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날자별열람


제17회


제 3 장

5

정애경은 라남사범전문학교에서 하게 될 방식상학에 참가하려고 북행렬차에 몸을 실었다. 이번에 도당과 도인민위원회에서 라남사범전문학교에서 예술소조활동과 관련한 방식상학을 조직하게 된것은 이 학교의 예술소조원들이 거둔 특출한 성과를 도내 모든 학교들에 일반화하자는데 있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학교 예술소조원들이 도종합예술공연에 들고나온 두곡의 녀성중창을 들으시고 노래를 대단히 잘 부른다는 치하의 교시를 하시고 분에 넘치는 선물을 보내주시였다. 라남사범전문학교로는 전국각지로부터 수십통의 축하전보와 백여통의 축하편지들이 날아왔고 도당과 도인민위원회로는 이 학교에서 예술소조활동과 관련한 방식상학을 조직하도록 해달라는 요청이 끊임없이 제기되였다.

이번 방식상학에는 도내 모든 중학교들에서 예술소조를 담당한 지도교원들이 1명씩 참가하게 되여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예술소조지도교원의 자격으로 난생처음 공식적인 대외사업에 참가하게 된 정애경은 퍼그나 들뜬 기분으로 렬차에 올랐다. 신록이 무르녹는 차창밖의 풍경과 대기에 차넘치는 봄의 훈향으로 하여 그의 심신은 자못 흥겹고 유쾌하였다.

정애경은 이번 행차에 대단히 큰 의의를 부여하고있었다.

방식상학에 참가하면 녀성중창을 담당했던 지도교원을 만나 성악훈련의 기초와 발성법에 대한 설명도 들어보고 소조운영방법도 배워 영천중학교의 녀성중창조를 일류급의 강팀으로 만들자는것이 첫째 목적이였고 이번 기회에 도적으로 명망이 높은 많은 소조지도교원들과 친교를 맺어 장차 예술경연무대에 나가 두각을 나타내는데 필요한 인적배경을 마련하자는것이 두번째 목적이였다.

방식상학이 끝나면 청진에 들려 부모도 만나고 돌아갈 결심이였다.

라남역에서 동쪽으로 얼마쯤 걸어가다가 평라선철길을 건너가면 라남사범전문학교에 인차 가닿는다. 방금 렬차에서 내려 나들문을 빠져나온 손님들중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정애경의 앞뒤에서 사범전문학교방향으로 직행하였다. 학교운동장에서는 북부지구에서 아침차로 먼저 도착한 교원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한담을 하고있었다. 울타리너머로 도간도간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남부지구 손님들이 도착하자 운동장 여기저기에서는 수선스러운 설레임이 일었다.

구면들끼리의 떠들썩한 상봉이 있는가 하면 초면들사이의 서먹서먹한 공기를 깨는 다정하고 살틀한 인사소개도 있었다. 같은 렬차의 같은 차칸을 타고 오면서도 남남처럼 무심히 대하던 사람들이 운동장에 와서야 서로 통성을 하면서 야단스럽게 웃어대는 풍경도 참으로 정겹고 따뜻한것이였다. 주먹으로 서로 어깨를 쥐여박으며 껄껄거리는 흥분파, 행동파들도 있었다.

학교측안내자가 운동장에 나와 방식상학참가자들은 모두 강당에 모이라고 소리치자 한담과 인사소개에 여념이 없던 교원들은 중앙현관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수백명의 교원들로 만원을 이룬 강당은 억제할수 없는 기대와 호기심과 속삭임소리로 하여 흥성거리였다.

학교측을 대표하여 연탁앞에 나선 교장은 오후 첫시간부터 방식상학을 하게 된다고 선포하면서 오전 나머지 시간을 리용하여 교사와 음악소조실에 대한 참관을 조직하게 되니 중앙현관앞에 시, 군별로 정렬해 달라고 하였다.

학교교사와 음악소조실에 대한 참관은 남부 시, 군부터 시작하였다.

정애경에게는 눈에 보이는것마다가 다 새롭게 느껴지고 감탄을 자아냈다. 교실과 복도의 벽들은 설탕가루처럼 새하얗고 마루바닥들은 어느것이나 아늑하고 정결하였다. 음악의 기초를 도면화한 걸그림과 벽에 나붙은 직관물들은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참관자들의 시선을 잡아당기였다.

