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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제 2 장

4

송금주는 오후 첫시간부터 학교후원에 있는 공작실습실에 들어박혀 목공작업을 하였다. 매주 수요일은 그가 이 건물에서 목공기술을 련마하는 날이다. 수동식프레스조차 없는 이 학교의 공작실습은 아직 순수한 목공일변도의 실습에 머무르고있었다. 영천과 같은 농촌지구 학생들에게는 간단한 목제품이나 공예품들을 만들수 있는 기능을 가지도록 하게 하라는것이 이 과목 과정안의 요구였다. 주에 한번씩 네차례의 실습을 하는 과정에 송금주는 학생들과 함께 칠판지우개와 쓰레받기를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목공솜씨도 퍼그나 늘었다.

그는 지금 김동주의 도움을 받으며 녀교원합숙에 놓을 신발장을 만들고있다. 칠판지우개나 쓰레받기를 만드는 솜씨면 신발장도 만들수 있다는것이 송금주의 배심이였다. 녀자라고 그런걸 못 만든다는 법은 없다. 영천에는 신발장을 놓고 사는 집이 별로 없다. 그저 부엌봉당이나 퇴마루 같은데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산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오막살이나 움막집에서 되는대로 살아가던 때의 낡은 생활양식과 관습을 버리지 못하고있다. 전쟁이 끝난지도 6년이 되는데 신발장도 없이 살아간다는게 말이 되는가.

낡은 생활방식과 인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생활문화, 생산문화를 창조하는데서도 교원들은 선구자가 되고 기수가 되여야 한다. 영천땅에서는 교원이 최고의 지식인이고 문화인인데 신발장도 없이 산다면 그게 무슨 꼴불견인가. 습관을 제2의 천성이라고들 한다지만 생활에 리롭지 못한 곰팡내가 나는 천성은 제때에 수술해버려야지 그러지 않다가는 생활자체가 부식을 면할수 없게 된다.

목공실 한복판에는 김동주가 집에서 가져온 신발장이 놓여있다. 송금주는 그것을 견본으로 하여 4단짜리 신발장을 설계하였다. 식구는 두명뿐이지만 단수를 넉넉히 잡았다. 합숙생이 3명, 4명으로 늘어날수도 있고 신발걸레수가 불어날수도 있지 않는가. 나라살림살이가 유족해지면 인구 1인당 신발생산량도 부쩍 올라갈것이다.

송금주는 아까부터 목공틀에 4센치메터짜리 각재를 올려놓고 땀을 뻘뻘 흘리며 대패질을 하고있다. 신발장틀을 만드는데 쓰려고 제재소에서 켜온 피나무각재들이였다.

날이 선들선들한 대패는 나무거스러미들을 잘도 밀어냈다. 송금주의 첫 생활비로 지은 치마저고리를 찾은 다음날 정애경이 건재상점에서 사온 대패였다. 정애경은 그날 송금주에게 답례의 표시로 대패, 망치, 뻰찌, 자귀, 끌, 톱을 비롯한 공구일식을 사다주었다. 너무도 발이 빠른 1 대 1의 그 인사치레가 좀 얄밉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의 우정에 감동되였다.

《나는 네가 이 도구들의 노예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정애경은 공구들을 넘겨주면서 이런 훈시를 하였다. 공작실습과목을 너무 오래 맡지 말라는 의미의 말이였다.

《영원한 노예가 되지 말라면서 왜 사다주지?》

《상징적인거지. 녀선생과 목공도구 일식, 얼마나 서글픈 대조야. 대조가 심할수록 인상이야 강하지 않겠어. 두고두고 이 정애경을 잊지 말라는거지.》

《너의 그 남다른 정이야 어떻게 잊을수 있겠니. 그런데 애경이, 난 어쩐지 이 도구들이 나의 영원한 동반자가 될것 같은 예감이 드는구나.》

《못난소리 작작해. 네가 나를 대신해서 공작실습을 맡아준건 고마운 일이지만 그것도 한달이상은 하지 않는게 좋겠어. 새파란 처녀가 그게 무슨 꼴이야.》

정애경은 이런 말을 남기고 공작실습실에서 나가버렸다.

