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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회


제 2 장

3

장군님께서는 집을 나서시였다. 전령병 리성림이와 리재명이 그이의 뒤를 따랐다.

눈에 덮인 골안에 해빛이 가득찼다. 눈이 시여 앞을 볼수가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손을 이마에 올리시고 마을을 둘러보시였다.

리성림은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우며 장난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야, 이건 바늘로 막 찌르는것 같네!》

이 고장의 풍토에 습관이 된 리재명은 전령병의 그 모습이 재미나고 우스워 실눈을 지으며 미소를 머금었다.

《이런 날에는 아닌게아니라 십리를 걸어가도 얼굴이 새까맣게 타고 살가죽이 벗겨진다고 합니다.》

《회장동지, 그럼 오늘 한번 훌렁 벗어던지구 일광욕을 해볼가요?》

《허허허…》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이런 롱말에는 아랑곳없이 마을길을 따라 걸음을 천천히 옮기시였다.

바람 한점 없으나 지독한 추위였다. 면도칼같이 예리한것이 코등이며 볼을 저며내는것 같다. 허공에서는 운모가루같은것이 반짝거리며 아물아물 날아오르기도 하고 떨어져내리기도 한다. 속눈섭이 떡떡 얼어붙는다.

영림서자리인 유격대병실쪽에서 들려오는 노래소리도 한껏 울려퍼지지 못하고 공중에 고드름으로 얼어붙는듯 하다.

말없이 걸음을 옮기시던 장군님께서는 전령병을 돌아보지 않고 물으시였다.

《저기서는 아침부터 오락회요?》

리성림은 흰 입김을 훌훌 날리며 웃음이 가득 담긴 얼굴로 대답했다.

《여기 왕청유격대 장룡산중대장동무가 정말 괴짜입니다. 우리가 남만진출에서 부른 노래를 오늘 하루사이에 다 배우겠다고 들구일어나 박훈중대장동무를 못살게 굴었습니다. 중대장동무는 오늘은 쉬여야 한다고 잘라버렸는데 전광식동무가 맡아나섰습니다.》

《그 동무 거참 대단한 욕심꾸러긴데.》 하고 장군님께서는 웃으시였다.

《그런데 전광식동무가 장룡산중대장한테 넘어갔다는게 조화로군. 응? 그렇지 않소? 오락회때마다 노래를 한번 시키자면 그렇게 비싸게 굴던 전광식동무가 말이요.》

《장룡산중대장동무는 마음에 낀 촌때는 노래로 닦아내야 한다면서 그저 노래를 배우는 일인게 아니라 왕청유격대 촌때를 닦아내는 사업이라고 큼직하게 간판을 내붙이고 구슬리다가 하하하 참, 노래 한곡에 메돼지 한마리씩 잡아낸다고 하지 않았겠어요!》

《그러다간 왕청 메돼지를 다 잡아내겠소! 좌우간 장룡산동무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노래로 때를 벗긴다. 얼마나 비슷한 소리요.…》

장군님께서는 큰소리로 웃으시였다. 리재명이도 따라웃었다.

여기저기에서 마을사람들이 길로 달려나와 장군님께 인사를 올렸다.

그이께서는 그들과 친절히 인사를 나누시고 살아가는 형편에 대해서도 물으시였다.

사람들은 그이의 물으심에 대답하면서도 세상을 들었다놓고있는 젊으신 장군님의 영상을 가슴에 깊이 새겨두려고 그이의 용모며 군복차림이며 무장을 여겨보는데 더 마음을 쓰는것 같았다.

장군님께서는 흔연하게 웃으시며 농민들의 엉뚱한 물음에도 진지하게 대답하여주시였다.

노루가죽으로 등거리를 해입은 건장한 농민은 장군님의 손을 잡고 눈물이 그렁하여 물었다.