정애경은 직관물들의 내용과 형태는 물론 소조실에 진렬된 악기들의 명세까지도 수첩에 일일이 적어넣었다. 이제 학교에 돌아가면 그것을 모델로 하여 음악소조실의 직관물들을 갱신할 결심이였다.

오후 2시부터 일정대로 방식상학이 시작되였다. 좌석수보다 손님수가 더 많아 분과실들과 소조실들의 의자를 다 들어내다가 강당에 옮겨놓았다. 수백명군중이 질서정연하게 모여앉아 행사개막을 기다리는 강당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였다.

방식상학에 앞서 도당위원장이 어버이수령님께서 학교음악소조원들이 출연한 녀성중창을 몸소 보아주시고 주신 교시와 은정깊은 사랑을 엄숙하면서도 정중한 분위기속에서 전달하였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라남사범전문학교 녀성중창조가 부른 노래 〈녀교원의 영예〉와 〈보람찬 우리 나라〉를 들으시고 노래를 대단히 잘 부른다고 치하하시면서 공연에 참가한 녀성중창조 전체 성원들과 연주를 담당한 남자손풍금수 그리고 가요 〈녀교원의 영예〉를 작곡하고 두 노래의 형상지도를 하는데서 주도적역할을 한 교원에게 자신의 감사와 함께 사랑의 악기들을 보내주시였습니다.》

요란한 박수가 강당을 뒤흔들어놓았다. 그것은 박수이기 전에 폭풍이였다. 전달자가 얼마나 진지하고 목메인 음성으로 말을 했던지 어떤 참가자들은 솟구치는 격정에 온넋과 몸을 송두리채 내맡기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옆사람의 팔굽을 툭툭 건드리며 탄성을 내지르기도 하였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자감상태에 빠진 나머지 박수를 치던 자세 그대로 두손을 맞잡고 연탁쪽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였다. 온 장내가 감격과 경탄, 환희의 도가니로 끓어번지였다.

도당위원장이 연탁을 떠난 다음 소개를 담당한 녀학생이 무대 오른쪽끝에 나서서 어버이수령님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치하의 교시를 받는 영광을 지닌 녀성중창조성원들의 노래를 들으시겠습니다 하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공연소개를 하였다.

소개자가 면막뒤로 사라지기 바쁘게 반대켠쪽에서부터 가지색무대복을 입고 중발머리꼭대기에 나팔꽃만치나 큰 도라지색리봉을 단 녀학생들이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무대에 나와 중창대형을 지었다. 그 대형의 한쪽끄트머리에 손풍금을 멘 남학생이 나타났다. 모두가 하나같이 날씬하고 미끈한 녀학생들과는 대조적으로 손풍금수는 몸매가 다부지고 유모아적인 얼굴생김새를 가진 학생이였다.

정애경은 눈에 초롱불을 켜들고 손풍금수를 지켜보았다. 모든게 둥글둥글하고 토실토실하게 생긴, 건반을 짚고있는 손가락마디들조차 짤막하고 뭉툭해보이는 저 손풍금수의 넋속에서 이제 어떤 선률이 어떤 음색으로 폭발하게 되겠는지 조바심이 날 정도로 자못 궁금하였다. 어쩐지 손풍금수의 생김새처럼 건반이 내뿜는 소리도 부드럽고 둥글둥글 할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였다. 손풍금수가 머리를 한쪽옆으로 좀 기울이고 바람주머니를 량옆으로 힘껏 잡아젖히자 예상과는 달리 아주 생기발랄하고 명랑하면서도 날카롭고 박력있는 선률이 손풍금에서 쏟아져나왔다. 그 학생은 장식음을 섞어가면서 능란한 솜씨로 전주를 부리나케 엮어댔다. 그 전주에 뒤이어 중창조가 마침내 맑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녀교원의 영예》를 긍지높이 노래하였다.


아지랑이 아롱진 시내가 언덕에서

소년들이 즐겁게 노래하며 춤추네

혁명의 투지로 다져지는 미래들

로동당의 품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네

아 우리들은 녀교원

자랑도 끝없어라


저 둥글둥글하게 생긴 손풍금수가 가사를 쓰고 음악교원이 작곡을 한 노래라고 한다. 후대들의 장래를 책임지고 분발하는 우리 시대 교육자들의 긍지와 자랑을 얼마나 생동하고 랑만적인 언어와 선률로 표현하고있는가.

가사도 좋고 곡도 좋다. 어쩌면 직업적인 창작가도 아닌 교원, 학생의 합작품이 저렇게도 화려한 선률, 저렇게도 황홀한 음색을 가지고 사람들의 심금을 이다지도 강하게 울려주고있을가.