뭐, 영원한 노예가 되지 말라? 그런데 난 이 일이 재미나는걸 어떡해. 하긴 집안에서 고이 자란 네가 그 재미를 어떻게 알겠니. 송금주는 속으로 이런 독백을 하면서 슬근슬근 대패질을 하였다. 결이 고운 피나무는 대패날이 잘 먹어들어갔다. 손에 조금만 힘을 넣어도 향긋한 대패밥들이 강글강글 타래를 지으며 밀려나왔다.

《선생님은 지금 괜한 고생을 하십니다.》

각재가 움직이지 않게 두손으로 끄트머리를 꼭 붙잡고있던 김동주가 약간 볼이 부은듯 한 어조로 웅얼거리였다. 송금주는 대패질을 멈추고 어안이 벙벙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괜한 고생이라니?》

《신발장 안쪽에 댈 각잰데 대패질은 왜 하나 말입니다.》

《안쪽이나 바깥쪽이나 다 매끈매끈하게 다스려줘야지 눈에 보이지 않는쪽이라고 해서 차별하면 되나.》

《야, 선생님두 참. 목수들도 보이지 않는쪽은 대패로 밀지 않는데… 도색도 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김동주는 채 터치지 않은 안타까움을 손바닥에 실어 고슴도치처럼 빳빳하게 일어선 머리카락들을 연방 쓸어넘기였다. 송금주는 얼굴을 모로 돌리면서 눈을 흘기였다.

《아무리 값비싼 물건도 바깥쪽만 치장하면 그건 반쪽짜리가 되는거예요. 그러면 물건에 대한 인상도 나빠지구요. 도색이나 대패질을 하지 않은 나머지반쪽에서는 부식작용이 인차 일어날수도 있지요.》

김동주는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인차 입을 다물어버리였다.

《자, 이젠 틀을 짜보자요.》

송금주가 도면에 써놓은 수치대로 김동주는 톱으로 각재들을 자르기 시작했다. 송금주는 그에게 조수이상의 역은 맡기지 않고 단순로동인 톱질만 시키였다. 고급로동인 대패질과 망치질은 자기가 직접 하였다.

저녁 8시경에는 마침내 신발장제작을 마무리하고 제품에 밤색라크칠까지 하였다. 송금주는 김동주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방안정돈을 끝낸 다음 의자에 앉아 땀을 들이며 자기의 걸작품을 한참동안 감상하였다. 보면 볼수록 흐뭇하고 대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합숙에 들어설 때마다 노상 마음에 걸리군 하던 중요한 골치거리가 멋들어지게 해결되였은즉 얼마나 속이 거뜬한가.

이제 우리는 합숙을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할가, 무엇을 더 보태고 무엇을 개조해야 하는가. 지금 당장은 모자라는것도 없고 눈에 거슬리는것도 없다. 그 이상 무슨 치장이 더 필요하랴.

가만, 중요한걸 놓칠번 했다. 드레박! 드레박이 우리에겐 없다. 매번 이웃집걸 빌려쓰고있는데 이걸 해결해야 한다. 드레박도 없는 합숙을 어떻게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합숙이라고 말할수 있겠는가. 그렇다.

다음번 목표는 드레박이다. 내 손으로 드레박을 만들자. 우리 합숙이 남들의 덕으로 살아가는 동냥합숙이 되여서야 안되지.

실습실문이 삐그덩소리를 내며 열리였다. 반시간전에 집으로 돌려보낸 김동주가 문설주밑에 서서 머밋머밋한 자세로 송금주를 바라보고있었다.

《아직 집에 안 갔어요?》

송금주는 소년의 앞에 다가갔다. 소년은 대답대신 벽으로 손을 뻗쳐 전기스위치를 찰각소리가 나게 돌린 다음 방안을 환하게 해주는 불빛에 눈을 사그라뜨리며 말했다.