《장군님, 삼년후에는 조선이 독립이 된다는 소문이 도는데 그게 실말입니까?》

《조국을 하루빨리 광복시키자는것은 전체 조선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독립이 빨리 되는가, 늦게 되는가 하는것은 우리가 왜놈을 칠 힘을 어떻게 마련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 인민들이 한데 뭉쳐 무장을 들고나선 반일인민유격대를 적극 도와나선다면 조선은 빨리 독립이 됩니다. 독립은 누가 선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기 힘을 믿고 싸워서 쟁취해야 합니다.》

노루가죽등거리를 입은 농민뒤에 서있던 눈이 총명하게 생긴 로인이 앞으로 나섰다.

리재명은 그에게 길을 내여올리라고 눈짓하였다.

마을길을 따라 유격대병실쪽으로 가시던 장군님께서는 오풍헌네 집모퉁이를 도시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 집 울바자에 색이 난 광고종이가 한쪽귀가 찢어져 펄럭이고있었던것이다. 지난가을에 붙인것이다.

《우리는 왜 즉시 사회주의혁명을 해야 하는가?》

장군님께서는 그 광고를 유심히 바라보시다가 의아하신 눈길로 리재명을 돌아보시였다.

《이게 여기서 한 강연광고입니까?》

《예.…》

《그래 강사는 왜 사회주의혁명을 한다고 했습니까?》

《유식한 소리를 많이 했는데 그 후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어째서요?》

이때 뒤에서 누구인가 다급히 뛰여오는 소리가 났다.

리재명은 놀라서 돌아보았다.

군복차림이 말쑥한 홍병일이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그는 추위때문인지 전에없이 얼굴이 창백해보였다.

홍병일은 장군님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며 곧바로 다가와서 절도있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안녕하십니까? 현당위원 홍병일입니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거의 무표정으로 그의 밤빛이 도는 눈을 빤히 들여다보시였다.

홍병일은 말이 없는 사이를 두지 않으려는듯 인차 다음말을 이었다.

《현당조직책동지는 독감에 걸려 나오지 못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오풍헌네 헛간쪽에서 누군가의 울부짖음소리가 들려왔다.

《죽어두 여기서 죽겠다!》

뒤이어 달래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장군님께서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려고 하시자 홍병일이 그이의 앞을 막아섰다.

《쏘베트사무실에 간부들을 모이도록 했습니다. 불도 뜨뜻이 때놓았습니다. 그리로 가십시다.》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들 가서 여느때나 다름없이 일들을 보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왔다고 사람들을 모이라 헤치라 하며 들볶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남만진출담을 듣고싶은것도 여기 사람들의 심정인데… 자, 갑시다!》

《그런 얘기는 차차 합시다. 동무도 가서 일을 보십시오. 나 혼자 마을을 좀 돌아보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주저없이 울부짖음소리가 들려온 오풍헌네 집마당쪽으로 걸어들어가시였다.

리재명이 눈이 커져서 홍병일을 돌아보았다. 홍병일은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바르르 떨다가 마당쪽으로 걸어들어갔다.

마당의 공기는 살벌하였다. 헛간앞에 불화로가 내동댕이쳐져 재가 흩어졌다.

그 재를 쓸어모으던 오풍헌령감이 장군님을 알아보고 손에서 비자루를 떨구었다. 보초인듯 장총을 들고 서있던 김창억이 시뻘겋게 울기가 오른 얼굴로 장군님을 우러러보다가 헛간안을 들여다보았다.

헛간안의 짚덤불속에 옷주제가 람루한 청년이 엎드려 흑흑 느껴울고 있었다. 그의 발치에 구겨진 지페 몇장이 흩어져있었다.

장군님의 안광에 섬광같은것이 번쩍하고 지나갔다.

《여기서는 왜 이럽니까?》

김창억이 홍병일에게 눈총을 쏘고는 장군님께 피를 토하는듯 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 동무 아버지가 근거지에서 도망쳐나갔습니다. 동호는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

아버지를 돌려세우자고 쫓아나간것이 도주혐의를 쓰게 됐습니다.… 내내 낮이면 적위대 나무를 해오고 밤이면 이 혁명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우리는 보초를 서고… 동호는… 밥은 가마치만 먹고… 나무짐을 나르느라구 잔등살이 다 벗겨졌습니다. 오늘 아침에 로자까지 주면서 근거지를 떠나 아무데나 가라고 했습니다. 가라는 말이 죽으라는 말보다 더 섧다는데 기끈 부려먹다가 가라고 했습니다. 동호는 못… 못 가겠답니다. 죽어두 근거지에 묻히겠답니다!》

창억이는 제 설음에 겨워 흑흑 느끼며 주먹으로 눈물을 빗씻다가 동호를 들여다보며 부르짖었다.

