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날자별열람

제11회


제 2 장

5

송금주의 목공작업을 거들어준 다음부터 김동주는 자기네 담임선생을 더욱 존경하였다. 영천중학교에는 송금주처럼 신발장이나 백묵통 같은것을 척척 만들어내는 그런 녀교원이 없었다. 김동주는 지금까지 녀선생들이 톱질을 하거나 망치를 들고 뚝딱거리는것을 한번도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송선생이 이런 전례를 깨뜨리고 신발장을 만들어냈다. 담임선생이 남자교원들한테나 어울리는 공작실습과목을 자진해서 맡았다는 소문을 들은 때로부터 김동주는 속으로 우리 담임선생은 못하는게 없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선생은 롱구도 잘하지만 스케트도 잘 타고 피아노와 풍금도 잘 다룬다고 한다. 수업은 또 얼마나 재미나게 하는지 모른다. 요즈음은 정애경선생을 도와 중창소조원들을 위한 가사도 써낸다고 하니 선생에게 어찌 《다이아졸》이라는 별명이 붙지 않겠는가. 다이아졸은 여러가지 병에 널리 쓰이는 약이다.

하지만 남자교원들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영천중학교에서 녀선생이 합숙에 놓을 신발장을 만들었다는것은 세상에 대고 크게 떠들어댈 자랑거리가 못된다. 그 숱한 남자선생들은 뭘하고 녀교원이 신발장을 만들게 하였는가, 왜 다른 녀선생들은 의자에 못을 한개 박아도 남자들의 손을 빌리는데 우리반 선생님만은 자기 손으로 대패질도 하고 망치질도 해야 하는가.

우리도 나이는 어리지만 웬간한건 다 만든다. 만수는 벌써 소학교 4학년때 피나무로 모형자동차를 만들어 전람회에 내놓았다. 나도 탄피로 된 펜촉을 내놓아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다. 신발장 같은건 우리도 얼마든지 만들수 있다.

담임선생은 신발장을 만들던 날 다음순서는 드레박이라고 하였다.

녀교원합숙에 드레박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김동주도 잘 알고있었다. 그는 언제인가 송선생을 만나러 갔다가 정애경선생이 이웃집에서 드레박을 빌려가지고 우물터로 가는것을 보고 기억에 새겨둔적이 있다. 그때 그는 물 길으러 갈 때마다 남의 집 드레박을 빌려쓰느라면 꽤나 성가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녀교원합숙의 선생들을 마음속으로 동정하였다.

김동주는 송금주선생이 팔을 걷어붙이기 전에 먼저 손을 써서 드레박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오늘 아침부터 일에 달라붙었다. 일요일이여서 시간은 푼푼했다. 집안에서 망치질을 해대면 신경이 예민한 어머니가 잔소리를 할것 같아 뒤마당에 나가 나무판자를 깔고 일감을 벌려놓았다. 드레박 량쪽끝에 궁형으로 된 두개의 나무판대기와 그 판대기들을 하나로 련결시킬 《ㅗ》 자형각재는 이미 하루전에 규격대로 잘라놓은터여서 별로 품이 많이 들것도 없었다. 이제 그 《ㅗ》 자형각재와 량옆의 나무판대기를 고정시키면 녀교원합숙에서 사용할 또 하나의 목공제품이 태여나게 된다.

어머니는 온전히 하지도 못할 일에 애당초 손을 대지 말고 아버지에게 맡기라고 하였으나 김동주는 뿌등뿌등 제 손으로 한다고 옹고집을 썼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제 손으로 드레박을 만들어 합숙선생님들에게 드리고싶은것이 그의 소원이였다. 송금주와 정애경이 뼈심을 들여 학생들을 보살펴주고 이끌어주는 모습을 대할 때마다 김동주는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싶은 충동을 느끼군 하였다.

어제 밤 그는 누나에게 자기한테는 담임선생복이 있다고 자랑하였다.

소학교시절의 담임교원들도 다 좋았고 중학교에 와서 만난 송금주선생님도 나무랄데가 없는 선생님인데 용모, 재능은 말할것도 없고 몸가짐과 일본새, 마음씨까지도 다 제일이라고 하였다.

