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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제 3 장

6

음악소조원들이 형상한 가요 《보람찬 우리 나라》에 대한 비공개시연회에 참석해달라는 정애경의 초청을 받고 이 학교의 음악애호가들이며 비편제평론가들인 김영찬, 최춘숙, 리철순, 전금송, 조학문교원들이 음악실로 모여들었다. 송금주는 오늘 정애경의 요청에 따라 손풍금반주를 하게 되여있었다.

정애경은 방식상학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중창조성원들에게 라남사범전문학교학생들이 부르던 노래 《보람찬 우리 나라》의 가사와 곡을 베껴주고 한주일동안 정열적인 형상지도를 하였다. 그가 그렇게 한것은 이번 기회에 중창조의 실력을 검증해보자는데 있었다. 중창조의 실력이자 지도교원의 실력이니 그 검증은 자기자신에 대한 판정으로 될것이다. 도달해야 할 기준점은 라남사범전문학교의 중창이다.

정각 오후 3시, 시연회에 참가할 교원들이 다 모이자 정애경은 음악실 동쪽창문들을 모조리 열어놓고 송금주에게 반주를 부탁한 다음 교사밖으로 뛰여나갔다. 나들문에 큼직한 자물쇠가 걸려있는 화목창고앞에 두손을 맞잡고 서서 열기가 번들거리는 시선으로 음악실창가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손풍금을 메고 창문앞에 다가서서 화목창고쪽을 내려다보는 송금주를 향해 손벽을 세번 마주쳤다.

창문을 등지고 돌아선 송금주가 손풍금의 바람주머니를 왼쪽으로 길게 잡아당기는 모양이 바라보이였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발랄하고 류창한 전주곡이 길게 울리였다. 송금주는 마치 바람주머니에 멋진 선률들을 미리 담아가지고 와서 순서대로 마음껏 터뜨리는것 같았다. 소조원들이 마침내 한주일동안 련마한 기교를 뽑으며 《보람찬 우리 나라》를 부르기 시작했다.


로동으로 꽃이 피는 자랑많은 우리 나라

어디 가나 새 희망 우리 가슴 뛰노네


물멀기처럼 가슴에 와 부딪치는 노래의 충격때문에 허파에 생바람을 삼켰을 때처럼 흑 하고 숨을 들이그었다. 음색, 박자, 감정, 강약, 표현력, 가사씹기 등 모든것이 다 뜻대로였다. 그런데 음량만은 보통때의 수준보다 좀 떨어지는것 같았다. 시연회를 준비하면서 제일 걱정했던 고리가 바로 음량이였다. 정애경이 송금주에게 반주를 부탁하면서까지 밖에 나와 노래를 감상하는것은 노래형상을 통하여 얻어지는 총체적인 감흥과 함께 그 음의 질과 량을 정확히 측정하자는데 있었다.

교실에서는 로천에서보다 공명관계로 성량이 훨씬 크게 느껴진다. 방안에서 감상할 때 옹골차게 들리던 노래도 밖에서 감상하면 성음상허점이 인차 드러난다. 정애경의 시도는 그 허점을 잡아내자는것이였다.

노래는 어느덧 2절로 넘어갔다.


로동으로 꽃이 피는 자랑많은 우리 나라

어디 가나 새 희망 우리 가슴 뛰노네

아 갈매기 춤추는 푸른 바다 우리 바다

고기떼가 욱실욱실 풍어기 휘날리면서

저 바다로 달려가자 저 바다로 달려가자


2절이 끝나고 간주가 시작될 때 정애경은 교사쪽으로 달음박질해갔다. 마지막 3절은 음악실에서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느닷없이 떠올랐던것이다. 어찌나도 날래게 달음박질해왔던지 간주음악이 끝나기도 전에 음악실에 들어섰다. 음악에 심취될대로 심취된 비편제평론가들은 그가 방으로 들어서는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중창조의 어린 가수들쪽만 뚫어지게 지켜보고있었다.

송금주가 왼손 세손가락으로 쏠과 미, 도에 해당되는 단추들을 박력있게 눌러 간주음악에 마침표를 찍자 노래의 3절이 흐르기 시작했다.

가사내용과 악곡의 흐름새에 따라 개울물처럼 조잘거리기도 하고 수도꼭지에서 쏟아져나오는 물줄기처럼 줄기차게 주정토로도 하던 노래는 3절에 이르자 있는 성량과 기백을 다 모아 구룡연의 폭포수처럼 격렬한 기상과 열정으로 조국에 대한 다함없는 사랑을 터놓았다.