《야, 동호! 장군님께서 오셨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오셨다! 이 자식아!》

그 소리에 동호는 머리를 번쩍 쳐들고 이쪽을 내다보았다. 눈물과 때국물이 범벅이 된 그의 얼굴이며 시뻘건 살이 들여다보이게 찢어져 너덜거리는 옷주제는 차마 눈을 뜨고 볼수 없었다.

동호는 짚덤불우로 기여나오며 시뻘겋게 피진 눈으로 밖을 내다보면서 부르짖었다.

《장군님! 살려주십시오. 저를 내쫓지 말아주십시오!》

그리고는 다시 짚덤불에 엎어져 잔등을 마구 떨며 울음을 터뜨렸다.

리재명이와 창억이가 달려들어가서 그를 안아일으켰다. 오풍헌은 엉거주춤 서서 장군님을 우러러보며 부들부들 떨다가 주먹으로 제 가슴을 들이쳤다.

《어이구, 기막힌 일두. 이 겨울에 화로 하나를 끼구 밤을 샜수다!》

장군님께서는 얼굴이 엄엄하게 굳어지시여 홍병일을 돌아보시였다.

《오늘 아침에 추방처분을 내린건 누구입니까?》

홍병일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리고 눈빛이 더 노랗게 되였다.

《대렬을 정리하자고 그랬습니다. 지내보며… 검열을 해봤는데…》

그는 창억이쪽에 차거운 눈빛을 던졌다가 말을 이었다.

《이 동무들은 모릅니다.…》

《뭘 모른단 말입니까!》

《따로 조용히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습니다.… 우선 어느 따뜻한 집에 데려갔으면 좋겠습니다. 저 청년도 조선사람인데 정상이 저게 뭡니까? 저 청년에 대해선 내가 직접 알아보겠습니다!》

그이의 음성은 분노에 떨리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더이상 누구도 돌아보지 않으시고 마당에서 나가시였다.

오풍헌네 집뒤의 둔덕진 곳에 오르신 그이께서는 흥분을 지그시 누르시고 말없이 마을을 굽어보시였다.

눈에 묻힌 마을은 숨을 죽이고있는듯 하였다. 처마밑의 벽들이며 문들이 모두 어둑하게 보였다.

뒤따라 올라와 그이옆에 서있는 리재명은 주먹을 입에 가져가며 자꾸 헛기침을 짖었다.

전령병 리성림은 한쪽어깨에 건 기병총의 부혁을 꽉 움켜쥐고 기쁨이 가셔진 쓸쓸한 눈으로 집들이며 으슥한 골짜기, 산등성이의 시커먼 상록수림을 둘러보았다. 로흑산에서부터 요영구를 거쳐 찾아온 여기 근거지가 낯설은 고장으로 느껴지는 순간 그는 미간을 찌프리고 보슴털이 보르르한 볼에 보조개가 패이도록 입을 오무려물었다. 그의 눈에서 물기같은것이 보일듯말듯이 떨었다.

장군님께서는 리재명을 돌아보시며 힘찬 음성으로 이 마을에서 제일 좌상이 되는분이 사는 집이 어디냐고 물으시였다.

주민구성에 대하여 잘 알고있는 쏘베트회장은 서슴지 않고 김진세로인의 집을 가리켜드렸다.


×


어둑한 방안에는 새끼와 짚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물을 뿌려 눅눅해진 짚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짚냄새와 메주콩냄새, 로벽에 밴 담배진내와 무슨 그을음냄새 같은것이 한데 어울린 빈농가정의 진한 생활체취가 방안에 가득차있었다.

