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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회


제 1 장

1

아스라하게 높은 하늘로 날아가는 기러기떼의 구성진 노래소리가 해빛이 눈부신 파란 공간에 가득 울려퍼졌다.

말을 끌고 길을 가던 김창억은 이마에 손채양을 붙이고 그 기러기떼를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솔잎처럼 두줄로 가지를 치고 길게 늘어선 기러기들은 서로 쾌활하게 부르고 화답하며 날음을 재촉하고있었다.

창억이는 문득 걷잡을수 없는 희열이 북받쳐올라 팔을 높이 쳐들어 흔들어대며 목청껏 소리쳤다.

《후여- 돌아서- 돌아서라- 후여-》

유격근거지가 생겨 조선사람들끼리 정사를 다스리는 좋은 세상이 왔는데 어디로 날아가느냐 하는 생각에서였다.

《후여- 후여-》

그가 소리치거나말거나 계절의 변화에 따라 대륙과 대양을 건너 보금자리를 옮겨가는 계절조들은 유유히 날개를 저으며 날아가고있었다.

창억이는 스스로도 제 소행이 우스워 껄껄거리다가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기러기야 기러기지. 저것들은 아무것도 몰라, 모르거던. 허허허…》

그는 기분좋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말고삐를 툭툭 채였다. 말은 그가 이끄는대로 유순하게 따라왔다.

가을도 저물어 길가의 설핀 수풀에는 누렇게 황이 들고 산기슭의 나무숲을 불사르는듯 하던 빨간 단풍빛도 바래여갔다. 길우에서 분주히 날아돌던 몸체가 투명한 잠자리들도 보이지 않는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중간지대의 오목동에서 유격근거지로 들어가는 이 달구지길은 얼마전부터 인적이 끊어졌다. 창억의 발밑에서는 황토색흙먼지가 풀썩풀썩 일고 뒤따르는 군마의 편자소리만이 정적속에서 단조롭게 울렸다.

그러나 그는 한적기를 느끼거나 의기소침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남아의 강심을 품고 세상의 찬바람속에 홀로 나선듯 하여 더 의기양양해져서 앞가슴을 열어헤치고 활개를 저으며 걸음을 다그쳐갔다.

그는 억대우같은 청년이다. 해빛과 바람에 그슬려 벽돌빛으로 탄 얼굴에서는 피발이 선 눈이 환희에 넘쳐 번쩍이고 꾹 다문 두툼한 입술에는 든든한 배심과 흐뭇한 만족이 어려있다. 남의것을 물려받아 입은 짧은 양복저고리며 무릎을 기워입은 조선바지도 그의 내심에서 풍겨나오는 기상을 초라하게 깎아내리지 못하는듯 하다.

그는 거의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고삐만을 툭툭 재며 말을 재촉하였다. 그에게 끌려가는 공골말은 기름기가 자르르한 밤빛털에 몸매가 유들유들하게 늘씬한데다가 숱이 많은 갈기가 목에서 흐느적이여 어지간히 사나와보였다. 그러나 고삐를 늦춰줌이 없이 바싹 바투 잡고 자기를 끌고가는 청년의 손아귀힘을 륙감으로 느꼈는지 갈갤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머리를 끄떡거리며 따라갔다.

창억이는 지금 오목동의 대장간에 갔다오는 길이다.

오늘 아침 현당조직책 권일균이 적위대에서 추천한 유격대입대자들을 현지에서 심의하기 위하여 마촌에 내려왔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생겼다. 그의 말이 길바닥에 내민 돌부리를 차서 불꽃을 날리며 편자 두개가 떨어져나갔던것이다. 흔히 있을수 있는 이 일을 불길한 천조로 느꼈던지 권일균은 몹시 불쾌해하며 쏘베트도 세웠는데 길도 좀 버젓하게 내라고 사람들을 꾸짖었다. 그리하여 현당위원인 홍병일이 적위대로 와서 창억이더러 동림촌 대장간에 가서 얼른 마철을 신겨오라고 했다.

창억은 동림촌으로 가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손재간으로 소문이 자자한 마제사가 있는 오목동 대장간으로 말을 달리였다. 애꾸눈인 마제사령감은 말이마에 붙어있는 패찰을 들여다보더니 화다닥 놀라서 뒤걸음질치며 이상야릇한 비명을 질렀다.

《아이야-》

창억이는 비로소 그 패찰에 주의가 갔는데 그것은 황금빛으로 번쩍거리는 팔각의 놋쇠쪼각이였다.

