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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8 회

결사대원

오 광 철

3


김윤혁은 제재기의 아츠러운 굉음을 들으며 온몸의 힘을 모아 나무를 밀었다. 맞은켠에서 김충성이 받는다. 림지에서 골라서 베여들인 나무가 아니고 땅속에서 파낸 나무들인것으로 하여 목재제재에서는 뜻밖의 위험이 조성되였다. 톱날이 먹어들어가지 못할만큼 크고 굳은 옹이투성이의 나무도 있고 또 집재목들에는 꺾쇠며 대못이며 하는것들이 박혀있었던것이였다. 이런 통나무를 제재하다가는 톱날이 못쓰게 되거나 최악의 경우 부러져나가는 일도 있을수 있었다. 무서운 속도로 돌아가던 톱날이 부러지는 경우 그것이 제재공을 치는 위험천만한 일도 있을수 있다.

제재공을 선발하는 문제를 놓고 심중한 론의가 벌어졌다. 김충성이 자기가 제재를 하겠다고 자진하여 나섰다. 그는 제재작업을 많이 해본 청년이였다.

《더 중요한건 내가 운수가 좋다는거지요. 난 철길복구때 벼랑턱에 매달려 함마질을 하면서도 헛발 한번 디뎌본적이 없습니다.》

김충성은 벙글벙글 웃으며 롱을 했다. 김윤혁은 별수없이 승낙하고말았다. 다른 한명의 제재공을 더 선발하고 한사람의 로동안전원까지 선발하여 그가 나무를 깐깐히 검사하고 온몸의 신경을 바늘끝처럼 도사리고있다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미가 느껴지면 지체없이 개페기를 잡아채서 톱날을 멈추게 했다. 결사적인 제재였다. 결국 제재를 하는 세사람은 명칭을 달지 않은 결사대원들이였다.

김윤혁은 오늘 마지막작업을 하고있는 이곳으로 왔다. 그간 노상 조마조마하고 미안했던 작업에 자기도 마지막으로 참가하고싶었던것이였다. 김충성이 벙글벙글 웃으며 《원래 우리야 철길복구때부터 손과 발이 착착 맞는 결사대원이였지요.》 하고 롱을 했다.

굉음속에 나무를 먹어들어가는 톱날의 흰줄기가 보이고 톱밥냄새가 향긋하게 풍겼다. 오랜 제재공출신의 로동안전원은 두눈을 지그시 감고 귀가 쭈빗하게 보이도록 머리를 기웃한채 신경을 도사리고있었다.

이제 몇대만 밀면 될것이다.

김윤혁은 아래배에 지그시 힘을 준채 나무를 밀었다. 김충성이 신바람이라도 난것처럼 어깨를 흔들며 나무를 받는다. 김윤혁은 정신을 바싹 차리라고 소리치고싶었으나 듣지 못할게 뻔해서 그만두고말았다.

문득 누군가가 어깨를 흔들었다. 바라보았다. 참모장 조성묵이 뒤에 서있었다. 그가 뭐라고 말했으나 톱날의 굉음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그는 손바닥을 귀에 오그려붙였다. 조성묵이 큰소리를 쳤다.

《좀 토론할 일이 있습니다.》

작업을 멈추고싶지 않았으나 조성묵의 얼굴이 몹시도 긴장해보여 별수없이 톱을 멈추게 손짓했다.

굉음으로 떨던 주변은 한순간 귀가 멍멍해지리만치 조용해졌다. 조성묵은 잠시 망설이는 표정이더니 휴계실에 가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제가 먼저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윤혁은 조성묵을 따라섰다.

왜서인지 그의 발걸음이 위태롭게 기우뚱거리는것처럼 느껴졌다. 하긴 요즘 그의 건강상태와 심리상태가 편안치 않다는것을 김윤혁은 자주 느끼군 했다.