저 노래에는 우리 시대 교육자들의 숨결이 있고 맥박이 있다. 그들의 심혼속에서 고동치고있는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자부가 있고 행복감이 있다. 작사자는 《녀교원의 영예》라는 소박한 말로 그 자부심과 행복감을 표현하고있지만 선률은 그보다 더 많은것을 시사해주고있다.

정애경은 온몸의 피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세차게 맴돌다가 악곡으로 변하여 어디론가 날아가는것 같은 무아경에 잠겨 눈을 꼭 감고 앉아있었다. 그의 령혼은 지금 노래에 실려 낯익은 강가로 날아가고있었다. 그것은 라북천도 어랑천도 아닌 우리 영천의 화대천이였다. 여름날 교사옆의 동뚝우에 올라서면 강에서 자맥질을 하며 떠들어대는 아이들을 볼수 있었다. 어떤 날은 아이들이 그 강에서 반두질도 하고 낚시질도 하였다. 처녀애들은 거기서 머리도 감았다. 이런 정서를 포착한 작가는 강변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부감하며 교원의 영예를 격조높이 토로하였다. 이런것이 평론가들이 흔히 말하는 문학적인 일반화라는것이 아닐가.

저 노래는 내가 좋아하는 류형의 노래이다. 시어도 선률도 리듬도 죄다 완전무결하다. 마치 나를 위해 일부러 만들어진 노래인것 같기도하다.

정애경이 이런 생각을 하고있을 때 경쾌한 전주가 길게 울리고 두번째 노래인 《보람찬 우리 나라》가 시작되였다.


로동으로 꽃이 피는 자랑많은 우리 나라

어디 가나 새 희망 우리 가슴 뛰노네

아 종달새 노래하는 살기 좋은 협동벌에

뜨락또르 우릉우릉 봄노래 부르면서

오곡백과 가꿔가자 오곡백과 가꿔가자


저것은 송금주의 노래이다. 청소년가요들중에서 금주가 제일 사랑하는 노래이다. 교육간부학교시절에 그는 저 노래를 얼마나 많이 볼렀던가. 기숙사에서도 부르고 오락회장에서 부르고… 지금은 설겆이를 하면서도 부른다. 지금 그가 이 강당에서 나와 함께 저토록 조화롭고 세련된 《보람찬 우리 나라》를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가. 저 만냥짜리 노래를 금주없이 나 홀로 듣는게 유감스럽다.

폭풍같은 박수소리가 장내를 울릴 때에야 정애경은 자감상태에서 깨여나 두손을 짝짝 마주치면서 《재청!》 하고 소리질렀다.

그 순간의 그는 저 무대가 극장무대가 아니며 거기서 벌어지는 중창조의 출연도 순수한 예술공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있었다.

황홀경에 취한 나머지 그저 심장에서 고패치는 격동을 그대로 표현했을뿐이다. 그의 웨침소리를 선창으로 여기저기서 《재청!》 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관중들의 열광적인 요청에 따라 중창조는 같은 곡들을 다시한번 불렀다.

《정말 잘 부르지요?》

정애경은 북부의 어느 한 시, 군에서 왔다는 초면의 녀교원에게 말을 건넸다.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지만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는 법이다. 나이 지숙한 녀교원은 무대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두어번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정애경을 돌아보며 《그래요, 정말 그래요.》 하고 동감을 표시하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난 저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 학생들을 처음 봤어요. 막 신비스러울 정도예요. 저 중창조를 이끌고있는 지도교원이 정말 부럽군요.》

그러자 그옆에 앉아있던 쌍태머리녀교원이 그들의 대화에 뛰여들었다.

《난 이번에 결혼식을 하는 음악선생을 대신해서 여기에 왔어요. 자기 전공분야가 아니라고 좀 시틀해서 왔는데 하마트면 행운을 놓칠번 했지요. 저 학생들이 부른 노래를 한평생 잊지 못할것 같애요.》

《난 완전히 압도당한 심정이예요. 그 높은 예술적경지와 향취에 흠백 취해버렸지요.》

나이 지숙한 녀교원이 다시금 화제를 이어나갔다. 정애경은 그 녀교원이 자기의 심정까지도 그대로 대변했다고 생각하였다.

