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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제 3 장

4

영천중학교 도서실은 ㄷ자형의 교사 2층 왼쪽끝에 있었다. 문학분과실의 2배쯤 되는 방에 량통배기서가를 여섯줄 놓고 거기에 각종 도서들을 분류별로 배치하였다. 장서능력이 모자라다나니 어떤 책들은 서가우에 층층으로 쌓아놓았다. 학교에 꼬마진료소, 꼬마방송실, 꼬마리발관이 출현한 떼로부터 교직원, 학생들은 이 도서실도 《꼬마도서실》이라고 불렀다. 《꼬마》라는 말은 어린이들의 힘으로 운영하는 도서실이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학생들이 자체로 운영한다고는 하지만 그 꼬마사서들의 뒤에서는 담당교원이 고문처럼 그들을 조종하고있었다.

꼬마도서실의 담당교원은 문학분과의 김향숙이다. 도서실의 어린 사서들은 이 교원의 지도를 받으며 방학기간에도 정상적으로 도서대출을 하고있었다. 네명의 소조원들이 오전, 오후교대제로 도서실을 보고있다.

오후교대로 대출구앞에 앉아있던 눈이 머루알처럼 새까만 3학년 4반의 박춘심이라는 녀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송금주를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였다.

《선생님, 무슨 책을 보려고 오셨습니까?》

박춘심이 자리에 앉으며 묻는 말이다. 열람자들의 단련을 많이 받는 과정에 생긴 례의와 사교성이 목소리와 행동거지에 철철 넘치였다.

《전동기와 관련된 책을 빌리려고 왔어요. 그런 책이 있어요?》

《선생님, 그런 책은 없습니다.》

《라지오를 소개하는 책은?》

박춘심은 이 도서실의 첫손가락에 꼽히는 열성독자인 송금주가 요구하는 책들을 갖추고있지 못한것이 마치 자기자신의 잘못이기라도 한듯이 고개를 푹 숙이였다. 송금주는 김향숙에게 앞으로 군책방과의 사업을 잘하여 과학기술도서들도 많이 구입하도록 조언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도서실을 나섰다.

어디에 가면 장일남에게 참고가 되는 책들을 얻을수 있을가. 군도서관은 며칠째 실사중이라니 교섭해볼 여지도 없다. 어데 가면 구할수 있을가. 군의 력사가 짧은 영천땅에는 책부자라고 일걸을만 한 장서가가 없다. 고작해야 책꽂이 한두개에 채울만 한 책들을 가진 애독가들이 있을뿐이다. 송금주의 눈앞에는 세 벽면을 다 채운 정문호네 집 서가가 느닷없이 떠올랐다. 그 서가들에는 과학기술도서들도 더러 꽂혀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정문호는 군책방의 고정구매자라고 한다. 그의 불우한 처지를 동정하여 책방에서는 그가 요구하는 책들을 1부씩 무조건 팔아주는 특혜를 베푼다는것이다. 정문호의 누이동생이 한주일에 한번씩 책방에 찾아가 새로 들어온 도서들의 목록을 베껴오면 정문호가 필요한 책들에 표식을 해서 다음날로 사오게 한다고 했다.

정문호를 찾아가자. 내가 도움을 청하면 고중때 토방앞에서 그의 청중으로 되였던 인연을 생각해서라도 모르쇠는 하지 않을것이다.

송금주는 청진서 교육간부학교를 다닐 때 고서점을 통해 구해들였던 장편소설 《력사》와 시집 《갈매기》를 지참품삼아 꾸려가지고 정문호네 집으로 향하였다. 그 아저씨가 날 알아볼가. 1년반전에 만났으니 인차 알아볼것이다. 설사 알아 못 본들 뭐라는가. 이제부터라도 친교를 맺고 유무상통하면서 서로가 상대방에게 필요한 존재로 지내면 되지 않겠는가.

정문호는 촉기가 비상한 사람이였다. 그는 송금주가 1년반전에 자기집에 왔다간것을 잊지 않고있을뿐아니라 그날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했다는것까지 생생히 기억하고있었다.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왔소?》

정문호는 읽던 책을 방 웃쪽으로 밀어버리고나서 친절하게 물었다.