《선생님, 정애경선생님이 아까부터 교문앞에 서있습니다. 저녁밥을 지어놓고 선생님을 기다리는것 같습니다.》

《그래요? 고마와요. 그럼 가야지.》

송금주는 말과는 달리 의자에 도로 주저앉았다. 오늘은 왜 그런지 의자에 그냥 앉아 몇시간이고 명상에 잠기고싶었다. 자기 손으로 그 무엇인가를 만들어냈다는 달콤한 자부와 창조의 희열이 온몸과 넋을 노곤하게 하였다. 그것은 지금까지 한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가슴벅찬 성취감이였다.

《선생님, 신발장 같은걸 선생님이 직접 만들어야 합니까?》

김동주는 애원하는듯도 하고 힐난하는듯도 한 눈길로 송금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상대방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오금을 박듯이 말했다.

《선생님, 그런걸 만들 땐 우리에게 부탁하십시오. 우리가 다 만들어내겠습니다.》

그다음 조용히 방에서 사라졌다.

저 동주가 오늘은 왜 저렇게도 나의 목공로동을 막지 못해 안절부절 할가. 나 모르게 무슨 뒤소리라도 돌아가는걸가. 자기네 담임선생이 녀자의 몸으로 망치질을 딱딱 하는게 구접스레 보인다고 그럴가. 녀교원이라는게 옷에 대패밥을 묻혀가지고 다니니 좀 동정도 가겠지. 어쨌든 걱정을 해주는건 고마운 일이다. 이건 내가 제자들의 관심속에 있다는 증거이다. 교원이 제자들의 사랑을 받는다는거야 얼마나 좋은 일인가. 명상은 자꾸만 넌출을 쳤다. 가만 있자, 애경이가 교문앞에서 기다리는것 같다고 했지. 어이쿠, 벌써 창문밖이 새까매졌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옴짝하기 싫을가. 제발 누구든지 나를 건드리지 말았으면. 송금주는 까치다리를 하고 몸자세를 바꾸는것으로 사색의 다음페지를 펼치였다.

바로 그 순간 그의 머리우로 정애경의 옹골찬 목소리가 벼락치듯 날아왔다.

《야 금주, 넌 언제부터 마나님이 됐니!》

깜짝 놀란 송금주는 자리에서 화닥닥 일어나 두손으로 가슴을 움켜잡고 어깨숨을 크게 몰아쉬였다. 눈을 우습게 흡뜨고 얼이 한절반 빠져나간듯 한 시늉을 하면서 의자에 풍덩 몸을 실었다.

《어휴, 너때문에 10년은 감수한것 같구나. 예순까지 살기는 다 틀렸다.》

정애경은 송금주의 뒤로 성큼성큼 걸어와 의자등받이 가름대를 잡고 앞뒤로 마구 흔들어대며 한바탕 떠들어댔다.

《이 애경이가 만드는 특식은 안중에도 없다는거지. 그래 도대체 여기서 무슨 륙갑질이야?》

《어이구, 저 호통치는 꼴 좀 보지. 서울댁 마나님 찜쪄먹겠다야. 네가 부뚜막앞에서 부인동맹에 가입할 훈련을 하는 사이에 이 송언니가 여기서 어떤 기적을 창조했는지 한번 보렴.》

송금주는 정애경의 발치에 라크빛이 번들거리는 신발장을 보란듯이 들여다놓고 의자에 앉아 다시금 까치다리를 하였다. 그는 짝패의 눈에서 동공이 서서히 확대되는것을 보면서 글쎄 그러면 그렇겠지 하고 속으로 쾌재를 올렸다. 정애경은 갈잼질을 하다가 진정된 염소처럼 인차 기를 숙이고 조용해졌다. 신발장을 유심히 살펴보는 그의 눈언저리에는 경탄에 가까운 일종의 진지한 표정까지 떠올랐다.

《이걸 그래 네가 만들었단 말이야!》

송금주는 대답대신 《에헴.》 하고 건기침을 톺아올리며 두손을 량옆구리에 올리고 잔뜩 으시대는 시늉을 해보이였다.