로동으로 꽃이 피는 자랑많은 우리 나라

어디 가나 새 희망 우리 가슴 뛰노네

아 불길높은 용광로 무쇠강철 뽑고뽑아

구슬땀 맺힌 자랑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 락원 꾸려가자 우리 락원 꾸려가자


중창조성원들이 《사랑하는 조국에》라는 노래로 정애경에게 선을 보였던 그날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첫 박수는 김영찬교무주임이 쳐주었다.

《잘했소! 이거요!》

그는 엄지손가락을 쳐들고 그것을 중창조성원들과 량옆의 교원들에게 흔들어보이였다. 언제나 평가에 관대하고 일처리와 사람을 다루는데서 공명정대한 교무주임이였다. 그러나 김영찬은 만사를 너그럽고 온후하게 보는 《좋다주의》가 아니였다. 그가 평가를 관대하게 하는것은 형상의 질과 실적의 높이가 기준치를 넘어설 때였다. 기준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실적이나 질에 대해서는 얼굴을 가리지 않고 맵짠 비평도 하였다. 그렇다면 이 시각 중창조의 노래를 듣고 잘한다고 격찬하는 김영찬의 평가기준은 무엇인가 하는것이다. 그는 아직 라남사범전문학교의 녀중창과 같은 고급한 노래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다. 그가 들어본것이 있다면 군무대에 출연하는 몇몇 학교의 성악종목일것이다. 그러고보면 김영찬이 엄지손가락을 들고 제일이라고 표현한것은 군에서 으뜸간다는 뜻으로 된다. 군소재지의 중학교중창이 군적으로 첫손가락에 꼽힌다는 사실은 별로 놀랄만 한 일도 아니고 크게 떠들어댈 일도 아니다.

애경이 중창조의 노래형상을 지도하면서 도달하려고 선정한 기준은 라남사범전문학교 중창조의 수준이다. 그 수준에 도달할 때라야만 그는 방식상학에 참가하고 돌아온 소조지도교원의 사명에 충실했다고 말할수 있고 소학교 1학년때부터 피아노앞에서 꼬박 8년동안이나 음악수업을 받아온 행운아로서 응당 갖추고있어야 할 자질과 재능을 충분히 발휘했다고 자부할수 있었다. 그런데 정애경은 지금 랭철한 리성을 가지고 자기가 바친 노력의 결과를 정확히 판정할만 한 정신적준비가 되여있지 못했다. 그는 극도의 흥분상태에 빠져 여라문명되는 교원, 학생들이 나들문을 활짝 열어놓고 음악실문을 들여다보고있는것조차 감촉하지 못하였다.

《새 선생이 오더니 중창단이 용을 쓰기 시작하는구만.》

로어과목을 담당한 천정학선생이 복도에서 큰소리로 하는 말이였다.

《노래도 좋지만 부르기도 잘 불러.》

김승운지리교원이 그 말에 맞장구를 쳤다. 바통은 시연회에 참가한 비편제평론가들에게로 넘어왔다. 먼저 최춘숙분과장이 정애경의 어깨를 한손으로 부여잡고 푹 가라앉은 저음으로 말했다.

《료리사의 솜씨에 따라 음식맛이 달라진다더니 애경선생은 오늘 훌륭한것을 내놓았어요.》

《방식상학에 갔다온지 한주일밖에 안되는데 그새 형상지도를 정말 잘했소. 중창이 생신하거던.》

영천중학교 남자교원들가운데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장신자인 리철순이 쪽걸상에 까치다리를 하고앉아 뜨직뜨직 말했다. 말수가 적어 하루 세마디만 해도 사변으로 여길 정도로 과묵한 사람이다. 입으로 다 말하지 못한것을 눈으로 봉창할 심산인지 부끄럼을 잘 타는 처녀들처럼 얼굴에 홍조를 담고 중창조성원들을 두리번두리번 살펴본다.

《중창이 때벗이를 하기 시작했소.》

정애경의 나이를 두곱 합친것보다 다섯살 더 많은 전금송도 한마디했다. 영천토배기인 그 녀자는 말투도 텁텁하고 투박했다.

《전에는 소리가 뿌연감을 주었는데 지금은 한껍데기 벗은것처럼 말쑥해진감이 나요.》

최춘숙은 이번에도 적절한 비유를 써가며 다른 교원들이 내린 평가에 채색을 하였다. 이 모든 칭찬은 대체로 정애경이 예견했던것들이였다. 그자신도 중창수준이 초기에 비해 껑충 뛰여올랐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우물안의 개구리나 다름없는 시골교원들의 안목이란 달리 될수 없는것이다.