송금주는 통바지를 걸친 두다리를 오른쪽옆으로 접으며 외투앞섶에 두손을 가지런히 놓았다.

《아저씨신세를 지려고 찾아왔습니다.》

《허허, 이 정문호한테서 신세라니. 나야 책밖에 없는 사람인데.…》

《내가 맡은 학급에 전동기를 만들겠다는 학생이 있는데 그 학생에게 도움이 될수 있는 참고서가 없겠나 해서…》

《몇학년생인데?》

《중학교 1학년생입니다.》

《중학교 1학년생이 벌써 그런 궁리를 한단 말이요. 거참 대단한 욕심꾸러기로구만. 그런 도움이라면야… 금주선생, 미안하지만 저-기 우로부터 두번째 단을 좀 봐주시오.》

정문호는 창문 맞은켠에 있는 서가를 손짓하였다. 송금주는 서가앞에 마주서서 두번째단의 책제목들을 빠른 눈길로 스쳐보았다.

정문호가 다시금 원격조종을 하였다.

《저기 〈전동기의 구조와 그 작용원리〉란 책이 있지. 그걸 좀…》

그의 말대로 그 두번째 단에는 과연 《전동기의 구조와 그 작용원리》란 책이 꽂혀있었다. 그 책을 얼른 뽑아 정문호에게 넘겨주었다.

정문호는 어떤 회억에 빠진듯 한 표정으로 책의 표지를 한번 쓸어보고나서 속표지까지 번져본 다음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도 한때 전동기를 만들어보자고 궁리했던 사람이요. 어떻게 내 궁리와 그 학생의 궁리가 이렇게도 신통히 맞아떨어질가. 혹시 그 아이가 나처럼 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 학생이 아니요?》

《네, 짝지발을 짚고 학교에 다닙니다.》

《글쎄 내 예감이 틀림없다니까. 문학선생이 〈고리끼문학론〉이나 〈창작의 길〉같은 책들을 찾지 않고 문학과는 아무 인연도 없는 물리 관련도서를 찾을 때야 무슨 곡절이 있겠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될수록 손재간으로 인생을 개척하려는 본능을 가지고있소. 금주선생, 그 학생을 잘 이끌어줘야겠소. 내 그럼 그녀석을 위해 이 책을 넘겨주겠소.》

《전동기의 구조와 그 작용원리》는 정문호의 손에서 송금주의 손으로 넘어왔다. 그것은 한 장서가의 재산이 한 교육자의 재산으로 전환되는 엄숙한 이양식이였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내 어떻게 하나 그 장일남이란 아이를 잘 키우겠습니다.》

《선생의 그 지성이 정말 놀랍소.》

《지성이릴게 있습니까, 응당한 본분인데…》

송금주는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에도 서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보면 볼수록 욕심나는 서가였다. 이런 정도의 장서면 수백수천명의 독자들을 소화할수 있다. 저렇게 불편한 몸으로 이 많은 책들을 언제 다 구해들였을가.

《아저씨, 이 책들을 마련하는데 몇해나 걸리였습니까?》

송금주는 나들문쪽으로 발을 옮기다가 뒤로 돌아서서 물었다. 그것은 고중때부터 알고싶었던 문제였다. 정문호는 실눈을 짓고 마치 처음으로 보는 풍경이라도 대하는것처럼 세 벽면의 서가를 차례로 둘러보았다. 눈은 비록 서가를 스치고있었지만 그 눈의 끝은 수천리밖으로 날아가는것 같았다.

《자그만치 15년이 걸렸소. 해방전에는 서울이나 청진가는 인편에 부탁해서 사들였고 해방후에는 군이 50리밖에 있었으니까 거기 가서 고중 다니는 학생들에게 부탁해서 한책, 두책 사들였소. 책을 모으는 재미와 보는 재미에 맛을 들이면 다른 물건들은 다 하찮게 보이오.》

《아저씨, 솔직히 말해서 전 고중때부터 아저씨의 독자가 되고싶어 했습니다. 그 욕망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저를 고정독자로 받아주시겠습니까?》