이 무산군에 와서 그는 뜻밖에도 보기 드문 실수를 했다. 그가 생각해냈던 적체식층막조립이 불가능해졌던것이였다. 벽체는 블로크를 찍어쌓는 적체식이 일체식보다 빠른것이 분명했으나 층막만은 휘틀을 대고 일체식으로 해야 한다는것이 밝혀졌다. 우선 추워지기 시작한 무산지구의 기온이 층막이 양생되는데 불리한 조건이였다. 오후만 되면 찬바람이 터지는 무산군의 날씨는 이제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차진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흘러도 육중한 층막부재는 잘 굳어지지 않았다. 또 양생된다고 해도 려단이 짓는 아빠트가 다른 단위들이 짓는 아빠트와 아빠트사이에 자리잡고있어서 그 좁은 공간에 층막부재를 들 기중기차를 들여세울수가 없었다.

아빠트사이의 넓지 않은 공간에 량쪽 아빠트들의 골재며 세멘트창고며 모래무지들이 높다랗게 쌓여있어 그사이에 난 좁은 길에서는 사람들도 몸을 비비적거리며 어기는 형편이였다. 조성묵은 려단사람들앞에서 처음으로 자기의 패배를 보여주었다. 여러개나 찍어놓은 쓸모없이된 층막부재를 바라보는 조성묵의 얼굴은 어두웠다. 다행히 그 층막부재를 봄이 오면 쓰겠다고 넘겨달라고 하는 단위가 있어 당사자도, 옆에서 보는 사람들도 한결 마음의 위안이 되는 형편이였다. 거기다가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자 그에게는 감기가 달려들어서 도무지 떨어지지않았다. 그는 계속 약을 먹고 기침을 깇었다. 김윤혁이 휴계실에 들어서자 조성묵은 버릇처럼 컹컹 기침을 깇으며 이야기했다.

《려단장동지, 려단이 한숨 좀 돌릴수 있게 될것 같습니다.》

《?!》

《우리 려단이 맡았던 학산중학교 단층교사건설이 중지되게 됐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학산중학교에 단층교사가 아니라 3층교사를 일떠세우게 되였답니다.》

조성묵이 사연을 설명했다. 원래 학산중학교는 2층교사와 단층교사를 함께 가지고있던 학교였다. 이번 큰물에 2층교사는 혹심한 피해를 입고 단층교사는 무너져버렸다. 그래서 2층교사는 보수하고 단층교사는 새로 짓게 되였던것이다. 하지만 당에서는 아이들에게 더 훌륭한 교육조건을 마련해주기 위하여 피해를 입은 2층교사와 단층교사를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번듯한 3층짜리 교사를 새로 일떠세우기로 했다. 그것으로 하여 5층살림집과 함께 단층교사를 맡았던 철도성려단에는 학산중학교를 그대로 맡는가 아니면 다른 단위에 넘기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것이였다. 상식으로 본다면 단층교사를 짓는것만도 힘에 겨워하고있는 려단이 3층짜리 학교를 짓는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였다. 조성묵은 그것을 말하고있는것이였다.

《그러니 못하겠다고 하잔 말이지?》

김윤혁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김윤혁을 여겨보는 조성묵의 얼굴에 불안한 기운이 어렸다.

《려단장동지, 이젠 사람들이 너무도 지쳤습니다. 그들은 지금 최대의 마력을 내고있습니다. 상식으로 봐도 지을수 없고 인정으로 봐도 우린 서뿔리 결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옳은 말이다. 론리상으로나 인정상으로나 그는 옳은것을 말하고있다. 하지만 이곳은 매일 매 시각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과 혁신이 나래치고있는 북부전역이며 아이들에게 더 좋은 교육조건을 마련해주기 위해 낡은 교사들을 허물고 새 교사를 지으려는 당의 의도도 결코 론리나 수지타산을 앞세운것이 아니다. 하지만 왜 그것을 이 참모장에게 말하기 힘들어지는것인가?

문득 조용하던 주변을 흔들며 다시금 제재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로동안전원과 김충성이 기다리기가 조급해나 저들끼리 제재기를 돌리는 모양이였다. 위험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지시를 기다리며 초조하고 긴장해져 서있는 참모장의 얼굴을 보니 선뜻 움직일수가 없었다. 별안간 목안이 타들어오는듯이 칼칼해지는것을 느끼며 참모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참모장동무, 우리가 좀더 힘을 내면 되지 않을가?》

조성묵의 얼굴에 난처하고 지어는 불쾌해하는듯 한 기운이 흘러갔다.

