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4
골짜기가 떠나가도록 종을 울리여 촌민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한 다음부터 마을의 공기는 전에없이 뒤숭숭해졌다. 밤이 깊어가도 집집의 방문들에는 불빛이 환하고 불안한 목소리들이 울려나왔다.
그날 밤 김창억이와 마동호는 마을경비였다.
그들은 오풍헌이네 집으로 가서 뒤울안쪽에 놓인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지난날 독립군들이 이 지붕꼭대기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감시를 섰는데 거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둔덕진곳에 있는 이 집의 지붕꼭대기에 올라서면 온 마을과 동림촌으로 내려가는 길 그리고 뾰족산까지 환히 내려다보였던것이다. 관습의 힘이란 검질긴것이여서 그 자리가 그대로 적위대의 경비초소로 쓰이게 되였다. 오풍헌령감은 처음에는 초소를 옮기든지 자기네가 이사를 가든지 해야 하겠다고 야단을 쳤으나 역시 관습의 힘에 져서 요새는 박을 굴리지 말라고 드문드문 이르는 정도이다.
조짚을 인 폭신폭신한 지붕꼭대기에 오른 그들은 안고온 개털외투를 펴놓고 그우에 배를 붙이고 엎드렸다.
하늘에는 은하수가 비꼈다.
개털외투에 밴 시큼한 땀냄새와 조짚 썩은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창억이는 심기가 뒤틀렸으나 그런 기색은 내비치지 않고 지붕마루에 턱을 올려놓고 태연한 얼굴로 어둠속을 내다보았다. 마동호는 오늘 유격대입대가 비준되여 가슴에 기쁨과 자랑이 차고넘치였으나 창억이때문에 시원한 웃음 한마디 웃어보지 못하고 저도 속이 괴로운듯 이따금 한숨만 후- 후- 내쉬였다.
창억이와 동호는 한마을에서 같은 해에 나서 함께 자라났다. 아버지들이 결의형제를 무은 사이인지라 그들도 어려서부터 송아지동무로 지내였다. 그러나 생김새와 성미는 판판 달랐다.
창억이 억척스럽게 생겼다면 동호는 그 이름이 던지는 인상처럼 몸매가 다부지고 두리두리하게 생긴데다가 어려서부터 지주집돼지몰이를 해서인지 어딘가 모르게 애숭이목동과 비슷한데가 있었다.
언제인가 마종삼이 가지런히 서서 걸어가는 그들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웃음절반으로 김진세에게 이렇게 말한 일이 있었다.
《성님, 저녀석들을 보시오. 참 조화먹었지. 저것들이 어떻게 짝패가 돼서 쌈하는 일도 없이 내내 저렇게 붙어다니는지. 가만 지내보면 성님네 저 애가 갈범이라면 우리 저놈은 너구리라니까. 창억이가 곧은 밸이라면 우리 저녀석은 남보다 내장이 열발은 더 길구 슬슬 사려졌을게요. 속에 무슨 생각을 품구 다니는지, 무슨 꿍꿍이를 하는겐지 나두 모르는 때가 많다니까. 흐흐흐… 녀석이 흉물이지요.》
마동호는 개털외투에서 일어나앉아 무엇때문인지 부시럭거리며 한숨을 내쉬였다.
창억이는 그것이 비위에 거슬려 퉁명스럽게 내쏘았다.
《속에서 불이 나는데 옆에서 왜 자꾸 한숨질이냐. 야, 내때문에 너까지 그럴게 있니? 웃어두 좋구 코노래를 불러두 좋다!》
마동호는 한동안 말없이 장총의 격철을 절컥거려보다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꾸를 하였다.
《코노래가 나오니? 리재명회장이 자리에서 밀려날것 같더라.…》
《뭐?》
창억이는 벌떡 일어나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나 동호는 울컥해져서 거치른 목소리로 내쏘았다.
《세상이 떠나가게 종을 쳐서 마을사람들을 다 모아놓고 강연을 했는데 너는 어디로 갔댔니?》
《그래 뭐라고 하던?》
《현에서 내려온 강사라는… 최형준이라는 그 사람이 언변이 청산류수더구나. 그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은 첨 봤어. 연설이 그냥 나팔소리구 대포소리야. 어떤 땐 도끼로 내리찍는것 같더라.》
《그래 어떻게 내리찍던?》
《저 마을불빛을 봐라. 어느 집이 자는 집이 있니? 우리 마촌이 현당로선에 엇섰다누나.》
《뭐야?》
《현에서는 사회주의혁명을 하라고 했는데… 이거 봐라, 토지도 공동소유로 하고 농사도 공동경작을 하고 끼니를 지어먹는것도 공동식당을 내와서… 네것내것없이 다 공동으로 하라고 했는데 마촌쏘베트는 그 로선을 집행 안하구 케케묵은 개인소유, 개인경리를 그냥 둬두고 수확한 량곡은 농민들에게 다 나눠주면서 공동식당을 열지 않았다구 내리조긴다는데… 히야- 그렇게 어진 리재명회장이 무슨 배심에 엇서나갔을가? 하라는 사회주의혁명은 하지 않구서 학교를 세우구 교육사업이나 벌리자고 했다구 치는데 그건 혁명을 포기하는 투항주의라누나. 강연을 들으면서 가만 생각해보니 이게 큰 변이 날 일이지 거저일은 아니더라. 리재명회장이 사람이야 얼마나 좋았니.… 무사치 못할것 같아. 에-참…》
창억이는 눈에 불을 켜고 동호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가 말을 안하고 숨기고있는 딴 주머니를 푹 찌르는듯 날카로운 소리로 물었다.