김진세로인은 새끼퉁구리며 짚을 서둘러 웃목으로 밀어놓으며 장군님께 자리를 내여드렸다.

로인은 장군님께서 자기 집을 찾으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있은데다가 이런 루추한 방에 모시게 되니 너무 송구하여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로인이 권하는 자리보다 좀 웃쪽에 스스럼없이 앉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짚을 서너오리 쥐여 무릎우에 올려놓고 그것을 다심하게 쓰다듬어보며 이런 산골에 웬 벼짚인가고 물으시였다.

김진세는 의아한 눈으로 장군님을 보다가 어줍게 웃으며 지난해에 벌방쪽에 내려가서 귀밀쌀과 바꿔와서 잘 말리워 헛간 천장밑에 올려놓았던것이라고 말하였다.

《한해 묵은 짚으로 새끼를 꽈서야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하고 장군님께서는 물으시였다.

《예, 맥을 못춥니다.… 그래도 웬만한데는…》

《차라리 역삼이나 피나무껍질로 바를 든든하게 꽈쓰면 좋지 않습니까?》

《예.…》

김진세는 장군님께서 농사군의 새끼며 바에 대하여 잘 아시는데 저으기 놀라면서도 겁이 내비친 눈으로 그이의 눈치만 살피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이 고장 농민들의 생활에 대하여 이모저모로 물으시였다. 그이께서 한가지를 물으시면 로인은 겨우 그 한가지를 대답하고는 목소리가 기여들어가고말았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기름기있게 흐르지 못하고 토막토막으로 끊기였다.

장군님께서 신발에 대하여 물으시였을 때 김진세는 갑자기 절을 하듯 머리를 숙이며 비통하게 부르짖었다.

《장군님! 에둘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장군님을 만나뵈옵기 떳떳하지 못한 놈이올시다.…》

로인은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떨었다.

문가에 앉았던 성림은 너무도 뜻밖이고 놀라와 엉거주춤 일어나기까지 했다.

장군님께서는 방바닥을 짚고있는 로인의 거쿨진 두손을 뜨겁게 잡으시였다. 그 손등에서는 피줄이 툭툭 뛰였다.

《로인님, 왜 이러십니까?》

로인은 서서히 얼굴을 들었다. 그의 눈에서는 열물같은 눈물이 장구한 생활고의 흔적인 주름살들을 메우며 흘러내려 수염발에 방울져 맺혔다.

《저는 죄를 지은 몸이올시다.…》

로인의 목소리는 순간에 탁 갈리여버렸다.

《사람들이 이 허연 백발에 침을 뱉어도 항변할 소리 없는 놈입니다.》

《로인님, 이러지 마시고 차근차근 말씀하십시오. 집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저는 로인님이 이 마을에서 제일 좌상되시는분이라기에 마을형편이랑 농민들의 심정이랑 들어보려고 들리였는데 이렇게 나오시니 제 마음도 좋지 못합니다.》

《장군님, 저한테 무슨 쓸소리가 있겠습니까.… 실은 저희 집에 기막힌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구실을 못해서… 제 아들놈도 부실해서… 며늘아이가 글쎄 탈가해서 여기서 아주 도망쳐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저 대왕청하물에 몸을 던진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차라리 온성 친정에나 가있었으면 다행이겠는데 도무지 소식을 알수 없습니다.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마을에서 좌상구실도 변변히 못했소이다. 저아래에 살던 마종삼이라는자도 도망쳐나갔는데… 저는 그와 결의형제를 무은 사이였습니다. 그 사람이 쏘베트가 하는 일에 대해서 별의별 악담을 다 하는걸 듣고도 가만있었습니다. 쏘베트가 농군들의 뙈기밭까지 다 빼앗는다고 펄펄 뛰는것도 뺨을 쳐서 눌러앉히지 못했습니다. 나이를 주어먹었다는것들이 이 꼴이니 그 사람 아들인 동호라는 애도 모진 고생을 겪었습니다.