그는 김윤혁의 얼굴을 외면한채 조용히 말했다.

《려단장동지, 솔직한 말 좀 하랍니까?》

《하오.》

《난 지금껏 일을 무서워해본적이 없는데 려단장동지와 이 북부에 와서는 정말 일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

《려단장동지는 지금 너무 자기 감정과 견해만 앞세우고있습니다. 그 즉흥적인 감정과 견해때문에 밑의 일군이 따분하고 사람들이 힘들어한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있습니다.》

김윤혁은 당황해진 심정으로 조성묵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성묵은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려단의 지휘관인 려단장동지가 계속 현장에 나와서 일만 하는것도 그렇지요. 밑의 일군들도 다 그 본을 따야겠는데 힘들다기보다는 위신과 체면문제도 좀 생각해야지 않겠습니까?》

《체면?!》

별안간 생소하고 낯설게 들리는 그 말을 김윤혁은 놀랍게 반문했다.

《그렇게 자기 혼자만의 감정과 견해로 움직이다나니 지금 려단장동진 돌격대원들과 아래사람들이 얼마나 혼이 나는지 잘 모릅니다. 제발 아래사람들과 돌격대원들을 좀 생각해주십시오. 학산중학교건설을 다른 단위에 맡깁시다.》

김윤혁은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었다. 그들이 나누지 못한 말을 대신하듯 제재기소리가 날카롭고도 끈질기게 그냥 들려왔다. 그들은 그소리에 어떤 의미심장한 뜻이 숨어있기라도 한듯 말없이 귀를 기울이며 서있었다.

이때였다. 문득 제재기소리가 멎었다. 사방이 한없이 고요해졌다.

왜 멎어선것일가? 별안간 밖에서 절통하고 다급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그들은 선뜩한감을 느끼며 굳어졌다. 김윤혁은 문을 차고 뛰여나갔다. 그 순간 쓰러진 김충성을 안아들고있던 로동안전원이 김윤혁을 바라보며 고동소리같이 울부짖었다.

《려단장동지이!-》

불철주야로 애쓰던 그의 뜨거운 심장이 그만 견디여내지 못하고 멎어버리지 않았는가?!

《충성아!-》

김윤혁은 눈앞이 캄캄해지는듯 한 느낌으로 김충성에게 달려들었다.

김충성은 로동안전원에게 몸을 기댄채 내굴같은 입김을 내뿜으며 김윤혁을 바라보고있었다. 웃어보이려고 하는것 같았으나 잘되지 않는듯했다. 눈앞이 캄캄해왔다.

《충성아!-》

아, 나는 왜 자리를 떴단 말인가?

《자, 어서 병원으로.》

그러나 김충성은 도리머리를 저으며 김윤혁의 손을 부여잡았다. 숨을 톺으며 힘들게 중얼거렸다.

《려단장동지, 끝까지… 함께 일하자고 했는데…》

《충성아, 힘을 내라! 이제 인차…》

김충성은 그렇게도 순진해보이고 애돼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려단장동지, 결사대원이였던 가시아버지의 이야기… 우리 할아버지도 바로 그 전투에… 몰랐지요?》

아, 그래서였구나.

《나도 우리 할아버지나… 려단장동지같이 되고팠는데… 려단장동지! 우리 어머니에게… 내가… 결사대원으로 일하다가… 결사대원으로 죽었다고…》

《충… 성… 아!…》

김윤혁은 헉헉 흐느꼈다. 김충성은 김윤혁의 손을 꼭 잡았다.

《빨리… 집과 학교를 완공하고… 내 몫까지… 원수님께 승리의 보고를…》

그의 호흡이 급해졌다.

《충성아, 죽지 말아! 너 죽어선 안돼! 야, 힘을 내라!》

김충성은 급해지는 호흡속에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러나 김윤혁의 두손을 잡은 손은 내리우지 않았다. 눈을 감은채 김윤혁의 손바닥을 펴더니 김윤혁의 손바닥에 힘겹게 《꼭… 》 하고 썼다. 그러더니 손을 털썩 떨구고 머리를 뒤로 젖혔다.