《오죽하면 우리 수령님께서 대단히 잘 부른다는 평가를 하셨겠어요. 〈대단히〉라는 거기에 방점이 있지요.》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방식상학이 끝난 다음 라남역 기다림칸에서 청진행렬차를 기다리는 사이에도 정애경은 압도당한듯 한 심경에서 헤여나오지 못하였다. 그는 불구자들이 자기의 육체를 두고 느끼는 렬등감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대합실 장의자 한쪽구석에 몸을 움츠리고 죽은듯이 앉아있었다.

방식상학을 두고 열정적으로 소감을 나누는 사람들속에 끼여 말참견을 하고싶지도 않았고 뭇시선들이 집요하게 훔쳐보는 자기의 미모를 뽐내기 위해 대합실안팎을 실없이 돌아가고싶지도 않았다.

어제까지도 정애경은 자기가 남보다 못지 않은 재능을 가지고있다고 생각해왔다. 도나 중앙은 몰라도 영천땅에서는 음악적재능에서 자기를 릉가할만 한 인물이 없을것이라고 자부해왔다. 그와 견줄만 한 인물이 있다면 그것은 송금주뿐이였다. 정애경은 아버지한테서 8년동안이나 피아노수업을 착실하게 받은 처녀였다. 그가 어렸을 때 피아노를 타는것을 보고 동리사람들은 신동이라고 하였다. 그는 피아노 못지 않게 손풍금도 능란하게 연주하였다. 꾀꼬리같은 성대를 가지고 노래도 잘 불렀다. 채보를 하거나 시창을 하는것쯤은 식은죽먹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범전문학교 중창조성원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그처럼 압도당한것은 무엇때문이였던가. 그를 압도한것은 물론 노래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정애경을 압도한것은 무대에는 오르지 않았으나 노래의 구절구절에서 순간마다 엿볼수 있는 지도교원의 모습이였고 그가 중창형상을 통해 유감없이 발휘한 록록치 않은 재능이였다. 정애경은 그 교원이 창조한 경지에 도저히 오를것 같지 못했고 그래서 자기라는 존재가 더 왜소하고 가엾어보였다.

사람이 자기자신의 금새를 정확히 가늠한다는것은 사실상 매우 힘든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주관의 장난으로 자기의 금새를 실제보다 비싸게 보며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낮추 보는것이 통례이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정애경은 언제나 자기의 금새를 실제만큼 본다. 과대망상증은 그와 아무런 인연도 없었다.

정애경은 소심하고 울적한 기분으로 렬차에 올랐다. 그는 차가 청진역을 가까이할 때부터 비로소 울적한 심경에서 벗어났다. 천마산등판의 아담한 벽돌집에서 아흡달 남짓하게 떨어져살았던 부모님들과 곧 만나게 된다는 생각에 번거롭게 갈팡거리던 상념의 파편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철의 도시의 역전광장은 사람들로 붐비였다. 천마산쪽으로 뻗은 거리에도 인파가 흘러넘치였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재난을 겪은 자취들이 차림새와 행장들에 희미하게나마 어려있었지만 사람들의 표정과 걸음걸이에서는 1960년대를 떠밀고가는 영웅인민의 억센 기백과 랑만이 요동치고있었다. 가로등의 형광유리속에서 내뿜기는 비취색의 불빛은 저녁어스름이 스며드는 거리의 풍경에 신비한 색채를 던져주고있었다.

정애경은 천마산비탈의 층계를 오르면서 도시의 전경을 부감하던 고중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나 몇번이고 걸음을 멈추고 시가지를 내려다보았다. 영천땅의 목가적인 풍경과 수성천너머 서쪽과 북의 창평방향으로 눈뿌리가 아프게 펼쳐진 공업도시 청진의 위용은 심한 대조를 이루고있다. 쇠물빛으로 물든 제철지구의 하늘은 몹시도 장엄하고 아름다와보이였다. 바이올린독주곡 《용광로가 보이는 바다가에서》를 감상할 때마다 매번 눈앞에 그려보군 하던 정경이다.


로동으로 꽃이 피는 자랑많은 우리 나라

어디 가나 새 희망 우리 가슴 뛰노네


물매급한 층계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수없이 옆으로 지나가건만 정애경은 아무런 구속도 느끼지 않고 《보람찬 우리 나라》의 첫 두행을 입속으로 조용조용 불러보았다. 제철지구의 하늘에 붉게 타오르는 저 화광이야말로 우리 인민의 신성한 로동이 낳은 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저 꽃으로 하여 우리 나라는 아름답고 어델 가나 새 희망은 넘쳐 우리들의 가슴도 세차게 고동치고있는것이 아니겠는가.