김동주를 제일 탄복시킨것은 송금주의 정열이였다. 그는 학생들을 위한 일이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았다. 사흘전부터는 하루 30분씩 시간을 정해놓고 상식공부를 시키였다. 정치상식, 력사상식, 지리상식, 과학상식, 문예상식을 비롯한 여러가지 상식을 심어주면서 학생들의 지식주머니를 불룩하게 해주었다. 이런 교원한테서는 10년이건 20년이건 배우고싶었다.

김동주는 나무판대기와 각재로 된 틀에 함석으로 살을 씌우고있다.

드레박을 만드는데서는 이 공정이 제일 까다롭고 힘들었다. 그중 품이 많이 드는것은 물을 퍼담게 된 궁륭형함석을 못을 박아 골조에 붙인다음 그 함석테두리를 벤찌로 일매지게 접어말아넣는것이였다.

그다음 그것을 망치로 자근자근 두드려서 면을 고르롭게 다듬었다.

그가 타래송곳으로 드레박손잡이에 끈을 꿸 구멍을 한창 뚫고있을 때 빈 배낭을 어깨에 걸친 고철룡이 오장수와 함께 그의 곁에 불쑥 나타나 어깨를 툭 건드렸다.

《동주, 이제 보니 너 굉장한 재간둥이로구나.》

《뭘 이쯤한걸 가지구.》

동주는 손에서 타래송곳을 놓고 이마의 땀을 씻으며 두 아이를 쳐다보았다. 일에 한창 열이 오를 때 그들이 나타난게 좀 실뚱했다. 고철룡은 어데 가서나 재구를 잘 치는 지독한 장난꾸러기이고 모험가였다. 그는 남들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아스라한 나무꼭대기에 올라가 팔뚝사리만큼밖에 안되는 가지를 타고앉아 두다리를 흔들거리기도 하고 조종간을 잡지 않고 자전거를 타기도 하였으며 달리는 자동차에 훌쩍 뛰여올라 수십리나 떨어진 이웃군소재지에 가보기도 하였다.

그처럼 떠들썩하게 소문을 내며 학교를 다니던 고철룡이 웬일인지 중학교 올라와서는 이상할 정도로 얌전해졌다. 옆구리에 밤알처럼 조롱조롱 달고다니던 아이들도 이즈막에는 퍼그나 성글어져 저 친구가 이전날 짝패들속에 늘 둘러싸여있던 고철룡이 옳기는 옳은가 하는 생각까지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김동주도 소학시절부터 성미가 건들건들하고 통이 크면서도 솔직하고 장난기가 심한 고철룡을 무척 좋아하였다, 두 아이의 아버지는 같은 채탄중대에서 모범채탄공으로 일하였다. 이런 인연때문인지 고철룡도 정의감이 강하고 동정심이 많은 김동주를 늘 같은 동아리에 넣고 끼고다니였다.

《저 바람벽에 드레박이 걸려있던데 이건 또 왜 만드니?》

고철룡은 김동주가 깔고앉은 널판자에 한쪽엉치를 붙이고앉으며 물었다. 김동주는 사실대로 대답하고싶었으나 고철룡이한테 사마귀처럼 붙어있는 오장수가 소문을 별나게 돌릴것 같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장수는 본것, 들은것을 아무데서나 꺼리낌없이 뱉아놓는 떠벌이였다. 그는 걸핏하면 남의 일에 간참하고나서는 쓸데없는 소문을 곧잘 돌리였다. 김동주가 녀교원합숙에서 쓸 드레박이라고 말해주면 오장수는 뒤에 돌아가 《동준 아첨쟁이야.》 하고 떠들어댈것이다.

《어데 가던 길이야?》

김동주는 두 아이가 무슨 드레박인가고 또 물을것 같아 말머리를 딴데로 돌리였다.

《마평덕으로 밤 따러 가던 길이야. 너두 같이 가자꾸나.》

고철룡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뒤로 배낭을 훌렁 휘둘러넘기였다. 배낭안에서 무엇인가 덜컥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였다.

점심밥곽이 아닐가. 지난해 가을에도 김동주는 철룡이와 함께 점심밥곽을 싸가지고 마평덕에 가서 하루종일 밤을 땄다. 그는 밤따러 간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구름 한점 없는 이런 날에는 등산을 하는 멋도 유별날것이다.

《갈래? 안 갈래?》

고철룡은 눈을 지릅뜨고 그의 대답을 재촉하였다.

《난 점심밥을 준비하지 못했어.》

《그건 걱정 안해도 돼.》

고철룡은 오른쪽어깨를 우로 살구며 배낭끈을 턱짓해보이였다. 그 배낭속에 밥도 있다는 의미일것이다.