《충성아!-》

김윤혁은 김충성을 끌어안고 몸부림을 쳤다. 하늘을 우러러 절통하게 울부짖었다.

《아!-》

함흥철도국 로동자였던 김충성은 이렇게 갔다. 그는 북부의 전구에 자기의 고귀한 생명을 바친 유명무명의 북부용사들중의 한사람이였다.

그를 무산군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산등성이에 묻었다.

김윤혁은 김충성의 무덤가에 굳어진듯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와 영결한 돌격대원들과 지휘관들이 산을 내리고있었지만 박아세운듯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참모장 조성묵이 다가왔다. 하루사이에 그의 얼굴은 퍽 늙어보이고 병이라도 든듯 무기력해보였다. 이번에 보니 그는 슬픔이나 불행앞에 퍼그나 감정이 여린 인간이였다. 그는 갈린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려단장동지, 사람들이 작업장으로들 가는데…》

김윤혁은 그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이번에 김충성과의 영결식에 왔던 중앙지휘부의 지휘관들도 학산중학교건설을 다른 단위에 맡기도록 하자고 했다. 김윤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충성의 죽음이 가져다준 아픔과 죄의식때문이였다. 그것을 모르는 돌격대원들과 지휘관들은 이제 산을 내리면 학교건설장과 살림집건설장으로 갈라져 갈것이다. 그곳은 서로 반대되는 방향이였다. 그러니 이제는 모두가 살림집건설장으로 가야 한다는것을 알려주어야 하는것이다. 하지만 왜서인지 발을 파고 묻기라도 한것처럼 움직일수가 없었다. 김윤혁은 조성묵을 바라보았다.

갈린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참모장동무가 작업조직을 해주오.》

조성묵은 한순간 굳어진듯 서있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멀어져가는 그의 발자국소리를 들으며 김윤혁은 솟아오른 봉분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봉분우에 김충성의 얼굴이 자꾸만 그려진다. 이 슬픔의 순간에조차 그 얼굴은 웃음을 띠고 마주보고있었다.

(용서해라, 충성아! 지금은… 이렇게밖에 할수 없구나. )

오래도록 서있던 김윤혁은 천천히 몸을 돌려 산을 내렸다. 산을 거의 내려섰을 때였다. 문득 자기앞에 무엇인가가 막아선듯 한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흠칫 굳어졌다. 자기앞에 거멓게 뭉치여 서있는 대오를 보았던것이였다. 산에 올라왔던 돌격대원들과 지휘관들이 길우에 한덩어리가 되여 서있었다. 굳어진듯 서서 말없이 그를 지켜보고있었다.

침묵, 모두의 가슴을 숨가쁘게 조이는 침묵이 흘러갔다. 이윽고 그 침묵을 깨며 대오속에서 다소 거칠고 무뚝뚝한 말이 울렸을 때 김윤혁은 흠칫 놀라기까지 했다.

《왜 학산중학교를 다른 단위에 맡깁니까?》

김윤혁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누가 누군지 모르게 뭉쳐선 대오속에서 물기어린 목소리가 떠올랐다.

《려단장동지, 충성동무의 무덤앞에서 흘린 눈물이 아직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 우릴 어디로 가라는겁니까? 충성동물 봐서라두 우린 그럴수 없습니다.》

《이제 무산사람들이 우릴 두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철도사람들이 시시하구 맥카리없는것들이라구 하지 않겠느냐 말입니다. 정말 우리 철도로동계급이 이렇게 시시하구 보잘것 없는 사람들이란 말입니까? 말해보십시오!》

《동… 무… 들!…》

김윤혁은 가까스로 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고개를 떨구었다. 대오는 절벽을 향해 치솟아오르려는 파도처럼 움쭉거렸다. 누군가가 웨쳤다.

《길게 말할게 없소. 학교건설을 못하겠다는 사람들은 여기에 남아서 해가 질 때까지 생각해보라구 합시다. 하지만 우린 일을 하기요. 자, 학교건설돌격대는 가자구!》

저벅저벅 울리는 발걸음소리. 대오는 서서히 갈라져 그리고는 뭉쳐서 걸어갔다. 산같은것이 움씰거리는듯 한 느낌을 풍기며 멀어져갔다.

