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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제 3 장

3

겨울방학이 시작되여 엿새째 되는 날이였다. 송금주는 가두에 나가 오전내내 학습반들을 돌아보았다. 학급에는 소년단반이 모두 6개가 있었는데 반마다 학습조를 2개씩 꾸려놓았다. 담임선생의 검열을 누가 미리 선통이라도 한 모양인지 학습조의 가동률이 예상보다 퍼그나 높았다. 12개 조중 11개 조는 모여서 방학숙제를 하였고 나머지 1개 조는 우물가의 얼음강판에서 팽이치기를 하고있었다.

송금주가 기분을 잡친것은 주진오가 조장을 맡은 학습조를 돌아볼 때였다. 조장이 통솔을 어떻게 하였는지 결석생이 3명이나 되였다. 3명 다 아무런 리유도 통지도 없는 무단결석이였다. 그 3명중에는 장일남이도 끼여있었다. 짝지발을 짚고 갱에까지 따라들어갔던 장일남이 사흘째나 학습조에 나오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으니 의혹에 앞서 노여운 생각부터 들었다. 아파서 참가못한다면 그런대로 넘어가겠지만 특별한 리유도 없이 강짜로 집에서 빈둥거린다니 이거야말로 인사불성이 아닌가.

리유가 없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장일남은 짝지발을 짚고 학교로 다니면서도 지금껏 결석 한번 안한 학생이다. 이런 학생이 집에서 50발자국도 되나마나한 학습조에 사흘동안이나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는것은 좀처럼 리해할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남이를 방해하고있을가. 누가 뭐랬게 그가 저렇게 요지부동인가.

송금주는 지금까지 장일남 하면 짝지발을 짚고 갱에까지 따라갔던 그날의 모습만을 기억해왔었다. 그의 학습과 생활에서 드문드문 나타나군 하는 나머지 소소한 잘못들은 죄다 무시해버리였다. 아버지들의 일터가 보고싶어 갱까지 들어갔다가 나온 아이들은 절대로 학급의 우환거리로 되지 않는다는것이 송금주의 견해였다. 장일남은 더구나 자기를 집단적인 사업에서 빼달라고 제기한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던 아이가 왜 저렇게 게정을 부리는지. 정신에 병이 들었든가 말 못할 곡절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 진오는 일남이더러 왜 안 나오는가고 따져봤어요?》

송금주는 학습방구석에 머리를 쳐들지 못하고있는 조장을 민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물었다. 주진오는 억울한 일이라도 당한것처럼 볼부은 소리로 중얼거리였다.

《네, 한 스무번쯤 따져봤습니다. 그런데 어디 대답을 합니까. 화가 나서 귀쌈을 줴박았습니다. 그랬더니 짝지발을 들고 달려들지 않겠습니까.》

《그건 조장이 동무들과의 사업을 잘하지 못하였다는 증거야요. 좋아요, 나하구 같이 일남이네 집으로 가자요.》

송금주는 주진오를 뒤에 달고 두동건너에 있는 일남이네 집으로 향하였다. 두번째로 찾아가는 동발공의 집이였다. 첫번째로 그 집을 다녀간것은 갱견학을 하고 돌아온 다음날이였다.

가정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송금주의 마음은 가볍지 못했다. 심장판막증으로 10년째 신고한다는 일남이네 어머니의 부석부석한 얼굴이 눈섭끝에서 떨어지지 않아 밤에도 잠을 이를수 없었다. 부종이 어찌나 심했던지 손가락으로 장딴지의 살을 누르면 움푹하게 패여들어갔던 자리가 1분이 지나도 본래의 모양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 녀인은 천식도 심했다. 그래도 기분만은 예상이외로 락천적이였다. 《골골80》이란 말도 있는데 자기와 같은 약골들이 뚱뚱보마님들보다는 명이 더 길것이라고 일남의 어머니가 장담하였으나 허세와 웃음으로 포장된 그 말마디들은 오히려 그가 시한탄처럼 걸머지고있는 중병이 매우 위태위태한 지경에 이르렀다는것을 강조해줄뿐이였다.

노여움을 안고 가는 길이여서 그런지 발걸음이 가볍지 못했다.

천근의 연덩어리라도 매달린듯 기분마저 저기압이였다. 다행히도 전보다는 일남이네 집의 외부가 한결 밝아져서 침침하던 심기가 좀 가셔지는듯 했다. 주진오의 말이 지난해 10월 집안팎에 회칠을 했다고 하였다.

