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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 회

상원사람들

리 명 순

4

2016년 9월 27일

《사회주의애국희생증》, 《이어가는 삶》


이 글발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재혁은 헉! 하고 흐느꼈다. 눈물이 그의 얼굴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비가 사정없이 많이 내리는 날이였다. 주룩주룩 끝없이 내리는 비속을 그는 우산도 없이 걷고 또 걸었다. 거인과도 같은 소성로밑에 서니 소성로 돌아가는 소리가 마치나 커다란 새울음소리처럼 가슴을 허빈다.

사람들의 목소리도 사라지지 않고 귀전을 울린다.

《전날 밤에 랭각기보수를 끝냈을 때에도 그는 사람들과 휩쓸려 웃기도 하고 롱담도 주고받았습니다. 아픔으로 얼굴을 찡그린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더라면 왜 이렇게 가슴이 저려오겠습니까.》

《작업을 하고 뒤처리하는걸 잊어버린 한 젊은 반원에게 진심으로의 충고를 담아 욕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날 밤 11시에 2호소성로 소치차에서 온도경보가 울리는 바람에 그것을 정상온도로 떨구느라 송풍기를 설치하며 애를 좀 썼습니다. 간난신고는 했지만 정상으로 된걸 보고 휴계실에 들어왔는데 그로부터 1시간만에 글쎄…》

《북부전투가 시작된 어느날 집에 들어온 주인이 날보구 주사놓는 방법을 좀 배우라고 하더군요. 왜요? 했더니 하루 세번 주사를 맞아야겠는데 그게 자기에겐 시끄럽다는게 아니겠나요. 난 발칵 성을 냈습니다. 현대적인 병원이 코앞에 있는데 그게 말이 되는가. 딸들을 생각해서라도 몸을 돌봐야 하지 않겠는가.… 헌데 그인 내가 성을 내건말건 가만있더군요. 혼자 화를 내다가 제풀에 성이 가라앉아서 물었습니다. 병원에는 갈 시간이 없는데 집에는 올 시간이 있나요? 했더니 당신이 좀 와주오.… 하겠지요. 난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도 천정기중기가 고장났다는 말을 듣고는 집에 들어와서 10분도 안되여 또 나간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뛰여다니다가 병이 더 악화될가봐 난 응하고말았습니다. 주사를 놓을 때마다 그는 전투가 끝나면 꼭 병원으로 가겠소 하고 날 위로해주군 하였습니다.…》

재혁은 비속을 걷고걸었다. 구내길을 지나 기차길들이 뻗어있는 전용선직장과 출하직장이며 원료직장으로 해서 균질화직장으로… 어쨌든 끝없이 걷고만싶었다. 비로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평화시기에 목숨을 바친 인간. 치료를 받으면 능히 고칠수 있는 병인줄을 뻔히 알면서도 시간이 아까와서 가지 않은 사람… 아, 나도 그렇게 할수 있을가. 말로는 누구나 화구를 막을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러나 오늘의 하루하루를 전쟁의 시점에 놓고 살고있었던가!

《북부피해복구전투에서 우리가 기치를 들자!》

재혁은 이렇게 써붙인 벽보판앞에 서있었다. 붉은 기폭이 휘날리는 배경그림은 그에게 시 한편을 상기시켜주었다.


내 최후의 돌격전에서

기발들고 나가다 쓰러져

영영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해도 조국이여

부디 나를 잊지 마시라

그리고 용서하시라


그는 시처럼 살았다. 기발을 들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며 자기 온몸의 피를 깡그리 다 바치고 그리고 웃으며 갔다. 백두산답사의 나날에 리명수폭포앞에서 티 한점 없는 웃음을 짓던 그때처럼…

사회주의애국희생증이 수여되였다. 수여식이 있은 저녁에 영길의 생각이 너무도 간절해서 그가 일하던 수리반으로 갔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처녀애가 텅 빈 휴계실에 앉아있었다. 장례식때 희망대로 피복공장에 가게 되여 파견장을 기다린다고 하던 영길의 막내딸이였다.

책상우에는 영길의것이였던듯 한 사품들이 놓여있었다. 빨간 안전모, 한번도 쓰지 않은 새 장갑퉁구리(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늘 장만해두고있은 모양이였다.) 그리고 좀 낡은 낚시대 하나…

재혁은 낚시대를 집어들었다. 늘 쓸어보는것으로 만족한다던, 상원천의 푸른 물이 그렇게도 소리치며 흐르는데 한번도 드리워보지 못한 저 낚시대…

《아버진 늘 이랬어요. 올해도 다 가는데 이러다간 진짜 낚시질을 한번도 못하고 보내겠구나.… 하루는 내가 대신 낚시질을 해줄게요 했더니 그 일이란게 절대로 대신하지는 못하는 일이라나요. 어머니가 그러는데 내가 태여났을 때 아들이 아닌걸 그렇게두 섭섭해했대요. 소성로에는 녀자보다 남자가 서야 더 제격인데 하면서요.… 하지만 난… 아들은 아니지만 소성로앞에 아버지대신 서겠습니다.》

이름은 김룡희, 아버지를 신통히 닮았다. 큰 눈은 마치나 사슴의 눈같았다.

재혁은 목이 메여서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아버지의 희생은 어린 딸을 단 하루사이에 철들게 해주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필연이라고 해야 할지.… 재혁은 룡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영길이, 마음을 놓으라구, 이제부터 룡희를 잘 키우겠네.… 그 애는 동무의 딸일뿐아니라 기업소의 딸이 될거네.…

비는 내리고내리며 의지를 더해주고 신념을 굳혀주고있었다. 비속에서도 소성로는 돌아갔고 희생은 있었어도 생활은 이어지고있었다. 그날은 바로 북부피해복구전투용 세멘트생산이 54%계선에 들어선 날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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