지난해 김책제철소에서는 2호용광로가 조업을 개시하였다. 출선구에서 흘러나오는 쇠물을 보시며 온 세상이 환하게 웃으시던 어버이수령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삼삼하다. 그날은 교육간부학교 학생들도 조업식 행사에 참가했었다. 모두가 행사장에서 돌아와 수령님을 뵙던 이야기로 밤이 새는줄도 몰랐다. 그날 정애경은 이 땅에 꽃피는 모든 행복이 수령님의 품에 시원을 두고있다는것과 그이의 존안에 비낀 태양의 빛발같은 미소는 이 나라 인민이 누리는 만복의 상징이라는것을 가슴뜨겁게 느끼였다.

천마중학교담장을 옆에 끼고 얼마쯤 내려가자 1동 2세대의 낯익은 벽돌집이 강냉이이파리들사이로 내려다보인다. 비탈진 언덕을 깎아 계단식으로 평지를 만들고 거기에 집들을 한동씩 앉히였다. 정애경은 대처에서 고등학교공부를 하다가 오래간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류학생처럼 희열과 조바심이 일렁이는 심정으로 걸음을 다그치였다.

뜨락에 남비가 얹힌 풍로를 내다놓고 종이에 볼을 달아 아궁에 쓸어넣는 녀인의 모습이 눈앞으로 육박해오자 정애경은 더 참지 못하고 뒤로 달려들어 그 녀인의 목을 무작정 그러안았다.

《어머니!》

《아-니, 이게 누구냐. 애경이가 왔구나. 네가 어떻게?》

로춘영은 목에 휘감긴 딸의 팔에 두손을 가지런히 얹었다.

《라남사전에 왔다가 어머니곁에서 하루밤 자고싶어 들렸어요.》

《라남사전엔 왜?》

《방식상학이 있었지요 뭐.》

정애경은 이렇게만 대답하고 이야기를 더 전개하지 않았다. 무슨 방식상학이라는것도 설명하지 않았고 방식상학무대에 오른 학생들의 중창이 얼마나 훌륭한가에 대해서도 딱지를 떼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들이 화제에 오르면 라남에서처럼 또다시 자기자신에 대한 회의와 렬등감을 느끼게 될것 같아서였다. 그는 어머니의 목에 감은 팔을 풀지 않은채 응석기가 줄줄 흐르는 어조로 물었다.

《어머니, 포항구역인민병원에서 시인민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지요?》

《그래, 옮겼다. 직장이 가까와지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집에서 5분만 걸으면 시인민병원이다.》

그때 가시물을 버리려고 밖에 나왔던 이웃집녀인이 말을 걸었다.

《애경이가 참 오래간만이다. 영천에 가더니만 더 멀쑥해졌구나. 거기야 옛날부터 산수가 좋아 이름난 고장이지. 에구, 저 꼴 좀 보라니 깐. 다 큰 처녀라는게 어머니의 잔등판에 떡 붙어서…》

《그 집 모녀는 어떻구. 정화가 상기두 어머니의 팔베개를 베고 잔다던데.》

로춘영이 풍구질을 하며 시까슬렀다.

《팔베개는 무슨 놈의 팔베개. 그 말괄량이같은년이 이 에미한테 그렇게 삽삽하면 얼마나 좋겠소. 그년이 떠벌이기를 〈음전기와 음전기는 서로 배척한다.〉 나.》

이웃집녀인은 혀를 끌끌 차며 터밭에다가 가시물을 활 쏟아부었다.

그리고는 《애경아, 너 래일 아침밥은 우리 집에 와서 먹어야 한다.》 하면서 방안으로 쑥 들어가버렸다.

정애경은 창문너머로 손짐을 들어던진 다음 어머니의 손에서 풍구를 앗아냈다.

《어머니, 내가 돌릴게요.》

일감을 빼앗긴 로춘영은 나무모태우에 걸터앉아 흐뭇한 눈길로 딸의 이모저모를 유심히 뜯어보았다. 그것은 다 자란 자식들을 대할 때 부모들에게서 흔히 보게 되는 눈의 애무였다. 눈은 사람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도 샅샅이 애무한다.

《금주하구 둘이서 합숙살이를 한다지?》

《네.》

《둘이면 적적하겠구나.》

《어머니도 참, 적적할새가 있나요.》

《제가 좋아서 택한 걸음이라지만 생각해볼수록 네 일이 답답하구나. 이 좋은 집을 두구…》

정애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풍구질만 하였다. 스무해나마 애지중지 키운 딸을 슬하에 두지 못하고 객지로 떠나보낸 어디에도 하소할 곳없는 그 애달픈 마음의 응어리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모양이였다.

