 쓰지 말아주십시오!》

그의 목소리는 떨리였다.

《장군님께서 저희 집앞을 사흘밤이나 지나가고 지나오는걸 봤습니다!》

《아, 저는 딴일이 있어서 다녔습니다.》

《아닙니다! 장군님, 싹 잊으시고 편히 주무셔주십시오. 그래야 저희네도 맘이 편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로인의 손을 뜨겁게 잡아쥐시였다.

《자겠습니다. 로인님, 어서 집으로 들어가십시오.》

장군님께서는 한팔로 그의 허리를 붙안고 걸음을 내디디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김진세를 끼고 김진세는 그이의 손을 붙잡고 뜨거운 정에 휩싸여 집쪽으로 걸음을 옮겨가는데 로인이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허- 내 이거 큰 랑패를 보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장군님께서 일전에 꼬신 새끼를 잘 사려서 벽에 걸어놨는데 십리평에 있는 팔촌동생이 와서 보고 가져갔습니다.

못 가져간다고 했는데도 그 사람이 나중에는 우격다짐으로 빼앗아가다싶이 했습니다. 십리평에 가서 사람들한테 보이면서 우리 장군님이 어떤장군인가 자랑하겠다는게 아닙니까. 그러느라면 이제 그 새끼가 온 근거지안을 다 돌아가다가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판인데 아무래도 잃어버린것 같습니다. 가보로 깊이 감추어두자던노릇이 이제는 아주 잃어버린것 같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허허… 그까짓 새끼야 잃어지면 뭐랍니까.》

갈림길에서 로인과 헤여진 장군님께서는 숙소로 향하시였다.

그이께서 숙소의 울바자옆을 돌아가시는데 마당에서 농민복차림을 한 중키의 남자가 달려나왔다. 김중권이였다.

그이께서는 팔을 벌리며 마주 달려가시였다.

《이게 누구요?》

《사령관동지!》

장군님께서는 그를 포옹하시고 잔등을 쓸어만지시였다.

《수고했소!… 수고했소!》

량강구에서 헤여진 후로 처음 만나는 그였다.

그이께서는 김중권을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가시였다.


×


등잔불이 방안을 환히 밝혔다.

장군님앞에 앉아있는 김중권은 물기가 번쩍이는 눈으로 그이를 바라보다가는 얼굴을 수굿하고 뒤덜미를 슬슬 쓸어만지군 하였다. 기쁨이나 반가움에 겨우면 말이 더 굳어지는 그였다.

그의 얼굴에는 준엄한 시련과 간난신고의 흔적이 력연했다. 두만강변의 세찬 바람에 검스레하게 탄 얼굴은 첫눈에 모색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험하게 깎이웠다.

이마의 한쪽모서리와 왼쪽관자노리에는 긁히워 피터진 자리가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가 겪은 시련이 짐작되시여 아픈 마음으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시였다.

《여기 도착하자 모두 동무 생각을 했소. 우리가 근거지로 돌아온걸 알고 왔소?》

《처음에는 전혀 모르고 쌍암촌에 좀 다녀가자고 들렸다가 사령관동지께서 왔다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흥권동무랑 박훈동무랑도 다 왔습니까?》

《다 왔소. 이제는 여기에 아주 든든히 자리를 잡겠소.》

《그렇습니까! 작년 가을부터 사령관동지께서 이쪽방향으로 나오실것 같다는 소문이 돌아 여기 인민들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쌍암촌에서부터 단숨에 달려와 몸이 화끈 달아오른 그는 덧저고리를 벗어 옆에 개여놓았다. 그 솜덧저고리의 어깨죽지와 앞섶에는 기운 자리가 있고 불에 그슬린 자리도 몇군데 보였다.

《그새 외따로 떨어져 공작하느라고 고생이 많았겠소. 앓지는 않았소?》

《예, 고생이야 무슨 고생이겠습니까. 성과가 적습니다. 속이 타번져 사령관동지께서 나오시기만 기다렸습니다.》

《우리도 동무 걱정을 많이 했소.》

장군님께서는 김중권의 보고를 듣는것을 뒤로 미루고싶으시였으나 이렇게 뜨거운 정이 오가는 가운데 그가 열을 뿜으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바람에 그것이 곧 사업보고로 되고말았다.

그의 이야기는 두시간이나 계속되였다.

김중권은 분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근거지안 일을 바로잡지 않고는 근거지밖에서 반유격구를 절대로 꾸릴수 없습니다. 현당은 시기상조라고 하며 반유격구를 꾸리는 일에는 완전히 무관심입니다. 그뿐이면 또 괜찮습니다. 근거지의 일부 지방에서 죽탕을 쒀놓아 두만강류역 인민들속에서 적지 않은 의혹과 동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래서 현당의 권일균동무나 홍병일동무와도 이야기해봤는데 근거지의 특수한 조건에선 사회주의혁명을 할수 있다고 땅땅 큰소리만 치면서 우리 로선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도저히 론박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왜 론박할수 없소?》

《이번에 단독공작을 수행하면서 제 리론적준비가 얼마나 빈약한가를 통감했습니다.…》 김중권은 잦아드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장군님께서도 그가 힘에 부치였으리라는것을 느끼시였다.

김중권의 눈은 불을 뿜는듯 번쩍이였다.