《이게 동두령님이 타시던 룡마가 아니요? 여기 와서 편자를 신겨간 일이 있어 눈에 익소. 두달전 두령님이 애마를 잃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아이야- 세상사란… 당신네 손에 들어갔군.… 난 못하겠소. 어느 칼에 목이 날아나자구? 이 일을 알면 당장 포졸들이 달려와서 나를 잡아갈게요.》

창억은 진짜 동두령의 룡마여서 겁을 먹은겐지, 품삯을 높이 부르자는 수작인지 몰라 령감을 사납게 쏘아봤다.

그는 세상돌아가는 형편을 보고 처신하라고 슬그머니 위협하며 우리가 다 책임질테니 마철이나 신기라고 을러메였다.

그의 위협에 움츠러든 마제사는 어느 편이나 어서 세상을 평정하옵소서 하고 하늘에 빌며 한숨을 짓더니 말을 나무틀속에 들여세웠다.

말발굽에 편자를 다 신긴 마제사는 이마와 목에서 진땀을 훔치며 세상에 으뜸인 무한강쇠로 벼린 편자를 신겼으니 말이 달릴 때의 그 희한한 편자소리의 가락은 천군만마를 불러일으키는 북소리같고 또한 그 소리에 맞추어 무희들이 칼춤을 추어도 제격일것이라고 엮어내리고는 품삯으로 귀밀 두말을 내라고 했다.

창억은 눈을 사납게 디룩거리며 부르죠아로 청산되고싶지 않거든 품삯을 그따위로 높이 부르지 말라고 으르고는 석달후 혁명이 승리하면 마촌쏘베트에 와서 값을 받아가라고 했다.

창억은 그쯤하면 소부르죠아를 멋지게 다루었다고 생각하니 속이 흐뭇해나서 말을 돌아봤다. 말도 무엇을 느꼈는지 뭉클한 주둥이로 그의 목이며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냄새를 맡아보더니 시큼한 코김을 내불고 소리없이 웃는듯 입을 쩍 벌렸다.

창억은 그 모양이 우스워 껄껄 웃으며 갈기를 쓸어만졌다.

《허허… 괴짠데? 이 미물아, 내가 맘에 들어?… 엉?》

말은 파리우리한 빛이 도는 시꺼먼 눈으로 그를 유순하게 보다가 눈시울을 슴벅이였다.

《맘에 든다. 흠… 그럼 얘기해보세. 추천자 십여명중에서 왜 하필 이 창억이를 골라서 심부름을 보내겠나. 다 보는데가 있어 그런게 아닌가. 유격대입대야 물어보나마나한게 아닌가?… 엉?… 물어보나마나한게지?… 에-라, 혁명이 이길 날도 멀지 않았겠다, 조선이 독립이 되문 너두 고생을 덜하게 돼. 이 미물아, 알겠어? 내가 유격대원이 된 다음 한번 와서 봐라. 왜놈들을 어떻게 때려엎는가.…》

갑자기 말은 대가리를 쳐들고 사납게 흔들어대다가 투레질을 하면서 돌아섰다. 창억은 눈을 부릅뜨고 고삐를 우악스럽게 잡아채며 말을 바로 돌려세우려고 안깐힘을 썼다.

《뭐가 어째? 코웃음을 쳐? 네깟놈이… 네깟놈이…》

어느사이 그의 몸은 말안장으로 날아올랐다. 말은 불길처럼 휩쓸어드는 질주의 쾌감에 전률하여 근육을 부르르 떨다가 뒤발로 땅을 걷어찼다. 말은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은 밋밋한 고개길을 따라 냅다 뛰여갔다.

얼마후 고개마루에 이른 창억은 말을 멈춰세우고 저아래 해빛에 번쩍이는 소왕청하쪽을 굽어보았다.

소왕청하와 대왕청하의 합수점기슭의 모래불에는 사람들이 하얗게 널려있다. 아마 유격근거지에 좋은 세상이 왔다고 살길을 찾아 들어오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물건너쪽기슭에서는 십여명의 녀인들이 길게 늘어앉아 빨래를 하며 물을 건너오는 사람들을 구경하고있다.

창억은 그들을 간이 떨어지도록 놀래우며 주의를 끌고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발뒤꿈치로 말배를 힘껏 걷어찼다.

말은 앞발을 모아붙이며 내리뛰였다. 길바닥이 말배밑으로 달려와서는 산산 부서져 하늘에 뿌리워올라가는듯 했다.

귀뿌리에서 바람이 아우성치고 길가의 숲에서 새들이 질겁하여 날아올랐다.