장군님! 장군님께서 군사를 일으켜 남북만주를 진감하며 왜놈들과 싸우시는데 백성의 도리를 지켜 힘껏 도울 대신 뒤에 앉아 이런짓을 했으니 이런 고약한짓이 어디 있겠습니까.… 장군님께서 오셨다는 말을 듣고 지난밤을 뜬눈으로 새며 지나온 일을 생각하니 기막히기만 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김진세는 머리를 푹 떨구고 앉아있었다.

이윽고 아래방에서 로친의 말소리가 나자 김진세는 조용히 일어나 정지간으로 내려갔다.

방안에는 고요가 짙어갔다.

장군님께서는 모두숨을 길게 내쉬시고는 무심결에인듯 짚을 한줌 쥐여 툭툭 터시더니 새끼를 꼬기 시작하시였다. 놀랍게 익숙하신 솜씨였다. 새끼는 굵기가 고르로우면서도 탄탄하게 꼬아졌다. 그이께서는 가락맞는 소리를 썩썩내며 날래게 꼬아나가시다가 이따금 물을 뿌려 둔 짚단을 쑥 쓸어만져 손바닥에 누기를 주시고는 손을 더 재게 놀리시였다. 새끼발은 쑥쑥 늘어나 그이의 등뒤 온돌바닥우에 8자를 그리며 사리여졌다.

이때 정지간으로 통하는 문이 조용히 열렸다.

잉걸불이 가득 담긴 화로를 안고 들어오던 김진세가 문턱에서 와뜰 놀라며 굳어져버렸다. 로인은 화로를 조용히 내려놓고 엉거주춤 서서 새끼를 꼬시는 그이의 모습을 얼이 나간 눈으로 지켜보았다. 화로에서 오르는 열기와 불빛이 어려 로인의 눈은 유난히 번쩍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로인을 돌아보며 밝게 웃으시였다.

《같이 새끼나 꼬면서 이야기를 합시다.》

김진세는 그이께로 다가와서 두손을 덥석 잡으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장군님, 이런 궂은일에 손을 적시지 말아주십시오! 무인의 손이… 이게 될 일입니까?》

《저의 조부님도 로인님과 같은 농사군입니다. 제 고향집은 대대로 땅을 허비며 농사를 지어온 빈농가입니다. 사실 아까 방에 들어설 때 오래간만에 짚냄새를 맡으니 고향생각이 났댔습니다.》

로인은 그 말씀에 놀라서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깊은 혈연으로 이어진 혈육을 오래간만에 만난듯 한 반가움과 기쁨에 로인은 물기가 그렁한 눈으로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저도 모르게 떨리는 입술에서 새여나오는 로인의 목소리는 눈물과 기쁨에 젖어 높이 울리였다.

《아니… 장군님께서도 우리같은… 하… 그러하십니까!》

얼마후 장군님과 로인은 가지런히 앉아 새끼를 스적스적 꼬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리성림은 이런 변화와 융합이 신기하게 느껴지면서 눈시울이 자꾸 뜨거워오름을 어찌할수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로인에게 쏘베트가 뙈기밭까지 빼앗았다는것이 무슨 말인가고 물으시였다.

김진세로인은 쏘베트가 농민들의 모든 토지를 공동경작한다고 농군들이 산속에 화전을 일구어 가꾸던 뙈기밭까지 조사했던 일들을 죄다 말하였다.

《여기로 흘러든 류랑민들이란게 다 제땅이 없어서 쫓겨다니는 사람들이였지요. 지주놈의 등쌀밑에서 소작지를 얻어 겨우 살아가면서도 평생소원인 제땅을 가지고싶어 산에 몰래 화전을 일궈 뙈기밭들을 마련해가졌던겝니다.… 쏘베트가 서서 지주놈을 내쫓은 다음 그 넓은 땅이 작인들에게 차례지려니 은근히 바라면서 기뻐들 하였지요. 한데 어떤데서는 그게 다 쏘베트가 관할하는 공동소유지로 들어갑데다. 섭섭한 마음이야 이를데 없었지만 애당초 제땅이 아니였으니 그런대로 마음을 가라앉힐수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자작농들의 밭까지 공동소유에 몰아넣더니 뙈기밭조사에 달라붙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 마종삼이란 사람도 맘이 잔뜩 꼬이구 뒤틀려졌지요.》

장군님께서는 새끼를 스적스적 꼬시며 로인의 이야기를 주의깊이 들으시다가도 때로는 일손을 멈추시고 심각한 눈빛으로 그의 얼굴을 돌아보시였다.