《그렇다면 좋아. 가만, 내 요 구멍 마저 뚫구.》

김동주는 드레박손잡이 끄트머리의 구멍을 뚫던 자리에 타래송곳을 다시금 밀어넣었다. 그러자 고철룡이 한쪽어깨로 그를 밀치며 송곳을 앗아쥐였다.

《구멍은 내가 뚫을테니 어서 차비하고 나와.》

김동주는 집에 들어가 런닝샤쯔만 입은 몸에 교복을 걸친 다음 지난해에 쓰던 길이가 두발쯤 되는 작대기까지 들고나왔다. 그러는 사이에 뚝심이 센 고철룡이 구멍을 관통시키였다. 셋은 인차 마평덕으로 떠났다.

마평덕이란 영천읍 동쪽에 있는 해발 100메터미만의 나지막한 야산이다. 지난 세기말만 해도 이 덕은 울창한 수림으로 덮여있었다. 그런데 일본놈들이 그 수림속의 나무들을 모조리 도벌해갔다. 지금 그 덕은 다박솔들과 잡관목들로 덮이여있다.

더거지 말기의 밤나무숲에서는 한개 분대쯤 되는 조무래기들이 밤사냥을 하느라고 법석 고아대고있었다. 중학생모표를 단 아이는 두명뿐이고 나머지는 소학생들과 유치원코흘리개들뿐이였다. 중학생들은 나무아지를 타고 밤송이들을 찾아다니며 작대기질을 하였고 졸망구니들은 숲에 쫙 널려서서 저마끔씩 적당한 좌지들을 차지하고 석탄버럭덩이로 된 포탄들을 날리였다. 풀밭은 온통 버럭덩이들로 지저분했지만 작대기와 포탄에 맞아 떨어진 밤송이들은 얼마 보이지 않았다.

《협동화가 된게 언젠데 이치들이 아직 개인농을 하나.》

고철룡이 풀숲에 배낭과 작대기를 놓고 웃동을 벗어내치며 중얼거리였다. 듣고보니 조무래기들의 밤사냥은 정말로 협동화이전의 개인농들 꼴이다. 세 소년은 잔디밭에 퍼더버리고앉아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10분쯤 땀을 들이였다. 셋이서 오붓이 밤사냥을 하자고 했는데 그 꿈이 물거품으로 되였다. 쪼꼬만 밤알들이 부산스레 돌아치는것은 김동주도 질색이였다.

《철룡아, 지구가 좀 좁아진것 같지 않니?》

그는 버럭덩이들을 던지며 오락가락하는 아이들을 눈을 찡그리고 바라보며 수수께끼같은 말을 던지였다. 고철룡은 흠칫 놀라서 그를 돌아보았다.

《지구가 좁아지다니?》

《난 말이야, 저런 밤알들속에 있으면 지구가 좁아지고 페가 줄어드는것 같은감이 나. 귀가 막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지거던.》

《오, 그건 나도 같애.》

《저 애들을 보니 밤 딸 생각이 조금도 안 나누나. 중학생이 저런 밤알들하고 시합을 할수야 없지 않아.》

《나도 같은 생각이야. 아무래도 오늘은 우리 형님들이 저 밤알들의 주머니를 채워줘야 할것 같애.》

오장수는 그 말을 듣자 눈을 모로 세우고 반발하였다.

《안돼, 저 애들을 다 쫓아버리고 얼씬도 못하게 해야 해.》

그는 당장 완력을 휘두르기라도 할것처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조무래기들쪽으로 걸어갔다. 인디아라는 큰 준대륙을 타고앉은 영국총독의 표정도 그보다는 엄엄하지 못했을것이다. 그러자 고철룡이 그의 발치에 버럭덩이를 집어던지였다.

《장수, 놀부처럼 그러지 말어. 꽃봉오리들을 사랑해야지. 커서 저애들의 부하가 되면 무슨 봉변을 당하자구 그래?》

오장수는 봉변이라는 말에 말뚝처럼 굳어졌다가 제자리에 돌아와 《그건 그래, 그건 그래…》 하고 입안의 소리로 같은 말을 되뇌이였다.

제 말만 제 말이라고 냅다 밀군 하는 그도 고철룡의 주장앞에서는 함부로 입을 나불거리지 못한다.