말도 사람도 질주의 쾌감과 공포에 제정신이 아니였다. 창억은 말잔등에 납작 엎드렸다. 흩날리는 갈기털이 얼굴을 아프게 후려갈겼다. 눈앞에서 은백색섬광이 펑끗거리며 나무가지인지 연기인지 가늠할수 없는것이 휙휙 날아지나갔다.

그는 자신도 모를 함성을 내질렀다.

《와- 야-》

《아-》

질풍같은 기세 그대로 내물에 뛰여들려던 순간 말은 물우에 비낀 구름장에 기겁하였는지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지르며 방향을 홱 꺾었다. 말은 모래기슭을 따라 내뛰고 창억은 하늘땅이 뒤번져지는 환각과 함께 말고삐를 손에 감아쥔채 모래불에 떨어져 딩굴며 끌려갔다.

물녘의 녀인들이 비명소리를 지르며 뛰여일어났다. 창억은 모래불에서 벌떡 일어나 말에게로 달려들어 다짜고짜로 고삐를 휘둘러 매를 내렸다. 가죽고삐가 공기를 째는 소리가 윙윙 울부짖었다.

《엑- 투항병! 변절자!》

말은 매를 피하려고 뒤걸음질치며 머리를 휘저었다.

이때 뒤에서 누군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창억은 끌날같이 번뜩이는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마촌쏘베트 회장 리재명이다. 키가 크고 몸이 약하며 긴 목에 울대뼈까지 유표하게 불거져나온 그는 어느모로나 주대가 모질지 못한 호인으로 보인다. 바지가랭이를 무릎우에까지 걷어올리고 한손에는 신발을, 다른 손에는 가죽가방을 든 리재명은 겁먹은 눈으로 창억이를 보았다.

《여보게, 이게 권일균동지 애마가 아닌가! 자네 온기가 있나, 엉?》

창억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말을 끌고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다.

리재명은 그제야 마음을 좀 가라앉히며 말이 갈개느냐고 물었다.

《고분고분거렸는데 무슨 미친바람이 들었는지… 변지주네 말몰이군 삼년에 별의별 놈을 다 길들였댔는데 제깟놈이 쳇…》 하고 창억이는 머리를 수굿하고있는 말을 흘겨보았다.

《여보게, 저 녀선생님을 태워서 물을 건네줄수 없겠나? 물이 차진데다가 바닥이 미끄러워 그러네.》

창억이는 그제야 턱을 쳐들사 하고 실눈을 지으며 저쪽뒤 물녘에서 있는 도시풍의 녀자를 바라보았다. 동정이 산뜻한 밤색저고리에 깜장치마를 단정하게 받쳐입은 맞춤한 키에 몸매날씬한 녀자이다. 그 녀자의 옆에서는 더벅머리의 사내아이 셋이 맨발로 서서 이쪽을 지켜보고있다.

리재명은 창억에게 귀뜀했다.

《여보게, 듣나? 선생님은 이런 산골이 처음이야. 룡정에서 석현에 들어와 교원을 하다가 〈토벌〉을 맞아 산에 피신해있는걸 알고 내가 선손을 써서 데려오는 길이네. 첨부터 대접을 잘해야 이 산골에 맘을 붙일게 아닌가. 이제 우리 마촌에 학교를 열겠네.》

《학교요?》

창억이는 학교라는 그 말에 눈이 휘둥그래지고 입이 헤벌어졌다. 그는 자기 조카 봉남의 얼굴이 언뜻 눈앞에 비껴 머리가 핑 돌 지경이였다.

《여보게, 도시에서 나서자란 선생이 이런 산골로 오자니 여간 큰 결심을 했겠나. 김일성장군님도 장차 이쪽으로 오시게 될지 모른다는 말을 듣자 선뜻 따라나섰네. 여보게…》

그러나 창억이는 쾌활하게 웃으며 얼굴이 벌개졌다.

《누구는 도끼등처럼 무딘놈인줄 압니까. 여보게, 여보게만 하지 말구 어서 오라구 하십시오.》

그는 얼른 말안장이며 등자를 바로잡아놓고는 돌아섰다.

이때 녀선생이라는 그 녀자가 그들에게로 곧바로 걸어와 창억에게 손을 내밀었다.

《박현숙이라고 불러요!》

볕에 좀 그슬렸으나 얼굴살결이 여간 맑지 않고 눈이 붓으로 그린듯 동그랗다. 흐린 구석 한점없이 맑은 그 눈에서는 시원한 미소가 빛발쳐나왔다.