《이것 봐, 애경이. 자기가 어떤 인물하고 같이 산다는것쯤이야 알고있어야지.》

정애경은 손가락끝으로 신발장 여기저기를 살살 매만지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맙소사, 송금주란 인물한테 이런 재간이 다 있었구나. 이게 정말 이 손바닥에서 나온 물건이 옳긴 옳니?》

송금주는 그 말에 또다시 《에헴!》 하는 기침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러자 정애경은 갑자기 엄한 표정을 짓고 무슨 선고라도 내리듯이 못을 박았다.

《금주, 너무 그렇게 으시대지 말어. 난 네가 두번다시 이런 일에 손을 대지 말것을 권고한다. 이거야 어디 녀자가 할일이니.》

《입만 벌리면 네 입에서는 19세기 냄새가 물컹물컹 풍기는 소리만 나오는구나. 내가 만일 공화국의 로동상이라면 온 나라의 목공들을 몽땅 녀자로 교체해버리겠어. 섬세한 손재간을 요구하는 목공작업이야말로 녀자들이 할일이 아니고 뭐야.》

《이제 송금주 로동상덕에 온 나라 녀자목공들이 가난뱅이가 되겠구나.》

《왜 가난뱅이가 된다는거야?》

《대장쟁이는 부자가 돼두 목수는 부자가 못된다는 말이 있지 않니.》

《그럼 그들에게 우대금을 주지 뭐.》

《그러단 로동성금고가 거덜나게.》

송금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팔을 활짝 펼치고 기지개를 켜면서 시랑송이라도 하듯이 웅얼거렸다.

《오, 보람찬 로동의 하루여, 어느새 땀도 잦고 해도 지고 하늘에선 별들이 바글거리는데… 이 배에서는 식충들이 막 폭동을 일으키누나.》

두 처녀는 실습실이 떠나가게 한참동안 깔깔대다가 신발장을 맞들고 합숙으로 향하였다. 부엌문을 열고 합숙에 들어서자 구수한 호박국 냄새가 창자를 요동치게 했다. 부엌봉창 한구석에 신발장을 놓고 거기에 둘의 신발들을 얹어놓았다. 신발이라고 해야 비닐신 두걸레와 편리화 두걸레뿐이였다.

《우리 이렇게 하자. 맨 웃단엔 네 신발, 두번째 단엔 내 신발, 그 다음단들엔 손님들 신발…》

송금주가 분배안을 발표하자 정애경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게 좋겠어. 신발장 간수를 4단으로 한건 아주 잘한거야. 신발장이 들어앉으니까 부엌의 면모도 달라지는구나. 금주, 오늘 정말 큰일을 했어.》

《글쎄 그러면 그렇겠지. 그 입술에 금박칠을 해주고싶구나.》

《이것 보지, 칭찬 한마디에 입이 팥자루가 되는걸. 그렇지만 금주, 칭찬을 독점할 생각은 하지두 말어. 오늘은 나도 합숙을 위해 뭘 좀 했다는걸 알리는바이야.》

《그게 뭔데?》

정애경은 송금주의 허리를 껴안고 아래방에 들어가 부엌으로 나가는 나들문 맞은켠벽에 붙어있는 어떤 인물사진앞으로 다가갔다. 무대복을 입은 사나이가 턱에 바이올린을 붙이고 활을 긋는 모습을 찍은 색사진이였다.

《누군지 맞혀봐.》

정애경은 눈에 장난기를 담고 송금주를 슬쩍 돌아보았다.

《누군 누구겠어, 백고산이지. 어데서 만냥짜리 사진을 얻어왔구나.》

《전금옥선생한테서 〈조선화보〉를 빌려보다가 이 사진이 실렸길래 무작정 달라고 했지 뭐. 못 주겠다질 않아. 알고보니 그 선생도 백고산선생의 음악에 홀딱 반한 바이올린애호가더구나. 조기천선생의 사진을 복사한 연필화를 주고 겨우 따냈어.》

송금주는 아무 말도 없이 눈에 독을 품고 정애경을 노려보았다.