정애경이 제일 두려워하는것은 송금주와 조학문의 반향이다. 그들이야말로 음악을 학문으로 받아들여 소화시킨 고급한 아마츄어들이였으며 어떤 정황에서나 자기가 본 소감을 그대로 솔직하게 터놓을수 있는 직통배기들이였다. 그런데 송금주는 화제에 뛰여들 차비가 안되였는지 창턱에 기대여서서 다른 평자들의 말만 묵묵히 듣고있다. 조학문이 입을 열지 않는것은 더구나 재미없는 일이다. 그의 무언은 종종 그 어떤 독설보다 더 신랄한 불만의 표시로도 되군 한다. 조학문은 보기드문 해학가인 동시에 만사람의 총애를 받는 독설가이기도 하다.

정애경이 조학문의 침묵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대하는것은 그가 다른 학문은 물론 음악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을 찜쪄먹을 일가견을 가지고있기때문이였다. 해방후 청진에서 2년제교원대학밖에 다니지 못했다는 사람이 어떻게 되여 문학과 음악에 그리도 조예가 깊고 로어와 중어, 일본어는 어느 하가에 회화까지 할 정도로 그렇게도 속속들이 통달하였는지 그것은 아직까지도 수수께끼같은 비밀로 남아있었다. 중요한것은 예술을 보는 조학문의 눈이 매우 정확하고 음악에 대한 그의 견해가 대단히 독특하다는데 있었다.

《문단에서는 작품합평회때 결함을 많이 말하는 사람이 유식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는 말이 돌던데 나도 오늘은 좀 유식한 사람이 되여봅시다.》

그는 먼저 이런 식으로 서두를 떼고나서 말을 이었다.

《음색도 곱고 성량도 그만하면 풍부한데 소리에 특징이 없는게 흠이라고 할가. 이런 류의 음색은 어느 고장, 어느 학교에나 다 있는거라고 봅니다. 음색에 특징을 주려면 소리색갈이 특출한 례컨대 저 고음의 태원옥과 같은 학생의 소리를 본보기로 하여 중창단 전체 성원들이 그 소리를 그대로 닮도록 지도하는것입니다. 그래야 중창이 다른 중창들과 구별되는 산 중창으로 될게 아닙니까. 그다음 형상을 지나치게 하던 나머지 소리가 밖으로 씨원스레 나오지 못하는것 같은감이 납니다. 형상을 한다고 하면서 소리를 지나치게 억제하면 노래가 활 트이지 못하고 답답한감을 주게 됩니다. 형상이란 노래의 사상감정을 충실히 표현하는데 복종되여야지 멋이나 장식으로 되여서는 백해무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조학문은 내리드리운 안경테우로 눈을 약간 지릅떠 정애경의 반응을 일별하고나서 말을 이었다.

《다음으로 가수들의 얼굴표정이 문제입니다. 얼굴표정이란 곧 눈매인데 눈을 가지고 너무 조화를 부리니 형상에 도움을 준다기보다 오히려 보름달에다가 알락달락한 색종이를 오려붙인걸 보는것 같은 인상만 남습니다. 애경선생, 이만하면 내가 유식한 인물로 될수 있을가?》

그는 내려드리운 안경테우로 다시금 정애경을 치떠보았다.

《선생님, 다 옳은 지적입니다. 그렇게 일일이 꼬집어주니 허물이 명백해지고 수술을 어느 부위에 해야 하겠는가 하는게 쭈욱 선이 섭니다.》

그것은 인사치레가 아니라 정애경의 진심이였다. 조학문이 세가지 측면에서 중창조의 흠을 잡아낸것은 일종의 발견이라고도 볼수 있었다.

그것은 정애경이 전혀 주의를 돌리지도 못했던 흠이였다. 그는 조학문이 조목조목 따져가며 지적한 내용들에 공감되였고 그래서 그 지적을 고맙게 받아들이였다. 정애경은 조학문의 비평을 들으면서 형상을 위한 형상은 조작감을 주며 예술의 격과 품위를 떨구는 유해로운 작용을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금주선생은 왜 아무 말도 없소?》

김영찬이 창턱에 허리를 기대고 서있는 송금주를 향해 말을 걸었다.