창억이는 여태 본적이 없는 미모며 물씬 풍겨오는 향기에 주눅이 들어 녀자의 손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그는 성미가 드세면서도 도시문화앞에서는 언제나 어정쩡해지는것이였다. 게다가 녀자하고는 손을 잡아본적이 없는지라 얼굴이 벌겋게 되여 쭈밋거렸다.

리재명이 눈짓으로 어서 인사하라고 일렀다.

창억이는 거쿨진 손을 쑥 내밀어 그 손을 꽉 잡고는 두세번 흔들어보기까지 하였다.

《수고많겠수다!》

리재명이 웃음어린 상냥한 얼굴로 녀자에게 그를 소개해주었다.

《김창억동무입니다. 지난날에는 지주집에서 머슴을 살았고 지금은 적위대원인데 곧 유격대에 입대합니다.》

《네-》하고 박현숙은 반겨웃으며 선망의 눈길로 청년을 쳐다봤다.

창억이는 소개의 말에 보탠것이 하나도 없지만 어쩐지 좀 쑥스러워져 녀자의 눈길을 피하여 말한테로 돌아섰다.

그는 말코등을 긁어주고 목덜미며 잔등을 도닥여주면서 말을 애써 모래불에 앉힌 다음 녀자더러 안장에 올라타라고 권하였다. 리재명이도 아이들은 우리가 업고 건널테니 사양말고 어서 타라고 재촉하였다.

박현숙은 기겁을 한듯 물러서며 저 아이들을 태워 건네달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소리쳐불렀다.

그 녀자는 달려온 아이들중에서 한 아이를 얼른 안아서 말안장에 올려앉혔다. 이렇게 되자 리재명이와 김창억이도 하는수없이 나머지 두 아이를 닁큼닁큼 들어올려서 말등에 앉혔다.

공골말은 세 아이를 잔등에 태우고도 기운차게 벌떡 일어섰다.

물건너편 빨래터의 아낙네들이 모두 물방치질을 멈추고 그 희한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말은 차거운 물살이 싫어 성급히 발을 옮겨가며 물결을 걷어찼다. 철썩… 처절썩… 물방울들이 안장우의 아이들에게까지 튀여올랐다.

창억은 앞에서 고삐를 끌고 리재명과 박현숙은 말옆에서 따라가며 아이들을 보살폈다.

《에- 에- 시원하다-》 리재명은 이렇게 환성을 터뜨리며 물살을 헤쳐나가다가는 발이 미끄러져 넘어질번 할 때마다 헉- 헉- 하고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지르며 녀선생쪽에 팔을 뻗치였다.

《선생- 내 손을 잡으시오. 여간 미끄럽지 않소- 자, 잡으시오-》

박현숙은 치마가 절반이나 올리젖는데도 차거운 물에 머리가 찡- 저려나고 동심이 되살아나 깔깔 웃어대며 활달하게 롱말까지 건네였다.

《회장동무나 넘어지지 말라요. 전 학교땐 수영도 하고 해란강에서 단련됐어요. 이만한 물이야 어디 강인가요, 호호호. 시원한게 좋기만 해요!》

《허허허…》

녀선생은 말잔등의 아이들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제일 앞아이는 말갈기를 붙잡고 납작 엎드렸고 둘째 아이는 안장에 엎드렸으며 셋째 아이는 앞아이의 허리를 안고 엎드렸다. 세 아이의 몸뚱이는 매생이에 탄듯 오르내리며 흔들거렸다. 그놈들은 어른들의 롱말과 웃음소리에 점점 담이 커져 옴지락거리며 머리를 쳐들기 시작하였다.

박현숙은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머리를 들지 말고 꼭 붙잡아요! 꼭 붙잡아요!》

그러자 앞에서 물참봉이 되여 말을 끌던 창억이 아이들에게 배포가 큰 소리를 탕탕 던지기 시작하였다.

《야- 야- 사내장부가 한번 말에서 떨어져보는것두 괜찮아. 떨건 없어. 인젠 너희들 세상이 오겠는데 머리를 번쩍 들어라! 번쩍 들어!》

말잔등의 아이들은 하나 둘 머리를 쳐들고 두리번거리기 시작하였다.

박현숙은 조마조마해져서 아이들과 창억에게 손을 흔들며 새된 소리를 질렀다.