《금주선생이라면 내 기꺼이 받아들이겠소. 이 서가를 리용하는 아이들이 스물한명이나 되오. 그러니 선생은 스물두번째 독자로 되는셈이요.》

《아저씨, 고맙습니다. 제 그럼 앞으로 열성독자가 되겠습니다.》

송금주는 정문호의 집을 나선 다음에도 그냥 서가의 책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있었다. 나도 정문호와 같이 저런 멋들어진 서가를 마련할수 없을가, 사설도서실이라고 할가, 마을의 도서실이라고 할가, 명칭이야 아무러면 뭐라는가, 아무튼 도서실이 좋겠다, 합숙옆에 방을 덧달아 도서실로 만들고 책들을 수집해야지, 나와 애경이네 학급 아이들이 1인당 한권씩만 내도 벌써 100권이 아닌가, 생활비를 받으면 한 절반씩 뚝 떼서 책을 사야지, 한달에 다섯권씩만 사도 1년이면 둘이서 120권을 모을수 있지 않는가, 10년이면 1200권이 된다, 우선 나하구 애경이가 계몽돼야지, 요구자들은 다 독자로 받아들이자, 그러면 학교도서실의 부담도 덜수 있다, 학교도서실은 지금 3 000권밖에 안되는 책으로 1 500명의 독자들을 대상하고있는데 이거야 짐이 너무 많지, 가능하면 합숙마을의 어른들도 우리 도서실의 독자로 만들수 있다, 이것은 십분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방을 하나 마련하는것이다, 서가는 그 다음문제이다.

송금주의 머리속에서는 이런 꿈이 비상히 빠른 속도로 무르익어갔다. 그는 잠시 마음을 다잡고 속으로 방금전에 떠오른 착상을 음미해보았다.

과연 현실성이 있는 꿈이라고 할수 있을가. 그게 만일 닭알로 피라미트를 쌓는 식의 망상이라면?… 그러면 사람들이 나를 책보따리를 들고 풍차로 돌진해가는 현대판 돈 끼호테라고 하지 않을가. 아니, 그렇게는 안될것이다. 여기에 무슨 불가능이란게 있을수 있겠는가. 물론 보수주의자들과 신비주의자들의 입방아질은 각오해야 한다. 나를 공명주의자라고 헐뜯는 사람들도 있을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건 두렵지 않다. 제일 두려운건 내자신이 동요하거나 난관앞에서 겁을 집어먹고 시작했던 일을 중도반단하는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것이다.

송금주는 언제 탄광지구를 벗어났고 또 언제 학교로 돌아왔는지 자기로서도 잘 알수 없었다. 그저 뭉게구름같이 뭉글뭉글 떠오르는 공상에 실려 발이 어디에 놓이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는 무아경에 잠겨 걸음을 옮기던 기억만이 댕그랗게 남아있을뿐이였다. 그는 중앙현관에 들어서기 바쁘게 김동주와 맞다들었다.

김동주는 송금주를 보자마자 난데없는 종이장부터 내밀었다.

《선생님, 여기다 수표를 좀 해주십시오.》

오늘은 가는 곳마다에서 극적인 사연들을 체험한다. 뚱딴지같이 수표는 또 뭔가. 종이장을 받아쥐고 몇줄 안되는 글줄을 읽었다.


확 인 서

겨울나이용땔감으로 톱밥이 필요함.

영천중학교 1학년 1반 담임교원

송금주


김동주는 어느새 만년필까지 꺼내들고 담임교원의 수표를 기다리고있다. 이건 도대체 무슨 감투끈인가. 석탄이 막돌보다 더 흔해 길바닥에서까지 디굴디굴 굴러다니는 이 영천땅에서 겨울나이땔감으로 톱밥을 쓴다는것은 믿을수 없는 일이다. 겨울에는 어느 학교에서나 다 석탄을 때지 톱밥 같은것은 왼눈으로도 보지 않는다. 톱밥으로 어떻게 교실온도를 보장하는가. 학교창고에 겨울나이용석탄이 가득차있는데 하필이면 왜 불땀이 약한 톱밥을 난로에 넣고 때겠는가.

혹시 어느 아이네 집에 석탄이 떨어져 톱밥으로 그걸 대신하려는건 아닐가. 제재소에 가서 톱밥을 달라고 하니 담임교원의 확인서를 요구했을것이다.