《금주, 너 왜 그렇게도 도끼눈을 해가지고 나를 쏘아보니? 응, 제가 사랑하는 시인과 바이올린연주가를 교환한게 불쾌하다는거지. 아무렴 내가 조기천선생을 버릴 사람이야. 내 비망록에 조기천선생사진이 한장 더 있다는거야 너도 알지 않니.》

《아, 그래. 내가 그걸 잊고 한바탕 널 몰아댈번 했구나. 애경이, 생각나니? 지난해 가을에 도예술극장에 가서 백고산선생의 바이올린연주를 감상하던 일이?》

《생각나구말구. 우린 그날 호실에 돌아와 온밤 백고산선생의 연주에서 받은 흥분을 안고 잠을 못 이루지 않았니.》

송금주는 한해전 가을을 눈앞에 되살리며 백고산의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현끝에서 자유분방하게 울리던 《용광로가 보이는 바다가에서》 의 섬세하면서도 우아한 선률이 아득한 시공간을 타고 이 합숙방에까지 날아와 마음속의 금선을 부드럽게 쓸어주는것 같은 환각에 몸과 넋을 내맡기고 몇초동안 숨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서있었다.

그때 난 그의 연주를 감상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던가. 김원균, 조기천, 리면상, 김옥성, 백고산, 최승희와 같은 재사들을 줄줄이 낳고 내세워주는 로동당시대를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수령님께 감사를 드리지않았던가. 백화만발한 우리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자부심을 안고 백고산선생의 모습에서 줄곧 눈길을 떼지 못했었지.

쇠물이 이글거리는 용광로들과 풍작으로 우거진 협동벌들, 어장들, 탄광들, 건설장들을 눈앞에 그리며 가슴을 들먹거리였지. 재더미를 헤치고 장엄하게 일떠서는 거리들과 광장들, 학교들과 극장들을 생각하며 목이 메여 눈물을 흘렸어. 내옆에 앉아있던 김책제철소 로동자와 교원대학 학생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았던가.

그처럼 신묘하면서도 아름답고 서정깊은 울림으로 관객들을 휘여잡던 백고산선생이 오늘 바이올린을 들고 이 합숙방에 나타났다. 우연같지만 순전한 우연은 아니다. 이것은 음악애호가와 연주가의 있을수 있는 상봉이다.

송금주는 귀전에서 무슨 울림같은것이 회오리치는것 같아 고개를 수굿하고 묵념에 잠기였다. 분명 그것은 도예술극장에서 듣던것과 조금도 다름없는 그런 선률이였다. 울림이 점점 커지면서 선률의 형체가 명백해졌다. 《용광로가 보이는 바다가에서》의 바이올린독주곡이 날개를 저으며 자유로이 방안을 감돌고있었다. 그런즉 정애경은 옹근 하나의 악단을 방으로 끌어들인셈이다.

《금주, 생각나니? 백고산선생이 챠이꼽스끼명칭 국제음악콩클에서 상을 받았을 때 너하구 나하구 편지로 기쁨을 나누던 일이?》

정애경이 송금주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송금주는 묵념에서 깨여나 사진을 등지고 돌아섰다.

《생각나. 그때 넌 백고산선생에게 축하편지까지 보냈다고 했지.》

《그럼, 전쟁이 승리한데다가 입상까지 하였으니 내 기쁨이 더 컸던것 같애.》

《어쨌든 넌 오늘 네자신과 나를 위해 훌륭한 지참품을 마련하였다. 네가 가져온건 한장의 사진에 불과한것이지만 하나의 교향악단과도 맞먹는거야. 그 선생이 연주하는 모든 독주곡들과 협주곡들이 사진과 함께 우리의것으로 된셈이지.》

《꿈보다 해몽이 요란하구나. 자, 그럼 입방아는 그만 찧고 식충들의 폭동을 진압해야지.》

정애경은 손바닥으로 송금주의 아래배를 툭툭 건드리고나서 부뚜막앞으로 내려갔다. 두 처녀는 인차 호박국으로 성찬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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