《다른 말은 없었니?》
《엉?》
마동호는 그의 눈을 흘깃 치떠보고는 외면했다.
《강사가 내리조긴게 그게 다야? 또 있었지?》 하고 창억이는 다그쳐물었다.
동호는 한동안 머리를 수굿하고있다가 창억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진정을 해라.… 함부로 윽윽거렸다가 재미가 없을것 같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였다.
《아무래두 알게 되겠는데 숨겨서는 뭘하겠니. 유격대입대자 추천사업도 잘못됐다구 했다. 동솔처럼 푸르싱싱한 청년들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조혼한자를 추천자명단의 첫자리에 적어넣었는가고 하는게 아니겠니. 그 말을 들을 때 나는 가슴이 철렁해졌다. 강사 말이 조혼자는 봉건의 희생물이라더구나.》
《내 이름을 찍으며 그렇게 말했니?》
《아-니, 그러지는 않았어.》
《그럼 조혼한 사람은 앞으로도 영영 유격대에 못 들어간다더냐?》
《그런 말은 없었어.》
《그러나 그런 뜻이 아니야?》
《글쎄…》
《누가 그걸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니?》
《에-참, 내가 물어봐야 하는건데 뒤에서나 큰소리를 쳤지 어디 그런 재목이 되니.… 창억아, 아까 낮에 네가 우리를 피해가는걸 보구 정말 내내 속이 좋지 못했다.》
창억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턱을 가슴팍에 구겨박고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있더니 얼굴을 번쩍 쳐들었다.
《동호! 나는 네 동지다!》
마동호는 새삼스러운 그 말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때문에… 나는 네앞에서 솔직해야 한다!》
《야, 왜 이러니?》
《네가 내 걱정을 해준건 정말 고맙다. 나두 오늘 네 생각을 많이 했구나.》
창억은 뙈기밭에서의 일을 죄다 쏟아놓았다. 마동호는 얼굴이 해쓱하게 굳어져 창억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기만 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는듯 하늘의 은하수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며 절망과 원망의 빛이 날카롭게 번뜩이였다. 이윽고 그는 창억이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말을 안했을뿐이지, 나두 령감태기심보를 알구있었다. 다른 마을에 갔다와서는 거기 쏘베트가 하는 일은 다 반대구나. 그래도 마촌쏘베트는 괜찮다고 했는데 또 저렇게 나오니… 너한테니 말이지 여기서 공동식당을 내왔을 때 어쨌는지 아니?… 사동에 있는 외가집마을로 이사나가겠다구 펄펄 뛰였다.…》
《왜 타이르지 못하니?》
《엑- 그 고집을 누가 당해. 한번 수틀리면 고집불통이야. 나무옹지같은 령감이야.》
《쏘베트야 이러나저러나 우리 무산자들의 혁명정권인데 그렇게 나가다간 반혁명이 된다. 오늘 보니까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더라.》
《어떻게 하면 좋을가?》
《글쎄… 내 생각에는 네앞에 두 길이 있는것 같다. 아버지를 덮어두었다가 같이 반혁명에 몰리는가, 아버지하구 끊구… 피줄을 물어뜯어서라도 끊구 혁명에 나서는가.… 그러자면 네 입으루 아버지를 고발하고 립장을 밝혀야 한다! 사내대장부답게 굴어라!》
마동호는 너무도 기막혀 얼빠진 사람처럼 허거프게 웃고는 입속말을 중얼중얼거렸다.
《아버지를… 제 애비를… 허, 혁명이 이렇게 힘든게야?》
그는 두손으로 머리칼을 움켜잡고 개털외투에 맥없이 쓰러졌다.
창억이도 그옆에 가지런히 누웠다. 근거지가 생겼을 때 제일 기뻐 춤을 춘 자기들의 신수가 왜 이렇게 비틀어지는가싶으면서 세상의 리치가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동호와 자기가 의지가지할데 없는 외토리로 되여 은하수 흐르는 가을밤의 어둑한 하늘밑에 내던져진것 같으면서 서러움까지 들었다.