그 자리에는 세사람이 남았다. 려단장 김윤혁과 려단정치부장 윤철 그리고 참모장 조성묵이였다.

조성묵은 당황하고 난처한듯 수그린 고개밑으로 김윤혁과 정치부장을 바라보았다. 한숨을 내쉬더니 살림집건설장쪽으로 가고있는 대오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맥이 풀린 걸음새다.

김윤혁과 윤철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 순간 김윤혁은 목이 메는듯한 느낌이였다. 저 완강하고 성실한 돌격대원들의 뒤에 언제나 그들과 써레기담배도 탓하지 않고 태우며 즐겨 어울리는 이 로숙한 정치일군이 서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는 조용히 물었다.

《정치부장동문 왜 가지 않소?》

윤철은 싱그레 웃었다.

《려단장동지가 가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가겠습니까?》

《고맙소, 정치부장동무!》

《왜 그런 말을 합니까?》

《나때문에 충성이가 죽었는데… 내가 어떻게 다시 사람들을 혹사시킬수 있겠소? 그런데 정치부장은 이미 사람들에게 돌격구령을 내렸구만. 이자 저 사람들의 말은 정치부장의 말이요. 이자 나를 들이팬 그 사람들은 다 당원들이지?》

윤철은 고요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당원들이 아닐수도 있지요. 하지만 누구나 이 땅에선 달리 말하구 달리 살수가 없습니다. 여기가 어떤 곳입니까?》

정치부장은 새삼스러운듯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시라도 읊듯 격정에 차넘쳐 부르짖었다.

《우린 여기서 매일 매 시각 느끼고있지 않습니까? 백두산절세위인들의 결사의 애국의지를 말입니다.

그 결사의 애국위업을 이으시여 우리 장군님께서 풍랑사나운 초도와 오성산 칼벼랑길을 사생결단의 의지로 넘으셨고 오늘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인민을 위한 길에 자신의 한몸을 바치실 결사의 각오를 안으시구 우리의 진군을 진두지휘해주시고계시지 않습니까?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원수님의 결사의 의지가 흘러가는 이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달리 살수 있겠습니까?》

정치일군의 목소리는 더더욱 열기를 띠고 세차게 울렸다.

《전쟁입니다. 고귀한 희생앞에 눈물을 흘릴지언정 멎어서거나 후퇴할수 없는 이것이, 이것이 바로 전쟁입니다! 우린 충성동무가 마지막순간에 그렇게도 간절히 부탁한 그날을 위해 그의 뒤를 이어 려단장동지가, 려단장동지의 뒤를 이어 다음사람이 결사의 첫 기수가 되여 쓰러질지언정 돌격의 기발을 내리우거나 늦추지 않을겁니다. 려단장동지, 충성이나 려단장동지만이 아니라 우리 온 려단이 결사대원이 되여야 합니다.》

《정치부장동무!》

《갑시다!》

그들은 서로의 팔을 굳게 끼고 학교건설장쪽으로 걸어갔다. 문득 김윤혁은 참모장생각이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아, 그도 이 자리에 함께 있었으면! 그러나 조성묵은 벌써 보이지 않았다. 윤철은 김윤혁의 속마음을 들여다본듯 했다.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려단장동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참모장동문 괴로워할테지만 꼭 자기를 이겨낼겁니다. 누구도 상상을 못했고 체험은 더욱 못해본 북부전역의 일이 아닙니까? 보통때 평화로운 나날에는 재능과 열정이 남다르던 사람들도 여기 엄혹한 전쟁터에 세워놓으면 지식도 의지도 딸리는 경우가 간혹 있는거지요. 하지만 다북쑥도 삼밭에 가면 곧아진다지 않습니까? 온 려단이 결사대인데 참모장동무도 결사대원이 되지 않구 견딥니까?》

윤철은 소리내여 웃었다.

《정치부장동무!》

산악을 안은듯이 거창해지고 뿌듯해지는 가슴을 느끼며 김윤혁은 정치부장의 팔을 끼고 씨엉씨엉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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