송금주는 반사적으로 창턱에서 허리를 떼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여러분들이 다 옳은 평가를 내렸다고 봅니다. 조학문선생의 견해에도 공감입니다. 발성도 좋고 음색도 곱고 기교도 훌륭합니다. 그런데 노래형상에서 넋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노래지도에서 기교주의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금주는 말을 끝내고나서 정애경을 향해 눈을 끔쩍해보이였다. 웃으면서 하는 짝패의 말이였으나 정애경은 가슴이 선뜩해지는 자극을 받았다. 노래에서 기교를 껍데기라 한다면 넋은 속살이라고 말할수 있다.

노래형상에서 넋이 느껴지지 않는다는것은 껍데기는 있는데 속살이 없거나 변변치 않다는 의미일것이다. 넋이란 곧 사상감정이다. 넋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송금주의 비평을 직선적으로 해석하면 가수들의 노래형상에서 사상감정이 충분히 표현되지 못한다는 뜻으로 된다. 그야말로 정통을 찌르는 비평이다.

정애경은 송금주가 노래형상이 안고있는 본질적약점을 예리하게 포착했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정애경이 《보람찬 우리 나라》의 형상지도를 하는 전기간 시야밖에 두었던 문제였다. 송금주가 정당하게 지적한바와 같이 그는 기교를 련마하는데만 신경을 쓰면서 라남사범전문학교의 중창을 모방하려고 애써왔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모방은커녕 흉내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는가. 송금주는 오늘 그 요인을 한마디로 정확하게 분석하였다. 영천중학교의 녀중창이 넋이 없는 중창으로 된것은 지도교원인 정애경이 형상지도에서 가수들의 사상감정을 홀시한데 있다. 정애경은 그것을 자인하였다. 언제인가 음악실에 들려 중창조의 훈련모습을 보고난 송금주가 가사해석을 심도있게 해주라는 조언을 한마디 해주고 돌아간 일이 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노래의 내용을 중시하라는 암시였던것 같다. 그때 정애경은 그 조언을 흘려들었다. 결국은 그 후과가 노래형상에서 넋의 부족으로, 사상감정의 홀시로 나타난것이다.

《나 혼자만 유식한 사람이 되려던노릇이 금주선생때문에 망가지게 됐군. 금주선생이 핵을 건드렸소. 그 핵만 해결하면 우리 중창이 라남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것 같소.》

조학문이 정애경을 넌지시 돌아보며 하는 말이였다.

《다들 옳은 말씀을 했는데 명심하겠습니다.》

정애경은 얼굴에 웃음을 담고 궁륭형으로 앉아있는 교원들에게 두루거리로 말했다. 이 시연회의 주빈격으로 복판에 앉아있던 김영찬이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창에 대한 우단점들은 충분히 토론되였다고 보므로 더 언급하지않겠습니다. 다만 학교의 지도일군의 한사람으로서, 또 당조직을 책임진 세포위원장으로서 내가 말하고싶은것은 무대복이 너절하다는겁니다. 중창조의 무대복을 당장 새것으로 교체해야겠습니다. 지금 군당과 군인민위원회, 군민청에서는 우리 학교의 예술소조활동에 특별한 관심을 돌리고있습니다. 읍중학교의 예술소조를 본보기로 하여 저조한 상태에 있는 군내 학교들과 공장, 기업소들, 농장들의 예술소조활동을 활성화하자는것이 군당위원회와 군인민위원회의 구상입니다.》

교무주임은 여기까지 말하고나서 정애경에게 격려의 눈길을 보냈다.

《그런데 우리 학교의 실정은 어떤가. 학생수가 1 500명이상이나 되는 학교에 중창조가 하나 겨우 있을뿐입니다. 그나마 본격적인 공연활동은 얼마 못하고 훈련만 하고있는 형편입니다. 우리의 결심은 이 중창조를 모체로 하여 학교전반의 예술소조발전에서 혁명을 일으키자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학교에 연극소조와 기악소조를 내오자는것입니다. 애경선생, 1, 2학년 학생들로 중창조를 1개조 더 만들어보시오. 그러면 후비문제도 풀수 있고 공연활동도 독창, 중창, 합창시, 노래재담, 음악, 무용이야기 등으로 종목을 늘여가지고 다각적으로 할수 있을거란 말이요. 어떻소?》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문학분과장선생!》

김영찬은 사범대학졸업생이며 문학분과의 로장파인 최춘숙을 불렀다. 최춘숙은 《예.》 하는 대답과 함께 호함지게 틀어올린 트레머리를 공연히 매만지였다.