《철룡아, 저 꼴 좀 봐라. 어디 밤이 한알이라도 떨어지니. 아무래도 협동조합을 조직해야겠다.》

아이들이 헛방질만 하는 꼴을 얼없이 지켜보던 김동주가 한마디 했다. 고철룡이 그 말에 인차 맞장구를 쳤다.

《옳아, 개인농들처럼 해서는 아무것도 못해. 협동화를 해야겠어.》

《관리위원장은 네가 해라. 저 밤알들을 모두 협동조합에 받아 밤따기조, 운반조, 가공조를 무어 일시켜보잔 말이야. 그럼 오늘 밤농사는 먹구 떨어진거야.》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고철룡은 두손벽을 마주치며 《됐어!》 하고는 공지 한가운데 나서서 《다들 모여라!》 하고 명령하였다.

밤송이들을 떨어뜨리느라고 갈잼질을 하던 아이들이 겁에 질린 기색으로 고철룡을 말똥말똥 바라보았다.

《여기 모이라는데두.》

고철룡이 손짓까지 하며 독촉을 해서야 아이들은 하나둘 그의 옆에 모여와 또아리를 틀었다.

《자, 다들 한줄로 서라.》

아이들의 눈에서 긴장이 서서히 풀리였다. 긴장대신 막연한 기대와 호기심으로 눈망울들이 반짝거리였다. 그들은 1렬횡대로 서서 다음 명령을 기다리였다.

《다들 듣거라.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들의 대장노릇을 하겠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 알겠지?》

《예.》

쨍 하는 대답소리와 함께 밤알들의 어깨가 한뽐씩이나 올라갔다. 그대답만으로도 그들은 열공수는 받을만 했다.

《좋아. 그럼 작업반을 뭇겠다. 너, 너, 너는 밤을 모으는 조, 너, 너, 너는 밤송치에서 껍데기를 벗기는 조, 너, 너, 너는 나무에 올라가 밤을 터는 조, 우리 중학생형님들은 나무밑에서 작대기질을 하겠다. 밤은 일한것만큼 준다. 작업시간은 한시간동안이야. 시작해보자.》

고철룡은 이런 지령을 주고나서 김동주와 오장수가 서있는쪽을 향해 눈을 끔쩍해보이였다. 한번도 해보지 못한 대장질을 하자니 어색한 모양이였다. 김동주는 《그럴듯해!》 하는 뜻으로 엄지손가락을 흔들어보였고 오장수는 《딱》, 《딱》 하고 손벽을 두번 치는것으로 대장역을 멋지게 해내고있는 고철룡에게 만족을 표시하였다.

셋은 조무래기들과 함께 부지런히 밤을 털었다. 한시간동안 털어낸 밤을 모두 모으니 686알이나 되였다. 그 밤을 13몫으로 나누어 밤알들에게는 50알씩 주고 셋은 12알씩만 가지였다.

《어때? 힘을 합치니까 이렇게 많은 밤을 따지 않았니. 앞으로는 말이야, 무슨 일을 하든지 힘을 합쳐야 해. 다들 알겠지?》

고철룡이 분배를 끝내고나서 이렇게 묻자 아이들은 일제히 《예!》 하고 밤나무숲이 떠나가게 대답하였다. 그리고는 개선장군들마냥 회색이 만면해서 마평덕을 내리였다.

《좋은 형님들이다야?》

《난 저 형님들을 잘 알아. 우리 동네 형님들이야.》

《우리 집에두 저런 형님들이 있음 좋겠다. 난 형이 없어.》

조무래기들이 사라져가는 숲속길에서 이런 말들이 들려왔다. 그런즉 오늘은 아이들을 위해 반나절을 바친셈이다. 고철룡은 땀으로 흠뻑 젖은 교복저고리와 런닝샤쯔를 벗어던지고 잔디밭에 벌렁 드러누워 기분이 좋을 때면 늘 그러듯이 《뻐꾹새가 노래하는 곳…》 하고 코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앞 끄트머리가 건득 들린 들창코가 오늘은 더 도드라져보이였다.

김동주도 교복앞자락을 활짝 열어제끼고 잔디밭에 비스듬히 누워 남쪽에서부터 북동방향으로 날아가는 구름송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저 기쁨속에 내가 흘린 땀도 스며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마음도 넓어지고 키도 커진것 같은감이 들었다. 그것은 그가 난생처음 체험해보는 흐뭇한 감정이였다.