정애경이 이불보따리까지 싸들고 영천으로 떠날 때 하염없는 눈물로 그를 바래주던 어머니였다. 그 눈물때문에 어머닌 아버지한테서 몇번이나 짭짤한 지청구를 들었던가. 아버지가 쌍수를 들어 지지해주지 않았더라면 정애경은 어머니의 그 짜거운 눈물앞에서 감히 영천행을 결심하지 못했을것이다.

아홉달전보다 퍼그나 겉늙은상싶은 어머니의 섬약한 모습앞에서 송구스러운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 어머니는 심장신경증과 만성위염에 오래동안 시달려온 약골이였다. 그러나 그처럼 병약한 육체를 초불처럼 태워 남편과 딸의 시중을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애경은 어머니를 더 따르고 동정하였다. 정애경의 영천진출은 결국 그가 어머니대신 송금주를 선택한것으로 된다.

정애경인들 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걸 싫어하겠는가. 어머니의 곁에 있으면 물론 고생도 덜한다. 밥을 먹어도 더운 밥을 먹고 옷을 입어도 다리미질한 옷을 입는다. 영천의 합숙에서는 식은 밥을 먹을 때도 있고 덞어진 옷을 제때에 빨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생활에는 좌절을 모르는 랑만이 있었고 그 랑만의 분수이고 진원지인 송금주가 있었다. 강낭밥에 강낭국수를 먹어도 진할줄 모르는 랑만, 퇴색하지 않는 청춘! 정애경은 결국 그것을 찾아서 따스한 어머니의 품이 아니라 영천의 합숙살이를 선택했던것이다.

저녁밥이 다 마련되였을 때 아버지가 대학에서 돌아왔다.

《무슨 일로 왔니?》

정수일은 말코지에 양복저고리를 걸며 딸에게 물었다. 눈빛은 따스하였으나 음성만은 뻣뻣하였다.

《라남사전에 방식상학을 왔다가 들렸대요.》

대답은 정애경이 아니라 로춘영이 하였다. 정수일은 편수책상앞에 까치다리를 하고앉아 여전히 뻣뻣한 어조로 물었다.

《금주는 잘있니?》

《네, 아버지에게 인사를 전해달라더군요.》

《오, 그래.》

정수일이 딸처럼 사랑해온 송금주였다. 송금주와 정애경은 한피아노 앞에서 같은 교측본을 놓고 8년동안이나 정수일의 지도를 받아왔다. 이런 연고를 보면 두 처녀가 다 정수일의 제자라고 할수 있다.

《읍중학교에 배치받았다면서? 읍에 떨어지겠다고 앙탈은 부리지 않았겠지?》

그가 다시 딸에게 묻는 말이다. 부임즉시 편지로 알려준 사연인데 무엇때문에 다시한번 상기시키는지 알수 없다. 어조로 보아서는 못마땅하다는 의미의 질문은 아닌것 같았다. 정수일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오늘호 《로동신문》을 펼쳐들었다. 방안에서는 다시금 찬바람같은 기류가 돌았다. 이런 순간의 정수일은 기후대로 치면 한대에 속한다고 말할수 있다. 로춘영은 온대다. 온대가 싫증날라치면 정애경은 한대의 지붕밑으로 들어가군 했었다. 두 기후대는 정애경의 정신적균형을 유지해주는 천평과도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금 그가 안고있는 좌절감은 온대에 가서도 풀수 없고 한대에 가서도 해소할수 없는 그런것이였다.

《읍에 떨어졌다고 호강할 생각은 말아라. 아무튼 일을 잘해야겠다.》

정수일이 다 본 신문을 접어 책상우에 얹으며 하는 말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잠든 후에도 정애경은 얼마동안 눈을 붙이지 못하고 초조하게 이 세계의 동음에 귀를 기울이였다. 영천이 자그마한 개천이라면 청진은 대하이고 바다였다. 영천땅에서 울리는 음악이 단소 2중주같은것이라면 이 철의 도시에서 흐르는 음악은 대교향악이였다.

아홉달동안 목가적인 2중주에만 습관되여온 정애경은 잠간사이에 대도시가 연주하는 교향곡을 자장가처럼 들으며 자기도 모르게 슬며시 잠들었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