《앞으로 문학분과에서는 예술소조에 필요한 작품창작을 전적으로 담당해야겠소. 어떻게 만날 신문, 잡지에 나오는 기성작품들만 가지고 뚱땅거리겠소. 문학교원이 여렷이나 되는 학교인데 우리도 자존심을 세워야 하지 않소.》

《그건 옳은 말씀입니다. 나는 무재간이지만 저 송금주선생과 김일경선생은 여간내기들이 아니니 분공만 주면…》

최춘숙은 그렇지 않느냐는듯이 송금주를 향해 눈웃음을 지어보이였다.

송금주는 아무 반응도 없이 웃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정색해서 한마디 하였다.

《글쎄 나나 일경선생한테 그런 재간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들고나갈 작품을 우리 힘으로 창작해야 한다는 교무주임선생님의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고맙소, 앞으로 꼭 그렇게 해주시오.》

교원들이 돌아가고 중창조성원들이 음악실을 떠난 다음에도 정애경은 풍금앞에 마주앉아 방금전에 있은 시연회의 결과를 두고 재음미하였다. 중창에 대한 총적인 평가는 물론 그가 예견했던대로 긍정적이였다. 세가지 흠에 대해 지적한 조학문이나 송금주조차도 중창조의 발전상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정애경은 그런 칭찬에 들뜨지도 않았고 현훈증에 걸리지도 않았다. 남의 창조물에 대한 교육자들의 평가란 대체로 온화하고 관대한 법이다. 그를 제일 크게 각성시킨것은 노래형상에서 넋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 송금주의 사심없는 비평이였다. 그것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비판이였다. 정애경은 애당초 넋이라는것을 형상의 구성요소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송금주는 대학졸업생도 아니고 전문적인 창법공부를 한 음악전문가도 아니다. 그저 8년동안 나와 함께 우리 아버지의 수하에서 음악의 기초와 피아노연주법을 배운것밖에 없다. 성악에 대한 상식은 그래도 송금주보다 내가 더 많이 가지고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송금주는 넋에 대한 일가견을 가지고있는데 자기는 그런 개념조차도 모르고있는가 하는것이다. 그리고 그가 가사해설을 잘해주라는 조언을 주었을 때 자기는 왜 그것을 범상하게만 받아들이고 참작조차 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정애경 자기는 음악예술의 기초이며 핵인 사상감정을 무시하고 형상지도에 매달린 아둔하고 무지한 교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내가 라남사범전문학교의 중창을 감상하면서 제일 큰 충동을 받은것은 무엇이였던가. 그것은 노래전반에 차넘치는 조국에 대한 높은 긍지와 열렬한 사랑의 감정이였다. 그 감정은 나의 심장을 틀어잡았고 나에게서 눈물까지 자아냈었다. 그들이 발휘한 기교는 그 숭고하고 아름다운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였을뿐이다. 한데 그 수단에만 집착하고 그들의 솜씨를 모방할 궁리만 하면서 엉터리없는 복제품을 만들어냈다. 송금주는 훈련단계에서 벌써 우리 중창이 넋이 없는 복제품이라는것을 간파하고 그 시정방도까지 대주었다.

방식상학에 참가하지도 못한 송금주가 쉽사리 발견한 약점을 방식상학에 참가한 자기는 왜 감촉하지 못하였는가. 확실히 송금주에게는 나에게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그런데 나는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도모르고있다. 그와 10년가까이나 이 세상 둘도 없는 벗으로 지냈다는 내가 말이다. 이것이 비극이다.

정애경은 풍금앞에서 일어나 조용히 방안을 거닐었다. 그의 눈앞에는 라남사범전문학교 중창의 산파인 김계옥교원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작달막하지만 어여쁘고 아담한 모습이였다. 그러나 정애경에게는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가 거인처럼 생각되였다.

그가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있는 사이 김영찬이 종이묶음을 들고 들어와 풍금뚜껑우에 소리없이 내려놓았다.

《오선지요. 창작에 필요할거요.》

그는 안경알너머로 정애경에게 미소를 보내고나서 방을 나섰다.

생활은 그의 번뇌 같은것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앞으로만 줄기차게 흘러가고있다. 정애경은 그 물결에 실려 어디론가 둥둥 떠가는것 같은 감을 느끼며 오선지뭉치를 가슴에 꼭 붙안고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 오선지를 풍금우에 도로 내려놓았다.

아무런 음부기호도 없는 순수한 오선지였다. 정애경은 아무런 뜻도 맥박도 없는 그 4간5선에서 마치 넋이 없는 자기의 공허한 마음속을 들여다보는것 같았다. 그 오선지에 어떤 선률이 오르게 될지 그것은 두고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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