셋은 12시가 좀 지나자 점심밥을 먹고 인차 귀로에 올랐다. 숲속길을 버리고 기슭에 나서자 읍과 이 덕을 이어주는 달구지길이 나타났다.

그 길을 따라 한참동안 묵묵히 걸어갔다. 산경사가 끝나고 평지가 시작되는 곳에 이르자 고철룡은 걸음을 멈추고 비탈밑에 있는 8각기와집을 손짓하며 느닷없이 물었다.

《동주, 너 저 집이 누구네 집인지 아니?》

《몰라.》

《저건 어제그제 우리가 롱구장에서 롱구를 할 때 못되게 놀던 그 2학년 1반의 장철갑이라는치네 집이야.》

《그래? 철룡아, 난 우리 학교에서 제일 보기 싫은게 그치야.》

김동주가 이렇게 말하자 오장수도 맞장구를 쳤다.

《나두 그래. 그치가 지나갈 땐 오싹해.》

그는 량어깨를 화들짝 떨며 진저리가 나는 시늉을 해보이였다.

그날의 롱구장을 되그려볼 때마다 김동주도 분노로 몸을 떨며 진저리를 치군 하였다.

장철갑이가 롱구장에 나타나 망동을 부린것은 주마다 한번씩 벌어지는 1학년 1반과 1학년 2반의 마라손식롱구경기가 방금 후반전에 들어섰을 때였다. 2학년의 동급생 롱구미치광이들을 한달구지나 달고온 그는 경기장에 뛰여들어 날아오는 공을 무작정 잡아 백판에 던졌다가 튕겨나는 공을 다시 잡아쥐고 말했다.

《이제부터 한시간동안 이 롱구장과 공은 우리가 써야겠다. 다들 롱구장밖으로 나가라.》

1학년생들은 목에 호각을 걸고 심판을 맡아보던 고철룡의 눈치만 흘끔흘끔 살피며 누구도 경기장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자, 빨리 나가라는데두.》

장철갑은 눈알을 부라리며 어성을 한도 더 높이였다. 그러나 1학년생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모두들 입을 앙다물고 이 무례하고 오만방자한 상급생을 밉살스레 쏘아보기만 하였다.

《왜들 이래? 나가라는데 말 못 들었어!》

장철갑은 목젖이 밖으로 떨어져나올것 같은 악청으로 왝왝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고철룡이 들창코를 치켜들고 그에게 반격을 가했다.

《네가 뭐게 남들이 경기를 하는데 뛰여들어 나가라 말라 하면서 야단이야. 이게 뭐 너희 집 마당이야!》

《그러게 한시간동안만 쓰겠다고 하지 않아. 상급생들이 쓰겠다고하면 하급생들이 무조건 양보를 해야지 뭘 그다지나 까박을 붙이면서 그래.》

《쳇, 굴러온 돌이 배긴 돌을 빼겠다구…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 야, 상급생이면 좀 상급생답게 놀라.》

나이로 보나 키로 보나 장철갑에게 별로 짝지지 않는 고철룡은 두손으로 삿대질까지 해가며 역습을 들이댔다. 거기에 김동주까지 합세하여 총알같은 말마디들을 내쏘았다.

《강도들처럼 놀지 말고 빨리 물러가. 안 물러가면 선생님들한테 고발질할테야.》

물론 그는 마라손식롱구경기를 발기하고 매일 경기결과를 보고받는 송금주선생이나 정애경선생한테 장철갑을 일러바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완력으로는 2학년 상급생들을 당해 못내니 그저 엄포라도 놓아 스스로 꽁무니를 빼게 하자는것이였다.

《조게 따벌처럼…》

장철갑은 오른손 두번째손가락을 김동주를 향해 꼿꼿이 내뻗치고 폭탄같은 말을 던지려고 끙끙 갑자르다가 가슴에 안고있던 롱구공을 제방뚝너머로 멀리 차버리고는 교사쪽으로 털썩털썩 걸어갔다. 2학년생들이 훼방을 놓는 바람에 그날의 경기는 흐지부지되고말았다. 고철룡과 김동주는 공을 주으려고 제방뚝너머로 달려갔다. 화대천물에 면바로 떨어진 롱구공은 물결에 실려 아래로 멀리 떠내려가고있었다. 물에서 건져낸 공을 롱구장에 가지고 돌아와 땅바닥에 힘껏 메쳐보았으나 잘 튀여오르지 않았다.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나서 속이 부글거린다.