《권일균은 엠엘파고 홍병일은 화요파입니다. 그들의 행동에는 틀림없이 종파적야심이 깔려있습니다. 그러지 않고야 어떻게 그토록 열에 떠서 제 주장만 뻗대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조직적으로 문제를 세워 제거합시다.》

《나도 여러모로 생각해봤소. 책임이 큰 몇몇 사람을 제거한다거나 쏘베트를 페지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건 아니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쏘베트로선에 공명하고 추종했던것만큼 우선 그들이 쏘베트로선이 왜 나쁜가를 똑똑히 알도록 해야 하오. 그다음에 인민들자신의 의사에 따라 정권형태도 교체하고 사람들 문제도 봐야 하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꾸준히 해설하고 실천을 통해서 인민들스스로가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똑똑히 깨닫도록 해야 하오. 인민들은 진리를 깨닫기만 하면 우리를 따를것이며 진심으로 혁명을 도와나설거요. 나는 그렇게 믿소.… 그래서 쏘베트관계자들의 모임을 열어 군중들도 참가시켜서 근거지창설 이후의 사업이 저절로 총화되게끔 론전을 벌릴가 하는데… 동무가 보고 겸 주토론을 하는게 어떻겠소?》

《제가요?》

김중권은 자신없는 얼굴로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천천히 준비하오. 내가 도와주겠소. 인민들을 깨우치는 이 일에는 시간을 아끼지 말아야 하오.》

김중권은 그이께서 시간에 대하여 너무도 여유작작하게 생각하시는것 같아 얼굴빛이 초조해졌다.

《사령관동지, 제가 량수천자부근 농촌마을에 갔을 때 두만강일대에서는 적의 군사이동이 잦았습니다. 대낮에도 새 부대들이 이쪽으로 건너왔습니다. 인민들속에서는 저놈들이 이제 곧 〈공산구역〉을 〈토벌〉한다는 소문이 떠돌고있습니다.》

《동무는 그런 생각은 말고 맡은 일에 전념하오. 어떤 역경에 처하더라도 근거지를 꾸려놓고봐야 하오.》

이때 정지간문이 여닫기는 소리가 나더니 부엌쪽에서 주인늙은이가 누구인가를 반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 밤중에 어떻게?》

《찬거리를 좀 구해왔어요.》

《원, 부녀회장한테 이런 수고까지 시켜서 되겠소?》

그 소리에 장군님께서 아래방쪽에 눈길을 돌리시였다.

《웃방에는 누가 왔어요?》

《이전에 왔던 김중권이라는 그 사람이 찾아와서 자꾸 얘기를 하는 통에 장군님께서 주무시지도 못한다니까.》

늙은이는 웃방에서 들을가봐 저어하는듯 목소리를 죽여가며 소곤거렸다.

《하루밤도 편히 쉬지 못하셨는데 날래 유격대병실에나 가서 자고 래일 아침에 와서 얘기했으면 좋지 않겠소. 속상해서…》

《누구라구요?》

《이전에 왔던 김중권이라는 그 사람이라니까.》

《예- 저는 그럼…》

《올라와 좀 몸이나 녹이지 않구.》

이윽고 정지문이 다시 여닫기는 소리가 나고 발자국소리가 뜨락을 총총히 지나 아득히 멀어져갔다.

방안에는 따뜻한 화기가 휘감겨드는듯 하였다.

김중권은 괴로운 얼굴로 담배를 꺼내들었다가 그이께서 보시자 도로 호주머니에 넣으려고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생각깊으신 눈길로 그를 건너다보시며 나직이 물으시였다.

《담배를 배웠소?》

《적후공작에서 속이 타는 일이 많으니 자연히 피우게 됐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이게 정말 동무가 됩니다.》 하고 말하며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피우오, 어서 피우오.》

이튿날 이른아침, 김중권이보다 먼저 일어난 장군님께서 밖으로 나가보시니 뜨락에는 정갈하게 하얀 눈이 한벌 깔려있었다. 그 눈우에는 총총히 걸어나간 녀자의 발자욱이 찍혀있었다. 간밤에 주인댁에 왔다간 림성실의 발자욱이 틀림없었다. 그 발자욱들을 보니 림성실은 마차길에까지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울바자밖에서 오래동안 머뭇거린듯 하였다. 아마 김중권이 나오기를 기다린 모양이다.

울바자밖에 나와서신 그이께서는 허리에 두손을 올리시고 흰 입김을 날리며 다심한 눈길로 그 발자욱들을 바라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김중권이 량강구를 떠난 다음 한흥권에게서 그들의 사연을 들은 일이 계시였다.

(그러니 저 부녀회장동무가 한흥권동무가 말한 그 녀성이 아닌가. 룡정에서 중학교를 졸업했다더니 애인의 뒤를 따르자고 여기 유격근거지로 들어온 모양이군.…)

뜨락쪽에서 비자루질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일어났는지 김중권이 싸리비자루로 눈을 쓸어나왔다. 그는 차겁고 신선한 아침공기속에서 기운이 우쩍우쩍 솟아나는듯 비자루를 걸싸게 놀렸다. 그의 량옆으로 번갈아 날아오르는 비자루끝에서 눈가루가 뽀얗게 날렸다. 그렇게 눈을 쓸던 김중권은 림성실의 발자욱을 알아보았는지 문득 비자루를 멈추고 한동안 그 무슨 상념에 잠기는듯 하더니 다시 조심조심 눈을 쓸어나오며 그 자욱도 지워버렸다.

장군님께서는 이윽히 그 모습을 지켜보시였다.

(저 동무는 지난날 애인의 가슴에 그토록 아픈 상처를 남겨놓고도 오늘은 여기 근거지에 들어와 만났는데 왜 또 모르는척 외면하는가?… 그사이 갈라졌는가? 아니면 자기들의 관계를 숨겨야 될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겐가?)

밤새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하여 그이의 어깨에 흰눈이 한송이 두송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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