《사연을 말하기 전에는 수표를 안해주겠어요. 어데다 쓰는 톱밥인지 말해봐요.》

송금주는 김동주의 손바닥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만년필을 본척도 않고 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동주는 말총처럼 거센 머리카락을 뻑 쓸어올리고나서 힘들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우리 소년단반에서는 새 학기부터 교실난로에 석탄대신 톱밥을 때자고 궐기했습니다.》

《어떻게 되여 갑자기 그런 궐기를 했나요?》

《갑자기가 아닙니다. 우린 갱견학을 하면서 우리의 아버지, 형님들이 석탄 한덩이, 한덩이를 얼마나 힘들게 캐는가를 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석탄을 아껴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반모임을 열고 호소했습니다. 제재소에 가서 톱밥을 실어다가 석탄대신 땔감으로 쓰자고 말했더니 다들 찬성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동주, 정말 좋은 발기를 했군요. 나도 그 발기를 전적으로 지지해요.》

송금주는 목이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김동주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치밀어오르는 격정을 가까스로 씹어삼키였다. 눈굽이 저절로 달아오르고 가슴이 급하게 뒤채이며 온몸에 해일같은 흥분을 몰아왔다.

귀밑에 솜털이 보르르한 이 햇강아지같은 장난꾸러기들이 어느새 이처럼 어른스러운 궁리까지 하게 되였을가. 한번의 어설핀 갱견학이 학생들에게 그렇게도 큰 충격을 주었단 말인가. 그러고보면 그들은 갱에 들어가서 다들 나이를 여라문살씩 더 먹고 나온셈이 아닌가. 송금주는 이 순간처럼 제자들에 대한 사랑을 가슴뜨겁게 느껴본적이 아직 한번도 없었다.

《어느 제재소에 갔댔는가요?》

《탄광제재소에 갔댔습니다. 웅렬이가 읍농장 달구지를 끌어오지 않았겠습니까. 웅렬의 아버진 읍농장관리위원장입니다.》

《그분을 나도 만나봤어요.》

《우리가 톱밥을 달라고 하니까 제재소책임자는 담임선생의 수표가 있는 확인서를 떼오라지 않겠습니까.》

《그 확인서를 인줘요.》

송금주는 확인서에 수표를 하고나서 직일실뙤창을 열고 말했다.

《함선생, 탄광에 잠간 다녀오겠어요.》

송금주는 김동주를 앞세우고 현관문을 바삐 나섰다. 오른쪽다리의 관절이 시큰시큰해나고 과로로 온몸이 노곤했으나 그는 막무가내로 걸음을 다그쳤다. 어린 제자들의 애국로동이 벌어지는 작업현장을 한시바삐 보고싶은 불같은 심정이 발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아이들이 톱밥더미앞에서 삽질을 하며 바글거리는 정경이 멀리로 바라보이였다. 그 톱밥더미옆에는 달구지 한대가 서있었다.

《동주, 톱밥을 때면 석탄을 땔 때보다 방안온도가 내려가겠는데?》

송금주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발기는 훌륭한데 교실온도가 내려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잠시 구름장처럼 어른거리다가 사라졌다.

《선생님, 그건 걱정마십시오. 톱밥에 물을 쳐서 꽁꽁 얼궜다가 두부모처럼 토막을 내가지고 난로에 집어넣으면 장작처럼 활활 타기때문에 그닥 춥지 않습니다. 설사 온도가 좀 내려가면 뭐랍니까. 우린 견딜수 있습니다.》

《동준 모르는게 없구만요. 그런데 이 선생은 그런것도 모르고있었으니.》

송금주의 그 말은 지어낸 겸손이 아니였다. 그것은 진심의 고백이였다. 김동주는 점직스러운지 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리였다.

그러다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짜장 지청구라도 하듯이 말했다.

《선생님, 모른다는 말은 아무데서나 하지 마십시오. 우리 어머니가 그러는데 교원을 하자면 몰라도 모른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너무나 솔직합니다.》

담임선생의 금새가 떨어지는게 걱정스러워 하는 말일것이다.

《모르면서도 아는체 하는거야 나쁜 병이지요. 자, 이걸 어서 책임자되는분에게 갖다주세요.》

송금주는 김동주에게 자기의 수표가 달린 확인서를 넘겨주며 그의 등을 가볍게 떠밀었다.