《아무데서나 다 그랬습니까?》

《어떤 마을에서는 더하고 어떤 마을에서는 덜했습니다. 우리 마촌에서는 래년봄부터 공동경작을 한다고만 소리쳤지 아직까지는 다른데서처럼 그렇지는 않습니다. 허지만 장차는 뙈기밭까지 내놓게 되겠거니 하고 생각하면 눈앞이 아뜩해지구 품에 안았던 어린 자식을 잃는것처럼 가슴이 그냥 허전한게 다리까지 후들후들 떨리면서…》

《예.…》

심정과 심정이 하나로 뜨겁게 어울려지는 가운데 어느덧 이야기는 김진세일가의 가정불화에로 미치여 아들의 유격대입대부결이며 며느리의 탈가가 화제에 올랐다.

그이께서는 못내 가슴이 아프시여 한동안 아무 말씀도 못하시였다.

이때 정지간으로 통하는 사이문이 방싯 열리며 머루알같이 새까만 눈이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장군님께서는 어느결에 그 눈을 보시고 문을 여시였다. 문턱너머에서 토스레옷을 걸친 사내아이가 흠칫 놀라 물러섰다. 봉남이였다.

그이께서는 아이를 번쩍 안아들여 무릎우에 올려앉히시고 손수건을 꺼내여 코구멍에서 쿨쩍거리는 버들강아지같은것을 씻어주시였다.

《손자입니까?》

《예.…》

봉남이는 장군님의 품에 안기니 우쭐해져서 할아버지를 보고 벌쭉 웃고는 그이의 혁띠며 군복단추를 만져도 보았다.

김진세는 녀석이 장군님을 전혀 어려워하지도 않고 무엄하게 구는것이 놀라와 내려앉으라고 눈을 흘기였다.

《둬두십시오.》 하고 그이께서는 부드럽게 이르시였다.

김진세는 한숨을 내쉬였다.

《애비에미없이 자란다고 불쌍해서 회초리로 다스리지 못했더니 녀석이 통 버르장머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로인은 왜놈들에게 학살당한 맏아들내외와 둘째아들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비명에 간 애들을 생각해서라두 제가 처사를 똑똑히 했어야 했겠는데 그러지 못하다나니 집안일이 이 모양이 됐습니다. 어떤 때는… 집안의 씨종자나 다름없는 이녀석이 흙뎅이처럼 굴러다니는걸 보느라면 앞이 캄캄해지고 가슴이 다 허물어져내리는것 같았습니다.》

로인은 가래같이 큰 손을 들어 눈밑에 즐벅해진 눈물을 훔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손을 뜨겁게 잡아쥐시였다.

《로인님, 힘을 내십시오. 로인님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혁명을 시작해놓고 옳바르게 이끌어나가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잘못이 큽니다. 로인님같은분들이 마을에서 기둥이 돼서 일을 해야 합니다. 함께 손을 잡고 마을일이랑 바로잡아봅시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리재명과 오래동안 담화하고나시여 유격대병실에서 지휘관들의 모임을 가지시였다.

저녁무렵에는 근거지들에서의 사업형편을 료해하기 위하여 여러 공작원들이 멀고 가까운 지방들에 파견되였다.

장군님께서는 떠나가는 공작원들을 친히 바래주시며 어느 마을에 가서나 지난 세월 고생도 제일 많이 하고 나이도 제일 많은 로인들을 먼저 찾아가서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그들의 이야기부터 들어보라고 이르시였다.

그이께서도 한 방향을 맡으시여 쌍암촌으로 나가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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