처마밑에서 데룽거리는 대여섯두름이나 되는 동태꿰미가 송금주의 눈을 멀리서부터 잡아끌었다. 그 명태꿰미들을 보자 그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지 않을수 없었다. 어장에서 100리나 떨어진 저 동발공의 집에도 바다는 풍어를 선사하였다. 강낭밥에 된장국이 주식으로 되는 때였으나 사람들은 머지않아 다가올 가슴벅찰 래일을 바라보며 어깨바람을 일쿠고있었다. 이 좋은 세월에 모두가 무병장수하고 한가정처럼 화목하게 살면 얼마나 좋을가. 고철룡이나 오장수나 일남이가 왜 친형제처럼 가깝게 지낼수 없단 말인가.

송금주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발을 옮겨놓았다. 명태꿰미를 보았을 때의 감흥은 잠간뿐이고 불안이 검은 고양이처럼 겨드랑이밑으로 소리없이 기여들었다.

갑자기 일남이네 어머니의 벼락치는듯 한 욕설소리가 문밖으로 튕겨나왔다. 어찌나도 격렬하고 무자비하고 고압적인 욕설소리였던지 송금주는 급제동을 당한 자동차처럼 걸음에 못을 박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사실 욕설이라기보다 절망에 가까운 부르짖음이였다. 아니, 비명에 가까운 고발이고 성토였다.

《그따위 말같지 않은 말 듣기도 싫다. 뭐, 뭐, 뭐? 병신이 공부를 해선 뭘하는가구? 그래서 너 요새 학습반에도 안 나가고 이 지랄이였구나. 나라에서 널 병신이라고 차별한적이 있니? 꼭같은 무료교육에 꼭같은 교복, 꼭같은 책걸상… 그런데도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배부른 흥정을 해? 배은망덕한 놈! 보기도 싫다.》

《엄만 내가 짝지발을 짚고 쩔뚝거리며 학교를 다니는게 진저리가 나지도 않아요?》

줄폭탄을 얻어맞고 숨도 쉬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했던 장일남이 기가 살아서 물었다. 그쯤한 욕설에는 끄덕도 하지 않는 저력이 말마디들마다에서 꿈틀거리였다.

《그런 꼴을 보기 좋아할 부모가 어디 있어. 그렇지만 네가 이런 잡동사니들을 잔뜩 널어놓고 주물락거리는 꼴은 그보다 더 보기 싫다. 거지가 쪽박을 차고 비럭질을 해도 그렇게는 궁상스럽지 않을거다. 그래 학습반에 가겠니? 안 가겠니?》

녀인은 금시 주리를 틀듯 한 목청으로 따지고들었다. 서슬이 퍼런 그 목소리에 창문유리가 드르릉 울리는것 같았다. 노기에 찬 그 음성이 고막을 두드리는 순간 송금주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듯 한감을 느끼였다.

《가겠니? 안 가겠니?》

일남의 어머니가 또 따지고들었다. 대답을 받아내지 않고서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잡도리임에 틀림없었다.

《네 아버지는 그래도 통일을 앞당기자면 석탄을 많이 캐내야 한다고 하면서 일에 극성이다. 통일이 빨리 돼야 남해가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간다면서 무슨 일에나 몸을 아끼지 않고 내댄다. 그런데 너는 그게 무슨 꼴이냐.》

승부를 가늠할수 없는 따분하고 지겨운 공방전이였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당장 손찌검이 일어나고 왁짝거리는 소동이라도 일어날것만 같은 긴박한 정황이였다. 송금주는 이 순간이야말로 일남의 어머니를 도와줄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였다. 이런 때에는 어머니의 편역을 들어 언제 끝장을 볼지 모를 입씨름에 결판을 내야 했다.

손등으로 나들문을 두드린 그는 주인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방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래, 일남이 좀 말해보라요. 학습반에 갈래요? 안 갈래요?》

마치 기진맥진한 1번선수를 대신하여 2번선수가 바통을 받아들고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내달리는것 같은 광경이였다. 일남이도 어머니도 이 뜻하지 않은 급습에 그만 넋을 잃은것 같았다. 그들은 미처 인사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망연자실한 눈길로 송금주를 우두커니 바라보고있었다.

《다시한번 묻자요. 학습반에 다닐래요? 안 다닐래요?》

송금주의 그 물음은 방금전에 일남의 어머니가 하던 질문의 메아리처럼 울리였다. 장일남은 좀전보다 입을 더 굳게 다물었다. 그것은 예상했던것보다 훨씬 더 강도가 센 도전이였다. 송금주는 철문처럼 굳게 닫긴 장일남의 입을 한두마디의 설복이나 꾸중만으로는 절대로 열어제낄수 없다는것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장기전에 들어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였다. 장일남의 어머니도 송금주의 심중을 들여다보았는지 리성으로 돌아와 그에게 자리를 권하고 모란과자가 담긴 접시도 가져다놓았다.

《선생님, 우리 일남이때문에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 저 애가 왜 저렇게 학교를 그만두겠다면서 학습반에도 안 가고 찔통을 부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셨던김에 단단히 버릇을 떼주십시오.》

녀인은 아들의 어깨죽지를 꼬집으며 귀청이 째지는듯 한 고함을 질렀다.