이윽고 마동호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어?》
창억이는 대답을 안했다. 그는 하염없이 하늘을 쳐다보며 꿈꾸는듯 부드러워진 눈을 슴벅거리였다.
《동호, 하늘을 좀 봐라. 참 별들이 많지? 사람들 말이
《야- 별이 많기도 하구나! 제일 크고 번쩍거리는게 장수별이겠는데… 안 보여.》
《나는… 조혼자는 앞으로도 유격대에 못 드는가 어떻게 되는가 알아보구서 안된다면 뛰겠다.
마동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어디 계신줄 알구 찾아가겠니? 그전처럼 또 죽도록 고생만 하자구?…》
《이번에는 굶어죽고 맞아죽는 일이 있더라두 돌아서지 않는다. 이 세상 한끝이라두 찾아간다! 좌우간 총소리가 울리는 곳에
마동호는 벌떡 일어나앉아서 불덩이처럼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봤다.
《너 정말이야?》
창억이는 말없이 그의 눈을 쳐다봤다.
《가면 혼자 가지 말구 알려라.》
《너두?》
《네가 없는데 여기서 나 혼자 무슨 흥이 나겠니. 아버지두 저 꼴이구… 뭐가뭔지 모르겠다. 덤비지 말구 먼저 유격대에 들수 있는가 없는가부터 알아보구… 어떤 줄을 놓아서나
둘은 으스러지게 손을 틀어잡았다.
창억은 다음교대가 지붕으로 올라오자 초소를 인계하고 리재명의 집으로 뛰여갔다. 마음씨고운 쏘베트회장의 부인이 반겨나와 주인은 아직 안 들어왔고 강사는 이웃집 웃방에 들었노라고 알려주었다.
이웃집에는 아래웃방에 다 불이 환히 켜져있고 굴뚝에서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르고있었다.
나무단을 안고 들어가려던 그 집 아주머니는 화다닥 놀라 창억이를 돌아보며 웃방손님은 아래마을에 강연하러 나갔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창억은 번열이 나고 갈증이 심하게 느껴져 비칠거리며 개천쪽으로 걸어나갔다.
그가 개천가의 아름드리 황철나무옆에 이르렀을 때 물결이 찰랑거리는 모래기슭을 따라 두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올라오는것이 보였다.
창억이는 얼른 나무그루뒤에 몸을 감추고 빤히 내다보았다.
부녀회장 림성실이와 낮에 소왕청하에서 만났던 녀선생이다.
나무가지들사이로 흘러내리는 희푸르스름한 달빛에 그들의 머리칼이며 동실한 어깨가 축축히 젖어보이고 눈들은 새별처럼 빛난다.
림성실이는 웃는 얼굴로 박현숙의 팔목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한다.
《이제는 진정이 돼요?》
《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초면에 남을 그렇게 렴치없이 쳐다보는 사람은 첨 봤어요. 그래서 무슨 소리를 하는가 강연도 유심히 들어봤는데 아이고… 품고왔던 꿈이 산산 깨지는것 같았어요. 일어나서 막 쏴줄걸 그랬네, 호호호.…》
《렴치없이 쳐다봤다는 그 문제는 노엽게 생각말아요… 남달리 다감한 사람들이 있을수 있지 않아요? 사람은 정직하고… 괜찮아요.… 저 사람들은 다 좌경이야요.… 이제 바로잡혀져요. 투쟁을 해야 돼요. 그 무슨 권위나 직급이 아니라 정의가 문제를 결정해요. 투쟁속에 보람도 있고 행복도 있지 않겠어요. 나한테 명월구회의에서 하신
《
《현숙동무, 여기서
《아- 참 이런 밤은 첨인것 같아요!》
그들이 멀리 사라지자 창억이는 나무뒤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나왔다. 그들이 하는 말을 다는 알아들을수 없었지만 어쨌든 강연때문에 열이 오른것은 자기 혼자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물가로 터벅터벅 걸어나가 시원한 기운을 풍기는 물에 손을 잠그려다가 밤의 신비한 고요에 놀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우중충한 산들도 나무도 바위도 모두 고르로운 숨결로 깊은 잠에 든듯하다. 개천가에 무성한 숲의 어스름속에 달빛이 괴괴하게 흐른다. 그아래 주절대는 물속에서는 별들이 사람들 몰래 미역을 감는다. 교교하다. 굼니는 물결이 이따금 고요에 희롱질을 거는 소리가 출렁… 출렁… 시원하게 들려온다.
문득 그 물결우에 시퍼런 번개불같은 섬광이 펑끗 하고 스쳐지나간다.
창억이는 소스라쳐놀라 하늘을 쳐다보았다.
드넓은 밤하늘에서는 보석쪼각같은 별들이 한벌 깔려서 반짝일뿐 공상속에 그려본 장수별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