《아니, 저걸… 저걸… 적위대원동무, 그런 소리 말아요!》

리재명은 그 모습이 재미나서 떠들썩하게 웃다가 푸른 하늘에 비낀 세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눈에 물기같은것이 핑 어리였다. 그는 얼굴을 씰룩거리다가 한손을 높이 쳐들며 환성을 터뜨렸다.

《어허- 부모없이 천대받던 너희들이 오늘은 말을 타고 공부하러 유격구로 들어간다! 어허- 과시 혁명이로다!》

물을 다 건너와 리재명의 일행과 헤여진 창억이는 기슭에 홀로 남아 말고삐며 자갈을 대충 손질하였다. 그리고는 배허벅의 물기를 씻어주려고 앉은걸음으로 배밑에 들어섰다. 이때 바로 뒤에서 거치른 목소리가 울렸다.

《야, 이녀석아!》

김진세로인이 삼단을 실은 지게를 벗어놓고 아들에게로 다가오고있었다. 얼굴이 흙빛이고 하관이 희끗희끗한 수염발에 덮인 로인은 엄엄한 기상으로 아들을 쏘아봤다.

《총을 멘다구 집을 뛰쳐난 녀석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느냐?… 쓸개빠진 자식!》

창억이는 말밑에서 기여나와 아버지앞에 엉거주춤하고 섰다.

《아버지…》

《집으로 가자! 저게 불쌍하지 않냐?》

창억은 턱을 가슴팍에 구겨박은채로 눈을 치뜨고 저만치 뒤에서 흐르는 개천에서 삼단을 건져내는 안해의 뒤모습을 바라보았다. 소왕청하의 물결이 눈부시게 반사하는 해빛에 보금의 자태는 시꺼먼 그림자처럼 어른거렸다.

이때 빨래터에서 웬 녀인이 간드러지게 불러넘기는 노래가락이 들려왔다.


시에미 등쌀에 검은머리 다 센다

돈벌이 간 님 오면요 얼굴 돌아나볼가

에헤이야- 아하이요


그 노래소리는 지난 세월에 어혈이 든 넋들의 흐느낌소리와도 같이 강물우에 구슬프게 흘러넘쳤다.

노래가락이 끝나자 녀인들은 노래속의 그 시절을 비웃는듯 깔깔 웃어댄다.

창억은 침울하게 눈을 내리떴다.

아버지는 무거운 한숨을 소리없이 내쉬였다.

《아까 그 녀자 손을 잡는걸 보구서는 돌아서더라.… 그러니 내 속인들 편안하겠냐?》

《허, 원 아버지두… 그게 바루 신식인사법입니다.》

《모르는게 아니다.》

《우리 마촌에 오는 선생입니다. 이제 학교를 연답니다.》

《학교?》

《예!》

《좌우간 집에 드문드문 들려라. 혁명에 바람나서 뛔만 다니지 말구.… 저 애는 맘이 하두 고와 붙어있는줄 알아라. 소두 사다매면 싸리비자루로 쓸어주구 손으로 쓰다듬어주구 어루만져주는 법이다. 손탁에 정이 붙으라구. 너는 도대체…》

《아버지, 오늘 유격대입대가 결정이 납니다. 입대결정을 받구 집에 가겠습니다.》

로인은 그 말에 얼굴을 외로 돌리며 모래불에 마른침을 탁 뱉었다.

《다 굴렀다. 동호네는 왁작 떠드는데 무슨 부실한데가 있어 네 소식은 깜깜이냐?》

《동호요? 됐답데까?》

《동호 말이 너는 안됐다누나.》

《어쩌는가 해보는 소리겠지요. 엉뚱한게… 하하하.》

《그녀석이 엉뚱하긴 하지만… 모르겠다.》

《동호가 되문 난 열번은 돼요!》

《만약에 그게 실말이면 일손이 모자라는데 집에 들어오너라. 봐라, 삼도 이제야 손질하는 형편이다. 나하구 농사나 짓자. 군대에 낟알섬을 바치는 백성두 있어야 할게 아니냐.》

창억은 결김에 말고삐를 콱 잡아채며 걸음을 떼였다.

김진세는 아들의 어깨를 와락 거머쥐여 돌려세우려다가 그만두었다.

장부답게 뼈다귀가 실해가는 녀석의 배심좋은 승벽이 은근히 마음에 들면서도 그 말투며 행동거지만은 괘씸했다.

그는 자기앞에서까지 드살을 피우는 그런 주대는 분질러놓아야 되겠다고 별러온지 오랬으나 길복판이라 어쩌지 못했다.

로인은 어금이만 지그시 깨물고 한숨섞인 신음소리를 내였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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