널판자로 얼추 지은 제재소의 가설건물로 김동주가 구을듯이 스며들어갔다. 잠시후 그는 가설건물에서 뛰여나와 팔을 휘저으며 동료들에게 무어라고 소리쳤다. 소년들은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와- 하고 달려들어 달구지에 톱밥을 퍼담기 시작했다. 송금주도 삽을 들고 그들속에 섞이였다.

《선생이 참으로 똑똑한 제자들을 두었수다!》

등뒤에서 문득 담배연기에 푹 절은듯 한 사나이의 석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에 행주치마처럼 생긴 고무앞치마를 두른 꺽두룩한 사람이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송금주를 마주보고있었다. 그 사람의 음성과 눈빛에서는 오랜 로동생활과정에 형성된 호협하면서도 강직하고 반석같은 기품이 느껴졌다.

《이 탄광마을사람들중에는 석탄이 귀한줄 모르는 어른들이 수두룩 하오. 하기사 석탄이 막돌보다 더 흔한데니까. 그런데 이 올종자들은 석탄대신 톱밥을 때겠다면서 달구지까지 척 끌고왔소. 세월이 하도 좋으니 아이들까지도 달라져가고있거던.》

송금주는 고개를 다소곳이 숙여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책임자동지, 톱밥을 실어가게 허락해주어 고맙습니다.》

《인사는 내가 아니라 선생이 받아야겠소. 산처럼 쌓인 톱밥이라 처리곤난으로 골치가 아팠는데…》

운수직장쪽에서부터 부르릉거리며 달려오던 화물자동차 한대가 제재소앞에서 멈춰섰다. 운전석문이 벌컥 열리더니 조종간을 잡고있던 낯익은 운전사가 땅바닥에 뛰여내리였다. 넉달전에 고덕중학교 운동장에서 만났던 박만삼운전사였다.

《금주선생, 오래간만이요.》

박만삼은 송금주앞에 다가와 그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놓았다. 스파나처럼 굳고 아귀센 손이였다.

《선생이 어떻게 침을 놓았게 아이들이 이 겨울에 톱밥사냥을 다 왔소?》

《침이야 나도 모르게 동주가 놓았지요. 전 확인서에 수표를 했을뿐입니다.》

《여하튼 송선생이 아이들을 잘 키웠소. 저 동주녀석이 나한테까지 찾아와 한탕만 뛔달라구 온갖 아첨을 다하면서 애걸하길래 직장장의 허락을 받아가지고 급행으로 뛰여오는 길이요, 허허. 동주야, 어서 한바탕 퍼올리자꾸나.》

그는 송금주가 잡고있던 곽삽을 당겨잡고 톱밥을 퍼올리기 시작했다.

제재소책임자도 삽을 들고 나와 박만삼이와 합세하였다. 두 어른의 좌우와 맞은켠에서 아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톱밥을 퍼올리였다. 두사람이 얼마나 가볍게 톱밥을 퍼올렸던지 마치 삽이 아니라 꼭지숟가락으로 밥이라도 떠서 적재함에 뿌려던지는것 같았다. 송진냄새 비슷한 싱그럽고 향긋한 냄새가 제재소구내를 진동했다. 화물자동차적재함에는 잠간사이에 고깔모양의 톱밥산이 생기였다. 웅렬이가 끌고온 달구지에도 톱밥이 곡상으로 실리였다.

《자, 웅렬이만 남고 나머지 학생들은 다들 자동차에 오르세요. 난 웅렬이와 함께 달구지를 끌고 가겠어요.》

송금주가 마침내 마지막지령을 주었다. 아이들은 담임교원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자동차적재함에 닁큼닁큼 뛰여올라갔다. 명절날에 큰 도회지나 광장에 나들이라도 가듯이 법석 떠들면서 《꼬마7개년계획을…》 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발동소리를 울리며 떠나가는 적재함우에서 송금주를 향해 손을 흔들어보이였다. 그리고는 입에 손나팔을 대고 일제히 소리쳤다.

《선생님, 우린 먼저 갑니다!》

송금주도 손을 마주흔들며 미소가 남실거리는 눈길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 한명한명은 다 조국의 앞날을 떠메고나갈 미래의 믿음직한 공민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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