《이 등신같은것아, 선생님이 오셨는데 그 잡동사니들이나 좀 치우려무나.》

장일남은 그제야 장판바닥에 널린 잡동사니들을 황황히 그러모아 방한쪽구석으로 밀어놓았다. 골동품같은 물건들가운데는 망치, 벤찌, 줄칼, 송곳, 쇠줄, 나사못, 접철, 우산대, 철편, 렌즈를 비롯하여 없는것이 없었다. 무엇을 만들려고 했을가? 학교를 그만두고 쟁인바치가 되고싶어 저럴가?

《선생님, 과자나 들면서 천천히 이야기하십시오.》

장일남의 어머니는 과자접시를 송금주앞으로 밀어놓았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전 과자보다도 물이 더 급합니다.》

송금주는 사실 아까부터 심한 갈증을 느끼고있던터였다. 열개나 되는 학습반을 단꺼번에 돌아보느라고 온몸이 불독처럼 화끈 달아오르고 땀까지 번지였다. 그는 장일남의 어머니가 놋대접에 떠다주는 물을 대여섯모금 삼키고나서 주진오에게 물었다.

《진오학생, 학습조에 모인 동무들이 일남이를 모욕한적이 있었나요?》

《없습니다. 요즈음은 누구나 일남이를 친절하게 대해줍니다. 갱견학을 갔다온 다음부터는 일남의 별명을 부르는 아이들도 없습니다.》

주진오는 그렇지 않느냐는듯 장일남을 흘끔 돌아보았다.

《뒤에서 일남의 흉을 본 동무들은 없었는가요?》

《없었습니다.》

《일남일 때리거나 골려주거나 절름발이흉내를 낸 동무들도 없구요?》

《네, 누가 감히 일남일 때립니까, 짝지발에 얻어맞겠는데.》

그 말을 들은 장일남의 눈에서 흰자위가 한쪽으로 몰키였다. 그는 주진오를 마뜩지 않는듯이 힐끗 지릅떠보고는 손톱으로 장판바닥에 아무런 뜻도 없는 무늬를 그리였다.

《저 눈을 좀 보지. 어따대구 감히 도끼눈을 해?》

장일남의 어머니가 또 흠집을 잡아 비틀어댄다. 그저 입만 벌리면 시퍼런 지청구이다. 장일남은 어머니의 그 말에도 송곳눈으로 대답한다. 송금주는 방안공기가 팽팽해지는것을 숨가쁘게 느끼며 화제를 다른 골짜기로 몰아갔다.

《이것 봐요. 일남이, 병신이 학교를 다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건 잘못된거예요. 병신이란 말이 없어진게 언젠데 아직도 병신, 병신 하면서 그래요? 우리 나라 교육제도는 불구자들도 다 공부할수 있는 공평하고 훌륭한 교육제도예요. 그런데 소경도 아니고 벙어리도 아니고 두팔도 있고… 다만 두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 일남이가 왜 학교를 그만둔단 말이예요? 유치원생도 아니고 소학생도 아닌 중학생이 어쩜 나라의 혜택을 그렇게 허술히 대할수가 있어요.》

장일남의 고개가 점점 아래로 숙어졌다. 그는 장판바닥에 무늬를 그리던 손으로 달아오르는 귀방울을 잡아뜯었다. 장일남의 어머니도 머리를 수그리고 모내의앞섶으로 눈굽을 꾹꾹 눌렀다.

《이 에미 병이 이제 몇해를 더 지탱하게 되겠는지 모르겠는데 열세살이나 먹었다는게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배부른 투정질을 하고있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아버지가 동발공이라고 탄광에서는 다달이 고기도 주고 기름도 주고 물엿도 줍니다. 갱내수당금과 상금까지 합쳐 생활비를 줍니다. 그 돈이면 우리 네식구가 두달은 넉근히 삽니다. 세상에 우리 탄부의 자식들만큼 호사를 하는 애들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걸 생각해서라도 공부를 착실히 해야겠는데 저 등신같은건… 에구…》

장일남의 어머니는 푸념질을 멈추고 아까처럼 또 세타앞섶을 들어올려 눈굽을 훔치였다. 송금주는 놋대접의 랭수를 서너모금 다시 마신 다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의 천재라고 불리운 바이론도 절름발이였어요. 베토벤은 귀머거리가 된 다음에도 창작을 중단하지 않았어요. 이건 뭘 말해주나요. 몸이 온전치 못한 사람도 얼마든지 인류를 위해 유익한 일을 할수 있다는걸 증명해주는게 아니겠나요.