《철갑인 롱구선수라고 얼마나 으시대는지 몰라.》

오장수가 장철갑이네 집쪽을 손가락질하며 입을 삐죽해보이였다. 그리고는 또 입을 나불거리였다.

《그친 학교도 자전거를 타고다니더구나. 가만, 저기 그 자전거가 보인다.》

과연 대문앞에 뻗치개를 펴고 서있는 자전거가 보이였다. 누구인가 나들이를 가려고 대문밖에 세워둔게 틀림없었다. 김동주는 눈을 반짝거리며 고철룡의 팔을 슬쩍 잡아당기였다.

《철룡아, 우리도 철갑일 골탕먹이자꾸나.》

《어떻게?》

《저 자전거를 개울에 팽개치자. 우리가 롱구공을 건져내느라고 바지를 적신것처럼 저도 좀 물에 들어가 바지를 적셔보라지.》

《응, 그래. 그게 참 멋있구나.》

고철룡은 손가락으로 딱소리를 낸 다음 단숨에 대문앞에까지 뛰여가 자전거를 둘러메고 달구지길 저쪽에 있는 개울가로 곤두박질해갔다. 김동주와 오장수도 그를 따라 개울가로 달려갔다. 고철룡이 어느새 자전거를 내동댕이쳤는지 개울에서 첨벙하는 소리가 나고 크고작은 물사래가 공중으로 튕겨오르는 모양이 바라보이였다. 안장과 앞뒤바퀴는 바닥에 처박히고 조종간의 한쪽끄트머리만이 흙탕물과 물에 미역을 감지 않고 수면우로 삐주름히 고개를 쳐들고있었다. 마치 물밑에 가라앉은 자전거가 길다란 혀를 빼물고 못난 철갑이때문에 내 오늘 이런 억울한 봉변을 당하는구나 하고 한탄이라도 하는듯 한 조형적인 모습이였다.

《통쾌하구나-》

오장수가 《나》자를 길게 끌며 무슨 타령이라도 하듯이 성수가 나서 말했다. 하지만 개울바닥에 자전거를 팽개치자고 짝패들을 꼬드긴 김동주자신은 아무런 통쾌감도 만족감도 느낄수 없었다. 저 고래등같은 8각기와집전체를 물속에 처박는다 해도 그날 롱구장에서 당한 모욕을 앙갚음하기에는 부족하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자전거를 팽개치면 좀 밸이 풀어지고 속도 후련해지리라고 생각했었는데 롱구장에서 당한 모욕감은 조금도 삭지 않고 마음 한구석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따지고보면 그것은 징벌이라기보다 약자의 유치한 밸풀이에 지나지 않았다.

《이놈들아, 이게 무슨짓들이냐!》

머리우에서 갑자기 벼락치는듯 한 호령소리가 들리였다. 세 소년은 일제히 개울을 등지고 소리나는쪽으로 돌아섰다. 새하얀 여름저고리에 호박색조끼를 받쳐입은 60대의 꺽두룩한 늙은이가 시꺼먼 눈섭을 푸들쩍거리며 매눈같은 눈으로 소년들을 노려보고있었다.

《네놈들이 자전거를 메고 이리로 오는걸 내 다 봤다. 고현놈들, 도적질도 분수가 있지. 지금이 어떤 때인데 네놈들이 감히 남의 자전거에 손을 대. 네놈들 눈에는 그래 천리마도 안 뵈여?》

《철갑이 할아버지, 우리도 천리마를 타고 날아가는 아이들인데 왜 남의 자전거를 훔치겠나요. 철갑이가 우리한테 못된짓을 했기때문에 우린 그걸 복수하느라고 이 자전거를 개울에 팽개쳤어요.》

고철룡이 담판장에 나선 대표처럼 사리를 따져가며 또박또박 말했다.

그는 눈섭 한오리 까딱하지 않고 할아버지, 하실 말씀이 있으면 더 하십시오 하는듯 한 표정으로 로인을 당당하게 쳐다보고있었다.

《우리 철갑이가 도대체 무슨 중한 죄를 졌게 너희들이 이렇게 모진 방법으로 밸풀이를 하는거냐? 응?》

《할아버지, 그건 철갑이한테 물어보시라요. 애들아, 가자.》

세 소년은 개바닥에 나딩구는 자전거와 로인을 두고 개울가를 떠났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