일남인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녀자가 가정교사한테서 글을 배워 명예박사학위까지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있어요?》

그것은 송금주가 고급중학교를 다닐 때 정문호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장일남의 모자와 마주앉고보니 문득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눈물로 젖어있던 어머니의 눈에서 생기가 반짝거리고 얼굴에는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장일남의 눈에도 심각한 사색이 깃들었다.

그의 표정에서 제일 안정감을 느낄수 있는 순간이 바로 저런 눈매를 유지하는 때였다. 송금주는 그 눈빛을 통해 장일남의 심리에서 일어나는 내적변화를 제꺽 포착하였다.

《선생님, 래일부터는 학습반에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잘 생각했어요. 병신이 학교를 다녀선 뭘하겠는가 하는 말도 물론 다시는 안하겠지요?》

《네.》

《그런데 왜 어제까지는 그런 말을 탕탕 했나요?》

장일남은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송금주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울대뼈밑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였다.

《갱견학을 하고 돌아온 다음부터 학교를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학교를 그냥 다니게 되면 숱한 아이들이 나때문에 고생을 하고 또 선생님도… 시끄러울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옹졸한 생각이예요. 몸이 성한 사람들끼리도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게 인간세상인데 몸이 불편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신세를 지는거야 응당한 일이 아니겠어요. 더구나 우리 사회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고 전체는 하나를 위하는 집단주의사회이고 우리 나라는 모두가 한집안식구처럼 화목하게 살아가는 좋은 나라예요. 일남이가 동무들의 신세를 지는데 대해 송구스럽게 대하는것은 집단을 무시하는 행동이예요. 집단의 도움을 받기 싫어하는 인간은 결국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외토리가 되고말지요. 사람이 외토리가 되는건 불행중에서도 제일 큰 불행이예요. 알겠어요?》

《네.》

장일남은 송금주앞으로 과자접시를 조심스럽게 밀어놓았다.

송금주는 접시의 과자를 세사람에게 한개씩 쥐여준 다음 자기도 한개 집어들었다.

《자, 이 과자를 일남이가 두번다시 허튼 생각을 하지 않으며 우리모두가 일남일 더 잘 도와준다는 약속의 표시로 듭시다.》

다들 즐거운 기분으로 과자를 먹었다. 송금주는 놋대접의 물로 입가심을 하고나서 몸을 일으켰다. 이 집 문턱을 넘어설 때보다는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장일남의 속내가 무엇인가를 알아냈으니 이제는 걱정할것도 없었다. 속내만 알면 처방은 얼마든지 내릴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처방이 필요한가. 일남이한테는 무한정한 애정과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가 동무들의 방조를 받으면서도 그것때문에 부자유를 느끼거나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게 하는 그런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이 있어야 한다. 집단은 장일남에게 그런 사랑을 주어야 한다.

그런다고 그가 자기 전도에 대한 자신심을 가질수 있겠는가. 지금의 장일남에게는 아무런 리상과 포부도 없지 않는가. 그에게 있는것이란 앞날에 대한 불안과 좌절감뿐이다. 그가 학습반에도 잘 다니고 공부도 잘하겠다는 맹세를 했다고 만사가 다 풀린것처럼 생각한다면 그처럼 무책임하고 무경각한 처사는 없을것이다. 장일남을 좌절과 동요를 모르고 앞으로만 돌진하는 불굴의 인간으로 키우자면 그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살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주어야 한다.

송금주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장일남이네 집을 나섰다. 홀가분해졌던 마음이 다시금 침울해지고 산란해졌다. 짝지발을 짚은 장일남이 담임선생을 바래주려고 어머니를 따라 밖에 나섰다.

《아까는 뭘 만들댔어요?》

《펜촉과 펜대를 만들댔습니다.》

《펜촉과 펜대를 다 만든 다음엔 무얼 만들겠나요?》

《전동기를 만들어보겠습니다.》

장일남은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전동기? 어떻게 되여 왼손의 법칙도 모르는 저 철부지가 전동기를 만들 궁리까지 다 했을가. 전동기의 구조와 그 작용원리는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서야 배우게 된다. 장일남은 결코 꿈도 없고 목적도 없는 무지렁이가 아니였다. 그는 자기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려고 애쓰는 나어린 창조자였다. 송금주의 눈앞에는 지금까지 보아오던것과는 전혀다른 장일남이 새로운 모습으로 서있었다. 그를 꾸짖으려고 왔다가 돌아가는 처녀의 심정은 오히려 교육자의 신성한 사명감앞에서 꾸지람을 당하는것 같은 기분이였다.

장일남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지금 그 나이의 소년들에게서 흔치 않은 소중한 창조정신이 불씨처럼 고요히 타오르고있다.

나는 저 불씨가 자유로이 타오르도록 부채질할 임무를 걸머지고있다.

송금주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장일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일남학생, 앞으로 전동기가 달린 군함과 자동차도 만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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